제왕도 태자가 되는 것을 상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제왕은 자신의 그릇의 크기를 알고 있었다. 한 국가가 그의 손에 달렸다면, 과연 그는 감당할 수 있을까?그렇다고 기왕이 태자가 되어 정권을 잡는다면, 한 구석으로 물러서 국정에 신경쓰지 않고 한가한게 왕 노릇이나 할 수 있을까? “태자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모두 계략을 세우고 있을 겁니다. 심지어 초왕비도 수를 쓰고 있지 않습니까? 이것은 권력 쟁탈전 뿐 아니라 생사가 걸린 싸움입니다. 만약 제왕께서 태자 자리에는 오르지 않겠다고 두 손을 든다고 해도, 제왕은 적자(嫡子)이기에 이 싸움을 피할 수 없을 겁니다. 기왕이 만약 태자가 된다면 조정에 있는 모든 사람을 자기 편으로 포섭할테지만, 적자인 당신과 모후는 절대 포용하지 않을겁니다.”주명취가 진지한 표정으로 제왕을 바라보며 말했다.제왕은 그녀의 두 손을 잡으며 “본왕이 잘 생각해 볼 테니, 너무 걱정하지는 마라.”라고 말했다. 이전에 그도 이런 생각을 안해본 것은 아니지만, 아직 시간이 좀 있으니 걱정 할 필요가 없다고 여겼다. 그러나 오늘 기왕이 다섯째 형을 죽이려고 했다는 것을 알고 난 후, 그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시간이 많이 남은 것이 아니라, 그가 시간을 핑계로 이 문제를 회피하고 있었던 것이다.회왕부에서 두 왕비가 물에 빠졌다는 소식이 왕실에 자자하게 퍼졌다. 이 소식을 듣고 가장 화가 난 사람은 노비(鲁妃) 마마였다.회왕의 병세가 좋지 않아 오늘 내일 하는 이 시점에도 이렇게 소란을 피우다니 그녀가 어찌 분노하지 않겠는가?그녀는 울면서 명원제를 찾아가 이 일을 보고했다.“초왕비라는 사람은 정말 너무한거 아닙니까? 제왕비와 개인적인 원한이 있으면 밖에서 해결할 것이지, 왜 제 아들이 있는 회왕부에서 이런 음침한 짓을 저지른 겁니까. 만약 그 일로 회왕부에서 사람이 죽었다면, 회왕에게 불똥이 튈 수도 있지 않습니까?”노비(鲁妃)는 흐느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명원제는 가뜩이나 아들의 병으로 괴로워하는 노비가 이런 추접
냉정언을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제 아무리 세상 이치를 통달한 수재라도해도 힘 있는 사람 앞에서는 통하지 않았다.“황제께서 제왕비는 부르지 않고, 초왕비에게만 입궁하라고 명하셨지 않습니까? 이렇게 된 이상 누구의 말이 옳고 그른지는 황제가 신경 쓸일이 아니라는 말입니다.”“네 말이 맞는 것 같구나. 짐이 초왕비를 입궁하라고 명한 것은 잘 한 일인가?”명원제는 차를 마시며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잘하고 못하고 따질 필요가 없습니다. 초왕비가 입궁했을 때, 변명도 들을 필요없이 그녀가 저지른 죄의 죗값을 치루게 하면 됩니다. 죗값은 황제께서 정하시면 되겠네요.”“그렇게 하는게 맞다고 생각하느냐?”“소인의 생각을 그렇습니다.”“그게 옳다고 생각하냐고!”“…… 예 그렇습니다.”명원제는 이미 마음속으로 결정을 내렸으면서, 왜 냉정언의 입에서 이런 말을 듣고 싶어 하는걸까.명원제는 냉정언의 대답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경의 생각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이 먼저 죄를 물어야 겠군. 그녀가 속죄하는 방법은 회왕의 병을 고치는 것 뿐. 짐은 이번만 특별히 자비를 베풀어 일단 원경릉의 죄를 사면해 줘야겠어. 후에 무슨 일이 생기면 다시 죄를 묻는거지. 경의 생각이 참 좋구만!”“폐하의 찬사에 몸들 바를 모르겠습니다.”라며 냉정언이 바둑판을 만지작거리더니 “그럼 한판 더 두시겠습니까?” 라고 물었다.명원제는 손을 저었다. “뭘 또 바둑을 둬? 자네는 요즘 일이 없느냐? 정사에는 신경을 쓰지 않고? 지금 젊은이들을 좀 봐! 얼마나 학문에 몰두하는지! 자네 이러다가 점점 뒤떨어진다? 짐을 위해서 학문을 소홀히 하지 말거라!”명원제의 말을 듣고 냉정언은 물러갈 수밖에 없었다. ‘황제의 총애를 받는 신하로 사는 것이 이렇게 힘들다니.’두 시간 후, 원경릉이 어서방으로 불려왔다. 그녀는 황제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자 명원제 그녀를 노려보며 “왕비의 행동 하나하나가 황실을 대표하는 것을 모르느냐! 너는 회왕부에 문병을 하러 가면서도 그
‘세상은 정말 불공평하구나.’원경릉은 천천히 일어났다. 그녀가 궁을 나옴과 동시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회왕의 병을 치료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결정하지 못하고 고민했다. 비록 그녀는 앞으로 절대 아픈 사람을 고치려고 하지 않기로 결정했지만,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물러설 곳도 없었다.그녀는 만약 자신이 회왕의 병을 고치지 못한다고 해도 황제가 그녀에게 벌을 주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다만 마음한켠엔 노비(鲁妃)의 노여움을 살까 두려웠다.노비…… 원경릉은 머리가 아파왔다.원경릉은 입궁한 김에 건곤전에 들렀다.오늘 태상황은 기운이 넘쳐보였다. 원경릉이 안으로 들어갔을 때, 태상황은 손에 톱을 들고 나무를 자르고 있었다. “태상황님. 지금 무얼하고 계십니까?” 원경릉은 호기심에 다가가서 물었다.태상황은 이마에 송글송글 땀방울이 맺힌 얼굴로 고개를 들어 그녀를 보았다.“맞혀보거라!”“빨래 건조대를 만드시는 겁니까?” 그가 들고있는 긴 막대가 마치 빨래 널기 딱 좋아보였다.“빨래 건조대? 그게 무슨 말이냐?” 태상황은 계속 나무를 다듬으며 말했다.“그럼 이게 뭐예요?” 원경릉은 그의 손에 들린 나무를 한참을 보았다.“모르겠지? 선물이다! 네 거야!” “저에게 주신다고요?”원경릉은 의아했다.이왕 하사할 물건이라면 금이나 은으로 된 비싼걸 주시지 뭔 나무토막 만들다 만걸 준다는 거지?“이것은 어장(禦杖)이라는 건데, 나중에 다섯째가 널 괴롭히려고 하면 이걸 들어다가 마구 때려라! 어떠냐? 좋지?”그는 나무토막 옆에 자를 두고, 상선에게 반대편을 잡으라고 명령한 후, 톱을 짧게 잡고는 나무토막을 잘랐다.“너무 길어도 불편하니까, 이 정도 길이가 딱 좋겠구나.”“좋아요! 마음에 쏙 듭니다!” 원경릉은 고개를 쭉 내밀고 눈을 반짝였다.상선을 그런 원경릉을 보며 웃으며 “이 어장으로 왕비를 막무가내로 호수로 끌고 가려고 했던 막돼먹은 여인네도 때리면 좋겠네요.” 라고 말했다.“상선, 그런 말씀은……” 원경릉은 놀라서 눈이 휘
“땀 난다!” 태상황이 소리쳤다.원경릉은 재빨리 손수건을 꺼내 땀을 닦았다. “좀 쉬세요. 물도 드시고요.”“거의 다 됐다. 여기에 용 무늬를 새기고 안쪽에 단추만 달면 된다.”태상황은 원경릉을 힐끗 보았다.“혜정후의 일은 말이다. 네가 일단 너의 신분에 상관없이 위험을 무릅쓰기로 결단했다면, 남장 여자로 분장하지 말고, 그냥 왕비의 신분으로 그의 주의를 끌었어야 했다.”“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혜정후는 제가 초왕비인 것을 알았습니다.” 원경릉이 대답했다.“그가 처음엔 모르는 척 하지 않았느냐, 잘 생각해보거라 이번에 혜정후는 네가 초왕비라는 것을 알았지만, 주변 사람은 아무도 모르지 않았느냐? 그럼 네가 그의 손에 죽는다고 해도 아무도 네가 초왕비라는 것을 모른단 말이다. 그냥 쥐도 새도 모르게 죽는거야! 하지만, 네가 신분을 밝히고 그와 만났더라면 주변에 보는 눈이 있으니 소문이 날 것이야. 그러다 네가 죽게된다면 모두 혜정후를 의심할 것이고, 증거가 나오지 않더라도 덮어씌울 명분이 생긴단 말이다.”태상황의 말을 듣고 원경릉은 말문이 턱 막혔다. 이 늙은이 아주 여우구만…….“어떤 일을 하기 전에 최악의 결과를 먼저 생각해 모든 것을 완벽하게 준비해 두어야 한다. 너를 죽인 상대방이 다리를 쭉펴고 잠을 잘 수 없게 말이다.”“태상황님의 말씀을 듣고 많이 배웠습니다.” 만약 다바오와 다른 개들이 그녀를 구해주지 않았다면 태상황이 말한대로 그녀는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었을 것이다. 그리고 혜정후는 발 쭉 뻗고 잠을 잤을 것이다.“왕비님. 태상황님께서 이런 말씀을 자주 하지 않으시니 반드시 마음에 새겨두세요.” 상선이 말했다.“예 알겠습니다.” 원경릉은 무의식적으로 태상황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태상황이 내가 유일하게 빌 수 있는 언덕이구나.’“이제 나가보거라. 과인의 일을 방해하지 말고.” 태상황에 그녀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밀며 “아 참! 내일 회왕부에 가지 않느냐? 빨리 돌아가서 준비하거라.”“어쩜 그렇게 소식이 빠르십니까?” 원경릉은
명원제가 목여 태감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넌 평생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소인이 어리석습니다. 황제께서 가르침을 주십시오.” 목여 태감이 공손하게 손을 모으고 말했다.명원제는 태감의 말에 아무 대답을 하지 않았다.이 늙은 태감에게 여인에 대한 얘기를 하자니 입만 아플 뿐이다.그 시각 초왕부.우문호가 후부에 돌아오자 시녀가 그에게 구사가 원경릉을 데리고 궁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전했다. 듣자하니 회왕과 관련된 일로 부름이 있어 갔다고 하는데, 이 말을 들은 우문호는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우문호가 입궁을 해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을 하던 참에 원경릉이 초왕부로 복귀했다.원경릉은 우문호를 보고 “부황께서 나보고 회왕을 치료하라고 하라고 했어.”라고 말했다.“할 수 있겠어?” 우문호가 물었다.“아니.”“자신 없으면 가지말거라.”원경릉을 자리에 앉아 물 한모금을 마셨다.“안갈 수 없어. 너도 네 아버지의 성격을 모르지 않잖아. 내가 명령을 어긴다면 내 모가지를 날려버릴걸?”“그렇게까지 하겠느냐?”“하긴…… 그렇게까지는 아니겠지.” 근심에 찬 우문호의 얼굴을 본 원경릉은 왠지 모르게 마음이 따뜻해졌다.“너무 걱정마. 내가 병을 고치지는 못했도, 황제께서 나를 죽이진 않을거야. 기껏해봐야 곤장이나 맞겠지.”“본왕은 너를 걱정하는게 아니라, 네가 회왕을 고통스럽게 할까 걱정하는 것이다. 네가 회왕의 병을 고칠 자신이 있다면 내가 기쁜 마음으로 회왕부로 보내주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안가느니만 못하다.”“말이라도 예쁘게 하면 어디 덧나나.” 원경릉은 물 잔을 내려두며 우문호를 보았다.“정말 일말의 자신감도 없느냐?”“일단 그의 병이 어디까지 진행됐는지 확인을 해봐야 해.”“알겠다. 그럼 본왕이 같이 가주겠다.”원경릉은 고개를 저었다. “필요 없어. 왕야는 관아에서 일봐야지, 나는 희상궁이랑 가면 돼.”“내가 함께 가겠다고!” 우문호는 불쾌해하며 방금 원경릉에게 의견을 물은게 아니라 자기가 결정한 것임을 강조했다.원경릉은 자리에서
철화목은 아마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나무일것이다. 나무지만 보통 철재보다 두배가량 더 단단하다.현대에는 철화목이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식물로 분류되는데, 이전에 사람들이 철화목을 철재 대신에서 사용하기도 했으며, 값이 아주 비쌌다. 하지만, 오늘 그녀는 태상황이 톱으로 나무를 짧게 다듬는 것을 보았다. 이렇게 단단한 나무를 조각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인데, 설마 금강석 칼로 조각을 한건 아니겠지?“태상황님께서 직접 조각을 한 것이니, 아마 철화목은 아닐 것 같습니다!”원경릉이 말했다.희상궁은 그런 원경릉이 귀엽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철화목은 태상황님만 다룰 수 있는 목재입니다. 목수들도 조각하기 힘들어 합니다.”라고 말했다.“태상황님은 몸이 좋지 않아 걷는 것도 힘드실텐데 어떻게 이런 단단한 나무를 사용해서 만드셨겠습니까?” 원경릉의 호기심어린 눈빛으로 물었다. 희상궁의 말이 맞다면, 태상황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걷는 것이 힘든건 늙고 병이 들었기 때문이지요. 태상황님께서 젊었을 때는 우리 북당에서 무공이 가장 높은 용사셨습니다. 그렇기에 아무리 노쇠해졌다고 해도 젊었을 때 그 내력(内力)이 어디 가겠습니까.”“정말 내력이라는게 있습니까?”원경릉은 더 궁금해졌다. 무협소설에나 등장하는 내력은 무공이 어느 실력에 도달하면 떨어지는 꽃잎으로도 사람을 다치게 할 수 있다고 했다.희상궁이 막 설명을 하려고 하는데, 문 어귀에서 사람의 그림자가 휙 지나가는 것을 보고는 말을 멈추었다.“어유, 왕야 늦게오셨네요.”우문호는 태상황이 하사했다는 물건이 도착했다는 것을 듣고, 궁금함을 이기지 못해 문 앞에서 살짝 구경만 하려다가 희상궁의 눈에 띄어버려 어쩔 수 없이 안으로 들어왔다.그는 관심이 없는 척 힐끔 어장을 보았다.“이게 황조부께서 하사한 물품이냐?”“응. 직접 조각하셨어 한번 봐봐.” 원경릉이 손에 든 어장을 내밀었다.우문호는 그녀의 대범함에 당황해 얼떨결에 어장을 받아 들었다. 어장을 면밀히 살펴보니 손에 닿는 감촉이 매우 매끄럽고, 한눈
원경릉과 우문호의 술자리“나 아무래도 주량을 늘려야겠어, 안 그러면 다음에 난리 난다고. 어쨌든 내일 겨우 회왕부에 가니, 왕야도 같이 가서 좀 마셔줘.” 원경릉이 진심을 다해 가자고 졸랐고,우문호는 그녀가 진심으로 조르는데 못 당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우문호는 어깨를 으쓱하며, “편할 대로, 나도 한 잔 하고 싶으니까.” 결국 핑계 아닌가? 원경릉이 말하면 뭐든 다 들어준다고 생각할 까봐 서둘러 핑계를 댄다.원경릉은 자기가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사람들에게 약점 하나가 들키면 그 약점이 그녀의 가장 큰 위협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기상궁은 솜씨가 좋아서, 항상 각종 맛있는 안주를 척척 만들어 낸다.그러니까 단순하기 그지 없는 재료도 기상궁의 손에 들어가면 신기한 맛으로 거듭나서, 원경릉이 먹고 있으면 웃음이 멈추질 않는다. “손왕 아주버님이 항상 궁중 요리사가 만든 요리가 맛있다는데, 그건 아직 기상궁이 만든 밥을 못 먹어봐서 그런 거야. 일단 한 번 먹었다 하면 손왕 아주버님은 아예 보따리를 싸서 여기 눌러 앉을 걸.”우문호가 원경릉을 보고, “너 꼭 둘째 형이랑 엄청 친한 거 같다.”원경릉이 우문호에게 술을 따라주고 자기 잔도 가득 채우는데, 이 작은 잔은 한 입에 탁 털어 넣을 만한 크기로 술 색이 맑고 향이 코를 찌른다.원경릉이 심호흡을 한 번에 벌써 30%는 취했는지 방긋 웃으며, “맞아, 사람 괜찮더라, 좀 식탐이 있어서 그렇지.”“좀?” 우문호가 콧방귀를 뀌었다.원경릉은 손왕의 둥실둥실한 몸과 오동통한 손가락을 떠올리고 웃음을 참을 수 없어, “확실히 조금은 아니네, 특별히 식탐이 있으시지. 그런데 걸핏하면 살 뺀다는 말을 입에 달고 말이야.”“만약 살 빼라고 난리를 치지 않으면, 형은 더 미친듯이 먹을 걸.”“살 빼라고 야단법석을 떠는구나. 어쩐지 안 드시더라.”우문호는 원경릉이 둘째형 얘기를 자꾸 꺼내니 조금 기분이 좋지 않아서, “형이 먹던 말던, 네가 뭐 그렇게 신경 쓰는데? 신경 쓰
원경릉의 술 알레르기와 약상자의 비밀반 시진 후 우문호는 탁자 위에 앉은 수치를 모르는 이 여인을 원망스럽게 바라봤다.옷은 반쯤 벗겨졌고, 두 손은 목과 쇄골을 더듬으며…… 있는 힘껏 긁고 있다.얼굴, 쇄골, 목에 빨긋빨긋 돋아나더니 이젠 붉은 뾰루지처럼 됐다.바닥엔 접시와 젓가락, 요리가 엉망진창으로 널려 있고, 기상궁과 녹주는 벌써 쫓겨 났으며 똑똑한 희상궁은 혼자 먼저 숨어서 해장국을 끓이고 있다.다바오조차 첫 접시가 바닥에 떨어지는 전에 폭풍우에서 도망쳤다.계화황주 한잔, 우문호는 하늘을 두고 맹세한다. 진짜 딱 한잔이다.우문호는 천천히 일어나 뒤로 물러섰다.원경릉은 어장을 들고 탁자를 탕탕 두드리며, 쉰 목소리로 소리를 지른다. “너 한번 해볼래?”우문호는 원경릉에게 살인 충동을 느꼈다.우문호가 태어나서 가장 싫어하는 게 다른 사람에게 위협당하는 것이다.원경릉은 전신이 가려워서 미치겠다. 처음 술을 마셨을 땐 그냥 취하기만 했지 알레르기는 없었는데 왜 이번엔 알레르기가 생겼을까?원경릉이 하나 더 떠올린 건 가려움을 도저히 견딜 수 없다는 사실로, 마치 극강의 가려움이 혈액을 타고 흐르는 것 같아 약상자를 열심히 찾아봤으나 알레르기 약을 찾을 수가 없다. 원경릉은 전신의 피부와 껍질을 전부 벗겨내고 싶을 지경이다.이 절체절명의 시점에 우문호가 감히 도망을 가겠다고?원경릉은 어장으로 탁자를 탕탕 두드리며, 쉰 목소리로 고래고래, “너 한번 해볼 거냐고?”“나 등이 너무 가려워, 손이 안 닿아!” 원경릉이 미친듯이 두 발로 탁자를 구르며 두 손을 등뒤로 긁으려고 애를 쓴다.“어의는 어디 있느냐?” 우문호가 소리를 질렀으나 하는 수 없이 가서 긁어주었다.원경릉 등은 정말 뜨거워서, 손을 델 것 같고 손가락이 닿으니 마치 불덩이 표면을 만지는 것 같다.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뜨거워도 어떻게 이 정도가 되지?어의가 급히 달려오자 우문호는 원경릉의 옷을 끌어 올리며 화를 낸다, “문 좀 두드릴 수 없어?”어의가 뒤를 돌
안지여의 이마에 파란 힘줄이 불끈불끈했으나 냉정을 가장했다. “내가 두려워할 줄 알았나 보지? 죽음도 두렵지 않은데 뭘 더 두려워하겠어?”“넌 두려울 것이야!” 이리봉청이 고개를 돌려 이리 나리를 보고 살짝 그의 팔을 잡았다. “내가 오는 길에 늑대파 사람이 그러던데, 천하에서 제일 잔혹한 형벌을 아는 사람이 늑대파에 있다고. 그게 사실인 것이냐?”이리 나리가 가볍게 답했다. “물론 사실이죠. 훼천이라고 합니다. 늑대골 출신이에요.”“안지여가 버틸 수 있는지 어디 한 번 보고 싶구나.” 이리봉청이 말했다.이리 나리가 엄숙한 태도로 명을 내렸다. “훼천!”그러자 훼천이 급히 나왔다. “이리 나리, 분부하시지요!”이리 나리는 그가 짐짓 냉정한 척하고 있으나 눈빛이 조금씩 허물어져 가고, 몸까지 부들부들 떠는 것이 아주 만족스러워 훼천에게 담담하게 말했다. “시작해!”안지여가 갑자기 큰 소리로 욕했다. “난 네 아버지거늘, 감히 나에게 손을 대다니, 천벌을 받아 마땅한 놈 같으니라고!”이리봉청이 이 말을 듣고 잠시 주저하는 눈빛으로 이리 나리를 바라봤다.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제 아버지는 오직 저를 키워주신 안풍 친왕뿐이십니다.”이리봉청이 살짝 안도했다. “저 인간이 단지 나만 해쳤으면 네 체면을 봐서 놔줬겠지만 천문 세가의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갔으니 난 용서할 수 없구나.”“이리봉청, 너 언제 이렇게 악랄하게 변했어? 죽이려거든 그냥 죽여. 난 천문 세가 사람을 죽이긴 했어도 그들을 괴롭히진 않았어. 네가 날 죽이려거든 깨끗하게 단번에 죽여!”안지여가 크게 노해 몇 번 몸부림을 치다가 상처가 벌어지는 바람에 배에서 선혈이 흘러나오고, 훼천이 가까이 다가가자, 눈에 두려움이 깊어졌는데, 늑대골 출신 훼천은 온몸에서 피비린내가 뿜어져 나와 안지여를 덜덜 떨게 했다.“이리율!” 안풍 친왕비는 시ㅈ가하기 전에 이리 나리를 불렀다. “내가 여기서 네 엄마와 같이 있을 테니 넌 먼저 나가 있거라!”이리 나리가 안풍 친왕비에게
안지여에게 구원 병력이 없는 상황에서, 이리 나리 일행이 성을 제압하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대오가 경성에서 출발하기 전에, 안풍 친왕비가 미리 사람을 풍도성으로 보내 각처, 특히 성 수비군과 군대에 잠입시켜, 음식에 효과가 천천히 나타나는 독을 풀어, 오늘 중독 증상이 나타나도록 독의 분량을 조절했다.적어도 내일까지는 안지여를 도우러 올 사람은 없었다. 독성은 적어도 이틀이 지나야 깨끗해지기 때문에 이틀 동안 그들은 설사와 전신 무기력으로 성에 무슨 일이 있다는 걸 알아도 와서 도울 수 없었다.그리고 그들이 기력을 회복할 때쯤이면, 안지여는 벌써 죽었을 것이다.안풍 친왕과 이리 나리는 성을 통제하고, 안지여 부부를 제압해 두 사람을 줄로 묶고 지혈시켜 주었다.안지여는 요 몇 년 동안 자신이 상당히 대단하다고 여겼다. 이는 풍도성이 부유하기 때문으로, 돈으로 많은 사람을 살 수 있었으며, 여러 곳에서 추켜세워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처절하게 패배한 적이 없었던 이유는 진정한 적이 없기 때문으로, 주변의 떠돌이 비적은 작은 마을 규모로 너무 작아서 소탕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결코 그가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적이 너무 약해서였다.조정 사람과 비교했을 때, 그는 제대로 훈련받은 적 없는 비적었기에 일격도 감당할 깜냥이 못됐다.이리 나리는 둘을 중정에 묶어 두었다. 온 바닥에 남은 음식과 깨진 기와가 널브러져 있는 것을 본 안지여는 마음속 깊이 분노가 일었다. 자신의 생일날, 그를 다치게 한 것이 바로 그의 친자식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더욱이 오늘 이렇게 많은 고수가 현장에 있었는데도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이런 결말을 맞다니 너무 불쾌했다. 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을 부축하고 안지여 부부 앞으로 가서, 그녀가 안지여 부부를 내려다보자, 그들은 낭패에 달가워하지 않는 기색으로, 이리봉청은 분노하는 마음과 함께 서글픈 마음도 들었다. 그들을 죽이면 커다란 복수는 이뤄 천문 세가 망자의 원혼은 달랠 수 있었다.하지만 저들을 이렇게 쉽게
“그럴 필요 없을 것 같은데?!” 이리 나리가 검을 휘두르며 안지여를 겨누자, 안지여가 공중으로 뛰어올라 후퇴했다.공자들은 돕고 싶었으나 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에게 바로 제압당했다. 안지여는 이리율 것으로 그들은 주변 사람을 제압하기만 할 뿐 옆에 서서 전투를 관전하고 있었다.이리율의 무공이 얼마나 뛰어난지 그를 가르친 안풍 친왕 부부를 제외하고, 사실 많은 사람들은 모르고 있었다.이리율의 검법은 신속하고 맹렬해서 안지여는 상대하느라 쩔쩔매고 구석으로 몰리고 있었다. 성안의 호위들은 늑대 무리와 늑대파, 홍매문 사람들에게 막히는 바람에 안지여는 홀로 고전을 면치 못했는데 그래도 아직은 버틸 수 있었다.하지만 30분을 못 가서 안지여는 질게 틀림없었다.놀란 나머지 계속 실성해 있던 소여쌍이 갑자기 이리봉청을 향해 바싹 마른 손을 뻗어, 그녀의 목을 조르며 광적인 집착과 분노에 사로잡혀 성질을 부렸다. “멈춰, 다들 멈추라고. 안 그러면 내가 이년을 죽여버릴 것이니까!”소여쌍은 무공을 할 줄 알았지만 잘하지 못한 것이 어릴 때부터 계속 중병을 앓아 무공 연습에 소홀했고 성주 부인이 된 뒤로는 더욱 병기에 가까이할 일이 없었지만, 공력만큼은 아직 약간 있었다.소여쌍은 증오의 힘으로 이리봉청의 목을 졸랐는데, 소여쌍이 조금만 더 힘을 주면 이리봉청의 목을 부러뜨릴 것만 같았다.안풍 친왕이 차가운 눈빛으로 나서려 하자, 안풍 친왕비가 말리며 고개를 살짝 흔들었는데, 그럴 필요 없다는 뜻으로 뒤에 있던 사람들에게도 참으라는 눈짓을 하자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모두가 이리봉청이 제압당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손가락으로 뭔가를 쥐고 있어 소여쌍의 어깨 위를 휘감고 팔을 눌러 소여쌍이 머리를 돌리게 했다. 이리봉청 손에 쥔 것은 바늘로, 그대로 소여쌍의 오른쪽 눈을 찌르고 들어갔다.소여쌍이 절규하며 이리봉청을 놔주고 선혈이 흐르는 눈을 움켜쥔 채 비틀거리다 바닥에 쓰러져 데굴데굴 구르며 새된 소리를 지르는데, 원망과 저주의 말을 끊임없이 쏟아
풍도성 중정에는 안지여의 아들들과 사위가 그의 곁에 남았는데, 크고 작은 부상을 입어 점점 공포에 질려가고 있었다.‘이 사람들, 아주 대단하구나!’안지여는 이리봉청을 보고 비록 조금 냉정해 보였지만, 여전히 놀라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갑자기 소여쌍이 큰 소리로 웃으며, 몸을 앞뒤로 흔들며 눈물을 찔끔거리더니 완전히 미친 사람처럼 갑자기 웃음을 멈추고 부들부들 떨리는 손가락으로 이리봉청을 가리키며 원망했다. “뜻밖에 네가 안 죽었단 말이지? 게다가 아들까지 있고. 참으로 황당하구나. 정말 너무 황당해. 원래 죽어야 했을 인간은 죽지 않고, 잘 살아야 할 사람은 36년간 괴로움을 당했어. 이리봉청 네가 날 비참하게 만들었으니 넌 이제 지옥에 떨어져야 해.”이리봉청은 소여쌍의 말을 들은 체 만 체했는데, 그녀 눈에는 지금 안지여만 들어왔다.안지여는 36년을 살아왔지만, 이리봉청에게 있어 36년은 마치 사라진 시간처럼 멸문지화의 원한이 어제 일 같았다.안지여도 이리봉청의 눈에서 분노와 악랄함을 보고, 처음으로 마음속에 두려움을 느꼈다.안지여는 억지로 감정을 가라앉히고 말했다. “네 사람을 데리고 가. 지난 일을 묻지 않을 테니. 그렇지 않으면 풍도성에서 곧바로 10만 대군이 올 것으로, 살아서 도망갈 생각은 꿈도 꾸지 않는 게 좋아.”이리봉청의 목소리가 낮게 잠겼다. “우리는 이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바로 네 성으로 쳐들어갈 수 있어. 넌 이미 졌어.”안지여가 웃었다. “졌다고? 그래?”안지여는 수하의 대장군이 믿음직해서, 그들을 당하게 놔줄 수도 있다고 여겼다. 대장군의 부대는 분명 치밀하게 준비되어 있을 것으로, 아마 지금쯤이면 궁수들이 이미 배치를 마치고 그들을 전부 쏴 죽이기 위해 기다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의 손을 잡고 말했다. “어머니, 저자와 말 섞으실 필요 없어요. 앉아서 지켜보시기만 하면 됩니다!”말을 마치고 의자를 올리더니 이리봉청을 부축해서 앉혔다.안지여가 이리 나리를 보는데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안지여가 퍼뜩 눈을 돌려 이리 나리를 보았다.‘이리봉청이 저자를 아들이라고 불렀다는 건러니까?이리 나리는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을 찬찬히 훑어보더니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안 성주와 좀 오래된 원한을 따져야 하는데, 관련되기 싫으신 분은 자리를 피해 주시지요!”그때 한 사람이 검을 짚고 일어나 호통을 쳤다. “넌 도대체 어떤 놈이냐? 무슨 자격으로 자리를 피해라 마라야? 안 성주를 귀찮게 할 생각이면 일단 나부터 통과해 보시지!”그는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장검을 뽑아 파죽지세로 이리 나리를 향해 휘둘렀다.이리 나리는 손을 살짝 움직여 손바닥으로 칼자루를 밀자, 검이 날아가며 그 사람의 귀를 베어 한 줄기 피가 공중에 뿌려지더니, 방금까지 기고만장하던 자가 비명을 지르고 귀는 바닥에 떨어졌다.검이 다시 이리 나리 수중으로 정확히 돌아왔다.이 모든 게 3초 안에 벌어진 일이었다.“회선검?” 검법을 아는 사람들이 깜짝 놀라며 외쳤다.현장은, 숨소리마저도 들리지 않았다.회선검은 검마의 검법으로, 그렇다는 건 저 사람이 검마의 계승자?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무리에서 검마를 찾았다. 과연 두 손으로 검을 안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도 차가운 안광이 느껴졌다.과연 진짜 검마구나, 사람들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검마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이리 나리를 흘끔 보더니 속으로 의아해했다. ‘이 자식, 언제 내 비장의 검법을 배운 거야?’이리 나리의 검 끝에선 아직 선혈이 떨어지는데, 여전히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말했다. “이 아수라장에 끼고 싶은 거라면, 제가 무례하다고 원망할 생각 마세요.”“무엄하도다!” 안지여가 몹시 놀랐다가 천천히 정신을 차리고 눈을 치켜뜨며 이리 나리를 노려봤다. “너는 내가 누구인 줄 아느냐? 내가 네 아버지다!”이리 나리가 코웃음을 쳤다!안지여의 몇몇 아들이 달려 나와 소리쳤다. “아버지, 저희가 지켜드리겠습니다.”안풍 친왕이 젓가락을 던지고 일어나 차갑게 명을 내렸다
오늘은 성주의 생일이기에 경사라 섣불리 피를 볼 수는 없으므로 칼은 빼 들었지만 먼저 나서서 늑대를 죽이는 사람은 없었다.안지여는 어두운 눈빛으로 ‘늑대 무리라고? 척후병의 보고로는 안풍 친왕이 늑대 무리를 끌고 온다고 했는데, 저들이 의외로 성으로 직접 쳐들어 왔다 이거지?’라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안지여는 잔을 들고 꿈적도 하지 않은 채, 무너지기 직전까지 미동도 없는 태산처럼 냉정하고 침착했다. 늑대 무리는 안으로 들어온 뒤로 두 패로 나뉘어 서서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을 호시탐탐 엿보며 으르렁거렸다.“성주님, 성주님, 저들이 기어코 쳐들어오겠다고….” 문지기가 외치는 소리는 들렸으나 사람은 보이지 않더니, 그보다 조정에서 보낸 사람들이 먼저 들이닥쳤다.앞에 걸어들어오는 두 사람을 안지여는 본 적이 있었는데, 바로 안풍 친왕 부부로 예전에 그들이 천문 세가 사람들을 조사하러 왔을 때 그에게 속은 적이 있었다. 비록 당시 일면식 뿐이었으나 천문 세가 일을 캐내고 있다는 사실에 놀란 탓에 그들의 얼굴을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그런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어째서 별로 변한 게 없는 거지?’안풍 친왕 부부 뒤에 따라오는 10여 명의 검은 옷을 입은 노인은 그들의 호위 무사일 것으로, 주인인 안풍 친왕 부부는 별 표정이 없었으나,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들어와 고개를 들자 괴팍하고 악랄한 얼굴이 안지여 마음에 들지 않았다.안지여는 여전히 일어나지 않았고, 미소는 띠고 있었지만 매서운 눈빛으로 저들이 돌계단을 오르면 그때 일어나도 늦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게 그의 태도였다.하지만 안풍 친왕 부부는 돌계단을 오르지 않았고, 손님 중 건배를 권하느라 자리를 비운 사람들 의자에 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이 차지하고 앉아, 그들을 대놓고 밀치더니 품에서 자기 젓가락을 꺼내 옆 사람 상관하지 않고 먹기 시작해 사람들이 다 경악했다.그들이 자리를 잡고 앉자 뒤따라 들어오는 사람들이 보였다.두 사람이 사람들에 둘러싸여 천천히 걸어들어오고 있었
풍도성 안은 술잔을 주고받고 건배하며 흥겨운 잔치가 한창 무르익고 있었다.안지여는 오늘 황금색 예복을 입었는데 예복에 거대한 이무기를 수놓았으며, 황실의 밝은 황색과는 약간 구별되었지만, 자세히 보지 않으면 진짜 곤룡포로 착각할 만큼 거대한 이무기가 하늘로 날아오르는 형상이 구름을 뚫고 솟아오르는 용과 매우 흡사했다.안지여는 자신의 야심을 이미 조금도 감추지 않았다.당연히 안지여는 오늘도 야심을 감출 생각 없이 손님들에게 보란 듯이 자세를 잡았다. 심지어 인근 지역 조정 관리들이 손님으로 왔어도 안지여는 전부터 맺어온 관계였기에, 그들과 개인적인 친분이 매우 두터워 산 넘고 물 건너 저 멀리 있는 황제가 그들을 시시콜콜 관리할 수 없었다.그 자리 있던 사람들은 모두 오늘 황실에서 파견한 일행이 온다는 것을 알고, 연회석에서 큰 소리로 물었다. “성주님, 듣자하니 안풍 친왕 전하와 이리 부마께서 오늘 오신다던데 어째서 안 보입니까?”안지여가 잔을 들고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진심으로 생일을 축하한다면 결국 오겠지요.”“여정을 듣기론 오늘 분명 풍도성에 도착한다고 했는데, 어째서 밤이 되도록 아직 안 보입니까? 설마 성주님이 직접 나가서 맞이하셔야 하는 건 아니겠지요?”“성주님이 가서 맞이하셔야 한다고? 아주 허세가 대단한데? 퉤!”“누가 아니랍니까? 진심으로 생신을 축하하는 거였으면 며칠 전에 풍도성에 도착해 성의를 보여야지, 오늘까지 늑장을 부리다가 늦게서야 와서, 아직도 잔치에 오지 않은 건 분명 성주님의 체면을 안중에도 두지 않은 행태입니다. 제가 보기에 못 들어오게 막고 돌려보내시지요, 마음만 받은 셈 치고요. ”“맞습니다. 그동안 조정에서는 풍도성에서 받은 공물이 적지 않았으니, 만족한 줄도 알아야죠.”“풍도성은 더 이상 조공을 바칠 필요 없어요. 뭐 때문에 그럽니까? 수백 년 전에 풍도성은 원래 북당의 영토가 아니었어요. 선을 긋고 나와 독립해야 합니다.”모두 안지여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서, 몇 잔 들어가자, 비위를
소여쌍의 욕은 거의 반 시진 동안 계속되었다. 이것도 별로 드문 일이 아니라 무쌍거 사람들은 다 익숙해져 있었다. 성주가 오지 않거나 소여쌍이 아프기 시작해도 이렇게 욕을 해댔다.욕하다 지치기를 기다렸다가 늙은 몸종이 가서 달랬다. “부인 그러실 게 뭐가 있으십니까? 몸이 가장 중하십니다.”소여쌍이 의자에 기대 늘어졌다. 극도로 피곤해 풀린 눈으로 천정을 보며 비참함이 가슴 깊은 곳을 타고 내렸다. “오늘이 초엿새지?”“네!” 늙은 몸종이 대답했다.소여쌍이 창백한 얼굴로 말했다. “곧 15일이구나. 또 내 명을 재촉하는 고통이 오겠지. 죽으면 죽었지 다시는 그 고통을 느끼고 싶지 않다.”그러자 늙은 몸종도 매우 괴로워했다. “부인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고통도 며칠이면 그럭저럭 지나가서, 그동안도 그렇게 지내셨잖아요?”“며칠이면 뭐 그럭저럭 지나가나?” 소여쌍이 잔인한 눈빛으로 말했다. “그건 네가 이 고통을 안 당해봐서 그래. 이게 다 이리봉청 그년 짓이야. 오빠가 그년을 쫓아가서 죽이게 한 걸 정말 후회해. 그년을 잡아 와서 가두고 내가 한 번씩 아플 때마다 그년을 갈기갈기 찢어발겨 나보다 수천 수백 배 고통스럽게 해야 했어.”늙은 몸종이 소여쌍의 손을 쥐었다. “부인 그런 생각 마세요. 벌써 죽은 사람을 이제 와서 생각해 봤자 아무 도움도 안 됩니다. 성주님과 자꾸 다투지 마세요. 자꾸 다투시다 보면 감정이 사라집니다.”소여쌍이 처연한 웃음을 지었다. “오빠는 진작부터 나한테 아무 감정 없어.”“성주님은 이리봉청에게 아무 감정 없으세요. 감정이 있을 리도 없고요. 안 그러면 당시 부인을 위해 이리봉청을 죽이고 천문 세가 사람을 다 죽이셨을 리가 없죠.”소여쌍이 고개를 돌리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전에는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요 몇 년간, 성에 들어온 여자들 생긴 걸 보라고. 전부 이리봉청을 쏙 빼닮았잖아? 오빠는 역시 후회하고 있는 거야. 날 위해 이리봉청을 죽인 걸.”소여쌍은 늙은 몸종의 손을 잡는데 고여서 썩
안지여는 소야쌍을 놓고 천천히 안으로 걸어갔다. “이틀 뒤가 내 생일인데, 당신 몸 상태는 어때?”그러자 소여쌍은 시녀의 손을 뿌리치고 얼른 안으로 따라 들어가려 했는데, 몇 걸음 만에 휘청거리더니 하마터면 안지여 뒤로 넘어질 뻔했다.안지여는 소여쌍을 잡아줄 수 있었지만, 손을 뻗지 않고 그녀를 등지며 보이지 않는 척했다.시녀는 이미 이런 상황이 익숙한 듯 얼른 소여쌍을 부축해 바닥에 넘어지는 것까지 막았다.소여쌍이 숨을 돌리고 살짝 웃었다. “몸이 많이 좋아져서 오빠 곁에 있을 수 있어요. 오빠 생일에 당연히 제가 곁에 있어야죠.”안지여는 그제야 소여쌍을 돌아봤다. “생일엔 손님이 많이 올 거야, 올해는 다른 어떤 해보다 성대하게 하니까 당신도 잘 차려입어. 내가 내일 사람을 시켜 장신구를 보내도록 하지.”“네, 알았어요!” 소여쌍이 기쁜 듯이 말하며 안지여를 한없이 바라봤다.하지만 안지여는 소여쌍을 더는 보고 싶지 않았다. 사정 설명했고 체면도 차렸으니 됐다 싶어 말했다. “난 아직 일이 있어서. 당신 쉬는 걸 방해하지 않을 테니 잘 쉬고 있어.”안지여는 말을 마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려고 했다.이때 소여쌍이 갑자기 닭발 같은 손을 뻗어 안지여의 팔을 붙잡으며 서둘렀다. “오빠, 어렵사리 왔는데 저랑 얘기 좀 더 해요.”안지여가 고개를 숙이고 소여쌍의 마르고 늙은 손을 바라봤다. 손등에 주름이 자글거리는 것이 구겨진 비단 뭉치처럼 너무 흉해서 혐오감이 든 나머지 쓱 손을 뺐다. “말했잖아, 일이 바쁘다고.”소여쌍의 눈빛이 갑자기 매서워지며, 늙고 쉰 목소리로 소리쳤다. “일이 바쁜 거예요, 아니면 그 여우 년을 찾아가는 거예요? 제가 모를 줄 아세요?! 여자를 성에 얼마나 숨겨놨는지.”안지여가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헛소리야?”소여쌍이 두 손으로 가슴을 움켜쥐고 축 처진 눈에서 원한이 쏟아져 나왔다. “제가 늙었다고 싫어하는 거잖아요, 아녜요? 잊지 마세요. 오빠의 동안도 결국 늙는다고요. 이리봉청이 아직 살아있어도 지금 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