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정말 불공평하구나.’원경릉은 천천히 일어났다. 그녀가 궁을 나옴과 동시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회왕의 병을 치료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결정하지 못하고 고민했다. 비록 그녀는 앞으로 절대 아픈 사람을 고치려고 하지 않기로 결정했지만,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물러설 곳도 없었다.그녀는 만약 자신이 회왕의 병을 고치지 못한다고 해도 황제가 그녀에게 벌을 주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다만 마음한켠엔 노비(鲁妃)의 노여움을 살까 두려웠다.노비…… 원경릉은 머리가 아파왔다.원경릉은 입궁한 김에 건곤전에 들렀다.오늘 태상황은 기운이 넘쳐보였다. 원경릉이 안으로 들어갔을 때, 태상황은 손에 톱을 들고 나무를 자르고 있었다. “태상황님. 지금 무얼하고 계십니까?” 원경릉은 호기심에 다가가서 물었다.태상황은 이마에 송글송글 땀방울이 맺힌 얼굴로 고개를 들어 그녀를 보았다.“맞혀보거라!”“빨래 건조대를 만드시는 겁니까?” 그가 들고있는 긴 막대가 마치 빨래 널기 딱 좋아보였다.“빨래 건조대? 그게 무슨 말이냐?” 태상황은 계속 나무를 다듬으며 말했다.“그럼 이게 뭐예요?” 원경릉은 그의 손에 들린 나무를 한참을 보았다.“모르겠지? 선물이다! 네 거야!” “저에게 주신다고요?”원경릉은 의아했다.이왕 하사할 물건이라면 금이나 은으로 된 비싼걸 주시지 뭔 나무토막 만들다 만걸 준다는 거지?“이것은 어장(禦杖)이라는 건데, 나중에 다섯째가 널 괴롭히려고 하면 이걸 들어다가 마구 때려라! 어떠냐? 좋지?”그는 나무토막 옆에 자를 두고, 상선에게 반대편을 잡으라고 명령한 후, 톱을 짧게 잡고는 나무토막을 잘랐다.“너무 길어도 불편하니까, 이 정도 길이가 딱 좋겠구나.”“좋아요! 마음에 쏙 듭니다!” 원경릉은 고개를 쭉 내밀고 눈을 반짝였다.상선을 그런 원경릉을 보며 웃으며 “이 어장으로 왕비를 막무가내로 호수로 끌고 가려고 했던 막돼먹은 여인네도 때리면 좋겠네요.” 라고 말했다.“상선, 그런 말씀은……” 원경릉은 놀라서 눈이 휘
“땀 난다!” 태상황이 소리쳤다.원경릉은 재빨리 손수건을 꺼내 땀을 닦았다. “좀 쉬세요. 물도 드시고요.”“거의 다 됐다. 여기에 용 무늬를 새기고 안쪽에 단추만 달면 된다.”태상황은 원경릉을 힐끗 보았다.“혜정후의 일은 말이다. 네가 일단 너의 신분에 상관없이 위험을 무릅쓰기로 결단했다면, 남장 여자로 분장하지 말고, 그냥 왕비의 신분으로 그의 주의를 끌었어야 했다.”“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혜정후는 제가 초왕비인 것을 알았습니다.” 원경릉이 대답했다.“그가 처음엔 모르는 척 하지 않았느냐, 잘 생각해보거라 이번에 혜정후는 네가 초왕비라는 것을 알았지만, 주변 사람은 아무도 모르지 않았느냐? 그럼 네가 그의 손에 죽는다고 해도 아무도 네가 초왕비라는 것을 모른단 말이다. 그냥 쥐도 새도 모르게 죽는거야! 하지만, 네가 신분을 밝히고 그와 만났더라면 주변에 보는 눈이 있으니 소문이 날 것이야. 그러다 네가 죽게된다면 모두 혜정후를 의심할 것이고, 증거가 나오지 않더라도 덮어씌울 명분이 생긴단 말이다.”태상황의 말을 듣고 원경릉은 말문이 턱 막혔다. 이 늙은이 아주 여우구만…….“어떤 일을 하기 전에 최악의 결과를 먼저 생각해 모든 것을 완벽하게 준비해 두어야 한다. 너를 죽인 상대방이 다리를 쭉펴고 잠을 잘 수 없게 말이다.”“태상황님의 말씀을 듣고 많이 배웠습니다.” 만약 다바오와 다른 개들이 그녀를 구해주지 않았다면 태상황이 말한대로 그녀는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었을 것이다. 그리고 혜정후는 발 쭉 뻗고 잠을 잤을 것이다.“왕비님. 태상황님께서 이런 말씀을 자주 하지 않으시니 반드시 마음에 새겨두세요.” 상선이 말했다.“예 알겠습니다.” 원경릉은 무의식적으로 태상황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태상황이 내가 유일하게 빌 수 있는 언덕이구나.’“이제 나가보거라. 과인의 일을 방해하지 말고.” 태상황에 그녀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밀며 “아 참! 내일 회왕부에 가지 않느냐? 빨리 돌아가서 준비하거라.”“어쩜 그렇게 소식이 빠르십니까?” 원경릉은
명원제가 목여 태감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넌 평생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소인이 어리석습니다. 황제께서 가르침을 주십시오.” 목여 태감이 공손하게 손을 모으고 말했다.명원제는 태감의 말에 아무 대답을 하지 않았다.이 늙은 태감에게 여인에 대한 얘기를 하자니 입만 아플 뿐이다.그 시각 초왕부.우문호가 후부에 돌아오자 시녀가 그에게 구사가 원경릉을 데리고 궁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전했다. 듣자하니 회왕과 관련된 일로 부름이 있어 갔다고 하는데, 이 말을 들은 우문호는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우문호가 입궁을 해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을 하던 참에 원경릉이 초왕부로 복귀했다.원경릉은 우문호를 보고 “부황께서 나보고 회왕을 치료하라고 하라고 했어.”라고 말했다.“할 수 있겠어?” 우문호가 물었다.“아니.”“자신 없으면 가지말거라.”원경릉을 자리에 앉아 물 한모금을 마셨다.“안갈 수 없어. 너도 네 아버지의 성격을 모르지 않잖아. 내가 명령을 어긴다면 내 모가지를 날려버릴걸?”“그렇게까지 하겠느냐?”“하긴…… 그렇게까지는 아니겠지.” 근심에 찬 우문호의 얼굴을 본 원경릉은 왠지 모르게 마음이 따뜻해졌다.“너무 걱정마. 내가 병을 고치지는 못했도, 황제께서 나를 죽이진 않을거야. 기껏해봐야 곤장이나 맞겠지.”“본왕은 너를 걱정하는게 아니라, 네가 회왕을 고통스럽게 할까 걱정하는 것이다. 네가 회왕의 병을 고칠 자신이 있다면 내가 기쁜 마음으로 회왕부로 보내주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안가느니만 못하다.”“말이라도 예쁘게 하면 어디 덧나나.” 원경릉은 물 잔을 내려두며 우문호를 보았다.“정말 일말의 자신감도 없느냐?”“일단 그의 병이 어디까지 진행됐는지 확인을 해봐야 해.”“알겠다. 그럼 본왕이 같이 가주겠다.”원경릉은 고개를 저었다. “필요 없어. 왕야는 관아에서 일봐야지, 나는 희상궁이랑 가면 돼.”“내가 함께 가겠다고!” 우문호는 불쾌해하며 방금 원경릉에게 의견을 물은게 아니라 자기가 결정한 것임을 강조했다.원경릉은 자리에서
철화목은 아마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나무일것이다. 나무지만 보통 철재보다 두배가량 더 단단하다.현대에는 철화목이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식물로 분류되는데, 이전에 사람들이 철화목을 철재 대신에서 사용하기도 했으며, 값이 아주 비쌌다. 하지만, 오늘 그녀는 태상황이 톱으로 나무를 짧게 다듬는 것을 보았다. 이렇게 단단한 나무를 조각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인데, 설마 금강석 칼로 조각을 한건 아니겠지?“태상황님께서 직접 조각을 한 것이니, 아마 철화목은 아닐 것 같습니다!”원경릉이 말했다.희상궁은 그런 원경릉이 귀엽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철화목은 태상황님만 다룰 수 있는 목재입니다. 목수들도 조각하기 힘들어 합니다.”라고 말했다.“태상황님은 몸이 좋지 않아 걷는 것도 힘드실텐데 어떻게 이런 단단한 나무를 사용해서 만드셨겠습니까?” 원경릉의 호기심어린 눈빛으로 물었다. 희상궁의 말이 맞다면, 태상황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걷는 것이 힘든건 늙고 병이 들었기 때문이지요. 태상황님께서 젊었을 때는 우리 북당에서 무공이 가장 높은 용사셨습니다. 그렇기에 아무리 노쇠해졌다고 해도 젊었을 때 그 내력(内力)이 어디 가겠습니까.”“정말 내력이라는게 있습니까?”원경릉은 더 궁금해졌다. 무협소설에나 등장하는 내력은 무공이 어느 실력에 도달하면 떨어지는 꽃잎으로도 사람을 다치게 할 수 있다고 했다.희상궁이 막 설명을 하려고 하는데, 문 어귀에서 사람의 그림자가 휙 지나가는 것을 보고는 말을 멈추었다.“어유, 왕야 늦게오셨네요.”우문호는 태상황이 하사했다는 물건이 도착했다는 것을 듣고, 궁금함을 이기지 못해 문 앞에서 살짝 구경만 하려다가 희상궁의 눈에 띄어버려 어쩔 수 없이 안으로 들어왔다.그는 관심이 없는 척 힐끔 어장을 보았다.“이게 황조부께서 하사한 물품이냐?”“응. 직접 조각하셨어 한번 봐봐.” 원경릉이 손에 든 어장을 내밀었다.우문호는 그녀의 대범함에 당황해 얼떨결에 어장을 받아 들었다. 어장을 면밀히 살펴보니 손에 닿는 감촉이 매우 매끄럽고, 한눈
원경릉과 우문호의 술자리“나 아무래도 주량을 늘려야겠어, 안 그러면 다음에 난리 난다고. 어쨌든 내일 겨우 회왕부에 가니, 왕야도 같이 가서 좀 마셔줘.” 원경릉이 진심을 다해 가자고 졸랐고,우문호는 그녀가 진심으로 조르는데 못 당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우문호는 어깨를 으쓱하며, “편할 대로, 나도 한 잔 하고 싶으니까.” 결국 핑계 아닌가? 원경릉이 말하면 뭐든 다 들어준다고 생각할 까봐 서둘러 핑계를 댄다.원경릉은 자기가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사람들에게 약점 하나가 들키면 그 약점이 그녀의 가장 큰 위협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기상궁은 솜씨가 좋아서, 항상 각종 맛있는 안주를 척척 만들어 낸다.그러니까 단순하기 그지 없는 재료도 기상궁의 손에 들어가면 신기한 맛으로 거듭나서, 원경릉이 먹고 있으면 웃음이 멈추질 않는다. “손왕 아주버님이 항상 궁중 요리사가 만든 요리가 맛있다는데, 그건 아직 기상궁이 만든 밥을 못 먹어봐서 그런 거야. 일단 한 번 먹었다 하면 손왕 아주버님은 아예 보따리를 싸서 여기 눌러 앉을 걸.”우문호가 원경릉을 보고, “너 꼭 둘째 형이랑 엄청 친한 거 같다.”원경릉이 우문호에게 술을 따라주고 자기 잔도 가득 채우는데, 이 작은 잔은 한 입에 탁 털어 넣을 만한 크기로 술 색이 맑고 향이 코를 찌른다.원경릉이 심호흡을 한 번에 벌써 30%는 취했는지 방긋 웃으며, “맞아, 사람 괜찮더라, 좀 식탐이 있어서 그렇지.”“좀?” 우문호가 콧방귀를 뀌었다.원경릉은 손왕의 둥실둥실한 몸과 오동통한 손가락을 떠올리고 웃음을 참을 수 없어, “확실히 조금은 아니네, 특별히 식탐이 있으시지. 그런데 걸핏하면 살 뺀다는 말을 입에 달고 말이야.”“만약 살 빼라고 난리를 치지 않으면, 형은 더 미친듯이 먹을 걸.”“살 빼라고 야단법석을 떠는구나. 어쩐지 안 드시더라.”우문호는 원경릉이 둘째형 얘기를 자꾸 꺼내니 조금 기분이 좋지 않아서, “형이 먹던 말던, 네가 뭐 그렇게 신경 쓰는데? 신경 쓰
원경릉의 술 알레르기와 약상자의 비밀반 시진 후 우문호는 탁자 위에 앉은 수치를 모르는 이 여인을 원망스럽게 바라봤다.옷은 반쯤 벗겨졌고, 두 손은 목과 쇄골을 더듬으며…… 있는 힘껏 긁고 있다.얼굴, 쇄골, 목에 빨긋빨긋 돋아나더니 이젠 붉은 뾰루지처럼 됐다.바닥엔 접시와 젓가락, 요리가 엉망진창으로 널려 있고, 기상궁과 녹주는 벌써 쫓겨 났으며 똑똑한 희상궁은 혼자 먼저 숨어서 해장국을 끓이고 있다.다바오조차 첫 접시가 바닥에 떨어지는 전에 폭풍우에서 도망쳤다.계화황주 한잔, 우문호는 하늘을 두고 맹세한다. 진짜 딱 한잔이다.우문호는 천천히 일어나 뒤로 물러섰다.원경릉은 어장을 들고 탁자를 탕탕 두드리며, 쉰 목소리로 소리를 지른다. “너 한번 해볼래?”우문호는 원경릉에게 살인 충동을 느꼈다.우문호가 태어나서 가장 싫어하는 게 다른 사람에게 위협당하는 것이다.원경릉은 전신이 가려워서 미치겠다. 처음 술을 마셨을 땐 그냥 취하기만 했지 알레르기는 없었는데 왜 이번엔 알레르기가 생겼을까?원경릉이 하나 더 떠올린 건 가려움을 도저히 견딜 수 없다는 사실로, 마치 극강의 가려움이 혈액을 타고 흐르는 것 같아 약상자를 열심히 찾아봤으나 알레르기 약을 찾을 수가 없다. 원경릉은 전신의 피부와 껍질을 전부 벗겨내고 싶을 지경이다.이 절체절명의 시점에 우문호가 감히 도망을 가겠다고?원경릉은 어장으로 탁자를 탕탕 두드리며, 쉰 목소리로 고래고래, “너 한번 해볼 거냐고?”“나 등이 너무 가려워, 손이 안 닿아!” 원경릉이 미친듯이 두 발로 탁자를 구르며 두 손을 등뒤로 긁으려고 애를 쓴다.“어의는 어디 있느냐?” 우문호가 소리를 질렀으나 하는 수 없이 가서 긁어주었다.원경릉 등은 정말 뜨거워서, 손을 델 것 같고 손가락이 닿으니 마치 불덩이 표면을 만지는 것 같다.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뜨거워도 어떻게 이 정도가 되지?어의가 급히 달려오자 우문호는 원경릉의 옷을 끌어 올리며 화를 낸다, “문 좀 두드릴 수 없어?”어의가 뒤를 돌
같이 밤을 보내게 된 원경릉과 우문호원경릉이 고통을 한 번 받을 때마다 약 상자가 한번씩 업그레이드 되는데, 당연히 약 상자의 업그레이드는 그녀의 대뇌 개발과 관련이 있다.이것은 엄청난 발견으로 적어도 대뇌 혹은 약 상자 업그레이드를 통해 그녀가 마음속으로 원하는 것을 약 상자안에 있도록 완전히 컨트롤 할 수 있다는 말이다.우선 이 문제는 차치하고, 스트랩토 마이신이 있으므로 보름간 주사가 가능하니 병세가 안정되는 게 먼저다.원경릉은 약 상자 안의 물건을 정리하며 프록토세딜 연고와 글리세린 관장액은 잘 쓰지 않으니 제일 밑에 구석에 넣어뒀다.침대로 돌아와보니 우문호가 죽은 듯이 자고 있다.우문호는 별로 안 마셨을 텐데? 왜 이렇게 취했지?우문호의 얼굴에 오른쪽에 세줄 왼쪽에 세줄 씩 난 손톱자국을 보고, 원경릉은 미안한 마음과 함께 이거 큰일났네, 내일 관아에 어떻게 출근하지?원경릉은 졸려서 하품을 하고 우문호의 몸을 넘어 안쪽으로 들어가 누웠다.기어서 타고 넘느라 자던 사람을 깨웠다.우문호는 한참 달게 자고 있는데 갑자기 깨운 데다, 머리가 좀 맑아지자 어젯밤 일이 떠올라 씩씩거리며, “너 이 밤중에 안 자고 왜 부스럭거려?” “방금까진 잠이 안 왔는데 지금 졸려.” 원경릉이 또 하품을 하며, “잘게.”원경릉이 옆으로 누워 골골 잠든 것을 보니 우문호는 복수심이 생겼다. 원경릉은 졸린데 우문호는 깨어있다.“원경릉, 나 갑자기 가슴이 아파.” 원경릉이 벌떡 일어나 우문호가 고통으로 가슴을 움켜쥔 것을 보고 그의 얼굴색을 보니 과연 순식간에 창백해 져서 마음이 급한 나머지 엎드려 심장 뛰는 소리를 들었다.“왜 그러지, 어째서 갑자기 아픈 걸까?” 원경릉이 심장 뛰는 소리를 잠시 듣고 일어나 청진기를 가져와 우문호 가슴에 올려놓았다.얼굴이 가슴에 닿아 있던 그 순간 우문호는 온 몸이 딱딱하게 굳어지고 심장이 제 멋대로 뛰었다.심장이 빨리 뛰는데 어찌나 쿵쿵 빨리 뛰는지 1분에 적어도 120회는 뛰는 거 같다.“왼쪽 손 아파? 등은
잠자리 시중을 드는 여인과 할퀸 자국우문호는 몸을 옆으로 돌려 원경릉을 등지고 화난 걸 감추며, “셋에서 다섯쯤.”원경릉은 깜짝 놀랐다. 하나 둘도 많다고 생각했는데 셋에서 다섯일 줄은 생각도 못했다.현대인으로 사실 남자가 잠자리 시중을 드는 여자를 두는 것 자체가 이해가 안 되는데, 자손을 왜 번창하게 하려는 지도 솔직히 납득이 안된다.원경릉도 우문호에게 등을 돌렸다. 마음 속에 화가 난건 그 여자들을 생각해서다.녹주를 예로 들면, 여자는 다 잠자리 시중을 들고 싶지 않다. 어떤 사람이 남자의 출산 도구가 되고 싶겠는가? 하지만 강력한 권력 앞에 그녀들은 굴복할 수밖에 없는 것이 사회적 지위가 낮기 때문이다.그런 가엾은 여자들이 이렇게 우문호 같은 나쁜 놈에게 유린당해야 하는가?그러나 지금 그녀들을 초왕부에서 내보내면 이 봉건사회에서 그들이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할 수 있을까?원경릉은 화가 났고, 우문호도 화가 났다.원경릉의 말이 무슨 뜻이지? 우문호를 어떤 사람으로 본 거야? 잠자리 시중이라니, 우문호는 후궁이나 첩조차 두지 않고 정비 하나만 뒀는데, 원경릉 이 여자 역시 밉상이라 상종하고 싶지 않다.두 사람은 씩씩거리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눈을 감고 마음속으로 서로를 비난하는 동안 하늘이 밝아왔다.우문호가 먼저 일어나 나가서 탕양과 몇 마디를 주고 받더니, 탕양에게 관아로 가서 우문호가 오늘 오후에나 관아에 갈 거라고 전하게 했다.원경릉도 일어나 녹주에게 옷 갈아입는 것을 도움 받지 않고, 자기 옷을 집어 병풍 뒤에서 스스로 갈아입었다.기상궁이 우문호의 옷을 가져와 하나씩 벗기고 다시 하나씩 입히고 띠를 매 준다. 원경릉이 화장대 앞에 앉아서 보며 자기도 모르게: “손 다친 거도 아닌데 왜 혼자서 옷을 못 입을까?”이 말은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말로, 이런 귀공자님들은 콧대가 높으셔서 밥도 자기 손으로 안 먹고 떠먹여 줬으면 하기 때문이다.하지만 어젯밤새 부글부글 화가 끓어 올라, 얼른 토해내지 않을 수 없었다.우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