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취제의 양이 많지 않아 우문호는 금방 정신을 차렸다. 원경릉이 그의 옆에 앉아 시중을 들던 나인들을 모두 내보내자 궁전은 아주 조용해졌다.강철 같은 손가락이 그녀의 목을 옥죄었고, 그녀는 숨을 쉴 수 조차 없었다. 우문호는 머리 끝까지 화가 난 야수처럼 살기 띈 눈빛으로 읊조렸다. “감히 네가 황조부를 독살하려고 해?”원경릉의 머리는 들려있었고, 눈알은 핏줄이 터질 것 같이 충혈되었다. 그녀으 얼굴이 순식간에 검붉은 색이 되었다. 그녀는 힘겹게 그에게 말했다. “왕야, 고개를 숙여 보시옵소서.”순간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우문호의 허벅지 살을 꿰뚫었다. 그 바늘에는 액체가 들어 있는 작은 관이 있었다. “당신이 나를 목 졸라 죽일 수 있지만, 내가 죽기 전에 당신이 먼저 죽을테니, 제 말을 먼저 듣는게 좋지 않겠습니까?”원경릉은 힘겹게 말하면서도 강인한 기개를 보였다. 그러자 그의 손이 천천히 풀어졌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더욱 분노로 휩싸였고, 일그러진 그의 고운 얼굴이 분노를 애써 참으려는 모습이 보였다. “이봐, 무슨 독약을 쓴거야?” 그는 지금까지 한번도 그녀가 이런 독약을 쓸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그녀를 얕잡아보다 큰코 다친 기분이 들었다. 원경릉은 바늘을 뽑으며 비꼬듯 웃었다. “제가 궁에서 태상황을 독살하는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말해!” 우원호는 분노에 차서 소리를 질렀다.원경릉은 크게 심호흡을 하며 말했다. “독이 아니라 약입니다. 태상황의 병세는 그렇게 나쁘지 않았습니다. 저는 단지 태상황을 구하려고 했을 뿐 입니다.”우문호는 냉소를 지으며 살벌한 기색을 보였다. “내가 세상에 둘도 없는 의술의 신과 결혼 했다는 것을 몰랐네.”라고 비꼬며 그녀의 손을 강하게 이끌었다. “당장 나와 함께 아버지에게 가서 너의 죄를 고하렸다.”그는 원경릉을 강하게 끌어당겼고, 그녀는 그의 강철같은 손을 뿌리치지 못하고 끌려 갔다. 몇걸음을 끌려갔을 때 원경릉이 말했다. “좋소. 내가 가서 죄를 고하겠습니다. 허나 나는 주명취
그녀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우문호가 누워있는 침대에 머리를 뉘었다. 그녀는 자신의 몸이 떨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최근 며칠동안 발생한 일은 아무리 상상력이 좋은 사람이라도 생각조차 할수 없는 일들이 벌어졌다. 뭔가 미로로 빠진 것 같았다. 어떤이는 과학과 신학은 돌고돌아 결국 한 지점에서 만난다고 말한다. 두뇌의 개발과 연구가 어느 지점에 다다르면 어떤 물건이든 생각으로 사물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고, 이러한 두뇌가 자동으로 정보를 수집한다. 그 개발 정도를 생각하니 약간의 신의 영역의 괴리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원경릉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들어 소매 주머니에 있는 약상자를 단단한 촉감을 느껴보았다. 소매가 흘러내리면서 하얀 손목이 드러났고, 손목 위로는 못 보던 붉은 상처가 보였다. ‘언제 다친거지? 방금 우문호와 몸싸움을 할때? 아냐. 이미 피딱지가 생겼고, 소매에도 묻은 것을 보니 적어도 30분 전에 난 상처인데…… 30분 전에?’그녀는 멍해졌다. 원경릉은 방금 전 상황을 되짚어 보았다. 그러다가 성전 밖에서 기다리던 중에 우문호가 그녀를 밀쳤고, 주명취가 와서 자신을 부축해 준것이 떠올랐다. ‘설마, 단순한 부축이 아니었던거야?’그녀는 주명취가 왕 곁으로 돌아갈 때, 그녀의 눈빛에서 놀란 기색이 있었던 것을 기억해냈다.주명취는 고의로 그녀에게 상처를 냈지만, 그녀가 자금탕을 복용했기에 아픔을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다. 원경릉의 기억이 또렷해졌다. 만약 예전의 원경릉이라면 틀림없이 대노하여 그 당시에 욕설을 퍼부었을 것이며, 그런 숙연한 자리에서 주명취는 사형을 당하지는 않아도 옥에 갇혔다가 버려졌을 것이다.원경릉은 한순간에 마음이 차가워졌다. 사람이 행하리라고는 상상할 수도 없는 행동을 하다니.원경릉은 원래 주명취가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모두들 그녀를 악랄하다고 보는데, 원경릉은 그렇게 느끼지 않았다. 항상 주명취는 원경릉에게 사근사근하게 대하며 안부를 물었다.그녀의 아름답고 부드러운 얼굴에는 이런 악랄한 마음이 숨어 있었다니
궁에 있는 모든 어의들이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태상황이 음식을 삼킬 수가 있다고? 방금까지도 물 한모금 삼키지 못하셨던 분이……. 이미 임종까지 가신 분께서 어찌 저렇게 될 수 있는거지?’원판은 급히 들어가 맥을 짚었다. “하늘에 계신 신께서 북당의 태황상제님을 보살피신다!”하고 울부짖었다. 태상황의 맥박이 뜻밖에도 호전된 것이였다. 모든 장막이 걷혔다. 걷힌 장막 뒤로 태상황의 권위로운 얼굴이 보였다. 그는 눈동자를 굴려 신하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바짝 마른 입술을 열어 말했다. “무릎을 꿇고 앉아 뭣들 하느냐. 모두 일어나거라!”그 소리가 낙엽 굴러가듯 힘이 없었지만 신하들은 그 마저도 너무 기뻐하며 절을 하고 일어섰다. 태상황은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파랗던 입술이 점차 선홍빛으로 돌아오는 것이 보였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문호는 어디갔느냐”옆에 있던 상선이 다급하게 말했다. “초왕은 태상황님을 곁을 지키다 의식을 잃어 측전에 가서 쉬고 있습니다.”“이리 오라고 하거라.” 그 말을 들은 태상황의 입가엔 실낱같은 미소가 비쳤다. 그는 푸바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어서 가거라. 내가 갈 수는 없지 않느냐.”푸바오는 꼬리를 흔들며 뛰어갔다.“어서 초왕에게 전하시오!”다급해진 상선이 소리쳤다.“손자 며느리……” 태상황은 잠시 생각에 빠졌다. 그는 힘에 부치는듯한 목소리라 몇글자를 내뱉었다. “함께 오라고 하거라.” 태상황의 말에 모두가 의아했다. 특히 주명취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태상황이 왜 원경릉을 만나려고 하는것인가?태상황의 병이 호전됐으니, 명원제는 서둘러 사람들을 궁 밖으로 내보냈고, 친왕들은 외전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궁에는 명원제와 예친왕, 상선 그리고 원판만 남아있었다. 측전.우문호는 서서히 마취에서 깨어났고, 원경릉은 태상황의 부름이 있기 전부터 깨어있었다. 우문호는 몸을 일으켰고, 눈에는 여전히 살기가 가득했다. 원경릉은 더 이상 반항할 힘이 없었다. 그저 씁쓸한
원경릉은 태상황의 안색을 살폈다. 전보다 청색증도 많이 사라졌고, 호흡도 순조로워 보여 원경릉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태상황은 우문호를 보며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이를 본 우문호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등에 베개를 덧대어 반쯤 눕혔다. “다섯째야, 내가 너의 부인을 오늘 처음 보는 구나.” 태상황은 건강할 때보다는 못하지만, 이전보다 총기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우문호의 마음속에서 복잡한 감정이 일었다. 황조부가 정신이 드시자마자, 왜 원경릉에 대해 물어보시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 해 내내 태상황은 병상에 있었다. 그들이 혼인을 맺은 후, 궁에 들어가 문안을 드리려고 했는데, 태상황의 건강상태가 좋지 않아 원경릉을 보여드리지 못했다. 원경릉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태상황이 자신 쪽을 뚫어져라 보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마치 그의 눈빛은 사람을 꿰뚫어보는 능력을 지닌 듯해 보였다. 태상황의 재위 38년, 그는 권력이 고도로 집중되었던 시대에 장기집권 했다. 그는 그 세월동안 사람을 꿰뚫어보는 내공이 생긴 것 이다.“황조부, 그녀는…… 황조부께서 몸이 좋지 않으시니, 손자가 미처 부인을 데리고 오지 않았습니다.” 우문호는 이렇게 밖에 변명할 수 없었다.“과인이 곧 죽을 사람이라, 병이라도 옮을까 데려오지 않은게냐?” 태상황이 부드러운 말투로 웃었다.원경릉은 조심스레 고개를 들다가 태상황의 날카로운 눈빛을 느끼자 놀라서 다시 고개를 떨구었다. “황조부께서는 그런 말씀 마십시오. 만수무강하실겁니다.” 우문호의 목소리에서 슬픔이 묻어났다.명원제와 예친왕이 옆에서 “하늘이 태상황을 도우셨습니다.” 라고 말했다.궁인이 좁쌀죽을 가져왔다. 상선이 죽을 받아 올리려고 하자, 태상황이 상선을 바라보았다.“왜? 과인은 젊은 궁인이 가져다 주는 것은 먹으면 안되는 것이냐? 네 눈 좀 봐라 시커먼 것이! 내가 네 눈 밑 시커먼 것에 놀라 죽겠다. 가서 잠이나 자거라! 여기는 초왕비가 남아서 내 시중을 들
자신의 처소로 돌아온 우문호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는 원경릉이 바늘로 황조부를 찌르는 것을 보았지만, 그 안에 독이 들었는지 무엇이 들었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왕조부의 병세가 호전되기는 했지만, 만약 바늘로 찌른게 독이라면 정신을 잃거나 몸을 가누지 못한다거나, 혹은 다른 증상이 있을 수도 있다. 원경릉은 도대체 이런걸 어떻게 알았으며, 누가 가르쳐준 걸까? 그녀의 아버지인 정후 원팔룡? 허나 그는 그렇다할 배짱이 없다. 그저 권세에 붙어 이리저리 휘둘리는 소인배에 지나지 않았다. 만약 원경릉이 행한 일을 태상황에게 들키기라도 한다면 분명 우문호를 배후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는 생각할 수록 불안해져서 탕양에게 녹주와 기상궁을 데리고 오라고 명령했다. 그들 두 사람은 원경릉 가까이에서 시중을 들었는데, 그녀가 어떤 이상한 행동을 했다면, 이 둘이 모를 수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녹주는 항시 붙어있는 궁인인데, 원경릉이 태상황이 있는 건곤전에 남아 병수발을 한다는 말을 전해듣고 놀랐다. 바쁜 걸음으로 돌아와 기상궁에게 알려주었더니 기상궁도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두 사람은 왕야의 부름을 듣고, 급히 달려갔다. “왕야!” 두 사람이 왕야 서재에 있는 왕야를 향해 절을 했다. 우문호는 기상궁을 슬쩍 쳐다보았다. 그러다 문득 그녀의 손자가 생각이 났다. “열이는 요즘 어때요?”“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이제 별일 없습니다.” 우문호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이의원이 의술이 좋으신가보네”라고 말을 했다. 기상궁은 잠시 망설이다가 “네…… 그렇습니다!”라고 했다.우문호가 기상궁이 망설이는 것을 느끼자 그녀를 담담하게 보며 “기상궁 지금 나에게 숨기는 것이 있지 않은가?” 라고 물었다. 기상궁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제가 어찌 감히!” 하며 고개를 숙였다.우문호는 차가운 얼굴로 담담하게“본래 기상궁은 내가 어릴 때부터 나를 보필했으며, 본왕에 대한 충성을 다 했으므로, 어떤 일도 나에게 숨기지 않을 것이야.” 라고 말했다.싸늘함을 느낀
건곤전 내.태상황이 명원제와 예친왕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힘이 들었는지 모두 내보냈다. 옆에 있던 어의도 내보내고 나니 전 내에는 원경릉과 태상황만 남았다.명원제가 나가기 전에 의미심장한 눈으로 아무말 없이 원경릉을 훑어 보았다. 건곤전은 고요했으며 감싸고 있는 장막이 두꺼운 것이 바람 한점 통하지 않았다. 원경릉은 침대 옆에 서서 무엇을 해야할지 안절부절하고 있었다. 태상황이 감고 있던 눈을 번 쩍 뜨더니 차가운 눈빛으로 원경릉을 훑어보았다. “앉거라!”그가 소리쳤다. 원경릉은 천천히 무릎을 꿇고 앉았다. 이미 자금탕의 효력이 다 떨어진 후인지라 몸이 찢어질 듯 아팠다. “네 죄를 알고 있느냐.” 태상황이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원경릉은 태상황이 그녀는 자신을 벌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가 속세에 미련이 없지 않는 한 그녀는 그에게 생명을 줄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그래서 그녀는 고개를 들고 “알고 있습니다.”라고 솔직하게 말했다.“죄는 어디에서 오는가?”“제 의술이 비록 서투르나 옥체를 제가 책임을 지겠습니다.” 원경릉은 수박 겉핥기 식의 대답을 했다.“너의 의술이 서투르다니, 너는 태의원의 의원들을 모두 돌팔이로 만들 작정이냐!”태상황이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원경릉은 이 말을 듣고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태상황이 자신의 의술을 믿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일이 순조롭게 풀릴 것 같았다.아니나 다를까 태상황은 원경릉에게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이리 와서 앉거라. 과인에 병에 대해 말해보거라. 이게 죽을 병이냐? 내가 언제까지 살 수 있느냐?”원경릉은 천천히 일어나며 “아직 판단하지 못했습니다. 제게 태상황을 검사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십시오.” 라고 했다. “뭘 그렇게 멍하니 있는게냐. 진맥을 해보거라.” 태상황은 어디선가 이상한 것을 꺼내 귀에 매달고 있는 원경릉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자, 먼저 심장 소리를 들어 보겠습니다.” 잠시 후 태상황이 입을 파르르 떨며 “지금 과인에게 뭐하는 짓
저녁에 명원제가 건곤전에 문안하러 왔다. 그는 태상황의 상태가 전보다 호전된 것을 확인 한 후 돌아갔다. 원경릉은 명원제의 주의를 끌지 않기 위해 줄곧 한 구석에 머리를 숙이고 있었다. 명원제가 자리를 떠난 후, 상선은 늘 그래왔듯 자기 전 태상황의 몸을 정성스레 닦았고, 원경릉은 외전으로 자리를 피했다. 이 틈을 타 그녀는 자신에게 주사를 놓았다. 상처가 난지 꽤 되었기도 하고 계속해서 자극이 있었던지라 고름이 잡히려고 하는 것 같았다. 주사를 놓은 후, 그녀가 잠시 엎드려 휴식을 취하려고 하는데 안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벌떡 일어남과 동시에 속에서 울컥 무언가가 올라왔다. 그녀의 목구멍에서는 비릿한 맛이 느껴졌으며 입술 사이로 핏물이 흘렀다. 그녀는 밖으로 나가 나무 아래에 피를 토하고는 나무를 붙잡고 정신을 차리기위해 애썼다.“왕비님, 왜그러십니까?” 등뒤로 상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원경릉은 손을 저으며 “체한 것 같습니다. 별일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상선은 그녀의 안색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 했지만, 아무말도 하지 않고 지나갔다. 원경릉은 ‘왜 피를 토한거지’ 하는 의구심을 꾹 참고 궁으로 돌아갔다. 침상에 반쯤 걸터 앉은 태상황의 모습이 보였다. 한눈에 보아도 전보다 훨씬 좋아진 모습이었다.“태상황님, 주사를 맞으셔야 합니다.”원경릉이 말했다. 태상황은 팔을 걷어 올리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과인이 상전을 내보냈으니, 너는 네 일에만 집중하거라.”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태상황의 심장박동과 호흡을 확인해보았다. 호흡이 약간 불안정했다. 원경릉은 도파민을 꺼내 링거를 놓았다. 그녀는 설저환 한 병을 꺼내 태상황에게 주면서 “이 약은 응급시에 드셔야 합니다. 가슴이 아프거나 숨이 막히면 혀 아래에 넣으십시오” 라고 말했다. 태상황은 손을 내밀어 설저환을 한움큼 받았다. 잠시 후, 원경릉이 한손에 각양각색의 약을 한움큼 쥐고 다른 한 손에는 물을 가지고 왔다. 태상황은 조금 짜증나는 목소리로 “이게 다 뭐야?”라고 말했다. “다 드
주명취는 태상황의 낯빛이 어두워지는 것을 보고는 안심했다. ‘태상황이 초왕을 총애해서 초왕의 부인인 원경릉보고 병시중을 들라고 한 것이지, 원경릉은 그저 병수발이나 드는 한낱 궁인보다 못한 존재지’어의는 태상황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지는 것을 보고 급히 약을 들고 나가려고 하였다. 태상황은 화가 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빨리 약을 가져오지 않는게냐! 방금 초왕비가 한 말을 못들은거냐!”그 말을 들은 모든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져서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특히 주명취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원경릉은 고개를 숙이고 눈을 질끈 감았다. 만약 태상황이 어의가 준 약을 먹지 않고도 병이 좋아진 것을 알면 많은 사람들의 의심을 살 것을 원경릉은 알고 있었다. 명원제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빨리 가져오거라!”명원제가 원경릉에게 온화한 눈길을 주었다. 태상황이 단숨에 약을 들이켰다. 약이 매우 써서 그의 얼굴이 한순간에 찌푸려졌다. 태후는 급히 약과를 하나 건내주었다. 약과를 입에 넣은 태상황의 얼굴이 조금 풀어지는 듯 했다.우문호는 복잡한 눈빛으로 원경릉을 쳐다보았다. 그는 이 상황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생각치도 못하게 황조부가 그녀의 말을 듣다니, 설마 그녀의 음모는 이미 실현된것인가?태상황이 약을 마시자 태후는 기뻐하며 원경릉을 칭찬하자 옆에 있던 예친왕까지 원경릉에게 칭찬을 했다. 황후는 웃고 있는 듯 했지만, 그 웃음이 왠지 어두웠다. 보아하니 주명취의 근심이 일리가 있는 것 같았다.명원제는 정사를 제치고, 태황상제를 보필하러 왔다. 태상황의 병이 호전됐다고 할지라고 어제 태상황이 임종 가까이 갔다는 것을 알기에 그는 단번에 마음을 놓지 못했다. 이런 마음을 그는 아는지 모르는지, 그가 명원제와 예친왕에게 모두 돌아가라고 했다. 명원제는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에 원경릉에게 말했다. “낮에는 오는 사람이 많으니, 이 틈에 넌 들어가서 잠을 보충하거라.”이 말을 들은 원경릉은 몸을 숙이며 “알겠습니다.” 라고 말하고 외전으로 향하는데 상선이 다가와 원
장 선생은 물을 한 모금 마시고는 목을 가다듬었다. 이제 목이 그렇게 아프지는 않았다. "자, 모두 조용! 오늘 너희들한테 기쁜 소식을 하나 전하려고 한다. 이번 기초 시험 평가에서 우리 반 학생이 무려 전교에서 압도적인 성적을 거뒀다. 전 과목 만점, 우리 성화 고등학교 개교 이래 처음 만점을 받은 학생이다!"조용히 수군거리던 학생들은 순간 정적에 휩싸이며 놀란 눈으로 장 선생을 바라보았다.학생들은 그의 말이 장난이라 생각했다. 설령 만점을 받을 사람이 있다고 해도, 성화고 학생일 리가 없었고, 더군다나 6반일 리가 없을 거라고 여겼다. 장 선생은 다시 물을 한 잔 마신 후, 부드러운 시선으로 우문황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만점을 받은 학생은, 바로 새로 전학 온 우문황 학생이다. 전 과목 만점!"순간 반 전체 50여 명의 시선이 일제히 우문황에게 향했다.‘만점을 받았다고? 사람이야?!’‘아니, 쟤 예전에 한 자릿수 점수 받지 않았었나? 거기에 소수점까지 있는 황당한 성적이었잖아?’이지혁은 잠결에 우문황이 만점을 받았다는 말을 듣고, 소매로 얼굴을 문지르며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만점? 너 커닝했지?!"하지만 커닝을 해서라도 만점을 받았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었다. 이지혁은 책을 펼쳐놓고 답을 찾아봐도 합격선에 도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6반에도 간혹 성적이 잘 나오는 학생이 있었지만, 대부분 간신히 합격선에서 아슬아슬하게 오르내릴 뿐이었는데, 만점에 심지어는 전교 1등이라니.부러움과 질투, 경외의 눈빛이 모두 우문황에게 쏟아졌지만, 그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만점이 그에게는 너무나도 쉬운 일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충격적인 소식에 반 전체가 이내 조용해졌고, 그 후로 장 선생님이 반복해서 들려주는 감동적인 격려의 말도 학생들은 그저 묵묵히 들을 뿐이었다. 이전 같으면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 말들이었지만, 오늘은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수업이 끝난 후 장 선생이 우문황을 불렀다."우문황, 잠시 나와봐."그러
하지만, 이건 너무 대단한 일이었다. 모든 과목에서 만점을 받다니? 심지어 국어까지도 만점이었다. 앞부분의 이해 및 분석 문제를 다 맞혔다고 해도, 작문에서 만점을 받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교사로서 이런 성적을 보니, 장 선생은 정말 기뻤다. 비록 그가 담당하는 반 학생은 아니지만, 모든 학생이 좋은 대학에 진학하고, 나라 발전에 기여하기를 바라는 것이 바로 교사로서의 작은 소망이기 때문이다.게다가, 이런 학생이 나오면 학교에도 큰 영광이었다.교장 선생님이 둥근 안경을 살짝 밀어 올리며 그를 바라보았다.“장 선생, 이 성적표는 장 선생 반 우문황 학생의 것이네.”그러자 장 선생은 너무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너무 놀란 나머지 입까지 떡 벌어졌다.“네…? 우문황 학생…? 그 학생 것이라고요?!”교장 선생님은 안경을 벗고, 손수건으로 눈가를 살짝 닦으며, 약간 울먹이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맞네. 우리가 보물을 발견했어! 이렇게 많은 세월이 지나 드디어 한 명의 천재가 나왔군.”“그 애가요? 하지만 그 학생은 그전까지 성적이…”장 선생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넋을 잃고 중얼거렸다.“조만간 부모님과 상담할 생각이네. 이전 성적은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앞으로의 성적이지. 장 선생, 오늘은 중요한 일을 의논하러 자네를 오라고 했네. 우문황 학생을 계속 6반에 둘 수는 없지 않는가? 그래서 1반으로 옮기려고 하네.”장 선생은 순간 멍해졌다. 조금 전까지 기쁨에 차 있던 얼굴이 점점 굳어지기 시작했다.그러자 방 선생이 급히 말했다.“장 선생님, 오해하지 마세요. 선생님의 뛰어난 학생을 빼앗으려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선생님께서도 재능 있는 아이를 아끼는 분이시잖아요? 이런 성적을 가진 학생이 계속 6반에 머문다면 성적이 크게 떨어질 겁니다. 그것은 정말 재능을 낭비하는 것이죠.”장 선생이 착잡한 마음으로 성적표를 꼭 쥐었는데, 문득 그도 방 선생의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6반은 솔직히… 공부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학
방 선생은 아내와 영화를 보며 휴식을 취할 생각이었지만, 영화도 포기하고 바로 차에 올라타 학교로 돌아갔다.장 선생은 오늘 몸이 좋지 않아 추가 근무를 하지 않았는데, 오후가 되자 더 이상 버티기 힘든듯 병원에까지 다녀왔다. 그러자 의사는 성대와 목이 염증이 생겼고 약간 열이 난다고 했기에, 그는 약을 먹고 핸드폰을 무음으로 설정한 후 바로 잠에 들었다.한밤중이 되어 잠에서 깨어난 그는 어렴풋이 머리맡의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방 선생에게 여러통의 전화가 걸려왔었지만, 늦은 시간이라 다시 전화하지는 않기로 했다.그는 몸이 아프니, 마음도 유난히 약해지는 것 같았다. 점점 더 이 일을 버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사직하고 싶은 마음 또한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월요일이 되어, 장 선생은 여전히 목이 아팠지만, 죽을 마신 후 핸드폰을 들어 방 선생에게 전화를 걸 준비를 했다. 장 선생은 방 선생의 전화가 성적 관련 이야기라는 것을 눈치챘다. 예전에도 시험을 치른 후, 성적이 이전보다 나빠지면 방 선생은 밤새 전화를 해왔기 때문이다.그는 이제 그런 일에 대응하는 것도 지쳤기에, 사직서를 꺼내 들고, 오늘은 반드시 제출하겠다고 다짐했다.그런데 주차장에 도착하자마자 교장에게서 전화가 와, 장 선생은 서둘러 전화를 받았다."좋은 아침입니다, 교장 선생님."전화기 너머로 교장의 다정하고 온화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장 선생, 몸이 아프다던데 괜찮나?"그는 멈칫하다가, 무심코 핸드폰 화면을 확인했다. 전화기 너머의 사람이 분명 틀림없이 교장인데, 목소리와 말투가... 너무 부드럽지 않은가? 게다가 ‘야’가 아닌 장 선생이라고 부르다니?"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교장 선생님. 이제 괜찮아져서 지금 학교로 가는 중입니다.""그렇다면 다행이군. 학교에 도착하면 바로 내 사무실로 오게. 긴히 할 이야기가 있네."교장의 목소리는 여전히 친절하고 따뜻했다.장 선생은 바로 "네."라고 대답한 뒤 전화를 끊었다. 교장이 이렇게나 다정한 목소리로 말하는 것
다음 날 학교로 돌아오자마자 그는 사직서를 작성했다. 이틀 동안의 모의고사가 끝난 후 교장에게 제출할 생각이었다.고3의 첫 번째 모의고사는 학교에서도 상당히 중요하게 여겼다. 특히 1반을 더욱 신경 썼는데, 1반이야말로 진정한 실험 반이자 특별반이었기 때문이다.1반에는 성적이 시 전체에서 1000등 이내에 드는 학생이 두 명이나 있었는데, 이는 성화고등학교의 입장에서는 매우 뛰어난 성과였다.학교는 그런 그들을 더욱 집중적으로 육성하였기에, 이번 모의고사가 시 단위의 성적에 반영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교장까지 직접 나서서1반 학생들을 격려하며 사기를 북돋아 주었다.시험은 이틀 동안 진행되었고, 시험 감독은 여섯 개 반의 선생님들이 섞여 배정되었다.장불운, 장 선생은 운 좋게도 1반의 수학 시험 감독을 맡았다. 1반 학생들이 문제를 풀며 집중하는 모습을 보자, 그는 부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가장 우수한 두 학생의 섬세한 풀이 과정을 보자, 감탄사가 저절로 나와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다. 이틀간의 시험이 끝난 후, 선생님들은 함께 식사하러 갔다. 식사 자리에서는 시험 감독을 맡은 선생님들이 각 반의 시험 상황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2반 담임이 웃으며 말했다."우문황 학생은 시험 시작하고 30분 정도만 풀고 그냥 멈췄더라고요. 이번 시험 문제가 좀 어려웠던 모양이에요.""정말요? 저도 봤는데, 30분 정도 쓰다가 멈추더라고요. 그런데 이번 국어 시험 문제가 꽤 쉬운 편이었어요. 다만 작문이 좀 어려웠죠."수학 담당 선생님이 말을 덧붙이지자, 이에 방 선생이 웃으며 말했다."그만, 그 학생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 합시다! 전학생이니,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겠죠."그러고는 장 선생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이번 시험이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에요. 어차피 고3은 시험이 많으니까요. 앞으로도 따라잡을 기회는 충분하니 힘내세요!"장 선생은 가방 속에 사직서를 넣으며, 방 선생에게 이일을 먼저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그가 허리를 곧
시끄러운 소리에 기숙사에 있던 남학생들이 모두 우르르 달려 나왔다.그런데 이건휘가 벽에 붙어서 다리를 올린 자세가 마치 강아지가 오줌을 싸는 자세와 똑같아 다들 보자마자 배를 끌어안고 웃기 시작했다.평소 이건휘는 성적은 꼴지면서 태도는 제일 오만했기에, 지금까지 모두가 보는 앞에서 이런 창피를 당한 적이 없었다.그는 온힘을 다해 움직이려고 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아서 너무 당황스럽고 분하며 부끄러웠다.바로 그때, 사감이 복도에 학생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고 인파를 뚫고 나왔다.이건휘를 발견한 사감은 두통이 밀려왔다.“너 또 무슨 장난질을 하는 것이야?!”사감이 다가가 그의 어깨를 당기고 나서야, 그는 드디어 움직일 수 있었다.이건휘는 이제 사지가 멀쩡해졌는지 한참을 움직이다가 사감을 껴안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말썽꾸러기인 그가 우는 것을 처음 본 사감은 괜히 마음이 약해졌다.예전에 그가 말썽을 피울 때마다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아직은 아이이기에 참았던 것이었다.“됐어. 그만 장난치고. 얼른 돌아가서 씻고 자.”짐승돌이 재빨리 다가와 이건휘를 부축하면서 기숙사로 돌아갔다.그 사이 우문황은 샴푸가 잔뜩 묻은 이불을 이건휘의 이불과 바꾸고 침대에 누워 있었다.이건휘가 기숙사로 들어오자 구두쇠가 다가가 속닥거렸다.“9점짜리가 이불을 바꿨어. 우린 건드리지 못하겠어.”이건휘는 샴푸가 묻은 이불을 보다가 눈을 감고도 여전히 잘생긴 우문황을 쳐다보았다.방금 몸이 움직이지 못한 것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철렁내려 앉았다.그는 말없이 이불을 말고는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이건휘는 기숙사의 대장이라 그가 제압당한 이상 다른 룸메이트들은 감히 우문황에게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지금 우문황은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실험반은 그가 상상했던 것과 너무 달랐다.다들 미쳤는 게 분명했다. 3학년인데도 유치한 장난을 치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수능은 유일한 출로는 아니지만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출발점인데 자신의 앞날을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다들 꿈
장 선생은 잘생긴 그의 얼굴을 다시 보았다.예쁘게 생긴 아이들은 항상 그의 마음을 약하게 만들었다.어차피 반에서 꼴찌인데 성적이 형편없다면 한동안 웃고 지나면 될 일이었다.“알았어. 내일 시험 봐. 대신 점수에 너무 신경 쓰지 말고. 아직 일년이 있는데 좋은 대학에 가고 싶다면 얼마든지 따라올 수 있어.”장 선생이 그를 격려해 주었다.“선생님, 걱정 마세요. 제가 실망시키지 않을 겁니다.”우문황의 단호한 말에 장 선생은 웃음이 나왔다.“그래. 그럼 됐어. 돌아가.”이보다 더 실망할지 모르겠지만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생각하기로 했다.“선생님 안녕히 계십시오.”우문황은 인사를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장 선생은 적어도 예의는 있는 아이라고 여겼다.저녁 자습시간이 끝나고 우문황은 기숙사로 돌아갔다.기숙사 입구에 있는 공용전화기로 집에 전화를 했더니 원 교수가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선생님이 저를 엄청 이뻐하세요. 친구들도요. 오늘 저녁에 기숙사에서 환영 파티를 해준대요. 애들이 잘해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우문황은 걱정시키지 않으려고 거짓말을 둘러댔다.“그럼 됐어. 이제 안심해도 되겠어.”전화기 옆에서 안심하는 외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손자의 성적은 걱정되지 않지만 학생들에게 괴롭힘을 당할까 봐 은근 걱정이었다.그런데 친구들이 다 좋아한다니 이제 조금은 안심할 수 있었다.“넷째 형이 전화 왔었어요?”우문황이 물었다.“방금 전화 왔었어. 말로는 친구들이 공부하느라 바빠서 자기한테 신경도 쓰지 않는대. 아주 그냥 밤 늦게까지 공부하나 보더라.”우문황은 짧게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넷째 형은 엘리트 반에 들어갔다.엘리트 반의 학생들은 명문대에 들어가기 위해 필사적으로 공부할 것이다.그는 돌아서서 기숙사로 들어갔다.한 기숙사에 여섯 명이 있는데 앙숙인 이건휘과 함께 살게 되었다.게다가 짝꿍인 이지혁도 있고 나머지 셋은 이건휘와 관계가 좋아 보였다.그들은 이름을 부르지 않고 별명을 불렀다.이건휘는 ‘대장’, 이지혁은 ‘
수업이 마쳤다는 종이가 울렸는데 장 선생은 나가지 않고 새 학생에게 우르르 몰려가는 여학생들을 보았다.“내 이름은 강소영이야.”“내 이름은 윤가혜.”“내 이름은 서연이야.”여학생들은 시키지도 않는 자기소개를 하더니 우문황에게 물었다.“너 어느 학교에서 전학 왔어?”“이름이 너무 멋지다. 너 복성 맞지?”“평소 취미가 뭐야? 주말에 내가 밀크티 사줄까?”그때 우문황은 머리 위에서 책이 떨어지는 것을 발견했다.손을 뻗어 책을 움켜쥐고는 벌떡 일어섰다.“이건휘, 너무해! 전학생을 괴롭히지 마!”윤가혜라 부르는 여학생이 우문황의 편을 들어 책을 던진 남학생을 혼냈다.“손이 미끌어졌어. 불만이야?”이건휘는 콧방귀를 뀌며 우문황의 손에서 책을 빼앗아가더니 바지 호주머니에 찔러 넣었다.“나 오줌 싸러 간다. 금사빠들과 말 섞기도 싫어.”“우문황, 저 녀석 무시해. 아주 나쁜 놈이야.”윤가혜가 다정하게 설명했다.“맞아. 우리 반에서 꼴찌야. 번마다 십 몇 점을 맞아도 창피한 줄 몰라.”“그럼 너희들 성적은 높아? 너희들도 20점 아니면 30점이잖아.”우문호의 건너편 짝궁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그 소리에 우문황은 더 이상 있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여기 학생들은 대체 어떻게 생겨먹었길래 20점, 30점을 맞을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애들아. 내가 알아봤어.”그때 한 남학생이 교실로 뛰어오면서 싱글벙글 웃었다.“전학생 우문황 있잖아. 과목에서 최고인 수학 점수가 9,5점이래. 우리 반 꼴지 이건휘보다 더 꼴통이야.”“하하하, 진짜야?”남학생들이 갑자기 폭소를 터트렸다.“완전 쓰레기잖아.”그 바람에 다들 우문황에게 비웃는 시선을 보냈다.심지어 방금 그의 편을 들던 여학생도 웃음을 참지 못했다.우문황은 그들을 뒤로하고 복도에 있는 온수기에 물을 따르러 갔다.그때 화장실에 다녀온 이건휘가 일부러 그의 얼굴에 물을 뿌리고는 비아냥거렸다.“9점짜리였어? 퉷!”우문황이 얼굴에 묻은 물을 닦으며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거
장 선생은 겨드랑이에 교재를 끼고 자리에서 일어섰다.“그래. 수업 시간이 되었으니까 따라와. 학급 친구들을 소개해줄게.”“감사합니다.”우문황이 공손하게 대답했다.장 선생은 고개를 들어 그를 힐끗 쳐다보았다.‘어이쿠, 키가 180은 되겠는데? 반반한 얼굴로 연애나 하지 마라.’그는 속으로 생각하다 한숨을 내쉬었다.3학년에 연애하는 것을 반대하지는 않았지만 실연하면 분명 문제가 발생했다.며칠 전에도 큰일이 날 뻔했는데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3학년 6반은 6층에 있었다.4월의 날씨는 따뜻하지만 남쪽에 위치한 광원시는 벌써 여름이 된 것처럼 더웠다.6층에 도착한 장 선생은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그가 돌아서서 우문황을 힐끗 쳐다보았다.옥처럼 맑은 얼굴에 땀도 나지 않고 심지어 가쁜 숨도 쉬지 않았다.6층에 올라서자 벌써 반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졌다.수업 종이 울려도 학생들은 스스로 제자리에 가지 않고 여학생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화장품에 대해 열렬한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남학생들은 또 뭐가 그렇게 신나는지 흥분된 목소리로 떠들었다.장 선생이 문을 팡팡 치면서 목청을 높였다.“조용해. 수업이야!”학생들은 저마다 짜증을 부리며 제자리도 돌아갔다.그 장면을 본 우문황은 경악하고 말았다.‘실험반 아니었어? 규칙도 지키지 못하면서 실험반이라고?’“자, 전학생을 소개하겠다.”장 선생은 강단에 서서 우문황을 가리켰다.“이름은 우문황이고 수업이 끝나면 서로 인사들 나눠라!”갑자기 51명의 눈동자가 전학생에 쏠리더니 여기저기서 탄성이 흘러나왔다.“와. 개잘생겼어.”“기준 오빠보다 더 잘 생겼잖아.”“다리 길이를 봐. 연예인 뺨치는데?”여학생들과 상반되게 남학생들은 차가운 눈으로 쏘아보았다.“잘생기면 다야? 한 주먹거리도 안 되겠네.”그때 장 선생이 나서서 분위기를 완화시켰다.“우문황 학생, 맨 뒷줄에 가서 앉아.”우문황은 장 선생이 시키는 대로 뒤로 걸어가자 후문 옆에 책상이
얼마 전에 원 교수는 성화고등학교와 거리가 아주 가까운 푸지오파크에서 가장 높은 복층집에 이사했다.원 교수가 여기에 이사 오겠다고 고집한 이유는, 손자가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보다 나이가 어린데, 성적 쓰레기들 집합소이자 학교 폭력도 끊기지 않는 학교에 다니는 것이 걱정되어서 가까이서 지켜보려고 했었다.“난 정말 학교가 마음에 안 들어요.”원 교수의 부인은 못마땅해서 한숨을 쉬었다.원씨 가문의 자식 원경주와 원경릉은 어릴 대부터 에이스 반을 다녔으니 기분이 안 좋은 것은 당연했다.”“외할머니, 저는 꽤 마음에 들어요. 형이 다니는 학교와 가깝잖아요.”칠성이 웃으면서 말했다.본인이 선택한 학교에서 얼마 안 가면 화진사립고등학교가 있었다.이 학교의 합격선은 600점이라 돈이 있어도 들어갈 수 없었다.화진고등학교의 이과가 유명하여 명문대에 입학할 확률이 50%에 달했다.이것은 사립고등학교에 있어 대단한 숫자였다.콜라가 항공과로 발전하려면 좋은 학교에 들어가야 하고, 칠성은 감독이 되고 싶어서 성화고등학교의 예술반에 지원하게 되었다.그런데 실험반만 자리가 나서 어쩔 수 없었다.솔직히 실험반은 대부분 학년에서 성적이 가장 좋은 반이라 학교에서 중점적으로 가르쳤기에 괜찮았다.“망했어!”그때 모니터를 보던 원경주가 미간을 찡그렸다.“칠성의 성적표를 잘못 작성했어요. 전부 한 자릿수로 입력되었어요.”“설마? 한 자릿수로 입학도 못할 텐데.”원 교수가 다가가 확인했더니 확실히 한 자릿수였고 뒤에 소수점까지 적혀 있었다.“무슨 일을 이따위로 처리해?”“내가 한 게 아니에요. 비서한테 맡겨서 수정하라고 했다고요.”원경주는 종이 한 장을 꺼내 확인했다.거기에 ‘86,75’ 숫자 사이에 확실히 소수점으로 보이는 부호가 있었다.그것은 소수점이 아니라 심전도 자료에서 사용하는 심전도의 점이었다.“회사에 가면 잘라야겠어요. 일을 너무 대충하네.”“그나저나 로 국장도 참 대단해. 이런 성적도 들여보냈어?”원 교수의 부인은 여전히 불만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