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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2화

작가: 유애
자신의 처소로 돌아온 우문호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는 원경릉이 바늘로 황조부를 찌르는 것을 보았지만, 그 안에 독이 들었는지 무엇이 들었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왕조부의 병세가 호전되기는 했지만, 만약 바늘로 찌른게 독이라면 정신을 잃거나 몸을 가누지 못한다거나, 혹은 다른 증상이 있을 수도 있다.

원경릉은 도대체 이런걸 어떻게 알았으며, 누가 가르쳐준 걸까?

그녀의 아버지인 정후 원팔룡? 허나 그는 그렇다할 배짱이 없다. 그저 권세에 붙어 이리저리 휘둘리는 소인배에 지나지 않았다. 만약 원경릉이 행한 일을 태상황에게 들키기라도 한다면 분명 우문호를 배후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는 생각할 수록 불안해져서 탕양에게 녹주와 기상궁을 데리고 오라고 명령했다. 그들 두 사람은 원경릉 가까이에서 시중을 들었는데, 그녀가 어떤 이상한 행동을 했다면, 이 둘이 모를 수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녹주는 항시 붙어있는 궁인인데, 원경릉이 태상황이 있는 건곤전에 남아 병수발을 한다는 말을 전해듣고 놀랐다. 바쁜 걸음으로 돌아와 기상궁에게 알려주었더니 기상궁도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두 사람은 왕야의 부름을 듣고, 급히 달려갔다. “왕야!” 두 사람이 왕야 서재에 있는 왕야를 향해 절을 했다.

우문호는 기상궁을 슬쩍 쳐다보았다. 그러다 문득 그녀의 손자가 생각이 났다. “열이는 요즘 어때요?”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이제 별일 없습니다.” 우문호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이의원이 의술이 좋으신가보네”라고 말을 했다. 기상궁은 잠시 망설이다가 “네…… 그렇습니다!”라고 했다.

우문호가 기상궁이 망설이는 것을 느끼자 그녀를 담담하게 보며 “기상궁 지금 나에게 숨기는 것이 있지 않은가?” 라고 물었다. 기상궁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제가 어찌 감히!” 하며 고개를 숙였다.

우문호는 차가운 얼굴로 담담하게“본래 기상궁은 내가 어릴 때부터 나를 보필했으며, 본왕에 대한 충성을 다 했으므로, 어떤 일도 나에게 숨기지 않을 것이야.” 라고 말했다.

싸늘함을 느낀 기상궁이 황급히 무릎을 꿇으며 “소인이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소인은 고의가 아니었습니다!”우문호는 눈꼬리를 치켜세우며 “말하거라!”라고 말했다.

기상궁은 할 수 없이 입을 열었다.

“말씀드리겠습니다. 열이는 이의원이 치료한 것이 아니라, 왕비께서 치료한 것입니다. 그저 왕비께서 절대 이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말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이에 탕양이 의아해하며 되물었다. “왕비께서? 왕비께서 언제 의술을 알게 되었지? 당시에 왕비께서는 열이에게 칼을 써서 왕야께 곤장 30대를 받았었는데”

기상궁은 그날 밤에 있었던 모든 일을 털어 놓으며 고개를 떨구었다. “소인이 왕비님을 오해했습니다.”

우문호는 탕양과 눈이 마주쳤다. 그의 눈엔 놀라움이 금치 못했다. “본왕이 묻겠다. 혹시 그녀가 가지고 있던 상자를 본적이 있는가? 그 상자를……” 우문호는 잠시 멍해졌다. 당시 태상황을 뵈러 장막을 걷고 들어갔을 때는 상자를 가지고 있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 보니 상자가 보였고, 또 측전으로 갈 때는 상자가 보이지 않았다. “상자가 하나 있어요!” 녹주가 급히 답을 했다. “그 상자는 온통 약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기상궁은 본적이 없어요. 그 누구도 본적은 없습니다.”

“요즘 누군가 왕비를 찾아오거나 누구를 찾으러 가는 것을 본적이 있느냐?”우문호가 물었다. 기상궁은 고개를 저으며 “왕비께서 혼인한 이후로는 찾는 사람이 드물었고, 최근 몇 달 동안은 친정집도 가지 않았습니다.” 탕양 역시 “왕비님의 출입은 모두 기록해놓았습니다. 최근에 친정에 간 것이 석달 전인데, 가서 반나절 만에 화가 잔뜩 난채 돌아온게 다 입니다.”

기상궁은 방금 원경릉을 배신한 것만 같은 느낌에 죄책감에 이렇게 말했다. “왕비가 곤장을 맞고 난 뒤에 왕야께서 저희들에게 살펴보지 말라고 하셔서 왕비께서 혼자 상처를 살피셨습니다. 자금탕을 드시기 전에는 열이 제법 났습니다. 지금 자금탕의 효력이 다 떨어졌을텐데, 태상황을 보필하러 궐에 들어가셨으니 그 안에서 얼마나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우문호는 그제서야 원경릉이 황조부에게 죽을 먹일 때 몸을 부들부들 떨었는지 알 수 있었다. 우원호는 원경릉이 걱정되기보다는 그녀가 궁에서 폐를 범해 태상황을 노하게 할까 염려가 되었다.

조용히 있던 탕양이 입을 열었다. “왕야, 사실 곤장 30대는 심하셨습니다. 보통 머슴에게도 서른번은 내리 며칠을 쉬어야 하고, 몸이 약한 하녀같은 경우에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을 정도입니다.

우문호는 차가운 목소리로 “그녀가 한 짓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라고 말했다.

모비가 연루된 일이거나, 황실의 체면을 깎아내리는 일을 저질렀다면 우문호는 당장이라도 원경릉을 내쫓았을 것이다. 기상궁은 용기를 내어 말했다. “왕야, 소인 생각엔 왕비는 뭔가다른 사람이 된 같습니다.”우문호는 기상궁을 향해 눈을 치켜뜨며 말했다. “ 뭐라고?” 기상궁은 “왕비님께서 전에는 조금 거만했습니다. 하지만 열이를 구하려고 할때, 그녀의 말투와 태도가……, 왕비께서 제게 미안하다고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소인이 전에 상상하지도 못할 일이었습니다.

기상궁의 말에 우문호는 자신의 추측에 확신이 생겼다. 궁에 들어가기 전 그녀가 머리를 가까이 대고 조용하게 했던 말이 생각이 났다. “사람을 막다른 곳으로 몰거나 업신여기지 마시오.”그녀는 전혀 이런 말을 할 사람이 아니다. 그녀는 이럴 말을 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하인에게 함부로 굴지만, 우문호에게는 감히 이렇게 방자한 적이 없다. 하지만 그 말을 했다는건, 뭔가 억울하거나 분한 일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측전에서 그녀가 그렇게 반항을 했던 건……

우원호는 그녀의 의연했던 얼굴과 그녀가 측전에서 한 말들이 뇌리에 스쳤다. 이 일이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분명히 밝혀야 한다.

황후의 명봉전 안.

제왕이 들어와서 문안을 한 후, 주명취를 황후 곁에 두고서 여덟번째 동생인 우문록을 찾아보러 갔다. 주명취는 황후의 친정 조카딸이다. 제왕이 떠나자 주명취는 명봉전 안에서 시중을 들던 나인들을 모두 내보냈다.

황후는 그 모습을 보고 무슨 일이 있음을 직감했다. “무슨일인게냐.”

“고모님, 태상황께서 원경릉을 건곤전에 남아 병시중을 들게 하라고 했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황후는 그 전에 돌아와 이 일을 모르고 있었다. “초왕비? 태상황께서 시중을 들라 하였는가?”라고 하며 손사레를 쳤다. “시중들라하지, 며칠 내내 본궁이 왔다갔다 얼마나 힘들었는지 몰라.”

주명취는 얼떨떨한 목소리로 “고모님, 이건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닙니다. 잘 생각해보십시오.”

황후는 웃으며 “본궁은 자네가 두려워하는 이유를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걱정하지마세요. 우문호는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지금 황제는 그를 아주 노여워하고 있으니까요.”

주명취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고모님, 태상황의 의식이 돌아왔습니다. 이제 이전과는 모든게 달라졌습니다.”

황후가 멈칫하더니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생각해보니 태상황은 다섯째인 우문호를 편애하였는데, 만약 이번에 원경릉이 태상황을 정성껏 모신다면, 이는 우문호에게도 기회가 생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황후가 고개를 들어 주명취를 바라보았다. “우문호는 원경릉을 싫어하지 않소?”

주명취가 천천히 웃기 시작했다. “사용 가치가 있는 그 사람이라면 아무리 미워도 곁에 두는 법이지요.”

황후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태후는 오늘 몇번이고 정신을 잃을 뻔 했습니다. 제왕비가 태후를 살뜰이 살펴야 할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주명취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분부 받잡겠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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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금단을 먹고 한시간 가량 잤을까. 깨어난 후 상처의 통증도 많이 줄고 고름도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일어나서 몇 걸음 걸어보았다. 확실히 통증이 줄었다는게 느껴졌다. 희상궁이 문을 열고 들어와서 깨어난 원경릉을 발견했다. “왕비 일어나셨으면 밖에 나와 좀 걷는게 어떠시겠습니까. 자금단을 먹고는 움직이셔야 활력이 생깁니다.” 원경릉은 알겠다고 하고 밖으로 나갔다. “쇤네가 보필하겠습니다.”두 사람이 막 뜰을 지났을 때, 젊은 태감 한 명이 창백한 얼굴로 뛰어오는 것이 보였다. “왕비님, 초왕님께서 서둘러 건곤전으로 오시라 합니다.”희상궁이 그를 붙잡고 물었다. “무슨일이길래 그리 서두르느냐.”“푸바오가 문창탑에서 떨어져 죽기 직전이라고 합니다. 태상황이 아시고 쓰러지셨습니다. 지금 궁안이 아주 난장판입니다.” 태감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희상궁은 깜짝 놀랐다. 태상황은 푸바오를 가족처럼 생각하니 푸바오가 죽게되거나 무슨일이 생긴다면 태상황님은 틀림없이 큰 상실감에 빠지실 것이 뻔했다. 희상궁이 고개를 돌려 원경릉 쪽을 보았다. 원경릉은 성하지 않은 몸을 이끌고, 이미 건곤전으로 향하고 있었다. 원경릉이 도착한 건곤전 안은 이미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황후와 주명취가 바닥에 앉아 있었고 우문호와 제왕은 침상 앞에 있었다. 어의의 손이 정신없이 태상황의 맥을 짚고 있었다. 명원제와 태후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원경릉은 빠르게 우문호 쪽으로 걸어가 고개를 숙여 우문호 귓가에 몇 마디 속삭였다. 그녀는 우문호의 눈을 한번 본 뒤 다시 어의 쪽으로 다가갔다. “어의님, 황조부님은 어떠십니까?” 원경릉이 침상으로 걸어가더니 베개 밑에서 설저환을 꺼내 태상황 혀 밑에 넣었다. 원경릉은 황후와 주명취를 등지고 있었기에 그들은 방금 원경릉이 무엇을 했는지 정확히 볼수 없었다. 하지만, 주명취는 끊임없이 의심의 눈초리로 원경릉을 주시했다. 사실 태상황은 별 일은 없었다. 단지 숨이 가빠져 호흡곤란에 빠졌을 뿐. 어의가 태상황에게 침을 놓자 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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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바오……”우문호는 말을 잇지 못했다.“살릴 수 있어!” 원경릉은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녀가 우문호 쪽으로 천을 한장 던졌다. 이건 방금 전 우문호가 그녀의 상처를 닦던 것이었다. “내가 비장을 꿰매고 있을테니까 당신은 지혈을 해줘요. 태상황께서 푸바오를 얼마나 아끼시는지 알죠? 만약 푸바오가 죽는다면 태상황의 병세가 악화될지도 몰라요.” 우문호는 던져진 천을 주워들며 마스크를 쓴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녀가 마스크를 낀 모습은 참으로 어색했다. 마취, 제모, 절개, 원경릉은 능수능란한 모습으로 신속하게 비장을 찾아냈다. “피를 닦으라니까!” 멀뚱거리는 우문호에게 원경릉이 소리쳤다. 정신을 차린 우문호는 천으로 절개 부분 주위를 닦아냈다. 그의 손에서는 피 비린내가 진동했다. 우문호는 피를 닦으면서 생각했다. ‘이 여자는 이게 무섭지가 않은가?’여기 저기 튀는 피로 그녀의 얼굴, 이마, 눈썹 등 온통 피가 묻어있었다. “혈관이 터졌어요!” 원경릉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먼저 혈관을 봉합해야 해요.” 우문호는 자기도 모르게 천을 꺼내 그녀의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주었다. 그녀의 미간에 뭉친 피자국이 마치 큰 반점처럼 요사스러웠다.“고마워요.” 원경릉은 고개를 숙인채 말했다. 그녀는 혈관을 핀셋으로 살짝 잡고 빠르게 바늘로 봉합을 시작했다. 혈관을 봉합했지만 비장 출혈은 멈추지 않았다. 원경릉의 마음이 급해졌다. “푸바오, 조금만 버텨. 넌 이겨낼 수 있어. 태상황님께서 기다리고 계신다!”우문호는 자신이 개 한마리 때문에 이렇게 조마조마 하고 있다는 것에 어이가 없었다. “이렇게 하면 푸바오가 아프지 않을까?” 우문호는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마취제 투여했어!” 원경릉은 귀찮다는 듯 눈은 푸바오를 응시하며 건성으로 대답했다. “……”우문호는 문득 자신도 예전에 이렇게 마취를 당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문호는 한겹 한겹 푸바오의 살갗을 꿰매고 있는 그녀의 능수능란한 손을 보며 마음 속에 또 수많은 의문이 생겼

  • 명의 왕비   제 30화

    원경릉은 그의 표정에 담긴 의미를 알아차렸다. “당신을 모함하려는 거죠? 당신이 문창탑 위에 있었나요?”우문호는 대꾸도 하지 않고 천천히 앉아 푸바오의 가련한 모습을 보고 분노했다. “나를 모함하려고 했던 사람은 황조부를 해하고 나까지 쳐내려고 했네.” 라고 말하며 냉소를 띄었다. “태상황제가 살아 계시니 반드시 이 일에 대해 조사를 하실겁니다. 다만 제가 걱정이 되는 건 왕야께서 이 일에 관여했다고 생각하실거고 그렇게 된다면 태상황께서 실망하……”원경릉을 차마 마지막 말을 끝맺지 못했다. 그 말은 우문호가 다시는 태자 자리에 오를 수 없게 될 것이라는 말이었다. 우문호는 한동안 말 없이 골똘히 생각을 했다. 그의 낯선 모습에 원경릉은 그를 감히 건드리지도 못하였다. 이런 지저분한 사건에 그녀는 손톱만큼도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우문호가 관여된 자신도 빠져나갈 도리가 없었다. “문창탑에 당신 말고 또 누가 있었습니까?” 우문호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무슨 말을 하려는 거야?” “주명취!” 원경릉이 망설임 없이 내뱉었다. “그 입 다물라!” 우문호의 눈에는 분노가 일었다. “누가 너더러 함부로 입을 놀리라고 했느냐!” 원경릉은 그를 피해 푸바오 곁으로 자리를 옮겨 푸바오의 배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왕야 서둘러 태상황 곁에 가 계십시오. 태상황이 깨어나시면 분명 이 사건을 철저하게 조사하라고 하실겁니다. 지금 가 계시는게 좋습니다.”우문호는 싸늘한 얼굴로 돌아섰다. 원경릉은 푸바오를 보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누군가가 푸바오를 해하려고 했다니. 원경릉은 머릿 속이 복잡했다. ‘푸바오가 안전하려면 태상황 곁에 있어야해’그녀는 푸바오를 이불에 싸서는 건곤전으로 향했다. 이번 일에 대해 태상황이 명을 내릴 것이다. 태상황은 푸바오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푸바오는 높은 곳을 두려워했고, 계단을 내려갈 때에도 다리를 떨었다. 이런 푸바오의 성격 상 문창탑 같이 높은 곳에는 올라갈리가 만무했다. 깨어난 태상황은 이 일에 대해 철저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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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의 왕비   제3205화

    량주는 금나라의 수도가 된 이후 지난 2년간 크게 발전했다. 또한,금나라와 북당이 우호적인 교류를 시작하면서, 북당 변방 도성의 백성들도 장사를 위해 많이 찾아왔다.이전에 택란도 자신의 목숨을 바치기 위해 금나라에 왔었다. 하지만 그때의 량주는 지금처럼 북당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다. 그래서 택란은 객사에 머문 뒤 주 아가씨와 냉명여를 데리고 거리로 나가 량주의 풍습과 문화를 살폈다.여기도 어쨌든 금나라의 수도 아닌가!진국왕은 물러나기 전까지 나라를 잘 다스렸고, 특히 발전에 많은 힘을 기울였다. 하지만 야망이 지나친 탓에 늘 약도성을 되찾겠다고 욕심을 부렸다.그리고 동시에 북막을 두려워하기도 했다.경천이 즉위한 후, 광산 자원 개발 외에도, 그는 농경지와 산지를 개간하려고 노력했다. 금나라의 서북부에는 농사에 적합한 땅이 있었지만, 사람이 드물었다. 그래서 그는 북당의 다른 도성을 본받아 사람들을 개간지로 보내고 그들에게 이익을 나누어주었다.나라가 상승세일 때, 그 분위기는 눈에 띄기 마련이다. 백성의 긍정적인 에너지는 숨길 수 없는 법이었다.택란은 경천이 황제로서 매우 적합하다고 느꼈기에, 그가 이끄는 금나라는 분명 빠르게 발전할 것이라 생각했다. 발전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정말 좋은 일이기에,그가 광산을 함께 개발하자는 제안에 동의할 가능성이 높았다.택란은 이내 자신감을 얻었다. 궁에 들어가 알현하는 것을 서두르지 않고, 량주 백성들이 북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기로 했다. 과거, 약도성과 량주의 관계는 다소 안 좋았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금나라가 약도성에 사람을 침투시켜 많은 폭동을 일으켰기에, 약도성 백성들도 그들을 매우 싫어했다.그렇기에 지난 2년간의 교류를 통해, 택란은 그들의 원한이 천천히 사라지기만을 바란 것이었다.이제 북당 쪽은 문제가 없으니, 량주 백성들의 생각을 확인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기에, 택란은 물건을 사면서 점포 주인과 상인들에게 북당 약도성에 대한 생각을 물어보곤 했다.그 중, 다

  • 명의 왕비   제3204화

    원경릉은 뒤에서 계산을 하고 있었는데, 그들의 대화를 듣고는 웃음을 터뜨렸다.그러고는 사식이가 정말 좋은 남자를 만난 것 같다는 생각을 다시금 했다. 서일이 비록 평범한 사람이긴 하지만, 그의 마음과 눈에는 오직 사식이만 있었다.그야말로 진실한 남편이다.물건을 산 뒤, 서일은 계속 계산기를 두드리며, 여기서 쓴 금액을 북당으로 돌아가 황후에게 얼마만큼의 금으로 바꿔 드려야 할지 열심히 계산했다.계산을 마친 후, 지갑형편이 다소 여유롭다고 느껴지자, 그는 귀걸이와 금팔찌까지 더 구매했다. 이곳의 디자인은 북당보다 훨씬 아름다웠다.한편, 금나라에서는 완안경천이 혼사를 준비하고 있었고, 이웃 나라 사신들도 연이어 축하해주기 위해 도착했다.택란은 냉명여와 주 아가씨를 데리고 량주로 갔는데, 그들이 량주성에 도착하자마자, 누군가가 경천 황제에게 보고했다."폐하, 초상화 속의 아가씨가 이미 도착하여 객사에 머물고 있습니다. 근처에서 감시 중이며, 가까이 다가가 방해하지는 않았습니다."경천 황제는 어서방에 앉아 이 보고를 들으며 눈매를 약간 올리고는, 온화하고 잘생긴 얼굴에 빛을 발했다. "그녀가 왔구나. 마침내 그녀가 왔다!""폐하, 바로 부를까요?""아니. 사람을 보내 그녀를 계속 감시하도록 하거라. 절대 그녀를 놓쳐서는 안 된다."경천 황제 또한 손끝이 떨릴 정도로 감격했다. 수많은 밤, 그는 초상화를 보며 멍하니 그녀가 살아있기를 바라고 또 바랬기 때문이다.그 초상화는 그가 직접 그린 것이었다. 원래 그는 서화에 강하지 않았다. 하지만 화가에게 아무리 설명해도 화가의 그림이 그녀와 닮지 않아, 직접 그림을 배우기 시작한 것이었다.그렇게 늘 마음속에 품고 있던 그녀를 자신의 그림으로 완성했다.그는 그녀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사람을 보내 북당에서 한 부녀를 데려왔다. 그 중 딸이 자신이 란이의 언니라고 주장했지만, 그녀의 얼굴은 택란과 닮은 점이 조금도 없었다. 심지어 분위기도 전혀 닮지 않았다.친자매가 어찌 조금도 비슷한 부분이 없다는

  • 명의 왕비   제3203화

    원경릉은 병실로 돌아간 뒤, 서일을 따로 불러내서 물었다.당시에는 상황이 급박했던 탓에 서일이 어떻게 그 약을 가져왔는지, 약상자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에 대해 전혀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두 번째 약은 어디서 꺼낸 것이냐?"원경릉이 약상자를 열며 묻자, 서일이 약상자 두 번째 칸을 가리켰다."이쪽이였습니다. 그 당시 약이 이미 준비되어 있었고, 주삿바늘에 뚜껑도 씌워져 있었습니다."원경릉은 약을 세 번째 칸에 넣었다는 것을 떠올렸다. 세 번째 칸은 자동으로 수축하는 구조여서, 사용하지 않는 약을 넣고 약상자를 닫는 순간 아래로 내려가게 되어 있었다.반면 두 번째 칸은 평소 사용하는 약으로 꽉 차 있어, 추가로 주사를 넣을 공간조차 없었다.게다가 약상자를 10년 넘게 사용해 온 그녀였기에, 약을 어디에 두는지 몸이 기억할 정도로 익숙했다. 그녀가 약을 잘못 넣었을 가능성은 없다는 뜻이다. 설령 잘못 넣었다 하더라도, 약상자는 위험성을 자동으로 감지하는 기능이 있어, 그 약이 서일 앞에 나타날 리가 없었다.서일은 원경릉의 심각한 표정을 보고, 우문호의 병세가 다시 악화한 줄로 착각하며 구석에 쪼그려 앉아 얼굴을 감싸고 울기 시작했다. 그동안 참고 또 참아왔지만, 이제는 도저히 견딜수가 없었다. 그가 울기 시작하자, 원경릉이 깜짝 놀라 물었다."왜 그래? 설마 또 무슨 약이라도 먹인 것이냐?""아닙니다..."서일은 빨개진 눈에 머리도 헝클어진 채로 원경릉을 바라보며 처량하게 말했다."마마, 폐하께서 아직 낫지 않은 것입니까? 혹시 제가 폐하를 죽게 만든 것입니까?"원경릉은 웃음을 터뜨리며, 서일의 반응 속도가 정말로 느리다고 생각했다."그런 소리 하지 말거라. 그런 일 없다. 그저 사실을 알아보는 것뿐이니, 괜히 걱정하지 말거라. 다섯째도 아주 좋아졌다. 단지 조금 더 검사가 필요할 뿐이다."서일을 안심시키기 위해 그녀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서일은 우문호에게 가서 울며 모든 것을 털어놓았을 것이 뻔했다.

  • 명의 왕비   제3202화

    "다섯째가 예전에 물을 다스리는 술법을 아는 사람한테서 편지를 받은 적 있는데, 혹시 그 편지에 얼음 벌레가 묻어 있었던 건 아닐까요? 그 벌레가 다섯째 몸에 숨어있다가, 수영 후 뭔가에 물려서 생긴 미세한 상처를 통해 몸속으로 들어갔을 수도 있어요.""네, 충분히 가능한 추측이에요!""그리고 요즘 다섯째가 일이 너무 바빠 밤낮없이 일한 탓에 몸 상태도 좋지 않았어요. 면역력이 떨어지고, 폐렴에 비까지 맞아 고열이 났던 데다가, LR까지 잘못 사용했으니..."원경릉은 멈칫하다 약상자를 꺼내고는, 겹겹이 쌓인 약상자 안의 디자인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왜 그래요?"양여혜가 그녀가 멍하니 있는 걸 보고 물었다.원경릉은 폐 치료제를 꺼냈는데, 지금은 쓸 필요가 없는 약이라 다시 약을 넣고 상자를 닫았다. 그리고 다시 열어보니, 그 약은 이미 사라져 있었다. "정말 이상하네요. 제 약상자는 제 통제 외에도 자율적으로 작동이 가능해요. 약을 꺼낸 후 사용하지 않거나, 약상자가 스스로 사용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을 경우 맨 아래 칸으로 내려가요. 그리고 상자를 다시 열어서 직접 꺼내야만 나타나죠. 방금 그 약도 그랬는데, 예전에 제가 LR를 실험용 쥐에게 주사하려고 꺼냈다가 서일이 오는 바람에 약을 다시 넣었거든요? 그럼, 그 약은 원래대로라면 맨 아래 칸으로 내려갔어야 해요. 그런데 서일이 다섯째에게 주사할 때, LR를 바로 꺼냈는데, LR이 내려가지 않았어요."양여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약상자는 확실히 프로그램으로 제어되고 위험성이 높은 약은 자동으로 내려가는 방식이니, 쉽게 꺼낼 수 없어요. 그래서 우문호 씨를 데려와, 시위가 약을 주사했다고 했을 때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급한 상황이라 묻지 않았어요. 그런데 원경릉씨 말을 들으니, 더 신기하네요. 약상자가 이렇게 통제가 불가능하게 된 적이 있었나요?""아니요.""그렇다면 위험한 약은 직접 꺼내야 하거나 본인이 자리에 있어야만 보일 수 있는 거네요?"원경릉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 명의 왕비   제3201화

    밤늦게 연구소에 돌아오자마자 양여혜는 곧바로 원경릉을 사무실로 끌고 들어갔다.“오늘 저도 함께 바닷가에 갔었는데, 우문호 씨의 특별함을 알아차리셨나요?”“혹시… 파도를 통제할 수 있다는 걸 말하는 건가요?”원경릉은 단번에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눈치챘다.“맞아요. 오늘 바람이 그렇게 세지 않아서 큰 파도가 일어날 리가 없어요. 게다가 파도가 일던 순간, 주변에 지나가는 배도 없었어요. 그러니까, 그 파도는 갑자기 생겨난 거예요!”원경릉은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그게 무슨 뜻이죠?”“저도 자세히는 모르지만… 혹시 물을 다스리는 술법에 대해 들어본 적 있나요?”원경릉은 뭔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들어본 적 있어요.”하지만 머릿속이 뒤죽박죽이라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다.“이 힘은 유전자의 돌연변이에서 비롯된 겁니다. 이 능력은 물에 굉장히 민감해요. 마치 약이 병에 민감한 것처럼 말이죠. 그리고 이 능력은 물과 독특한 자기장이 형성돼서, 이 힘을 쓸 때 공기가 진동하면서 물이 그 힘을 따라 움직이게 돼요. 우리 연구소에서도 한 전문가가 이것에 대해 연구한 적 있어요. 결과가 나왔는데, 한번 볼래요?”“좋아요, 보여주세요!”양여혜가 즉시 컴퓨터에서 관련 문서를 열어 보여주자, 원경릉은 자리에 앉아 마우스를 잡고 천천히 결론 보고서를 읽어나갔다. 잠시 후, 그녀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했다.“인간이 어떻게 이런 힘을 통제할 수 있는 거죠? 여기엔 그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네요. 단지 문제를 제기했을 뿐이고요.”양여혜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네. 관찰 사례가 아직 부족하니까요.”원경릉은 그녀의 시선이 부담스러워졌다.“그럼, 혹시 제 남편을 연구하려는 건가요?”“LR 연구에 문제가 있으니, 그건 일단 신경 쓰지 말고. 당신 남편을 집중적으로 연구해 보는 게 어때요?”원경릉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안 된다고 할 수 없겠네요. 제가 항상 그를 지켜보니깐요.”“사실 물을 다스리는 기술을 아는 사람은 몇몇 더 있어요. 도교의 수행자들

  • 명의 왕비   제3200화

    우문호는 바다 위를 질주하며 속도와 스릴을 만끽하고 있었다.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바람이 약해 큰 파도가 일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아쉬움이 가득한 목소리로 크게 외쳤다.“큰 파도 하나 오거라! 파도를 가르며 나아가고 싶구나!”반면, 서일은 조금 멀미가 나는 듯해 우문호의 말을 듣고 답답한 듯 말했다.“큰 파도는 오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소신은 무서울 따름입니다.”하지만 서일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커다란 파도가 일렁이며 다가왔다! 우문호는 제트스키를 타며, 마치 어린아이처럼 신나서 소리쳤다.“가자!”제트스키가 파도를 넘어 멀리 떨어지자, 그가 흥분해하며 크게 외쳤다.“다시 한번! 또 오거라!”이내 또 파도가 일렁이며 다가왔고, 그는 파도를 향해 돌진했다. 제트스키가 공중으로 날아올랐다가 물에 떨어지자 우문호는 짜릿함을 만끽한듯 행복해했다.서일은 거의 기절할 지경이었다. 물에 빠져 죽을 것만 같은 느낌에 그는 몸을 덜덜 떨며 말했다.“폐하, 이제 돌아가시지요. 정말 겁이 나서 죽을 것 같습니다!”“겁쟁이 같으니라고!”우문호는 여전히 즐거운 표정으로 외쳤다.“조금만 더! 이번엔 연달아 파도가 오면 좋겠구나. 그래야 진짜 재밌다!”역시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바다에서 연달아 거대한 파도가 밀려왔다. 우문호는 기쁨에 겨워 서일에게 말했다.“봐라, 온다, 온다! 단단히 잡아라. 물에 빠지면 널 구하지 않을 거다.”서일은 파도가 연달아 밀려오는 모습을 보고 겁에 질려 우문호를 꽉 끌어안으며 아미타불만 중얼거렸다. 자신이 잘못이 있다고 하여도 바다를 제일 싫어하기에, 바다에 빠져 죽고 싶지는 않다고 생각했다.해변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원경릉은 파도가 하나둘씩 우문호에게 몰려가는 것을 보고 문득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아까까지만 해도 잔잔했는데, 왜 갑자기 파도가 치는 것이지?바람도 강하지 않은데 말이다.그녀는 걱정되는 마음에 우문호를 향해 소리쳤다.“그만 놀고 어서 돌아오시오!”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파도 소리에

  • 명의 왕비   제3199화

    양여혜는 급히 전문가 팀을 호출하고, 이전에 LR 프로젝트를 담당했던 사람들도 함께 불러 모았다.하지만 현재 데이터로는 아무런 문제도 발견되지 않았고, 우문호가 계속해서 검사받아야 한다는 결론만 나왔다.그래서 원경릉은 우문호에게 문제없이 돌아갈 수 있도록 확실히 확인하자며, 이곳에 며칠 더 머물도록 설득했다. 우문호가 바로 동의하긴 했지만, 원경릉과 함께 밖에 나가 놀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그도 어쩌다 이곳으로 왔으니, 밖에 나가서 돌아다니고 싶어하는게 당연했다. 그리고 그는 적어도 부모님과 휘종제를 뵈러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원경릉은 연구소를 떠나면 무슨 일이 생길까 걱정했지만, 우문호가 그리 협조적이지 않자, 결국 양여혜와 상의해 하루만 외출하고 돌아와 검사를 계속 받기로 했다.양여혜가 말했다."그럼 가세요. 제가 멀리서 따라가며 만약의 사태에 대비할게요""수고 많으세요."원경릉이 답했다."어쩔 수 없죠. 그의 안전을 확실히 해야 하니까요."양여혜가 말했다.그녀는 잠시 멈칫하다, 원경릉을 위로했다."상태도 좋아 보이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네, 괜찮을 거예요."원경릉도 최대한 낙관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양여혜는 그들에게 차를 준비해 준 후, 집에 있는 부모님을 잠시 들러서 보게 했다.원경릉의 부모님은 이미 퇴직했지만, 다시 병원으로 불려 가, 주 3일 진료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예전만큼 바쁘지는 않았다.그들은 내년 계약이 끝난 후, 세계 여행을 떠날 계획이었다. 그리고 손자를 보기 위해 딸이 있는 곳으로 가서 한동안 지낼 생각이었다.사위와 딸이 돌아오자, 그들은 아주 기뻐하며 식사를 준비했다. 원경릉과 우문호가 바쁜 일정 속에서 시간을 낸 거라, 반나절만 들를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그들은 마음이 아팠다."앞으로는 바빠도 이렇게 급히 돌아오지는 말거라. 식사도 편히 못 하고, 차라리 집에서 푹 쉬어. 우리가 후년에 찾아가마."우문호는 이미 그들을 자기 부모처럼 여겼고, 그들의 걱정스러운 마음을 느끼며 답했다."비록

  • 명의 왕비   제3198화

    원경릉은 결국 그를 설득할 수밖에 없었다."이틀만 더 있지요. 혈액 검사를 한 번 더 해야 하고, 골수를 뽑아 상처도 아프지 않소?"“이미 다 나았네. 만져도 아무 느낌이 없소!”우문호는 당당하게 셔츠를 걷어 올려 상처를 보여줬다. 상처 위에는 아직 의료용 밴드가 붙어 있었기에, 원경릉은 될수록 물에 닿지 않게 그의 몸을 조심히 닦아주었다.“상처에 약을 발라야 하오.”원경릉이 말했다.그렇게 손을 뻗어 밴드를 찢었는데, 순간 화들짝 놀랐다. 상처가 거의 회복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어제 밴드 갈 때는 약간의 피가 고여 있었는데, 이렇게나 빨리 나았다니…?“이렇게나 빨리 나았습니까?”서일도 다가가서 살펴보며 매우 놀라워했다.우문호는 골수를 뽑고 나서, 상처가 아프다고 했는데, 서일은 그의 몸에 작은 구멍이 생긴 것을 보고 무서워했기 때문이다. “그래. 많이 나았다. 이번에 앓고 나니, 오히려 예전보다 정신이 더 맑아 졌다. 서일아, 내 머리 옆에 있던 흰머리도 사라지지 않았느냐?”우문호는 머리를 숙여서 서일이 볼 수 있게 했다.서일은 그의 머리카락을 자세히 살펴본 후, 그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흰머리뿐만 아니라, 눈가 주름도 없어졌습니다. 참 이상합니다. 폐하, 어찌 더 젊어진 것 같습니다. 아닙니까, 마마?”서일의 말을 들은 원경릉은 깜짝 놀라, 우문호를 자세히 살폈다. 그의 피부는 훨씬 더 맑아 졌다. 하지만 병을 앓고 나서 햇빛을 거의 보지 않아서 더욱 그런 것 같았다. 흰머리는 사실 뽑으면 그만이었다. 눈가 주름은 확실히 없어졌고, 피부의 탄력도 예전보다 훨씬 나아 보였다.예전에는 그가 30대 중반이었다고 느껴졌지만, 지금은 처음 그를 만났을 때처럼, 맑은 눈빛과 깔끔한 이목구비를 자랑하는 잘생긴 미남이었다.우문호는 거울을 보곤 갑자기 혼란스러워졌다. 그는 급히 원경릉을 끌어당겨 조용히 물었다.“혹시 휘종제처럼 그런 것을 한 것이오? 리프팅?”“무슨 소리요?”원경릉은 마음을 가라앉히며 웃음도 섞인 말을 했다.“어찌

  • 명의 왕비   제3197화

    다음 날 아침, 우문호는 골수 검사를 마친 후, 전신 검사를 진행했다.검사팀은 야근까지 하며 최대한 결과를 빨리 얻으려 노력했다.그동안 원경릉은 우문호가 걱정할까 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우문호는 어차피 건강을 회복했다고 생각하고 있던 터라, 검사가 좀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서일과 함께 겨룰 수 있을 정도로 몸을 회복했기에 더 이상 문제가 없다고 믿어 마음을 놓고 서일과 함께 패드로 드라마를 시청했다.결과가 나오자마자, 양여혜는 바로 원경릉을 불렀다.“골수의 유전자 검사 결과… 돌연변이가 발견됐어요. 외부 자극이 아닌, 자가 자연 돌연변이에요. 또한, 발가락에 있는 그 덩어리, 조직을 채취해 검사한 결과, 일종의 얼음 벌레와 비슷한 형태였어요. 이 얼음 벌레는 과거 사람 몸에서 발견된 적도 있어요.”“얼음 벌레? 그게 뭐죠?”원경릉은 조금 혼란스러웠다.“하지만 이전엔… 그 덩어리에서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하지 않았나요?”“처음엔 발견되지 않았죠. 하지만 주진 씨가 조직을 채취해 검사를 해보니, 그 얼음 벌레와 비슷한 결과가 나왔어요. 생명력이 굉장히 강하고 벌레라고는 하지만 사실 세균이죠. 이 얼음 벌레가 어떻게 번식하는지, 혹은 이 얼음 벌레가 그의 혈액 생성 기능에 영향을 주어 혈소판 수치를 낮추었는지는 아직 모르고, 더 많은 데이터가 필요해요. 그래서 우리는 이 얼음 벌레 세균을 배양해서 더 나은 발견을 할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어요. 그 후에가 되서야 어떻게 억제하는지, 죽일 수 있을지 알게 될 거예요.”“이 얼음 벌레는 얼음 속에서 사는 건가요? 하지만 그가 물린 곳은 호수였잖아요.”“아니요, 이 얼음 벌레는 처음 발견된 곳은 얼음 속이었지만, 여러 곳에서 살거나 휴면 상태로 있을 수 있어요. 사람의 몸에 들어가는 기회를 엿보죠. 예를 들어 손으로 얼음 벌레를 만지거나, 작은 상처로 침투할 수 있죠. 하지만 이 얼음 벌레에 대한 많은 정보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어요. 우리는 이 분야의 전문가와 이미 연락을 취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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