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바오……”우문호는 말을 잇지 못했다.“살릴 수 있어!” 원경릉은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녀가 우문호 쪽으로 천을 한장 던졌다. 이건 방금 전 우문호가 그녀의 상처를 닦던 것이었다. “내가 비장을 꿰매고 있을테니까 당신은 지혈을 해줘요. 태상황께서 푸바오를 얼마나 아끼시는지 알죠? 만약 푸바오가 죽는다면 태상황의 병세가 악화될지도 몰라요.” 우문호는 던져진 천을 주워들며 마스크를 쓴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녀가 마스크를 낀 모습은 참으로 어색했다. 마취, 제모, 절개, 원경릉은 능수능란한 모습으로 신속하게 비장을 찾아냈다. “피를 닦으라니까!” 멀뚱거리는 우문호에게 원경릉이 소리쳤다. 정신을 차린 우문호는 천으로 절개 부분 주위를 닦아냈다. 그의 손에서는 피 비린내가 진동했다. 우문호는 피를 닦으면서 생각했다. ‘이 여자는 이게 무섭지가 않은가?’여기 저기 튀는 피로 그녀의 얼굴, 이마, 눈썹 등 온통 피가 묻어있었다. “혈관이 터졌어요!” 원경릉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먼저 혈관을 봉합해야 해요.” 우문호는 자기도 모르게 천을 꺼내 그녀의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주었다. 그녀의 미간에 뭉친 피자국이 마치 큰 반점처럼 요사스러웠다.“고마워요.” 원경릉은 고개를 숙인채 말했다. 그녀는 혈관을 핀셋으로 살짝 잡고 빠르게 바늘로 봉합을 시작했다. 혈관을 봉합했지만 비장 출혈은 멈추지 않았다. 원경릉의 마음이 급해졌다. “푸바오, 조금만 버텨. 넌 이겨낼 수 있어. 태상황님께서 기다리고 계신다!”우문호는 자신이 개 한마리 때문에 이렇게 조마조마 하고 있다는 것에 어이가 없었다. “이렇게 하면 푸바오가 아프지 않을까?” 우문호는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마취제 투여했어!” 원경릉은 귀찮다는 듯 눈은 푸바오를 응시하며 건성으로 대답했다. “……”우문호는 문득 자신도 예전에 이렇게 마취를 당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문호는 한겹 한겹 푸바오의 살갗을 꿰매고 있는 그녀의 능수능란한 손을 보며 마음 속에 또 수많은 의문이 생겼
원경릉은 그의 표정에 담긴 의미를 알아차렸다. “당신을 모함하려는 거죠? 당신이 문창탑 위에 있었나요?”우문호는 대꾸도 하지 않고 천천히 앉아 푸바오의 가련한 모습을 보고 분노했다. “나를 모함하려고 했던 사람은 황조부를 해하고 나까지 쳐내려고 했네.” 라고 말하며 냉소를 띄었다. “태상황제가 살아 계시니 반드시 이 일에 대해 조사를 하실겁니다. 다만 제가 걱정이 되는 건 왕야께서 이 일에 관여했다고 생각하실거고 그렇게 된다면 태상황께서 실망하……”원경릉을 차마 마지막 말을 끝맺지 못했다. 그 말은 우문호가 다시는 태자 자리에 오를 수 없게 될 것이라는 말이었다. 우문호는 한동안 말 없이 골똘히 생각을 했다. 그의 낯선 모습에 원경릉은 그를 감히 건드리지도 못하였다. 이런 지저분한 사건에 그녀는 손톱만큼도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우문호가 관여된 자신도 빠져나갈 도리가 없었다. “문창탑에 당신 말고 또 누가 있었습니까?” 우문호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무슨 말을 하려는 거야?” “주명취!” 원경릉이 망설임 없이 내뱉었다. “그 입 다물라!” 우문호의 눈에는 분노가 일었다. “누가 너더러 함부로 입을 놀리라고 했느냐!” 원경릉은 그를 피해 푸바오 곁으로 자리를 옮겨 푸바오의 배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왕야 서둘러 태상황 곁에 가 계십시오. 태상황이 깨어나시면 분명 이 사건을 철저하게 조사하라고 하실겁니다. 지금 가 계시는게 좋습니다.”우문호는 싸늘한 얼굴로 돌아섰다. 원경릉은 푸바오를 보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누군가가 푸바오를 해하려고 했다니. 원경릉은 머릿 속이 복잡했다. ‘푸바오가 안전하려면 태상황 곁에 있어야해’그녀는 푸바오를 이불에 싸서는 건곤전으로 향했다. 이번 일에 대해 태상황이 명을 내릴 것이다. 태상황은 푸바오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푸바오는 높은 곳을 두려워했고, 계단을 내려갈 때에도 다리를 떨었다. 이런 푸바오의 성격 상 문창탑 같이 높은 곳에는 올라갈리가 만무했다. 깨어난 태상황은 이 일에 대해 철저하게
탑에서 떨어진 푸바오와 자금단“그러면 왕야께서 문창탑(文昌塔)을 떠나실 때 푸바오가 따라 나왔습니까?” 구사가 물었다.우문호는 고개를 저으며, “그땐 신경을 안 써서 모르겠네.”“너는 태생이 명민하고, 아바마마가 푸바오를 얼마나 아끼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터인데, 정녕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명원제의 이 말은 정곡을 찔렀다. 옛날 우문호가 태상황의 환심을 사려고 강아지를 어르던 것을 기억하고 하는 말이다. 분위기가 일순간 얼어붙어 태후조차 당황할 정도였다.태후가 말하길: “됐다, 개 한 마리 때문에 자식에게 화풀이해서 무엇 하겠느냐, 다섯째가 데려갔다 치더라도 어쨌든 다섯째가 개를 던진 건 아니니 않느냐, 다섯째와 푸바오 사이도 아직 좋고 말이다.”태후는 명원제의 마음에 다른 생각이 싹 트고 있는 줄은 꿈에도 알지 못했다. 그저 명원제가 중요한 걸 예사로 처리하는 게 아닌가 싶었지만 고작 개 한 마리때문에 태상황의 비위를 맞추려고 취조를 하게 되면 이 많은 사람들 면전에서 다섯째의 체면이 뭐가 되겠는가?태후는 명원제가 말없이 얼굴빛이 어두운 것을 보고 태상황 쪽을 돌아보며: “태상황 폐하, 뭐라고 말 좀 해보세요. 푸바오가 죽었어요. 푸바오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지만, 친왕에게 벌이라도 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태상황은 우문호를 보며, “네가 간 뒤에 또 누가 문창탑에 갔는냐?”우문호의 눈에 한 줄기 의심의 빛이 스쳤으나, “할바마마의 하문에 답하기로, 없었습니다.”원경릉은 안으로 들어오다 태상황의 질문과 우문호의 대답을 듣고, 문창탑에 다른 사람이 있었던 게 틀림없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우문호가 지키려는 사람이다. 원경릉은 둘러보니 주명취는 황후의 곁에 서 있다. 손을 늘어뜨리고 서서 우문호가 답하는 것을 듣고 분명 눈꼬리를 움찔거렸다. 상선은 눈이 예리해서 원경릉이 이불을 안고 있는 것을 보고 그 이부자리가 푸바오의 것이며, 핏자국이 얼룩진 것이 심상치 않다고 여겼다. 초왕비는 또 무슨 일인가? 태상황
태상황과의 독대내전 사람은 전부 나가고 태상황이 상선을 마뜩찮게 쳐다본다. 어째 나무토막처럼 움직이지도 않나 그래? 즐기는 것도 없나?상선은 원망의 눈초리로 원경릉을 흘끔 쳐다봤다. 초왕비가 입궁한 이래 상선은 태상황 곁에 설자리가 없고 원경릉과 초왕이 푸다오를 살려내는 걸 지켜보고 있을 뿐이라니, 아니다, 푸념은 그만두자.상선이 문 밖을 지키는 궁인들을 내쫓자 내전은 일순간 조용해졌다.태상화은 원경릉을 위 아래로 훑어보더니 “푸바오 배에 있는 건 무엇이냐?”“….수…..수컷지네….인가봐요!” 원경릉이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대답했다.방금 전 다른 사람들은 푸다오의 배를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했는데, 그것이, 푸다오의 전신이 피투성이였기 때문이다.오직 진정을 푸다오를 사랑하는 주인만은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었다.“이실직고 하지 못하겠느냐? 다섯째를 데려다 문초를 해야 사실을 말할테냐?” 태상황이 엄하게 꾸짖는다.초왕을 문초하는 게 원경릉이랑 무슨 상관인가? 솔직히 문초가 아니라 아예 곤장을 그냥, 삼십대 때려주면 딱 통쾌할 텐데 말이다.하지만 태상황이 준엄한 눈빛 앞에서 감히 그렇게 말할 순 없었다. “푸다오는 비장이 파열되어, 배를 열어 꿰매야 했습니다, 여기 보시는 것처럼 지네 같은 자국은 봉합한 자리입니다.”태상황은 입을 다물고 도대체 이걸 어떻게 한 건지 묻고 싶지만 존엄한 체면상 물어보지도, 이런 치료 방식을 한번도 본적이 없다는 말도 할 수 없었다.“자금단은 누가 먹었느냐?” 태상황이 물었다.원경릉은 “제가 먹었습니다.”“다섯째가 너한테 제법 하는구나.” 태상황은 고개를 끄덕였다.원경릉은 이 말에 동의할 수 없는 걸 이해해 주길 바란다. 걸핏하면 매질을 하고, 따귀를 갈겨 대는 게 제법 하는 거라고?“상처는 어쩌다 생긴 것이냐?” 태상황이 다시 물었다.이번엔 원경릉도 감히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 “어쩌다 넘어졌습니다.”“바른대로 입을 열지 않으면 매를 들 수 밖에, 아직 매가 모자란 모양이구나.” 태상황이 코웃음을 쳤
두 여자의 대결원경릉은 고개를 흔들며, “모르겠어요.”“잘 봐라, 마음을 최대한 차분하게 하고, 눈은 예리하게, 그러면 온갖 잡귀가 서서히 드러날 게다. 야심은 감출 수 없는 법이지, 보면 알게 될 게야. 과인이 이제서야 너에게 그들을 대처할 방법을 말해주는구나.”원경릉은 사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누가 사람이고 누가 귀신인줄 알면서 왜 손을 안 쓰세요?”“왜냐면 귀신은 한 번 없앨 때 완전히 뿌리까지 뽑지 않으면, 원래 사람이던 존재도 서서히 귀신으로 변하지, 야심이 인간의 본심을 집어 삼키는 거지. 하지만 과인이 이미 한 쪽 발을 관에 넣고 있는 몸이라 힘이 없구나, 그들은 전부 우문 집안의 사람이야, 과인의 후손이지. 하나를 죽일 때마다 상처가 하나씩 생기지.”태상황은 이 말을 마치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원경릉은 이 말이 뭔가 슬퍼졌다. 그는 조정의 태상황이란 최고 존엄의 위치면서도 자기 사람을 해치는 자조차 마음대로 처리할 수 없다니 안타깝다.“다섯째는 총명한 녀석인데, 눈이 멀었어!” 태상황은 운을 감고 또 중얼거렸다.원경릉은 태상황의 이불을 당겨 덮어주며, “주무세요.”태상황은 갑자기 눈을 떠 원경릉의 손목을 쥐고, “과인은 네 의술로 그 녀석이 눈을 뜰 수 있게 해 주길 원하네.”원경릉은 태상황의 애타는 눈빛을 보며, “마음의 눈이 멀은 걸요, 화타가 살아와도 못 고쳐요.”태상황은 다시 눈을 감는 게 그녀의 말에 동의하는 게 분명하다.잠시 후, 가볍게 코고는 소리가 들리더니 태상황이 잠이 들었다.푸바오는 깨어나 기지개를 켜더니 멍멍 짖는다.원경릉은 쪼그리고 앉아 푸바오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해줘, 누가 널 다치게 했어?”푸바오는 멍멍멍 3번 짖는데 그건 사람 이름이다, 원경릉은 알아 들었다.“잘 했어, 걱정하지마, 괜찮아, 그 여자는 너 못 괴롭혀.” 푸바오를 달랜다.푸바오는 원경릉의 손을 핥는데 극도로 의지하는 눈빛이다.얼마 있다가 원경릉은 밖으로 나가자 상선이 밖에서 시립하고 있다.“할바마마께서
사자대면, 주명취의 간계하지만 원경릉은 차분하게 서있을 뿐 털끝만큼도 동요하는 기색이 없다, 심지어 전혀 개의치 않는 것 같다.주명취는 믿을 수 없어 계속 도발했다, “너 왜 그 사람이 나랑 이런 얘기를 했는지 알고 싶지 않아?”원경릉은 주명취의 팔목을 홱 낚아 채서 그녀를 안으로 끌고 들어가며, “알고 싶어, 하지만 넷이 앉아 얘기하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원경릉은 우문호와 제왕이 안에 있는 게 틀림없다고 생각하고, 현재 이해하고 있는 상황을 종합해 볼 때 제왕 부부가 우문호를 찾은 목적을 그도 알고 있다. 그래서 주명취가 문 앞에 서서 안에 안 들어가는 것이다.원경릉을 보아하니 지난 일을 들먹여 도발한 게 먹혀 든 모양이다. 다시는 궁에 남아 태상황에게 접근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이 손 놔!” 주명취는 원경릉이 이렇게 나올 거라고 상상도 못하고 대경실색해 새끼 손가락에 달린 침으로 원경릉의 손목을 죽 그었다. 원경릉이 놀라 손을 놓게 할 심산이었다.원경릉은 어릴 때부터 집요한 성격으로 하겠다고 마음 먹으면 반드시 목숨을 걸고서라도 해내고야 말았다. 그대로 안으로 들어가는데 선혈이 뚝뚝 떨어지고 바닥엔 석류꽃처럼 핏자국이 생겼다.“초왕 전하, 제왕 전하!” 원경릉은 될 대로 되라지 하는 마음으로 예의 차릴 틈도 없이 바로 주명취를 끌어다 의자에 앉히고, 자신은 손수건을 상처에 묶으며 “제왕비께서 여러분께 하실 말씀이 있으시답니다.” 하는 말을 잊지 않았다.우문호는 원경릉이 주명취를 거칠게 대하는 것을 보고 얼굴빛이 흐려지며 “이게 무슨 짓이야?”주명취는 방금전까지 낭패한 기색이었지만, 앉고 나서 바로 얼굴색을 바꾸고 담담하게 원경릉을 바라보았다.주명취는 방금 원경릉이 한 말이 결코 좋은 뜻에서 한 것이 아니란 걸 알았지만 여기엔 초왕 혼자 있는 게 아니라 제왕도 같이 있다. 하지만 배운 사람이라면 규방에서의 남녀의 일을 입 밖에 낼 리 없다. 그런데 틀렸다. 원경릉은 손목을 감싸 쥐고 고개를 들어 초왕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방금
서원각에 원경릉과 우문호원경릉이 이 상황을 전부 지켜보며, 어찌나 웃기던지 조금도 화가 나질 않았다.미인이 한 마디가 자기의 천만 마디를 제압해 버리다니.하지만 우문호의 타오르던 분노가 서서히 가라앉으며 결국 눈빛이 차분해지며 제왕에게 “너희 먼저 가거라.”“응, 우리 먼저 갈게. 형도 화내지 마. 몹쓸 소리 들은 셈 치고.” 제왕은 우문호가 궁에서 왕비를 때리는 불상사가 일어날까 두려웠다. 만약 그 일이 아바미마에게 알려지는 날엔 수습하기 어렵다.말을 마친 제왕은 주명취의 손을 끌고 나갔다.주명취는 정말 피를 토할 심정이다. 지금 간다고? 해명이 아직 안 끝났는데?주명취는 어쩔 수 없이 몸을 돌려 우문호를 바라보며 울먹이듯 “왕야께서 제 결백을 밝혀주세요.”우문호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너희 먼저 가보거라.”주명취는 확실히 보증 받지 못해 속이 답답하고 열불이 났지만 다시 연기를 할 시기를 놓치는 바람에 제왕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주명취는 고개를 돌려 감히 원경릉을 쳐다보지도 못했다.우문호는 고개를 돌려 손에 비녀를 꼭 쥐고 있는 원경릉을 바라봤다. 비녀가 풀어져 두 갈래로 늘어뜨려진 머리에 이마는 땀방울이 맺히고, 눈꼬리에 머리카락이 몇 가닥 붙어 봉황 같은 눈매가 드러난다.“다가 오지마!” 원경릉은 비녀를 꼬나 쥐고 우문호를 노려보며 “사람 무시하지마, 난 너 하나도 안 무서워.”원경릉은 우문호가 다시 손찌검을 하면 상대는 안되더라도 상처라도 입혀야 겠다고 이미 마음을 굳게 먹었다.우문호는 원경릉에게 다가가 원경릉의 반격에 놀랐다. 그게 비녀로 우문호의 팔뚝을 찌른 것이다.비녀가 꽂혔다.그녀는 젖 먹던 힘을 다했다.비녀가 꽂히니 그녀 자신도 놀랐다. 흉기로 사람을 다치게 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선혈이 우문호의 흰 옷에서 흘러나와 번지더니 잠시후 손바닥만하게 핏자국이 생겼다.놀라서 손발을 꼼짝도 못하는 원경릉을 보며 우문호는 푸바오를 치료할 때는 상처에 손을 넣어 능숙하게 봉합하던 사람이랑 지금 이 사람이 같은 사람
건곤전에서 태상황 곁에 있는 원경릉우문호는 젓가락을 들고 이미 식은 요리를 들며 원경릉에게, “싸우게? 먹고 힘을 내야 싸우지.”원경릉은 자신이 착각했다는 걸 알고 머쓱해 하며 주섬주섬 비녀를 다시 머리에 꽂고 앉았다.배가 등가죽에 붙을 수밖에 없는게, 여기 와서 원경릉은 쭉 배를 골았다.언제든 싸울 수 있게 경계 태세를 늦추지 않고 한 입에 쓸어 넣듯 후다닥 먹어 치웠다.그런데 우문호는 세월아 네월아 천천히 먹고 있다. 표정은 여전히 침울하지만 전체적으로 차분한데 이런 고요함은 마치 태풍전야 같은 기분이다.원경릉은 마음을 졸이며 밥을 다 먹고, 병풍 뒤로 가서 스스로에게 주사를 놓고 약을 먹었다.천으로 만든 병풍은 그림자가 비쳐 보여서 우문호는 그녀가 안에서 뭘 하는지 사실 다 알 수 있었다. 요 며칠 사태는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 원경릉의 변화가 국면의 변화를 가져온 것을 똑똑히 봤다.우문호는 다시금 소용돌이에 빠졌다.바람직한 일은 아니지만, 할바마마가 좋아지신다면 상관없다.원경릉의 변화는 초왕부로 돌아가 천천히 조사하기로 하자, 원경릉은 역모는 일으킬 주제가 못된다.원경릉은 주사를 놓고 약을 입에 넣고 찬물로 약을 넘겼다.우문호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보며, “침전에 돌아가서 기다려, 아무것도 상관 안하고 안 물을 테니, 너도 변명 늘어놓지 말고, 짐은 이제 출궁한다.”원경릉은 우문호의 태도가 급변한 이유가 짐작가지 않는게 왠지 안 좋은 생각이 들었다.뻔뻔하게 “상처 내가 싸매 줄게.” 하다가 나한테 한 짓을 떠올리고, 속에 없는 말 하지말자고 생각했다.우문호는 고개를 저으며, 돌아서 나갔다.원경릉은 그의 뒷모습을 보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밥 안 먹고 그냥 가는게 훨씬 더 자연스러운데 왜 굳이 먹고 갔을까, 게다가 원경릉이 방금 우문호 마음 속의 그녀 주명취를 그딴 식으로 대했는데 우문호가 이대로 물러선다고?우문호가 뺨을 때리려고 손을 올린 그 순간을 떠올리면 눈 앞에 빙빙 돌고 공포스럽기까지 하다.우문호의 그림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