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여자의 대결원경릉은 고개를 흔들며, “모르겠어요.”“잘 봐라, 마음을 최대한 차분하게 하고, 눈은 예리하게, 그러면 온갖 잡귀가 서서히 드러날 게다. 야심은 감출 수 없는 법이지, 보면 알게 될 게야. 과인이 이제서야 너에게 그들을 대처할 방법을 말해주는구나.”원경릉은 사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누가 사람이고 누가 귀신인줄 알면서 왜 손을 안 쓰세요?”“왜냐면 귀신은 한 번 없앨 때 완전히 뿌리까지 뽑지 않으면, 원래 사람이던 존재도 서서히 귀신으로 변하지, 야심이 인간의 본심을 집어 삼키는 거지. 하지만 과인이 이미 한 쪽 발을 관에 넣고 있는 몸이라 힘이 없구나, 그들은 전부 우문 집안의 사람이야, 과인의 후손이지. 하나를 죽일 때마다 상처가 하나씩 생기지.”태상황은 이 말을 마치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원경릉은 이 말이 뭔가 슬퍼졌다. 그는 조정의 태상황이란 최고 존엄의 위치면서도 자기 사람을 해치는 자조차 마음대로 처리할 수 없다니 안타깝다.“다섯째는 총명한 녀석인데, 눈이 멀었어!” 태상황은 운을 감고 또 중얼거렸다.원경릉은 태상황의 이불을 당겨 덮어주며, “주무세요.”태상황은 갑자기 눈을 떠 원경릉의 손목을 쥐고, “과인은 네 의술로 그 녀석이 눈을 뜰 수 있게 해 주길 원하네.”원경릉은 태상황의 애타는 눈빛을 보며, “마음의 눈이 멀은 걸요, 화타가 살아와도 못 고쳐요.”태상황은 다시 눈을 감는 게 그녀의 말에 동의하는 게 분명하다.잠시 후, 가볍게 코고는 소리가 들리더니 태상황이 잠이 들었다.푸바오는 깨어나 기지개를 켜더니 멍멍 짖는다.원경릉은 쪼그리고 앉아 푸바오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해줘, 누가 널 다치게 했어?”푸바오는 멍멍멍 3번 짖는데 그건 사람 이름이다, 원경릉은 알아 들었다.“잘 했어, 걱정하지마, 괜찮아, 그 여자는 너 못 괴롭혀.” 푸바오를 달랜다.푸바오는 원경릉의 손을 핥는데 극도로 의지하는 눈빛이다.얼마 있다가 원경릉은 밖으로 나가자 상선이 밖에서 시립하고 있다.“할바마마께서
사자대면, 주명취의 간계하지만 원경릉은 차분하게 서있을 뿐 털끝만큼도 동요하는 기색이 없다, 심지어 전혀 개의치 않는 것 같다.주명취는 믿을 수 없어 계속 도발했다, “너 왜 그 사람이 나랑 이런 얘기를 했는지 알고 싶지 않아?”원경릉은 주명취의 팔목을 홱 낚아 채서 그녀를 안으로 끌고 들어가며, “알고 싶어, 하지만 넷이 앉아 얘기하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원경릉은 우문호와 제왕이 안에 있는 게 틀림없다고 생각하고, 현재 이해하고 있는 상황을 종합해 볼 때 제왕 부부가 우문호를 찾은 목적을 그도 알고 있다. 그래서 주명취가 문 앞에 서서 안에 안 들어가는 것이다.원경릉을 보아하니 지난 일을 들먹여 도발한 게 먹혀 든 모양이다. 다시는 궁에 남아 태상황에게 접근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이 손 놔!” 주명취는 원경릉이 이렇게 나올 거라고 상상도 못하고 대경실색해 새끼 손가락에 달린 침으로 원경릉의 손목을 죽 그었다. 원경릉이 놀라 손을 놓게 할 심산이었다.원경릉은 어릴 때부터 집요한 성격으로 하겠다고 마음 먹으면 반드시 목숨을 걸고서라도 해내고야 말았다. 그대로 안으로 들어가는데 선혈이 뚝뚝 떨어지고 바닥엔 석류꽃처럼 핏자국이 생겼다.“초왕 전하, 제왕 전하!” 원경릉은 될 대로 되라지 하는 마음으로 예의 차릴 틈도 없이 바로 주명취를 끌어다 의자에 앉히고, 자신은 손수건을 상처에 묶으며 “제왕비께서 여러분께 하실 말씀이 있으시답니다.” 하는 말을 잊지 않았다.우문호는 원경릉이 주명취를 거칠게 대하는 것을 보고 얼굴빛이 흐려지며 “이게 무슨 짓이야?”주명취는 방금전까지 낭패한 기색이었지만, 앉고 나서 바로 얼굴색을 바꾸고 담담하게 원경릉을 바라보았다.주명취는 방금 원경릉이 한 말이 결코 좋은 뜻에서 한 것이 아니란 걸 알았지만 여기엔 초왕 혼자 있는 게 아니라 제왕도 같이 있다. 하지만 배운 사람이라면 규방에서의 남녀의 일을 입 밖에 낼 리 없다. 그런데 틀렸다. 원경릉은 손목을 감싸 쥐고 고개를 들어 초왕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방금
서원각에 원경릉과 우문호원경릉이 이 상황을 전부 지켜보며, 어찌나 웃기던지 조금도 화가 나질 않았다.미인이 한 마디가 자기의 천만 마디를 제압해 버리다니.하지만 우문호의 타오르던 분노가 서서히 가라앉으며 결국 눈빛이 차분해지며 제왕에게 “너희 먼저 가거라.”“응, 우리 먼저 갈게. 형도 화내지 마. 몹쓸 소리 들은 셈 치고.” 제왕은 우문호가 궁에서 왕비를 때리는 불상사가 일어날까 두려웠다. 만약 그 일이 아바미마에게 알려지는 날엔 수습하기 어렵다.말을 마친 제왕은 주명취의 손을 끌고 나갔다.주명취는 정말 피를 토할 심정이다. 지금 간다고? 해명이 아직 안 끝났는데?주명취는 어쩔 수 없이 몸을 돌려 우문호를 바라보며 울먹이듯 “왕야께서 제 결백을 밝혀주세요.”우문호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너희 먼저 가보거라.”주명취는 확실히 보증 받지 못해 속이 답답하고 열불이 났지만 다시 연기를 할 시기를 놓치는 바람에 제왕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주명취는 고개를 돌려 감히 원경릉을 쳐다보지도 못했다.우문호는 고개를 돌려 손에 비녀를 꼭 쥐고 있는 원경릉을 바라봤다. 비녀가 풀어져 두 갈래로 늘어뜨려진 머리에 이마는 땀방울이 맺히고, 눈꼬리에 머리카락이 몇 가닥 붙어 봉황 같은 눈매가 드러난다.“다가 오지마!” 원경릉은 비녀를 꼬나 쥐고 우문호를 노려보며 “사람 무시하지마, 난 너 하나도 안 무서워.”원경릉은 우문호가 다시 손찌검을 하면 상대는 안되더라도 상처라도 입혀야 겠다고 이미 마음을 굳게 먹었다.우문호는 원경릉에게 다가가 원경릉의 반격에 놀랐다. 그게 비녀로 우문호의 팔뚝을 찌른 것이다.비녀가 꽂혔다.그녀는 젖 먹던 힘을 다했다.비녀가 꽂히니 그녀 자신도 놀랐다. 흉기로 사람을 다치게 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선혈이 우문호의 흰 옷에서 흘러나와 번지더니 잠시후 손바닥만하게 핏자국이 생겼다.놀라서 손발을 꼼짝도 못하는 원경릉을 보며 우문호는 푸바오를 치료할 때는 상처에 손을 넣어 능숙하게 봉합하던 사람이랑 지금 이 사람이 같은 사람
건곤전에서 태상황 곁에 있는 원경릉우문호는 젓가락을 들고 이미 식은 요리를 들며 원경릉에게, “싸우게? 먹고 힘을 내야 싸우지.”원경릉은 자신이 착각했다는 걸 알고 머쓱해 하며 주섬주섬 비녀를 다시 머리에 꽂고 앉았다.배가 등가죽에 붙을 수밖에 없는게, 여기 와서 원경릉은 쭉 배를 골았다.언제든 싸울 수 있게 경계 태세를 늦추지 않고 한 입에 쓸어 넣듯 후다닥 먹어 치웠다.그런데 우문호는 세월아 네월아 천천히 먹고 있다. 표정은 여전히 침울하지만 전체적으로 차분한데 이런 고요함은 마치 태풍전야 같은 기분이다.원경릉은 마음을 졸이며 밥을 다 먹고, 병풍 뒤로 가서 스스로에게 주사를 놓고 약을 먹었다.천으로 만든 병풍은 그림자가 비쳐 보여서 우문호는 그녀가 안에서 뭘 하는지 사실 다 알 수 있었다. 요 며칠 사태는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 원경릉의 변화가 국면의 변화를 가져온 것을 똑똑히 봤다.우문호는 다시금 소용돌이에 빠졌다.바람직한 일은 아니지만, 할바마마가 좋아지신다면 상관없다.원경릉의 변화는 초왕부로 돌아가 천천히 조사하기로 하자, 원경릉은 역모는 일으킬 주제가 못된다.원경릉은 주사를 놓고 약을 입에 넣고 찬물로 약을 넘겼다.우문호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보며, “침전에 돌아가서 기다려, 아무것도 상관 안하고 안 물을 테니, 너도 변명 늘어놓지 말고, 짐은 이제 출궁한다.”원경릉은 우문호의 태도가 급변한 이유가 짐작가지 않는게 왠지 안 좋은 생각이 들었다.뻔뻔하게 “상처 내가 싸매 줄게.” 하다가 나한테 한 짓을 떠올리고, 속에 없는 말 하지말자고 생각했다.우문호는 고개를 저으며, 돌아서 나갔다.원경릉은 그의 뒷모습을 보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밥 안 먹고 그냥 가는게 훨씬 더 자연스러운데 왜 굳이 먹고 갔을까, 게다가 원경릉이 방금 우문호 마음 속의 그녀 주명취를 그딴 식으로 대했는데 우문호가 이대로 물러선다고?우문호가 뺨을 때리려고 손을 올린 그 순간을 떠올리면 눈 앞에 빙빙 돌고 공포스럽기까지 하다.우문호의 그림자는
태상황은 어떤 사람?침대 옆에는 이미 부드러운 방석이 깔려 있었는데 원경릉이 무릎 꿇고 앉기 편하게 하라고 해 둔 것이다.태상황은 원경릉이 상처로 앉지 못하는 것을 알고 무릎 꿇고 있는 것이 가장 편하니 방석을 준비해 두라고 상선에게 시켰던 것이다.원경릉은 무릎을 꿇고 앉았다. 궁에서 병수발을 든 지 사흘째, 태상황의 성격을 아는데, 정신이 좀 있으면 사람을 훈계하려 들고 다른 사람의 반박이나 변명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다.아, 또 시작이다.“지금 과인이 은인자중 하라고 한 것이 널 엿 멋이는 거라고 생각하는 거 아니냐?”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아니요. 그렇게 생각 안 해요.”“아니라고? 분명 엿 먹인다고 생각 했어. 내 말에 승복을 못하겠거든 어디 한 번 얘기해 봐라. 그냥 넘어갈 수야 없지.”원경릉은 진짜 이 정도로 유치하진 않다. 그래서 진지하게 고개를 흔들며 “정말 그렇게 생각 안해요.”태상황은 손등으로 침대 가장자리를 두드리며 언성을 높으며, “두려울 게 뭐가 있어? 다들 그렇게 생각하겠지, 젊었을 땐 나도 그랬으니까, 과인이 수없이 많은 실패를 경험하고 서야 깨달은 이치야. 네가 힘이 있을 땐 불공평한 일이 있으면 뭐든 다 말할 수 있지, 하지만 힘이 없을 땐 사람들이 개똥을 먹이면 잠자코 먹어야 하는 거야.”“……예!” 원경릉은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게 딱 영혼 없이 설교를 듣는 모양이다.“또 귀담아 안 듣지?” 태상황이 눈꼬리를 치켜 떴다.‘고개를 든 원경릉의 눈빛은 일말의 반항의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 솔직 그 자체에, 온순하고 말 잘 듣는 아기 토끼 같은데, 도대체 어떻게 귀담아 안 듣는 걸 알아차렸지?“진짜예요!”라고 말하며 바깥을 내다보니 여러 친왕들이 전부 오고 있다. 어째서 우문호는 안 보이는 거지? 사실 우문호가 오길 조금도 바라지 않지만 말이다.태상황은 원경릉이 건성으로 대답하는 것을 보고, 얼굴을 붉으락푸르락 하며 “어른 말씀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나와, 훗날 과인의 말이 옛 성현의 가르침보다 낫다는
한밤중에 몰래 궁을 빠져나가다석양이 뉘엿거리도록 우문호는 입궁하지 않았다.원경릉은 마음이 조금 불안해졌다. 하루가 이렇게 순탄하게 지나간 건 이 세계로 와서 처음이다. 저녁때 푸바오의 상처를 소독하고 나자 상선은 원경릉에게 서난각에 가서 쉬라고 했다.원경릉이 건곤전을 나가려는 순간, 명원제의 가마가 건곤전 앞에 당도했다. 원경릉은 얼른 여기를 벗어날지 아니면 황제께 문안인사를 드리고 갈지 망설이는 사이, 호위 군사처럼 보이는 사람이 몇 마디 아뢰니 명원제는 갑자기 대경실색해 다시 돌아갔다.건곤전에 다왔는데 다시 돌아간다고? 무슨 큰 일이 생겼나?원경릉은 정신을 딴 데 판 상태로 서난각으로 돌아가니, 희상궁이 와서 약을 갈아주고, 뜨거운 물로 몸을 닦고 세수를 시켜주니 좀 편안해 졌다.원경릉은 소염제를 먹고 침대에 누워 잠이 들었다.한밤중에 희상궁이 와서 원경릉을 깨운다.원경릉은 눈을 비비며 등을 들고 곁에 선 희상궁을 보니 얼굴빛이 근심에 차 있다. 원경릉은 튀어 오르듯 일어나 쉰 목소리로 “할바마마께서…….?”“아니요, 아닙니다!” 희상궁은 바로 원경릉의 말을 끊고 “왕비 마마 어서 일어나세요. 옷 갈아입으시고 궁을 빠져 나갈 겁니다. 지금 구사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궁을 빠져 나간다고?” 원경릉은 뭐가 뭔 지 알 수가 없었다. 오밤중에 왜 궁을 빠져나간다는 거야?“묻지 마시고, 어서 가세요.” 희상궁은 이불을 젖히고 고개를 돌려 나지막이 분부를 내렸다. “왕비 마마께서 옷 갈아 입으시게 시중들어라.”원경릉은 이제서야 침전에 희상궁만 있는게 아니라 2명의 궁녀가 더 있는 것을 알았다.차가운 물수건을 왕비의 얼굴에 얹으며 희상궁이 말했다. “왕비 마마 정신을 바짝 차리셔야 합니다.” 차가운 기운에 원경릉은 홀딱 잠이 깼지만 되묻지 않았다. 희상궁은 태상황의 사람이다. 그녀가 궁을 빠져나간다면 그건 태상황의 명령임에 틀림없다.태상황이 그녀에게 화가 났나?그래서 한밤중에 내 쫓나?밖으로 나가니 은색의 갑옷을 입고 허리춤에
사경을 헤매는 우문호초왕부 대문 밖에 큰 등롱이 두 개 걸려 있고, 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가운데 불빛만 형형하다.원경릉은 안절부절 못하다가 발을 헛디뎌 넘어질 뻔했다. 구사가 황급히 부축하며, “왕비 마마 조심 하십시오.”“고마워요!” 원경릉은 구사의 차가운 눈빛을 올려다 봤다.“걸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구사가 그녀를 놓아주며 물었다.원경릉은 발을 삐어서 아팠지만 구사가 부축하게 하고 싶지 않아 한쪽 다리를 절름거리며 걸어 들어갔다.안으로 들어가며 앞만 보고 걷는 탕양이 비로소 입을 열었다. “그저께 밤 왕야께서 궁을 나오시다가 습격을 당하셔서 상태가 매우 위중하십니다.”“얼마나 심각한데요?” 어쩐지 어제 입궁하지 않았다 싶었는데 습격을 당해서 였구나.“한 때 숨이 멎었으나 제왕 전하가 자금단을 가져오셔서 숨이 돌아오셨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의식이 없으시고 어젯밤 유시(오후 5시~7시)부터 줄곧 열이 높고 호흡이 약해지신 데다 피를 두번 토하셨습니다.” 탕양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왜 이제서야 날 찾아온 거예요?” 원경릉이 서두르며 물었다.탕양은 뛰듯이 걸으며, “왕야께서 궁에 알리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어젯밤은 상황이 너무 다급한 나머지 입궁하여 황제 폐하께 알렸는데, 태상황께서 이 일을 아시게 될 줄 몰랐습니다. 사람을 시켜 정황을 파악하시고 상선이 저희에게 왕비 마마를 급히 모셔가라고 분부하셨습니다.”탕양도 태상황이 왕비 마마를 돌려보낸 의중을 알지 못했고, 상선이 말하길, 왕비 마마는 왕야를 구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라고 했다.원경릉은 태상황이 어떻게 자신에 대해 알았는지, 황제 폐하가 건곤전에 왔다가 다시 간 것이 초왕부의 전갈을 받았기 때문인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구사는 뒤를 따라 걷다가 탕양의 말을 듣고 저도 모르게 원경릉에게, “왕비 마마께서는 태상황 폐하의 의중을 아십니까?”“모르지, 어서 가보자.” 원경릉은 발이 심하게 아픈데다 마음이 너무도 황밍했다. 이건 분명 몸의 원래 주인의 정서가 남은 탓일
사경을 헤매는 우문호와 치료하는 원경릉원경릉은 우문호의 볼을 가볍게 때리며, “우문호, 우문호.”하고 불렀다.“때리지 마세요, 이미 정신을 잃었어요.” 제왕이 화를 내며 말했다.원경릉은 다시 얼굴을 때리며, “우문호, 일어나요, 눈 좀 떠보세요.”원경릉은 우문호의 손을 잡고 가볍게 뒤틀었다가 세게 잡아당기며 “눈 좀 떠보세요.”“당신이란 여자를 할바마마는 뭐 하러 보내신 건지 모르겠군.” 제왕은 손을 뻗어 원경릉을 떼어 놓으려 할 때, 우문호가 천천히 눈을 뜨는 것을 봤다.원경릉은 제왕을 밀쳐내고 약간 화를 내며: “옆으로 비켜요, 방해하지 말고.”제왕은 놀라서 그녀를 쳐다봤다. 이 여자는 뭐 이리 무자비한 건데?원경릉의 두 손으로 우문호의 머리를 감싸고, 입으론 “우문호씨, 저 좀 보세요. 제가 누군지 아시겠어요?”우문호는 눈 앞이 흐릿하지만 목소리는 들린다. 거의 들릴 듯 말 듯한 소리로, “추녀”원경릉은 입꼬리를 올리며, “자기가 누군지 알겠어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나요?”“짐은 습격을……”의식은 깨어났다.“좋아요, 이제 검사할 거예요. 아프면 저한테 말씀해 주세요, 두부 출혈과 내출혈 상황을 확인해야 되거든요.” 원경릉은 두 손으로 머리를 가볍게 압박하며 점점 아래로 손을 이동해, 심장, 폐……우문호의 가슴에서 쌕쌕 소리가 나며 전신을 경련하더니, 얼굴색이 붉게 충혈되고 호흡곤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원경릉은 내상으로 기흉이 일어났음을 신속하게 판단했다.“형……”“왕야……”사람들은 우문호의 상태가 급속히 악화되자 놀라 앞으로 달려 나오며 소리쳤다.원경릉은 재빨리 병풍 뒤로 가 약상자에서 주사를 꺼내 온다.“탕양, 왕야를 눌러주세요, 왕야는 지금 기흉을 일으켜서 생명이 위독한 상태예요. 공기를 빼내야 합니다.” 원경릉이 말했다.“뭐라구요?” 탕양은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놀라서 원경릉 손에 주사만 바라본다.원경릉은 찬찬히 설명하며, 탕양의 손을 끌어다 우문호의 양 팔을 누르게 시키며, “최대한 왕야
안지여의 이마에 파란 힘줄이 불끈불끈했으나 냉정을 가장했다. “내가 두려워할 줄 알았나 보지? 죽음도 두렵지 않은데 뭘 더 두려워하겠어?”“넌 두려울 것이야!” 이리봉청이 고개를 돌려 이리 나리를 보고 살짝 그의 팔을 잡았다. “내가 오는 길에 늑대파 사람이 그러던데, 천하에서 제일 잔혹한 형벌을 아는 사람이 늑대파에 있다고. 그게 사실인 것이냐?”이리 나리가 가볍게 답했다. “물론 사실이죠. 훼천이라고 합니다. 늑대골 출신이에요.”“안지여가 버틸 수 있는지 어디 한 번 보고 싶구나.” 이리봉청이 말했다.이리 나리가 엄숙한 태도로 명을 내렸다. “훼천!”그러자 훼천이 급히 나왔다. “이리 나리, 분부하시지요!”이리 나리는 그가 짐짓 냉정한 척하고 있으나 눈빛이 조금씩 허물어져 가고, 몸까지 부들부들 떠는 것이 아주 만족스러워 훼천에게 담담하게 말했다. “시작해!”안지여가 갑자기 큰 소리로 욕했다. “난 네 아버지거늘, 감히 나에게 손을 대다니, 천벌을 받아 마땅한 놈 같으니라고!”이리봉청이 이 말을 듣고 잠시 주저하는 눈빛으로 이리 나리를 바라봤다.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제 아버지는 오직 저를 키워주신 안풍 친왕뿐이십니다.”이리봉청이 살짝 안도했다. “저 인간이 단지 나만 해쳤으면 네 체면을 봐서 놔줬겠지만 천문 세가의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갔으니 난 용서할 수 없구나.”“이리봉청, 너 언제 이렇게 악랄하게 변했어? 죽이려거든 그냥 죽여. 난 천문 세가 사람을 죽이긴 했어도 그들을 괴롭히진 않았어. 네가 날 죽이려거든 깨끗하게 단번에 죽여!”안지여가 크게 노해 몇 번 몸부림을 치다가 상처가 벌어지는 바람에 배에서 선혈이 흘러나오고, 훼천이 가까이 다가가자, 눈에 두려움이 깊어졌는데, 늑대골 출신 훼천은 온몸에서 피비린내가 뿜어져 나와 안지여를 덜덜 떨게 했다.“이리율!” 안풍 친왕비는 시ㅈ가하기 전에 이리 나리를 불렀다. “내가 여기서 네 엄마와 같이 있을 테니 넌 먼저 나가 있거라!”이리 나리가 안풍 친왕비에게
안지여에게 구원 병력이 없는 상황에서, 이리 나리 일행이 성을 제압하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대오가 경성에서 출발하기 전에, 안풍 친왕비가 미리 사람을 풍도성으로 보내 각처, 특히 성 수비군과 군대에 잠입시켜, 음식에 효과가 천천히 나타나는 독을 풀어, 오늘 중독 증상이 나타나도록 독의 분량을 조절했다.적어도 내일까지는 안지여를 도우러 올 사람은 없었다. 독성은 적어도 이틀이 지나야 깨끗해지기 때문에 이틀 동안 그들은 설사와 전신 무기력으로 성에 무슨 일이 있다는 걸 알아도 와서 도울 수 없었다.그리고 그들이 기력을 회복할 때쯤이면, 안지여는 벌써 죽었을 것이다.안풍 친왕과 이리 나리는 성을 통제하고, 안지여 부부를 제압해 두 사람을 줄로 묶고 지혈시켜 주었다.안지여는 요 몇 년 동안 자신이 상당히 대단하다고 여겼다. 이는 풍도성이 부유하기 때문으로, 돈으로 많은 사람을 살 수 있었으며, 여러 곳에서 추켜세워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처절하게 패배한 적이 없었던 이유는 진정한 적이 없기 때문으로, 주변의 떠돌이 비적은 작은 마을 규모로 너무 작아서 소탕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결코 그가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적이 너무 약해서였다.조정 사람과 비교했을 때, 그는 제대로 훈련받은 적 없는 비적었기에 일격도 감당할 깜냥이 못됐다.이리 나리는 둘을 중정에 묶어 두었다. 온 바닥에 남은 음식과 깨진 기와가 널브러져 있는 것을 본 안지여는 마음속 깊이 분노가 일었다. 자신의 생일날, 그를 다치게 한 것이 바로 그의 친자식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더욱이 오늘 이렇게 많은 고수가 현장에 있었는데도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이런 결말을 맞다니 너무 불쾌했다. 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을 부축하고 안지여 부부 앞으로 가서, 그녀가 안지여 부부를 내려다보자, 그들은 낭패에 달가워하지 않는 기색으로, 이리봉청은 분노하는 마음과 함께 서글픈 마음도 들었다. 그들을 죽이면 커다란 복수는 이뤄 천문 세가 망자의 원혼은 달랠 수 있었다.하지만 저들을 이렇게 쉽게
“그럴 필요 없을 것 같은데?!” 이리 나리가 검을 휘두르며 안지여를 겨누자, 안지여가 공중으로 뛰어올라 후퇴했다.공자들은 돕고 싶었으나 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에게 바로 제압당했다. 안지여는 이리율 것으로 그들은 주변 사람을 제압하기만 할 뿐 옆에 서서 전투를 관전하고 있었다.이리율의 무공이 얼마나 뛰어난지 그를 가르친 안풍 친왕 부부를 제외하고, 사실 많은 사람들은 모르고 있었다.이리율의 검법은 신속하고 맹렬해서 안지여는 상대하느라 쩔쩔매고 구석으로 몰리고 있었다. 성안의 호위들은 늑대 무리와 늑대파, 홍매문 사람들에게 막히는 바람에 안지여는 홀로 고전을 면치 못했는데 그래도 아직은 버틸 수 있었다.하지만 30분을 못 가서 안지여는 질게 틀림없었다.놀란 나머지 계속 실성해 있던 소여쌍이 갑자기 이리봉청을 향해 바싹 마른 손을 뻗어, 그녀의 목을 조르며 광적인 집착과 분노에 사로잡혀 성질을 부렸다. “멈춰, 다들 멈추라고. 안 그러면 내가 이년을 죽여버릴 것이니까!”소여쌍은 무공을 할 줄 알았지만 잘하지 못한 것이 어릴 때부터 계속 중병을 앓아 무공 연습에 소홀했고 성주 부인이 된 뒤로는 더욱 병기에 가까이할 일이 없었지만, 공력만큼은 아직 약간 있었다.소여쌍은 증오의 힘으로 이리봉청의 목을 졸랐는데, 소여쌍이 조금만 더 힘을 주면 이리봉청의 목을 부러뜨릴 것만 같았다.안풍 친왕이 차가운 눈빛으로 나서려 하자, 안풍 친왕비가 말리며 고개를 살짝 흔들었는데, 그럴 필요 없다는 뜻으로 뒤에 있던 사람들에게도 참으라는 눈짓을 하자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모두가 이리봉청이 제압당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손가락으로 뭔가를 쥐고 있어 소여쌍의 어깨 위를 휘감고 팔을 눌러 소여쌍이 머리를 돌리게 했다. 이리봉청 손에 쥔 것은 바늘로, 그대로 소여쌍의 오른쪽 눈을 찌르고 들어갔다.소여쌍이 절규하며 이리봉청을 놔주고 선혈이 흐르는 눈을 움켜쥔 채 비틀거리다 바닥에 쓰러져 데굴데굴 구르며 새된 소리를 지르는데, 원망과 저주의 말을 끊임없이 쏟아
풍도성 중정에는 안지여의 아들들과 사위가 그의 곁에 남았는데, 크고 작은 부상을 입어 점점 공포에 질려가고 있었다.‘이 사람들, 아주 대단하구나!’안지여는 이리봉청을 보고 비록 조금 냉정해 보였지만, 여전히 놀라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갑자기 소여쌍이 큰 소리로 웃으며, 몸을 앞뒤로 흔들며 눈물을 찔끔거리더니 완전히 미친 사람처럼 갑자기 웃음을 멈추고 부들부들 떨리는 손가락으로 이리봉청을 가리키며 원망했다. “뜻밖에 네가 안 죽었단 말이지? 게다가 아들까지 있고. 참으로 황당하구나. 정말 너무 황당해. 원래 죽어야 했을 인간은 죽지 않고, 잘 살아야 할 사람은 36년간 괴로움을 당했어. 이리봉청 네가 날 비참하게 만들었으니 넌 이제 지옥에 떨어져야 해.”이리봉청은 소여쌍의 말을 들은 체 만 체했는데, 그녀 눈에는 지금 안지여만 들어왔다.안지여는 36년을 살아왔지만, 이리봉청에게 있어 36년은 마치 사라진 시간처럼 멸문지화의 원한이 어제 일 같았다.안지여도 이리봉청의 눈에서 분노와 악랄함을 보고, 처음으로 마음속에 두려움을 느꼈다.안지여는 억지로 감정을 가라앉히고 말했다. “네 사람을 데리고 가. 지난 일을 묻지 않을 테니. 그렇지 않으면 풍도성에서 곧바로 10만 대군이 올 것으로, 살아서 도망갈 생각은 꿈도 꾸지 않는 게 좋아.”이리봉청의 목소리가 낮게 잠겼다. “우리는 이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바로 네 성으로 쳐들어갈 수 있어. 넌 이미 졌어.”안지여가 웃었다. “졌다고? 그래?”안지여는 수하의 대장군이 믿음직해서, 그들을 당하게 놔줄 수도 있다고 여겼다. 대장군의 부대는 분명 치밀하게 준비되어 있을 것으로, 아마 지금쯤이면 궁수들이 이미 배치를 마치고 그들을 전부 쏴 죽이기 위해 기다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의 손을 잡고 말했다. “어머니, 저자와 말 섞으실 필요 없어요. 앉아서 지켜보시기만 하면 됩니다!”말을 마치고 의자를 올리더니 이리봉청을 부축해서 앉혔다.안지여가 이리 나리를 보는데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안지여가 퍼뜩 눈을 돌려 이리 나리를 보았다.‘이리봉청이 저자를 아들이라고 불렀다는 건러니까?이리 나리는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을 찬찬히 훑어보더니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안 성주와 좀 오래된 원한을 따져야 하는데, 관련되기 싫으신 분은 자리를 피해 주시지요!”그때 한 사람이 검을 짚고 일어나 호통을 쳤다. “넌 도대체 어떤 놈이냐? 무슨 자격으로 자리를 피해라 마라야? 안 성주를 귀찮게 할 생각이면 일단 나부터 통과해 보시지!”그는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장검을 뽑아 파죽지세로 이리 나리를 향해 휘둘렀다.이리 나리는 손을 살짝 움직여 손바닥으로 칼자루를 밀자, 검이 날아가며 그 사람의 귀를 베어 한 줄기 피가 공중에 뿌려지더니, 방금까지 기고만장하던 자가 비명을 지르고 귀는 바닥에 떨어졌다.검이 다시 이리 나리 수중으로 정확히 돌아왔다.이 모든 게 3초 안에 벌어진 일이었다.“회선검?” 검법을 아는 사람들이 깜짝 놀라며 외쳤다.현장은, 숨소리마저도 들리지 않았다.회선검은 검마의 검법으로, 그렇다는 건 저 사람이 검마의 계승자?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무리에서 검마를 찾았다. 과연 두 손으로 검을 안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도 차가운 안광이 느껴졌다.과연 진짜 검마구나, 사람들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검마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이리 나리를 흘끔 보더니 속으로 의아해했다. ‘이 자식, 언제 내 비장의 검법을 배운 거야?’이리 나리의 검 끝에선 아직 선혈이 떨어지는데, 여전히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말했다. “이 아수라장에 끼고 싶은 거라면, 제가 무례하다고 원망할 생각 마세요.”“무엄하도다!” 안지여가 몹시 놀랐다가 천천히 정신을 차리고 눈을 치켜뜨며 이리 나리를 노려봤다. “너는 내가 누구인 줄 아느냐? 내가 네 아버지다!”이리 나리가 코웃음을 쳤다!안지여의 몇몇 아들이 달려 나와 소리쳤다. “아버지, 저희가 지켜드리겠습니다.”안풍 친왕이 젓가락을 던지고 일어나 차갑게 명을 내렸다
오늘은 성주의 생일이기에 경사라 섣불리 피를 볼 수는 없으므로 칼은 빼 들었지만 먼저 나서서 늑대를 죽이는 사람은 없었다.안지여는 어두운 눈빛으로 ‘늑대 무리라고? 척후병의 보고로는 안풍 친왕이 늑대 무리를 끌고 온다고 했는데, 저들이 의외로 성으로 직접 쳐들어 왔다 이거지?’라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안지여는 잔을 들고 꿈적도 하지 않은 채, 무너지기 직전까지 미동도 없는 태산처럼 냉정하고 침착했다. 늑대 무리는 안으로 들어온 뒤로 두 패로 나뉘어 서서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을 호시탐탐 엿보며 으르렁거렸다.“성주님, 성주님, 저들이 기어코 쳐들어오겠다고….” 문지기가 외치는 소리는 들렸으나 사람은 보이지 않더니, 그보다 조정에서 보낸 사람들이 먼저 들이닥쳤다.앞에 걸어들어오는 두 사람을 안지여는 본 적이 있었는데, 바로 안풍 친왕 부부로 예전에 그들이 천문 세가 사람들을 조사하러 왔을 때 그에게 속은 적이 있었다. 비록 당시 일면식 뿐이었으나 천문 세가 일을 캐내고 있다는 사실에 놀란 탓에 그들의 얼굴을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그런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어째서 별로 변한 게 없는 거지?’안풍 친왕 부부 뒤에 따라오는 10여 명의 검은 옷을 입은 노인은 그들의 호위 무사일 것으로, 주인인 안풍 친왕 부부는 별 표정이 없었으나,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들어와 고개를 들자 괴팍하고 악랄한 얼굴이 안지여 마음에 들지 않았다.안지여는 여전히 일어나지 않았고, 미소는 띠고 있었지만 매서운 눈빛으로 저들이 돌계단을 오르면 그때 일어나도 늦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게 그의 태도였다.하지만 안풍 친왕 부부는 돌계단을 오르지 않았고, 손님 중 건배를 권하느라 자리를 비운 사람들 의자에 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이 차지하고 앉아, 그들을 대놓고 밀치더니 품에서 자기 젓가락을 꺼내 옆 사람 상관하지 않고 먹기 시작해 사람들이 다 경악했다.그들이 자리를 잡고 앉자 뒤따라 들어오는 사람들이 보였다.두 사람이 사람들에 둘러싸여 천천히 걸어들어오고 있었
풍도성 안은 술잔을 주고받고 건배하며 흥겨운 잔치가 한창 무르익고 있었다.안지여는 오늘 황금색 예복을 입었는데 예복에 거대한 이무기를 수놓았으며, 황실의 밝은 황색과는 약간 구별되었지만, 자세히 보지 않으면 진짜 곤룡포로 착각할 만큼 거대한 이무기가 하늘로 날아오르는 형상이 구름을 뚫고 솟아오르는 용과 매우 흡사했다.안지여는 자신의 야심을 이미 조금도 감추지 않았다.당연히 안지여는 오늘도 야심을 감출 생각 없이 손님들에게 보란 듯이 자세를 잡았다. 심지어 인근 지역 조정 관리들이 손님으로 왔어도 안지여는 전부터 맺어온 관계였기에, 그들과 개인적인 친분이 매우 두터워 산 넘고 물 건너 저 멀리 있는 황제가 그들을 시시콜콜 관리할 수 없었다.그 자리 있던 사람들은 모두 오늘 황실에서 파견한 일행이 온다는 것을 알고, 연회석에서 큰 소리로 물었다. “성주님, 듣자하니 안풍 친왕 전하와 이리 부마께서 오늘 오신다던데 어째서 안 보입니까?”안지여가 잔을 들고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진심으로 생일을 축하한다면 결국 오겠지요.”“여정을 듣기론 오늘 분명 풍도성에 도착한다고 했는데, 어째서 밤이 되도록 아직 안 보입니까? 설마 성주님이 직접 나가서 맞이하셔야 하는 건 아니겠지요?”“성주님이 가서 맞이하셔야 한다고? 아주 허세가 대단한데? 퉤!”“누가 아니랍니까? 진심으로 생신을 축하하는 거였으면 며칠 전에 풍도성에 도착해 성의를 보여야지, 오늘까지 늑장을 부리다가 늦게서야 와서, 아직도 잔치에 오지 않은 건 분명 성주님의 체면을 안중에도 두지 않은 행태입니다. 제가 보기에 못 들어오게 막고 돌려보내시지요, 마음만 받은 셈 치고요. ”“맞습니다. 그동안 조정에서는 풍도성에서 받은 공물이 적지 않았으니, 만족한 줄도 알아야죠.”“풍도성은 더 이상 조공을 바칠 필요 없어요. 뭐 때문에 그럽니까? 수백 년 전에 풍도성은 원래 북당의 영토가 아니었어요. 선을 긋고 나와 독립해야 합니다.”모두 안지여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서, 몇 잔 들어가자, 비위를
소여쌍의 욕은 거의 반 시진 동안 계속되었다. 이것도 별로 드문 일이 아니라 무쌍거 사람들은 다 익숙해져 있었다. 성주가 오지 않거나 소여쌍이 아프기 시작해도 이렇게 욕을 해댔다.욕하다 지치기를 기다렸다가 늙은 몸종이 가서 달랬다. “부인 그러실 게 뭐가 있으십니까? 몸이 가장 중하십니다.”소여쌍이 의자에 기대 늘어졌다. 극도로 피곤해 풀린 눈으로 천정을 보며 비참함이 가슴 깊은 곳을 타고 내렸다. “오늘이 초엿새지?”“네!” 늙은 몸종이 대답했다.소여쌍이 창백한 얼굴로 말했다. “곧 15일이구나. 또 내 명을 재촉하는 고통이 오겠지. 죽으면 죽었지 다시는 그 고통을 느끼고 싶지 않다.”그러자 늙은 몸종도 매우 괴로워했다. “부인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고통도 며칠이면 그럭저럭 지나가서, 그동안도 그렇게 지내셨잖아요?”“며칠이면 뭐 그럭저럭 지나가나?” 소여쌍이 잔인한 눈빛으로 말했다. “그건 네가 이 고통을 안 당해봐서 그래. 이게 다 이리봉청 그년 짓이야. 오빠가 그년을 쫓아가서 죽이게 한 걸 정말 후회해. 그년을 잡아 와서 가두고 내가 한 번씩 아플 때마다 그년을 갈기갈기 찢어발겨 나보다 수천 수백 배 고통스럽게 해야 했어.”늙은 몸종이 소여쌍의 손을 쥐었다. “부인 그런 생각 마세요. 벌써 죽은 사람을 이제 와서 생각해 봤자 아무 도움도 안 됩니다. 성주님과 자꾸 다투지 마세요. 자꾸 다투시다 보면 감정이 사라집니다.”소여쌍이 처연한 웃음을 지었다. “오빠는 진작부터 나한테 아무 감정 없어.”“성주님은 이리봉청에게 아무 감정 없으세요. 감정이 있을 리도 없고요. 안 그러면 당시 부인을 위해 이리봉청을 죽이고 천문 세가 사람을 다 죽이셨을 리가 없죠.”소여쌍이 고개를 돌리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전에는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요 몇 년간, 성에 들어온 여자들 생긴 걸 보라고. 전부 이리봉청을 쏙 빼닮았잖아? 오빠는 역시 후회하고 있는 거야. 날 위해 이리봉청을 죽인 걸.”소여쌍은 늙은 몸종의 손을 잡는데 고여서 썩
안지여는 소야쌍을 놓고 천천히 안으로 걸어갔다. “이틀 뒤가 내 생일인데, 당신 몸 상태는 어때?”그러자 소여쌍은 시녀의 손을 뿌리치고 얼른 안으로 따라 들어가려 했는데, 몇 걸음 만에 휘청거리더니 하마터면 안지여 뒤로 넘어질 뻔했다.안지여는 소여쌍을 잡아줄 수 있었지만, 손을 뻗지 않고 그녀를 등지며 보이지 않는 척했다.시녀는 이미 이런 상황이 익숙한 듯 얼른 소여쌍을 부축해 바닥에 넘어지는 것까지 막았다.소여쌍이 숨을 돌리고 살짝 웃었다. “몸이 많이 좋아져서 오빠 곁에 있을 수 있어요. 오빠 생일에 당연히 제가 곁에 있어야죠.”안지여는 그제야 소여쌍을 돌아봤다. “생일엔 손님이 많이 올 거야, 올해는 다른 어떤 해보다 성대하게 하니까 당신도 잘 차려입어. 내가 내일 사람을 시켜 장신구를 보내도록 하지.”“네, 알았어요!” 소여쌍이 기쁜 듯이 말하며 안지여를 한없이 바라봤다.하지만 안지여는 소여쌍을 더는 보고 싶지 않았다. 사정 설명했고 체면도 차렸으니 됐다 싶어 말했다. “난 아직 일이 있어서. 당신 쉬는 걸 방해하지 않을 테니 잘 쉬고 있어.”안지여는 말을 마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려고 했다.이때 소여쌍이 갑자기 닭발 같은 손을 뻗어 안지여의 팔을 붙잡으며 서둘렀다. “오빠, 어렵사리 왔는데 저랑 얘기 좀 더 해요.”안지여가 고개를 숙이고 소여쌍의 마르고 늙은 손을 바라봤다. 손등에 주름이 자글거리는 것이 구겨진 비단 뭉치처럼 너무 흉해서 혐오감이 든 나머지 쓱 손을 뺐다. “말했잖아, 일이 바쁘다고.”소여쌍의 눈빛이 갑자기 매서워지며, 늙고 쉰 목소리로 소리쳤다. “일이 바쁜 거예요, 아니면 그 여우 년을 찾아가는 거예요? 제가 모를 줄 아세요?! 여자를 성에 얼마나 숨겨놨는지.”안지여가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헛소리야?”소여쌍이 두 손으로 가슴을 움켜쥐고 축 처진 눈에서 원한이 쏟아져 나왔다. “제가 늙었다고 싫어하는 거잖아요, 아녜요? 잊지 마세요. 오빠의 동안도 결국 늙는다고요. 이리봉청이 아직 살아있어도 지금 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