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문호의 수혈과 봉합수술“여러분 피를 초왕 전하에게 드린다는 뜻입니다.”호위 대장 서일은 소매를 걷고 손톱을 그어 피가 떨어지니 우문호의 입에 떨어뜨리며 “제 피를 전부 드려도 괜찮습니다.”원경릉은 서일을 보고 “충심이 가상하군요, 하지만 이렇게는 초왕 전하에게 도움이 안됩니다. 피가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 위에 도달할 뿐 혈관에 들어가지 않아요, 당연히 심장으로 흐를 수도 없죠, 어서 지혈하세요, 피 낭비하지 말고.”서일은 놀라서, 입안 가득 피를 머금은 우문호를 보며 쑥스러운 듯 말했다. “이게 아니라고요?”원경릉은 테스트 시트에 서일의 피를 묻히고, 다른 사람도 원경릉이 말한대로 혈액을 한 방울씩 테스트 시트에 떨어뜨렸다.원경릉은 이번엔 우문호의 손가락에서 피를 채취해 검사했다.잠시 후 원경릉은 테스트 시트를 보더니 “구사, 탕양, 이렇게 두 사람의 피는 쓸 수 있겠어요.”이 두사람은 모두 O형이고, 우문호는 A형이다.구사와 탕양은 뻘쭘하게 서서 원경릉의 지시를 기다렸다.“앉으세요!” 원경릉은 수혈도구를 가져왔다. 긴급 수혈은 상황을 따질 수가 없다. 그저 저들이 모두 심각한 통증이나 질환이 없고, 술도 마시지 않았고, 담배도 피우지 않았으며, 약도 먹지 않았기를 바랄 뿐이다.구사와 탕양은 자신의 피가 그 얇디 얇은 관을 타고 나오는 것을 보고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으나 고개를 들어 원경릉을 보니 그녀의 안색이 한층 더 심각해 감히 물어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혈액 두 팩을 빼더니 원경릉은 침대에 혈액을 걸고 우문호에게 수혈했다.청진기로 내장 파열이나 내출혈 상태를 점검하는데,혈흉이 잡힌다. 방금 혈흉 상태에서 기침을 하니 기흉이 생긴 게 틀림없다.원경릉은 다시 천자로 피를 빼내자 우문호는 거의 정신이 돌아와서 눈으로 계속 원경릉의 일거수일투족을 뚫어지게 보는데, 원경릉은 고개를 숙이고 흉강에서 피를 뽑아 내도 우문호는 아픔이 전혀 느껴지지 않고, 그저 원경릉의 이마에 피가 튀는 것만 보였다.그리고 우문호는 천천히 손을 들어 원경
제왕의 오해원경릉은 일어나 시큰거리는 손목을 움직이는데, 어깨와 목은 뻐근하고 아파서 견딜 수가 없다. 좌중에 있는 사람들은 인턴도 아니고 심지어 간호사 자격도 없으니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릴 수 없으니 당연하다.“왕비 마마, 많이 힘드시면 기상궁에게 와서 도와 달라 하심이 어떠십니까? 기상궁은 바느질 솜씨가 출중하지요.” 서일이 머쓱한 듯 건의했다. 방금 체면을 구겼으니 이번 기회에 만회해 볼 심산인 모양이다.“만약 왕야께서 옷이라면 기상궁이 와서 도와주면 좋지요.” 원경릉이 담담하게 얘기했다.제왕은 도저히 참지 못하고, “지금 뭐하는 겁니까? 상처는 저절로 아무는 법인데, 왜 꿰매야 하는 것이요?”이 여자가 의술을 알긴 조금 아는 것 같지만, 정통 의술이 아니라 어디 무당의 의술 같은 것으로 그 상자는 무당의 상자인 게 틀림없다. 만약 할바마마의 분부가 아니었으면 제왕은 결단코 순순히 원경릉이 이 짓을 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을 것이다.가장 기가 막힌 건 원경릉이 제왕의 피가 초왕에게 적합하지 않다는 말인데, 제왕과 초왕은 아버지가 같고 혈맥이 상통한 사인데 쓸 수 없다니 말이 되는 소리인가?원경릉은 제왕을 상대하고 싶지 않아, 몸을 돌려 무릎을 천천히 폈다.제왕은 불같이 화가 났다. 명취 말이 틀린 것이 하나도 없군, 이 원경릉은 입만 열면 거짓말에, 경거망동을 일삼고 다른 사람이 안중에 없구나.제왕은 줄곧 초왕의 상태가 호전된 것이 자신의 자금단 때문이라고 생각했다.절대 원경릉때문이 아니다.그리고 이 나쁜 원경릉이 또 봉합을 계속하려고 하는 것이다.그러던 중, 우문호가 깨어났지만 의식이 또렷하지 못해 몽롱한 가운데 원경릉을 보고 다시 의식을 잃었다.원경릉은 그의 고통을 알고 있다. 왜냐하면 혼수상태에서 봉합하고 있다지만 우문호의 몸이 통증으로 경련을 일으키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방법이 없었다. 약 상자에 더이상 마취약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건 정말 이상하다. 마치 약 상자가 우문호를 괴롭히기라도 하듯이 어제 약 상
제왕의 깊어진 오해와 열이를 만나러 간 원경릉상선은 웃음을 띤 채 뒤늦게 알아차린 제왕을 보며, “그렇지 않으면, 태상황 폐하께서 어찌 한밤중에 왕비 마마를 왕야께 보내 치료하라 하셨겠습니까?”제왕은 이번엔 마치 전혀 모르는 사람인 듯 원경릉을 아주 위아래로 샅샅이 훑어봤다. 상선은 다시 원경릉에게, “태상황 폐하께서 소인에게 왕비 마마의 상처가 좀 나아지셨는지 물어보라 하셨습니다.”원경릉은 마음속으로 탄식하며, 도대체 이 늙은이는 어디까지 사람을 놀려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거야.“태상황 폐하께서 기억해 주시니 감읍할 따름입니다. 많이 좋아졌습니다.”상선은 웃으며 “다행입니다. 태상황 폐하께서 말씀하시길, 왕비는 상처 치료 잘 하고 있으라 하셨습니다, 몸과 마음을 튼튼하게 만드셔야 한다고, 다음 번 곤장이 멀지 않았으니 강인한 신체와 정신을 길러 더욱 맹렬한 폭풍우를 견뎌야 한다고 말입니다.”원경릉은 눈을 내리 깔고 묵묵히 마음 속으로 방금 그 말을 되새겼다. 이 놈의 늙은이가 진짜 못하는 소리가 없네.제왕을 눈을 똥그랗게 뜨고 부러움과 질투의 눈빛으로 원경릉을 쳐다봤다. 제왕은 알고 있다. 태상황의 말투는 항상 이런 식이다. 총애하면 할 수록, 이렇게 얘기하곤 하셨다.이 여자는 도대체 뭐지? 그저 궁에서 며칠 병수발을 들었을 뿐인데, 어째서 할바마마께서 이렇게 신경을 쓰시느냐 말이다. 상선이 가고 제왕은 원경릉에게 “당신 도대체 할바마마에게 무슨 미약을 쓴 것인가?”원경릉은 눈을 흘깃 하더니 대꾸하지 않는다.“말 좀 하시오, 당신은 어찌 이리 무례하오?” 제왕이 화를 냈다.원경릉은 눈도 하나 꿈쩍하지 않고 바로, “제왕부로 돌아가세요!”“무슨 뜻이냐?” 제왕은 당황했다. 아니 제왕부로 돌아가는 게 무슨 상관이라고? 지금 원경릉이 예의가 없다는 얘기를 하고 있는데.“내쫓아야 정신을 차리겠어요!” 원경릉은 조금도 예의를 차리지 않고 말했다.“당….당신….무슨 배짱으로?” 제왕이 목소리가 꺾이며 성을 냈다.원경릉은 “여기는 초왕부고,
자금탕의 비밀과 깨어난 우문호원경릉은 기상궁을 보며 “어떤 불편함을 얘기하는 거지?”원경릉은 사실 지금 온 몸이 불편하다. 단지 고도의 압박감이 느껴지는 상황이라 아픔을 느낄 여유가 없지만, 앉거나 엎드릴 때 여전히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고통이 상처의 통증보다 더 심하게 느껴진다.기상궁은 고개를 흔들며, “사실, 쇤네도 구체적으로 모릅니다. 아마 탕대인이나 서 호위 대장님은 자세히 아시겠지만, 쇤네가 아는 것은 자금탕을 마시면 오장 육부를 손상시켜 처음엔 피를 토하고, 기침을 하고, 악몽을 꾼다고 했습니다. 전에 어떤 하인이 몰래 왕부의 골동품을 내다 팔았는데 죽어도 아니라고 벽에 부딪혀 자결하려는 것을, 탕대인이 그 하인에게 자금탕을 내렸는데, 하인은 자백하고 대략 보름쯤 후에 없어졌습니다.”원경릉은 겁이 나서 벌벌 떨며, “보름만에 사람이 없어졌다고? 자금탕때문에?”“탕대인 말씀에, 자금탕을 마신 후엔 반드시 1년반동안 약을 먹고 정양해야 정상으로 회복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하인은 죄질이 흉악해서 탕대인이 몸조리를 해주지 않아 죽었지요. 죽기 전에 피를 토하고, 배가 아프다고 하고, 기침을 심하게 했어요. 한번 기침을 하면 멈춰지지가 않고 죽을 때는 얼굴이 보랏빛이었지요.”기침으로 산소가 부족했나?기상궁은 망설이며, “또 하인이 죽기 전에 늘 귀신이 많이 보인다고, 자기를 저승으로 잡아가 심판을 받게 할 거라고, 두려워했어요, 그래서, 자금탕은 다른 말로 ‘황천탕’이라고도 하지요.”원경릉은 멍하니 기상궁을 보고 입가에 쓴 웃음을 띠며, 우문호, 넌 도대체 얼마나 원경릉을 미워하는 거니? 그리고 제일 기가 막힌 현실은, 원경릉이 된 그녀가, 여전히 최선을 다해 우문호를 구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만약 진짜 윤회란 것이 존재한다면, 그녀와 몸의 원래 주인 원경릉은 우문호 집안 조상 무덤이라도 파헤쳤나 보다. 그렇지 않고 서야 이런 인과응보를 받을 리 없다. 원경릉은 마음을 가다듬고 소위 귀신을 봤다는 건 분명 환각으로 뇌에 산소가
깨아난 우문호와 원경릉의 말다툼제왕이 비집고 들어와 기뻐하며, “형, 깨어난 거야?”우문호는 빙긋 웃으며 제왕에게, “네 자금단 덕을 봤구나.”제왕은 크게 손을 흔들며, “자금단이 뭐라고, 난 동생이라 전장에 나가지도 않고 원래부터 자금단이 필요 없어.”우문호의 웃고 있는 낯빛이 가라앉아 있다.잠시 후, 우문호는 “아우야, 탕양, 둘은 먼저 나가서 쉬고 있거라.”제왕은 “안 힘들어, 쉬고 왔어.”우문호는 가볍게 한숨을 쉬며 탕양을 바라봤다.탕양은 제왕을 손을 끌고, “맞아요, 제왕 전하, 소인이 몇 가지 여쭙고자 하는 일이 있습니다. 저와 함께 가시죠.”“뭔데 그래 여기서 말해.” 제왕이 어리둥절해 하는데 탕양이 끌고 나갔다.원경릉은 원래 마음이 답답했는데 이 장면을 보니 그만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우문호는 눈짓으로 “좀 와봐.”우문호의 목소리는 미약하기 그지 없고, 기력이 하나도 없어 한 쪽 발을 관에 넣고 있는 사람 같은데 정신만은 여전히 비교적 냉정하고 굳건하다.원경릉이 가까이 다가가 우문호가 말하는데 힘들지 않게 했다. “말해봐.”“할바 마마 용태는 좀 어떠셔?” 우문호가 물었다.원경릉은 우문호가 자신의 상태를 물을 줄 알았는데, 태상황을 걱정하고 있을 줄 생각도 못했다. 이 사람이 인간성은 더럽고 잔인한데다 폭력적이지만 효심 하나는 지극한 것 같다.“병이 오래되었으니, 좋아지는 것도 하루아침에 되지 않아.”“그럼 너 입궁해서 계속 병간호해라, 짐은 너 없어도 돼.” 우문호가 말했다.원경릉이 의아하게 쳐다보며, “위험한 고비가 아직 남았는데 만약 내가 가면 절반의 확률로 넌 죽어.”“짐이 생각이 있어, 이번 고비는 짐이 넘길 수 있을 것이다.” 우문호가 말했다.하하.자신을 맹신하고 있군.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이삼일 더 남아서 왕야 상태가 어느 정도 안정되면 입궁할께.”“가라면 좀 가!” 우문호의 차가운 표정으로, 이 여자는 정말 좋게 대할 수가 없어.“생각이 있다고.” 원경릉은 조용히 말했다.“너…
원경릉이 그에게 링거를 꽂아두고는 몸을 닦고 옷을 갈아입는데 주명취가 시녀를 데리고 뜰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주명취는 제비 자수가 놓여 있는 오색비단 치마에 넓은 청색 소매 저고리를 입고 허리에는 저고리 색과 비슷한 띠를 두르고 있었다. 곱게 빗어 올린 머리에 달린 비녀, 새하얀 귓볼 그 아래에 작은 초롱 귀걸이.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귀걸이가 찰랑찰랑 흔들리며 청아한 소리가 났다.제왕은 그녀를 보고 부드럽게 웃으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 “마차를 타는 것이 힘들지 않습니까?” 주명취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두사람은 손을 마주잡고 함께 돌계단을 올랐다. 원경릉은 문 앞에서 냉담한 표정으로 주명취를 바라보았다. 주명취는 원경릉을 보자마자 슬쩍 제왕과 맞잡은 손을 풀었다. “초왕비님 안녕하십니까.”“응.” 원경릉이 대답했다. 그녀의 대답에 제왕은 화가 치밀었다. 황실에서는 예의를 지켜 왕비에게 ‘예.’라고 대답해야지. ‘응’이라니? 주명취는 손을 뻗어 제왕의 손을 꼭 쥐었다.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제왕은 이런 주명취가 참으로 현명하게 느껴졌다. 상대가 예의 없게 행동한다고 똑같이 행동하지 않는 모습. 이런 주명취를 보고 있으니 문득 저런 여자를 아내로 삼은 우문호가 불쌍하게 느껴졌다. “들어갑시다.” 제왕이 주명취의 손을 잡으려고 했지만, 주명취는 이미 안으로 들어간 뒤였다. 원경릉은 문가에 기대어 조용히 그들을 바라보았다. 주명취는 침상 옆으로 다가가 근심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우문호를 바라보았다. “왕야 괜찮으십니까?” 그녀의 두 눈이 그의 눈썹 뼈 상처에 머물렀다. ‘이렇게 가만히 그를 바라본적이 있던가.’주명취의 가슴이 두근거렸다.‘우문호. 왜 좀 더 용기내지 않은 것이야. 만약 당신이 태자가 될 수 있었다면, 내가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텐데’순간 그녀의 마음 속에서 슬픔이 솟구쳐 올랐다. 주명취와는 상반되게 우문호의 표정은 평온해 보였다. 그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찾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제왕비
주명취는 잠이 든 우문호를 한참 바라보다 제왕과 함께 밖으로 나왔다. 주명취는 문 앞에 서있던 원경릉을 보고는 멈춰섰다. “왕야의 심기를 건드리지말고 잘 보살펴주세요.”원경릉은 그녀를 냉담하게 바라보았다. “제왕비 쓸데없는 걱정마시지오.”원경릉의 말을 들은 제왕이 분노를 참으며 주명취를 끌어당겼다. “갑시다. 부인은 신경쓰지마세요. 황조부께서 저 사람보고 형님을 돌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알아서 하게 둡시다.”주명취는 얼빠진 사람처럼 멍하니 있다가 제왕에게 끌려 나갔다. 원경릉은 떠나는 둘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우연하게 그들의 대화를 듣게 되었다. “황조부께서 원경릉보고 우문호를 돌보라고 했습니까?”주명취가 제왕에게 물었다. 제왕은 물음에 대답하지 않은채 주명취에게 왜 자꾸 범인에 대해 물어보느냐고 물었다. 주명취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누군가 초왕을 죽이려고 했다면, 당신도 안전하지 않다는 소리잖습니까. 저는 그저 당신이 걱정돼서… 어찌 이리 제 마음을 모릅시니까.” 원경릉은 제왕 내외의 대화가 들리지 않게 문을 닫았다. 그녀는 우문호가 깰까 조심스레 들어와서는 잠이 든 그의 모습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그의 눈은 감겨 있었지만 그가 내뱉는 숨결이 왠지 잠이 든 사람같지 않았다. ‘우문호가 제왕과 주명취가 한 말을 들었을까? 아마 침상과 문은 거리가 좀 있으니 듣지 못했겠지.’원경릉은 우문호를 지긋이 바라 보았다. ‘내가 이 사람의 얼굴을 이렇게 오랫동안 본적이 있었나? 얼굴 꼴이 많이 아니네’그 순간 우문호가 눈을 번쩍 뜨며 말했다. “뭘 그리 뚫어져라 쳐다봐!”“앗! 아무것도 아닙니다.”당황한 원경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방석을 들고 침상 옆에 엉거주춤 앉았다. 우문호는 그런 그녀를 무시한채, 무슨 생각을 하는지 공허한 눈빛으로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 원경릉의 머릿 속은 온통 약상자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찼다. 원경릉은 이전까지 약상자 안에는 실험실의 약만 들어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그렇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다. 원경릉이 마음 속
서일은 씩씩거리며 걸어가는 원경릉의 뒷모습을 보며 ‘왕비가 또 무슨 일로 왕야를 화나게 한거지’라는 궁금증이 생겼다. 반면 탕양은 그 일은 나랑 상관없다는 듯 빠른 걸음으로 안으로 들어갔다. 우문호의 미간에는 피가 올라와 있었고, 창백한 그의 얼굴에 빨갛게 손바닥 자국이 나있었다. “서일. 가루 좀 가져다주시지오.”탕양이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서일이 한걸음에 달려와 그의 뺨을 보았다. “감히 왕야에게 손찌검을 하다니!”탕양은 다급하게 서일에게 말했다. “일단 가루약을 가져오시라구요!”다급한 그들과는 다르게 우문호는 담담하게 “필요없어.” 라고 말했다. 그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서일은 가루약을 가져왔다. “괜찮다. 원경릉이 이미 약을 발라주었어.” 우문호는 그를 저지하며 말했다.서일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그에게 물었다. “왕야, 저 여자가 왕야에게 뺨까지 올려부쳤는데, 아직도 저 여자가 가져온 약을 쓰십니까? 저 여자가 날이 갈수록 왕야를 우습게 보고 있습니다!”우문호는 서일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그저 탕양에게 “어서 원경릉을 찾아 약을 주거라. 아마 자금탕의 효력이 사라졌을거야. 방금 원경릉이 귀신 어쩌고… 라는 말을 하는 것을 들었어.” 라고 말했다.“그녀가 헛것이라도 본다는 말입니까? 왕비가 헛것을 보고 오해해 왕에게 손찌검 한 것 입니까?” 탕양은 염려의 목소리로 말했다. “오해는 무슨. 나는 그저 그녀가 혼잣말을 하는 것이 이상해서 정신차리라고 뺨 한대를 친것 뿐이다. 이 상처들만 회복하면, 내가 저 여자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야.”서일은 옆에서 지당하신 말씀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탕양은 그런 서일을 한심하게 바라보았다. 탕양은 원경릉을 찾으러 가기 위해 일어섰다.“서일. 여기서 왕야를 잘 돌보고 있으세요. 제가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서일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원경릉은 씩씩거리며 봉의각으로 들어갔다. 탁자를 닦던 녹주가 그녀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의아해하며 달려왔다. “왕비님. 왕야를 돌보셔야 하는거 아
군 생활은 만두에게 큰 단련이었다.원경릉은 순간 우문호가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을 진심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군에서 신뢰를 쌓아야만, 훗날 나라를 다스릴 때 빠르게 군심을 쥘 수 있기 때문이다.만두는 궁에 하루 머물렀다가, 곧바로 다시 돌아갔다. 군에는 끝없는 업무가 있었고, 젊은 장정은 끝없는 에너지를 갖고 있었다.만두의 늑대도 마찬가지였다.만두의 늑대는 이미 며칠째 산에 들어가 있었다. 그래서 만두는 일을 마치고, 곧바로 산으로 그를 찾으러 갔다.어느덧 해가 저물어 산속은 고요해졌고, 석양의 마지막 빛마저 사라지고 있었다. 그는 산에 들어가 몇 번이나 늑대를 불렀지만, 답이 없었다. 만두는 이내 이상하다고 느꼈다. ‘이제 좀 컸다고 부르면 대답도 안 하나?’그는 늑대가 산에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이 녀석, 또 동물들과 놀다가 멧돼지를 쫓아다니는 건 아닐까?’늑대는 군에 따라온 이후로, 다른 건 몰라도 가끔 군인들이 먹을 것을 많이 챙겨줬었다. 게다가 깊은 산림에는 야생동물도 제법 많았다. 그는 산속에 사람이 없는 것을 보고는 바로 뛰어올라 산 정상을 향해 날아올랐다.역시 늑대는 산 정상에 있었다. 늑대는 땅에 엎드린 채, 무언가를 품에 안고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대보야, 지금 뭐 하는 것이냐?”만두가 뛰어가 옆에 착지하며 물었다. 그러자 대보가 고개를 들어 ‘우우’ 하고 울었다.만두가 의아한 듯 말했다.“그래? 어서 일어나봐, 내가 좀 보게.”만두가 말했다.그러자 늑대는 천천히 몸을 뒤로 누었는데, 가슴의 새하얀 털은 이미 피로 물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 몸 아래에는 상처를 입은 조그만 동물이 있었다.온몸이 피에 젖어 있었지만, 희미하게나마 색깔이 흰색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땅에 거의 숨이 끊어지기 직전처럼 보였다.만두는 손을 뻗어 살짝 건드려 보았는데, 부드러운 촉감에 막 죽은 듯한 느낌을 주었다.“세상에, 대보야, 네가 물어 죽인 것이냐?”만두가 물었다.“우우…”대보가 강한 불만의
후궁으로 돌아온 우문호는 아무런 의심 없이 만두의 말을 믿어버렸다. 너무 진지하고 성실하게 말한 만두의 모습에서는 거짓말의 흔적을 조금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그래서 우문호는 원경릉 앞에서 그 진위를 추궁했다.그러자 만두가 웃으며 답했다.“아바마마, 어찌 진짜겠습니까? 태백조부께서 어찌 그저 제 혼사만을 위해 직접 발 벗고 나서시겠어요? 조부님께서도 중매쟁이 같은 일을 제일 싫어하시지 않습니까.”“깜짝 놀랐잖느냐!”우문호는 그제서야 웃으며 만두의 어깨를 두드렸다.“이 녀석, 조회에서 거짓을 고하다니, 다시는 하면 안 된다.”비록 말은 그렇게 했지만, 우문호의 눈빛에는 기쁨과 기특함이 가득했다. 떼론 융통성이 있어야 똑똑한 사람이다.만두가 답했다.“이 일은 태백조부님을 핑계로 삼는 것이 가장 적절합니다. 조부님은 늘 신출귀몰하시니, 찾기도 어려울 테고, 설령 물어본다고 해도, 그분이 얼마나 영리하신데요? 분명히 저를 도와 변명해 주실 것입니다.”이렇게 되면 아무 탈 없이 스무 살까지 지낼 수 있었다. 스무 살이 되어, 혼인을 원치 않는다고 해도, 그때 가서 다른 방법을 생각하면 된다.황제야 말한 것은 반드시 지켜야 하지만, 태자는 얼마든지 거짓말을 해도 되는 법이니 말이다. 아무리 거짓말이여도 남에게 해가 되지 않고,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거짓말이라면 별문제 없을 것이다.“늑대는 너와 함께 안 온 것이냐?”원경릉이 물었다.“대체 요즘 무엇을 하고 있는 건지, 계속 산으로 올라갑니다.”만두가 웃으며 어머니의 어깨를 감쌌다.“허기가 집니다. 고기를 먹고 싶어요. 아주 많이요!”“군에서 식사를 제대로 못 한 것이냐?”원경릉이 다정하게 웃으며 물었다.“아바마마께서 병사들을 절대 홀대하지 않으시니, 군 식사는 아주 좋아졌습니다. 다만 제가 요즘 너무 많이 먹습니다.”만두는 한창 클 시기였는데, 매일 체력 훈련도 많아 매번 배를 고파했다.“좋아, 목여 태감에게 음식 좀 준비하라고 시키마.”우문호도 그런 시기를 겪어봤었다. 그
노신은 그만 넋을 잃고 말았다."추 어르신, 그 말은 좀 부적절하신 것 같습니다. '남자는 서른에 장가가고 여자는 스무 살에 시집간다'는 말은, 남자는 서른을 넘기지 말고, 여자는 스무 살을 넘기지 말라는 뜻과 같은데… 어찌 반대로 해석하시는 것입니까?""난 예전부터 그렇게 이해해 왔소. 그리고 그 말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는 사람마다 다르게 해석할 수 있지 않소? 아무튼 난 폐하의 의견이 옳다고 생각하오."노신들은 한숨을 쉬며 소요공을 바라보았다."소요공, 얘기를 해보시지요. 어찌 생각하십니까?"소요공은 멍하니 말했다."무슨 말이요?""혼인 제도 말입니다. 아까부터 듣고 계셨잖습니까?""혼인 제도가 무슨 문제이오?"소요공은 더욱 어리둥절해했다.신하들은 세 사람이 언제나 한마음이라는 것을 알기에, 더는 말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후에 조용히 물러났다.신하들이 떠나자, 소요공이 물었다."혼인 제도를 바꾸는 것이 어찌 문제이오? 엄격하게 규정할 필요가 있소. 백성들은 여덟 살, 열 살에 혼담을 정하는 경우도 많다고 들었네. 비록 그저 혼담이라지만, 그래도 보기 안 좋지 않나."백성들은 혼인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 여기기에, 일찍 정해야만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삼대 거두는 백성들이 혼사를 인생의 중대사라 여긴 것을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인생의 중대사이기에 더욱 정신적으로 성숙한 상태에서 결정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게다가 삶의 지혜가 있는 자들로서, 사내가 서른에 혼사를 하고, 여인이 스무 살에 시집간다고 해도 절대 늦지 않다고 생각했다.북당의 상황과 의료 수준을 감안할 때, 혼인을 올릴 수 있는 나이를 열여덟이나, 스물하나로 조정하는 것은 오히려 가장 적합했다.민간에서는 갓난아이들이 죽는 일이 다반사였는데, 이는 의료 수준이 낮기 때문이고, 어머니의 나이가 너무 어려서이기도 하다. 아직 다 크지도 않은 열 몇살짜리 아이가, 출산하려니,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다섯째는 여인을 위해 이러한 제안을 한 것이었다. 욕을 먹더라도
역시나 반대의 목소리가 곧바로 터져 나왔다!하지만 우문호는 여전히 침착했다. 반대가 있을 줄 이미 예상하였기에, 새로운 정책을 추진할 때마다 항상 수많은 반대에 부딪히는 것은 익숙한 일이었다.그는 천천히 물 한 모금을 마시고, 목여 태감에게 물러나라고 지시한 뒤, 위에서 신하들의 격렬한 토론과 흥분된 반응을 차분히 지켜보았다.우문호가 혼인 제도를 개혁하려는 이유는 처가 쪽 세계를 보고 배운 것이 아닌, 그가 어릴 적부터 경험해 온 삶 때문이었다.열셋, 열네 살의 아이들이 세상 물정을 어찌 알겠는가? 게다가 열여섯, 열일곱은 한창 배우고 성장할 나이이며, 정신적으로 아직 미숙했다. 물론 특별히 총명한 아이도 있겠지만, 혼인 제도는 그저 북당 전체 백성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므로 일반적인 기준을 따져야 했다.원경릉이 지내던 세상도, 오래전에는 북당처럼 명을 따르고 마음을 따르지 못하는 혼사가 당연시되었기에, 평생 사랑이란 감정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물론 편히 지내려면, 부모님이 정해주는 혼사가 좋을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은 단순히 살아가기만 하는 존재가 아닌, 감정이 있는 존재이다. 비록 명을 따르는 혼사도 사모하는 자와 함께할 수 있었지만, 확률이 매우 낮았다.귀족에게는 문벌이 맞는 혼인이 중시되었고, 백성에게는 일 잘하고 아이를 잘 낳는 사람이 중요했기에, 감정을 논하는 사람은 점점 없어질 정도였다. 더불어 나라도 부유해졌으니, 정신적인 영역도 함께 성장해야 했다.물론 우문호도 이 정책이 단기간에 시행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누군가는 반드시 이 문제를 제기해야 했다. 영원히 깨지지 않는 법칙은 없으며, 똑같은 방식으로만 나라를 다스리다 보면 언젠가는 쇠퇴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논란이 일어나는 것은 오히려 좋은 일이다. 정책을 내놨을 때, 다들 아무런 반응도 없는 것이 오히려 더 위험한 신호였다.충분한 논의가 진행되자, 우문호는 퇴조를 선언했다. 그러자 신하들이 일제히 냉 수보를 둘러싸고 황제를
원경릉은 당황함에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아직 어린 만두에게 태자비라니?“당장 기각하오!”다행히 냉수보가 상소를 결재하지 않고 그에게 넘겼기에, 우문호가 직접 기각할 수 있었다.다시 결재를 마친 후, 우문호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앞으로 두 번, 세 번은 계속될 것이오. 하지만 만두의 혼사는 우리가 직접 결정하면 안 되오. 스스로 고르게 해야지.”다섯째는 현대에서 연애 자유와 결혼 자유를 제일 먼저 배웠다. 인생의 동반자는 부모나 조정 신하와 함께할 사람이 아니라, 자신과 평생을 함께할 사람이기에, 자기 마음에 들면 그걸로 된 것이다.원경릉은 아직도 열여섯, 열일곱에 혼사를 올리고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다섯째와 생각이 같았기에 다행이지, 아니었더라면 이 일로 진작에 싸웠을지도 모른다.상소를 기각한 뒤,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바로 다음 조회에서 신하가 직접 언급한 것이었다.“태자는 이제 태자비를 골라야 할 시기입니다.”황실의 계승 문제와 얽히면, 출산은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된다. 황제 외에는 다른 친왕들의 아이가 적으니, 그들은 명분이 있었다. 태자비를 빨리 정하고 황손을 낳으면 조정과 백성들도 안심할 것이라는 명분 말이다. 그렇게 결국 태자가 아이를 낳았으니, 우문 가문의 왕위 계승이 안정된 것을 보고 싶어 했다. 게다가 열네 살에 혼약을 맺는 집안도 있으니, 태자도 어리지 않다는 것을 이유로 들었다.다들 혼사를 치르지 않더라도, 먼저 태자비를 정해야 한다고 전했다.우문호는 이 일에 대해 언급조차 하고 싶지 않아, 그저 단호히 말할 뿐이었다.“태자가 앞으로 어떤 여인을 태자비로 삼을지는, 스스로 결정할 일이네. 짐은 간섭하지 않을 것이네.”이 말에 다들 충격을 금치 못했고, 반이나 되는 신하들이 무릎을 꿇고 입을 모아 말했다.“미래의 태자비를 선택하는 일은, 북당에도 중요한 일입니다. 어찌 태자에게 맡길 수 있습니까? 출신, 성품, 덕행, 능력, 예의… 모두 뛰어나야 태자와 짝이
경성으로 돌아오니 이미 해는 서산 너머로 지고 있었다.그들은 먼저 숙왕부로 돌아가 삼대 거두에게 집을 샀다고 알렸다.“집을 샀다고? 얼마나 커? 그럼 마당도 있느냐?”세 사람은 바로 몰려들어 질문을 퍼붓기 시작했다.“옥상도 있고, 꽤 넓습니다. 예전보다 훨씬 넓습니다.”원경릉이 답했다.무상황이 말했다.“그럼, 전에 지내던 집보다 얼마나 넓은 것이냐?”“반은 더 넓고, 옥상에는 온실도 만들 수 있습니다.”원경릉이 기쁜 듯이 말했다.삼대 거두는 원경릉이 왜 이렇게 좋아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듯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들은 햇빛은 밖에 나가면 바로 쬘 수 있는데, 굳이 온실을 만들 필요가 있는지 싶었다. 집이 있으면 오히려 햇빛을 가릴 텐데, 대체 왜 필요한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이때 추 어리신이 관대한 태도로 말했다.“넓은 집도 좋고, 누추한 집도 좋다. 우리 나이에는 그런 거 따질 수 없지.”원경릉이 답했다.“누추한 곳은 아닙니다.”무상황이 코웃음을 쳤다.“그 조그만 집이 누추하지 않다니? 청우헌보다 더 작지 않느냐.”청우헌은 그들이 지금 살고 있는 곳을 말한다.확실히 청우헌보다 작은 집에 살고 있는 원경릉은 이내 머쓱해졌다.그러자 무상황이 위로해 주었다.“괜찮다. 그곳은 하늘도 넓고 땅도 넓으니, 어디든 갈 수 있어. 집은 그저 쉬는 곳이니, 굳이 집에서만 머물 이유도 없지 않느냐.”이것이 가장 큰 차이였다. 여기선 마음대로 외출할 수 없었고, 밖에 나가면 항상 호위가 따라다니기에 귀찮기만 했다. 하지만 그곳은 아무도 간섭하지 않고 안전하며, 사람들도 어르신을 공경히 모시며 예의바르게 행동했다. 나이만으로도 존중받을 수 있는 곳, 이것이 바로 그들이 꿈꾸던 곳이었다. 무상황은 언제 그곳으로 갈 수 있는지 물으며 어서 준비를 서두르려 했다.원 할머니가 선물들을 정리하며 말했다.“연말에 가시지요. 저도 올해는 고향에서 설을 보내고 싶습니다.”원경릉이 할머니 손을 잡고 앉았다.“좋아요, 저도 할머
억제제를 맞았으니, 곧 돌아갈 준비를 해야 했고, 그래도 빠질 수 없는 건 바로 쇼핑이었다. 요즘 우문호는 돌아가서 선물을 나눠줄 때마다 모두 감탄하는 모습에, 아주 열정적이게 쇼핑을 했다. 하지만 선물을 사기 전, 먼저 ‘파지옥’을 만나 식사를 해야 했다.칠성의 말에 따르면 그는 지금 학교 이사장이 되었고, 식당도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칠성을 위해 그가 해준 일에 우문호는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었다.그래서 파지옥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전화기 너머는 매우 시끄러웠다.“뭐? 식사? 지금 밥 먹을 시간이 어딨는가? 한 달 전에 예약하지 않으면 식사할 틈도 없네. 겨울 방학 때 오면 다시 보게나. 일요일 일정이 전부 꽉 찼네.”“그럼, 저녁은요? 야식 드시지요!”원경릉이 말했다.“야식? 나 같은 늙은이가 무슨 야식은. 자네도 의산데, 늙은이 건강에 야식이 안 좋은 거 몰라? 안 먹네, 안 먹어.”“예. 그럼, 고마운 마음을 담아 선물 하나...”“선물은 학교 정문에 두고 가, 퇴근할 때 가져갈 테니. 그럼 이만 끊으마. 솥에서 끓이는 요리가 다 타게 생겼어. 요즘 이 길쭉한 녀석들이 어찌나 많이 먹는지, 타면 모자를 거야. 그리고 곧 애들도 밥 먹으러 올 테니, 그만 끊으마.”뚝 하고 전화가 끊겼다.우문호는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그의 고함에 멍하니 말했다.“직접 요리를 하는 것이오? 요리도 할 줄 아시오?”원경릉은 웃으며 말했다.“요리하는 걸 꽤 즐기고 있소. 아이들도 그를 아주 좋아하니 소속감을 찾을 수 있을 것이오.”우문호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런 취미가 있었다니.”“그동안 어르신들과 함께 지내긴 했지만, 어쨌든 혈연은 아니잖소. 게다가 지금 혼자 이곳에 남아 있으니, 친구가 있어도 마음 한구석의 외로움은 채울 수 없을 것이오. 아이들과 함께 행복하다고 생각하니, 그것으로 충분하오.”원경릉은 선물을 학교 경비실에 맡겼고, 경비에게 파 이사장에게 전달해달라고 한 뒤 우문호와 함께 쇼핑하러 갔다.두 사람은 파지옥과의 저녁 약속이
회의가 끝난 후, 우문호와 원경릉은 각각 교장실로 초대되어, 교장 선생님과 자녀 문제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아이에게는 문제가 없으니, 아이가 최선을 다해 원하는 대학에 진학할 수 있도록 이제는 가정에서도 문제가 없도록 보장해야 했다. 대화를 나누고 나서야, 아이의 가정이 매우 화목하고 자녀의 학습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오히려 긍정적인 자극이 된다는 것을 확인했기에, 그제서야 학교 측은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화진 고등학교와 성화 고등학교는 올해 이 두 아이에게 모든 것을 걸었다.회의가 끝난 후, 원경릉은 다섯째를 데리러 학교로 왔고, 함께 저녁을 먹으러 갔다. 학교 근처에 마침 괜찮은 야식 가게가 있었지만, 조금 시끄러웠다.시끄러운 곳을 좋아하지 않는 원경릉과 우문호는 이런 곳에 잘 오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 밤은 이런 북적거리는 분위기가 즐거운 기분에 아주 어울린다고 생각했다.두 사람은 두 병의 맥주와 한 병의 탄산수를 주문하고, 건배했다. 기쁜 마음 외에, 더 중요한 것은 안도감이었다. 그리고 아이들의 성과를 함께 한 즐거움과 성취감도 있었다.주량이 좋은 다섯째도 오늘 조금 취한 듯 보였다. 아름다운 아내와 자랑스러운 아들을 떠올리고, 북당의 안정과 발전을 생각하니, 그는 인생에 더 이상 아쉬운 것이 없다고 느꼈다.그는 억울하게 모함당하고, 민심을 잃고 모두의 웃음거리가 되었던 예전 일을 떠올렸다. 그는 평생을 그렇게 비참하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원경릉이 나타나자마자 바뀌었다.“원 박사, 고맙소!”술기운이 오른 그가 원경릉의 손을 꼭 잡고 조용히 말했다.“어찌 갑자기 이리 예의를 차리는 것이오?”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당신이 오지 않았다면, 내 인생은 웃음거리가 되었을 것이오. 당신이 왔기에, 난 인생의 승자가 되었소...”그는 한숨을 쉬며 농담을 건넸다.“운율이 좀 있네.”“취한 것이오?”원경릉이 비어가는 술병을 보며 물었다.“괜찮소. 이 정도 술에 쓰러지진 않네. 난 그저 정
대강당의 회의가 끝난 후, 다들 다시 교실로 돌아갔고, 담임 선생님이 계속 말씀을 이었다.장 선생님은 먼저 학생들의 성적을 설명하며, 성적이 오른 학생들을 칭찬하고, 전반적으로 반 분위기가 좋아졌다고 말했다. 고3다운 분위기에 열심히 공부하고 있고, 장 선생님도 의욕이 넘쳐, 부모님을 열심히 격려하며 힘이 솟는 듯했다.그는 처음 학교에 임직할 때를 제외하고 지금처럼, 이렇게 희망을 느끼기는 처음이라고 덧붙였다. 말을 마친 후, 그는 학생들의 심리 건강에 대해서도 언급하며, 성적만큼 건강한 몸과 마음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아이들에게는 앞으로 다양한 가능성이 있으니, 공부가 유일한 선택은 아니었다. 부모 중 일부는, 이미 성화 고등학교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장 선생님은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고, 그저 아이들의 심리 건강에 대해서만 계속해서 강조했다.그가 마지막으로 한 학생을 칭찬하고 싶다고 하자, 다들 우문황이라고 예상했다.역시나 장 선생님은 우문황 학생이 자발적으로 성적이 뒤처진 친구들에게 보충 수업을 해주었고, 그 결과, 친구들의 성적이 크게 향상되었다는 사실을 이야기해주었다. 많은 부모들은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우문황 덕분에 보충 수업을 들은 아이의 학습 태도가 크게 변했기에, 장 선생님의 말에 부모들은 격하게 박수쳤다.칠성이가 이렇게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 것을 보자, 우문호는 못내 눈시울을 붉혔다. 아이들이 보호받아야 할 정도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지만, 이렇게 생각지도 못한 분야에서 독립적으로 잘 해낼 줄도 꿈에도 몰랐다. 늘 어린아이로만 생각해왔기에, 지금 상황이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좋게 느껴졌다.장 선생님은 이내 문 앞에 서 있던 우문황을 향해 손짓했다.“우문황, 이리 와 봐.”이건휘가 고개를 돌려 우문황을 끌고는 그를 교실 안으로 밀어 넣으며 소리쳤다.“여러분, 이분이 바로 우리 반 얼짱이자, 천재인 우문황입니다!“이미 많은 부모님이 대강당에서 우문황을 만난 적 있었다. 하지만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