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탕의 비밀과 깨어난 우문호원경릉은 기상궁을 보며 “어떤 불편함을 얘기하는 거지?”원경릉은 사실 지금 온 몸이 불편하다. 단지 고도의 압박감이 느껴지는 상황이라 아픔을 느낄 여유가 없지만, 앉거나 엎드릴 때 여전히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고통이 상처의 통증보다 더 심하게 느껴진다.기상궁은 고개를 흔들며, “사실, 쇤네도 구체적으로 모릅니다. 아마 탕대인이나 서 호위 대장님은 자세히 아시겠지만, 쇤네가 아는 것은 자금탕을 마시면 오장 육부를 손상시켜 처음엔 피를 토하고, 기침을 하고, 악몽을 꾼다고 했습니다. 전에 어떤 하인이 몰래 왕부의 골동품을 내다 팔았는데 죽어도 아니라고 벽에 부딪혀 자결하려는 것을, 탕대인이 그 하인에게 자금탕을 내렸는데, 하인은 자백하고 대략 보름쯤 후에 없어졌습니다.”원경릉은 겁이 나서 벌벌 떨며, “보름만에 사람이 없어졌다고? 자금탕때문에?”“탕대인 말씀에, 자금탕을 마신 후엔 반드시 1년반동안 약을 먹고 정양해야 정상으로 회복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하인은 죄질이 흉악해서 탕대인이 몸조리를 해주지 않아 죽었지요. 죽기 전에 피를 토하고, 배가 아프다고 하고, 기침을 심하게 했어요. 한번 기침을 하면 멈춰지지가 않고 죽을 때는 얼굴이 보랏빛이었지요.”기침으로 산소가 부족했나?기상궁은 망설이며, “또 하인이 죽기 전에 늘 귀신이 많이 보인다고, 자기를 저승으로 잡아가 심판을 받게 할 거라고, 두려워했어요, 그래서, 자금탕은 다른 말로 ‘황천탕’이라고도 하지요.”원경릉은 멍하니 기상궁을 보고 입가에 쓴 웃음을 띠며, 우문호, 넌 도대체 얼마나 원경릉을 미워하는 거니? 그리고 제일 기가 막힌 현실은, 원경릉이 된 그녀가, 여전히 최선을 다해 우문호를 구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만약 진짜 윤회란 것이 존재한다면, 그녀와 몸의 원래 주인 원경릉은 우문호 집안 조상 무덤이라도 파헤쳤나 보다. 그렇지 않고 서야 이런 인과응보를 받을 리 없다. 원경릉은 마음을 가다듬고 소위 귀신을 봤다는 건 분명 환각으로 뇌에 산소가
깨아난 우문호와 원경릉의 말다툼제왕이 비집고 들어와 기뻐하며, “형, 깨어난 거야?”우문호는 빙긋 웃으며 제왕에게, “네 자금단 덕을 봤구나.”제왕은 크게 손을 흔들며, “자금단이 뭐라고, 난 동생이라 전장에 나가지도 않고 원래부터 자금단이 필요 없어.”우문호의 웃고 있는 낯빛이 가라앉아 있다.잠시 후, 우문호는 “아우야, 탕양, 둘은 먼저 나가서 쉬고 있거라.”제왕은 “안 힘들어, 쉬고 왔어.”우문호는 가볍게 한숨을 쉬며 탕양을 바라봤다.탕양은 제왕을 손을 끌고, “맞아요, 제왕 전하, 소인이 몇 가지 여쭙고자 하는 일이 있습니다. 저와 함께 가시죠.”“뭔데 그래 여기서 말해.” 제왕이 어리둥절해 하는데 탕양이 끌고 나갔다.원경릉은 원래 마음이 답답했는데 이 장면을 보니 그만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우문호는 눈짓으로 “좀 와봐.”우문호의 목소리는 미약하기 그지 없고, 기력이 하나도 없어 한 쪽 발을 관에 넣고 있는 사람 같은데 정신만은 여전히 비교적 냉정하고 굳건하다.원경릉이 가까이 다가가 우문호가 말하는데 힘들지 않게 했다. “말해봐.”“할바 마마 용태는 좀 어떠셔?” 우문호가 물었다.원경릉은 우문호가 자신의 상태를 물을 줄 알았는데, 태상황을 걱정하고 있을 줄 생각도 못했다. 이 사람이 인간성은 더럽고 잔인한데다 폭력적이지만 효심 하나는 지극한 것 같다.“병이 오래되었으니, 좋아지는 것도 하루아침에 되지 않아.”“그럼 너 입궁해서 계속 병간호해라, 짐은 너 없어도 돼.” 우문호가 말했다.원경릉이 의아하게 쳐다보며, “위험한 고비가 아직 남았는데 만약 내가 가면 절반의 확률로 넌 죽어.”“짐이 생각이 있어, 이번 고비는 짐이 넘길 수 있을 것이다.” 우문호가 말했다.하하.자신을 맹신하고 있군.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이삼일 더 남아서 왕야 상태가 어느 정도 안정되면 입궁할께.”“가라면 좀 가!” 우문호의 차가운 표정으로, 이 여자는 정말 좋게 대할 수가 없어.“생각이 있다고.” 원경릉은 조용히 말했다.“너…
원경릉이 그에게 링거를 꽂아두고는 몸을 닦고 옷을 갈아입는데 주명취가 시녀를 데리고 뜰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주명취는 제비 자수가 놓여 있는 오색비단 치마에 넓은 청색 소매 저고리를 입고 허리에는 저고리 색과 비슷한 띠를 두르고 있었다. 곱게 빗어 올린 머리에 달린 비녀, 새하얀 귓볼 그 아래에 작은 초롱 귀걸이.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귀걸이가 찰랑찰랑 흔들리며 청아한 소리가 났다.제왕은 그녀를 보고 부드럽게 웃으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 “마차를 타는 것이 힘들지 않습니까?” 주명취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두사람은 손을 마주잡고 함께 돌계단을 올랐다. 원경릉은 문 앞에서 냉담한 표정으로 주명취를 바라보았다. 주명취는 원경릉을 보자마자 슬쩍 제왕과 맞잡은 손을 풀었다. “초왕비님 안녕하십니까.”“응.” 원경릉이 대답했다. 그녀의 대답에 제왕은 화가 치밀었다. 황실에서는 예의를 지켜 왕비에게 ‘예.’라고 대답해야지. ‘응’이라니? 주명취는 손을 뻗어 제왕의 손을 꼭 쥐었다.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제왕은 이런 주명취가 참으로 현명하게 느껴졌다. 상대가 예의 없게 행동한다고 똑같이 행동하지 않는 모습. 이런 주명취를 보고 있으니 문득 저런 여자를 아내로 삼은 우문호가 불쌍하게 느껴졌다. “들어갑시다.” 제왕이 주명취의 손을 잡으려고 했지만, 주명취는 이미 안으로 들어간 뒤였다. 원경릉은 문가에 기대어 조용히 그들을 바라보았다. 주명취는 침상 옆으로 다가가 근심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우문호를 바라보았다. “왕야 괜찮으십니까?” 그녀의 두 눈이 그의 눈썹 뼈 상처에 머물렀다. ‘이렇게 가만히 그를 바라본적이 있던가.’주명취의 가슴이 두근거렸다.‘우문호. 왜 좀 더 용기내지 않은 것이야. 만약 당신이 태자가 될 수 있었다면, 내가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텐데’순간 그녀의 마음 속에서 슬픔이 솟구쳐 올랐다. 주명취와는 상반되게 우문호의 표정은 평온해 보였다. 그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찾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제왕비
주명취는 잠이 든 우문호를 한참 바라보다 제왕과 함께 밖으로 나왔다. 주명취는 문 앞에 서있던 원경릉을 보고는 멈춰섰다. “왕야의 심기를 건드리지말고 잘 보살펴주세요.”원경릉은 그녀를 냉담하게 바라보았다. “제왕비 쓸데없는 걱정마시지오.”원경릉의 말을 들은 제왕이 분노를 참으며 주명취를 끌어당겼다. “갑시다. 부인은 신경쓰지마세요. 황조부께서 저 사람보고 형님을 돌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알아서 하게 둡시다.”주명취는 얼빠진 사람처럼 멍하니 있다가 제왕에게 끌려 나갔다. 원경릉은 떠나는 둘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우연하게 그들의 대화를 듣게 되었다. “황조부께서 원경릉보고 우문호를 돌보라고 했습니까?”주명취가 제왕에게 물었다. 제왕은 물음에 대답하지 않은채 주명취에게 왜 자꾸 범인에 대해 물어보느냐고 물었다. 주명취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누군가 초왕을 죽이려고 했다면, 당신도 안전하지 않다는 소리잖습니까. 저는 그저 당신이 걱정돼서… 어찌 이리 제 마음을 모릅시니까.” 원경릉은 제왕 내외의 대화가 들리지 않게 문을 닫았다. 그녀는 우문호가 깰까 조심스레 들어와서는 잠이 든 그의 모습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그의 눈은 감겨 있었지만 그가 내뱉는 숨결이 왠지 잠이 든 사람같지 않았다. ‘우문호가 제왕과 주명취가 한 말을 들었을까? 아마 침상과 문은 거리가 좀 있으니 듣지 못했겠지.’원경릉은 우문호를 지긋이 바라 보았다. ‘내가 이 사람의 얼굴을 이렇게 오랫동안 본적이 있었나? 얼굴 꼴이 많이 아니네’그 순간 우문호가 눈을 번쩍 뜨며 말했다. “뭘 그리 뚫어져라 쳐다봐!”“앗! 아무것도 아닙니다.”당황한 원경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방석을 들고 침상 옆에 엉거주춤 앉았다. 우문호는 그런 그녀를 무시한채, 무슨 생각을 하는지 공허한 눈빛으로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 원경릉의 머릿 속은 온통 약상자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찼다. 원경릉은 이전까지 약상자 안에는 실험실의 약만 들어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그렇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다. 원경릉이 마음 속
서일은 씩씩거리며 걸어가는 원경릉의 뒷모습을 보며 ‘왕비가 또 무슨 일로 왕야를 화나게 한거지’라는 궁금증이 생겼다. 반면 탕양은 그 일은 나랑 상관없다는 듯 빠른 걸음으로 안으로 들어갔다. 우문호의 미간에는 피가 올라와 있었고, 창백한 그의 얼굴에 빨갛게 손바닥 자국이 나있었다. “서일. 가루 좀 가져다주시지오.”탕양이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서일이 한걸음에 달려와 그의 뺨을 보았다. “감히 왕야에게 손찌검을 하다니!”탕양은 다급하게 서일에게 말했다. “일단 가루약을 가져오시라구요!”다급한 그들과는 다르게 우문호는 담담하게 “필요없어.” 라고 말했다. 그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서일은 가루약을 가져왔다. “괜찮다. 원경릉이 이미 약을 발라주었어.” 우문호는 그를 저지하며 말했다.서일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그에게 물었다. “왕야, 저 여자가 왕야에게 뺨까지 올려부쳤는데, 아직도 저 여자가 가져온 약을 쓰십니까? 저 여자가 날이 갈수록 왕야를 우습게 보고 있습니다!”우문호는 서일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그저 탕양에게 “어서 원경릉을 찾아 약을 주거라. 아마 자금탕의 효력이 사라졌을거야. 방금 원경릉이 귀신 어쩌고… 라는 말을 하는 것을 들었어.” 라고 말했다.“그녀가 헛것이라도 본다는 말입니까? 왕비가 헛것을 보고 오해해 왕에게 손찌검 한 것 입니까?” 탕양은 염려의 목소리로 말했다. “오해는 무슨. 나는 그저 그녀가 혼잣말을 하는 것이 이상해서 정신차리라고 뺨 한대를 친것 뿐이다. 이 상처들만 회복하면, 내가 저 여자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야.”서일은 옆에서 지당하신 말씀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탕양은 그런 서일을 한심하게 바라보았다. 탕양은 원경릉을 찾으러 가기 위해 일어섰다.“서일. 여기서 왕야를 잘 돌보고 있으세요. 제가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서일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원경릉은 씩씩거리며 봉의각으로 들어갔다. 탁자를 닦던 녹주가 그녀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의아해하며 달려왔다. “왕비님. 왕야를 돌보셔야 하는거 아
단약을 먹고 나니 숨쉬기가 한결 편해졌다. 숨 쉬는게 편해지면 뇌에 산소 공급이 원활해지고 자연스레 환각이 보이지 않는 원리. 원경릉은 문득 이 약을 만든 사람이 누군지 궁금해졌다. 소월각에 도착했을 때, 탕양과 서일이 원경릉을 따라 들어갔다. 그들의 눈은 원경릉이 무슨짓을 할지도 모른다는 경계심으로 가득차있었다. 우문호는 들어오는 그녀를 담담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원경릉은 그의 미간에 고여있는 피를 보며 살짝 죄책감이 들었지만 그저 묵묵히 그의 상처를 치료할 뿐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렇게 앉아있으면 아프지 않나?” 우문호가 갑자기 원경릉에게 말을 걸었다. 적막을 깨는 그의 목소리에 원경릉은 깜짝 놀라 “전혀!” 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그녀에게 “미안해”라고 말했다.원경릉은 그의 말에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미안하다고? 그가 미안하다는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나?’그녀는 그와 화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와는 이렇게 거리를 두는 것이 안전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녀는 미안하다는 그의 말에 “됐어요. 이미 지난일이니까.”라고 흐지부지 대답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우문호의 눈에서 웃음기가 보였다. “본왕은 사과한겁니다.”원경릉은 이런 우문호의 모습이 얄미워 상처를 힘주어 눌렀다. 그러자 웃음기 있던 그의 얼굴에 한순간에 분노가 일었다. “어머 내가 모르고 건들였네. 고의는 아닙니다.” 원경릉이 말했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서일이 못참겠다는 듯 달려왔다. “왕비님! 조심 좀 하십시오!”“그럼 당신이 하던가!” 원경릉이 서일을 노려보았다. 그녀의 매서운 눈빛에 서일의 몸이 움츠러들었다. “왕비님께서 계속 하시지오……”우문호는 서일과 탕양을 번갈아 보더니 “너희들은 이제 그만 가보거라. 오늘 밤은 왕비가 내 곁을 지킬것이다.” 라고 말했다. 탕양과 서일은 우문호의 말을 듣고 물러났다. 원경릉은 침상 옆에 꿇어 앉아 그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저들이 당신 걱정을 엄청하네요.”“본왕이 그들이 먹고 자게 해주니까.”원경릉은 고개
원경릉은 의아한 표정으로 우문호를 보았다. “무슨 뜻이죠?” 우문호는 이에 대답하지 않고는 왜 기왕이 했다고 생각하느냐고 되물었다. 원경릉은 잠시 생각을 하더니 “직감” 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직감을 그리 믿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황실 안에 흐르는 기운과 그녀가 지금까지 쌓아온 데이터에 근거하면 기왕이 그랬을 것이라고 추측이 됐다. 우문호는 그녀를 훑어보더니 “직감은 무슨 얼어죽을. 그냥 말하거라.”라고 했다. “진짜 직감이 그렇다는 건데.”원경릉은 어이없다는 듯 그를 보았다.그녀는 우문호가 이렇게 예민하게 반응 하는 것을 보고 방금 자신이 한 말을 다시 주워담고 싶었다. 이런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봤자 그녀에게 득이 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우문호가 원경릉이 이런 생각을 오래 전부터 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오해하기 쉬웠다. 역사책을 많이 본 사람의 입장에서 지금 이 시국은 굉장히 복잡하고 예민하다. 기왕의 장자이며 전쟁에서 많은 승리를 거두었고, 이를 황제도 높게 평가하고 있다. 기왕은 이 기세를 몰아 조신(朝臣)들을 회유해 태자의 직위를 반드시 차지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현재 기왕의 세력으로는 우문호를 쉼게 제거할 수는 없다. 다른 친왕들도 태자가 되려는 야심은 갖고 있지만, 기왕이 무서워 우문호를 방패삼아 멀리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우문호는 원경릉에게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는 마음 속으로 그녀가 기왕을 의심하고 있다는 것이 신경쓰였다. 우문호는 정후부(静候府)에서 시국 논의가 적지 않게 일어나겠구나 느낄 수 있었다. 이런 생각이 들자 정후부에 대한 혐오감이 짙어졌다. 원경릉은 바닥에 엎드려 눈을 감았다. 최근에 많은 일들을 겪은 그녀는 머리가 땅에 붙기만 하면 졸음을 참을 수 없었다. 하지만 머릿속에서 여러가지 일들이 얽혀 쉽사리 잠이 들지 못했다. “추녀!” 침상 위에 우문호가 소리쳤다.저런 예의없는 사람하고는 상대하기 싫다는 듯 원경릉은 고개를 반대로 돌렸다. 고개를 돌림과 동시에 머리 위로 베개가 떨어졌다.
올해 서른 다섯인 탕양은 젊었을 때 풍월장(风月场)에서 이름을 날렸고, 이후로는 우문호를 따라 전쟁터를 다니며 함께 생사를 넘나든 사람이다. 이 건장한 청년이 지금 작은 여인 앞에서 어쩔줄 몰라하고 있다. ‘거기라니……? 왕비는 창피함을 모르는 사람인건가?’“그렇지?” 원경릉은 그의 벙찐 얼굴을 보며 답답하다는 듯 물었다. “탕양! 이 자식이 뭔 헛소리를 하는거야!” 안에서 우문호가 고함을 치는 소리가 들렸다.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가 어찌나 큰지 기와가 무너질 것만 같았다. 탕양은 요강을 들고 달아났다. 원경릉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안으로 들어왔다. 우문호의 얼굴은 물감을 짜둔 팔레트처럼 파랗기도 하고, 붉기도 하고, 코 언저리는 희끗희끗 했다. 그의 눈은 분노로 가득차 당장이라도 원경릉을 집어 삼킬것 같았다. 원경릉은 그가 왜 화가 났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탕양이 당신에게 치료 못한 상처가 있다고 했는데.”“걔가 헛소리를 한거야!” 우문호가 이를 악 물고 말했다. 원경릉은 이런 그를 볼수록 탕양의 말에 확신이 생겼다. 원경릉이 의사생활을 할 때 자신의 병을 숨기려고 하는 환자들을 종종 본적이 있었다. “의사에게 아픈 곳을 숨길 이유가 없어요.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상처가 점점 심해지며 다른 곳으로 감염되거나 고열로 이어질 수도 있고 위독할 시에는 생명을 잃을 수도 있어요.”원경릉은 단호하게 말했다. “너랑 상관없는 일이잖아!” 우문호가 고집스럽게 말했다. 원경릉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 말 뜻은 치료하지 못한 상처가 확실히 있다는 소리네요?”“본왕이 너를 죽여버릴거야!” 우문호는 원경릉의 교활함에 치를 떨며 고함을 질렀다. “나를 죽이기 전에 일단 회복부터 하시죠. 상처가 얼마나 심각한지 봅시다.”“까불고 있어!”“까분김에 실컷 까불겠습니다. 탕양이 말하길 상처에 이미 고름이 잡혔다고 했어요. 만약 상처가 감염되면 정말 죽을수도 있다구요.”“꺼져!”“한번 보고 꺼질게요.”“본왕이 죽는 한이 있어도 절대 보여주지 않을 것이다
안지여의 이마에 파란 힘줄이 불끈불끈했으나 냉정을 가장했다. “내가 두려워할 줄 알았나 보지? 죽음도 두렵지 않은데 뭘 더 두려워하겠어?”“넌 두려울 것이야!” 이리봉청이 고개를 돌려 이리 나리를 보고 살짝 그의 팔을 잡았다. “내가 오는 길에 늑대파 사람이 그러던데, 천하에서 제일 잔혹한 형벌을 아는 사람이 늑대파에 있다고. 그게 사실인 것이냐?”이리 나리가 가볍게 답했다. “물론 사실이죠. 훼천이라고 합니다. 늑대골 출신이에요.”“안지여가 버틸 수 있는지 어디 한 번 보고 싶구나.” 이리봉청이 말했다.이리 나리가 엄숙한 태도로 명을 내렸다. “훼천!”그러자 훼천이 급히 나왔다. “이리 나리, 분부하시지요!”이리 나리는 그가 짐짓 냉정한 척하고 있으나 눈빛이 조금씩 허물어져 가고, 몸까지 부들부들 떠는 것이 아주 만족스러워 훼천에게 담담하게 말했다. “시작해!”안지여가 갑자기 큰 소리로 욕했다. “난 네 아버지거늘, 감히 나에게 손을 대다니, 천벌을 받아 마땅한 놈 같으니라고!”이리봉청이 이 말을 듣고 잠시 주저하는 눈빛으로 이리 나리를 바라봤다.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제 아버지는 오직 저를 키워주신 안풍 친왕뿐이십니다.”이리봉청이 살짝 안도했다. “저 인간이 단지 나만 해쳤으면 네 체면을 봐서 놔줬겠지만 천문 세가의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갔으니 난 용서할 수 없구나.”“이리봉청, 너 언제 이렇게 악랄하게 변했어? 죽이려거든 그냥 죽여. 난 천문 세가 사람을 죽이긴 했어도 그들을 괴롭히진 않았어. 네가 날 죽이려거든 깨끗하게 단번에 죽여!”안지여가 크게 노해 몇 번 몸부림을 치다가 상처가 벌어지는 바람에 배에서 선혈이 흘러나오고, 훼천이 가까이 다가가자, 눈에 두려움이 깊어졌는데, 늑대골 출신 훼천은 온몸에서 피비린내가 뿜어져 나와 안지여를 덜덜 떨게 했다.“이리율!” 안풍 친왕비는 시ㅈ가하기 전에 이리 나리를 불렀다. “내가 여기서 네 엄마와 같이 있을 테니 넌 먼저 나가 있거라!”이리 나리가 안풍 친왕비에게
안지여에게 구원 병력이 없는 상황에서, 이리 나리 일행이 성을 제압하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대오가 경성에서 출발하기 전에, 안풍 친왕비가 미리 사람을 풍도성으로 보내 각처, 특히 성 수비군과 군대에 잠입시켜, 음식에 효과가 천천히 나타나는 독을 풀어, 오늘 중독 증상이 나타나도록 독의 분량을 조절했다.적어도 내일까지는 안지여를 도우러 올 사람은 없었다. 독성은 적어도 이틀이 지나야 깨끗해지기 때문에 이틀 동안 그들은 설사와 전신 무기력으로 성에 무슨 일이 있다는 걸 알아도 와서 도울 수 없었다.그리고 그들이 기력을 회복할 때쯤이면, 안지여는 벌써 죽었을 것이다.안풍 친왕과 이리 나리는 성을 통제하고, 안지여 부부를 제압해 두 사람을 줄로 묶고 지혈시켜 주었다.안지여는 요 몇 년 동안 자신이 상당히 대단하다고 여겼다. 이는 풍도성이 부유하기 때문으로, 돈으로 많은 사람을 살 수 있었으며, 여러 곳에서 추켜세워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처절하게 패배한 적이 없었던 이유는 진정한 적이 없기 때문으로, 주변의 떠돌이 비적은 작은 마을 규모로 너무 작아서 소탕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결코 그가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적이 너무 약해서였다.조정 사람과 비교했을 때, 그는 제대로 훈련받은 적 없는 비적었기에 일격도 감당할 깜냥이 못됐다.이리 나리는 둘을 중정에 묶어 두었다. 온 바닥에 남은 음식과 깨진 기와가 널브러져 있는 것을 본 안지여는 마음속 깊이 분노가 일었다. 자신의 생일날, 그를 다치게 한 것이 바로 그의 친자식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더욱이 오늘 이렇게 많은 고수가 현장에 있었는데도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이런 결말을 맞다니 너무 불쾌했다. 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을 부축하고 안지여 부부 앞으로 가서, 그녀가 안지여 부부를 내려다보자, 그들은 낭패에 달가워하지 않는 기색으로, 이리봉청은 분노하는 마음과 함께 서글픈 마음도 들었다. 그들을 죽이면 커다란 복수는 이뤄 천문 세가 망자의 원혼은 달랠 수 있었다.하지만 저들을 이렇게 쉽게
“그럴 필요 없을 것 같은데?!” 이리 나리가 검을 휘두르며 안지여를 겨누자, 안지여가 공중으로 뛰어올라 후퇴했다.공자들은 돕고 싶었으나 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에게 바로 제압당했다. 안지여는 이리율 것으로 그들은 주변 사람을 제압하기만 할 뿐 옆에 서서 전투를 관전하고 있었다.이리율의 무공이 얼마나 뛰어난지 그를 가르친 안풍 친왕 부부를 제외하고, 사실 많은 사람들은 모르고 있었다.이리율의 검법은 신속하고 맹렬해서 안지여는 상대하느라 쩔쩔매고 구석으로 몰리고 있었다. 성안의 호위들은 늑대 무리와 늑대파, 홍매문 사람들에게 막히는 바람에 안지여는 홀로 고전을 면치 못했는데 그래도 아직은 버틸 수 있었다.하지만 30분을 못 가서 안지여는 질게 틀림없었다.놀란 나머지 계속 실성해 있던 소여쌍이 갑자기 이리봉청을 향해 바싹 마른 손을 뻗어, 그녀의 목을 조르며 광적인 집착과 분노에 사로잡혀 성질을 부렸다. “멈춰, 다들 멈추라고. 안 그러면 내가 이년을 죽여버릴 것이니까!”소여쌍은 무공을 할 줄 알았지만 잘하지 못한 것이 어릴 때부터 계속 중병을 앓아 무공 연습에 소홀했고 성주 부인이 된 뒤로는 더욱 병기에 가까이할 일이 없었지만, 공력만큼은 아직 약간 있었다.소여쌍은 증오의 힘으로 이리봉청의 목을 졸랐는데, 소여쌍이 조금만 더 힘을 주면 이리봉청의 목을 부러뜨릴 것만 같았다.안풍 친왕이 차가운 눈빛으로 나서려 하자, 안풍 친왕비가 말리며 고개를 살짝 흔들었는데, 그럴 필요 없다는 뜻으로 뒤에 있던 사람들에게도 참으라는 눈짓을 하자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모두가 이리봉청이 제압당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손가락으로 뭔가를 쥐고 있어 소여쌍의 어깨 위를 휘감고 팔을 눌러 소여쌍이 머리를 돌리게 했다. 이리봉청 손에 쥔 것은 바늘로, 그대로 소여쌍의 오른쪽 눈을 찌르고 들어갔다.소여쌍이 절규하며 이리봉청을 놔주고 선혈이 흐르는 눈을 움켜쥔 채 비틀거리다 바닥에 쓰러져 데굴데굴 구르며 새된 소리를 지르는데, 원망과 저주의 말을 끊임없이 쏟아
풍도성 중정에는 안지여의 아들들과 사위가 그의 곁에 남았는데, 크고 작은 부상을 입어 점점 공포에 질려가고 있었다.‘이 사람들, 아주 대단하구나!’안지여는 이리봉청을 보고 비록 조금 냉정해 보였지만, 여전히 놀라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갑자기 소여쌍이 큰 소리로 웃으며, 몸을 앞뒤로 흔들며 눈물을 찔끔거리더니 완전히 미친 사람처럼 갑자기 웃음을 멈추고 부들부들 떨리는 손가락으로 이리봉청을 가리키며 원망했다. “뜻밖에 네가 안 죽었단 말이지? 게다가 아들까지 있고. 참으로 황당하구나. 정말 너무 황당해. 원래 죽어야 했을 인간은 죽지 않고, 잘 살아야 할 사람은 36년간 괴로움을 당했어. 이리봉청 네가 날 비참하게 만들었으니 넌 이제 지옥에 떨어져야 해.”이리봉청은 소여쌍의 말을 들은 체 만 체했는데, 그녀 눈에는 지금 안지여만 들어왔다.안지여는 36년을 살아왔지만, 이리봉청에게 있어 36년은 마치 사라진 시간처럼 멸문지화의 원한이 어제 일 같았다.안지여도 이리봉청의 눈에서 분노와 악랄함을 보고, 처음으로 마음속에 두려움을 느꼈다.안지여는 억지로 감정을 가라앉히고 말했다. “네 사람을 데리고 가. 지난 일을 묻지 않을 테니. 그렇지 않으면 풍도성에서 곧바로 10만 대군이 올 것으로, 살아서 도망갈 생각은 꿈도 꾸지 않는 게 좋아.”이리봉청의 목소리가 낮게 잠겼다. “우리는 이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바로 네 성으로 쳐들어갈 수 있어. 넌 이미 졌어.”안지여가 웃었다. “졌다고? 그래?”안지여는 수하의 대장군이 믿음직해서, 그들을 당하게 놔줄 수도 있다고 여겼다. 대장군의 부대는 분명 치밀하게 준비되어 있을 것으로, 아마 지금쯤이면 궁수들이 이미 배치를 마치고 그들을 전부 쏴 죽이기 위해 기다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의 손을 잡고 말했다. “어머니, 저자와 말 섞으실 필요 없어요. 앉아서 지켜보시기만 하면 됩니다!”말을 마치고 의자를 올리더니 이리봉청을 부축해서 앉혔다.안지여가 이리 나리를 보는데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안지여가 퍼뜩 눈을 돌려 이리 나리를 보았다.‘이리봉청이 저자를 아들이라고 불렀다는 건러니까?이리 나리는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을 찬찬히 훑어보더니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안 성주와 좀 오래된 원한을 따져야 하는데, 관련되기 싫으신 분은 자리를 피해 주시지요!”그때 한 사람이 검을 짚고 일어나 호통을 쳤다. “넌 도대체 어떤 놈이냐? 무슨 자격으로 자리를 피해라 마라야? 안 성주를 귀찮게 할 생각이면 일단 나부터 통과해 보시지!”그는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장검을 뽑아 파죽지세로 이리 나리를 향해 휘둘렀다.이리 나리는 손을 살짝 움직여 손바닥으로 칼자루를 밀자, 검이 날아가며 그 사람의 귀를 베어 한 줄기 피가 공중에 뿌려지더니, 방금까지 기고만장하던 자가 비명을 지르고 귀는 바닥에 떨어졌다.검이 다시 이리 나리 수중으로 정확히 돌아왔다.이 모든 게 3초 안에 벌어진 일이었다.“회선검?” 검법을 아는 사람들이 깜짝 놀라며 외쳤다.현장은, 숨소리마저도 들리지 않았다.회선검은 검마의 검법으로, 그렇다는 건 저 사람이 검마의 계승자?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무리에서 검마를 찾았다. 과연 두 손으로 검을 안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도 차가운 안광이 느껴졌다.과연 진짜 검마구나, 사람들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검마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이리 나리를 흘끔 보더니 속으로 의아해했다. ‘이 자식, 언제 내 비장의 검법을 배운 거야?’이리 나리의 검 끝에선 아직 선혈이 떨어지는데, 여전히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말했다. “이 아수라장에 끼고 싶은 거라면, 제가 무례하다고 원망할 생각 마세요.”“무엄하도다!” 안지여가 몹시 놀랐다가 천천히 정신을 차리고 눈을 치켜뜨며 이리 나리를 노려봤다. “너는 내가 누구인 줄 아느냐? 내가 네 아버지다!”이리 나리가 코웃음을 쳤다!안지여의 몇몇 아들이 달려 나와 소리쳤다. “아버지, 저희가 지켜드리겠습니다.”안풍 친왕이 젓가락을 던지고 일어나 차갑게 명을 내렸다
오늘은 성주의 생일이기에 경사라 섣불리 피를 볼 수는 없으므로 칼은 빼 들었지만 먼저 나서서 늑대를 죽이는 사람은 없었다.안지여는 어두운 눈빛으로 ‘늑대 무리라고? 척후병의 보고로는 안풍 친왕이 늑대 무리를 끌고 온다고 했는데, 저들이 의외로 성으로 직접 쳐들어 왔다 이거지?’라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안지여는 잔을 들고 꿈적도 하지 않은 채, 무너지기 직전까지 미동도 없는 태산처럼 냉정하고 침착했다. 늑대 무리는 안으로 들어온 뒤로 두 패로 나뉘어 서서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을 호시탐탐 엿보며 으르렁거렸다.“성주님, 성주님, 저들이 기어코 쳐들어오겠다고….” 문지기가 외치는 소리는 들렸으나 사람은 보이지 않더니, 그보다 조정에서 보낸 사람들이 먼저 들이닥쳤다.앞에 걸어들어오는 두 사람을 안지여는 본 적이 있었는데, 바로 안풍 친왕 부부로 예전에 그들이 천문 세가 사람들을 조사하러 왔을 때 그에게 속은 적이 있었다. 비록 당시 일면식 뿐이었으나 천문 세가 일을 캐내고 있다는 사실에 놀란 탓에 그들의 얼굴을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그런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어째서 별로 변한 게 없는 거지?’안풍 친왕 부부 뒤에 따라오는 10여 명의 검은 옷을 입은 노인은 그들의 호위 무사일 것으로, 주인인 안풍 친왕 부부는 별 표정이 없었으나,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들어와 고개를 들자 괴팍하고 악랄한 얼굴이 안지여 마음에 들지 않았다.안지여는 여전히 일어나지 않았고, 미소는 띠고 있었지만 매서운 눈빛으로 저들이 돌계단을 오르면 그때 일어나도 늦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게 그의 태도였다.하지만 안풍 친왕 부부는 돌계단을 오르지 않았고, 손님 중 건배를 권하느라 자리를 비운 사람들 의자에 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이 차지하고 앉아, 그들을 대놓고 밀치더니 품에서 자기 젓가락을 꺼내 옆 사람 상관하지 않고 먹기 시작해 사람들이 다 경악했다.그들이 자리를 잡고 앉자 뒤따라 들어오는 사람들이 보였다.두 사람이 사람들에 둘러싸여 천천히 걸어들어오고 있었
풍도성 안은 술잔을 주고받고 건배하며 흥겨운 잔치가 한창 무르익고 있었다.안지여는 오늘 황금색 예복을 입었는데 예복에 거대한 이무기를 수놓았으며, 황실의 밝은 황색과는 약간 구별되었지만, 자세히 보지 않으면 진짜 곤룡포로 착각할 만큼 거대한 이무기가 하늘로 날아오르는 형상이 구름을 뚫고 솟아오르는 용과 매우 흡사했다.안지여는 자신의 야심을 이미 조금도 감추지 않았다.당연히 안지여는 오늘도 야심을 감출 생각 없이 손님들에게 보란 듯이 자세를 잡았다. 심지어 인근 지역 조정 관리들이 손님으로 왔어도 안지여는 전부터 맺어온 관계였기에, 그들과 개인적인 친분이 매우 두터워 산 넘고 물 건너 저 멀리 있는 황제가 그들을 시시콜콜 관리할 수 없었다.그 자리 있던 사람들은 모두 오늘 황실에서 파견한 일행이 온다는 것을 알고, 연회석에서 큰 소리로 물었다. “성주님, 듣자하니 안풍 친왕 전하와 이리 부마께서 오늘 오신다던데 어째서 안 보입니까?”안지여가 잔을 들고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진심으로 생일을 축하한다면 결국 오겠지요.”“여정을 듣기론 오늘 분명 풍도성에 도착한다고 했는데, 어째서 밤이 되도록 아직 안 보입니까? 설마 성주님이 직접 나가서 맞이하셔야 하는 건 아니겠지요?”“성주님이 가서 맞이하셔야 한다고? 아주 허세가 대단한데? 퉤!”“누가 아니랍니까? 진심으로 생신을 축하하는 거였으면 며칠 전에 풍도성에 도착해 성의를 보여야지, 오늘까지 늑장을 부리다가 늦게서야 와서, 아직도 잔치에 오지 않은 건 분명 성주님의 체면을 안중에도 두지 않은 행태입니다. 제가 보기에 못 들어오게 막고 돌려보내시지요, 마음만 받은 셈 치고요. ”“맞습니다. 그동안 조정에서는 풍도성에서 받은 공물이 적지 않았으니, 만족한 줄도 알아야죠.”“풍도성은 더 이상 조공을 바칠 필요 없어요. 뭐 때문에 그럽니까? 수백 년 전에 풍도성은 원래 북당의 영토가 아니었어요. 선을 긋고 나와 독립해야 합니다.”모두 안지여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서, 몇 잔 들어가자, 비위를
소여쌍의 욕은 거의 반 시진 동안 계속되었다. 이것도 별로 드문 일이 아니라 무쌍거 사람들은 다 익숙해져 있었다. 성주가 오지 않거나 소여쌍이 아프기 시작해도 이렇게 욕을 해댔다.욕하다 지치기를 기다렸다가 늙은 몸종이 가서 달랬다. “부인 그러실 게 뭐가 있으십니까? 몸이 가장 중하십니다.”소여쌍이 의자에 기대 늘어졌다. 극도로 피곤해 풀린 눈으로 천정을 보며 비참함이 가슴 깊은 곳을 타고 내렸다. “오늘이 초엿새지?”“네!” 늙은 몸종이 대답했다.소여쌍이 창백한 얼굴로 말했다. “곧 15일이구나. 또 내 명을 재촉하는 고통이 오겠지. 죽으면 죽었지 다시는 그 고통을 느끼고 싶지 않다.”그러자 늙은 몸종도 매우 괴로워했다. “부인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고통도 며칠이면 그럭저럭 지나가서, 그동안도 그렇게 지내셨잖아요?”“며칠이면 뭐 그럭저럭 지나가나?” 소여쌍이 잔인한 눈빛으로 말했다. “그건 네가 이 고통을 안 당해봐서 그래. 이게 다 이리봉청 그년 짓이야. 오빠가 그년을 쫓아가서 죽이게 한 걸 정말 후회해. 그년을 잡아 와서 가두고 내가 한 번씩 아플 때마다 그년을 갈기갈기 찢어발겨 나보다 수천 수백 배 고통스럽게 해야 했어.”늙은 몸종이 소여쌍의 손을 쥐었다. “부인 그런 생각 마세요. 벌써 죽은 사람을 이제 와서 생각해 봤자 아무 도움도 안 됩니다. 성주님과 자꾸 다투지 마세요. 자꾸 다투시다 보면 감정이 사라집니다.”소여쌍이 처연한 웃음을 지었다. “오빠는 진작부터 나한테 아무 감정 없어.”“성주님은 이리봉청에게 아무 감정 없으세요. 감정이 있을 리도 없고요. 안 그러면 당시 부인을 위해 이리봉청을 죽이고 천문 세가 사람을 다 죽이셨을 리가 없죠.”소여쌍이 고개를 돌리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전에는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요 몇 년간, 성에 들어온 여자들 생긴 걸 보라고. 전부 이리봉청을 쏙 빼닮았잖아? 오빠는 역시 후회하고 있는 거야. 날 위해 이리봉청을 죽인 걸.”소여쌍은 늙은 몸종의 손을 잡는데 고여서 썩
안지여는 소야쌍을 놓고 천천히 안으로 걸어갔다. “이틀 뒤가 내 생일인데, 당신 몸 상태는 어때?”그러자 소여쌍은 시녀의 손을 뿌리치고 얼른 안으로 따라 들어가려 했는데, 몇 걸음 만에 휘청거리더니 하마터면 안지여 뒤로 넘어질 뻔했다.안지여는 소여쌍을 잡아줄 수 있었지만, 손을 뻗지 않고 그녀를 등지며 보이지 않는 척했다.시녀는 이미 이런 상황이 익숙한 듯 얼른 소여쌍을 부축해 바닥에 넘어지는 것까지 막았다.소여쌍이 숨을 돌리고 살짝 웃었다. “몸이 많이 좋아져서 오빠 곁에 있을 수 있어요. 오빠 생일에 당연히 제가 곁에 있어야죠.”안지여는 그제야 소여쌍을 돌아봤다. “생일엔 손님이 많이 올 거야, 올해는 다른 어떤 해보다 성대하게 하니까 당신도 잘 차려입어. 내가 내일 사람을 시켜 장신구를 보내도록 하지.”“네, 알았어요!” 소여쌍이 기쁜 듯이 말하며 안지여를 한없이 바라봤다.하지만 안지여는 소여쌍을 더는 보고 싶지 않았다. 사정 설명했고 체면도 차렸으니 됐다 싶어 말했다. “난 아직 일이 있어서. 당신 쉬는 걸 방해하지 않을 테니 잘 쉬고 있어.”안지여는 말을 마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려고 했다.이때 소여쌍이 갑자기 닭발 같은 손을 뻗어 안지여의 팔을 붙잡으며 서둘렀다. “오빠, 어렵사리 왔는데 저랑 얘기 좀 더 해요.”안지여가 고개를 숙이고 소여쌍의 마르고 늙은 손을 바라봤다. 손등에 주름이 자글거리는 것이 구겨진 비단 뭉치처럼 너무 흉해서 혐오감이 든 나머지 쓱 손을 뺐다. “말했잖아, 일이 바쁘다고.”소여쌍의 눈빛이 갑자기 매서워지며, 늙고 쉰 목소리로 소리쳤다. “일이 바쁜 거예요, 아니면 그 여우 년을 찾아가는 거예요? 제가 모를 줄 아세요?! 여자를 성에 얼마나 숨겨놨는지.”안지여가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헛소리야?”소여쌍이 두 손으로 가슴을 움켜쥐고 축 처진 눈에서 원한이 쏟아져 나왔다. “제가 늙었다고 싫어하는 거잖아요, 아녜요? 잊지 마세요. 오빠의 동안도 결국 늙는다고요. 이리봉청이 아직 살아있어도 지금 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