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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38화

작가: 유애
역시나 반대의 목소리가 곧바로 터져 나왔다!

하지만 우문호는 여전히 침착했다. 반대가 있을 줄 이미 예상하였기에, 새로운 정책을 추진할 때마다 항상 수많은 반대에 부딪히는 것은 익숙한 일이었다.

그는 천천히 물 한 모금을 마시고, 목여 태감에게 물러나라고 지시한 뒤, 위에서 신하들의 격렬한 토론과 흥분된 반응을 차분히 지켜보았다.

우문호가 혼인 제도를 개혁하려는 이유는 처가 쪽 세계를 보고 배운 것이 아닌, 그가 어릴 적부터 경험해 온 삶 때문이었다.

열셋, 열네 살의 아이들이 세상 물정을 어찌 알겠는가?

게다가 열여섯, 열일곱은 한창 배우고 성장할 나이이며, 정신적으로 아직 미숙했다. 물론 특별히 총명한 아이도 있겠지만, 혼인 제도는 그저 북당 전체 백성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므로 일반적인 기준을 따져야 했다.

원경릉이 지내던 세상도, 오래전에는 북당처럼 명을 따르고 마음을 따르지 못하는 혼사가 당연시되었기에, 평생 사랑이란 감정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물론 편히 지내려면, 부모님이 정해주는 혼사가 좋을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은 단순히 살아가기만 하는 존재가 아닌, 감정이 있는 존재이다.

비록 명을 따르는 혼사도 사모하는 자와 함께할 수 있었지만, 확률이 매우 낮았다.

귀족에게는 문벌이 맞는 혼인이 중시되었고, 백성에게는 일 잘하고 아이를 잘 낳는 사람이 중요했기에, 감정을 논하는 사람은 점점 없어질 정도였다.

더불어 나라도 부유해졌으니, 정신적인 영역도 함께 성장해야 했다.

물론 우문호도 이 정책이 단기간에 시행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누군가는 반드시 이 문제를 제기해야 했다. 영원히 깨지지 않는 법칙은 없으며, 똑같은 방식으로만 나라를 다스리다 보면 언젠가는 쇠퇴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논란이 일어나는 것은 오히려 좋은 일이다. 정책을 내놨을 때, 다들 아무런 반응도 없는 것이 오히려 더 위험한 신호였다.

충분한 논의가 진행되자, 우문호는 퇴조를 선언했다.

그러자 신하들이 일제히 냉 수보를 둘러싸고 황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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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궁으로 돌아온 우문호는 아무런 의심 없이 만두의 말을 믿어버렸다. 너무 진지하고 성실하게 말한 만두의 모습에서는 거짓말의 흔적을 조금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그래서 우문호는 원경릉 앞에서 그 진위를 추궁했다.그러자 만두가 웃으며 답했다.“아바마마, 어찌 진짜겠습니까? 태백조부께서 어찌 그저 제 혼사만을 위해 직접 발 벗고 나서시겠어요? 조부님께서도 중매쟁이 같은 일을 제일 싫어하시지 않습니까.”“깜짝 놀랐잖느냐!”우문호는 그제서야 웃으며 만두의 어깨를 두드렸다.“이 녀석, 조회에서 거짓을 고하다니, 다시는 하면 안 된다.”비록 말은 그렇게 했지만, 우문호의 눈빛에는 기쁨과 기특함이 가득했다. 떼론 융통성이 있어야 똑똑한 사람이다.만두가 답했다.“이 일은 태백조부님을 핑계로 삼는 것이 가장 적절합니다. 조부님은 늘 신출귀몰하시니, 찾기도 어려울 테고, 설령 물어본다고 해도, 그분이 얼마나 영리하신데요? 분명히 저를 도와 변명해 주실 것입니다.”이렇게 되면 아무 탈 없이 스무 살까지 지낼 수 있었다. 스무 살이 되어, 혼인을 원치 않는다고 해도, 그때 가서 다른 방법을 생각하면 된다.황제야 말한 것은 반드시 지켜야 하지만, 태자는 얼마든지 거짓말을 해도 되는 법이니 말이다. 아무리 거짓말이여도 남에게 해가 되지 않고,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거짓말이라면 별문제 없을 것이다.“늑대는 너와 함께 안 온 것이냐?”원경릉이 물었다.“대체 요즘 무엇을 하고 있는 건지, 계속 산으로 올라갑니다.”만두가 웃으며 어머니의 어깨를 감쌌다.“허기가 집니다. 고기를 먹고 싶어요. 아주 많이요!”“군에서 식사를 제대로 못 한 것이냐?”원경릉이 다정하게 웃으며 물었다.“아바마마께서 병사들을 절대 홀대하지 않으시니, 군 식사는 아주 좋아졌습니다. 다만 제가 요즘 너무 많이 먹습니다.”만두는 한창 클 시기였는데, 매일 체력 훈련도 많아 매번 배를 고파했다.“좋아, 목여 태감에게 음식 좀 준비하라고 시키마.”우문호도 그런 시기를 겪어봤었다. 그

  • 명의 왕비   제3339화

    노신은 그만 넋을 잃고 말았다."추 어르신, 그 말은 좀 부적절하신 것 같습니다. '남자는 서른에 장가가고 여자는 스무 살에 시집간다'는 말은, 남자는 서른을 넘기지 말고, 여자는 스무 살을 넘기지 말라는 뜻과 같은데… 어찌 반대로 해석하시는 것입니까?""난 예전부터 그렇게 이해해 왔소. 그리고 그 말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는 사람마다 다르게 해석할 수 있지 않소? 아무튼 난 폐하의 의견이 옳다고 생각하오."노신들은 한숨을 쉬며 소요공을 바라보았다."소요공, 얘기를 해보시지요. 어찌 생각하십니까?"소요공은 멍하니 말했다."무슨 말이요?""혼인 제도 말입니다. 아까부터 듣고 계셨잖습니까?""혼인 제도가 무슨 문제이오?"소요공은 더욱 어리둥절해했다.신하들은 세 사람이 언제나 한마음이라는 것을 알기에, 더는 말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후에 조용히 물러났다.신하들이 떠나자, 소요공이 물었다."혼인 제도를 바꾸는 것이 어찌 문제이오? 엄격하게 규정할 필요가 있소. 백성들은 여덟 살, 열 살에 혼담을 정하는 경우도 많다고 들었네. 비록 그저 혼담이라지만, 그래도 보기 안 좋지 않나."백성들은 혼인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 여기기에, 일찍 정해야만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삼대 거두는 백성들이 혼사를 인생의 중대사라 여긴 것을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인생의 중대사이기에 더욱 정신적으로 성숙한 상태에서 결정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게다가 삶의 지혜가 있는 자들로서, 사내가 서른에 혼사를 하고, 여인이 스무 살에 시집간다고 해도 절대 늦지 않다고 생각했다.북당의 상황과 의료 수준을 감안할 때, 혼인을 올릴 수 있는 나이를 열여덟이나, 스물하나로 조정하는 것은 오히려 가장 적합했다.민간에서는 갓난아이들이 죽는 일이 다반사였는데, 이는 의료 수준이 낮기 때문이고, 어머니의 나이가 너무 어려서이기도 하다. 아직 다 크지도 않은 열 몇살짜리 아이가, 출산하려니,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다섯째는 여인을 위해 이러한 제안을 한 것이었다. 욕을 먹더라도

  • 명의 왕비   제3338화

    역시나 반대의 목소리가 곧바로 터져 나왔다!하지만 우문호는 여전히 침착했다. 반대가 있을 줄 이미 예상하였기에, 새로운 정책을 추진할 때마다 항상 수많은 반대에 부딪히는 것은 익숙한 일이었다.그는 천천히 물 한 모금을 마시고, 목여 태감에게 물러나라고 지시한 뒤, 위에서 신하들의 격렬한 토론과 흥분된 반응을 차분히 지켜보았다.우문호가 혼인 제도를 개혁하려는 이유는 처가 쪽 세계를 보고 배운 것이 아닌, 그가 어릴 적부터 경험해 온 삶 때문이었다.열셋, 열네 살의 아이들이 세상 물정을 어찌 알겠는가? 게다가 열여섯, 열일곱은 한창 배우고 성장할 나이이며, 정신적으로 아직 미숙했다. 물론 특별히 총명한 아이도 있겠지만, 혼인 제도는 그저 북당 전체 백성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므로 일반적인 기준을 따져야 했다.원경릉이 지내던 세상도, 오래전에는 북당처럼 명을 따르고 마음을 따르지 못하는 혼사가 당연시되었기에, 평생 사랑이란 감정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물론 편히 지내려면, 부모님이 정해주는 혼사가 좋을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은 단순히 살아가기만 하는 존재가 아닌, 감정이 있는 존재이다. 비록 명을 따르는 혼사도 사모하는 자와 함께할 수 있었지만, 확률이 매우 낮았다.귀족에게는 문벌이 맞는 혼인이 중시되었고, 백성에게는 일 잘하고 아이를 잘 낳는 사람이 중요했기에, 감정을 논하는 사람은 점점 없어질 정도였다. 더불어 나라도 부유해졌으니, 정신적인 영역도 함께 성장해야 했다.물론 우문호도 이 정책이 단기간에 시행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누군가는 반드시 이 문제를 제기해야 했다. 영원히 깨지지 않는 법칙은 없으며, 똑같은 방식으로만 나라를 다스리다 보면 언젠가는 쇠퇴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논란이 일어나는 것은 오히려 좋은 일이다. 정책을 내놨을 때, 다들 아무런 반응도 없는 것이 오히려 더 위험한 신호였다.충분한 논의가 진행되자, 우문호는 퇴조를 선언했다. 그러자 신하들이 일제히 냉 수보를 둘러싸고 황제를

  • 명의 왕비   제3337화

    원경릉은 당황함에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아직 어린 만두에게 태자비라니?“당장 기각하오!”다행히 냉수보가 상소를 결재하지 않고 그에게 넘겼기에, 우문호가 직접 기각할 수 있었다.다시 결재를 마친 후, 우문호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앞으로 두 번, 세 번은 계속될 것이오. 하지만 만두의 혼사는 우리가 직접 결정하면 안 되오. 스스로 고르게 해야지.”다섯째는 현대에서 연애 자유와 결혼 자유를 제일 먼저 배웠다. 인생의 동반자는 부모나 조정 신하와 함께할 사람이 아니라, 자신과 평생을 함께할 사람이기에, 자기 마음에 들면 그걸로 된 것이다.원경릉은 아직도 열여섯, 열일곱에 혼사를 올리고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다섯째와 생각이 같았기에 다행이지, 아니었더라면 이 일로 진작에 싸웠을지도 모른다.상소를 기각한 뒤,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바로 다음 조회에서 신하가 직접 언급한 것이었다.“태자는 이제 태자비를 골라야 할 시기입니다.”황실의 계승 문제와 얽히면, 출산은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된다. 황제 외에는 다른 친왕들의 아이가 적으니, 그들은 명분이 있었다. 태자비를 빨리 정하고 황손을 낳으면 조정과 백성들도 안심할 것이라는 명분 말이다. 그렇게 결국 태자가 아이를 낳았으니, 우문 가문의 왕위 계승이 안정된 것을 보고 싶어 했다. 게다가 열네 살에 혼약을 맺는 집안도 있으니, 태자도 어리지 않다는 것을 이유로 들었다.다들 혼사를 치르지 않더라도, 먼저 태자비를 정해야 한다고 전했다.우문호는 이 일에 대해 언급조차 하고 싶지 않아, 그저 단호히 말할 뿐이었다.“태자가 앞으로 어떤 여인을 태자비로 삼을지는, 스스로 결정할 일이네. 짐은 간섭하지 않을 것이네.”이 말에 다들 충격을 금치 못했고, 반이나 되는 신하들이 무릎을 꿇고 입을 모아 말했다.“미래의 태자비를 선택하는 일은, 북당에도 중요한 일입니다. 어찌 태자에게 맡길 수 있습니까? 출신, 성품, 덕행, 능력, 예의… 모두 뛰어나야 태자와 짝이

  • 명의 왕비   제3336화

    경성으로 돌아오니 이미 해는 서산 너머로 지고 있었다.그들은 먼저 숙왕부로 돌아가 삼대 거두에게 집을 샀다고 알렸다.“집을 샀다고? 얼마나 커? 그럼 마당도 있느냐?”세 사람은 바로 몰려들어 질문을 퍼붓기 시작했다.“옥상도 있고, 꽤 넓습니다. 예전보다 훨씬 넓습니다.”원경릉이 답했다.무상황이 말했다.“그럼, 전에 지내던 집보다 얼마나 넓은 것이냐?”“반은 더 넓고, 옥상에는 온실도 만들 수 있습니다.”원경릉이 기쁜 듯이 말했다.삼대 거두는 원경릉이 왜 이렇게 좋아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듯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들은 햇빛은 밖에 나가면 바로 쬘 수 있는데, 굳이 온실을 만들 필요가 있는지 싶었다. 집이 있으면 오히려 햇빛을 가릴 텐데, 대체 왜 필요한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이때 추 어리신이 관대한 태도로 말했다.“넓은 집도 좋고, 누추한 집도 좋다. 우리 나이에는 그런 거 따질 수 없지.”원경릉이 답했다.“누추한 곳은 아닙니다.”무상황이 코웃음을 쳤다.“그 조그만 집이 누추하지 않다니? 청우헌보다 더 작지 않느냐.”청우헌은 그들이 지금 살고 있는 곳을 말한다.확실히 청우헌보다 작은 집에 살고 있는 원경릉은 이내 머쓱해졌다.그러자 무상황이 위로해 주었다.“괜찮다. 그곳은 하늘도 넓고 땅도 넓으니, 어디든 갈 수 있어. 집은 그저 쉬는 곳이니, 굳이 집에서만 머물 이유도 없지 않느냐.”이것이 가장 큰 차이였다. 여기선 마음대로 외출할 수 없었고, 밖에 나가면 항상 호위가 따라다니기에 귀찮기만 했다. 하지만 그곳은 아무도 간섭하지 않고 안전하며, 사람들도 어르신을 공경히 모시며 예의바르게 행동했다. 나이만으로도 존중받을 수 있는 곳, 이것이 바로 그들이 꿈꾸던 곳이었다. 무상황은 언제 그곳으로 갈 수 있는지 물으며 어서 준비를 서두르려 했다.원 할머니가 선물들을 정리하며 말했다.“연말에 가시지요. 저도 올해는 고향에서 설을 보내고 싶습니다.”원경릉이 할머니 손을 잡고 앉았다.“좋아요, 저도 할머

  • 명의 왕비   제3335화

    억제제를 맞았으니, 곧 돌아갈 준비를 해야 했고, 그래도 빠질 수 없는 건 바로 쇼핑이었다. 요즘 우문호는 돌아가서 선물을 나눠줄 때마다 모두 감탄하는 모습에, 아주 열정적이게 쇼핑을 했다. 하지만 선물을 사기 전, 먼저 ‘파지옥’을 만나 식사를 해야 했다.칠성의 말에 따르면 그는 지금 학교 이사장이 되었고, 식당도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칠성을 위해 그가 해준 일에 우문호는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었다.그래서 파지옥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전화기 너머는 매우 시끄러웠다.“뭐? 식사? 지금 밥 먹을 시간이 어딨는가? 한 달 전에 예약하지 않으면 식사할 틈도 없네. 겨울 방학 때 오면 다시 보게나. 일요일 일정이 전부 꽉 찼네.”“그럼, 저녁은요? 야식 드시지요!”원경릉이 말했다.“야식? 나 같은 늙은이가 무슨 야식은. 자네도 의산데, 늙은이 건강에 야식이 안 좋은 거 몰라? 안 먹네, 안 먹어.”“예. 그럼, 고마운 마음을 담아 선물 하나...”“선물은 학교 정문에 두고 가, 퇴근할 때 가져갈 테니. 그럼 이만 끊으마. 솥에서 끓이는 요리가 다 타게 생겼어. 요즘 이 길쭉한 녀석들이 어찌나 많이 먹는지, 타면 모자를 거야. 그리고 곧 애들도 밥 먹으러 올 테니, 그만 끊으마.”뚝 하고 전화가 끊겼다.우문호는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그의 고함에 멍하니 말했다.“직접 요리를 하는 것이오? 요리도 할 줄 아시오?”원경릉은 웃으며 말했다.“요리하는 걸 꽤 즐기고 있소. 아이들도 그를 아주 좋아하니 소속감을 찾을 수 있을 것이오.”우문호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런 취미가 있었다니.”“그동안 어르신들과 함께 지내긴 했지만, 어쨌든 혈연은 아니잖소. 게다가 지금 혼자 이곳에 남아 있으니, 친구가 있어도 마음 한구석의 외로움은 채울 수 없을 것이오. 아이들과 함께 행복하다고 생각하니, 그것으로 충분하오.”원경릉은 선물을 학교 경비실에 맡겼고, 경비에게 파 이사장에게 전달해달라고 한 뒤 우문호와 함께 쇼핑하러 갔다.두 사람은 파지옥과의 저녁 약속이

  • 명의 왕비   제3334화

    회의가 끝난 후, 우문호와 원경릉은 각각 교장실로 초대되어, 교장 선생님과 자녀 문제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아이에게는 문제가 없으니, 아이가 최선을 다해 원하는 대학에 진학할 수 있도록 이제는 가정에서도 문제가 없도록 보장해야 했다. 대화를 나누고 나서야, 아이의 가정이 매우 화목하고 자녀의 학습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오히려 긍정적인 자극이 된다는 것을 확인했기에, 그제서야 학교 측은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화진 고등학교와 성화 고등학교는 올해 이 두 아이에게 모든 것을 걸었다.회의가 끝난 후, 원경릉은 다섯째를 데리러 학교로 왔고, 함께 저녁을 먹으러 갔다. 학교 근처에 마침 괜찮은 야식 가게가 있었지만, 조금 시끄러웠다.시끄러운 곳을 좋아하지 않는 원경릉과 우문호는 이런 곳에 잘 오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 밤은 이런 북적거리는 분위기가 즐거운 기분에 아주 어울린다고 생각했다.두 사람은 두 병의 맥주와 한 병의 탄산수를 주문하고, 건배했다. 기쁜 마음 외에, 더 중요한 것은 안도감이었다. 그리고 아이들의 성과를 함께 한 즐거움과 성취감도 있었다.주량이 좋은 다섯째도 오늘 조금 취한 듯 보였다. 아름다운 아내와 자랑스러운 아들을 떠올리고, 북당의 안정과 발전을 생각하니, 그는 인생에 더 이상 아쉬운 것이 없다고 느꼈다.그는 억울하게 모함당하고, 민심을 잃고 모두의 웃음거리가 되었던 예전 일을 떠올렸다. 그는 평생을 그렇게 비참하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원경릉이 나타나자마자 바뀌었다.“원 박사, 고맙소!”술기운이 오른 그가 원경릉의 손을 꼭 잡고 조용히 말했다.“어찌 갑자기 이리 예의를 차리는 것이오?”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당신이 오지 않았다면, 내 인생은 웃음거리가 되었을 것이오. 당신이 왔기에, 난 인생의 승자가 되었소...”그는 한숨을 쉬며 농담을 건넸다.“운율이 좀 있네.”“취한 것이오?”원경릉이 비어가는 술병을 보며 물었다.“괜찮소. 이 정도 술에 쓰러지진 않네. 난 그저 정

  • 명의 왕비   제3333화

    대강당의 회의가 끝난 후, 다들 다시 교실로 돌아갔고, 담임 선생님이 계속 말씀을 이었다.장 선생님은 먼저 학생들의 성적을 설명하며, 성적이 오른 학생들을 칭찬하고, 전반적으로 반 분위기가 좋아졌다고 말했다. 고3다운 분위기에 열심히 공부하고 있고, 장 선생님도 의욕이 넘쳐, 부모님을 열심히 격려하며 힘이 솟는 듯했다.그는 처음 학교에 임직할 때를 제외하고 지금처럼, 이렇게 희망을 느끼기는 처음이라고 덧붙였다. 말을 마친 후, 그는 학생들의 심리 건강에 대해서도 언급하며, 성적만큼 건강한 몸과 마음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아이들에게는 앞으로 다양한 가능성이 있으니, 공부가 유일한 선택은 아니었다. 부모 중 일부는, 이미 성화 고등학교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장 선생님은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고, 그저 아이들의 심리 건강에 대해서만 계속해서 강조했다.그가 마지막으로 한 학생을 칭찬하고 싶다고 하자, 다들 우문황이라고 예상했다.역시나 장 선생님은 우문황 학생이 자발적으로 성적이 뒤처진 친구들에게 보충 수업을 해주었고, 그 결과, 친구들의 성적이 크게 향상되었다는 사실을 이야기해주었다. 많은 부모들은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우문황 덕분에 보충 수업을 들은 아이의 학습 태도가 크게 변했기에, 장 선생님의 말에 부모들은 격하게 박수쳤다.칠성이가 이렇게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 것을 보자, 우문호는 못내 눈시울을 붉혔다. 아이들이 보호받아야 할 정도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지만, 이렇게 생각지도 못한 분야에서 독립적으로 잘 해낼 줄도 꿈에도 몰랐다. 늘 어린아이로만 생각해왔기에, 지금 상황이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좋게 느껴졌다.장 선생님은 이내 문 앞에 서 있던 우문황을 향해 손짓했다.“우문황, 이리 와 봐.”이건휘가 고개를 돌려 우문황을 끌고는 그를 교실 안으로 밀어 넣으며 소리쳤다.“여러분, 이분이 바로 우리 반 얼짱이자, 천재인 우문황입니다!“이미 많은 부모님이 대강당에서 우문황을 만난 적 있었다. 하지만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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