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의 고비를 맞은 열이기상궁은 바닥에 엎드려 이의원에게 애원하고, 이의원은 난처하다는 눈빛으로 가신 탕양(湯陽)을 바라본다. 탕양은 곤란한 기색으로: “의원, 한 번 해 보는 것이 어떻겠는가?”이의원은 냉소를 띄고 “한 번 해 보라구요? 죽을 병인데 소인의 손에 왔다가 죽으면, 소인 명성만 땅에 떨어질 뿐입지요.” 기상궁은 이 말을 듣고 거의 실신할 듯 울며 가슴을 쥐어짠다. “아이고 열이야, 지지리 복도 없구나!”녹주는 기상궁을 달래 일으켜 한쪽 옆에 앉혔다.가신 탕양은 의원에게: “저 아이가 고통이 심하니, 약방문이라고 써주어 고통이라도 좀 줄여주면 안되겠는가, 밖에는 자네가 관여한 사실을 일절 비밀에 붙이겠네.” 탕양이 이 말을 하며 슬쩍 의원의 소매에 은자를 찔러 넣었다.이의원은 그제서야: “진통이야 도리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통증이 없다고 차도가 있는 건 아닙니다. 황천 길은 갈 수밖에 없지요.”“그래 그래 알겠네.” 탕양도 열이가 조금이라도 고통 없이 숨을 거두길 바랐다. 그 애는 가엽기 그지 없는데다 자라는 걸 직접 지켜 봐왔기 때문이다. 이의원이 막 들어가 약방문을 쓰려던 찰나, 예상치 않게 병자가 있는 방 문이 쾅 하고 닫히며 안으로 빗장이 질러졌다. 녹주는 방금 문이 닫힐 때 날린 옷자락을 보고 놀라 소리쳤다. “왕비 마마”기상궁은 왕비라는 말에 슬픔과 분노로 미친 암사자처럼 달려들어 사력을 다해 문을 두드렸다, “문 열어, 어서 문 열어,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안에서 원경릉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목소리는 크지 않고, 말도 딱 3마디 “구할, 방법이, 있어요.”이의원은 그 자리에서 조소를 띠며 한 마디 했다, “숨이 반도 안 붙어있는데, 구할 방법이 있다? 초왕부 어디서 이런 옥황상제가 오셨나 그래?” 기상궁은 맥이 풀려 허물어지며 탕양에게, “탕대인, 이렇게 빕니다. 문을 부숴주세요. 쇤네가 걔 옆에 있어야 해요. 걔가 얼마나 두렵겠습니까!”이런 중차대한 순간에 왕비가 나타날 줄이야, 이 무슨 아닌 밤
매맞는 왕비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무쇠 같은 손가락이 원경릉의 목을 졸랐다. 그녀의 동공이 커지며 분노에일그러진 초왕의 얼굴이 보였다. 순간 가슴에서 억지로 공기가 빠져나가고 눈 앞이 깜깜해지더니 정신이 아득해 졌다. “고작 열 살 아이를,” 초왕은 이를 악물고 원경릉의 귀에 소리쳤다, “이 지경으로 만들어? 짐승만도 못한 것, 여봐라, 왕비를 끌어 내 30대를 쳐라!”원경릉은 이미 며칠간 잠을 자지 못한 데다 체력도 거의 바닥난 상태로 따귀를 맞아 일어설 기력조차 없었다. 초왕이 목을 조르던 손을 놓자 원경릉은 주르륵 땅바닥에 떨어졌다. 공기가 다시 허파로 들어가고 숨을 쉬고자 입을 벌리는 순간 사람들 손에 질질 끌려 밖으로 나갔다.원경릉은 눈 앞이 캄캄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가운데, 얼음장 같은 초왕의 준엄한 얼굴만 보였다. 눈 앞에 펄럭이는 비단 옷깃은 어찌나 밉고, 또 어찌나 고귀한지……원경릉은 돌계단에 질질 끌려가며 뾰족한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혔다. 날카로운 자상에 눈 앞이 흐려지며 정신을 잃고 말았다.정신을 잃고 얼마 되지 않아 생전 겪어 보지도 못한 아픔이 온몸에 퍼지는데, 허리와 허벅지에 한 대 한 대 매질을 당할 때 마다 골수에 사무치는 고통으로, 뼈마디가 전부 끊어지는 듯 했다. 입 안엔 핏물이 고이고, 입술을 깨물고 혀를 깨물어도 눈 앞이 아득해 지는 고통에 자꾸만 까무러쳤다. 그렇게 혼절과 고통으로 깨어나길 계속.30대의 매질이 끝났다. 원경릉 인생에 그렇게 긴 시간은 없었다.그녀로 말할 것 같으면, 22세기를 대표하는 천재로 그녀를 추앙하는 사람이 줄을 섰고, 그녀가 어디를 참석하기만 하면 그 자리의 포커스는 단연코 그녀가 독차지했다. 얼마나 많은 병자들이 그녀가 개발한 약을 학수고대하고 있던가.그러나 여기선 남자 아이 하나 구하는 것조차 이렇게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험난하다.원경릉을 끌어다 놓고 죽든지 살든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차라리 죽는게 나을지도 몰랐다.대리석 바닥에 널브러진 원경릉의 등에 약
살아난 열이와 원경릉탕양은 녹주에게 약을 다려오라고 분부하고 기상궁을 몇 마디 위로한 뒤 나왔다.기상궁은 계속 자리를 지키는데 날이 어둑어둑해 오니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녹주도 곁으로 와 둘은 아무 말 없이 숨죽인 채 그저 열이 숨소리 하나라도 놓칠까 정신을 바짝 차렸다. 그런데 열이는 오히려 깊이 잠들더니 자시(밤 11시~오전 1시)가 다 되어 문득 깨어나, 한쪽 눈을 뜨고 기상궁에게 “할머니, 배고파!”기상궁은 펄쩍 뛸 듯 기뻤다. 다친 후로 음식을 전혀 먹지 못하고, 할미가 고생고생 얻어 온 양젖조차 넘기지 못 했기 때문이다. 기상궁은 손으로 열이의 이마를 짚어보니 과연 전만큼 뜨겁지 않다.“의원이 약이 효험이 있네, 효험이 있어!” 기상궁은 기쁨에 넘쳐 녹주에게 외쳤다.“그러게요, 의원의 약이 들었나 봐요!” 녹주도 덩달아 신이 났다.이의원은 다음날 다시 초왕부로 왕진을 왔다.듣자 하니 그 아이가 아직 죽지 않았다는데, 이의원은 여간 신기한 게 아니었다. “그 녀석 명줄 한번 질기네 그려, 숨이 거진 다 넘어갔는데.”기상궁은 바닥에 조아려 머리를 찧으며, “의원님, 그저 처방 하나만 써 주십시오, 우리 손주를 살려주세요.”이의원은 당황했다. 어제 지어 준 약은 열이의 상처를 낫게 할 수 없을 뿐더러 고작해야 통증을 다소 완화시키는 정도였으니 말이다.하여튼 소 뒷걸음질 치다가 쥐 잡은 셈 치자.의원은 열이의 맥을 짚어보니 확실히 어제보다 좋아졌고, 몸도 그렇게 뜨겁지 않다. 결국 다시 약방문을 적어 “하녀는 나를 따라와 약을 다려가게, 이 약을 연속 이틀 먹이면서 상처에 가루약을 바르고, 좋아지면 계속 와서 다려 가게.”“감사합니다, 의원님!”“왕진비용이랑 약값은 누가 주는가?” 이의원이 물었다.어제 비용은 탕양이 댔지만 오늘 비용은 기상궁이 내야 했다.기상궁은 의원의 내민 손을 물끄러미 보며 넌지시 물었다: “오십 문(100문이 1냥(兩))입지요?”“다섯 냥!” 이의원은 기분 상한 듯 대답했다.이의원은 시중에 흔한
생사의 고비를 맞은 열이, 왕비의 진실을 말하다찐빵 반 개쯤 먹고 나니 원경릉은 힘이 다소 회복되는 것을 느끼며 탁자를 잡고 일어나려 안간힘을 썼다. 상반신으로 몸을 지탱하면서 물을 따를 방법이 없어, 바닥에 엎드려 잔에 남은 물을 마실 수 밖에 없었다.좀 나아진 듯해서 천천히 다리를 움직여보고 팔을 펴고 등을 구부리려 했지만 체력이 없어 땅에 덜퍼덕 쓰러지며 등에 난 상처가 지지는 듯 아파왔다.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아내며 팔꿈치로 바닥을 디뎌가며 겨우겨우 약상자를 찾았으나, 소염제와 해열제 주사약이 놓아 둔 곳에 없었다. 주사를 놓을 수 없으니 먹는 약의 용량을 늘릴 수 밖에 없다.대략 30분쯤 지나, 비타민C를 더듬거려 찾은 후 몇 알 삼켰다. 물이 없어 그냥 넘겼더니 너무 셔서 하마터면 뱉을 뻔 했다. 약을 먹은 뒤 원경릉은 몸을 웅크리고 숨을 헐떡거렸다. 이런 육체적 고통은 생전 처음이다. 이번 매질을 당하며 원경릉은 이 시대는 자기가 살던 시대와는 다르다는 것, 신분이 높고 권력을 가진 자의 손에 인간의 생사여탈권이 쥐어져 있음을 깨달았다.따라서 그녀의 목숨은, 초왕의 손에 달려 있다.원경릉은 기필코 이 악랄하고 저열한 생존환경에 적응해야 한다.그 아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상처에서 고름은 제거했지만, 악을 쓰지 않고 좋아질 수는 없다.열이의 방.열이는 약을 먹고 다시 고열이 나기 시작했다.기상궁은 다급해 죽을 지경이다. 낮에는 분명 좋아졌었는데 밤이 되어 왜 다시 고열이 난단 말인가?녹주도 안달이 나긴 마찬가지여서, “아니면, 제가 가사 이의원님을 모셔올까요.”기상궁은 열에 들떠 숨소리마저 거칠어진 손자를 보며 이의원이 다섯 냥에 겨우 이틀 치 약을 지어준 것을 떠올렸다. 사실 그녀 수중에 더이상 은자가 없다: “아니다, 됐어.”녹주는 어쩔 줄 몰라 눈물을 흘리며, “그럼 어떡해요? 두 눈 멀쩡히 뜨고 열이가…..” 뒷말은 차마 할 수가 없었다.기상궁은 이를 악물고 비분강개한 눈빛으로, “열이한테 만약 무슨 일이 생기
위독한 열이를 고치는 원경릉원경릉은 어둠에 적응해 있었는데 불빛이 갑작스레 비치니 자기도 모르게 손으로 빛을 가렸다. 이때 털썩 하고 무릎을 꿇는 소리가 들렸다. 기상궁이 바닥에 꿇어 앉아, “왕비 마마, 쇤네 마마의 크신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마마님을 원망했습니다. 열이를 제발 살려 주시옵소서.”“날 일으키게!” 원경릉은 손을 뻗으며 쉰 목소리로 말했다.기상궁은 다급한 나머지 등롱도 팽개치고 원경릉을 부축하러 갔는데 원경릉의 등쪽에 핏자국이 흥건하게 매를 맞은 상처를 보고, 이 여자가 악랄함이 떠올라 주저하는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만약 열이가 말한 게 사실이라면?“왕비 마마, 일어서실 수 있겠습니까?”“약 상자를 가져오너라.” 원경릉은 기상궁이 자신을 얼마나 증오하는지, 그런데도 무릎 꿇고 애원하는 건, 열이의 상태가 좋지 못한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기상궁에게 약 상자를 들키든 말든 상관하지 않기로 했다.“예, 예!” 기상궁은 약상자를 들고 와 원경릉을 부축했다.원경릉은 한 걸음 디딜 때마다 등과 허벅지에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밀려오고, 겨우 문을 나섰을 뿐인데 땀이 비 오듯 흘러 내리며 덜덜덜 이가 떨렸다. “왕비 마마……”“쓸데없는 소리 말고, 가자!” 원경릉은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아냈다.생명을 구하는 일이 그녀에겐 순수하고 단순한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열이를 구하는 것은 한 번 더 머리를 굴려야 하고, 사람의 마음을 되돌려야 하는 것이 되었다. 그러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안 죽겠네 그 사람.”문득, 사람 목소리가 들렸다.원경릉은 조심스럽게 기상궁을 바라봤지만, 기상궁은 한 손에 등롱을 들고, 한 손으로 그녀를 부축하느라 말이 없었고, 원경릉이 기상궁을 바라보자 이마에 주름이 지며 묻길, “왕비 마마, 통증이 심하셔서 걷지 못하시는 것은 아닌지요?”목소리가 다르다.기상궁의 목소리는 청아한 노인의 목소리지만 방금 들은 목소리는 앳된 소리였다. 원경릉은 갸우뚱 고개를 젓는데 귓
상처가 심해진 원경릉에게 입궁 전갈이?이 모든 걸 마치고 원경릉은 너무 피곤한 나머지 탁자에 반쯤 엎드려 축 늘어졌다. 자신의 모습이 꼴불견이라는 걸 알지만 그걸 신경 쓸 상황이 아니었다.잠시 숨을 돌리자 밖에서 기상궁이 초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왕비 마마, 어떤 지요?”원경릉은 탁자를 짚고 천천히 일어서며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들어오너라.”문이 열리고 기상궁과 녹주가 뛰어들어와 열이 옆에 가더니, 열이의 숨소리가 고르게 안정된 것을 보고 기상궁은 비로소 한 시름 놓았다.원경릉은 약 상자를 들고: “오늘밤 일은 너희 둘만 알고 입을 다물어라. 초왕이나 초왕부 사람이 알게 해서는 안된다.” 기상궁과 녹주는 의아해하며 서로 바라봤다.녹주가 앞으로 나가 원경릉을 부축하고 “왕비 마마, 소인이 길을 안내하겠습니다.”“됐다. 열이를 지켜라. 머리맡에 내가 남겨둔 약이 있으니 두 시진마다 한번 씩 먹이고. 다 먹으면 나에게 더 필요할지 묻고.” 원경릉은 녹주 손을 뿌리치고 힘겹게 밖으로 나갔다.“왕비 마마!” 기상궁이 소리쳤다. 원래는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원경릉이 이전에 한 일을 떠올리면 감사하다는 말이 입밖으로 나오질 않아 그저: “밤길이 어둡습니다, 등롱을 들고 가시지요.”등롱을 건네자, 원경릉은 등롱을 받으며, “고맙네!”기상궁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고맙네? 지금 고맙다고?원경릉은 봉의각으로 돌아가 스스로에게 주사를 놓고 침대에 엎드렸다.염증이 생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상처의 면적이 너무 넓은데다 항생제 작용까지 겹쳐 그녀는 눈에 띄게 약해졌다. 고열이 난 뒤라 손가락 하나도 꼼짝할 수 없고, 물먹은 솜 마냥 한없이 바닥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곧 사방에 어둠이 깔리고 원경릉은 까무룩 잠이 들었다.얼마나 지났을까, 누군가 문을 열고 급히 들어와: “왕비 마마, 어서 일어나세요.”원경릉이 겨우 눈을 떠 보니 녹주가 안절부절 하고 있고, 해는 이미 중천에 떠 있다.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열이가
반격의 결과, 자금탕을 마시게 된 원경릉원경릉은 꿈인지 생신지 정신이 오락가락한 상태로 약상자를 침대 밑으로 밀어 넣는 순간 약상자가 사라졌다. 이번엔 잠깐 숨을 멈추고 기다렸다가, 손을 뻗어 침대 밑을 더듬어 보니 진짜 아무것도 없다. 와들와들 떨며 침대로 기어 올라와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최근 들어 벌어지는 사건은 그녀의 의식 범주를 넘어서는 일로 전문지식과 비전문지식을 전부 동원해도 답이 안 나왔다. 인류는 미지의 사건을 조우하면 두려움과 공포에 휩싸이기 마련이다. 지금 그녀가 그렇다.“끼익” 소리를 내며 문이 열리고 고개를 들어 돌아보기도 전에 차가운 기운이 사방을 에워 싸며 머리가 지끈하다 하더니 원경릉은 그만 침대에서 땅으로 굴러 떨어졌다.“짐 앞에서 죽어가는 척을 해? 당장 가서 죽어버리던지, 아니면 옷 갈아입고 짐과 입궁하도록 당장 일어나지 못할까.” 서릿발 같은 목소리가 정수리에 꽂히며 거칠게 몸을 뒤집힌 원경릉은 등의 통증에 전신에 경련을 일으켰다. 숨도 제대로 쉬어지지 않는데 무쇠 같은 손이 원경릉의 턱을 으스러뜨릴 듯 쥐었다. 고통에 찬 그녀의 눈동자와 광분한 초왕의 눈이 마주쳤다. 냉혹하고 매서운 얼굴은 가릴 수 없는 경멸과 증오로 가득했다, “경고하지. 여우 짓은 그만 두는게 좋아, 만약 다시 한 번 태후 마마 앞에서 그 간사한 혓바닥을 놀렸다간, 아주 숨통을 끊어버릴 테니까.”원경릉은 고통이 극심한 나머지 울분이 차 올랐다. 인간의 생명이 이 사람들 눈에는 한 푼어치의 가치도 없는 것인가? 상처가 이렇게 심한 사람을, 그마저도 가만 놔둘 수 없다는 말인가.그녀는 전신의 기력을 쥐어 짜내 머리를 늘어뜨리고 무릎으로 바닥을 짚으며, 머리로 힘껏 초왕의 얼굴을 들이 받았다. 너 죽고 나 죽자는 최후의 일격을 가한 셈이다.초왕 우문호는 원경릉이 반격할 거라 상상도 못했고, 머리로 들이받는 바람에 피하지 못해 눈 앞이 번쩍하며 어찔했다.원경릉 자신은 다 죽어가면서도 이를 악물고, 초왕이 아직 정신을 못 차린 틈에 그의 손
원경릉의 입궁약을 마시고 원경릉은 속이 따듯해 지며 한결 편안해 졌다.“왕비 마마, 궁에서 돌아오시면 천천히 몸조리 하실 수 있게 쇤네가 준비하고 있겠습니다. 우선 잠시라도 눈을 좀 붙이세요.” 기상궁이 말했다.원경릉은 눈을 감자 머리 속에 폭죽이 끊임없이 터지는 것 같고, 과거에 들었던 말이 귓전에 울렸다. “미워한다고? 당치도 않은 소릴. 짐은 네가 혐오스러워. 짐의 눈에 너는, 더러운 벌레만도 못한 존재야. 사람을 증오심에 불타게 한다고. 아니면 짐이 약의 힘까지 빌려 너와 합방할 필요도 없었겠지.”초왕 우문호의 목소리다, 원한과 증오가 가득 찬 이런 매정한 말을 그녀는 난생 처음 들었다.누가 귓가에서 엉엉 울고 있다, 머리 속의 폭죽이 터지더니 구불구불 흘러내리는 선혈로 변한다.점점 모든 것이 차분해 진다.마치 머리 속에 수천 수만 개의 어지러운 선들이 전부 깔끔하게 정리된 것 같은 느낌이다.통증도 점점 사라졌는데, 정확히 말하면, 사라진 게 아니라 느낌이 없어졌다.원경릉은 눈을 떠 녹주가 침대맡에 서있는 것을 보고 미간을 움찔거렸다.“왕비 마마, 좀 어떠세요?” 그녀가 눈 뜬 것을 보고 녹주가 서둘러 물었다.“안 아파.” 원경릉이 쉰 소리로 대답했다.그렇다 아프지 않다. 하지만 전신에 감각이 없는 것은 공포 그 자체다. 원경릉은 손을 뻗어 볼을 꼬집어 보았다. 역시 아무 느낌도 없다.이건 마취약보다 효과가 강력하다.“일으켜 드리겠습니다, 옷을 갈아 입으실 게요, 안 그러면 왕야께서 노하십니다.” 녹주는 손을 뻗어 그녀를 부축하고 기상궁도 마침 옷을 가지고 밖에서 들어온다. 기상궁을 원경릉에게 “어서 옷을 갈아입으세요, 왕야께서 서두르라 십니다.”원경릉이 감각없이 서있자 두 사람은 속옷을 벗기고 새 옷을 갈아 입힌다. 상처를 꽁꽁 싸매도 그녀는 아무 느낌이 없다.옷을 갈아 입고 구리 거울 앞에 서자, 원경릉은 비로소 거울에 비친 사람을 훑어봤다.이목구비가 뚜렷하고 피부가 희며, 길고 구부러진 속눈썹 아래 생기라곤 전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