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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의 왕비
명의 왕비
Author: 유애

제 1화

Author: 유애
왕비 합방하다

북당(北唐), 초왕부(楚王府) 봉의각(鳳儀閣)

일렁이는 촛불에 방안 곳곳에 붙여 놓은 낡은 붉은 ‘희(喜, 축 결혼)’종이가 비치고, 금박의 대조가 어슴푸레한 느낌을 떨쳐내는 가운데 벽에 한 쌍의 그림자가 떠오른다.

원경릉(元卿淩)은 원하지 않는 것을 참고 또 참는 얼굴이다.

결혼한지 어언 1년, 그는 원경릉의 털 끝 하나 건드리지 않았다. 그런데 그제 입궁했을 때 태후(太后)가 원경릉의 밋밋한 배를 보고 실망한 기색으로 후궁(侧妃)을 들이는 것에 대한 말을 꺼내는 것이 아닌가. 그녀는 태후께 하는 수 없이 둘이 결혼한지 1년이 되었지만, 아직 합방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털어놓을 수 밖에 없었다.

원경릉은 울고불고 고자질하는 것이 싫었다. 그러니까 그냥, 내키지 않았을 뿐이다.

13살에 처음 그를 본 이래, 마음을 온통 그에게 빼앗겨 갖은 수단을 다 동원해 결국 그의 정비가 되었다. 제 아무리 차가운 돌덩이라도 뜨겁게 타오르게 하리라 믿었건만, 그건 단단히 착각한 거였다.

서로 부부이고, 낭군이 분명했지만, 그의 눈빛에는 단 한 가닥 연민조차 없이, 오히려 집착에 가까운 증오만 있을 뿐이었다.

“윽……”

마음 속에 알 수 없는 원망이 솟구치며 그녀는 있는 힘껏 입술을 깨물었다.

선혈이 배어 나와 비릿한 피가 입안으로 방울져 들어갔다.

그는 낮게 깔린 눈빛으로 훤칠한 몸을 일으켜, 한 손을 그녀의 얼굴 옆에 바짝 댄 채 얼음같이 냉정하게, “원경릉, 네가 바라던 대로 짐이 너와 합방했으니, 이제부터 짐은 너와 일체 타인이다.”

원경릉은 절망과 슬픔의 웃음을 띄우며, “당신은 결국 절 미워하는군요.”

푸른 옷자락 아래 초왕(楚王)의 건장한 몸매와 늘씬한 다리로 쭉 걷어차니, 탁자고 의자고 우당탕탕 넘어지며 물건이 사방에 떨어지고 깨지는 가운데 그는 경멸에 찬 눈빛으로 말했다, “미워한다고? 당치도 않은 소릴. 짐은 네가 혐오스러워. 짐의 눈에 너는, 더러운 벌레만도 못한 존재야. 사람을 증오심에 불타게 한다고. 아니면 짐이 약의 힘까지 빌려 너와 합방할 필요도 없었겠지.”

그는 매정하게 나가버렸고 푸른 옷자락이 문 앞에서 사라지는 것이 보였다. 그저 쓸쓸한 바람만 문을 휩싸고 돌자 순간 그녀의 마음도 차갑게 식었다.

그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려오는데, “앞으로 저 여자를 주인으로 모실 필요 없다. 우리 초왕부에 개 한 마리 더 키우는 셈으로 치고.”

원경릉의 소원대로 그와 합방 했건만, 그렇다, 그는 이렇게 그녀의 마음을 산산이 부서뜨렸다.

그녀는 머리에 꽂은 비녀를 뽑아……

봉의각에서 시녀의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왕비가 자진하셨습니다……”

어둠이 짙게 깔린 봉의각, 기상궁(其嬤嬤)은 의사가 가는 것을 배웅하고 차갑게 굳은 얼굴로 안으로 들어갔다.

“왕비 마마, 기왕 돌아가시려 거든, 왕야(王爺)께서 이혼장을 쓰시거든 하세요, 그렇지 않으면 왕부를 더럽히고 왕야의 이름에 누를 끼치시게 됩니다.”

원경릉은 겨우 눈을 떠, 눈 앞의 이 흉악한 여인네를 바라보았다.

“물……”

목이 타 들어가는 것 같다.

“죽고 싶으면 어디 죽어보세요. 할 수 있으면 물도 스스로 따라 마시고.” 기상궁은 말을 마치고 증오의 눈빛으로 그녀를 째려보며 퉤하고 침을 뱉고 나가버렸다.

원경릉은 안간힘을 다해 몸을 일으키자 온 몸이 산산이 부서지는 듯한 통증이 엄습했다. 탁자로 기어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물을 따라 허겁지겁 마시고 서야 비로소 살아난 것을 느꼈다.

그녀는 자신의 손목의 상처를 바라보며 잠시 멍 해졌다. 지금까지 눈앞에서 벌어진 일을 전부 받아들일 수가 없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신동이라고 소문이 나서 10살에 고3까지 마치고 YS의과대학에서 현대 임상의학 학위를 받고 16살에 22세기 최연소 박사 학위를 보유했으며, 이후 의학은 물론 생명공학에 이르기까지 박사학위를 두루 딴 뒤, 바이러스 분야에 흥미를 가지고 바이러스 연구소에 2년간 틀어박혀 있다가, 한 생명공학 회사에 스카우트 되어 특정한 자극으로 대뇌를 개발하는 약을 연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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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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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na Kang
왕세자비로 환생하다니...라는 이름의 소설하고 완전 똑같습니다. 한 사이트에 동일한 소설을 두가지 이름으로 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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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의 왕비   제3308화

    장 선생은 물을 한 모금 마시고는 목을 가다듬었다. 이제 목이 그렇게 아프지는 않았다. "자, 모두 조용! 오늘 너희들한테 기쁜 소식을 하나 전하려고 한다. 이번 기초 시험 평가에서 우리 반 학생이 무려 전교에서 압도적인 성적을 거뒀다. 전 과목 만점, 우리 성화 고등학교 개교 이래 처음 만점을 받은 학생이다!"조용히 수군거리던 학생들은 순간 정적에 휩싸이며 놀란 눈으로 장 선생을 바라보았다.학생들은 그의 말이 장난이라 생각했다. 설령 만점을 받을 사람이 있다고 해도, 성화고 학생일 리가 없었고, 더군다나 6반일 리가 없을 거라고 여겼다. 장 선생은 다시 물을 한 잔 마신 후, 부드러운 시선으로 우문황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만점을 받은 학생은, 바로 새로 전학 온 우문황 학생이다. 전 과목 만점!"순간 반 전체 50여 명의 시선이 일제히 우문황에게 향했다.‘만점을 받았다고? 사람이야?!’‘아니, 쟤 예전에 한 자릿수 점수 받지 않았었나? 거기에 소수점까지 있는 황당한 성적이었잖아?’이지혁은 잠결에 우문황이 만점을 받았다는 말을 듣고, 소매로 얼굴을 문지르며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만점? 너 커닝했지?!"하지만 커닝을 해서라도 만점을 받았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었다. 이지혁은 책을 펼쳐놓고 답을 찾아봐도 합격선에 도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6반에도 간혹 성적이 잘 나오는 학생이 있었지만, 대부분 간신히 합격선에서 아슬아슬하게 오르내릴 뿐이었는데, 만점에 심지어는 전교 1등이라니.부러움과 질투, 경외의 눈빛이 모두 우문황에게 쏟아졌지만, 그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만점이 그에게는 너무나도 쉬운 일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충격적인 소식에 반 전체가 이내 조용해졌고, 그 후로 장 선생님이 반복해서 들려주는 감동적인 격려의 말도 학생들은 그저 묵묵히 들을 뿐이었다. 이전 같으면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 말들이었지만, 오늘은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수업이 끝난 후 장 선생이 우문황을 불렀다."우문황, 잠시 나와봐."그러

  • 명의 왕비   제3307화

    하지만, 이건 너무 대단한 일이었다. 모든 과목에서 만점을 받다니? 심지어 국어까지도 만점이었다. 앞부분의 이해 및 분석 문제를 다 맞혔다고 해도, 작문에서 만점을 받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교사로서 이런 성적을 보니, 장 선생은 정말 기뻤다. 비록 그가 담당하는 반 학생은 아니지만, 모든 학생이 좋은 대학에 진학하고, 나라 발전에 기여하기를 바라는 것이 바로 교사로서의 작은 소망이기 때문이다.게다가, 이런 학생이 나오면 학교에도 큰 영광이었다.교장 선생님이 둥근 안경을 살짝 밀어 올리며 그를 바라보았다.“장 선생, 이 성적표는 장 선생 반 우문황 학생의 것이네.”그러자 장 선생은 너무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너무 놀란 나머지 입까지 떡 벌어졌다.“네…? 우문황 학생…? 그 학생 것이라고요?!”교장 선생님은 안경을 벗고, 손수건으로 눈가를 살짝 닦으며, 약간 울먹이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맞네. 우리가 보물을 발견했어! 이렇게 많은 세월이 지나 드디어 한 명의 천재가 나왔군.”“그 애가요? 하지만 그 학생은 그전까지 성적이…”장 선생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넋을 잃고 중얼거렸다.“조만간 부모님과 상담할 생각이네. 이전 성적은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앞으로의 성적이지. 장 선생, 오늘은 중요한 일을 의논하러 자네를 오라고 했네. 우문황 학생을 계속 6반에 둘 수는 없지 않는가? 그래서 1반으로 옮기려고 하네.”장 선생은 순간 멍해졌다. 조금 전까지 기쁨에 차 있던 얼굴이 점점 굳어지기 시작했다.그러자 방 선생이 급히 말했다.“장 선생님, 오해하지 마세요. 선생님의 뛰어난 학생을 빼앗으려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선생님께서도 재능 있는 아이를 아끼는 분이시잖아요? 이런 성적을 가진 학생이 계속 6반에 머문다면 성적이 크게 떨어질 겁니다. 그것은 정말 재능을 낭비하는 것이죠.”장 선생이 착잡한 마음으로 성적표를 꼭 쥐었는데, 문득 그도 방 선생의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6반은 솔직히… 공부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학

  • 명의 왕비   제3306화

    방 선생은 아내와 영화를 보며 휴식을 취할 생각이었지만, 영화도 포기하고 바로 차에 올라타 학교로 돌아갔다.장 선생은 오늘 몸이 좋지 않아 추가 근무를 하지 않았는데, 오후가 되자 더 이상 버티기 힘든듯 병원에까지 다녀왔다. 그러자 의사는 성대와 목이 염증이 생겼고 약간 열이 난다고 했기에, 그는 약을 먹고 핸드폰을 무음으로 설정한 후 바로 잠에 들었다.한밤중이 되어 잠에서 깨어난 그는 어렴풋이 머리맡의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방 선생에게 여러통의 전화가 걸려왔었지만, 늦은 시간이라 다시 전화하지는 않기로 했다.그는 몸이 아프니, 마음도 유난히 약해지는 것 같았다. 점점 더 이 일을 버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사직하고 싶은 마음 또한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월요일이 되어, 장 선생은 여전히 목이 아팠지만, 죽을 마신 후 핸드폰을 들어 방 선생에게 전화를 걸 준비를 했다. 장 선생은 방 선생의 전화가 성적 관련 이야기라는 것을 눈치챘다. 예전에도 시험을 치른 후, 성적이 이전보다 나빠지면 방 선생은 밤새 전화를 해왔기 때문이다.그는 이제 그런 일에 대응하는 것도 지쳤기에, 사직서를 꺼내 들고, 오늘은 반드시 제출하겠다고 다짐했다.그런데 주차장에 도착하자마자 교장에게서 전화가 와, 장 선생은 서둘러 전화를 받았다."좋은 아침입니다, 교장 선생님."전화기 너머로 교장의 다정하고 온화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장 선생, 몸이 아프다던데 괜찮나?"그는 멈칫하다가, 무심코 핸드폰 화면을 확인했다. 전화기 너머의 사람이 분명 틀림없이 교장인데, 목소리와 말투가... 너무 부드럽지 않은가? 게다가 ‘야’가 아닌 장 선생이라고 부르다니?"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교장 선생님. 이제 괜찮아져서 지금 학교로 가는 중입니다.""그렇다면 다행이군. 학교에 도착하면 바로 내 사무실로 오게. 긴히 할 이야기가 있네."교장의 목소리는 여전히 친절하고 따뜻했다.장 선생은 바로 "네."라고 대답한 뒤 전화를 끊었다. 교장이 이렇게나 다정한 목소리로 말하는 것

  • 명의 왕비   제3305화

    다음 날 학교로 돌아오자마자 그는 사직서를 작성했다. 이틀 동안의 모의고사가 끝난 후 교장에게 제출할 생각이었다.고3의 첫 번째 모의고사는 학교에서도 상당히 중요하게 여겼다. 특히 1반을 더욱 신경 썼는데, 1반이야말로 진정한 실험 반이자 특별반이었기 때문이다.1반에는 성적이 시 전체에서 1000등 이내에 드는 학생이 두 명이나 있었는데, 이는 성화고등학교의 입장에서는 매우 뛰어난 성과였다.학교는 그런 그들을 더욱 집중적으로 육성하였기에, 이번 모의고사가 시 단위의 성적에 반영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교장까지 직접 나서서1반 학생들을 격려하며 사기를 북돋아 주었다.시험은 이틀 동안 진행되었고, 시험 감독은 여섯 개 반의 선생님들이 섞여 배정되었다.장불운, 장 선생은 운 좋게도 1반의 수학 시험 감독을 맡았다. 1반 학생들이 문제를 풀며 집중하는 모습을 보자, 그는 부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가장 우수한 두 학생의 섬세한 풀이 과정을 보자, 감탄사가 저절로 나와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다. 이틀간의 시험이 끝난 후, 선생님들은 함께 식사하러 갔다. 식사 자리에서는 시험 감독을 맡은 선생님들이 각 반의 시험 상황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2반 담임이 웃으며 말했다."우문황 학생은 시험 시작하고 30분 정도만 풀고 그냥 멈췄더라고요. 이번 시험 문제가 좀 어려웠던 모양이에요.""정말요? 저도 봤는데, 30분 정도 쓰다가 멈추더라고요. 그런데 이번 국어 시험 문제가 꽤 쉬운 편이었어요. 다만 작문이 좀 어려웠죠."수학 담당 선생님이 말을 덧붙이지자, 이에 방 선생이 웃으며 말했다."그만, 그 학생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 합시다! 전학생이니,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겠죠."그러고는 장 선생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이번 시험이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에요. 어차피 고3은 시험이 많으니까요. 앞으로도 따라잡을 기회는 충분하니 힘내세요!"장 선생은 가방 속에 사직서를 넣으며, 방 선생에게 이일을 먼저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그가 허리를 곧

  • 명의 왕비   제3304화

    시끄러운 소리에 기숙사에 있던 남학생들이 모두 우르르 달려 나왔다.그런데 이건휘가 벽에 붙어서 다리를 올린 자세가 마치 강아지가 오줌을 싸는 자세와 똑같아 다들 보자마자 배를 끌어안고 웃기 시작했다.평소 이건휘는 성적은 꼴지면서 태도는 제일 오만했기에, 지금까지 모두가 보는 앞에서 이런 창피를 당한 적이 없었다.그는 온힘을 다해 움직이려고 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아서 너무 당황스럽고 분하며 부끄러웠다.바로 그때, 사감이 복도에 학생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고 인파를 뚫고 나왔다.이건휘를 발견한 사감은 두통이 밀려왔다.“너 또 무슨 장난질을 하는 것이야?!”사감이 다가가 그의 어깨를 당기고 나서야, 그는 드디어 움직일 수 있었다.이건휘는 이제 사지가 멀쩡해졌는지 한참을 움직이다가 사감을 껴안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말썽꾸러기인 그가 우는 것을 처음 본 사감은 괜히 마음이 약해졌다.예전에 그가 말썽을 피울 때마다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아직은 아이이기에 참았던 것이었다.“됐어. 그만 장난치고. 얼른 돌아가서 씻고 자.”짐승돌이 재빨리 다가와 이건휘를 부축하면서 기숙사로 돌아갔다.그 사이 우문황은 샴푸가 잔뜩 묻은 이불을 이건휘의 이불과 바꾸고 침대에 누워 있었다.이건휘가 기숙사로 들어오자 구두쇠가 다가가 속닥거렸다.“9점짜리가 이불을 바꿨어. 우린 건드리지 못하겠어.”이건휘는 샴푸가 묻은 이불을 보다가 눈을 감고도 여전히 잘생긴 우문황을 쳐다보았다.방금 몸이 움직이지 못한 것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철렁내려 앉았다.그는 말없이 이불을 말고는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이건휘는 기숙사의 대장이라 그가 제압당한 이상 다른 룸메이트들은 감히 우문황에게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지금 우문황은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실험반은 그가 상상했던 것과 너무 달랐다.다들 미쳤는 게 분명했다. 3학년인데도 유치한 장난을 치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수능은 유일한 출로는 아니지만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출발점인데 자신의 앞날을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다들 꿈

  • 명의 왕비   제3303화

    장 선생은 잘생긴 그의 얼굴을 다시 보았다.예쁘게 생긴 아이들은 항상 그의 마음을 약하게 만들었다.어차피 반에서 꼴찌인데 성적이 형편없다면 한동안 웃고 지나면 될 일이었다.“알았어. 내일 시험 봐. 대신 점수에 너무 신경 쓰지 말고. 아직 일년이 있는데 좋은 대학에 가고 싶다면 얼마든지 따라올 수 있어.”장 선생이 그를 격려해 주었다.“선생님, 걱정 마세요. 제가 실망시키지 않을 겁니다.”우문황의 단호한 말에 장 선생은 웃음이 나왔다.“그래. 그럼 됐어. 돌아가.”이보다 더 실망할지 모르겠지만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생각하기로 했다.“선생님 안녕히 계십시오.”우문황은 인사를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장 선생은 적어도 예의는 있는 아이라고 여겼다.저녁 자습시간이 끝나고 우문황은 기숙사로 돌아갔다.기숙사 입구에 있는 공용전화기로 집에 전화를 했더니 원 교수가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선생님이 저를 엄청 이뻐하세요. 친구들도요. 오늘 저녁에 기숙사에서 환영 파티를 해준대요. 애들이 잘해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우문황은 걱정시키지 않으려고 거짓말을 둘러댔다.“그럼 됐어. 이제 안심해도 되겠어.”전화기 옆에서 안심하는 외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손자의 성적은 걱정되지 않지만 학생들에게 괴롭힘을 당할까 봐 은근 걱정이었다.그런데 친구들이 다 좋아한다니 이제 조금은 안심할 수 있었다.“넷째 형이 전화 왔었어요?”우문황이 물었다.“방금 전화 왔었어. 말로는 친구들이 공부하느라 바빠서 자기한테 신경도 쓰지 않는대. 아주 그냥 밤 늦게까지 공부하나 보더라.”우문황은 짧게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넷째 형은 엘리트 반에 들어갔다.엘리트 반의 학생들은 명문대에 들어가기 위해 필사적으로 공부할 것이다.그는 돌아서서 기숙사로 들어갔다.한 기숙사에 여섯 명이 있는데 앙숙인 이건휘과 함께 살게 되었다.게다가 짝꿍인 이지혁도 있고 나머지 셋은 이건휘와 관계가 좋아 보였다.그들은 이름을 부르지 않고 별명을 불렀다.이건휘는 ‘대장’, 이지혁은 ‘

  • 명의 왕비   제3302화

    수업이 마쳤다는 종이가 울렸는데 장 선생은 나가지 않고 새 학생에게 우르르 몰려가는 여학생들을 보았다.“내 이름은 강소영이야.”“내 이름은 윤가혜.”“내 이름은 서연이야.”여학생들은 시키지도 않는 자기소개를 하더니 우문황에게 물었다.“너 어느 학교에서 전학 왔어?”“이름이 너무 멋지다. 너 복성 맞지?”“평소 취미가 뭐야? 주말에 내가 밀크티 사줄까?”그때 우문황은 머리 위에서 책이 떨어지는 것을 발견했다.손을 뻗어 책을 움켜쥐고는 벌떡 일어섰다.“이건휘, 너무해! 전학생을 괴롭히지 마!”윤가혜라 부르는 여학생이 우문황의 편을 들어 책을 던진 남학생을 혼냈다.“손이 미끌어졌어. 불만이야?”이건휘는 콧방귀를 뀌며 우문황의 손에서 책을 빼앗아가더니 바지 호주머니에 찔러 넣었다.“나 오줌 싸러 간다. 금사빠들과 말 섞기도 싫어.”“우문황, 저 녀석 무시해. 아주 나쁜 놈이야.”윤가혜가 다정하게 설명했다.“맞아. 우리 반에서 꼴찌야. 번마다 십 몇 점을 맞아도 창피한 줄 몰라.”“그럼 너희들 성적은 높아? 너희들도 20점 아니면 30점이잖아.”우문호의 건너편 짝궁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그 소리에 우문황은 더 이상 있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여기 학생들은 대체 어떻게 생겨먹었길래 20점, 30점을 맞을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애들아. 내가 알아봤어.”그때 한 남학생이 교실로 뛰어오면서 싱글벙글 웃었다.“전학생 우문황 있잖아. 과목에서 최고인 수학 점수가 9,5점이래. 우리 반 꼴지 이건휘보다 더 꼴통이야.”“하하하, 진짜야?”남학생들이 갑자기 폭소를 터트렸다.“완전 쓰레기잖아.”그 바람에 다들 우문황에게 비웃는 시선을 보냈다.심지어 방금 그의 편을 들던 여학생도 웃음을 참지 못했다.우문황은 그들을 뒤로하고 복도에 있는 온수기에 물을 따르러 갔다.그때 화장실에 다녀온 이건휘가 일부러 그의 얼굴에 물을 뿌리고는 비아냥거렸다.“9점짜리였어? 퉷!”우문황이 얼굴에 묻은 물을 닦으며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거

  • 명의 왕비   제3301화

    장 선생은 겨드랑이에 교재를 끼고 자리에서 일어섰다.“그래. 수업 시간이 되었으니까 따라와. 학급 친구들을 소개해줄게.”“감사합니다.”우문황이 공손하게 대답했다.장 선생은 고개를 들어 그를 힐끗 쳐다보았다.‘어이쿠, 키가 180은 되겠는데? 반반한 얼굴로 연애나 하지 마라.’그는 속으로 생각하다 한숨을 내쉬었다.3학년에 연애하는 것을 반대하지는 않았지만 실연하면 분명 문제가 발생했다.며칠 전에도 큰일이 날 뻔했는데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3학년 6반은 6층에 있었다.4월의 날씨는 따뜻하지만 남쪽에 위치한 광원시는 벌써 여름이 된 것처럼 더웠다.6층에 도착한 장 선생은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그가 돌아서서 우문황을 힐끗 쳐다보았다.옥처럼 맑은 얼굴에 땀도 나지 않고 심지어 가쁜 숨도 쉬지 않았다.6층에 올라서자 벌써 반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졌다.수업 종이 울려도 학생들은 스스로 제자리에 가지 않고 여학생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화장품에 대해 열렬한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남학생들은 또 뭐가 그렇게 신나는지 흥분된 목소리로 떠들었다.장 선생이 문을 팡팡 치면서 목청을 높였다.“조용해. 수업이야!”학생들은 저마다 짜증을 부리며 제자리도 돌아갔다.그 장면을 본 우문황은 경악하고 말았다.‘실험반 아니었어? 규칙도 지키지 못하면서 실험반이라고?’“자, 전학생을 소개하겠다.”장 선생은 강단에 서서 우문황을 가리켰다.“이름은 우문황이고 수업이 끝나면 서로 인사들 나눠라!”갑자기 51명의 눈동자가 전학생에 쏠리더니 여기저기서 탄성이 흘러나왔다.“와. 개잘생겼어.”“기준 오빠보다 더 잘 생겼잖아.”“다리 길이를 봐. 연예인 뺨치는데?”여학생들과 상반되게 남학생들은 차가운 눈으로 쏘아보았다.“잘생기면 다야? 한 주먹거리도 안 되겠네.”그때 장 선생이 나서서 분위기를 완화시켰다.“우문황 학생, 맨 뒷줄에 가서 앉아.”우문황은 장 선생이 시키는 대로 뒤로 걸어가자 후문 옆에 책상이

  • 명의 왕비   제3300화

    얼마 전에 원 교수는 성화고등학교와 거리가 아주 가까운 푸지오파크에서 가장 높은 복층집에 이사했다.원 교수가 여기에 이사 오겠다고 고집한 이유는, 손자가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보다 나이가 어린데, 성적 쓰레기들 집합소이자 학교 폭력도 끊기지 않는 학교에 다니는 것이 걱정되어서 가까이서 지켜보려고 했었다.“난 정말 학교가 마음에 안 들어요.”원 교수의 부인은 못마땅해서 한숨을 쉬었다.원씨 가문의 자식 원경주와 원경릉은 어릴 대부터 에이스 반을 다녔으니 기분이 안 좋은 것은 당연했다.”“외할머니, 저는 꽤 마음에 들어요. 형이 다니는 학교와 가깝잖아요.”칠성이 웃으면서 말했다.본인이 선택한 학교에서 얼마 안 가면 화진사립고등학교가 있었다.이 학교의 합격선은 600점이라 돈이 있어도 들어갈 수 없었다.화진고등학교의 이과가 유명하여 명문대에 입학할 확률이 50%에 달했다.이것은 사립고등학교에 있어 대단한 숫자였다.콜라가 항공과로 발전하려면 좋은 학교에 들어가야 하고, 칠성은 감독이 되고 싶어서 성화고등학교의 예술반에 지원하게 되었다.그런데 실험반만 자리가 나서 어쩔 수 없었다.솔직히 실험반은 대부분 학년에서 성적이 가장 좋은 반이라 학교에서 중점적으로 가르쳤기에 괜찮았다.“망했어!”그때 모니터를 보던 원경주가 미간을 찡그렸다.“칠성의 성적표를 잘못 작성했어요. 전부 한 자릿수로 입력되었어요.”“설마? 한 자릿수로 입학도 못할 텐데.”원 교수가 다가가 확인했더니 확실히 한 자릿수였고 뒤에 소수점까지 적혀 있었다.“무슨 일을 이따위로 처리해?”“내가 한 게 아니에요. 비서한테 맡겨서 수정하라고 했다고요.”원경주는 종이 한 장을 꺼내 확인했다.거기에 ‘86,75’ 숫자 사이에 확실히 소수점으로 보이는 부호가 있었다.그것은 소수점이 아니라 심전도 자료에서 사용하는 심전도의 점이었다.“회사에 가면 잘라야겠어요. 일을 너무 대충하네.”“그나저나 로 국장도 참 대단해. 이런 성적도 들여보냈어?”원 교수의 부인은 여전히 불만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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