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실로 돌아갔다 다시 왕비로원래 주인이 몸이 많이 약했는지, 원경릉은 정신을 잃은 채 깊은 잠에 빠졌다.그런데 꿈에 뜻밖에도 현대 연구실에 돌아와 있었다.회사가 마련해 준 연구실은 극비로, 회장과 그녀의 어시스턴트 외에 연구실의 위치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나도 변한 것이 없는 책상, PC, 현미경을 만져보다가 자신의 몸에 주사를 놓던 때 사용한 주사기가 한쪽 시험관에 버려져 있는 것을 봤다.PC는 켜져 있고, 카톡은 온라인 상태로 창이 즐비하게 떠 있는데 전부 가족들이 보낸 것으로 그녀가 어디 있는지 묻는 내용이다.그녀가 키보드를 만지자, 그제서야 마음 저 밑에 있던 죽음에 대한 실감과 슬픔이 밀려왔다. 다시는 부모님과 가족을 볼 수 없다.한동안 멍하니 있다가, 책상에 요오드팅크가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건 주사를 놓기 전에 자리에 가져온 것으로, 연구소에 틀어박혀 있다 보니 연구소 안은 여기저기 할 것없이 온통 약품 투성이다. 약상자를 열어보니 약품은 거의 아무도 손댄 흔적이 없다.만약 이 약품만 있으면, 그 아이는, 어쩌면 살릴 수 있을지 모른다.얼마나 잠이 들었을까, 영차 하고 문 여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시녀가 등을 들고 들어왔는데, 손에 찐빵 한 접시를 가져 와 탕하고 탁자에 놓고는 쌀쌀맞게: “왕비님 식사하시지요!”말을 마치고, 등은 탁자 위에 그냥 두고 나가버렸다.원경릉은 적잖이 당황했다. 그게 꿈이었다니!원경릉은 배가 고파 침대에서 일어나다가, 그만 발이 걸려 앞으로 고꾸라지는데 바닥에 놓인 약상자를 봤다.순간 온 몸의 피가 얼어붙는 것 같았다.이 약상자는, 연구실에 있던 그 약상자와 똑같다.황급히 약상자를 집어 탁자에 올려놓고 열어 젖혔다. 떨리는 손 끝으로 약 상자 안에 약품을 만지는데, 똑같다, 완전 똑같다, 연구실에 있던 바로 그 약 상자다.눈 앞에 펼쳐진 사실을 도무지 믿을 수 없어 원경릉은 잠시 숨을 가다듬었다.영혼이 시공을 넘나드는 것도 이미 충분히 상식밖의 판타지인데, 약 상자까
열이를 만나러원경릉이 잠시 멍하니 있자니, 일련의 기억이 불현듯 떠올랐다. 시동이 다치기 하루 전날, 몸의 원래 주인은 시동을 혼내며 때리고는 헛간 나무덮개를 꼭 맞게 잘 덮어 놓으라고 명령했다. 시동이 그렇게 다친 건 헛간에서 굴러 떨어지다 못이 박힌 게 틀림없다.게다가 헛간 수리는 원래 그 아이가 할 일도 아니다.어디 이번 뿐이랴. 자기가 시집올 때 데리고 온 종이 팔려 나가자, 초왕이 보내준 시종들에게 화풀이를 해대며 평소 하인을 툭하면 때리고 욕설을 퍼 붓곤 했는데, 기상궁도 그녀가 던진 잔에 맞아 피를 흥건하게 흘린 적이 있다. 몸의 원래 주인 성격이 이렇게 고약하다 보니 사람의 미움을 사는 것도 당연했다.“네가 기상궁에게 좀 물어봐 주면 안될까? 내가 직접 걔를 보러 가도 될지.” 원경릉이 말했다.“왕비님 심사가 진짜 이리 고우셨으면 이 지경까지 떨어질 리도 없었을 텐데. 마음에도 없는 소리 집어 치우세요. 기상궁이랑 열이는 왕비님 꼴도 보기 싫으니까요.” 녹주는 말을 마치고 홱 몸을 돌려 나갔다.문이 다시 닫혔다.원경릉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그 애 상태가 위독한가?시동 열이의 상처가 어느 정도인지, 이 시대 의원은 어떻게 상처를 치료하는지 모른다. 만약 처치가 적절하지 못할 경우, 각막이 탈락하면서 안구 파열에 감염을 동반하기 십상이다. 사람의 목숨은 그녀에게 있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원경릉은 도무지 태평하게 앉아 밥을 먹을 수 없어, 약 상자를 열어 항생제 몇 알을 꺼내 밖으로 나갔다.기상궁은 왕부에 팔려온 하인으로 시동 열이는 날때부터 노비라 봉의각 뒤에 있는 담장이 낮은 집에 살았다. 원경릉은 몇 바퀴를 돌아 겨우 찾아냈다.“왜 왔죠?” 기상궁은 울어서 퉁퉁 부은 눈으로 원경릉을 노려보며 말했다.“열이 좀 보려구요.” “가요, 손자도 나도 구역질 나니까!” 기상궁은 차갑게 말했다.원경릉은 사과를 시도하며, “미안해요, 그 아이에게 헛간 수리를 시킨 게 이렇게 되리라고 전혀…”“전혀? 걔는 아직 9살입니다
생사의 고비를 맞은 열이기상궁은 바닥에 엎드려 이의원에게 애원하고, 이의원은 난처하다는 눈빛으로 가신 탕양(湯陽)을 바라본다. 탕양은 곤란한 기색으로: “의원, 한 번 해 보는 것이 어떻겠는가?”이의원은 냉소를 띄고 “한 번 해 보라구요? 죽을 병인데 소인의 손에 왔다가 죽으면, 소인 명성만 땅에 떨어질 뿐입지요.” 기상궁은 이 말을 듣고 거의 실신할 듯 울며 가슴을 쥐어짠다. “아이고 열이야, 지지리 복도 없구나!”녹주는 기상궁을 달래 일으켜 한쪽 옆에 앉혔다.가신 탕양은 의원에게: “저 아이가 고통이 심하니, 약방문이라고 써주어 고통이라도 좀 줄여주면 안되겠는가, 밖에는 자네가 관여한 사실을 일절 비밀에 붙이겠네.” 탕양이 이 말을 하며 슬쩍 의원의 소매에 은자를 찔러 넣었다.이의원은 그제서야: “진통이야 도리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통증이 없다고 차도가 있는 건 아닙니다. 황천 길은 갈 수밖에 없지요.”“그래 그래 알겠네.” 탕양도 열이가 조금이라도 고통 없이 숨을 거두길 바랐다. 그 애는 가엽기 그지 없는데다 자라는 걸 직접 지켜 봐왔기 때문이다. 이의원이 막 들어가 약방문을 쓰려던 찰나, 예상치 않게 병자가 있는 방 문이 쾅 하고 닫히며 안으로 빗장이 질러졌다. 녹주는 방금 문이 닫힐 때 날린 옷자락을 보고 놀라 소리쳤다. “왕비 마마”기상궁은 왕비라는 말에 슬픔과 분노로 미친 암사자처럼 달려들어 사력을 다해 문을 두드렸다, “문 열어, 어서 문 열어,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안에서 원경릉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목소리는 크지 않고, 말도 딱 3마디 “구할, 방법이, 있어요.”이의원은 그 자리에서 조소를 띠며 한 마디 했다, “숨이 반도 안 붙어있는데, 구할 방법이 있다? 초왕부 어디서 이런 옥황상제가 오셨나 그래?” 기상궁은 맥이 풀려 허물어지며 탕양에게, “탕대인, 이렇게 빕니다. 문을 부숴주세요. 쇤네가 걔 옆에 있어야 해요. 걔가 얼마나 두렵겠습니까!”이런 중차대한 순간에 왕비가 나타날 줄이야, 이 무슨 아닌 밤
매맞는 왕비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무쇠 같은 손가락이 원경릉의 목을 졸랐다. 그녀의 동공이 커지며 분노에일그러진 초왕의 얼굴이 보였다. 순간 가슴에서 억지로 공기가 빠져나가고 눈 앞이 깜깜해지더니 정신이 아득해 졌다. “고작 열 살 아이를,” 초왕은 이를 악물고 원경릉의 귀에 소리쳤다, “이 지경으로 만들어? 짐승만도 못한 것, 여봐라, 왕비를 끌어 내 30대를 쳐라!”원경릉은 이미 며칠간 잠을 자지 못한 데다 체력도 거의 바닥난 상태로 따귀를 맞아 일어설 기력조차 없었다. 초왕이 목을 조르던 손을 놓자 원경릉은 주르륵 땅바닥에 떨어졌다. 공기가 다시 허파로 들어가고 숨을 쉬고자 입을 벌리는 순간 사람들 손에 질질 끌려 밖으로 나갔다.원경릉은 눈 앞이 캄캄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가운데, 얼음장 같은 초왕의 준엄한 얼굴만 보였다. 눈 앞에 펄럭이는 비단 옷깃은 어찌나 밉고, 또 어찌나 고귀한지……원경릉은 돌계단에 질질 끌려가며 뾰족한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혔다. 날카로운 자상에 눈 앞이 흐려지며 정신을 잃고 말았다.정신을 잃고 얼마 되지 않아 생전 겪어 보지도 못한 아픔이 온몸에 퍼지는데, 허리와 허벅지에 한 대 한 대 매질을 당할 때 마다 골수에 사무치는 고통으로, 뼈마디가 전부 끊어지는 듯 했다. 입 안엔 핏물이 고이고, 입술을 깨물고 혀를 깨물어도 눈 앞이 아득해 지는 고통에 자꾸만 까무러쳤다. 그렇게 혼절과 고통으로 깨어나길 계속.30대의 매질이 끝났다. 원경릉 인생에 그렇게 긴 시간은 없었다.그녀로 말할 것 같으면, 22세기를 대표하는 천재로 그녀를 추앙하는 사람이 줄을 섰고, 그녀가 어디를 참석하기만 하면 그 자리의 포커스는 단연코 그녀가 독차지했다. 얼마나 많은 병자들이 그녀가 개발한 약을 학수고대하고 있던가.그러나 여기선 남자 아이 하나 구하는 것조차 이렇게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험난하다.원경릉을 끌어다 놓고 죽든지 살든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차라리 죽는게 나을지도 몰랐다.대리석 바닥에 널브러진 원경릉의 등에 약
살아난 열이와 원경릉탕양은 녹주에게 약을 다려오라고 분부하고 기상궁을 몇 마디 위로한 뒤 나왔다.기상궁은 계속 자리를 지키는데 날이 어둑어둑해 오니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녹주도 곁으로 와 둘은 아무 말 없이 숨죽인 채 그저 열이 숨소리 하나라도 놓칠까 정신을 바짝 차렸다. 그런데 열이는 오히려 깊이 잠들더니 자시(밤 11시~오전 1시)가 다 되어 문득 깨어나, 한쪽 눈을 뜨고 기상궁에게 “할머니, 배고파!”기상궁은 펄쩍 뛸 듯 기뻤다. 다친 후로 음식을 전혀 먹지 못하고, 할미가 고생고생 얻어 온 양젖조차 넘기지 못 했기 때문이다. 기상궁은 손으로 열이의 이마를 짚어보니 과연 전만큼 뜨겁지 않다.“의원이 약이 효험이 있네, 효험이 있어!” 기상궁은 기쁨에 넘쳐 녹주에게 외쳤다.“그러게요, 의원의 약이 들었나 봐요!” 녹주도 덩달아 신이 났다.이의원은 다음날 다시 초왕부로 왕진을 왔다.듣자 하니 그 아이가 아직 죽지 않았다는데, 이의원은 여간 신기한 게 아니었다. “그 녀석 명줄 한번 질기네 그려, 숨이 거진 다 넘어갔는데.”기상궁은 바닥에 조아려 머리를 찧으며, “의원님, 그저 처방 하나만 써 주십시오, 우리 손주를 살려주세요.”이의원은 당황했다. 어제 지어 준 약은 열이의 상처를 낫게 할 수 없을 뿐더러 고작해야 통증을 다소 완화시키는 정도였으니 말이다.하여튼 소 뒷걸음질 치다가 쥐 잡은 셈 치자.의원은 열이의 맥을 짚어보니 확실히 어제보다 좋아졌고, 몸도 그렇게 뜨겁지 않다. 결국 다시 약방문을 적어 “하녀는 나를 따라와 약을 다려가게, 이 약을 연속 이틀 먹이면서 상처에 가루약을 바르고, 좋아지면 계속 와서 다려 가게.”“감사합니다, 의원님!”“왕진비용이랑 약값은 누가 주는가?” 이의원이 물었다.어제 비용은 탕양이 댔지만 오늘 비용은 기상궁이 내야 했다.기상궁은 의원의 내민 손을 물끄러미 보며 넌지시 물었다: “오십 문(100문이 1냥(兩))입지요?”“다섯 냥!” 이의원은 기분 상한 듯 대답했다.이의원은 시중에 흔한
생사의 고비를 맞은 열이, 왕비의 진실을 말하다찐빵 반 개쯤 먹고 나니 원경릉은 힘이 다소 회복되는 것을 느끼며 탁자를 잡고 일어나려 안간힘을 썼다. 상반신으로 몸을 지탱하면서 물을 따를 방법이 없어, 바닥에 엎드려 잔에 남은 물을 마실 수 밖에 없었다.좀 나아진 듯해서 천천히 다리를 움직여보고 팔을 펴고 등을 구부리려 했지만 체력이 없어 땅에 덜퍼덕 쓰러지며 등에 난 상처가 지지는 듯 아파왔다.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아내며 팔꿈치로 바닥을 디뎌가며 겨우겨우 약상자를 찾았으나, 소염제와 해열제 주사약이 놓아 둔 곳에 없었다. 주사를 놓을 수 없으니 먹는 약의 용량을 늘릴 수 밖에 없다.대략 30분쯤 지나, 비타민C를 더듬거려 찾은 후 몇 알 삼켰다. 물이 없어 그냥 넘겼더니 너무 셔서 하마터면 뱉을 뻔 했다. 약을 먹은 뒤 원경릉은 몸을 웅크리고 숨을 헐떡거렸다. 이런 육체적 고통은 생전 처음이다. 이번 매질을 당하며 원경릉은 이 시대는 자기가 살던 시대와는 다르다는 것, 신분이 높고 권력을 가진 자의 손에 인간의 생사여탈권이 쥐어져 있음을 깨달았다.따라서 그녀의 목숨은, 초왕의 손에 달려 있다.원경릉은 기필코 이 악랄하고 저열한 생존환경에 적응해야 한다.그 아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상처에서 고름은 제거했지만, 악을 쓰지 않고 좋아질 수는 없다.열이의 방.열이는 약을 먹고 다시 고열이 나기 시작했다.기상궁은 다급해 죽을 지경이다. 낮에는 분명 좋아졌었는데 밤이 되어 왜 다시 고열이 난단 말인가?녹주도 안달이 나긴 마찬가지여서, “아니면, 제가 가사 이의원님을 모셔올까요.”기상궁은 열에 들떠 숨소리마저 거칠어진 손자를 보며 이의원이 다섯 냥에 겨우 이틀 치 약을 지어준 것을 떠올렸다. 사실 그녀 수중에 더이상 은자가 없다: “아니다, 됐어.”녹주는 어쩔 줄 몰라 눈물을 흘리며, “그럼 어떡해요? 두 눈 멀쩡히 뜨고 열이가…..” 뒷말은 차마 할 수가 없었다.기상궁은 이를 악물고 비분강개한 눈빛으로, “열이한테 만약 무슨 일이 생기
위독한 열이를 고치는 원경릉원경릉은 어둠에 적응해 있었는데 불빛이 갑작스레 비치니 자기도 모르게 손으로 빛을 가렸다. 이때 털썩 하고 무릎을 꿇는 소리가 들렸다. 기상궁이 바닥에 꿇어 앉아, “왕비 마마, 쇤네 마마의 크신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마마님을 원망했습니다. 열이를 제발 살려 주시옵소서.”“날 일으키게!” 원경릉은 손을 뻗으며 쉰 목소리로 말했다.기상궁은 다급한 나머지 등롱도 팽개치고 원경릉을 부축하러 갔는데 원경릉의 등쪽에 핏자국이 흥건하게 매를 맞은 상처를 보고, 이 여자가 악랄함이 떠올라 주저하는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만약 열이가 말한 게 사실이라면?“왕비 마마, 일어서실 수 있겠습니까?”“약 상자를 가져오너라.” 원경릉은 기상궁이 자신을 얼마나 증오하는지, 그런데도 무릎 꿇고 애원하는 건, 열이의 상태가 좋지 못한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기상궁에게 약 상자를 들키든 말든 상관하지 않기로 했다.“예, 예!” 기상궁은 약상자를 들고 와 원경릉을 부축했다.원경릉은 한 걸음 디딜 때마다 등과 허벅지에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밀려오고, 겨우 문을 나섰을 뿐인데 땀이 비 오듯 흘러 내리며 덜덜덜 이가 떨렸다. “왕비 마마……”“쓸데없는 소리 말고, 가자!” 원경릉은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아냈다.생명을 구하는 일이 그녀에겐 순수하고 단순한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열이를 구하는 것은 한 번 더 머리를 굴려야 하고, 사람의 마음을 되돌려야 하는 것이 되었다. 그러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안 죽겠네 그 사람.”문득, 사람 목소리가 들렸다.원경릉은 조심스럽게 기상궁을 바라봤지만, 기상궁은 한 손에 등롱을 들고, 한 손으로 그녀를 부축하느라 말이 없었고, 원경릉이 기상궁을 바라보자 이마에 주름이 지며 묻길, “왕비 마마, 통증이 심하셔서 걷지 못하시는 것은 아닌지요?”목소리가 다르다.기상궁의 목소리는 청아한 노인의 목소리지만 방금 들은 목소리는 앳된 소리였다. 원경릉은 갸우뚱 고개를 젓는데 귓
상처가 심해진 원경릉에게 입궁 전갈이?이 모든 걸 마치고 원경릉은 너무 피곤한 나머지 탁자에 반쯤 엎드려 축 늘어졌다. 자신의 모습이 꼴불견이라는 걸 알지만 그걸 신경 쓸 상황이 아니었다.잠시 숨을 돌리자 밖에서 기상궁이 초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왕비 마마, 어떤 지요?”원경릉은 탁자를 짚고 천천히 일어서며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들어오너라.”문이 열리고 기상궁과 녹주가 뛰어들어와 열이 옆에 가더니, 열이의 숨소리가 고르게 안정된 것을 보고 기상궁은 비로소 한 시름 놓았다.원경릉은 약 상자를 들고: “오늘밤 일은 너희 둘만 알고 입을 다물어라. 초왕이나 초왕부 사람이 알게 해서는 안된다.” 기상궁과 녹주는 의아해하며 서로 바라봤다.녹주가 앞으로 나가 원경릉을 부축하고 “왕비 마마, 소인이 길을 안내하겠습니다.”“됐다. 열이를 지켜라. 머리맡에 내가 남겨둔 약이 있으니 두 시진마다 한번 씩 먹이고. 다 먹으면 나에게 더 필요할지 묻고.” 원경릉은 녹주 손을 뿌리치고 힘겹게 밖으로 나갔다.“왕비 마마!” 기상궁이 소리쳤다. 원래는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원경릉이 이전에 한 일을 떠올리면 감사하다는 말이 입밖으로 나오질 않아 그저: “밤길이 어둡습니다, 등롱을 들고 가시지요.”등롱을 건네자, 원경릉은 등롱을 받으며, “고맙네!”기상궁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고맙네? 지금 고맙다고?원경릉은 봉의각으로 돌아가 스스로에게 주사를 놓고 침대에 엎드렸다.염증이 생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상처의 면적이 너무 넓은데다 항생제 작용까지 겹쳐 그녀는 눈에 띄게 약해졌다. 고열이 난 뒤라 손가락 하나도 꼼짝할 수 없고, 물먹은 솜 마냥 한없이 바닥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곧 사방에 어둠이 깔리고 원경릉은 까무룩 잠이 들었다.얼마나 지났을까, 누군가 문을 열고 급히 들어와: “왕비 마마, 어서 일어나세요.”원경릉이 겨우 눈을 떠 보니 녹주가 안절부절 하고 있고, 해는 이미 중천에 떠 있다.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열이가
생각을 마친 원경릉은 더 이상 여섯째에게 말하지 않고, 다시 초왕부로 돌아갔다. 원래 화가 나 있던 미색이 방에서 머리를 손질하며 기분 좋게 있는 것을 보았다.원경릉이 문을 열고 들어가자, 미색은 약간 놀란 표정을 지으며 연지를 내려놓고 긴장한듯 말했다."돌아가신 줄로 알았습니다."그 표정은 회왕부에 여섯째를 만나러 갔을 때와 너무 비슷했다.원경릉은 바로 미색에게 꿍꿍이가 있음을 확신해, 자리에 앉아서 그녀를 쳐다보며 말했다."말해보시오. 무엇을 숨기고 있소?""없습니다. 너무 의심이 많으시군요!"미색이 웃으며 대답했다."웃지 마시오. 말할 것이오, 말 것이오? 말하지 않으면 여섯째를 성 밖으로 보내서, 고생하게 할 것이오!"미색은 눈살을 찌푸리며 억울한 말투로 답했다."어찌 숨길 수 없다는 말입니까? 대체 왜 그렇게 똑똑하십니까?""처음엔 나도 믿었소. 하지만 사건 때문이라는 여섯째의 말을 듣고 자네가 모를 리가 없다고 생각했소. 알면서도 집을 떠났다면 분명히 이유가 있을 것이오. 말하시오."미색이 자리에 앉아 웃으며 말했다."예. 숨길 수 없으니 그냥 바로 말하겠습니다. 하지만 제 일을 망쳐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훼천을 대막의 늑대파에 보낼 것입니다."원경릉은 그녀의 뒤통수를 살짝 때리며 웃었다."요 부인께서 자네를 탓할 것이오.""언니를 원망할 것입니다. 제 일을 망치셔선 안 됩니다.""알았으니, 어서 말하시오. 만약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면, 막지 않겠소!"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미색이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손영영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도강부에서 일할 때 몇 번 만난 적이 있었고, 몇 번 거래도 했습니다. 손영영은 15살부터 아버지를 도와 일을 했고, 늑대파에 정보를 묻기도 했습니다.""음? 그럼, 여섯째도 알고 있겠소.""물론입니다. 경성에 온 지 한 달 됐고, 여섯째도 일을 하느라 경성 안을 왔다 갔다 하니, 몰랐을 리가 없습니다.""여섯째를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며 호감을 전달하고 그에게
원경릉은 미색과 함께 저녁까지 있다가, 여섯째가 회왕부로 돌아갔다고 생각이 들어 바로 회왕부로 향했다.역시나 여섯째는 이미 돌아와 아이들과 놀고 있었다. 아이들은 원경릉을 보자마자 달려와 큰어머니라 불렀다.미색의 쌍둥이 아이들은 미색과 여섯째의 장점이 섞여 있어 참 예쁘게 생겼다. 원경릉은 매우 좋아하며 아이들의 손을 잡고 몇 마디 나눈 뒤, 아이들에게 놀러 가라고 했다.여섯째가 다가와서 민망한 듯 입을 열었다."형수가 왜 오셨습니까?""물어볼 게 있소!"원경릉은 그가 시선을 피하는 것을 보고 찔리는 구석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눈살을 찌푸렸다."여섯째, 정말 밖에서 여인을 만나는 것이오?"여섯째가 시무룩하게 말했다."형수, 저를 너무 대단하게 생각하셨습니다. 그런 일 없어요. 미색이 오해한 것입니다.""그럼, 대체 무슨 일이오? 미색이 본 여인은 대체 누구요?"원경릉이 물었다.여섯째는 그녀를 안으로 청하며 시선을 피했다."안으로 들어가서 얘기하십시오."원경릉은 그를 따라 들어갔고, 회왕이 자리에 앉아, 하인들을 내보낸 후 물었다."초왕부에서 오셨습니까? 미색은 어떻습니까? 아직도 화가 난 것입니까?""당연히 화가 나지. 왜 미색에게 설명을 하지 않는 것이오? 오해라면 왜 풀지 않는 것이오?"원경릉이 말했다.여섯째가 얼굴을 찌푸리고 말했다."아직도 화를 내는 것입니까? 저는 미색의 화가 가라앉고 설명하려 했습니다. 미색의 성격이 급한 것을 알지 않습니까? 화가 나면 제가 뭐라고 해도 들을 리가 없습니다. 며칠 조용히 있으면 화가 풀릴 줄 알았습니다."원경릉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이런 일일수록 설명하지 않으면 더 화가 나는 법이네. 어떻게 차분해질 수 있겠소? 오해면 설명해야 하오. 내가 궁금한 건, 대체 왜 여인과 단둘이 술을 마신 것이오?"여섯째가 솔직히 말했다.사실 그 여인은 바로 염철사 장유강의 양녀, 즉 도강부 염차사 손기의 장녀인 손영영이었다. 경조부 제왕과 그는 함께 사설 소금 사건을 조사했는데, 마침
방 안에 들어가자마자, 미색이 바로 입을 열었다."며칠 전부터 그가 이상하다고 느꼈습니다. 하루 종일 집 밖에서 지내며, 쉬는 날에도 아이들과 집에 있지 않았습니다. 밤 해시가 되어도 돌아오지 않아, 처음엔 일이 많아서 바쁜 줄 알았는데, 관아 사람에게 물으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저 여유를 즐기며 사람들과 경치 구경을 하러 놀러 다닌 것입니다. 그날 밤, 해시가 되어도 돌아오시지 않길래 하인을 시켜 그의 행방을 알아보았습니다. 그가 주루에 있다는 걸 알고, 바로 찾아갔지요. 주루의 방을 열었더니 여자가 함께 아무도 없는 방에서 둘이 술을 마시고 있었습니다."원경릉은 애써 상황을 설명하려 했다."그냥 술을 마셨을 뿐, 다른 일은 없지 않았소? 자네가 오해한 것이 아니오?"미색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만약 폐하가 다른 여인과 단둘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고 해도, 그저 오해라고 말하실 수 있습니까?"원경릉은 아무리 생각해도 상황을 설명할 수 없었다."그 모습을 자네가 보고 난 후, 여섯째는 무슨 말을 했소?"원경릉이 물었다.미색은 화를 내며 말했다."그 여인에게 내가 그의 동생이라고 말했습니다. 정말 말도 안 되지 않습니까?""뭐?"원경릉은 깜짝 놀랐다.‘동생이라니? 그 여자는 회왕이 이미 결혼한 걸 모르고 있었던 것인가?’"그래서 그렇게 화를 낸 것이오?"원경릉은 미색이의 성격상 밥상까지 엎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동생이라고 말했으니, 저도 그저 오라버니라고 부르고 나갔습니다. 그런 염치없는 남자 때문에 화를 내다니? 회왕부로 돌아가자마자 저는 짐을 싸서 떠났습니다. 아이들도 두고 갔지요."미색이 냉정하게 말했다.원경릉이 물었다."사정이 있는 것은 아니오?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시오." "이 문제에 대해서, 어떤 여자가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정녕 사정이 있었다면, 초왕부에 온 지 3일 동안 어찌 한 번도 설명하러 오지 않았습니까? 심지어 노태비도 오셨는데
백옥 바닥을 밟으며, 한 걸음 한 걸음 안으로 들어가자,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긴 듯한 우문호의 모습이 보였다. 발소리가 들리자, 그는 눈을 뜨기도 전에 먼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왔소?"오랫동안 함께 지내니, 발소리만으로 부인이 왔다는 걸 알 수 있었다.원경릉이 그의 관자놀이를 천천히 만져주며 물었다."피곤하오?"우문호는 부인의 손끝에서 느껴지는 온기와 압력을 즐기며 답했다."피곤한 건 아니지만, 마음이 복잡하오.""무슨 일이오?"원경릉이 물었다. 만약 나라의 일로 걱정이 된다면, 회왕의 일은 알려주지 않는 것이 좋을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의 걱정거리를 늘이고 싶지 않았다.우문호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사설 소금이 넘쳐나고 품질도 고르지 않아서, 몇몇 지역의 백성들이 병에 걸리고 있소. 게다가 조사 결과, 염철사와 장옥금이 사설 소금 밀매상들과 결탁해서, 세를 피하려고 몰래 소금을 팔았다는 의혹도 있소."원경릉은 소금세가 국가 세수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북당의 소금 가격도 그리 높지 않았고, 게다가 세수는 몇십 년 전보다 많이 낮아졌었다. 하지만 이렇게 사설 소금이 넘쳐나면 나라의 소금업에 큰 타격을 주게 된다.게다가 나라의 염철사와 사설 소금 밀매상이 결탁했다면, 숨겨진 문제가 얼마나 많겠는가."확실하게 결탁한 것이오?"원경릉이 물었다."아직 조사 중이오. 최근에 장옥강의 의녀가 경에 왔소. 그녀는 도강부에서 염차사를 맡고 있는 손기의 장녀요. 이전에 일곱째가 손기와 사설 소금 밀매상들의 사이가 깊다는 제보를 받았소. 하지만 아직 그들이 결탁했다는 증거는 없소."원경릉은 사설 소금의 해로움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현재 사설 소금의 대부분은 광산에서 채굴한 소금으로, 유해한 불순물이 많이 섞여 있었다. 이런 광산 소금을 장기간 섭취하면 각종 질병이 발생할 수 있다.사설 소금의 만연은 나라 소금업에 심각한 타격을 줄 것이 틀림없었기에 다섯째가 이렇게 걱정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우문호가 잠시 멈
아버지가 돌아간 후, 다섯 아이도 짐을 싸서 돌아갈 준비를 했다.만두는 맏이로서 위엄을 갖추어 떠나기 전 동생들에게 당부했다."너희들, 소란을 일으키지 말고, 아버지와 어머니를 속상하게 하지 말거라. 그렇지 않으면 형의 권한을 행사해서 너희들을 혼낼 것이다!"물론, 이 말은 네 명의 동생들을 향한 것이었고, 여동생에게는 아쉬운 마음으로 여러 번 조심스럽게 당부했다. 그리고 일이 끝난 후, 바로 그녀가 있는 약도성으로 가서 그녀를 돕겠다고 약속했다.택란이 귀엽게 애교를 부리며 말했다."오라버니, 빨리 오십시오. 기다리겠습니다!"그러자 만두가 여동생을 꼭 안아주며 말했다."그래. 약속하마. 곧 너를 도우러 가마."택란은 여전히 아쉬운 마음이 남은 채로 꼬마 봉황을 데리고 떠났다. 그리고 네 명의 오라버니도 위풍당당하게 떠났다.다섯째와 원경릉은 궁에 돌아온 지 며칠 되지 않아, 조금 걱정되는 일이 생겼다.여섯째가 바람이 났다.물론, 미색의 말은 달랐다. 미색은 그가 밖에 있는 여우에게 마음을 뺏겼고 다른 여자를 마음에 두었다고 했다.원용의가 궁으로 들어왔을 때, 미색이 이미 초왕부로 이사 갔고, 아이들까지 두고 떠났다고 했다.일이 심각해졌지만 원경릉은 여섯째가 다른 여자에게 마음을 돌릴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미색을 진심으로 사랑했으니 말이다. 대체 일이 어떻게 되었는지 확실히 알아보기도 전에, 노태비가 궁에 찾아왔다.노태비는 걱정이 가득한 표정으로 원경릉을 끌고 화를 내며 말했다."당장 다섯째에게 여섯째를 혼내라고 하거라. 정말 양심도 없지. 미색이 혼수까지 들고 와서 그렇게 잘해줬는데 어찌 그 여자한테 이렇게 미쳐있다는 말이냐? 그 여인과 밤을 보내다가 미색에게 바로 들켜 버렸다."원경릉이 깜짝 놀라서 물었다."예? 침대에서 잡은 것입니까?"태비는 화가 나서 대답했다."그래!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두 사람이 다정하게 술잔을 주고받으며 붙어있었다고 하더라.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 참 속상하구나."원경릉은 방금까지도
만두를 제외한 다섯 아이는 얌전히 서서 고개를 숙이고는 원경릉의 꾸중을 기다리고 있었다.원경릉은 아이들의 얌전한 모습을 보자, 오히려 미소를 지어 보였다.“됐다. 꾸중하지 않을 테니 말해보거라. 무슨 일을 한 것이냐?”아이들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어머니 곁에 붙어서 각자의 봉토에서 한 일을 자랑스럽게 말했다.원경릉은 그 말을 듣자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그들이 말하지 않아도 그녀는 다 알고 있었다.그녀의 아이들은 모두 능력이 뛰어났기에 비록 완전히 마음을 놓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공간은 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기회가 있을 때, 그녀는 다섯째를 속여서 호랑이와 늑대를 아이들 곁에 보내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았다.호랑이와 늑대를 무턱대고 보내면, 다섯째는 분명 의심할 것이다. 그래서 적당한 기회를 찾아야 한다.원경릉은 따로 택란을 불러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모녀 사이라 다른 사람들보다 더 친밀하기 나름이다. 택란은 엄마의 품에 누워서, 약도성과 금나라에서 일어난 일들을 자세하게 말했다.원경릉은 물을 다룰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금나라 꼬마 황제에 주의를 기울였다.“어떻게 능력을 배우게 됐는지 알고 있느냐?”원경릉이 묻자 택란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모르겠습니다. 묻지 않았습니다. 이런 술법은 사실 큰 어려움이 없고, 저도 물을 다룰 수 있습니다.”염력으로 제어하는 것 아닌가?원경릉이 의구심이 들어 말했다. “너랑은 다르다. 너는 태어날 때부터 그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만약 그가 배운 것이라면, 그의 지혜는 평범한 사람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하지만 물을 다루는 법은, 새와 짐승을 다루는 법과 크게 다르지 않지 않나요?”그러자 원경릉이 고개를 저었다.“다르다. 새와 짐승은 물과 달리 생명이 있는 존재들이다. 그들은 일정한 훈련을 거치면 사람의 뜻을 이해할 수 있게 되지만, 물은 아니다. 물을 다루려면, 마음을 통해 제어해야 하고, 집중력까지 높아야 한다. 뇌가 어느 정도 개
두 마리의 늑대와 두 마리의 호랑이, 그리고 한 마리 봉황이 짐을 짊어지고 다시 현대에 나타났다. 그들은 추석을 보내러 왔다며 듣기 좋은 핑계로 둘러댔다.그들은 몰래 할머니와 외삼촌에게 제발 아버지에게 이 소식을 흘리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할머니와 원 교수는 그들이 북당에 돌아간 줄 알았다. 몰래 부모님을 속이고 낯선 도성에 갔다는 사실을 듣고 두 사람은 심장병이라도 걸릴 뻔했다.기화는 어차피 택란을 자유롭게 가르치고 있었다. 택란이 어디에 있든 그가 보고 싶으면 바로 볼 수 있었다.그녀는 저녁에 스승에게 약도성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하며, 금나라의 어린 황제에 대해서도 말했다.기화의 부인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납치했다니? 어찌 금나라를 불태워버리지 않은 것이냐?""함부로 사람을 죽이면 안 된다고 가르치지 않았습니까?"택란이 물었다."이번 일은 함부로 죽인 것이 아니다. 이유가 있는 살인인데, 어찌 감히 널 잡아간다는 것이냐?"택란을 아끼는 부인의 마음은 원 선생과 다섯째에게 뒤처지지 않는다. 몇 년 동안 함께 있었으니, 사실 그녀가 직접 키운 아이나 마찬가지였다."그럼, 앞으로 누가 나를 괴롭히지 않게 해야겠습니다... 어린 황제가 대권을 되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택란은 마음이 가라앉고 나서야 그 어린 황제가 생각났다.부인이 택란을 힐긋 쳐다보며 말했다."어찌 그 아이 생각을 하는 것이냐?""그가 저와 혼사를 올리겠다고 했습니다."택란은 턱을 괴고 어린 황제의 진지한 눈빛을 떠올리며, 그가 잘 지내길 바랐다.부인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계란아, 이제 몇 살인데 결혼 생각을 하는 것이냐? 여인은 너무 일찍 결혼하면 안 된다. 적어도 2, 3천 년 후나 결혼에 대해 생각해야지. 2, 3천 년 후에도 그 애가 살아 있으면 그때 다시 얘기하자꾸나."택란이 혀를 차며 웃었다."하. 2, 3천 년이라니요. 그는 스승님과 같은 사람이 아닙니다."스승이 그녀를 아끼는 마음을 품고 택란을 안았다."계란아, 난 네가 시
호명이 씁쓸하게 웃었다.“예. 겁나서 말 못 합니다.”같은 처지인데 어찌 고발할 수 있을까? 그러자 호 대장군이 또 담배를 뻑뻑 피우며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그들이 이곳에 온 지 겨우 석 달인데, 내 머리카락마저 벌써 하얗게 됐구나.”그들이 갑자기 나타날 줄 누가 알았겠는가?그냥 구경 온 것이라면 갑자기 나타났다고 해도 괜찮지만, 그들은 갑자기 도성을 도맡겠다고 했다.어차피 도성의 주인이니, 도성을 도맡는 것도 문제 될 건 없었다. 하지만 도성을 맡자마자 발전에 힘을 쏟겠다고 하니…아직 백성들의 마음도 안정되지 않았는데, 어찌 발전할 수 있겠는가?그러자 경단 황자가 반문했다. 돈도 먹을 밥도 없으면 백성들의 마음은 절대로 안정되지 않을 것이라고. 백성의 마음을 안정시키려면 그들에게 조정의 관리를 통해 희망을 보여줘야 한다며 말이다. 그래서 그는 경제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호 대장군은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그를 도울 수밖에 없었다. 일을 도맡아보니, 무력으로 억누르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이유도 없이 백성들에게 새끼 돼지와 양, 그리고 병아리에 씨앗까지 무료로 제공해 주었다. 나중에 기르고, 재배하면 누군가 와서 거둔다고 했지만, 그는 미래가 걱정되었다.아무도 사러 오지 않으면 어떻게 할까? 과일나무가 산 가득 심겨 있었다.호 대장군은 차라리 강남 지방처럼 천을 짜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을 팔면 그래도 은 정도는 벌 수 있었다.그는 이에 관해 제안도 해봤지만, 경단 황자가 말했다. 천을 짜는 곳은 어디서든 할 수 있지만, 농사와 양식을 이곳에서 해야 다른 지역 사람들도 이곳에 와서 생계를 이어갈 수 있다고 했다.다른 지역에는 지원이 없었기 때문이다.수많은 고난에 호 대장군은 결국 포기하기로 했다. ….북당 소월궁.우문호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멍한 표정으로 침대 옆에 앉아 있었다.“무슨 일이오?”원경릉이 뒤에서 그를 다정하게 안으며 말했다.“아침부터 왜 멍하니 있는 것이오?
약도성에 돌아오니 호명과 양두도 함께 돌아와 있었다.호명이 양두와 무엇을 얘기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그 돈이 부적절한 돈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양두는 결국 그 돈을 내놓았고, 호명은 여동생의 병을 치료하라고 천 냥을 주었다.양두는 이 돈이 공으로 얻은 돈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들은 애초부터 진국왕에게서 돈을 얻으려고 했고, 그가 없었어도 분명 10만 냥 정도는 쉽게 얻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도 더 이상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그런데 호명이 또 어떻게 꼬드겼는지, 양두를 약도성에 남아 일을 돕게 했다.양두를 얻자, 주 아가씨는 약도성에 힘이 생겼다고 기뻐했다.게다가 돈도 생겼으니, 바로 돈을 들여 저택을 개조할 생각이었다. 그녀가 택란에게 어떻게 꾸미고 싶은지 묻자 택란이 답했다.“특별한 요구는 없소. 하지만 하나만 강조하자면, 문패를 새로 만드셨음 좋겠소. 저 틀린 글을 고치시오.”주 아가씨가 멍하니 물었다.“틀린 글이요? 어디에 틀린 글자가 있다는 것이지요?”“있소. 직접 가서 확인해 보시오.”택란이 말했다.주 아가씨는 나가서 한참을 살펴봤다. 좌우 구조, 상하 구조, 획순까지 다 확인했지만, 틀린 곳은 보이지 않았다.하긴 아직 어린 상전이니, 글자를 몇 개나 알까? 하지만 상전의 명이니, 그대로 실행에 옮겼다. 문패를 새로 만들어 걸었더니, 기세가 더욱 강해 보였다. 호명은 금나라의 소식을 탐문했다. 그리고 진국왕이 심각한 상처를 입었다고 보고했다. 얼음에 맞아 다쳤으며, 부상 정도가 꽤 심각하다고 했다.금나라는 계속해서 수도를 건설 중이었지만, 진국왕 부상의 여파로 수도 이전 계획은 다소 늦어질 것 같다고 했다. 진국왕은 부상이 심각하여 이미 수도로 돌아갔다고 한다.택란은 이 소식을 듣고 소년 황제를 떠올렸다. 그녀는 그가 무사히 권력을 되찾길 바랐다.그는 그녀에게 혼담까지 꺼냈던 사람이다. 겨우 첫 만남에 그런 말을 꺼내다니, 이상할 따름이다. 세상의 따스함을 얼마나 겪어본 적 없으면 그런 말을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