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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5화

Author: 유애
last update Last Updated: 2024-10-29 19:42:56
주명취는 태상황의 낯빛이 어두워지는 것을 보고는 안심했다. ‘태상황이 초왕을 총애해서 초왕의 부인인 원경릉보고 병시중을 들라고 한 것이지, 원경릉은 그저 병수발이나 드는 한낱 궁인보다 못한 존재지’

어의는 태상황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지는 것을 보고 급히 약을 들고 나가려고 하였다. 태상황은 화가 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빨리 약을 가져오지 않는게냐! 방금 초왕비가 한 말을 못들은거냐!”

그 말을 들은 모든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져서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특히 주명취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

원경릉은 고개를 숙이고 눈을 질끈 감았다. 만약 태상황이 어의가 준 약을 먹지 않고도 병이 좋아진 것을 알면 많은 사람들의 의심을 살 것을 원경릉은 알고 있었다.

명원제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빨리 가져오거라!”

명원제가 원경릉에게 온화한 눈길을 주었다. 태상황이 단숨에 약을 들이켰다. 약이 매우 써서 그의 얼굴이 한순간에 찌푸려졌다. 태후는 급히 약과를 하나 건내주었다. 약과를 입에 넣은 태상황의 얼굴이 조금 풀어지는 듯 했다.

우문호는 복잡한 눈빛으로 원경릉을 쳐다보았다. 그는 이 상황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생각치도 못하게 황조부가 그녀의 말을 듣다니, 설마 그녀의 음모는 이미 실현된것인가?

태상황이 약을 마시자 태후는 기뻐하며 원경릉을 칭찬하자 옆에 있던 예친왕까지 원경릉에게 칭찬을 했다. 황후는 웃고 있는 듯 했지만, 그 웃음이 왠지 어두웠다. 보아하니 주명취의 근심이 일리가 있는 것 같았다.

명원제는 정사를 제치고, 태황상제를 보필하러 왔다. 태상황의 병이 호전됐다고 할지라고 어제 태상황이 임종 가까이 갔다는 것을 알기에 그는 단번에 마음을 놓지 못했다. 이런 마음을 그는 아는지 모르는지, 그가 명원제와 예친왕에게 모두 돌아가라고 했다. 명원제는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에 원경릉에게 말했다. “낮에는 오는 사람이 많으니, 이 틈에 넌 들어가서 잠을 보충하거라.”이 말을 들은 원경릉은 몸을 숙이며 “알겠습니다.” 라고 말하고 외전으로 향하는데 상선이 다가와 원경릉에게 서난각으로 가서 쉬라고 했다. 그리고 상선은 궁녀들을 시켜 그녀가 갈아입을 옷과 외상약, 그리고 뜨거운 물을 준비하도록 했다.

원경릉은 의아했다. 상선이 그녀를 보며 “태상황의 분부십니다. 잠시 후에 희상궁을 통해 약을 보낼 것 입니다. 희상궁은 태상황님을 여려해 모셨으니, 왕비님 다른 걱정 마십시오.” 상선의 태도는 여전히 냉랭했지만 그녀는 왠지모르게 마음이 뭉클해졌다.

서난각에 도착한지 얼마 되지 않아 궁녀가 뜨거운 물을 가지고 들어왔고, 그 뒤를 따라 회색 옷을 입은 희상궁이 들어왔다. 그녀는 대략 50세 쯤 되어 보였다. 그녀의 머리는 가지런하고, 눈썹과 귀가 아래로 축 내려온 것이 위엄있어 보였다.

“희상궁님!” 원경릉이 예의를 갖춰 보였다. “넌 나가보거라.” 희상궁이 옆에 있던 궁녀에게 말했다.

궁녀는 고개를 숙이고는 물러갔다. 희상궁은 위엄있는 목소리로 원경릉에게 말했다. “쇤네. 왕비에 옷을 벗겨드리겠습니다.” 그녀는 주머니에서 가루약 몇병을 꺼내 탁자 위에 올려두었다. 원경릉은 옷을 벗고 침대 위에 엎드렸다. 그 공간엔 희상궁의 숨소리와 그녀가 천을 가위로 자르는 소리만 들렸다. 잠시 후 희상궁이 자른 천으로 상처를 동여매기 시작했다. 원경릉은 참지 못하고 두 주먹을 꼭 움켜쥐었다.

“왕비님 너무 아프시면 옆에 이불을 꼭 쥐세요.” 희상궁의 목소리에는 안타까움이 가득했다.

“으음!” 원경릉은 아픔에 몸부림치며 주먹을 더 강하게 쥐었다.

아프다, 너무 아프다. 내 인생에 이렇게 살이 찢어지는 고통은 겪어본적이 없다. 그간의 서러움과 상처의 아픔이 눈물로 쏟아져 내렸다.

덜컥. 문이 빠르게 열리며 한 사람이 빠른 걸음으로 들어왔다.

원경릉은 누군가의 발소리에 깜짝 놀라 담요를 끌어올려 몸을 덮으려고 하였다. 희상궁은 그녀의 두 손을 잡고 담담하게 말했다. “초왕입니다! 움직이지 마세요!”

‘초왕이니까 더 가려야지!’

우문호는 원경릉이 서난각에 있다는 얘기를 듣고 지난 일들에 대해 묻고 싶어 한걸음에 달려 왔다. 이 곳에 희상궁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심지어 희상궁이 그녀의 상처를 치료해주고 있다니.

그의 마음 속에 분노와 의문이 더 강하게 솓구쳤다.

그러다 그의 눈에 그녀의 상처들이 들어왔다. 등, 허벅지, 배 등등…… 천조각이 덮고 있는 모든 곳은 피투성이였으며 고름도 보였다. 자신의 상처는 하나도 치료하지 못했구나.

원경릉은 흐르려고 하는 눈물을 애써 참고 있었다. 그런데 벌거벗은 자신의 모습을 응시하는 그의 눈빛이 고통보다 견디기 힘들어 그녀는 소리없니 눈물을 흘렸다.

한방울 또 한방울, 그녀는 자신의 손등을 깨물며 울음 소리를 참았지만 그녀의 어깨는 하염없이 들썩였다.

우문호의 분노는 천천히 사그러들었다. 그녀가 공주의 처소에서 한 일과, 어제 밤 측전에서 자신에게 쏘아붙힌 말들 그리고 자신을 벼랑 끝으로 몰았던 그 광기어린 행동들이 떠올랐지만, 지금의 그녀를 보니 그 때의 모습과 극진한 대조를 보였다.

희상궁은 천을 다 자르고 초왕에게 말했다. “왕야 번거로우시겠지만 뜨거운 수건 좀 이리로 가져와주시지오.” 우문호는 고개를 돌려 옆에 뜨거운 물이 담긴 대야에 담긴 수건을 건네주었다.

“닦으시지오.” 희상궁이 말했다. 우문호는 미간을 찌푸리고 상처를 바라보았다. 그는 상처에 손댈 방법도 모를뿐 더러, 원경릉의 살갗을 만지고 싶지 않았다.

희상궁은 한숨을 쉬며 “안타깝지 않으십니까, 왕야!”

우문호는 어릴적부터 희상궁 손에 자랐기에 그녀의 말에 반박은 커녕 울그락 불그락 한 얼굴로 수건으로 살살 원경릉의 상처 부위를 닦기 시작했다. 그녀는 몸을 부르르 떨며 애처롭게 흐느끼기 시작했다.

“이 상처들을 밤새 어찌 참으셨습니까.” 희상궁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들어 우문호를 바라보았다.

“수건으로 상처를 닦는 것이 어려우시다면, 약가루를 뿌리는 일은 할 수 있으시겠지요?”우문호는 가루약을 들고 원경릉의 상처 위에 뿌렸다. 약을 뿌리고 나니 고름이 흘렀던 상처가 보송보송해졌다.

원경릉은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기침은 한번 시작하니 쉽게 멎지 않았고 이내 온몸이 들썩거릴 정도로 기침을 했다. 그녀는 아픔에 눈물을 쏟아내면서도 담요를 끌어안아 가슴을 가렸다.

원경릉이 허리를 들썩이며 기침을 하자 입에서 붉은 선혈이 쏟아져 나왔다. 붉은 선혈이 베개에 뿌려진 모양이 마치 한송이의 작약 같았다.

희상궁의 굳은 얼굴이 우문호를 보았다. “너……” 희상궁은 쏟아질 것 같은 말들을 삼키며 고개를 저었다.“이게 무슨 고생입니까, 세상 어느 왕비가 이런 고생을 하냔 말이에요! 무슨 죽을 죄라도 지은 것 입니까?”희상궁이 원경릉을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저 곧 죽겠죠? 그쵸?”

원경릉은 자금탕이 떠올랐다.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계속해서 피를 토하는 이유는 자금탕 때문인 것 같았다. 기상궁과 녹주가 자금탕을 먹여줄때, 그 자금탕 안에 미세한 독성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우문호의 소매를 잡고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치켜 들었다. 그녀는 이를 꽉 깨물고 그에게 말했다.

“내가 죽기 전에 하나만 부탁하는데, 나를 내쫓아줘. 내가 죽어도 초왕비로 죽지 않을 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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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상황과의 독대내전 사람은 전부 나가고 태상황이 상선을 마뜩찮게 쳐다본다. 어째 나무토막처럼 움직이지도 않나 그래? 즐기는 것도 없나?상선은 원망의 눈초리로 원경릉을 흘끔 쳐다봤다. 초왕비가 입궁한 이래 상선은 태상황 곁에 설자리가 없고 원경릉과 초왕이 푸다오를 살려내는 걸 지켜보고 있을 뿐이라니, 아니다, 푸념은 그만두자.상선이 문 밖을 지키는 궁인들을 내쫓자 내전은 일순간 조용해졌다.태상화은 원경릉을 위 아래로 훑어보더니 “푸바오 배에 있는 건 무엇이냐?”“….수…..수컷지네….인가봐요!” 원경릉이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대답했다.방금 전 다른 사람들은 푸다오의 배를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했는데, 그것이, 푸다오의 전신이 피투성이였기 때문이다.오직 진정을 푸다오를 사랑하는 주인만은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었다.“이실직고 하지 못하겠느냐? 다섯째를 데려다 문초를 해야 사실을 말할테냐?” 태상황이 엄하게 꾸짖는다.초왕을 문초하는 게 원경릉이랑 무슨 상관인가? 솔직히 문초가 아니라 아예 곤장을 그냥, 삼십대 때려주면 딱 통쾌할 텐데 말이다.하지만 태상황이 준엄한 눈빛 앞에서 감히 그렇게 말할 순 없었다. “푸다오는 비장이 파열되어, 배를 열어 꿰매야 했습니다, 여기 보시는 것처럼 지네 같은 자국은 봉합한 자리입니다.”태상황은 입을 다물고 도대체 이걸 어떻게 한 건지 묻고 싶지만 존엄한 체면상 물어보지도, 이런 치료 방식을 한번도 본적이 없다는 말도 할 수 없었다.“자금단은 누가 먹었느냐?” 태상황이 물었다.원경릉은 “제가 먹었습니다.”“다섯째가 너한테 제법 하는구나.” 태상황은 고개를 끄덕였다.원경릉은 이 말에 동의할 수 없는 걸 이해해 주길 바란다. 걸핏하면 매질을 하고, 따귀를 갈겨 대는 게 제법 하는 거라고?“상처는 어쩌다 생긴 것이냐?” 태상황이 다시 물었다.이번엔 원경릉도 감히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 “어쩌다 넘어졌습니다.”“바른대로 입을 열지 않으면 매를 들 수 밖에, 아직 매가 모자란 모양이구나.” 태상황이 코웃음을 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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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여자의 대결원경릉은 고개를 흔들며, “모르겠어요.”“잘 봐라, 마음을 최대한 차분하게 하고, 눈은 예리하게, 그러면 온갖 잡귀가 서서히 드러날 게다. 야심은 감출 수 없는 법이지, 보면 알게 될 게야. 과인이 이제서야 너에게 그들을 대처할 방법을 말해주는구나.”원경릉은 사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누가 사람이고 누가 귀신인줄 알면서 왜 손을 안 쓰세요?”“왜냐면 귀신은 한 번 없앨 때 완전히 뿌리까지 뽑지 않으면, 원래 사람이던 존재도 서서히 귀신으로 변하지, 야심이 인간의 본심을 집어 삼키는 거지. 하지만 과인이 이미 한 쪽 발을 관에 넣고 있는 몸이라 힘이 없구나, 그들은 전부 우문 집안의 사람이야, 과인의 후손이지. 하나를 죽일 때마다 상처가 하나씩 생기지.”태상황은 이 말을 마치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원경릉은 이 말이 뭔가 슬퍼졌다. 그는 조정의 태상황이란 최고 존엄의 위치면서도 자기 사람을 해치는 자조차 마음대로 처리할 수 없다니 안타깝다.“다섯째는 총명한 녀석인데, 눈이 멀었어!” 태상황은 운을 감고 또 중얼거렸다.원경릉은 태상황의 이불을 당겨 덮어주며, “주무세요.”태상황은 갑자기 눈을 떠 원경릉의 손목을 쥐고, “과인은 네 의술로 그 녀석이 눈을 뜰 수 있게 해 주길 원하네.”원경릉은 태상황의 애타는 눈빛을 보며, “마음의 눈이 멀은 걸요, 화타가 살아와도 못 고쳐요.”태상황은 다시 눈을 감는 게 그녀의 말에 동의하는 게 분명하다.잠시 후, 가볍게 코고는 소리가 들리더니 태상황이 잠이 들었다.푸바오는 깨어나 기지개를 켜더니 멍멍 짖는다.원경릉은 쪼그리고 앉아 푸바오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해줘, 누가 널 다치게 했어?”푸바오는 멍멍멍 3번 짖는데 그건 사람 이름이다, 원경릉은 알아 들었다.“잘 했어, 걱정하지마, 괜찮아, 그 여자는 너 못 괴롭혀.” 푸바오를 달랜다.푸바오는 원경릉의 손을 핥는데 극도로 의지하는 눈빛이다.얼마 있다가 원경릉은 밖으로 나가자 상선이 밖에서 시립하고 있다.“할바마마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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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의 왕비   제 3034화

    안지여의 이마에 파란 힘줄이 불끈불끈했으나 냉정을 가장했다. “내가 두려워할 줄 알았나 보지? 죽음도 두렵지 않은데 뭘 더 두려워하겠어?”“넌 두려울 것이야!” 이리봉청이 고개를 돌려 이리 나리를 보고 살짝 그의 팔을 잡았다. “내가 오는 길에 늑대파 사람이 그러던데, 천하에서 제일 잔혹한 형벌을 아는 사람이 늑대파에 있다고. 그게 사실인 것이냐?”이리 나리가 가볍게 답했다. “물론 사실이죠. 훼천이라고 합니다. 늑대골 출신이에요.”“안지여가 버틸 수 있는지 어디 한 번 보고 싶구나.” 이리봉청이 말했다.이리 나리가 엄숙한 태도로 명을 내렸다. “훼천!”그러자 훼천이 급히 나왔다. “이리 나리, 분부하시지요!”이리 나리는 그가 짐짓 냉정한 척하고 있으나 눈빛이 조금씩 허물어져 가고, 몸까지 부들부들 떠는 것이 아주 만족스러워 훼천에게 담담하게 말했다. “시작해!”안지여가 갑자기 큰 소리로 욕했다. “난 네 아버지거늘, 감히 나에게 손을 대다니, 천벌을 받아 마땅한 놈 같으니라고!”이리봉청이 이 말을 듣고 잠시 주저하는 눈빛으로 이리 나리를 바라봤다.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제 아버지는 오직 저를 키워주신 안풍 친왕뿐이십니다.”이리봉청이 살짝 안도했다. “저 인간이 단지 나만 해쳤으면 네 체면을 봐서 놔줬겠지만 천문 세가의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갔으니 난 용서할 수 없구나.”“이리봉청, 너 언제 이렇게 악랄하게 변했어? 죽이려거든 그냥 죽여. 난 천문 세가 사람을 죽이긴 했어도 그들을 괴롭히진 않았어. 네가 날 죽이려거든 깨끗하게 단번에 죽여!”안지여가 크게 노해 몇 번 몸부림을 치다가 상처가 벌어지는 바람에 배에서 선혈이 흘러나오고, 훼천이 가까이 다가가자, 눈에 두려움이 깊어졌는데, 늑대골 출신 훼천은 온몸에서 피비린내가 뿜어져 나와 안지여를 덜덜 떨게 했다.“이리율!” 안풍 친왕비는 시ㅈ가하기 전에 이리 나리를 불렀다. “내가 여기서 네 엄마와 같이 있을 테니 넌 먼저 나가 있거라!”이리 나리가 안풍 친왕비에게

  • 명의 왕비   제 3033화

    안지여에게 구원 병력이 없는 상황에서, 이리 나리 일행이 성을 제압하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대오가 경성에서 출발하기 전에, 안풍 친왕비가 미리 사람을 풍도성으로 보내 각처, 특히 성 수비군과 군대에 잠입시켜, 음식에 효과가 천천히 나타나는 독을 풀어, 오늘 중독 증상이 나타나도록 독의 분량을 조절했다.적어도 내일까지는 안지여를 도우러 올 사람은 없었다. 독성은 적어도 이틀이 지나야 깨끗해지기 때문에 이틀 동안 그들은 설사와 전신 무기력으로 성에 무슨 일이 있다는 걸 알아도 와서 도울 수 없었다.그리고 그들이 기력을 회복할 때쯤이면, 안지여는 벌써 죽었을 것이다.안풍 친왕과 이리 나리는 성을 통제하고, 안지여 부부를 제압해 두 사람을 줄로 묶고 지혈시켜 주었다.안지여는 요 몇 년 동안 자신이 상당히 대단하다고 여겼다. 이는 풍도성이 부유하기 때문으로, 돈으로 많은 사람을 살 수 있었으며, 여러 곳에서 추켜세워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처절하게 패배한 적이 없었던 이유는 진정한 적이 없기 때문으로, 주변의 떠돌이 비적은 작은 마을 규모로 너무 작아서 소탕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결코 그가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적이 너무 약해서였다.조정 사람과 비교했을 때, 그는 제대로 훈련받은 적 없는 비적었기에 일격도 감당할 깜냥이 못됐다.이리 나리는 둘을 중정에 묶어 두었다. 온 바닥에 남은 음식과 깨진 기와가 널브러져 있는 것을 본 안지여는 마음속 깊이 분노가 일었다. 자신의 생일날, 그를 다치게 한 것이 바로 그의 친자식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더욱이 오늘 이렇게 많은 고수가 현장에 있었는데도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이런 결말을 맞다니 너무 불쾌했다. 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을 부축하고 안지여 부부 앞으로 가서, 그녀가 안지여 부부를 내려다보자, 그들은 낭패에 달가워하지 않는 기색으로, 이리봉청은 분노하는 마음과 함께 서글픈 마음도 들었다. 그들을 죽이면 커다란 복수는 이뤄 천문 세가 망자의 원혼은 달랠 수 있었다.하지만 저들을 이렇게 쉽게

  • 명의 왕비   제 3032화

    “그럴 필요 없을 것 같은데?!” 이리 나리가 검을 휘두르며 안지여를 겨누자, 안지여가 공중으로 뛰어올라 후퇴했다.공자들은 돕고 싶었으나 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에게 바로 제압당했다. 안지여는 이리율 것으로 그들은 주변 사람을 제압하기만 할 뿐 옆에 서서 전투를 관전하고 있었다.이리율의 무공이 얼마나 뛰어난지 그를 가르친 안풍 친왕 부부를 제외하고, 사실 많은 사람들은 모르고 있었다.이리율의 검법은 신속하고 맹렬해서 안지여는 상대하느라 쩔쩔매고 구석으로 몰리고 있었다. 성안의 호위들은 늑대 무리와 늑대파, 홍매문 사람들에게 막히는 바람에 안지여는 홀로 고전을 면치 못했는데 그래도 아직은 버틸 수 있었다.하지만 30분을 못 가서 안지여는 질게 틀림없었다.놀란 나머지 계속 실성해 있던 소여쌍이 갑자기 이리봉청을 향해 바싹 마른 손을 뻗어, 그녀의 목을 조르며 광적인 집착과 분노에 사로잡혀 성질을 부렸다. “멈춰, 다들 멈추라고. 안 그러면 내가 이년을 죽여버릴 것이니까!”소여쌍은 무공을 할 줄 알았지만 잘하지 못한 것이 어릴 때부터 계속 중병을 앓아 무공 연습에 소홀했고 성주 부인이 된 뒤로는 더욱 병기에 가까이할 일이 없었지만, 공력만큼은 아직 약간 있었다.소여쌍은 증오의 힘으로 이리봉청의 목을 졸랐는데, 소여쌍이 조금만 더 힘을 주면 이리봉청의 목을 부러뜨릴 것만 같았다.안풍 친왕이 차가운 눈빛으로 나서려 하자, 안풍 친왕비가 말리며 고개를 살짝 흔들었는데, 그럴 필요 없다는 뜻으로 뒤에 있던 사람들에게도 참으라는 눈짓을 하자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모두가 이리봉청이 제압당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손가락으로 뭔가를 쥐고 있어 소여쌍의 어깨 위를 휘감고 팔을 눌러 소여쌍이 머리를 돌리게 했다. 이리봉청 손에 쥔 것은 바늘로, 그대로 소여쌍의 오른쪽 눈을 찌르고 들어갔다.소여쌍이 절규하며 이리봉청을 놔주고 선혈이 흐르는 눈을 움켜쥔 채 비틀거리다 바닥에 쓰러져 데굴데굴 구르며 새된 소리를 지르는데, 원망과 저주의 말을 끊임없이 쏟아

  • 명의 왕비   제 3031화

    풍도성 중정에는 안지여의 아들들과 사위가 그의 곁에 남았는데, 크고 작은 부상을 입어 점점 공포에 질려가고 있었다.‘이 사람들, 아주 대단하구나!’안지여는 이리봉청을 보고 비록 조금 냉정해 보였지만, 여전히 놀라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갑자기 소여쌍이 큰 소리로 웃으며, 몸을 앞뒤로 흔들며 눈물을 찔끔거리더니 완전히 미친 사람처럼 갑자기 웃음을 멈추고 부들부들 떨리는 손가락으로 이리봉청을 가리키며 원망했다. “뜻밖에 네가 안 죽었단 말이지? 게다가 아들까지 있고. 참으로 황당하구나. 정말 너무 황당해. 원래 죽어야 했을 인간은 죽지 않고, 잘 살아야 할 사람은 36년간 괴로움을 당했어. 이리봉청 네가 날 비참하게 만들었으니 넌 이제 지옥에 떨어져야 해.”이리봉청은 소여쌍의 말을 들은 체 만 체했는데, 그녀 눈에는 지금 안지여만 들어왔다.안지여는 36년을 살아왔지만, 이리봉청에게 있어 36년은 마치 사라진 시간처럼 멸문지화의 원한이 어제 일 같았다.안지여도 이리봉청의 눈에서 분노와 악랄함을 보고, 처음으로 마음속에 두려움을 느꼈다.안지여는 억지로 감정을 가라앉히고 말했다. “네 사람을 데리고 가. 지난 일을 묻지 않을 테니. 그렇지 않으면 풍도성에서 곧바로 10만 대군이 올 것으로, 살아서 도망갈 생각은 꿈도 꾸지 않는 게 좋아.”이리봉청의 목소리가 낮게 잠겼다. “우리는 이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바로 네 성으로 쳐들어갈 수 있어. 넌 이미 졌어.”안지여가 웃었다. “졌다고? 그래?”안지여는 수하의 대장군이 믿음직해서, 그들을 당하게 놔줄 수도 있다고 여겼다. 대장군의 부대는 분명 치밀하게 준비되어 있을 것으로, 아마 지금쯤이면 궁수들이 이미 배치를 마치고 그들을 전부 쏴 죽이기 위해 기다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의 손을 잡고 말했다. “어머니, 저자와 말 섞으실 필요 없어요. 앉아서 지켜보시기만 하면 됩니다!”말을 마치고 의자를 올리더니 이리봉청을 부축해서 앉혔다.안지여가 이리 나리를 보는데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 명의 왕비   제 3030화

    안지여가 퍼뜩 눈을 돌려 이리 나리를 보았다.‘이리봉청이 저자를 아들이라고 불렀다는 건러니까?이리 나리는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을 찬찬히 훑어보더니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안 성주와 좀 오래된 원한을 따져야 하는데, 관련되기 싫으신 분은 자리를 피해 주시지요!”그때 한 사람이 검을 짚고 일어나 호통을 쳤다. “넌 도대체 어떤 놈이냐? 무슨 자격으로 자리를 피해라 마라야? 안 성주를 귀찮게 할 생각이면 일단 나부터 통과해 보시지!”그는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장검을 뽑아 파죽지세로 이리 나리를 향해 휘둘렀다.이리 나리는 손을 살짝 움직여 손바닥으로 칼자루를 밀자, 검이 날아가며 그 사람의 귀를 베어 한 줄기 피가 공중에 뿌려지더니, 방금까지 기고만장하던 자가 비명을 지르고 귀는 바닥에 떨어졌다.검이 다시 이리 나리 수중으로 정확히 돌아왔다.이 모든 게 3초 안에 벌어진 일이었다.“회선검?” 검법을 아는 사람들이 깜짝 놀라며 외쳤다.현장은, 숨소리마저도 들리지 않았다.회선검은 검마의 검법으로, 그렇다는 건 저 사람이 검마의 계승자?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무리에서 검마를 찾았다. 과연 두 손으로 검을 안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도 차가운 안광이 느껴졌다.과연 진짜 검마구나, 사람들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검마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이리 나리를 흘끔 보더니 속으로 의아해했다. ‘이 자식, 언제 내 비장의 검법을 배운 거야?’이리 나리의 검 끝에선 아직 선혈이 떨어지는데, 여전히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말했다. “이 아수라장에 끼고 싶은 거라면, 제가 무례하다고 원망할 생각 마세요.”“무엄하도다!” 안지여가 몹시 놀랐다가 천천히 정신을 차리고 눈을 치켜뜨며 이리 나리를 노려봤다. “너는 내가 누구인 줄 아느냐? 내가 네 아버지다!”이리 나리가 코웃음을 쳤다!안지여의 몇몇 아들이 달려 나와 소리쳤다. “아버지, 저희가 지켜드리겠습니다.”안풍 친왕이 젓가락을 던지고 일어나 차갑게 명을 내렸다

  • 명의 왕비   제 3029화

    오늘은 성주의 생일이기에 경사라 섣불리 피를 볼 수는 없으므로 칼은 빼 들었지만 먼저 나서서 늑대를 죽이는 사람은 없었다.안지여는 어두운 눈빛으로 ‘늑대 무리라고? 척후병의 보고로는 안풍 친왕이 늑대 무리를 끌고 온다고 했는데, 저들이 의외로 성으로 직접 쳐들어 왔다 이거지?’라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안지여는 잔을 들고 꿈적도 하지 않은 채, 무너지기 직전까지 미동도 없는 태산처럼 냉정하고 침착했다. 늑대 무리는 안으로 들어온 뒤로 두 패로 나뉘어 서서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을 호시탐탐 엿보며 으르렁거렸다.“성주님, 성주님, 저들이 기어코 쳐들어오겠다고….” 문지기가 외치는 소리는 들렸으나 사람은 보이지 않더니, 그보다 조정에서 보낸 사람들이 먼저 들이닥쳤다.앞에 걸어들어오는 두 사람을 안지여는 본 적이 있었는데, 바로 안풍 친왕 부부로 예전에 그들이 천문 세가 사람들을 조사하러 왔을 때 그에게 속은 적이 있었다. 비록 당시 일면식 뿐이었으나 천문 세가 일을 캐내고 있다는 사실에 놀란 탓에 그들의 얼굴을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그런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어째서 별로 변한 게 없는 거지?’안풍 친왕 부부 뒤에 따라오는 10여 명의 검은 옷을 입은 노인은 그들의 호위 무사일 것으로, 주인인 안풍 친왕 부부는 별 표정이 없었으나,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들어와 고개를 들자 괴팍하고 악랄한 얼굴이 안지여 마음에 들지 않았다.안지여는 여전히 일어나지 않았고, 미소는 띠고 있었지만 매서운 눈빛으로 저들이 돌계단을 오르면 그때 일어나도 늦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게 그의 태도였다.하지만 안풍 친왕 부부는 돌계단을 오르지 않았고, 손님 중 건배를 권하느라 자리를 비운 사람들 의자에 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이 차지하고 앉아, 그들을 대놓고 밀치더니 품에서 자기 젓가락을 꺼내 옆 사람 상관하지 않고 먹기 시작해 사람들이 다 경악했다.그들이 자리를 잡고 앉자 뒤따라 들어오는 사람들이 보였다.두 사람이 사람들에 둘러싸여 천천히 걸어들어오고 있었

  • 명의 왕비   제 3028화

    풍도성 안은 술잔을 주고받고 건배하며 흥겨운 잔치가 한창 무르익고 있었다.안지여는 오늘 황금색 예복을 입었는데 예복에 거대한 이무기를 수놓았으며, 황실의 밝은 황색과는 약간 구별되었지만, 자세히 보지 않으면 진짜 곤룡포로 착각할 만큼 거대한 이무기가 하늘로 날아오르는 형상이 구름을 뚫고 솟아오르는 용과 매우 흡사했다.안지여는 자신의 야심을 이미 조금도 감추지 않았다.당연히 안지여는 오늘도 야심을 감출 생각 없이 손님들에게 보란 듯이 자세를 잡았다. 심지어 인근 지역 조정 관리들이 손님으로 왔어도 안지여는 전부터 맺어온 관계였기에, 그들과 개인적인 친분이 매우 두터워 산 넘고 물 건너 저 멀리 있는 황제가 그들을 시시콜콜 관리할 수 없었다.그 자리 있던 사람들은 모두 오늘 황실에서 파견한 일행이 온다는 것을 알고, 연회석에서 큰 소리로 물었다. “성주님, 듣자하니 안풍 친왕 전하와 이리 부마께서 오늘 오신다던데 어째서 안 보입니까?”안지여가 잔을 들고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진심으로 생일을 축하한다면 결국 오겠지요.”“여정을 듣기론 오늘 분명 풍도성에 도착한다고 했는데, 어째서 밤이 되도록 아직 안 보입니까? 설마 성주님이 직접 나가서 맞이하셔야 하는 건 아니겠지요?”“성주님이 가서 맞이하셔야 한다고? 아주 허세가 대단한데? 퉤!”“누가 아니랍니까? 진심으로 생신을 축하하는 거였으면 며칠 전에 풍도성에 도착해 성의를 보여야지, 오늘까지 늑장을 부리다가 늦게서야 와서, 아직도 잔치에 오지 않은 건 분명 성주님의 체면을 안중에도 두지 않은 행태입니다. 제가 보기에 못 들어오게 막고 돌려보내시지요, 마음만 받은 셈 치고요. ”“맞습니다. 그동안 조정에서는 풍도성에서 받은 공물이 적지 않았으니, 만족한 줄도 알아야죠.”“풍도성은 더 이상 조공을 바칠 필요 없어요. 뭐 때문에 그럽니까? 수백 년 전에 풍도성은 원래 북당의 영토가 아니었어요. 선을 긋고 나와 독립해야 합니다.”모두 안지여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서, 몇 잔 들어가자, 비위를

  • 명의 왕비   제 3027화

    소여쌍의 욕은 거의 반 시진 동안 계속되었다. 이것도 별로 드문 일이 아니라 무쌍거 사람들은 다 익숙해져 있었다. 성주가 오지 않거나 소여쌍이 아프기 시작해도 이렇게 욕을 해댔다.욕하다 지치기를 기다렸다가 늙은 몸종이 가서 달랬다. “부인 그러실 게 뭐가 있으십니까? 몸이 가장 중하십니다.”소여쌍이 의자에 기대 늘어졌다. 극도로 피곤해 풀린 눈으로 천정을 보며 비참함이 가슴 깊은 곳을 타고 내렸다. “오늘이 초엿새지?”“네!” 늙은 몸종이 대답했다.소여쌍이 창백한 얼굴로 말했다. “곧 15일이구나. 또 내 명을 재촉하는 고통이 오겠지. 죽으면 죽었지 다시는 그 고통을 느끼고 싶지 않다.”그러자 늙은 몸종도 매우 괴로워했다. “부인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고통도 며칠이면 그럭저럭 지나가서, 그동안도 그렇게 지내셨잖아요?”“며칠이면 뭐 그럭저럭 지나가나?” 소여쌍이 잔인한 눈빛으로 말했다. “그건 네가 이 고통을 안 당해봐서 그래. 이게 다 이리봉청 그년 짓이야. 오빠가 그년을 쫓아가서 죽이게 한 걸 정말 후회해. 그년을 잡아 와서 가두고 내가 한 번씩 아플 때마다 그년을 갈기갈기 찢어발겨 나보다 수천 수백 배 고통스럽게 해야 했어.”늙은 몸종이 소여쌍의 손을 쥐었다. “부인 그런 생각 마세요. 벌써 죽은 사람을 이제 와서 생각해 봤자 아무 도움도 안 됩니다. 성주님과 자꾸 다투지 마세요. 자꾸 다투시다 보면 감정이 사라집니다.”소여쌍이 처연한 웃음을 지었다. “오빠는 진작부터 나한테 아무 감정 없어.”“성주님은 이리봉청에게 아무 감정 없으세요. 감정이 있을 리도 없고요. 안 그러면 당시 부인을 위해 이리봉청을 죽이고 천문 세가 사람을 다 죽이셨을 리가 없죠.”소여쌍이 고개를 돌리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전에는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요 몇 년간, 성에 들어온 여자들 생긴 걸 보라고. 전부 이리봉청을 쏙 빼닮았잖아? 오빠는 역시 후회하고 있는 거야. 날 위해 이리봉청을 죽인 걸.”소여쌍은 늙은 몸종의 손을 잡는데 고여서 썩

  • 명의 왕비   제 3026화

    안지여는 소야쌍을 놓고 천천히 안으로 걸어갔다. “이틀 뒤가 내 생일인데, 당신 몸 상태는 어때?”그러자 소여쌍은 시녀의 손을 뿌리치고 얼른 안으로 따라 들어가려 했는데, 몇 걸음 만에 휘청거리더니 하마터면 안지여 뒤로 넘어질 뻔했다.안지여는 소여쌍을 잡아줄 수 있었지만, 손을 뻗지 않고 그녀를 등지며 보이지 않는 척했다.시녀는 이미 이런 상황이 익숙한 듯 얼른 소여쌍을 부축해 바닥에 넘어지는 것까지 막았다.소여쌍이 숨을 돌리고 살짝 웃었다. “몸이 많이 좋아져서 오빠 곁에 있을 수 있어요. 오빠 생일에 당연히 제가 곁에 있어야죠.”안지여는 그제야 소여쌍을 돌아봤다. “생일엔 손님이 많이 올 거야, 올해는 다른 어떤 해보다 성대하게 하니까 당신도 잘 차려입어. 내가 내일 사람을 시켜 장신구를 보내도록 하지.”“네, 알았어요!” 소여쌍이 기쁜 듯이 말하며 안지여를 한없이 바라봤다.하지만 안지여는 소여쌍을 더는 보고 싶지 않았다. 사정 설명했고 체면도 차렸으니 됐다 싶어 말했다. “난 아직 일이 있어서. 당신 쉬는 걸 방해하지 않을 테니 잘 쉬고 있어.”안지여는 말을 마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려고 했다.이때 소여쌍이 갑자기 닭발 같은 손을 뻗어 안지여의 팔을 붙잡으며 서둘렀다. “오빠, 어렵사리 왔는데 저랑 얘기 좀 더 해요.”안지여가 고개를 숙이고 소여쌍의 마르고 늙은 손을 바라봤다. 손등에 주름이 자글거리는 것이 구겨진 비단 뭉치처럼 너무 흉해서 혐오감이 든 나머지 쓱 손을 뺐다. “말했잖아, 일이 바쁘다고.”소여쌍의 눈빛이 갑자기 매서워지며, 늙고 쉰 목소리로 소리쳤다. “일이 바쁜 거예요, 아니면 그 여우 년을 찾아가는 거예요? 제가 모를 줄 아세요?! 여자를 성에 얼마나 숨겨놨는지.”안지여가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헛소리야?”소여쌍이 두 손으로 가슴을 움켜쥐고 축 처진 눈에서 원한이 쏟아져 나왔다. “제가 늙었다고 싫어하는 거잖아요, 아녜요? 잊지 마세요. 오빠의 동안도 결국 늙는다고요. 이리봉청이 아직 살아있어도 지금 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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