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양과 원경릉은 서로 마주 보며 거들먹거리며 걸어갔다. 숨기려는 행색도 하지 않아 들키기 마련이다.“나를 믿어야 하네. 미색이 이미 계획을 세워두었으니 걱정 말고.”이리 나리가 말했다.“아니면, 제가 먼저 하산해 보겠습니다.”탕양은 이리 나리를 보며 머뭇거리다가 입을 뗐다.“얼마나 큰일이라고? 이렇게 흐지부지하다가 잘못되면 어쩌려고 그러나? 내가 다 책임질 테니 걱정 말게.”원경릉은 약 상자를 등에 짊어지고 사람들을 보았다.“갑시다. 우리가 왜 겁을 먹고 있습니까!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사람들은 그녀의 말을 듣고 하나 둘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녀를 따라나섰다.이리 나리는 대담한 원경릉의 태도를 보고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보았다.그들이 막 길을 나서려고 하는데 작은 그림자가 보였다. 원경릉이 낯선 그림자에 고개를 돌리자 그 앞엔 무동이가 서있었다.“무동아 왜 그래?”원경릉이 고개를 숙여 물었다.무동은 불안한 눈빛으로 원경릉의 뒤를 바짝 따랐다. 무동이 뒤로도 많은 환자들이 원경릉을 보고 있었는데 하나같이 불안하고 공허한 눈빛이었다.“여러분 왜들 그렇게 불안해합니까?” 무동이를 보던 원경릉이 고개를 쳐들고 물었다. 무동은 그녀의 옷을 끌며 작은 소리로 물었다.“의녀 누이, 앞으로 문둥산에 안 오는 겁니까?”“왜 그렇게 생각해? 당연히 다시 올 거야.”“정말이요? 근데 다른 사람들이 그러던데…… 가면 다신 여기 안 올 거라고.”원경릉의 말을 들은 무동이는 눈을 반짝이다가 이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되물었다.“누가 그래? 아니야! 우리는 반드시 올 거야. 황제의 뜻을 받들어 병을 치료하러 온 건데, 누가 황제의 말을 거역하겠어? 걱정 마.”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일어나 원경릉에게 다가왔다.“정말입니까? 황제께서 우리를 치료하라고 당신들을 보낸 겁니까?”“그럼요. 황제께서 허락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우리가 이 산에 올 수 있겠습니까?”원경릉은 터지려고하는 눈물을 참았다.“우리를 속이지 마세요!” 누
산은 어둡고 캄캄했다. 그들은 탕양이 들고 있는 횃불에 의지해 천천히 산을 내려갔다. 문둥병에 걸렸다는 이유로 이렇게 캄캄한 곳에 세상과 동떨어져 살았다니, 그들은 밤마다 얼마나 절망스럽고 세상이 미웠을까? 그런 그들에게 원경릉이 찾아갔을 때, 아마 잠시나마 빛을 보았겠지만 그 빛이 얼마나 희미한지 금방이라도 꺼져버릴 것 같았을 것이다.원경릉은 의사이자 어머니로서 그리고 누군가의 자식으로서 이 비극적인 상황을 지켜보기가 너무 힘들었다. 세상에서 자신의 피붙이와 생이별을 하는 것만큼 슬픈 일이 무엇이란 말인가?그녀는 문득 현대에 자신의 가족들이 생각났다. ‘내 눈앞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내 가족들도 살아가고 있겠지……’산을 얼마나 내려갔을까 저 멀리서 다른 횃불이 보였다. 누군가가 빠른 걸음으로 달려왔고 그를 보고 탕양은 깜짝 놀라 횃불을 끄려고 하자 옆에 있던 이리가 탕양에게 말했다. “미색이다!”미색은 내려오는 사람들을 발견하고 빠른 걸음으로 올라왔다. 그녀는 붉은 옷을 입고 있었는데 횃불에 비친 그녀의 얼굴이 매우 아름다웠다.“이리 나리, 태자비! 아래는 다 해결됐으니 안심하고 산을 내려오시면 됩니다.” 미색이 웃으며 말했다.탕양은 그 말을 듣고도 믿기지 않지만 한시가 급하였기에 미색에 말에 토를 달지도 않고 빠른 걸음으로 산을 내려갔다. 산 밑에 다다르니 약 스무 명의 사람들이 짙은 회색 옷을 입고 있었다. 탕양은 평소와 다른 사람들의 차림새에 망설이면서 선뜻 산 아래로 내려가지 못했다. “다 우리 편이니 겁먹지 마세요!” 미색이 말했다. 미색이 휘파람을 불자 아래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달려와 가지런히 서서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스무 명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몸이 장대했지만 예의가 있었다.“원래 있던 사람들은?” 탕양이 물었다.미색은 풀숲 쪽을 가리키며 “모두 저기서 잠을 자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탕양이 미색이 가리키는 곳으로 가보니 그녀의 말대로 스무 명의 사람들이 너저분하게 누워 드르렁드르렁 코를 골며 잠을 자고 있
미색은 속으로 깊은 한숨을 쉬었다.‘나리는 바보 군. 소답화의 십만 냥을 받고 태자비를 암살하기로 해놓고 지금 배가 달하는 이백만 냥을 쓰고, 심지어 오늘은 늑대파 스무 명까지 출동시키고 말이야 이걸 다 값으로 따지면 얼마야? 게다가 문둥산에 가서 병자들을 치료하다니? 이거 정말 밑지는 장사 아니냐고!’이리의 행동에 화가 난 것도 잠시, 미색은 머릿속으로 행복 회로를 굴렸다. ‘그래도 천만 냥의 값어치를 가진 내 신랑감을 찾았으니, 그것만으로도 족하다.’미색은 뭔가 결심한 표정으로 원경릉의 두 손을 잡고 말했다.“태자비, 사실 이리 나리와 제가 여기에 온 목적이 있습니다.”“말해보거라.”“그게……”미색의 얼굴이 순식간에 빨갛게 달아올랐다.“미색, 왜 그러는가?”“사실 제가 회왕에게 시집을 가려고 합니다. 혹시 태자비께서 좀 도와주실 수 있습니까?”“여섯째가 마음에 들었느냐?”미색은 고개를 푹 숙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근데 알아봤더니 회왕께서 큰 병을 막 나은 터라 아직 혼담을 하기엔 이르다고……”“그래, 그렇긴 하지만……”원경릉은 회왕에게 푹 빠진 미색의 얼굴을 보고 차마 노비가 반대할 것을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뭐요? 혹시 회왕께서 다른 여인을 마음에 두고 계십니까?” “그건 아니야.”“어우, 깜짝이야! 그것만 아니면 됐습니다! 근데 태자비께서 걱정하시는 게 무엇입니까?”원경릉은 그녀의 두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회왕의 모친인 노비가 너와 회왕의 혼인을 반대할 가능성이 크다. 노비는 고리타분한 성격에 가문을 따지는 사람이라 그리고 황상께서도 아마 그렇게 생각할 것 같고……”미색은 당당한 표정으로 “전 은화도 충분합니다.” 라고 말했다.“은화의 문제가 아니야.”“오백만 냥이 있는데요?”“오백만 냥이라고?” 원경릉은 침이 꼴딱 넘어갔다.“그리고 운영하는 가게도 열 개 정도 됩니다.”원경릉은 미색의 경제적 조건을 듣고 그녀의 손을 맞잡고 의미심장하게 말했다.“미색아,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는 게 얼
우문호는 삼경(三更:새벽1시~3시)이 되어서야 왕부로 돌아왔다. 그의 온몸은 흠뻑 젖었고 옷도 신발도 찢어져 흡사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거지 같았다. 왕부의 문지기는 하마터면 그를 외부 침입자로 여길 뻔했다. 깊게 잠이 든 원경릉은 그가 문을 여는 소리에 즉시 침상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그의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닦아주며 하인에게 목욕물과 생강차를 준비하라고 했다.“어쩌다가 다 젖은 거야? 신발은 왜 이 모양이야?”“아, 어쩌다 보니……”“어머! 우문호 너 발에서 피가 나!”원경릉은 그의 찢어진 신발 사이로 흐르는 피를 보고 깜짝 놀랐다.우문호는 뜨거운 생강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재채기를 두어 번 하였다.“괜찮아. 물에 들어갈 때 돌에 긁혔나 봐. 상처가 작아서 감염되지 않았을 거야.”“조심 좀 하지. 그나저나 그쪽 상황은 어때? 사람들은 다 건져냈어?” 원경릉은 약 상자를 꺼내 그의 발에 난 상처를 치료했다.“시신 세구를 건져냈어. 물살이 너무 세서 아직 수색 중이야.”우문호는 피곤한 듯 얼굴을 두 손으로 쓸어내리더니 옆에 있던 수건으로 젖은 몸을 닦으며 한숨을 내쉬었다.원경릉은 피곤해하는 그의 얼굴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 그녀도 전에 호성교(湖城橋)에 갔을 때, 물살이 어찌나 센지 물살에 휩쓸리면 빠져나올 수 없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원경릉은 우문호의 발에 방수 밴드를 붙여주었고 우문호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뜨거운 물에 목욕을 시작했다. “경릉아, 뭐 먹을 것 좀 있어?”원경릉은 목욕하는 그의 곁에 앉아 그의 머리카락을 쓸었다.“음식을 남겨두긴 했는데 이미 다 식었을 거야. 하인 보고 데워서 가져오라고 할게. 근데 오늘 밥도 제대로 못 먹은 거야?”“응, 만두 두어 개 정도 먹었나? 강물을 하도 마셨더니 당시엔 배가 안 고프더라고.”원경릉은 하인에게 음식을 내어오라고 하고는 그의 손톱 아래에 낀 진흙을 빼내었다.그녀는 하루 사이에 거칠어진 그의 손등을 어루만지며 긁힌 상처를 발견하면 소독약을 뿌렸다. 우문호는
우문호는 야식을 다 먹고 난 후 침상에 누워 원경릉과 내일 산에 올라가는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우문호, 네가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꼭 문둥산에 가야 해. 환자들의 희망을 져버릴 수는 없어.”“나도 그랬으면 해. 이왕 시작한 일 마무리까지 확실하게 하고 싶기도 하고, 사람 목숨이 걸린 일이니까…… 오늘 호성교에서 구조 작업을 하는데 그때 깨달았어. 물속에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도 사람을 구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안 들더라고.”“응. 근데 부황께서는 뭐라고 하셨어?”“부황께서 뭐라고 하시든 일단 신경 쓰지 말자. 내일 산에 갈 때는 변장을 좀 하고 가. 문둥산을 올라갈 때는 아무도 말리지 않지만, 내려올 때는 분명히 널 막아설 거야. 그때 무조건 잡아 떼. 정 안되면 잽싸게 말을 타고 도망쳐. 지금은 이 방법뿐이야.”“그럼 매일 아슬아슬하게 외줄 타듯 하란 말이야?” 원경릉의 불안한 눈빛으로 물었다.“지금 정세가 불안정해서 다른 방법을 생각할 겨를이 없어. 네가 부황의 허락을 받으려면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하나는 네가 문둥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증명해야 하고, 또 하나는 네가 황실 사람에서 퇴출되어야 해. 즉 나와 이혼을 해야 한다는 거지. 아무래도 황실 사람들이 입궁을 자주 하다보니 문둥산은 황실 사람들이 절대 가면 안 되는 곳이 됐어.”“황실 사람들만 올라가지 못하는 거야? 아니면 다른 사람들도 못 가?”“너를 제외하고 사식이 만아 그리고 원용의 모두 황실의 사람이 아니잖아. 그들은 아무 상관이 없어. 내가 경조부윤이므로 그 일대를 관리하니까 잘 아는데, 만약 네가 문둥산에 올라갔다는 것을 알고 널 체포하러 온다면 네가 거기를 올라간다는 것을 알고도 말리지 않은 동행자들도 아마 같이 체포할 거야. 하지만 넌 걱정 마 내가 있으니까. 일단 부황의 귀에만 이 일이 들어가지 않으면 돼.”“내가 나쁜 짓을 하러 가는 것도 아닌데, 매번 몰래 눈치를 살피며 가야 한다는 게 마음이 아프네. 내가 오늘 문둥산에 갔을 때,
아라의 호통소리에 동무(同茂)는 온몸에서 식은땀이 났다. 하지만 동무는 맹세코 산을 내려오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한 명이 아닌 스무 명의 사람이 태자비가 산을 내려오는 것을 보지 못했다는 것은 말이 안 되지 않는가?“혹시 사람이 다니지 않는 기슭으로 내려온 것은 아닐까요?” 동무가 조심스럽게 아라에게 말했다..“그럴 가능성이 없게끔 대장군이 미리 다 막아두었습니다. 귀신도 못 도망갈 만큼 철저하게 준비했는데, 어찌 된 일입니까?”“귀신이 곡할 노릇입니다. 정말 보지 못했습니다.”동무가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동대인 내가 경고 하나 하는데, 중간에서 간 보려는 생각은 하지도 마시오. 안왕부의 사람이 된 이상 안왕에게 충성을 다 해야죠. 그렇지 않으면 화를 입게 될 겁니다. 내 말 무슨 말인지 잘 알아 들었죠?”“본관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동무는 억울하다는 듯 울먹였다. “어쨌든 내 경고를 허투루 듣지 마시오.” 아라가 콧방귀를 뀌었다.동무는 아라의 건방진 태도에 화가 났지만 그녀가 안왕의 심복이기에 치미는 화를 억눌렀다. 순간 동무의 머릿속에 한 가지 묘안이 떠올랐다.“혹시 태자비가 문둥산에 갔다는 소문을 내는 것이 어떨까요?”“당신이 상상할 수 있는 것을 내가 상상하지 못했을까 봐요? 가보세요. 이럴 시간에 태자비에게 예의주시하란 말입니다. 태자비는 분명 또 문둥산을 오를 것이오.”아라의 호통에 동무는 입을 삐죽이며 자리를 떴다.동무가 떠난 후, 적위명이 어두운 표정으로 병풍 뒤에서 걸어 나왔다.“지금 보니 동무도 믿을만한 사람은 못 되는구나. 앞으로는 몇 사람을 더 붙여 미행을 시켜야겠어.”적위명의 말을 듣고 아라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예, 만약 태자비가 문둥산에 올라가 환자들을 치료하고 만약 치료를 성공한다면, 태자와 태자비를 지지하는 세력이 어마 무시하게 늘어날 겁니다. 그렇기에 동무의 말처럼 태자비가 문둥산에 올라갔다는 소문은 내면 절대 안 되죠. 그들이 민심을 얻게 할 수는 없습니다.”“지금 황제가
우문호의 말대로 문둥산 아래에는 출입을 지켜보는 사람이 있었지만 출입을 막아서는 사람도 없었고 미행하는 사람도 없었기에 그들은 수월하게 산에 올랐다.‘들어가는 건 상관이 없다 이거지?’원경릉은 어찌나 변장을 제대로 했는지 원경릉을 태자비라고 생각할 사람은 전혀 없었다.아침 일찍 그녀가 문둥산에 오르겠다고 하자 이리 나리와 미색도 한사코 따라왔다. 미색은 원경릉이 회왕과 자신을 연결해 주겠다고 했으니, 그녀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리 나리는 왜 문둥산에 따라온 건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그는 산을 올라가는 내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는 산을 오르다가 힘들다며 바닥에 앉아 한가로이 경치를 구경하는 둥 원경릉과는 사뭇 다른 태도로 문둥산에 올랐다. 산 중턱을 오를 때 이리 나리가 조용히 원경릉의 곁으로 다가왔다.“근데 그 환자들 말이야. 먹는 게 너무 부실한 거 아니야?” 이리 나리가 그 자리에서 원경릉에게 은표 한 묶음 주었다.“음식 배급을 하는 사람에게 고기 좀 사서 먹이라고 해.” 원경릉은 은표 묶음에 깜짝 놀랐다. 그녀가 천천히 은표를 세어보니 삼천 냥이 넘었다. 그녀는 즉시 요리사에게 50 냥을 주며 내일 먹을 닭고기를 사 오라고 했다.‘이 금액이면 아주 오래도록 음식 걱정은 없겠는걸?’원경릉은 이리 나리의 은표를 보며 문득 소답화와 현비가 떠올라 마음이 쓰라렸다.*오늘 환자들은 유달리 원경릉의 말을 잘 들었다. 다들 원경릉이 시키는 대로 했고 소란을 피우는 사람이 없었으며 약을 바꾸고 주사를 맞을 때에도 한마디 불평도 하지 않았다.시간이 좀 지나자 이리 나리가 지루하다는 듯 산비탈 쪽으로 걸어가 큰 바위 위에 앉았는데, 미색이 그를 찾아와 옆에 앉았다. 초저녁 석양이 서서히 대지를 황금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두 사람은 잠시 아무 말 없이 석양을 감상했다. “나리, 생각해 보셨습니까? 어제 일은…… 이러다가 어쩌면 신분이 드러날지도 모릅니다.”“신경 안 써.”“신경 안 쓴다고요?”어
이리 나리는 말을 마치고 쌩 돌아섰다.미색은 그런 이리를 보고 웃었다. ‘나리가 설랑도 원하지만…… 돌아가기 싫은 것은 확실하군.’오늘도 산 밑에는 사람들이 쪼그려 앉아 있었는데 그중에는 어제부터 있던 사람들도 있었다.그들은 어제 분명 무슨 일이 있었는데, 잘 기억하지 못했지만 그러한 사실을 동무(同茂)에게 사실대로 전하기 무서웠다. 그 이유는 그들이 모두 왕부의 사람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적위명은 사람을 시켜 먼 곳에서 그들을 지켜보다가 하산하기 직전에 신호를 보내라고 했다. 이 사실을 미색이 모를 리가 없었다. 안왕부의 사람들이 바보도 아니고, 이미 한번 당한 것을 두 번이나 당하겠는가. 그래서 오늘은 태자비의 방법을 사용하기로 했다. 그들은 시커멓게 멍석을 뒤집어쓰고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게 변장했다. 그리고 산 위에서 날이 어두워지기만을 기다렸다가 하산을 시작했다. 적위명의 하인이 신호를 보내자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그들을 즉시 에워쌌다.그들이 가까이 다가오려던 찰나에 서일이 멍석 안에서 빨간 물체를 꺼내더니 불을 붙여 그들을 향해 던졌다.“펑펑-”하는 소리가 산기슭에서 울려펴졌고 사람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도망치느라 바빴다.잠시 후.시끄러운 소리가 멈추고 안왕부의 사람들이 그것이 폭죽이라는 것을 발견했을 때는 이미 그들이 자취를 감춘 뒤였다.“멀리 도망치지 못했을 것이다! 쫓아라!” 우두머리가 크게 소리를 지르더니 말을 타고 산기슭을 달리기 시작했다.사실 원경릉 무리는 도망치지 않았다. 원경릉의 작전은 폭죽소리와 함께 미리 봐둔 산 여기저기 잘 보이지 않는 곳에 멍석을 덮어쓰고 기다리는 것이었다. 말발굽 소리가 멀어지자 원경릉과 사람들이 조용히 멍석 아래에서 나왔다. 이렇게 안왕부의 감시를 따돌리기를 몇 번, 원경릉과 사람들 몇 명은 끝내 적위명에게 잡히게 됐다. 원경릉은 우문호의 말대로 자신이 태자비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적위명은 횃불을 들고 그녀의 얼굴에 가까이 비추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
원경릉은 도무지 그녀를 이해할 수 없었다."훼천이 자네를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고, 심지어 이 아이보다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걸 안다고 하는데, 어찌 위험을 감수하려 하는 것인가? 자네가 없는 세상이 그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는가? 그에게 이 아이는 그렇게까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네."그들은 혼사 후 줄곧 행복하게 지냈다. 아이가 없어도 아주 만족스러워했다.만약 그녀의 몸이 견딜 수 있다면 문제 없겠지만, 이제 막 임신한 상태에기에 벌써 출혈이 생겼다. 게다가 이후에 그녀가 말하지 않은 다른 증상이 생길 가능성도 높았다.그러면 너무 위험해진다.요 부인이 아랫배를 어루만졌는데, 얼굴에는 모성애가 감돌고 있었다."처음 임신했다는 걸 알았을 때, 나도 이 아이를 포기해야 겠다고 생각했네. 내 몸이 임신과 출산을 견뎌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아이를 없애야겠다는 생각이 들자, 순간 너무나도 마음이 아팠네. 난 간절하게 그와의 아이를 갖고 싶네. 너무 이기적인 걸 알지만, 그 바람이 나를 흔들었네. 그가 아버지가 되는 모습을 보고 싶었네.""그는 이미 아버지네. 훼천은 언제나 희열과 희성을 친자식처럼 여겼네."원경릉이 말했다."아버지로서 해야 할 일을 다 했고, 심지어 그 이상으로 많은 것을 해왔다는 것을 알고 있네. 그래서 더욱 미안한 것이네. 다른 여인을 부인으로 맞이했더라면, 자식을 가질 수도 있었을 텐데. 나를 선택한 탓에, 그는 자신의 아이를 가질 수 없네. 그도 정말 아이를 원하는 것을 알고 있는가?""아이를 원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원한 적은 없네. 임신한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말할 용기가 없다는 건, 그도 위험을 감수하는 걸 원치 않는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네."요 부인의 얼굴이 복잡하게 일그러졌다."나도 알지만... 참 아쉽네."그녀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사실 혼사를 올렸을 때, 그도 아이를 더 가질 필요 없이 희열과 희성만으로 충분하다고 했네. 하지만 두 딸은 그의 성을 따를 수 없네. 임신한 적
과거에 아이를 출산한 경험이 있는 미색은 풍부한 출산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훼천은 그녀의 경험이 필요했다.훼천은 미색을 한 대 쥐어박으려 튀어나오려는 손을 억누르며 원경릉에게 다가가 공손히 예를 올렸다."황후 마마, 부디 맥을 짚어 상태를 확인해 주시옵소서."원경릉이 물었다."이미 의원에게 진맥을 받지 않았는가? 회임이 확실한 것인가?""몸이 좋지 않다고 하니, 그제 돌아온 희열이가 맥을 짚어 보고는 임신했다고 했네. 나도 잘 모르겠네."요 부인은 살짝 얼굴을 붉혔다. 이 나이에 임신이라니, 정말 부끄러웠다.그녀는 원경릉을 불러 가까이 오라고 부르더니, 조용히 속삭였다."사실 아닐 수도 있네. 몇 달째 월경을 하지 않아서...""몇 달 동안 하지 않았다니요? 그럼… 임신이 아닐 수도 있겠습니다."내력이 깊은 미색은 요부인이 원경릉에게 바짝 다가가 낮게 말했지만, 여전히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말았다. 그리고 미색은 바로 입 밖으로 말을 꺼냈다."조용히 하거라!"원경릉이 웃으며 그녀를 나무랐다.‘미색도 참...’"정말 임신한 것인지, 어서 확인해 보게나."손 왕비가 말했다."그럼, 방으로 가세."원경릉은 요 부인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미색도 따라가려 했지만, 훼천이 그녀를 막았다."여기서 기다리시지요. 어차피 의술도 모르잖습니까.""나도 도우려는 것이다. 훼천아, 너도 참... 호의를 몰라주는구나."미색은 목을 길게 빼고 가고 싶어서 안달이었다. 그녀는 지금 상황을 제일 먼저 알아내야 했다. 그러자 원용의가 그녀를 붙잡았다."그냥 앉아서 기다리시지요. 임신이 맞는다면 원 언니가 곧 알려줄 것이니."미색에는 다시 훼천을 바라보며 물었다."아이를 낳지 않기로 하지 않았느냐? 어찌 임신을 막는 약을 쓰지 않은 것이냐?"훼천은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그는 지금 너무 걱정되었다.이 나이에 아이를 가지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게다가 희열과 희성도 효심이 깊었고, 외손자까지 얻었기에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이리 나리가 말했다."훼천이 집으로 왔는데, 기쁘면서도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소. 그래서 물으니 다 말해주었소. 석 달 동안 비밀로 하려 했지만, 그래도 사전에 검사도 하고 미리 대비하는 게 좋을 것 같아, 황후에게 알리는 게 낫다고 생각했소."목여 태감은 고개를 끄덕이고, 재빨리 원경릉을 찾아갔다.원경릉은 실험실에 틀어박혀 있다가 요 부인이 임신했다는 목여 태감의 말을 듣고 깜짝 놀라, 손에 들고 있던 실험 도구를 급히 내려놓으며 물었다."정말인가?""부마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목여 태감이 대답하자, 원경릉이 말을 이었다."정말 큰 일이네. 요부인의 건강 상태가 원래 좋지 않았는데, 이제야 임신하다니. 그래도 큰 경사니, 내일 당장 찾아가야겠소."지금은 이미 오후였기에 다음 날 아침 일찍 출발하는 것이 좋았다.저녁이 되어 우문호가 궁으로 돌아오자, 원경릉이 말했다."내일 요부인을 만나러 갈 것이오. 아마 밤늦게 돌아오게 될지도 모르오.""다녀오시오."우문호가 말했다.그는 겉옷을 벗으며 물었다."이 나이에 임신해도 괜찮소?""아직 쉰 살은 안 됐지만, 고령 임산부인 건 맞소. 게다가 건강 상태가 원래부터 좋지 않아서 나도 좀 걱정되오.""그럼 당신이 곁에서 잘 챙겨주시오."우문호가 배려하며 말했다.그는 오래전부터 어디서든 원경릉의 도움이 필요하면 무조건 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오늘 저녁 여섯째도 궁에 왔소. 그래서 이 소식을 전했으니, 아마 내일 미색도 갈 것이오."우문호가 말했다."미색이 알게 됐다면 내일 아주 많은 사람이 몰리겠소."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미색은 비록 수다스럽지는 않았지만, 기쁜 일에는 지나치게 열정적이었다.다음 날 아침, 원경릉은 이른 아침부터 약상자를 들고 출발했다.요부인의 저택 앞에 도착하니, 역시 미색의 마차뿐만 아니라 원용의와 손 왕비의 마차까지 줄지어 서 있었다.문을 들어서자마자 미색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언제부터입니까? 대체 언제부터 우리한테 비밀로 하고 있었던
특히 황제가 된 지금, 그는 평화가 있어야만 발전이 가능하다는 것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두 사람은 손을 꼭 맞잡았다. 각자 자신의 신념과 소망을 위해 나아갈 것이다.이틀 후, 이리 나리가 궁에 찾아와 다섯째와 함께 경단이 경성으로 돌아오는 일을 의논했다.그러자 우문호가 의아해하며 물었다."돌아오다니? 난 전혀 몰랐습니다.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없었습니다."어젯밤에도 교류했지만, 귀경에 관한 이야기는 없었다."지금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언제쯤 불러들일 생각인지 묻는 것입니다.""한두 해는 지나고 부를 셈입니다. 무슨 일이십니까?""계획을 세울 생각입니다."이리 나리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1~2년이라면 금방 지나가겠군.’우문호는 미간을 찌푸렸다."무슨 속셈입니까?""전에 말했잖습니까? 경단이는 내 가업을 이어받아야 합니다. 제자가 그럴 능력이 되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이 제자의 자식을 탐낼 수밖에요."이리 나리의 제자 원경릉은 장사에 소질이 없었기에 그저 냉가의 가업을 그녀에게 맡길 수 없었다.이리 나리는 전부터 경단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만두는 경성으로 돌아와 군무를 배우고 있으니, 경단도 그의 가업을 이어받아야 할 때였기 때문이다. 한두 해 뒤에 돌아오면, 몇 년만 더 가르치면 대성할 것이었다.그러자 우문호가 웃음을 터뜨렸다."하하하. 진심이십니까? 냉가의 산업을 몽땅 삼켜버릴까 봐 걱정되지 않습니까?"하지만 이리 나리는 조금도 걱정되지 않았다."우선 몇 년 동안 가르칠 것입니다. 먼저 배울 것이 바로 부친의 뻔뻔한 요구를 단호하게 거절하는 것입니다."우문호가 바로 인상을 찌푸렸다."내 아들을 데려가면서, 어찌 이득도 못 보게 하는 것입니까?!""이득은 무슨, 이건 그야말로 통째로 삼켜버리는 거잖습니까? 욕심이 너무 크십니다."이리 나리는 옷소매를 휘날리며 자리에 앉은 후, 목여 태감에게 말했다."황후에게 가서 전하시오. 할 일이 생겼다고."목여 태감은 어리둥절했다."부마, 황후 마마께서 무슨 일을 하셔야
우문호는 종일 바빴다. 그는 차 한 잔을 들고 멀리 있는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특별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아닌, 그저 밥은 먹었는지, 무엇을 먹었고 내일 무엇을 할 셈인지 묻는 것 뿐이었다. 더불어 아이들에게 요즘 잘 지내는지, 무슨 책을 읽고 있느지에 대해서도 물었다.마치 처음으로 전화기를 접한 시골 사람처럼 신기해했지만 그는 마땅한 대화 주제를 찾지는 못했다.한편 원경릉은 홀로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우문호는 이미 능숙해진 듯 보였고, 심지어 목욕하러 가면서도 아이들에게 말을 남겼다.그가 목욕하러 가자, 원경릉은 곧장 아이들과 교감하며 이 일을 의논하기 시작했다.다섯째는 지금 억제제를 맞은 상황이었다.아이들은 잔뜩 흥분한 채 앞으로 언제든 아버지와 이야기할 수 있다고 좋아했다. 하지만 그는 의식으로 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말을 해야 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보면 그를 미친 사람으로 오해할 수도 있었다.목욕을 마친 우문호는 마치 의기양양한 수탉처럼 걸음걸이조차 전보다 더 당당해 보였다."원 선생, 계란이가 그곳이 이곳보다 훨씬 덥고, 과일도 적다고 하오. 과일을 말려, 아이들에게 나누어 보내는 것이 어떻소?"그러자 원경릉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좋소. 그럼 내일 함께 말리는 것이 어떻소?""좋소! 아, 그리고 만두한테도 물어야겠소. 깜빡하고 어디까지 갔는지 묻지를 못했소."우문호는 앉아서 머리를 수건으로 닦은 뒤 다시 눈을 감고 우문예와 대화를 시도했다.그 모습을 보며 원경릉은 차마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침대에 누워서도 우문호는 여전히 흥분 상태였다. 그는 두 손을 베고 말했다."원 선생, 당신이 없었으면, 정말 많은 재미를 놓쳤을 것이고, 이렇게 많은 걸 배울 수도 없었을 것이오. 세상에 이런 것도 있다는 것을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소. 우리가 경험한 일들이 정말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인지조차 믿기 어렵소.""알겠소."원경릉은 그의 충격에 휩싸인 표정을 바라보며 말했다."난 당신이 살던
"그래, 좋구나. 죽여서 천도를 꼭 바로잡아야 한다!"우문호가 말했다."천도?""법이다! 죽여서 법을 바로 세워야 한다!"냉정언이 꼬투리를 잡자, 우문호가 급히 정정하며 억울한 표정으로 까다로운 그를 바라보았다.천도가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그는 요즘 천도를 따르는 것을 원하고 있었다.저녁 무렵 소월궁으로 돌아온 우문호는 흥분한 얼굴로 원 선생에게 이 이야기를 전하려 했다. 하지만 미간을 찌푸린 채 사색에 잠겨 한쪽에 앉아 있는 원경릉을 발견했다. 그녀는 그가 돌아온 것도 모르는 듯했다."원 선생...?"우문호가 그녀를 부르며 다가갔다.원경릉은 아이들과 교감할 수 없는 문제를 어떻게 이야기할지 고민하며 넋을 잃고 있다가, 우문호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정신을 차렸다. 그녀가 다급히 일어나 말했다."돌아왔소? 곧 저녁을 올릴 테니, 손 씻고 오시오."그가 괜히 입맛을 잃을 수도 있으니, 그녀는 일단 배를 채우고 이야기하려 했다.하지만 우문호는 신이 나서 앉더니, 두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감싸며 말했다."급할 거 없소. 할 말 있소."원경릉이 그의 반짝이는 눈을 보며 따라 웃었다."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소? 어찌 이렇게 기뻐하는 것이오?"우문호는 목소리를 낮췄지만, 여전히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오늘 계란이와 연락이 닿았소.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소."그러자 원경릉이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정말이오? 목소리를 들었소? 뭐라고 했소?"순간 우문호의 얼굴에 빛이 나는 듯했다."밥 먹었냐고 물으니, 먹었다고 답하며 나한테 식사를 했는지 물었소. 그래서 굴비를 먹었다고 말했네. 우리를 그리워하고 있고, 조만간 우리를 보러 오겠다고 했소."원경릉은 그의 말이 사실인지 헷갈렸다. 그와 아이들이 교감할 수 있는 것은 자기장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다섯째는 그들과 다른 상황이라 교감이 가능할 리가 없었지만 기쁨에 가득 찬 그의 표정으로 보아, 거짓은 아닌듯했다."말을 한 것이오?"원경릉이 다시 묻자, 우문호가 이내 고개를
점심을 먹은 후, 그녀는 혼자 산꼭대기로 올라가 먼 곳에 있는 금나라의 도성을 바라보았다. 거세게 부는 바람을 느끼며, 그녀는 문득 스승님이 금나라로 돌아갔는지 궁금해졌다.그녀는 스승님이 며칠 더 머물기를 바랐지만,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급히 금나라로 떠났다. 그가 이렇게까지 신경 쓰는 일은 좀처럼 없었기에 이상했다.방금 들린 낮은 목소리를 떠올리며, 그녀는 순간 스승님이었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아버지의 목소리와 비슷하게 들려, 어머니가 아버지에 대해 말했던 것이 떠올랐다. 설마 아버지의 정신력이 이렇게 먼 곳까지 전달될 수 있는 걸까?그녀는 마음을 집중해 답해 보았다.“아바마마, 저는 식사를 했습니다. 아바마마는 드셨습니까?”한편, 경성 황궁 어서방에서 냉수보, 이리 나리, 탕양, 그리고 몇몇 친왕과 중신들이 과거 시험 개혁에 대해 논의하고 있었다.이리 나리가 자신의 의견을 차근차근 얘기하고 있었고 모두가 집중해서 듣고 있었는데, 그러던 중, 우문호가 갑자기 고개를 살짝 기울이더니, 이내 탁자를 세게 내리치며 벌떡 일어났다. 그는 기쁨에 찬 얼굴로, 흥분된 목소리로 외쳤다."먹었어, 먹었다. 굴비를 먹었는데, 정말 맛있더구나."그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모두 놀라 그를 쳐다보았다.그가 탁자를 세게 내리치는 바람에 잔이 앞으로 날아가, 열변을 토하던 이리 나리의 얼굴을 강타해 버렸다. 이리 나리는 코를 맞은 것도 모자라, 온몸이 흠뻑 젖고 말았다.이리 나리는 그를 가만히 쳐다보다가 천천히 일어나서 옷을 털어내고는,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사과와 해명을 하시지요."그러나 우문호는 여전히 흥분한 상태였다. 그는 이리 나리의 어깨를 붙잡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듣고 있으니, 어서 계속 이야기 하십시오. 나리의 의견이 너무 뛰어나, 듣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습니다! 나리는 정녕 전무후무한 북당 최고 부자입니다! 훌륭합니다!"냉수보가 무표정하게 말했다."북당의 수보는 접니다만."이때, 목여 태감이 황급히 달려와 걱정스러운 얼
같은 균이긴 하지만 서로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어, 이곳에서 처리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일이었기에, 이제 양여혜에게 기대는 수밖에 없다.원경릉은 귀영위 나장군과, 경천의 일을 담은 편지를 써 양여혜에게 보내면서, 혹시 해결책이 있는지도 함께 물었다. 주변 나라의 안정은 북당에게 중요한 일이다. 특히 두 나라는 이제 막 협력을 시작한 상황이었기에, 주변 나라의 안정은 북당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우문호는 어서방에서 신하들과 함께 국사를 논하며 식사하고 있었다.즉위한 이후부터 그는 늘 배불리 먹을 수 있지만, 간소한 식사를 해왔다. 사적으로 모임을 가질 때는 이리 나리가 따로 준비하기에 밥상은 꽤나 풍성했다.우문호는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신하들과 모여 식사하며,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때로는 취한 신하들이 거리낌 없이 말하기도 했지만, 실언으로 황제가 화를 내지 않는 것을 알고 자유로이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그 덕분에 군신 간의 관계는 유례없이 돈독해질 수 있었다.오늘 역시 분위기가 좋았다. 우문호는 어제처럼 화를 내지 않고, 차근차근 일을 처리하게 명을 내렸다. 그리고 만두도 서일과 함께 보내어, 실무를 배우게 했다.식사를 마치자마자 신하들은 너도나도 밖으로 나가 몸을 움직이며 소화를 시켰다.우문호는 궁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오가는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원 선생이 실험실에 있을 테니, 그녀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그는 어서방에 있는 연탑에 걸터앉아 다리를 꼬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 그는 다시 계란이와 교감을 시도했다.그는 안에 있던 시종들을 모두 내보냈고, 심지어는 목여 태감도 물러나게 했다.그는 원 선생이 말한 대로 잡념을 비우고 오로지 계란이와의 교감을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계란아, 밥은 먹었느냐?"하지만, 오랫동안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능력이 부족한 것인지 의심스러워했지만, 천천히 배우다 보면 언젠가는 익숙해질 것이니, 걱정은 하지 않았다. 똑똑하며, 타고난 재능까
점심때가 되자 희 상궁은 궁을 떠났고, 사식이도 아이를 돌보러 돌아갔다. 원경릉이 실험실로 가려고 할 때, 목여 태감이 땀을 뻘뻘 흘리며 뛰어왔다. 원경릉이 문을 나서는 모습을 보고, 그가 다급히 소리쳤다."마마, 잠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원경릉은 그의 다급한 모습에 깜짝 놀라 물었다."무슨 일인가?! 어서방에 무슨 문제라도 생긴 것인가?""아닙니다, 그건 아닙니다."목여 태감은 자리에 가만히 서서 눈치라도 보는듯, 계속 뒤를 힐끔 돌아보았다. 문득 녹주와 기라가 전각 밖에 서 있는 것을 보고, 그가 손을 흔들며 말했다."다들 일을 보거라. 마마께 드릴 말씀이 있다."녹주와 기라는 중요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눈치채고 공손히 예를 올리며 물러났다.목여 태감이 심각한 표정을 짓자, 원경릉도 덩달아 긴장되었다. 그녀는 그를 전각 안으로 불러 앉히며 말했다."태감, 대체 무슨 일인가?"목여 태감은 조회에 따라갔을 때부터 이 말을 꺼내지 못해 속이 타들어 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는 황제가 어서방에서 대신들과 함께 식사하는 틈을 타 급히 마마를 찾아온 것이었다. 전각에 들어온 그는 숨도 제대로 고르지 못한 채 서둘러 말했다."마마, 오늘 축시쯤에 일찍 일어나 폐하의 시중을 들려고 밖으로 나섰습니다. 그제야 폐하께서 전각 밖에서 혼잣말하고 계신 것을 보았지요. 공주의 이름을 여러 번 부르시는 것으로 보아, 공주를 너무 그리셔서 넋을 잃으신 게 아닌지 걱정됩니다. 폐하께는 감히 여쭤볼 수가 없기에, 이렇게 마마께 보고드리러 왔습니다. 폐하께 약이라도 지어 드리는 건 어떤지요?""전각 밖에서 혼잣말을 했다니?!"원경릉은 그만 깜짝 놀랐다. 며칠 동안 바삐 움직였고, LR과 어린 황제의 일로 고민이 깊어진 터라, 어젯밤 그녀는 깊이 잠들어 있었기에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예. 공주의 이름을 몇 번이나 부르셨습니다."그는 원경릉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할까 봐, 황제의 모습을 흉내 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계란아, 계란아, 자고 있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