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태자비의 목소리는 아닌데.’명원제 바닥에 엎드린 여인의 목소리를 듣고는 고개를 갸우뚱했다.“넌 누구냐? 이름이 무엇이냐?”“민녀(民女)의 이름은 미색이라고 합니다. 고향은 직례이며 저와 어머니는 본래 경중에서 큰 사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금년 5월에 한 불량배에게 사기를 당해 그만…… 흡, 어머니께서는 그 충격으로 앓아누우셨고, 살고 있던 집까지 넘어가버려 천막에 살고 있습니다. 정말 나쁜 뜻은 없었습니다! 아프신 어머니에게 뭐라도 해드려야겠다는 생각에 산으로 토끼를 잡으러 간 겁니다. 근데 토끼는 잡지도 못하고 이렇게 잡혀와서 하루 동안 집에도 못 갔습니다. 어머니께서 지금쯤 저를 찾으실 텐데……”적위명은 그 말을 듣고 콧방귀를 뀌었다. 그 순간 대전(大殿)으로 우문호가 들어왔다. 그의 눈 밑은 시커멨고 의복은 여기저기 물에 젖어있었다.“소자 늦었습니다. 송구하옵니다!”우문호가 명원제가 있는 곳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호성교의 시체는 모두 인양했습니다. 사망자는 13명이고 부상자는 1명인데 일곱 살 난 어린아이입니다.”신하들은 태자가 이 일을 모르는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만약 저기 거지꼴을 하고 있는 여인이 태자비였다면 태자의 행동이 저렇게 자연스러울 수 없다고 여겼다.적위명은 태자를 보며 “태자께서는 백성들을 위해 밤낮없이 열심히신데, 태자비께서는 왜 이렇게 소란을 피우시는 겁니까?” 라고 말했다.우문호는 그 말을 듣고 놀란 표정으로 적위명을 보더니 시선을 옮겨 바닥에 엎드려있는 여인을 보았다. “대장군,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 그리고 저 사람은 누굽니까?”“태자께서 호성교 일 때문에 정신이 없으신가 봅니다. 매일 보는 부인의 얼굴도 잊어버리시다니요?”“대장군께서는 아침부터 이상한 소리를 하십니다. 저 여자가 어찌 태자비라는 말입니까? 태자비는 오늘 저와 함께 입궁해 건곤전에 문안을 드리러 갔습니다.”“오호, 그래요? 건곤전에 태자비께서 계신다니 그럼 태자비를 이리로 모셔서 확인해 보는 건 어떻습니까?”“대
“대장군께서 하시는 말과 행동에는 괴리감이 있네요.”냉정언이 말했다.“냉대인 본 장군의 말에 무슨 괴리감이 있다는 겁니까?”“지금 제가 보기에는 대장군은 백성을 위해서가 아닌 황상의 눈에 들기 위해서 그런 행동을 하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태자께 보고도 하지 않고 바로 황상을 찾아오다니요?”“그건……”“그리고 태자비께서 왜 문둥산에 가셨는지, 그 이유가 무엇인지 대장군은 알고 계십니까? 아무것도 모르면서 사람을 멋대로 구류하다니요? 대장군께 묻겠습니다. 대장군은 태자비를 구류할 만한 권력이 있습니까?”냉정언의 말에 적위명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었다.“냉대인, 본 장군은 그럴 권력이 없는 것은 사실이나 일의 경중을 따지고 보면 제 행동이 냉대인의 비판을 받을 정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리고 문둥산은 법도 상에도 황실 사람이 갈 수 없는 곳으로 지정된 곳입니다. 만약 전염병이 있는 곳에 태자비께서 올라가셨다가 옮기라도 하면 어떡합니까? 그럼 궁은 물론이고 북당 전체가 위험에 빠지게 됩니다!”“하하, 대장군의 말은 아직도 앞뒤가 맞지 않네요. 그렇게 궁 안에 문둥병이 퍼지는 게 두려운 사람이 문둥산에서 갓 내려온 사람을 궁으로 데리고 오다니요? 주위를 둘러보세요. 이곳에는 황상과 문무백관들이 다 모여있습니다.”냉정언의 말을 듣고 문무백관들과 궁인들이 원경릉에게서 멀리 떨어졌다.“대장군, 이제 진심을 털어놓으시지요? 황상의 눈에 들고 싶다는 생각에 눈이 멀어 이런 소란을 피우는 게 아닙니까?”냉정언이 몰아붙이자 적위명은 더는 할 말이 없다는 표정으로 명원제의 말만 기다렸다.적위명이 냉정언의 말에 대답을 하지 않자 우문호가 냉정언을 보았다.“냉대인! 저 사람은 태자비가 아니라고요. 태자비는 지금 건곤전에 있다니까요? 태자비를 모함하지 마세요!”우문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원경릉이 눈물을 머금고 명원제를 올려다보았다. “맞습니다…… 민녀 정말로 태자비가 아닙니다. 황상 제발 저를 돌려보내 주십시오. 어머니가 저를 찾고 계실 겁니다.”대전의 상
대장군은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뭐가 중요한지 구별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재상께서 말씀하신 부분은 하관(下官) 죄를 인정하고 벌을 받겠습니다만, 태자비께서도 허락 없이 문둥산에 올라갔으니 황상과 문무백관께서 죄를 물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주수보와 대장군이 얘기를 하는 와중에 우문호와 명원제는 눈빛 교환을 했다. 명원제는 주수보를 막아서며 적위명을 보았다.“태자의 말에 의하면, 건곤전에 태자비가 있다고 하잖느냐. 대장군이 그리 의심스러우면 이리로 데리고 오면 되지 않느냐? 여봐라! 태자비를 이리로 데리고 오거라.”적위명은 명원제의 말을 듣고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역시 황제께서는 태자와 한패가 아니구나.’사람들이 투닥거리는 와중에도 민녀는 꼼짝 않고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야윈 몸이 어찌나 몸을 덜덜 떠는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냉정언은 그녀를 보고는 명원제에게 말했다.“폐하, 저 여인의 안색이 좋지 않은 것 같으니, 그만 일어나게 해주시는 게 어떻겠습니까?”명원제는 민녀를 보며 “일어나거라!” 라고 말했다.“혹시 몸이 불편한 것 아니냐?” 냉정언이 그녀에게 다가가 말했다.민녀는 냉정언에게 고개를 껌뻑 숙여 감사를 표한 후 비틀거리며 일어나 눈물을 머금고 억울함을 토로했다.“민녀 몸은 괜찮지만, 어젯밤부터 지금까지 먹은 것도 없고, 물 한 모금도 마시지 못했습니다.”그 말을 듣고 예친왕(睿親王)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아무것도 먹지 못했단 말이냐? 적위명 대장군, 저 여인을 태자비라고 잡아둬놓고서는 아무것도 먹이지 않았다는 겁니까?”“그게…… 소인이 분부를 했는데, 하인이 깜빡했나 봅니다.”예친왕은 민녀에게 다가가 그녀의 손을 보았다.“손이 왜 이런 것이냐? 목은 또 왜 이러느냐? 누가 너를 죽이려고 했던 것이냐?”예친왕의 말을 듣고 그곳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민녀의 손과 목으로 향했다. 손에는 붉은 줄이 몇 개 그어져 있었고, 목은 누가 졸랐던 듯 손자국이 나있었다.민녀는 고개를 푹 숙이고 눈물을
원경릉이 궁 안으로 들어오는 광경을 본 적위명은 얼굴이 순식간에 하얘지더니 눈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말도 안 돼! 어제 내가 분명 횃불로 얼굴까지 자세히 확인했는데!’문무백관들도 민녀와 원경릉의 얼굴을 자세히 보았다. 두 사람이 닮기는 했지만 태자비의 코가 조금 더 높고 턱이 길며 민녀 미색의 얼굴보다는 뾰족했다. 원경릉은 갑작스러운 부황의 부름에 어리둥절하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우문호는 그녀의 손을 잡아끌어 적위명 앞에 세웠다. “대장군, 아무리 출세에 눈이 멀었어도 그렇지 태자비를 모함하다니요! 도대체 이러는 이유가 뭡니까?”적위명은 귀가 먹먹해져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의 입술을 파르르 떨렸고, 눈동자는 공허했다.“어떻게 이런 일이…… 이렇게 닮은 사람이 있을 수 있다니……”원경릉은 의아한 표정으로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라고 물었다. “적위명 대장군이 문둥산 아래에서 여인을 잡아 왔는데, 그게 너라며 아침 조회에 끌고 왔다.”우문호가 말했다. 이 상황을 지켜보던 민녀는 억울한 듯 울음을 터뜨렸고, 모든 사람들이 그녀에게 시선이 쏠렸다.“제가 분명 아니라고 했잖아요! 저는 태자비님이 아니라고요!”우문호는 화가 나서 적위명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적위명! 당신!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게 분명해! 설령 문둥산 아래에서 본 게 태자비였어도 저렇게 하루 종일 굶기고, 도망을 가지 못하게 묶어둘 심산이었느냐!”우문호의 주먹에 적위명은 코를 부여잡고 바닥으로 고꾸라졌다.대전에서 태자가 황제 앞에서 대장군에게 손찌검을 했지만 사람들은 태자의 행동이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적위명을 안쓰럽게 보았다. 적위명을 코피를 소매로 닦으며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내가 덫에 걸려들었구나.’명원제는 씩씩거리는 우문호를 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다섯째 이만하면 됐다. 지금 당장 태자비와 민녀를 데리고 가거라. 그리고 민녀 너는 문둥산 근처에는 얼씬도 말거라.”“예, 황상 알겠습니다.” 민녀가 고개를 숙이고 대답했다
우문호의 물음에 미색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사라졌다. “미색아 숨길 필요 없어. 소홍천이 이미 두 사람의 과거를 모두 알아보았다고 전했다.”우문호가 말했다. “소홍천? 홍매문(紅梅門)이 문주(門主)인 소홍천?”우문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미색의 반응을 살폈다. “두 사람이 우리를 찾아온 목적이 무엇이든 간에 왕부에 있는 동안 우리가 신세를 많이 졌다. 오늘도 그렇고…… 만약 네가 적위명의 부하들이 문둥산 아래에 있다는 것을 먼저 발견하지 않았더라면 오늘 아침 조회에 내가 끌려갔을 것이야.”원경릉이 미색에게 말했다.어제 미색은 적위명과 부하들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 순식간에 가면을 만들어 원경릉 행색을 했다. 적위명이 미색에게 속아 그녀와 실랑이를 벌이는 틈을 타 진짜 원경릉은 사식이와 만아와 함께 산을 내려왔다. “우리를 도와주는 걸 보니, 악의가 있는 것은 아닐 테고, 도대체 두 사람의 정체가 무엇이냐.” 우문호가 물었다. “그래, 네가 말을 해줘야지. 앞으로 우리는 동서지간이 될 텐데. 지금 말하지 않아도 소홍천이 와서 우리에게 말해줄 거야.”원경릉이 옆에서 거들었다.미색은 원경릉의 말에 귀가 쫑긋 섰지만, 그녀 역시 원경릉이 일부러 저렇게 말해 자신의 수를 읽으려는 것이라고 생각되어 조금 더 시간을 끌며 고민했다.“이리 나리는 늑대파의 문주이고, 저는 늑대파의 호법(護法)입니다.”미색의 말을 듣고 우문호가 격노했다. “뭐? 두 사람이 늑대파라고? 도대체 무슨 목적으로 초왕부에 온 것이야!”미색은 버럭 하는 우문호를 보고 당황했다.“가장 기본인 걸 몰랐다고요? 소홍천이 말하지 않았습니까?”“소홍천은 내가 던진 미끼였어. 그래, 늑대파인건 알겠고, 초왕부에는 왜 온 것이야! 목적을 말하거라.” 미색은 우문호의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낚였구나. 그래도 태자비를 암살하러 왔다고는 절대 말할 수 없어……’그 순간 미색은 서일의 말이 번뜩 떠올랐다. “사실…… 이리 나리께서 태자를 사모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태자와 친해지기 위해
“당연히 물어봐야지! 이대로 그냥 넘어갈 생각이야?” 원경릉이 물었다. “넘어가서는 안 돼. 하지만……” 우문호는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마차는 왕부에 도착했고, 우문호는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방으로 들어가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얼굴을 살폈다. 원경릉은 이런 심각한 상황에 우문호가 외모치장을 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뭐야 갑자기 왜 가꿔?”“손님은 손님이잖아. 초라한 용모로 마주할 수는 없지.”“어휴…… 왜 저래.”원경릉은 화가 치밀었다.우문호는 슬그머니 소월각을 나와 서재로 향했다. 서재 안에는 이리가 기다리고 있었고, 그 옆에는 미색이 서있었다. 그 순간 이리가 고개를 돌려 미색이 얼굴을 때렸다. 우문호는 당황한 얼굴로 문을 닫고 조용히 이리의 맞은 편에 앉았다. 하지만 잠깐 얘기를 나눌 것인데 문을 닫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했는지 우문호는 다시 일어나 문을 열었다. “전하!” 이리가 큰 소리로 그를 불렀다.“예.” 우문호는 뒷짐을 지고 조용히 그를 응시했다. 이리는 우문호의 눈동자를 바라보다가 이내 눈을 피했다.‘불러놓고 왜 아무 말이 없는 거야?’ 우문호는 어색한 공기가 싫어 헛기침을 했다.“듣자 하니, 늑대파의 문주라고 하시던데 맞습니까?”우문호가 물었다.이리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예, 맞습니다. 일부러 숨기려고 했던 것은 아니고…… 사실 밝힐 필요를 크게 못 느끼고 살았기에 말씀을 드리지 않았습니다.”“그렇군요. 방금 마차를 타고 오는데 미색이 말하길 나리께서 저를…… 다 전해 들으셨겠지요? 그게 무슨 뜻입니까?”이리는 두 손으로 의자 양 옆 팔걸이를 꽉 잡고 눈을 아래로 떨구었다. 그는 복잡한 마음을 어찌 설명해야 할지 몰라 애만 탔다.잠시 후 이리는 아무 표정도 말도 없이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이판사판이다…… 남색이라고 오해하게 두는 게 낫지. 태자비를 암살하러 왔다고 말했다가는 미색이나 나나 여기서 살아서 나가지 못 할 거야.’우문호는 마음이 쿵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그는 무
우문호는 한참 후 이리를 보며 묻고 싶은 말을 물었다. “늑대파가 태자비를 암살하기 위해 왔다는 말도 있던데, 그건 아닙니까?”“늑대파는 무공을 모르는 여인을 죽이지 않습니다.”“그러니까, 나리는 원경릉을 죽이러 온 게 아니라는 거지요?”이리 나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아닙니다. 태자, 안심하십시오. 태자비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신답니까?”“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요즘 본 태자는 늑대파를 경계하고 있었습니다. 근데 늑대파의 문주가 직접 아니라고 했으니, 이제야 마음이 놓이네요. 그럼 미색의 말대로 본 태자와 친해지기 위해 왕부로 온 겁니까?”이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렇다면 다행이군요. 사실 본 태자는 이리 나리와 나눌 말이 많습니다. 다음에 날 잡고 한번 얘기를 해 봅시다. 조정에서는 이리 나리와 합심해 북당의 번영과 발전을 촉진하려고 합니다. 나리께서도 이 얘기는 흥미가 있으실 겁니다.”“……” 이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리는 북당이라는 두 글자가 우문호의 심장을 활활 타오르게 한다는 것을 느꼈다. ‘이 남자 보면 볼수록 참 괜찮은 남자구나. 원경릉 결혼 한번 잘 했네.’이리는 우문호를 보며 “예, 다음에 얘기하시지요.”라고 말했다. “예, 그럼 다음에 봅시다.” 우문호는 미소를 지었다. 그는 뒷짐을 지고 노래를 흥얼거리며 소월각으로 돌아갔다. 그는 소월각 문을 열고 의기양양하게 원경릉에게 다가가 손으로 그녀의 턱을 잡았다.“경릉아, 나 왔어.”원경릉은 들고 있던 책을 내려놓고는 들떠 있는 우문호가 수상하다는 듯 눈을 흘겼다.“뭐야? 왜 신났어?”“이리 나리가 북당에 힘을 보탤 것 같아!”“정말이야?” 원경릉은 기뻤지만 이리가 우문호를 좋아한다는 사실에 금방 풀이 죽었다.“응!”“근데 다섯째, 너 이리 나리가 널 좋아한다고 그의 감정을 이용해서는 안 돼.”“내가 그럴 사람으로 보여? 게다가 늑대파의 문주인 이리가 개인적인 감정 때문에 이런 큰 결정을 아무렇게나 할 사람으로 보여?
회왕에게 미색을 중매하려는 원경릉발자국 소리를 듣고 회왕이 고개를 들어 원경릉을 보더니 얼른 일어나 예를 취하며, “다섯째 형수님 오셨습니까, 실례했습니다.” 원경릉이 미소 지으며, “책 보셨어요?”회왕이 책을 내려놓고, 웃으며, “시간 때우기 죠.”“무슨 책 보세요?” 원경릉과 사식이가 올라가서 돌 탁자 옆에 의자에 앉자 하인들이 차를 내 왔다.회왕이 부끄러워 하며 겸연쩍은 듯, “강호 견문록인데 성현의 글귀는 아닙니다.”원경릉이 눈을 반짝이며, “강호 견문록이요?”회왕도 앉아서 원경릉이 모르는 줄 알고 설명하며, “고수들의 이야기를 기록해 놓은 건데 진짜 재미있어요.”“재미있겠네요!” 원경릉이 회왕을 보고 본론에 들어가며, “여섯째 도련님, 올해 나이도 적지 않으시고, 전에 노비 마마께서 전하가 결혼해 아이를 낳는 것을 바라셨잖아요, 그땐 몸상태가 허락치를 않았지만. 지금 병도 괜찮아 지셨으니 인륜지 대사를 한 번 생각해 보시는 게 어떠세요?”회왕의 창백한 얼굴에 한줄기 발그스레한 기운이 감돌고 눈을 어디 둘지 몰라 하는 것이 마치 이 화제는 원경릉이 얘기하면 안 되는 것처럼 보였다.“그건 급하지 않습니다. 아바마마께서 알아서 하시겠지요.” 회왕이 작은 소리로 답하며 자기도 모르게 자세를 고쳐 앉더니 상당히 어색해 했다.원경릉은 아기 토끼 같은 이 남자와 패기가 넘치는 미색을 보면서 외유내강, 두 사람이 의외로 꽤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회왕은 미색처럼 박력이 넘치는 여자의 보호가 필요하고, 회왕부에도 억척스런 여주인이 필요하다. 그래야 사람들이 함부로 대하지 못할 것이니 말이다.원경릉은 아예 흉금을 터놓고 솔직하게, “사실대로 말하자면 오늘 제가 중매를 서려고 왔어요.”“아!” 회왕이 당황해서 천천히 고개를 들어 원경릉을 보며, “중매요? 다섯째 형수님, 어느 집 아가씨를 말씀하시는 지?”“명문세가의 금지옥엽은 아니고 거상 이리 나리의 동생으로, 두 분 만난 적이 있어요, 이름은 미색인데 회왕 전하가 초왕부에 왔을 때 문 앞에
요부인의 눈물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의 말은 항상 그녀의 불안을 사라지게 해주었다.그녀가 목이 멘 목소리로 말했다."아이가 정말 우리를 만나고 싶어 하고, 정말 행복할 것이라 생각하네. 이렇게 좋은 아버지를 두었으니. 아이가 우리 곁에 올 수 있기를 너무 바랐네."그가 아버지로서 얼마나 훌륭한지, 희열과 희성은 여러 번 그녀에게 말했었다.그들은 밖에서 모두 아무 말 없이 침묵하며, 두 사람의 결정만을 기다리고 있었다.그러다 마침내, 미색이 참다못해 물었다."나이가 좀 많다는 것 외에, 다른 위험이 있습니까?""나이가 많다는 것 자체가 큰 위험이다. 출혈도 있고, 다른 증상도 있을 텐데 말하지 않더구나.""무슨 증상이요?"미색이 잠시 멈칫했다."혹 어떤 증상이 나타납니까? 증상 때문에 아이를 지킬 수 없다면 그때 다시 아이를 포기해도 됩니까?""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가정할 수는 없다. 너무 많은 경우가 생겨서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그저 지금의 상황과 몸 상태를 고려해 볼 뿐."나이가 많은 여인이 임신하면 정말 예측할 수 없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게다가 어머니뿐만 아니라 태아에게도 위험이 생길 것이다. 임신 중에는 자간, 경련, 두개내출혈, 태반 조기 박리가 있을 수 있고, 출산 후에는 선천적 결함이나 선천성 심장병 등이 있을 수 있었다. 물론, 임산부의 위험이 더 컸다. 임신성 고혈압, 당뇨병, 심장병, 그리고 신장병 등 여러 가지 질병이 있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이 증상들이 꼭 나타난다는 뜻은 아니지만, 정상 연령대의 임산부보다는 확률이 훨씬 더 높고, 흔히 보는 증상이었다.원용의가 물었다."그럼, 가장 나쁜 결과는 무엇입니까?"원경릉이 고개를 흔들었다."가장 나쁜 결과는 모두가 예상한 것처럼 어머니와 아이 모두에게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문제가 클 수도 있고, 적을 수도 있고, 모든 것이 알 수 없지만, 아이를 지키기로 결정을 내린다면, 큰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바로 그때, 훼천의 목소리가 문밖에서 들려왔
미색은 오히려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정말 잘됐습니다! 정말 임신이라니요!"원용의와 손왕비는 서로 눈을 마주쳤을 뿐, 미색처럼 기뻐하지는 않았다. 사실 오늘, 이곳에 온 두 사람의 마음은 무거웠다.그들은 모두 요부인이 이 나이에 임신한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고 있었다.특히, 요부인이 황후와 함께 걸어 나올 때, 황후의 눈빛에서도 기쁨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의술에 정통한 그녀마저도 낙관적이지 않으니, 다른 사람들은 더더욱 낙관할 수 없었다.원경릉이 미색과 나머지 사람들에게 말했다."요부인과 훼천이 할 이야기가 있으니, 먼저 나가자꾸나."미색은 잠시 멈칫했다."우리가 들으면 안 되는 이야기입니까?""그래. 부부끼리 꼭 해야 할 이야기가 있다."원경릉이 미색을 끌어당겼고, 미색은 워낙 눈치가 빨라 이 말을 듣자마자 단번에 깨달았다. 그녀는 놀란 눈으로 요부인에게 물었다."설마... 아이를 포기할 셈입니까? 왜요?""미색아, 헛소리하지 말고, 먼저 나가자."원경릉이 그녀의 손목을 잡고 문밖으로 향했다. 손왕비와 원용의도 이 모습을 보고는 함께 따라 나갔다.미색은 잠깐 머뭇거렸지만 결국 원경릉을 따라 밖으로 나왔다. 그녀는 계속 원경릉을 붙잡고 캐물었다."아이의 상태가 좋지 않은 것입니까?"뜰로 나와서 원경릉은 말했다."나이가 있으니, 지금 상태로는 위험할 수밖에 없다. 두 사람이 잘 상의해서 결정해야 할 일이다."손왕비와 원용의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미색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그러니... 지금 두 분은 아이를 가질지 말지를 논의 중이신 것입니까?""이건 그들 부부의 일입니다. 어떤 결정을 하든, 우린 그저 지지해 주면 됩니다."원용의가 담담히 말했다.그러자 미색이 갑자기 마음이 아파왔다."예. 물론 지지합니다. 어떤 선택을 하든 저는 꼭 지지할 것입니다."그녀는 돌의자에 앉아 무릎 위에 손을 올려 천천히 문지르고는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며 말했다."아이도 이 세상을 한번 보고 싶었을 텐데요."다들 아이
원경릉은 도무지 그녀를 이해할 수 없었다."훼천이 자네를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고, 심지어 이 아이보다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걸 안다고 하는데, 어찌 위험을 감수하려 하는 것인가? 자네가 없는 세상이 그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는가? 그에게 이 아이는 그렇게까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네."그들은 혼사 후 줄곧 행복하게 지냈다. 아이가 없어도 아주 만족스러워했다.만약 그녀의 몸이 견딜 수 있다면 문제 없겠지만, 이제 막 임신한 상태에기에 벌써 출혈이 생겼다. 게다가 이후에 그녀가 말하지 않은 다른 증상이 생길 가능성도 높았다.그러면 너무 위험해진다.요 부인이 아랫배를 어루만졌는데, 얼굴에는 모성애가 감돌고 있었다."처음 임신했다는 걸 알았을 때, 나도 이 아이를 포기해야 겠다고 생각했네. 내 몸이 임신과 출산을 견뎌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아이를 없애야겠다는 생각이 들자, 순간 너무나도 마음이 아팠네. 난 간절하게 그와의 아이를 갖고 싶네. 너무 이기적인 걸 알지만, 그 바람이 나를 흔들었네. 그가 아버지가 되는 모습을 보고 싶었네.""그는 이미 아버지네. 훼천은 언제나 희열과 희성을 친자식처럼 여겼네."원경릉이 말했다."아버지로서 해야 할 일을 다 했고, 심지어 그 이상으로 많은 것을 해왔다는 것을 알고 있네. 그래서 더욱 미안한 것이네. 다른 여인을 부인으로 맞이했더라면, 자식을 가질 수도 있었을 텐데. 나를 선택한 탓에, 그는 자신의 아이를 가질 수 없네. 그도 정말 아이를 원하는 것을 알고 있는가?""아이를 원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원한 적은 없네. 임신한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말할 용기가 없다는 건, 그도 위험을 감수하는 걸 원치 않는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네."요 부인의 얼굴이 복잡하게 일그러졌다."나도 알지만... 참 아쉽네."그녀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사실 혼사를 올렸을 때, 그도 아이를 더 가질 필요 없이 희열과 희성만으로 충분하다고 했네. 하지만 두 딸은 그의 성을 따를 수 없네. 임신한 적
과거에 아이를 출산한 경험이 있는 미색은 풍부한 출산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훼천은 그녀의 경험이 필요했다.훼천은 미색을 한 대 쥐어박으려 튀어나오려는 손을 억누르며 원경릉에게 다가가 공손히 예를 올렸다."황후 마마, 부디 맥을 짚어 상태를 확인해 주시옵소서."원경릉이 물었다."이미 의원에게 진맥을 받지 않았는가? 회임이 확실한 것인가?""몸이 좋지 않다고 하니, 그제 돌아온 희열이가 맥을 짚어 보고는 임신했다고 했네. 나도 잘 모르겠네."요 부인은 살짝 얼굴을 붉혔다. 이 나이에 임신이라니, 정말 부끄러웠다.그녀는 원경릉을 불러 가까이 오라고 부르더니, 조용히 속삭였다."사실 아닐 수도 있네. 몇 달째 월경을 하지 않아서...""몇 달 동안 하지 않았다니요? 그럼… 임신이 아닐 수도 있겠습니다."내력이 깊은 미색은 요부인이 원경릉에게 바짝 다가가 낮게 말했지만, 여전히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말았다. 그리고 미색은 바로 입 밖으로 말을 꺼냈다."조용히 하거라!"원경릉이 웃으며 그녀를 나무랐다.‘미색도 참...’"정말 임신한 것인지, 어서 확인해 보게나."손 왕비가 말했다."그럼, 방으로 가세."원경릉은 요 부인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미색도 따라가려 했지만, 훼천이 그녀를 막았다."여기서 기다리시지요. 어차피 의술도 모르잖습니까.""나도 도우려는 것이다. 훼천아, 너도 참... 호의를 몰라주는구나."미색은 목을 길게 빼고 가고 싶어서 안달이었다. 그녀는 지금 상황을 제일 먼저 알아내야 했다. 그러자 원용의가 그녀를 붙잡았다."그냥 앉아서 기다리시지요. 임신이 맞는다면 원 언니가 곧 알려줄 것이니."미색에는 다시 훼천을 바라보며 물었다."아이를 낳지 않기로 하지 않았느냐? 어찌 임신을 막는 약을 쓰지 않은 것이냐?"훼천은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그는 지금 너무 걱정되었다.이 나이에 아이를 가지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게다가 희열과 희성도 효심이 깊었고, 외손자까지 얻었기에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이리 나리가 말했다."훼천이 집으로 왔는데, 기쁘면서도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소. 그래서 물으니 다 말해주었소. 석 달 동안 비밀로 하려 했지만, 그래도 사전에 검사도 하고 미리 대비하는 게 좋을 것 같아, 황후에게 알리는 게 낫다고 생각했소."목여 태감은 고개를 끄덕이고, 재빨리 원경릉을 찾아갔다.원경릉은 실험실에 틀어박혀 있다가 요 부인이 임신했다는 목여 태감의 말을 듣고 깜짝 놀라, 손에 들고 있던 실험 도구를 급히 내려놓으며 물었다."정말인가?""부마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목여 태감이 대답하자, 원경릉이 말을 이었다."정말 큰 일이네. 요부인의 건강 상태가 원래 좋지 않았는데, 이제야 임신하다니. 그래도 큰 경사니, 내일 당장 찾아가야겠소."지금은 이미 오후였기에 다음 날 아침 일찍 출발하는 것이 좋았다.저녁이 되어 우문호가 궁으로 돌아오자, 원경릉이 말했다."내일 요부인을 만나러 갈 것이오. 아마 밤늦게 돌아오게 될지도 모르오.""다녀오시오."우문호가 말했다.그는 겉옷을 벗으며 물었다."이 나이에 임신해도 괜찮소?""아직 쉰 살은 안 됐지만, 고령 임산부인 건 맞소. 게다가 건강 상태가 원래부터 좋지 않아서 나도 좀 걱정되오.""그럼 당신이 곁에서 잘 챙겨주시오."우문호가 배려하며 말했다.그는 오래전부터 어디서든 원경릉의 도움이 필요하면 무조건 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오늘 저녁 여섯째도 궁에 왔소. 그래서 이 소식을 전했으니, 아마 내일 미색도 갈 것이오."우문호가 말했다."미색이 알게 됐다면 내일 아주 많은 사람이 몰리겠소."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미색은 비록 수다스럽지는 않았지만, 기쁜 일에는 지나치게 열정적이었다.다음 날 아침, 원경릉은 이른 아침부터 약상자를 들고 출발했다.요부인의 저택 앞에 도착하니, 역시 미색의 마차뿐만 아니라 원용의와 손 왕비의 마차까지 줄지어 서 있었다.문을 들어서자마자 미색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언제부터입니까? 대체 언제부터 우리한테 비밀로 하고 있었던
특히 황제가 된 지금, 그는 평화가 있어야만 발전이 가능하다는 것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두 사람은 손을 꼭 맞잡았다. 각자 자신의 신념과 소망을 위해 나아갈 것이다.이틀 후, 이리 나리가 궁에 찾아와 다섯째와 함께 경단이 경성으로 돌아오는 일을 의논했다.그러자 우문호가 의아해하며 물었다."돌아오다니? 난 전혀 몰랐습니다.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없었습니다."어젯밤에도 교류했지만, 귀경에 관한 이야기는 없었다."지금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언제쯤 불러들일 생각인지 묻는 것입니다.""한두 해는 지나고 부를 셈입니다. 무슨 일이십니까?""계획을 세울 생각입니다."이리 나리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1~2년이라면 금방 지나가겠군.’우문호는 미간을 찌푸렸다."무슨 속셈입니까?""전에 말했잖습니까? 경단이는 내 가업을 이어받아야 합니다. 제자가 그럴 능력이 되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이 제자의 자식을 탐낼 수밖에요."이리 나리의 제자 원경릉은 장사에 소질이 없었기에 그저 냉가의 가업을 그녀에게 맡길 수 없었다.이리 나리는 전부터 경단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만두는 경성으로 돌아와 군무를 배우고 있으니, 경단도 그의 가업을 이어받아야 할 때였기 때문이다. 한두 해 뒤에 돌아오면, 몇 년만 더 가르치면 대성할 것이었다.그러자 우문호가 웃음을 터뜨렸다."하하하. 진심이십니까? 냉가의 산업을 몽땅 삼켜버릴까 봐 걱정되지 않습니까?"하지만 이리 나리는 조금도 걱정되지 않았다."우선 몇 년 동안 가르칠 것입니다. 먼저 배울 것이 바로 부친의 뻔뻔한 요구를 단호하게 거절하는 것입니다."우문호가 바로 인상을 찌푸렸다."내 아들을 데려가면서, 어찌 이득도 못 보게 하는 것입니까?!""이득은 무슨, 이건 그야말로 통째로 삼켜버리는 거잖습니까? 욕심이 너무 크십니다."이리 나리는 옷소매를 휘날리며 자리에 앉은 후, 목여 태감에게 말했다."황후에게 가서 전하시오. 할 일이 생겼다고."목여 태감은 어리둥절했다."부마, 황후 마마께서 무슨 일을 하셔야
우문호는 종일 바빴다. 그는 차 한 잔을 들고 멀리 있는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특별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아닌, 그저 밥은 먹었는지, 무엇을 먹었고 내일 무엇을 할 셈인지 묻는 것 뿐이었다. 더불어 아이들에게 요즘 잘 지내는지, 무슨 책을 읽고 있느지에 대해서도 물었다.마치 처음으로 전화기를 접한 시골 사람처럼 신기해했지만 그는 마땅한 대화 주제를 찾지는 못했다.한편 원경릉은 홀로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우문호는 이미 능숙해진 듯 보였고, 심지어 목욕하러 가면서도 아이들에게 말을 남겼다.그가 목욕하러 가자, 원경릉은 곧장 아이들과 교감하며 이 일을 의논하기 시작했다.다섯째는 지금 억제제를 맞은 상황이었다.아이들은 잔뜩 흥분한 채 앞으로 언제든 아버지와 이야기할 수 있다고 좋아했다. 하지만 그는 의식으로 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말을 해야 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보면 그를 미친 사람으로 오해할 수도 있었다.목욕을 마친 우문호는 마치 의기양양한 수탉처럼 걸음걸이조차 전보다 더 당당해 보였다."원 선생, 계란이가 그곳이 이곳보다 훨씬 덥고, 과일도 적다고 하오. 과일을 말려, 아이들에게 나누어 보내는 것이 어떻소?"그러자 원경릉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좋소. 그럼 내일 함께 말리는 것이 어떻소?""좋소! 아, 그리고 만두한테도 물어야겠소. 깜빡하고 어디까지 갔는지 묻지를 못했소."우문호는 앉아서 머리를 수건으로 닦은 뒤 다시 눈을 감고 우문예와 대화를 시도했다.그 모습을 보며 원경릉은 차마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침대에 누워서도 우문호는 여전히 흥분 상태였다. 그는 두 손을 베고 말했다."원 선생, 당신이 없었으면, 정말 많은 재미를 놓쳤을 것이고, 이렇게 많은 걸 배울 수도 없었을 것이오. 세상에 이런 것도 있다는 것을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소. 우리가 경험한 일들이 정말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인지조차 믿기 어렵소.""알겠소."원경릉은 그의 충격에 휩싸인 표정을 바라보며 말했다."난 당신이 살던
"그래, 좋구나. 죽여서 천도를 꼭 바로잡아야 한다!"우문호가 말했다."천도?""법이다! 죽여서 법을 바로 세워야 한다!"냉정언이 꼬투리를 잡자, 우문호가 급히 정정하며 억울한 표정으로 까다로운 그를 바라보았다.천도가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그는 요즘 천도를 따르는 것을 원하고 있었다.저녁 무렵 소월궁으로 돌아온 우문호는 흥분한 얼굴로 원 선생에게 이 이야기를 전하려 했다. 하지만 미간을 찌푸린 채 사색에 잠겨 한쪽에 앉아 있는 원경릉을 발견했다. 그녀는 그가 돌아온 것도 모르는 듯했다."원 선생...?"우문호가 그녀를 부르며 다가갔다.원경릉은 아이들과 교감할 수 없는 문제를 어떻게 이야기할지 고민하며 넋을 잃고 있다가, 우문호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정신을 차렸다. 그녀가 다급히 일어나 말했다."돌아왔소? 곧 저녁을 올릴 테니, 손 씻고 오시오."그가 괜히 입맛을 잃을 수도 있으니, 그녀는 일단 배를 채우고 이야기하려 했다.하지만 우문호는 신이 나서 앉더니, 두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감싸며 말했다."급할 거 없소. 할 말 있소."원경릉이 그의 반짝이는 눈을 보며 따라 웃었다."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소? 어찌 이렇게 기뻐하는 것이오?"우문호는 목소리를 낮췄지만, 여전히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오늘 계란이와 연락이 닿았소.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소."그러자 원경릉이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정말이오? 목소리를 들었소? 뭐라고 했소?"순간 우문호의 얼굴에 빛이 나는 듯했다."밥 먹었냐고 물으니, 먹었다고 답하며 나한테 식사를 했는지 물었소. 그래서 굴비를 먹었다고 말했네. 우리를 그리워하고 있고, 조만간 우리를 보러 오겠다고 했소."원경릉은 그의 말이 사실인지 헷갈렸다. 그와 아이들이 교감할 수 있는 것은 자기장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다섯째는 그들과 다른 상황이라 교감이 가능할 리가 없었지만 기쁨에 가득 찬 그의 표정으로 보아, 거짓은 아닌듯했다."말을 한 것이오?"원경릉이 다시 묻자, 우문호가 이내 고개를
점심을 먹은 후, 그녀는 혼자 산꼭대기로 올라가 먼 곳에 있는 금나라의 도성을 바라보았다. 거세게 부는 바람을 느끼며, 그녀는 문득 스승님이 금나라로 돌아갔는지 궁금해졌다.그녀는 스승님이 며칠 더 머물기를 바랐지만,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급히 금나라로 떠났다. 그가 이렇게까지 신경 쓰는 일은 좀처럼 없었기에 이상했다.방금 들린 낮은 목소리를 떠올리며, 그녀는 순간 스승님이었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아버지의 목소리와 비슷하게 들려, 어머니가 아버지에 대해 말했던 것이 떠올랐다. 설마 아버지의 정신력이 이렇게 먼 곳까지 전달될 수 있는 걸까?그녀는 마음을 집중해 답해 보았다.“아바마마, 저는 식사를 했습니다. 아바마마는 드셨습니까?”한편, 경성 황궁 어서방에서 냉수보, 이리 나리, 탕양, 그리고 몇몇 친왕과 중신들이 과거 시험 개혁에 대해 논의하고 있었다.이리 나리가 자신의 의견을 차근차근 얘기하고 있었고 모두가 집중해서 듣고 있었는데, 그러던 중, 우문호가 갑자기 고개를 살짝 기울이더니, 이내 탁자를 세게 내리치며 벌떡 일어났다. 그는 기쁨에 찬 얼굴로, 흥분된 목소리로 외쳤다."먹었어, 먹었다. 굴비를 먹었는데, 정말 맛있더구나."그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모두 놀라 그를 쳐다보았다.그가 탁자를 세게 내리치는 바람에 잔이 앞으로 날아가, 열변을 토하던 이리 나리의 얼굴을 강타해 버렸다. 이리 나리는 코를 맞은 것도 모자라, 온몸이 흠뻑 젖고 말았다.이리 나리는 그를 가만히 쳐다보다가 천천히 일어나서 옷을 털어내고는,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사과와 해명을 하시지요."그러나 우문호는 여전히 흥분한 상태였다. 그는 이리 나리의 어깨를 붙잡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듣고 있으니, 어서 계속 이야기 하십시오. 나리의 의견이 너무 뛰어나, 듣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습니다! 나리는 정녕 전무후무한 북당 최고 부자입니다! 훌륭합니다!"냉수보가 무표정하게 말했다."북당의 수보는 접니다만."이때, 목여 태감이 황급히 달려와 걱정스러운 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