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폐 도둑과 서일의 착각도인이 경악하며 그를 보는데 그 사람도 경악하며 도인을 보더니, 두사람이 서로 마주보며 몇 바퀴를 돌았다.“옥허(玉虛)?”“사숙조?” “너 왜 이렇게 늙었어?”“사숙조께서는 어째서 아직 그렇게 젊으십니까?”원경릉은 우문호와 만나서 천천히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원경릉은 방금 지폐를 꺼내다가 염낭 안에 지폐들이 엉클어져서 꺼내서 정리하는데, 백 냥 짜리 한 장이 없고 대신 원래 신불에 기부하려던 열 냥 짜리는 그대로 있는 걸 발견했다.순간 얼굴이 하얘지며 ‘이런 젠장’ 잘못 기부했네.“왜 그래?” 원경릉이 염낭을 꺼내 지폐를 차곡차곡 접어 넣다가 영혼이 가출하는 모습을 보고 우문호가 물었다.원경릉이 속으로 피눈물을 흘리며 겉으로만 웃는 척, “별 일 아니야, 은자 잃어버린 거 아닌가 봤어.” 우문호가 가져가더니 원경릉 대신 몇 번을 세보는 동안 잽싼 동작으로 한 장을 소매속에 감추고 나머지는 전부 염낭에 쑤셔 넣더니, “다 넣었어, 잘 둬.”원경릉은 여전히 속이 쓰린데 우문호의 은밀한 동작을 봤을 리가 있나? 다행히 원경릉은 안에 은자가 얼마 있었는지 모른 채 받자마자 넣어두었다.우문호는 다시 원경릉의 손을 잡자 서일과 만아가 놀라서 쳐다보는데 우문호는 싸늘한 눈빛과 말투로, “뭘 봐? 어서 빨리 안 가고? 태자비가 배가 고프면 어떻게 할 거야?”말을 마치고 원경릉의 손을 끌고 갔다.서일이 만아와 눈을 마주치더니, “염치 있는 군자께서 도적질이 웬 말인가?”만아도 피식 웃으며, “전하께서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추락하신 걸까요”서일이 한숨을 쉬며, “그러니까, 아내를 얻을 땐 신중해야 한다니까.”왕비처럼 이렇게 인색한 수전노와 결혼하면 나날이 비참하다.만아가 즉시 위로하며, “안심 하세요, 사식 아가씨는 통이 크시거든요.”서일이 만아를 보고,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앞으로 사식 아가씨와 결혼하면 자연히 상관있어지잖아요.” 만아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서일이 만아의 머리에 꿀밤을 때리며, “너
이세계로 가지마산을 내려가 마차로 휴가지로 돌아가는 동안 우문호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고 서일만 밖에서 경호가 정말 신기하다며 쫑알쫑알 거렸다.원경릉도 아무 말이 없는 게 열광 뒤 깊은 사색이 찾아왔다.원경릉은 여기 온 이래 가족을 그리워하지 않은 순간이 없었지만 경호의 출현으로 겨우 눌러 놓았던 그리움이 다시금 일어났다.원경릉도 경호에 뛰어내릴 만큼 무모하게 비이성적이지는 않다. 하지만 대다수의 일은 합리적인 방향을 향해 흐르고, 이 말은 반드시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며 일례로 갔다가 쉽게 돌아오지 못한 사숙조 같은 사람이 있다고 말이다.이런 사람이 존재하고, 경호라는 장소가 존재하기에 틀림없이 집에 돌아가는 일이 완전 꿈이 아니라 미래의 어느 날 실현 가능할 수도 있다는 희망이 점점 커지고 있다.우문호가 한동안 침묵하며 벼르다가 원경릉에게, “다시는 환혼(還魂)하기 전에 일 생각도 하지 마.”원경릉이 우문호에게 기대서, “생각 안 해.”“그 시공은 도대체 뭐야? 저승 입구 아냐?” 우문호가 도저히 모르겠고 모르기 때문에 두렵기도 했다.원경릉이 이렇게 즐거운 건 아마도 경호와 환혼이 관련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원경릉이 웃으며, “왜 그렇게 생각해?”우문호가 울적하게, “내 입장에선 그건 지옥의 입구 같다고.”원경릉은 더욱 우문호에게 찰싹 기대며 가타부타 하지 않은 게, 결국 경호가 시공의 입구인지 확실하지 않고 도인의 말을 다 믿을 수도 없을 뿐더러, 설사 그가 거짓말을 한 게 아니어도 사숙조가 스스로 하산했는데 사람들이 사숙조가 경호에 들어갔다고 오해하는 바람에 마지막에 나타났을 때 그가 경호에서 나타났다고 착각한 것이다. 그리고 사숙조가 이세계나 시공의 입구를 언급한 것은 다른 곳에서 주워 들은 것일 가능성이 있으며, 어쩌면 사숙조는 후배와 알고 있을 가능성도 있어서, 후배가 사숙조에게 이세계 시공에 대한 얘기를 했을 수도 있다.이렇게 지금 냉정하게 따져보니 생각이 이성적으로 돌아간다.휴가지에 돌아와서 사식이
문둥산의 참상문둥산은 사람의 출입을 금하는 곳으로 특히 현 황실의 태자라는 사실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조정에 태자 탄핵 상소가 빗발칠 게 틀림없다.문둥산은 북당에 있어 불길한 존재로, 5년전 문둥병이 창궐하던 때 조정의 한 관원이 문둥병 환자를 죽인 뒤에 시체를 태우자는 데서 시작했다.문둥병은 줄곧 존재했지만 경성처럼 밀집된 장소에서 폭발적으로 발생한 경우는 드물었다. 이 관원은 하여수(何如秀)라는 사람으로 문하성(門下省) 좌산기상시(左散騎常侍)를 맡은 안왕의 식객이었다. 하여수는 과거 출신으로 적위명이 선발하여 6년전 문하성에 부임에 문둥병이 창궐하던 때에 ‘악질이 횡행하는 것은 북당의 위상을 손상시킨다’는 이유로 비밀리에 황제 폐하에게 ‘나병 환자를 전부 죽여서 불태워 후환을 없애야 한다’는 상소를 올렸다.비밀 상소였기에 이 일을 알고 있는 사람이 없지만 우문호만은 알고 있었는데, 당시 우문호가 마침 태상황 병상에서 시중을 들다가 명원제가 태상황과 상의하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다.태상황이 당시 병중으로 환자에 대한 이해심이 커서 하여수의 제의에 동의하지 않았다. 결국 상소에 언급된 방법 중 하나를 골라 나병 환자들을 산꼭대기에 가뒀다. 당시 천명이 넘는 사람을 고작 10묘(300평) 정도의 산간 지역에 가두었는데 한쪽은 깎아지는 듯한 벼랑이고, 다른 한쪽은 밀림으로 밀림 안쪽은 말라리아가 퍼져서 들어갈 수 없는 관계로 다른 양쪽만 병사들이 둘러 싸고 지켰다.산간 지역에 물자를 공급하는 것은 전부 조정의 책임이었으나 세상에 버림받은 병자들이어서 조정은 생존과 매장만 책임질 뿐 생활 수준은 비참했다.개처럼 안에 갇히면 급식은 아주 열악하고 공급을 담당하는 관아는 일년동안 고기 한점도 주지 않았다.이게 문둥산의 진실이나, 조정이 내린 은자는 매일 일정한 고기를 공급하기 충분했으며 이렇게 내려진 은자가 누구의 주머니에 들어갔는지 알 수가 없다.우문호는 전에 문둥산에 와서 물어본 적이 없었고, 사실 경성의 어떤 관리도 이렇게 산속에 버려진 병자를
문둥병자우문호가 봐도 힘들었는데, 시체가 쌓인 걸 보는 게 처음이라 서가 아니었다. 전장에서 수백구는 물론이고 천 단위 만 단위의 시체를 봐왔다.하지만 전장에서 병사들이 기꺼이 생명을 희생한 것은 나라를 지키기 위함으로 그들은 생전에도 사후에도 존중 받아 마땅했다.하지만 이 병자들은 생전에도 참담한데 사후에는 더욱 참담해서 땅에 묻히지도 못하고 살아서도 죽어서도 사람들에게 혐오스럽게 여겨지며 버려졌다.마치 구더기처럼 보기만 해도 구역질을 했다.원래 우문호가 문둥산 병자들을 치료하기로 결정한 것은 원경릉을 지지하기 때문이었는데, 지금 이 광경을 목도한 뒤로는 우문호 스스로가 원하게 되었다.우문호 일행은 다른 방향 울타리 쪽으로 가서 삼삼오오 문 앞 평지에 앉아 있는 병자들을 볼 수 있었다. 거리가 약간 멀었지만 전혀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없는 몰골인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남자도 있고 여자도 있고 어른도 있고 아이도 있었다. 남루한 의복에 얼굴은 표정이 없고 좀 더 가까이 가니 그들의 눈은 죽어 있었다.만아가 놀라며, “어떻게 아이가 있을 수 있죠? 태자비 마마, 이 병은 감염에서 발병까지 몇 년 걸린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어떻게 아이가 있을 수 있을까요?”우문호가 낮은 목소리로, “나중에 보내진 아이들이야, 어머니가 발병한 후 2~3년이 지나서 아이들도 발병한 거지, 그래서 같이 보내진 거고.”이것들은 탕양이 조사하고 돌아와서 보고한 내용으로 당시에 들을 땐 감정의 기복이 별로 없었으나 지금 막상 대하고 보니 마음이 착잡하다.자신도 아비 입장에서 자신의 아이들이 초왕부에서 비단옷에 맛있는 음식을 먹을 동안, 이 아이들은 고작 7~8살 정도 돼 보이는데 이미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서 이생에 다시는 태평성세의 화려함을 볼 수 없는 것이다.원경릉은 탕양이 가지고 돌아온 데이터를 보고 지금 산에 있는 아이들이 13명, 제일 큰 아이가 14세, 제일 작은 아이가 6살인 것을 알았다. 여기 병자들도 모두 5년전 올려 보내진 게 아니라 요 몇 년 사
살아있는 사람들의 무덤사람 같지 않고 지옥의 귀신 같았다.서일이 작은 목소리로, “저 사람 말이 32살이라고 합니다.”순간 정적이 감돌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오직 바람만 귓가에 계속 스치며 썩은 냄새만 풍겨왔다.어느 만큼 시간이 지난 후 원경릉은 서일을 시켜 그 사람에게 전병을 더 주게 했는데 그들은 전부 마른 식량을 챙겨 산을 올라서 서일이 한 덩이를 주자 게눈 감추듯 먹어 치우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없어졌다.원경릉이, “천천히 드세요, 목 막혀요.”병자가 웃는데 공포스럽다, “목 막혀 죽으면 좋죠, 적어도 배는 부를 테니까.”원경릉이 우문호를 보는데 우문호의 얼굴에 한번도 없던 엄숙함과 격동이 있었다. 그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병자가 전병을 먹는 것을 보기만 했다.다 먹은 후에 우문호가 비로소, “이름이 뭔가? 당신들은 여기서 음식 공급이 부족한가?”병자는 손가락에 남은 찌꺼기를 빨며 다시 무감각한 얼굴로 돌아가, “전 이하(李賀)입니다. 하루에 한 끼를 먹는데 다 옥수수 개떡으로, 마른 거, 쉰 거, 쌀겨 죽을 먹을 때가 더 많고, 어제는 추석이라 밀가루 만두를 먹었는데 일년에 두 번 추석과 설날에 줍니다.”병자는 원래 영양보충이 필요한데 이렇게 개 만도 못하게 먹고 어떻게 영양이 있을 수 있을까?어쩐지 하나같이 피골이 상접한 모습이더라.“이 안에는 몇 명이나 있나?” 우문호가 다시 물었다.이하가, “구체적으론 모르고 300명 정도겠죠. 어쨌든 요 몇년간 죽은 사람도 많고 어쩌다가 사람이 올려 보내지기도 하지만, 여기는 살아있는 사람의 무덤이니 올라오는 순간 죽는 날을 세는데, 몇 명인지 누가 신경이나 씁니까?”원경릉이, “가족들이 당신을 보러 올라오나요?”이하가 놀라며, “가족?”이하가 웃기 시작하는데 웃는 게 우는 것 같다. “올라오게 하면 안 되지요, 올라와서 뭐 하게요? 병에 감염된 후 여기 다시 보내지라고요?”만아가 듣더니 눈물을 흘리며, “가족들이 그립죠?”이하가 진정하고 무뚝뚝하게 고개를 흔들며, “안
주재상과의 대화경성으로 돌아오니 우선 사식이가 원경릉에게 보고하길 원용의가 돌아온 뒤 이사를 갔고 제왕도 순순히 이혼협의서를 써주어서 두 사람은 이혼한 셈이 되었다고 했다.제왕이 포기하다니 우문호에겐 의외였다. 일곱째가 동그란 얼굴 기지배에게 마음이 움직였다는 걸 일곱째 자신만 계속 모르는 것 같다.동그란 얼굴 기지배가 갔으니 일곱째는 분명 상처를 받고 누군가를 찾아 술 마시고 하소연할 게 뻔하다. 그리고 동생을 달래는 형의 책임을 다른데 전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우문호는 여러 번 생각해 보더니 서일에게 만약 제왕이 오면 자신이 없다고 하라고 했다. 술은 즐겁게 마셔야지 일곱째의 지겹도록 되풀이되는 얘기를 듣는 건 고문이다.하지만 이번에 어찌 된 일인지 제왕이 오지 않는데 종일 코 빼기도 뵈지 않는 것이 모기에만 물려도 하늘이 무너진다고 소란을 떠는 제왕 성격이라 우문호는 구사를 시켜 가보도록 했다.구사도 별로 가고 싶어하지 않는 게 벌써 해질 녘인데 집에 가서 새신부와 밥 먹으며 사랑을 속삭이면 좀 좋아? 아내를 잃은 데다 실연까지 한 남자를 굳이 건드려야 하느냐 말이지?그리도 그간의 정이 있어서 구사가 갔다. 하지만 제왕부 별채에 갔다가 돌아와서 우문호에게, “제왕 전하는 아직 살아 계시고, 웃으시고, 말씀도 하셔.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던데.”우문호가 믿을 수 없어, “일곱째는 동그란 얼굴 기지배한테 마음이 있었는데 어떻게 상처를 안 받을 수가 있지?”“어쨌든 아무일 없어 보였어.” 구사가 떠올리더니, “하지만 내가 갔을 때 눈을 비비고 있었던 거 같아, 울었는지는 모르겠지만.”“확실하네!” 우문호가 단정하는게 그래야 일곱째의 성격에 맞는다.두 사람은 이윽고 안심했다.문둥산의 일은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그래서 우문호는 주재상과 상의하기 위해 주재상의 집으로 갔다.재상은 듣자마자 반대하며 질책하길, “태자비 마마는 미래의 국모시고, 황태손의 생모신데 어찌 문둥산에 가시는 모험을 하실 수 있다는 말입니까?”우문호는 재상의
우문호의 결심우문호가 가볍게 받아 치며, “신경 안 써요!”주재상이 기가 막혀서, “신경 안 쓴다고요? 전하께서 신경 안 쓰신다는 건 황조부께서 전하를 위해 계획하신 걸 저버리는 겁니다.”우문호가 주재상을 보고 웃으며, “황조부께서 저를 위해 세우신 계획이라면 그건 북당 강산과 종묘사직을 위한 것이니 백성을 근본으로 삼으실 게 분명합니다. 제가 백성을 위해 하는 일은 황조부의 기대와 약속이나 한 듯 딱 들어맞는데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주재상이 눈을 부라리며, “갈수록 능구렁이 담 넘어 가십니다.”“어쨌든 이치는 그렇다는 것이지요, 재상이 궁리한 게 그거 아닙니까. 만약 제가 태자의 지위가 위태롭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북당의 복이 될 수 없습니다. 재상은 지난날 굉장히 박력 넘치게 일하더니 요즘 겁이 많아지신 게 늙으셨나 봅니다. 패기가 떨어졌다 싶으면 희상궁을 자주 찾아가서 얘기를 좀 나누세요, 자극이 돼서 어쩌면 젊었을 때의 활력을 되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우문호가 말을 마치고 웃으며 작별을 고했다.주재상이 유유자적 하게 떠나가는 걸음을 보고 비록 문둥산에 가는 건 동의하지 않았지만 알게 모르게 우문호의 말에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말을 준비해라, 입궁할 것이야!” 주재상이 하명했다.태자가 아침 조정회의에서 이 안건을 제출할 거라고 했으니 반드시 할 게 틀림없다. 주재상은 그보다 먼저 폐하에게 넌지시 말을 던져 놔야 한다.하지만 주재상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 게 황제는 동의하지 않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아니나 다를까 명원제는 주재상의 말을 듣고 그 자리에서 화를 내더니, “간도 크구나, 감히 사사로이 문둥산을 가? 아직 덜 바쁜 모양이군, 자네가 경고하게, 이 일은 입도 뻥긋하지 말 것이며 특히 아침 조정회의에서는 일언반구도 꺼내서는 아니될 것이네.”주재상이, “폐하, 태자 전하는 말을 잘 듣는 분은 아니십니다.”이 말에 명원제는 수심에 잠겼다.그렇다, 우문호는 어릴 때부터 말 잘 듣는 아이가 아니었
문둥산 비리주재상이 출궁해 초왕부로 와서 먼저 희상궁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우문호에게 황제가 이 일에 동의하지 않는 것과 우문호에게 ‘함부로 설치지 말고, 급식을 조사해서 중간에서 떼먹은 자를 찾는 일만 하면 된다’고 전했다.우문호는 일단 급식을 개선하는 일이 급선무로 도대체 어떤 개자식이 병자의 급식비와 약값까지 떼먹었는지 알아내기로 했다.그런데 이게 웬 걸, 조사를 안 했으면 모를까, 해보니 어이없게도 문둥산 병자를 관리하는 것은 뜻밖에 우문호의 셋째 외삼촌 소답화였다.소답화는 자질이 평범한 사람으로 호부에 있을 때 원외랑(員外郎)이었는데 그나마도 겨우 청탁으로 들어온 것인데 몇 년을 일해도 일하는 수완이 늘지 않아 계급이 낮아지지는 않았지만 승진도 못했다.문둥산을 설립할 때 아무도 가서 관리하고 싶어하지 않았는데, 소답화가 자진해서 가서 일을 맡고자 하여 산 위에 집을 짓고 사람을 산꼭대기로 보내 파수하고 밥을 지었다. 매달 조정에서 보내주는 은자는 천 냥으로 급식과 산 위에서 필요한 각종 지출 용도로 별도로 약재를 사거나 하는 것에 대해서는 영수증으로 정산을 올리고 사람이 죽으면 장례비용은 인당 열 냥을 받았다.문둥산에 천여명이 있어 천냥으로 한달 비용을 충당하기 충분한 것이, 사 놓아야 하는 생활용품이 전부 전에 사 놓았기 때문에 지금 매달 나가는 천냥은 온전히 급식과 의복 비용이다.지금 남은 사람은 300명이며, 산위에서 옥수수 개떡이나 찐빵 같은 급식이 그것도 하루 한번만 주고 있는 것을 기준으로 하면 한 달에 대략 열 냥의 은자가 들며 그것도 굉장히 여유 있게 잡은 것이다.이 일은 처음부터 소답화가 관할하고 있어 전수조사도 그다지 어렵지 않아서 우문호는 사람들에게 은밀히 장부를 초왕부로 가지고 오게 해서 봤다.그날 밤, 우문호와 탕양, 서일 등은 자시(자정 12시)가 되어서야 정산을 마칠 수 있었다.정산을 마치고 우문호의 얼굴이 검어 지며 분노로 모든 장부를 바닥에 내던지며 일갈하길,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5년동안 문
우문호는 종일 바빴다. 그는 차 한 잔을 들고 멀리 있는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특별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아닌, 그저 밥은 먹었는지, 무엇을 먹었고 내일 무엇을 할 셈인지 묻는 것 뿐이었다. 더불어 아이들에게 요즘 잘 지내는지, 무슨 책을 읽고 있느지에 대해서도 물었다.마치 처음으로 전화기를 접한 시골 사람처럼 신기해했지만 그는 마땅한 대화 주제를 찾지는 못했다.한편 원경릉은 홀로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우문호는 이미 능숙해진 듯 보였고, 심지어 목욕하러 가면서도 아이들에게 말을 남겼다.그가 목욕하러 가자, 원경릉은 곧장 아이들과 교감하며 이 일을 의논하기 시작했다.다섯째는 지금 억제제를 맞은 상황이었다.아이들은 잔뜩 흥분한 채 앞으로 언제든 아버지와 이야기할 수 있다고 좋아했다. 하지만 그는 의식으로 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말을 해야 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보면 그를 미친 사람으로 오해할 수도 있었다.목욕을 마친 우문호는 마치 의기양양한 수탉처럼 걸음걸이조차 전보다 더 당당해 보였다."원 선생, 계란이가 그곳이 이곳보다 훨씬 덥고, 과일도 적다고 하오. 과일을 말려, 아이들에게 나누어 보내는 것이 어떻소?"그러자 원경릉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좋소. 그럼 내일 함께 말리는 것이 어떻소?""좋소! 아, 그리고 만두한테도 물어야겠소. 깜빡하고 어디까지 갔는지 묻지를 못했소."우문호는 앉아서 머리를 수건으로 닦은 뒤 다시 눈을 감고 우문예와 대화를 시도했다.그 모습을 보며 원경릉은 차마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침대에 누워서도 우문호는 여전히 흥분 상태였다. 그는 두 손을 베고 말했다."원 선생, 당신이 없었으면, 정말 많은 재미를 놓쳤을 것이고, 이렇게 많은 걸 배울 수도 없었을 것이오. 세상에 이런 것도 있다는 것을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소. 우리가 경험한 일들이 정말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인지조차 믿기 어렵소.""알겠소."원경릉은 그의 충격에 휩싸인 표정을 바라보며 말했다."난 당신이 살던
"그래, 좋구나. 죽여서 천도를 꼭 바로잡아야 한다!"우문호가 말했다."천도?""법이다! 죽여서 법을 바로 세워야 한다!"냉정언이 꼬투리를 잡자, 우문호가 급히 정정하며 억울한 표정으로 까다로운 그를 바라보았다.천도가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그는 요즘 천도를 따르는 것을 원하고 있었다.저녁 무렵 소월궁으로 돌아온 우문호는 흥분한 얼굴로 원 선생에게 이 이야기를 전하려 했다. 하지만 미간을 찌푸린 채 사색에 잠겨 한쪽에 앉아 있는 원경릉을 발견했다. 그녀는 그가 돌아온 것도 모르는 듯했다."원 선생...?"우문호가 그녀를 부르며 다가갔다.원경릉은 아이들과 교감할 수 없는 문제를 어떻게 이야기할지 고민하며 넋을 잃고 있다가, 우문호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정신을 차렸다. 그녀가 다급히 일어나 말했다."돌아왔소? 곧 저녁을 올릴 테니, 손 씻고 오시오."그가 괜히 입맛을 잃을 수도 있으니, 그녀는 일단 배를 채우고 이야기하려 했다.하지만 우문호는 신이 나서 앉더니, 두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감싸며 말했다."급할 거 없소. 할 말 있소."원경릉이 그의 반짝이는 눈을 보며 따라 웃었다."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소? 어찌 이렇게 기뻐하는 것이오?"우문호는 목소리를 낮췄지만, 여전히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오늘 계란이와 연락이 닿았소.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소."그러자 원경릉이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정말이오? 목소리를 들었소? 뭐라고 했소?"순간 우문호의 얼굴에 빛이 나는 듯했다."밥 먹었냐고 물으니, 먹었다고 답하며 나한테 식사를 했는지 물었소. 그래서 굴비를 먹었다고 말했네. 우리를 그리워하고 있고, 조만간 우리를 보러 오겠다고 했소."원경릉은 그의 말이 사실인지 헷갈렸다. 그와 아이들이 교감할 수 있는 것은 자기장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다섯째는 그들과 다른 상황이라 교감이 가능할 리가 없었지만 기쁨에 가득 찬 그의 표정으로 보아, 거짓은 아닌듯했다."말을 한 것이오?"원경릉이 다시 묻자, 우문호가 이내 고개를
점심을 먹은 후, 그녀는 혼자 산꼭대기로 올라가 먼 곳에 있는 금나라의 도성을 바라보았다. 거세게 부는 바람을 느끼며, 그녀는 문득 스승님이 금나라로 돌아갔는지 궁금해졌다.그녀는 스승님이 며칠 더 머물기를 바랐지만,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급히 금나라로 떠났다. 그가 이렇게까지 신경 쓰는 일은 좀처럼 없었기에 이상했다.방금 들린 낮은 목소리를 떠올리며, 그녀는 순간 스승님이었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아버지의 목소리와 비슷하게 들려, 어머니가 아버지에 대해 말했던 것이 떠올랐다. 설마 아버지의 정신력이 이렇게 먼 곳까지 전달될 수 있는 걸까?그녀는 마음을 집중해 답해 보았다.“아바마마, 저는 식사를 했습니다. 아바마마는 드셨습니까?”한편, 경성 황궁 어서방에서 냉수보, 이리 나리, 탕양, 그리고 몇몇 친왕과 중신들이 과거 시험 개혁에 대해 논의하고 있었다.이리 나리가 자신의 의견을 차근차근 얘기하고 있었고 모두가 집중해서 듣고 있었는데, 그러던 중, 우문호가 갑자기 고개를 살짝 기울이더니, 이내 탁자를 세게 내리치며 벌떡 일어났다. 그는 기쁨에 찬 얼굴로, 흥분된 목소리로 외쳤다."먹었어, 먹었다. 굴비를 먹었는데, 정말 맛있더구나."그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모두 놀라 그를 쳐다보았다.그가 탁자를 세게 내리치는 바람에 잔이 앞으로 날아가, 열변을 토하던 이리 나리의 얼굴을 강타해 버렸다. 이리 나리는 코를 맞은 것도 모자라, 온몸이 흠뻑 젖고 말았다.이리 나리는 그를 가만히 쳐다보다가 천천히 일어나서 옷을 털어내고는,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사과와 해명을 하시지요."그러나 우문호는 여전히 흥분한 상태였다. 그는 이리 나리의 어깨를 붙잡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듣고 있으니, 어서 계속 이야기 하십시오. 나리의 의견이 너무 뛰어나, 듣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습니다! 나리는 정녕 전무후무한 북당 최고 부자입니다! 훌륭합니다!"냉수보가 무표정하게 말했다."북당의 수보는 접니다만."이때, 목여 태감이 황급히 달려와 걱정스러운 얼
같은 균이긴 하지만 서로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어, 이곳에서 처리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일이었기에, 이제 양여혜에게 기대는 수밖에 없다.원경릉은 귀영위 나장군과, 경천의 일을 담은 편지를 써 양여혜에게 보내면서, 혹시 해결책이 있는지도 함께 물었다. 주변 나라의 안정은 북당에게 중요한 일이다. 특히 두 나라는 이제 막 협력을 시작한 상황이었기에, 주변 나라의 안정은 북당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우문호는 어서방에서 신하들과 함께 국사를 논하며 식사하고 있었다.즉위한 이후부터 그는 늘 배불리 먹을 수 있지만, 간소한 식사를 해왔다. 사적으로 모임을 가질 때는 이리 나리가 따로 준비하기에 밥상은 꽤나 풍성했다.우문호는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신하들과 모여 식사하며,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때로는 취한 신하들이 거리낌 없이 말하기도 했지만, 실언으로 황제가 화를 내지 않는 것을 알고 자유로이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그 덕분에 군신 간의 관계는 유례없이 돈독해질 수 있었다.오늘 역시 분위기가 좋았다. 우문호는 어제처럼 화를 내지 않고, 차근차근 일을 처리하게 명을 내렸다. 그리고 만두도 서일과 함께 보내어, 실무를 배우게 했다.식사를 마치자마자 신하들은 너도나도 밖으로 나가 몸을 움직이며 소화를 시켰다.우문호는 궁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오가는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원 선생이 실험실에 있을 테니, 그녀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그는 어서방에 있는 연탑에 걸터앉아 다리를 꼬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 그는 다시 계란이와 교감을 시도했다.그는 안에 있던 시종들을 모두 내보냈고, 심지어는 목여 태감도 물러나게 했다.그는 원 선생이 말한 대로 잡념을 비우고 오로지 계란이와의 교감을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계란아, 밥은 먹었느냐?"하지만, 오랫동안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능력이 부족한 것인지 의심스러워했지만, 천천히 배우다 보면 언젠가는 익숙해질 것이니, 걱정은 하지 않았다. 똑똑하며, 타고난 재능까
점심때가 되자 희 상궁은 궁을 떠났고, 사식이도 아이를 돌보러 돌아갔다. 원경릉이 실험실로 가려고 할 때, 목여 태감이 땀을 뻘뻘 흘리며 뛰어왔다. 원경릉이 문을 나서는 모습을 보고, 그가 다급히 소리쳤다."마마, 잠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원경릉은 그의 다급한 모습에 깜짝 놀라 물었다."무슨 일인가?! 어서방에 무슨 문제라도 생긴 것인가?""아닙니다, 그건 아닙니다."목여 태감은 자리에 가만히 서서 눈치라도 보는듯, 계속 뒤를 힐끔 돌아보았다. 문득 녹주와 기라가 전각 밖에 서 있는 것을 보고, 그가 손을 흔들며 말했다."다들 일을 보거라. 마마께 드릴 말씀이 있다."녹주와 기라는 중요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눈치채고 공손히 예를 올리며 물러났다.목여 태감이 심각한 표정을 짓자, 원경릉도 덩달아 긴장되었다. 그녀는 그를 전각 안으로 불러 앉히며 말했다."태감, 대체 무슨 일인가?"목여 태감은 조회에 따라갔을 때부터 이 말을 꺼내지 못해 속이 타들어 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는 황제가 어서방에서 대신들과 함께 식사하는 틈을 타 급히 마마를 찾아온 것이었다. 전각에 들어온 그는 숨도 제대로 고르지 못한 채 서둘러 말했다."마마, 오늘 축시쯤에 일찍 일어나 폐하의 시중을 들려고 밖으로 나섰습니다. 그제야 폐하께서 전각 밖에서 혼잣말하고 계신 것을 보았지요. 공주의 이름을 여러 번 부르시는 것으로 보아, 공주를 너무 그리셔서 넋을 잃으신 게 아닌지 걱정됩니다. 폐하께는 감히 여쭤볼 수가 없기에, 이렇게 마마께 보고드리러 왔습니다. 폐하께 약이라도 지어 드리는 건 어떤지요?""전각 밖에서 혼잣말을 했다니?!"원경릉은 그만 깜짝 놀랐다. 며칠 동안 바삐 움직였고, LR과 어린 황제의 일로 고민이 깊어진 터라, 어젯밤 그녀는 깊이 잠들어 있었기에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예. 공주의 이름을 몇 번이나 부르셨습니다."그는 원경릉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할까 봐, 황제의 모습을 흉내 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계란아, 계란아, 자고 있느냐?
희 상궁은 사식이를 아주 예뻐했다. 특히 사식이의 아들이 아직 어리기에, 궁에 오면 사식이에게 붙어 아이를 돌보는 것을 좋아했다.그녀는 이번에 궁에 들어와 만두를 만나지 못해, 사식이의 아이를 돌보며 그리움을 달래려 했다.사식이는 어느새 살이 조금 올라, 눈매에서 마저도 행복 가득하든 것을 알 수 있었다. 귀한 집안에 시집가지 않았지만, 좋은 사람을 만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늘 행복한 사람은 어린 시절의 순수함을 간직하기 마련이다.그녀는 세월이 지나서도, 예전처럼 서일에 대해 불평하고 있었다.“그저 며칠 외출하는 것 뿐인데, 걱정 가득 잔소리만 몇 번을 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그를 밀어내고 싶어질 정도입니다!”하지만 그녀는 투덜거리면서도 입가에 미소를 지었고, 그녀의 눈 속에 행복만이 가득 차 있었다. 조금도 복잡한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어찌 불만이 있는 것이냐? 누군가 잔소리를 하는 것은 행복한 일이란다.”희 상궁이 그녀에게 말했다.“희 상궁, 그만하시오. 불만이 아니라 그저 잉꼬라는 것을 자랑하는 것이네.”원경릉은 연탑에 다리를 꼬고 앉아, 웃으며 말했다.“자랑이라.”희 상궁도 그녀의 뜻을 단숨에 알아차렸다. 붉어진 사식이의 얼굴을 보며 희 상궁이 입을 열었다. "정말 젊은이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행복한데도 불평하다니."“행복이라니요? 정말로 짜증이 납니다.”사식이는 몸을 구부려서 신발을 발판에 올리고는, 원경릉 옆에 앉았다. 이 신발은 서일이 황제와 함께 외출할 때 사 온 것이었다. 이곳에서는 본 적이 없는 신발인 '하이힐'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그녀는 이 신발을 엄청나게 아끼고 있었다.희 상궁이 말했다.“짜증은 무슨. 어찌 좋은 말을 하지 않는 것이냐? 서일을 칭찬할 수는 없는 것이냐?”“희 상궁, 믿지 않으시겠지만, 남자는 칭찬을 자주 하면 안 됩니다. 너무 자주 칭찬하면 익숙해져서 효과가 없습니다.”사식이가 웃으며 말했다.“헛소리!”그러자 희 상궁이 웃으며 나무랐다.“욕을 하다니, 어찌 연세도
원경릉은 피곤한 나머지 말을 하다 그만 잠에 들어 버린 반면, 우문호는 너무 흥분해서 잠을 잘 수 없었다. 그는 잠이 안 와 뒤척일 때마다 원경릉을 깨울까 봐 걱정되어, 복도에 나가 앉아 더 많은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 시도했다.그는 두 손으로 큰 돌을 들어 올리며 힘을 주고 외쳤다."일어나, 일어나, 날아오르거라."큰 돌이 움직이지 않자, 그는 그것을 내려놓고 더 작은 돌을 들었다."일어나거라."한참 노려봤지만, 여전히 움직이지 않자, 그는 또 다른 돌로 바꾸어 다시 시도했다.더 작은 돌을 쥐다가, 결국 두 손가락으로 모래를 쥐었다. 그러나 모래는 떠오르지 않았고, 오히려 손으로 꽉 쥐어, 몇 알의 모래가 빠져나갔다.그는 어쩔 수 없이 손바닥에 낙엽을 올려놓고,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나 나뭇잎은 여전히 떠오르지 않았다. 화가 치밀어 오른 그는 입김을 불어 나뭇잎을 날려 보냈다.그는 손을 두드리며 눈을 굴리고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나뭇잎보다 가벼운 것이 떠오르지 않아, 결국 이 능력을 포기하기로 했다. 대신 그는 계란이와 소통해 보려고 했다. 원경릉과 아이들이 쉽게 할 수 있으니, 그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조용한 소월궁 복도에서 그는 조용히 계란이의 이름을 두 번 불렀다."계란아, 자고 있냐?""계란아...!"정확히 두 번 부른 후, 그는 순간 늦은 시각이라 계란이가 분명 자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 이렇게 부르면 오히려 잠든 계란이까지 깨울 것 같아 입을 다물었다.일찍 일어난 목여 태감은 황제가 일어날 때까지 기다리고 준비를 도우려 했다. 돌아서려던 참에 황제가 복도에서 공주의 이름을 부르며 소리치는 것을 들었다. 그는 황제가 공주를 그토록 그리워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 공주는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황제와 함께한 시간이 많지 않았다.그마저도 가끔 공주가 보고 싶을 정도인데, 황제는 오죽하겠는가?그러나 계속 그리워하는 것도 답은 아니었다. 그리움이 병이 되면 안 되니, 그는 이제 황후에
그는 파도가 몰려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가 위풍당당하게 파도 속을 헤치며 지나가면, 계란이가 자신을 더 존경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렇게 생각하자, 귓가에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눈을 번쩍 뜨니, 호수 표면에서 일어나는 변화가 보였다.갑자기 폭풍이 불어온 듯, 호수의 물이 밀려서 호숫가로 몰려갔다. 파도가 하나하나씩 밀려와, 정자에 앉아 있는 그들이 흔들림을 느낄 정도였다.그는 두 손으로 난간을 잡고,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원 선생, 이 파도를 정말 내가 만들었다는 것이오?!""그렇소!"원경릉이 그의 놀란 얼굴을 보며 방긋 웃으며 말했다."바로 당신이 한 것이오. 놀랍지 않소?"원경릉도 약간 놀랐다. 억제제의 효과가 남아 있어서 그저 소소한 정도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 정도는 될 것이라 상상도 못 했다."너무 놀랍소."우문호는 믿기지 않아서 한참을 바라봤다. 파도는 계속해서 일렁였고, 다시 몇 번 더 일어나기를 마음속으로 바라자, 파도는 더욱 커졌다."원 선생, 나도 능력이 생겼소. 당신과 아이들처럼 됐소."우문호는 기뻐서 눈빛이 반짝였고, 목소리도 떨리기 시작했다.그는 너무나도 그들처럼 되고 싶었기에, 흥분한 나머지, 원경릉을 덜썩 끌어안았다."뛰어내리고 싶소. 뛰어내릴 테니, 이곳에서 기다리시오. 잠깐만 내려가서 놀다 오겠네."원경릉이 말하기도 전, 그는 원경릉을 놓고 난간을 넘어 풍덩 소리와 함께 호수로 뛰어들었다.어두운 밤, 그는 물고기처럼 호수 속을 헤엄쳤다. 파도가 계속 일렁이자, 호수 속의 물고기들은 놀라서 여기저기 뛰어 올라왔지만, 그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물속에서 몇 바퀴를 돌고 나서야 정자로 돌아왔다. 그러고는 물기로 뒤덮인 얼굴을 내밀고 원경릉을 보며 웃었다."원 선생, 너무 재밌소. 당신도 내려오겠소? 물살을 줄이겠네."원경릉은 호숫가에서 팔꿈치를 받친 채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난 가지 않고, 그저 당신이 놀고 있는 모습을 보겠네. 한 바퀴 더 돌고 자러 가야 하오
원경릉은 어두운 풀숲에서 이 장면을 보고 그만 넋을 잃고 말았다. 그가 정말 주문이라도 걸고 있는 걸까?능력 조종은 몸과 마음을 집중해야 한다. 처음 능력을 얻었으니, 분명 머릿속이 복잡할 것이다. 그래서 능력을 제어하지 못하고, 게다가 억제제도 조금 효과가 있기 때문에, 능력을 사용하기가 더 어려울 것이었다.그녀는 이 바보가 너무 안타까웠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믿지 않는 척했지만, 몰래 나와서 시험해 보는 그를 보니 속상했다.그녀는 잠시 망설이다 밖으로 걸어갔다."다섯째!"우문호는 갑자기 고개를 돌렸다. 표정은 어쩔 줄 몰라 당황했으며, 손가락을 뒤로 숨기려 했다."아니... 언제 온 것이오?"원경릉이 답했다."호숫가에 서 있기에 온 것이오. 혹시 오늘 밤 내가 말한 걸 시도해 보려고 하는 것이오?"그녀는 뒤에서 따라갔던 것도, 그가 시도하는 것을 보았다고도 말하지 않았다.우문호는 그녀가 그의 어리석은 행동을 보지 않았다는 것을 듣고 한숨을 내쉬었다."아니네. 그저 잠이 안 왔을 뿐이오. 길주에서 벌어진 부정을 생각하느라 마음이 복잡해서, 바람을 쐬려고 나온 것이오. 당신이 말한 일은 벌써 잊은 지 오래되었네. 그런 농담을 어찌 아직까지도 마음에 담아두겠소?"원경릉은 대답한 후, 그에게 다가가 손을 꽉 잡았다."함께 바람도 쐴 겸 호숫가 정자에 가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어떻소?""피곤하지 않소?"우문호가 물었다."괜찮소. 그냥 당신과 얘기하고 싶네."그녀의 눈빛에는 은은한 미소와 애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우문호가 그런 그녀에게 입맞춤하고 웃으며 말했다."좋소. 호수 가운데로 가시오."두 사람은 손을 잡고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갔다. 호수 가운데에는 작은 정자가 하나 있었고 호수를 관찰하기에 아주 좋은 장소였다.그리고 정자의 처마 아래에는 하나의 풍등이 걸려 있었다. 비록 불빛은 다소 어두웠지만, 분위기는 정말 좋았다.두 사람은 자리에 앉지 않고 난간에 기대어 호수에서 반짝이는 빛을 바라보았다. 미풍이 불어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