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둥병자우문호가 봐도 힘들었는데, 시체가 쌓인 걸 보는 게 처음이라 서가 아니었다. 전장에서 수백구는 물론이고 천 단위 만 단위의 시체를 봐왔다.하지만 전장에서 병사들이 기꺼이 생명을 희생한 것은 나라를 지키기 위함으로 그들은 생전에도 사후에도 존중 받아 마땅했다.하지만 이 병자들은 생전에도 참담한데 사후에는 더욱 참담해서 땅에 묻히지도 못하고 살아서도 죽어서도 사람들에게 혐오스럽게 여겨지며 버려졌다.마치 구더기처럼 보기만 해도 구역질을 했다.원래 우문호가 문둥산 병자들을 치료하기로 결정한 것은 원경릉을 지지하기 때문이었는데, 지금 이 광경을 목도한 뒤로는 우문호 스스로가 원하게 되었다.우문호 일행은 다른 방향 울타리 쪽으로 가서 삼삼오오 문 앞 평지에 앉아 있는 병자들을 볼 수 있었다. 거리가 약간 멀었지만 전혀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없는 몰골인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남자도 있고 여자도 있고 어른도 있고 아이도 있었다. 남루한 의복에 얼굴은 표정이 없고 좀 더 가까이 가니 그들의 눈은 죽어 있었다.만아가 놀라며, “어떻게 아이가 있을 수 있죠? 태자비 마마, 이 병은 감염에서 발병까지 몇 년 걸린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어떻게 아이가 있을 수 있을까요?”우문호가 낮은 목소리로, “나중에 보내진 아이들이야, 어머니가 발병한 후 2~3년이 지나서 아이들도 발병한 거지, 그래서 같이 보내진 거고.”이것들은 탕양이 조사하고 돌아와서 보고한 내용으로 당시에 들을 땐 감정의 기복이 별로 없었으나 지금 막상 대하고 보니 마음이 착잡하다.자신도 아비 입장에서 자신의 아이들이 초왕부에서 비단옷에 맛있는 음식을 먹을 동안, 이 아이들은 고작 7~8살 정도 돼 보이는데 이미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서 이생에 다시는 태평성세의 화려함을 볼 수 없는 것이다.원경릉은 탕양이 가지고 돌아온 데이터를 보고 지금 산에 있는 아이들이 13명, 제일 큰 아이가 14세, 제일 작은 아이가 6살인 것을 알았다. 여기 병자들도 모두 5년전 올려 보내진 게 아니라 요 몇 년 사
살아있는 사람들의 무덤사람 같지 않고 지옥의 귀신 같았다.서일이 작은 목소리로, “저 사람 말이 32살이라고 합니다.”순간 정적이 감돌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오직 바람만 귓가에 계속 스치며 썩은 냄새만 풍겨왔다.어느 만큼 시간이 지난 후 원경릉은 서일을 시켜 그 사람에게 전병을 더 주게 했는데 그들은 전부 마른 식량을 챙겨 산을 올라서 서일이 한 덩이를 주자 게눈 감추듯 먹어 치우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없어졌다.원경릉이, “천천히 드세요, 목 막혀요.”병자가 웃는데 공포스럽다, “목 막혀 죽으면 좋죠, 적어도 배는 부를 테니까.”원경릉이 우문호를 보는데 우문호의 얼굴에 한번도 없던 엄숙함과 격동이 있었다. 그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병자가 전병을 먹는 것을 보기만 했다.다 먹은 후에 우문호가 비로소, “이름이 뭔가? 당신들은 여기서 음식 공급이 부족한가?”병자는 손가락에 남은 찌꺼기를 빨며 다시 무감각한 얼굴로 돌아가, “전 이하(李賀)입니다. 하루에 한 끼를 먹는데 다 옥수수 개떡으로, 마른 거, 쉰 거, 쌀겨 죽을 먹을 때가 더 많고, 어제는 추석이라 밀가루 만두를 먹었는데 일년에 두 번 추석과 설날에 줍니다.”병자는 원래 영양보충이 필요한데 이렇게 개 만도 못하게 먹고 어떻게 영양이 있을 수 있을까?어쩐지 하나같이 피골이 상접한 모습이더라.“이 안에는 몇 명이나 있나?” 우문호가 다시 물었다.이하가, “구체적으론 모르고 300명 정도겠죠. 어쨌든 요 몇년간 죽은 사람도 많고 어쩌다가 사람이 올려 보내지기도 하지만, 여기는 살아있는 사람의 무덤이니 올라오는 순간 죽는 날을 세는데, 몇 명인지 누가 신경이나 씁니까?”원경릉이, “가족들이 당신을 보러 올라오나요?”이하가 놀라며, “가족?”이하가 웃기 시작하는데 웃는 게 우는 것 같다. “올라오게 하면 안 되지요, 올라와서 뭐 하게요? 병에 감염된 후 여기 다시 보내지라고요?”만아가 듣더니 눈물을 흘리며, “가족들이 그립죠?”이하가 진정하고 무뚝뚝하게 고개를 흔들며, “안
주재상과의 대화경성으로 돌아오니 우선 사식이가 원경릉에게 보고하길 원용의가 돌아온 뒤 이사를 갔고 제왕도 순순히 이혼협의서를 써주어서 두 사람은 이혼한 셈이 되었다고 했다.제왕이 포기하다니 우문호에겐 의외였다. 일곱째가 동그란 얼굴 기지배에게 마음이 움직였다는 걸 일곱째 자신만 계속 모르는 것 같다.동그란 얼굴 기지배가 갔으니 일곱째는 분명 상처를 받고 누군가를 찾아 술 마시고 하소연할 게 뻔하다. 그리고 동생을 달래는 형의 책임을 다른데 전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우문호는 여러 번 생각해 보더니 서일에게 만약 제왕이 오면 자신이 없다고 하라고 했다. 술은 즐겁게 마셔야지 일곱째의 지겹도록 되풀이되는 얘기를 듣는 건 고문이다.하지만 이번에 어찌 된 일인지 제왕이 오지 않는데 종일 코 빼기도 뵈지 않는 것이 모기에만 물려도 하늘이 무너진다고 소란을 떠는 제왕 성격이라 우문호는 구사를 시켜 가보도록 했다.구사도 별로 가고 싶어하지 않는 게 벌써 해질 녘인데 집에 가서 새신부와 밥 먹으며 사랑을 속삭이면 좀 좋아? 아내를 잃은 데다 실연까지 한 남자를 굳이 건드려야 하느냐 말이지?그리도 그간의 정이 있어서 구사가 갔다. 하지만 제왕부 별채에 갔다가 돌아와서 우문호에게, “제왕 전하는 아직 살아 계시고, 웃으시고, 말씀도 하셔.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던데.”우문호가 믿을 수 없어, “일곱째는 동그란 얼굴 기지배한테 마음이 있었는데 어떻게 상처를 안 받을 수가 있지?”“어쨌든 아무일 없어 보였어.” 구사가 떠올리더니, “하지만 내가 갔을 때 눈을 비비고 있었던 거 같아, 울었는지는 모르겠지만.”“확실하네!” 우문호가 단정하는게 그래야 일곱째의 성격에 맞는다.두 사람은 이윽고 안심했다.문둥산의 일은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그래서 우문호는 주재상과 상의하기 위해 주재상의 집으로 갔다.재상은 듣자마자 반대하며 질책하길, “태자비 마마는 미래의 국모시고, 황태손의 생모신데 어찌 문둥산에 가시는 모험을 하실 수 있다는 말입니까?”우문호는 재상의
우문호의 결심우문호가 가볍게 받아 치며, “신경 안 써요!”주재상이 기가 막혀서, “신경 안 쓴다고요? 전하께서 신경 안 쓰신다는 건 황조부께서 전하를 위해 계획하신 걸 저버리는 겁니다.”우문호가 주재상을 보고 웃으며, “황조부께서 저를 위해 세우신 계획이라면 그건 북당 강산과 종묘사직을 위한 것이니 백성을 근본으로 삼으실 게 분명합니다. 제가 백성을 위해 하는 일은 황조부의 기대와 약속이나 한 듯 딱 들어맞는데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주재상이 눈을 부라리며, “갈수록 능구렁이 담 넘어 가십니다.”“어쨌든 이치는 그렇다는 것이지요, 재상이 궁리한 게 그거 아닙니까. 만약 제가 태자의 지위가 위태롭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북당의 복이 될 수 없습니다. 재상은 지난날 굉장히 박력 넘치게 일하더니 요즘 겁이 많아지신 게 늙으셨나 봅니다. 패기가 떨어졌다 싶으면 희상궁을 자주 찾아가서 얘기를 좀 나누세요, 자극이 돼서 어쩌면 젊었을 때의 활력을 되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우문호가 말을 마치고 웃으며 작별을 고했다.주재상이 유유자적 하게 떠나가는 걸음을 보고 비록 문둥산에 가는 건 동의하지 않았지만 알게 모르게 우문호의 말에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말을 준비해라, 입궁할 것이야!” 주재상이 하명했다.태자가 아침 조정회의에서 이 안건을 제출할 거라고 했으니 반드시 할 게 틀림없다. 주재상은 그보다 먼저 폐하에게 넌지시 말을 던져 놔야 한다.하지만 주재상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 게 황제는 동의하지 않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아니나 다를까 명원제는 주재상의 말을 듣고 그 자리에서 화를 내더니, “간도 크구나, 감히 사사로이 문둥산을 가? 아직 덜 바쁜 모양이군, 자네가 경고하게, 이 일은 입도 뻥긋하지 말 것이며 특히 아침 조정회의에서는 일언반구도 꺼내서는 아니될 것이네.”주재상이, “폐하, 태자 전하는 말을 잘 듣는 분은 아니십니다.”이 말에 명원제는 수심에 잠겼다.그렇다, 우문호는 어릴 때부터 말 잘 듣는 아이가 아니었
문둥산 비리주재상이 출궁해 초왕부로 와서 먼저 희상궁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우문호에게 황제가 이 일에 동의하지 않는 것과 우문호에게 ‘함부로 설치지 말고, 급식을 조사해서 중간에서 떼먹은 자를 찾는 일만 하면 된다’고 전했다.우문호는 일단 급식을 개선하는 일이 급선무로 도대체 어떤 개자식이 병자의 급식비와 약값까지 떼먹었는지 알아내기로 했다.그런데 이게 웬 걸, 조사를 안 했으면 모를까, 해보니 어이없게도 문둥산 병자를 관리하는 것은 뜻밖에 우문호의 셋째 외삼촌 소답화였다.소답화는 자질이 평범한 사람으로 호부에 있을 때 원외랑(員外郎)이었는데 그나마도 겨우 청탁으로 들어온 것인데 몇 년을 일해도 일하는 수완이 늘지 않아 계급이 낮아지지는 않았지만 승진도 못했다.문둥산을 설립할 때 아무도 가서 관리하고 싶어하지 않았는데, 소답화가 자진해서 가서 일을 맡고자 하여 산 위에 집을 짓고 사람을 산꼭대기로 보내 파수하고 밥을 지었다. 매달 조정에서 보내주는 은자는 천 냥으로 급식과 산 위에서 필요한 각종 지출 용도로 별도로 약재를 사거나 하는 것에 대해서는 영수증으로 정산을 올리고 사람이 죽으면 장례비용은 인당 열 냥을 받았다.문둥산에 천여명이 있어 천냥으로 한달 비용을 충당하기 충분한 것이, 사 놓아야 하는 생활용품이 전부 전에 사 놓았기 때문에 지금 매달 나가는 천냥은 온전히 급식과 의복 비용이다.지금 남은 사람은 300명이며, 산위에서 옥수수 개떡이나 찐빵 같은 급식이 그것도 하루 한번만 주고 있는 것을 기준으로 하면 한 달에 대략 열 냥의 은자가 들며 그것도 굉장히 여유 있게 잡은 것이다.이 일은 처음부터 소답화가 관할하고 있어 전수조사도 그다지 어렵지 않아서 우문호는 사람들에게 은밀히 장부를 초왕부로 가지고 오게 해서 봤다.그날 밤, 우문호와 탕양, 서일 등은 자시(자정 12시)가 되어서야 정산을 마칠 수 있었다.정산을 마치고 우문호의 얼굴이 검어 지며 분노로 모든 장부를 바닥에 내던지며 일갈하길,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5년동안 문
비리의 핵심 인물소씨 집안에 지금 사람들에게 말발이 서는 건 그래도 소후(蘇侯) 나리다.소후는 현비의 부친으로 현 태후의 친동생이다.소후는 지금 군에 경차도위(輕車都尉)의 직임을 맡고 있으나 실제로 하는 일은 별로 없고 진정으로 조정에 공을 세운 적도 없이 지금은 사람들의 추앙을 받고 있는데 그저 그의 여동생이 현 태후이고 딸이 현비이기 때문이다.소후는 최근 2년동안 중용된 적이 없으며 이것도 현비가 상당히 조급해 하던 원인으로 우문호가 태자가 되면 소씨 집안 사람을 뽑아 올릴 심산이었다. 소씨 집안이 가족이 크고 자손이 많으니 만약 절반이 조정 관리로 임용되면 얼마나 큰 세력이겠는가?탕양이 작은 목소리로, “전하, 만약 소씨 집안을 건드리시면 현비 마마 쪽엔 송구할 뿐 아니라 태후 마마쪽에도 송구할까 두렵습니다.”우문호가 아무렇지도 않게, “미안해도 할 건 해야지. 내일 자네는 소답화를 초왕부로 불러라, 내가 먼저 사적으로 물어보고 만약 죄를 인정하면 아바마마 면전에 데려가 돈을 토해내게 하면 그만이나 만약 자백하지 않으면 이부에 연락을 취해 그를 처리하고 다시 얘기하지.”“예!” 탕양은 이 일이 사적으론 할 말이 없음을 알았다.우문호가 잠시 생각하더니 서일에게 분부하길, “소후부에 가서 소룡을 오라고 해라.”서일이 놀라며, “이렇게 늦은 시간에요?”“그래, 소룡은 야행성이라 아직 자기엔 일러.”서일은 명을 받고 바로 갔다.하지만 반 시진 후에야 소형을 데리고 왔다. 역시 사촌형은 아직 자지 않고 있었으며 산뜻하게 비단옷을 차려 입고 약간 취기가 돈 채 문을 들어서며, “중요한 일이 아니면 사촌동생이라도 사적으로 할 말 없네.”우문호도 아무 말 없이, 장부와 탕양이 총결산한 공책을 던져주고, “직접 봐, 셋째 큰아버지가 얼만 좋은 일을 했는지.”소형이 장부를 넘겨보는데 특히 숫자에 민감해서 한 눈에 열 줄에서 문제를 발견해 낼 수 있는 정도다. 장부를 다 본 뒤 탕양의 총결산을 보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이게 도대체 무슨 일
“전하, 그럴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최근 몇 년 동안 궁중에서 현비 마마 앞으로 된 지출이 많이 발견됐습니다. 지금 마마께 급여되는 은화로는 턱도 없는 금액의 지출입니다.” 탕양이 말했다. “본왕이 모친께 물어보니 외가에서 은화를 줬다고 하더라고.” 우문호의 말을 듣고 옆에 있던 소로(蘇老)가 입을 떼었다.“아우야, 소씨 가문이 지금 어떤 상황인지 너도 잘 알겠잖아. 가문 내에서도 은화가 부족한 상황인데 고모에게 줄 여유가 어디 있겠느냐?”“이 얘기는 내일 소답화(蘇答和)에게 물어보고 얘기하는 게 좋겠어.” 우문호는 마음이 착잡했다.“내일 일은 내일이고, 지금 대충 윤곽은 잡아놔야지 되지 않겠어? 넌 만약에 고모가 이 일에 개입된 게 확실하다면 어떻게 할 생각이냐?”“뭘 어떻게 하겠어? 자신의 몫이 아닌데 횡령한 은화를 당연히 뱉어내는 것이 맞지.” 우문호는 현비 생각에 머리가 아픈 듯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마음속으로 현비가 그 많은 은화를 더 써버린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됐다. 만약 이 은화 중의 20만 냥이 문둥산에 쓰였다고 해도 남은 80만 냥은 현비가 뱉어내야 했다. 그것보다 더 걱정되는 것은 부황이 이 사실을 알고 현비를 용서하겠느냐는 것이다.*이튿날 우문호는 소답화를 부중으로 초청했다. 소답화는 당연히 우문호가 문둥산의 장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온 것이다. 그러나 우문호는 소답화의 얼굴에서 당황한 기색을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 심지어 그는 외삼촌 행세를 하며 그가 현비의 뜻을 거스르고 불효를 저지른다고 꾸짖었다.우문호는 소답화의 말을 듣고 그가 현비와 아주 가까운 사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우문호는 소답화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그에게 장부를 보여주었다.장부를 건네받은 소답화는 담담하게 우문호를 보았다.“이 장부들 중에 일부는 내가 적은 것인데 태자는 이 장부가 무슨 문제라도 있다고 생각하는가?”“문둥산에 들어간 은화는 20만 냥인데, 여기에 적힌 것 5년간의 기록은 그것보다 더
말을 마친 후 그는 우아한 표정으로 우문호를 곁눈질하더니 앞에 놓인 찻잔을 들었다. 우문호는 그의 뻔뻔한 태도에 치가 떨리는 듯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았다.“장부를 조정에 공개하지 않아도 당신의 죄를 묻기에는 충분한 상황입니다. 도대체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은화를 횡령한 겁니까? 문둥산에 사는 환자들에게 다 쉬어가는 시큼한 냄새가 나는 떡을 먹게 하다니 이게 사람이 할 짓입니까? 대체 양심이 있기는 한 겁니까?”소답화는 우문호의 말을 듣고 단번에 낯빛이 바뀌었다. “다섯째, 우리는 핏줄로 이어진 관계가 아닌가? 삼촌의 체면을 생각해서라도 이러지 말게! 그리고 그 아무 쓸모 없는 병자들을 북당에서 먹여주고 입혀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지. 지금 길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병자들보다 배고픔에 굶주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태자는 장차 이 나라의 황제가 될 텐데 백성들을 살펴야지 한낱 병자들에게 연민을 느껴서 되겠는가?”“당신이 중간에서 횡령한 은화가 과연 얼마나 될지 참으로 기대가 됩니다. 몇 년 동안 분수에 맞지도 않는 몇 십만 냥의 은화를 먹고 마시는데 흥청망청 쓰다니, 조정에서 문둥산관련 얘기를 꺼려 한다고요? 난 내 방식대로 이 일을 처리할 테니 알아서 하세요.”“……”’“아, 가장 좋은 방법은 당장 관아로 들어가 이 일을 자백하는 것일 겁니다.”소답화는 우문호의 말에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이내 우습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마음대로 해. 난 죽어도 절대 혼자 죽지 않을 테니까. 그 많은 은화를 설마 나 혼자 꿀꺽했을까? 내일 관아에 들어가기 전에 네 모친을 찾아가 은화의 행방을 물어보거라. 적지 않은 은화가 지금 너에게도 쓰였을 거니까 말이야!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고 참나 어이가 없어서는 원!”소답화는 가슴을 쳐들고 기고만장한 표정으로 우문호를 노려보더니 씩씩거리며 밖으로 나갔다. 우문호는 소로의 말대로 현비가 이 일에 관련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마음이 초조해졌다. ‘모친, 도대체 왜 이런 일에 휘말린 겁니까……’밖에
잔뜩 긴장한 채로 앞으로 몸을 반쯤 내밀고 있었던 주 지부는 우렁찬 상대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중심을 잃은 듯 비틀거렸다. 그는 이내 팔을 뻗어 망루의 기둥을 붙잡으려 했지만, 허공에서 멈추고 말았고, 그대로 몸이 앞으로 쏠려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말에서 빠르게 날아올라,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그에게 달려갔다. 상대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주 지부가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그를 안고 빙 돌아서 바닥에 착지했다.주 지부는 깜짝 놀라서 그만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를 구해준 사람은 반짝거리는 눈망울에, 품위 있는 모습의 젊고 잘생긴 사내였다. 주 지부는 그를 황제의 호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의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새도 없이 그에게 예를 올렸다.“대인,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그때 말들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는데, 서일이 먼저 말에서 내려, 다급히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괜찮으십니까?”우문호도 매우 놀란 듯했다. 조금만 늦었다면, 주 지부는 정말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숨을 들이쉬었다.“괜찮다.”그러고는 주 지부를 보며 물었다.“자네는 누구요?”주 지부는 마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보며, 누가 황제인지 추측했다.황제는 올해 마흔에 가까운 나이로 알려져 있었기에 위엄이 넘쳐 보일 것이었다. 그는 일행 중, 냉 수보와 홍엽을 만난 적 있었기에, 거친 모습을 한 이 인물은 아마도 호위로 추측된다. “묻지 않았소? 자네는 누구요? 어찌 죽으려고 하는 것이오?”서일은 그가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자, 큰 소리로 다시 물었다.주 지부는 울 지경이었다. 냉 수보가 그를 보고 있으니, 예를 올려야 하지만, 황제도 자리에 있으니, 바로 냉 수보에게 예를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대체 누가 황제란 말인가?그는 황제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어, 결국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고는 그들에게만 들릴 정도로 낮은 목소
원경릉의 말은 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자리에 있던 관리들은 기쁨과 동시에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 대인은 땅에 엎드려 온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그는 살아생전에 자신이 황제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평소 차분하고 신중한 주 지부도, 그도 감정이 격해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했다.황후를 만난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라 생각했는데, 황제까지 오신다는 소식에 그의 마음은 흥분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원경릉은 평생을 경성에서 다섯째와 함께 있었기에, 그녀는 그저 그가 온다는 사실을 간단히 전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녀는 다들 걱정 없이 역병을 치료하고, 언제나 황제가 그들의 뒤를 든든히 지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을 보니, 황제가 직접 오는 것이, 지방 관리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다.원경릉이 급히 말을 덧붙였다.“폐하게서는 그저 역병 때문에 온 것이니, 모두 각자 맡은 일에만 최선을 다하면 되네.”“예, 예, 마마의 명을 따르겠습니다.”주 지부가 눈물을 닦으며 답했다.그렇게 관아와 의서가 협력하여, 오계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원 할머니는 역병을 치료할 수 있는 처방을 몇 가지 내렸다. 경증 환자는 약차를 계속 마시고, 증상이 악화하거나 중증 환자는 그녀의 처방을 사용하도록 했다.전에 이미 근처 주부에 연락해 약을 보내라 명했고, 오계부에서 구비한 약까지 있으니, 이번 역병을 대처할 수 있었다.오계부 의서는 이번 역병을 과거의 역병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소홀히 한 것 외에는 준비가 충분했다.원경릉은 황제 일행이 저녁 무렵 오계부에 도착할 것이라 예상했다.주 지부는 원래 여러 관리와 함께 황제를 맞이할 예정이었지만, 원경릉이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녀는 황제가 미복 순행 중이니, 과하게 맞이하여 백성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다.그 말에 주 지부는 당황했다.황제가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맞이하지 않는다니, 어찌 그럴 수 있다는 말인가?그러나 그는 황
약을 쓰자, 주 지부의 열이 단번에 내려갔다.열이 내려가니 정신이 맑아져, 그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는 애써 자리에서 일어나 황후마마에게 예를 올리겠다고 고집 피웠다.원경릉은 그에게 누워 있으라고 말한 후, 역병에 관해 이야기하며 주 지부에게 이를 중시할 것을 당부했다.주 지부는 이를 듣고 깜짝 놀라 말했다.“소신은 매일 의서에 사람을 보내, 역병의 상황을 보고받고 있사옵니다. 매일 보고된 상황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역병이 발생했지만, 작년과 비슷한 정도였고, 약재도 충분한데, 어찌 이렇게 심각해진 것입니까?”“매년 역병이 발생했으나, 대대적으로 퍼지지 않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네.”원경릉이 답했다.“의서의 이 대인을 불러, 상황을 확인하겠습니다.”주 지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어제 이미 그를 찾아가, 환자 수와 사망자 수를 조사하라 명했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것이네. 자네가 사람을 보내, 관아에 와서 상황을 보고하도록 하게.”“예!”주 지부는 곧바로 사람을 보냈다.푸른 옷을 입은 남자는 관아에서 일하는 관리였기에, 그는 반 시진도 채 되지 않아, 관아 내에서 병에 걸린 자가 얼마나 되는지 통계해냈다.관아 내에서 역병 증상을 보인 사람은 총 열여덟 명이었고, 그중 두 명은 병세가 심각하여 이미 집에서 쉬고 있는 상태였다. 주 지부는 관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병에 걸린 줄 몰랐고, 관리의 보고를 들은 후, 큰 충격을 받았다.의서의 이 대인은 하루 종일 쉬지도 않고, 바삐 움직였다. 서관 대인이 직접 오셨으니, 어떻게든 시키는 일을 완성해내야 했다.그는 사실 역병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고, 그저 작년과 비슷하다고 여겼었다.하지만 여러 지역과 의원을 돌아보고 나서야, 이번 역병이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처음엔 그저 서관 대인에게 보고만 하려고 했지만, 병세가 심각해지자 그도 조급해지기 시작했다.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인원수를 통계하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다섯째 일행은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다.그래서 원경릉과 할머니는 다른 의관을 더 둘러보기로 하고, 몇 군데 더 돌아본 뒤 관아에도 갈 계획을 했다.그런데 한 의관에 들어서자마자, 푸른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다급히 뛰어오며 말을 걸었다. “수 의원, 대인께서 병세가 위중합니다. 어서 봐주셔야 합니다.”의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약상자를 집어 들고 다른 환자들을 그냥 남겨둔 채, 푸른 옷의 중년 남자와 함께 나가려 했다.원경릉이 그를 막아 세우며 말했다.“의관에 있는 환자들을 돌봐야 하지 않소? 우리 할머님께서도 의원이니, 지부 대인의 병은 할머님께서 봐 드릴 것이오.”푸른 옷의 사내는 초조한 듯 원경릉을 향해 소리쳤다.“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대인의 병세가 급박한데, 혹여라도 지체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수나 있겠소?”바로 그때, 원 할머니가 호패를 꺼내, 그의 눈앞에 들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길을 안내하거라!”조급한 표정을 짓던 푸른 옷의 사내는 호패를 보자마자 표정이 얼어붙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곧장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서관 대인께서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례를 범해 송구하옵니다.”“그만 사과하고 길 안내나 하시오.”원경릉이 말했다.“예, 예!”사내는 급히 물러서서, 예를 갖춰서 길을 가리켰다.“마차가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서관 대인, 이쪽으로 오시지요.”원경릉은 할머니를 부축해 마차에 올랐고, 곧장 관아로 향했다.지부 대인은 따로 사저가 없어 관아의 뒷마당에서 거주 중이었다. 혼자 지내는 데다 관아가 워낙 가까워 편리했기 때문이다.관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주 지부는 병세가 꽤 심각해져 있었다. 그는 어지럼증과 흉통에 시달려, 침대에 누운 채 말을 꺼낼 힘도 없었다.원경릉은 직접 치료에 나섰고, 약상자를 열어 체온 측정기와 청진기를 꺼냈다.푸른 옷의 사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가씨께서도 의원이십니까?”그러자 곁에 서
이 대인이 원경릉에게 의학을 잘 모른다고 반박할 틈도 없이, 원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대로 하게. 하루만 줄 테니, 그 안에 역병에 관한 모든 자료를 가져오게. 사망자 수도 포함되어야 하네." 이 말까지 듣자, 이 대인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비록 조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서관 대인이 멀리서 오계부까지 왔으니, 시키는 일은 해야지 대인의 마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을 보내 조사를 명한 후, 이 대인은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의서에 의원이 많지 않으니, 대인도 바쁘실 텐데요. 저희가 직접 오계부를 돌아보겠습니다." 이 대인은 그녀가 원 할머니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린다고 생각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말에 답도 하지 않고, 원 할머니에게 예를 올렸다. "어르신께서 머무실 계획이 있으시면, 부디 저에게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대인을 잘 대접하라, 명을 내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일이나 보게." 원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원경릉에게 말했다. "먼저 좀 돌아보다, 객사를 찾아 머물자꾸나." "예!" 두 사람은 역병을 조사하기 위해 다급히 이곳을 찾아왔기에, 먼저 각지의 의원을 직접 돌아보려 했다. 아마 다섯째 일행은 빨라야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할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의서를 나서자, 이 대인은 뒤따라 나오려다 원 할머니의 날카로운 눈빛에 움찔하며 발길을 멈췄다. 두 사람은 오계부의 거리로 향했다. 거리가 꽤 번화했고, 사람들도 제법 많아, 대낮에는 조금 붐볐다. 그들은 곧장 의원으로 향했다. 의원 앞에는 약차가 많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환자는 얼마 없었다. 겉보기엔 역병이 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원경릉은 안으로 들어가 의원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요즘 들어 약차가 잘 팔리고 있고, 하루에 천 봉지가 넘게 팔린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도 역병
늦게 출발한 원경릉은 신속하게 오계부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계부 근처 주현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현지 혜민서로 가야 한다며 잠깐 멈추자고 했다. 그러고는 혜민서에 오계부로 약을 공급할 준비를 하게 했고, 명을 받으면 바로 오계부로 보낼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당부했다. 혜민서 산하의 의료기관들은 지난 몇 년간 개혁을 통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고, 지역 간의 연결도 긴밀해졌다. 특히 역병을 상대하는 체계가 가동되면 상부에서는 전력을 다해 의원과 약을 지원해줄 수 있었다. 신신당부한 뒤에야 원경릉과 할머니는 오계부로 재빨리 향했다. 곧이어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우문호 일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계부는 인구가 500만 명에 이르는 곳으로, 두 개의 주부가 통합된 지역이었다. 열대에 있어, 경작지가 많고 산이 많아 농업을 위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조정은 이곳을 서부의 주요 곡창지대로 삼고 있었던 것이었다. 농업이 발달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경제도 번화했고, 현지 백성들은 벼 외에도 감, 자두, 리치 등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리치는 신선할 때 먹을 수도 있고, 말려서 건과로 만들어 팔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 오계부는 백월국과 인접해 있었는데, 백월국은 북당의 속국으로 사이가 우호적이며 경제 교류도 활발했다. 이는 양국의 번영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계부의 지부는 장씨 성을 가진 오계부 출신이었다. 장 지부는 훌륭한 관리이며 지역 백성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었다.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오계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지역 혜민서를 찾았다. 할머니는 혜민서의 서관(署館) 신분을 밝혔다. 그녀는 북당 각 주부의 의서를 총괄하는 인물이고,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혜민서의 이 의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두 사람을 안으로 청한 후, 바로 예를 올렸는데, 마치 신선이라도 본 것처럼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소인은 이자옥이라 합니다. 어르신께서 친히 오신 줄도
그녀는 일단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냉 대인이 자세한 상황을 묻는 사이에 제 대인의 피를 뽑았다. 약상자는 기능이 꽤 다양하기에, 바이러스 검사도 문제없었고, 안에는 양여혜가 준 소형 현미경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관찰이나 세균 배양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오계부로 향하고, 그녀는 이곳에 남아 제 대인을 치료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면 바이러스든, 세균 감염이든, 결과가 나와야 제대로 된 치료 방안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미색이 말했다. "저도 이곳에 함께 남겠습니다. 제가 환자를 돌보는 것 정도는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괜찮으니 먼저 가거라. 어쩌면 내가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으니깐." 원경릉이 말했다. 그녀는 혼자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미색까지 데리고 가는 건 무리였다. "우리가 먼저 출발하는데, 어찌 더 일찍 도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미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가능한 일이다. 원 선생은 늘 기적을 만들어내니." 우문호가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원경릉에게 다가가 조심하라고 몇 마디 당부했다. "알았소. 지체하지 말고, 어서 떠나시오. 오계부에 도착하면 곧바로 관아를 찾아가, 의원의 빠른 대처를 명하라 하시오. 만약 내가 먼저 도착한다면, 내가 관아를 찾아가겠소." "알겠소. 그럼, 먼저 가겠소!" 우문호는 그녀와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보는 이가 많으니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서일은 황후를 홀로 두고 가는 것이 걱정되어, 우문호를 따라나서며 계속 물었다. "정말 황후를 이곳에 혼자 남겨도 되는 것입니까?" "그럼, 네가 남을 것이냐?" 우문호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도 원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지 않느냐?" 회왕 부부도 걱정은 되었지만, 다섯째의 여유로운 모습에 자신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다섯째 부부는 늘 비밀이 많은 사람들이라, 그들은 더 이상 신경
원경릉은 밖으로 나가, 오계부에 역병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오계부는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 기후가 더운 탓에 가끔 역병이 생기긴 했었지만 백성들은 고뿔 치료에 쓰이는 약초로 끓인 차를 즐겨 마시기에, 대규모로 역병이 돈 적은 없었다. 냉 대인이 말했다. "오계부에서는 이 상황을 조정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해마다 역병이 생기긴 하지만, 빠르게 통제해 왔으니, 이번에도 예전과 같은 상황이지 않겠습니까?"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엔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 대인의 형도 역병으로 돌아가셨고, 그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도 병에 걸렸습니다. 이렇게 관아에만 역병에 걸린 자들이 많으니, 예전보다 더 심각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해마다 역병이 생겼으니, 그에 대한 대응책도 이미 있을 것입니다." 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역병이 생겼지만, 대대적으로 유행하지 않았기에, 현지 관리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쉽게 통제될 것이라 생각하고, 방심할 수도 있으니깐요." 우문호가 물었다. "원 선생, 역병을 어떻게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역병 상황이 안 좋을 것이라 추측할 뿐, 정말 오계부의 상황이 어떠한지는 아직 모르네. 제 대인은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 수액을 맞히고 해열제를 먹였소. 냉 대인과 함께 들어가 상황을 자세히 물어봐야겠소. 하지만 꼭 마스크를 끼고, 병을 막아야 하오." 원경릉은 유행성 독감이나 변이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일 것이라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가 살던 세계에서는 A형 독감의 대규모 변이가 십수 년마다 한 번씩 발생했는데, 그런 변이 독감은 현대에서도 의료 체계에 큰 부담이 되곤 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역병이 다시 시작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통제해야만 했다. 원경릉의 말을 우문호와 냉 대인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도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그의 폐를 확인해 보았는데, 남녀가 가까이 접촉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제 대인은 이내 손을 뻗어 그녀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병세가 심해 아픈 데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묘한 위압감을 풍기는 의원의 단호한 눈빛과 기운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원경릉은 앞쪽을 청진한 뒤, 그에게 옆으로 돌라고 한 다음에 꼼꼼히 살피고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며칠을 아프신 것입니까?" 제 대인은 꽉 막힌 코 때문에 콧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돌리고 답했다. "며칠 사이의 일입니다. 오계부를 떠날 때도 멀쩡했는데, 밤새 달리고, 말을 오래 타다 보니 고뿔에 걸렸나 봅니다." "기침 말고, 가슴 통증도 있습니까?" "예. 이곳이 아픕니다!" 제 대인은 가슴 근처를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가, 숨쉬기가 어려운 듯 손바닥을 움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아프고, 온몸 뼈마디도 다 아픕니다." 그러자 원경릉은 더 자세히 증상을 확인한 뒤 말했다. "약을 준비할게요. 수액을 좀 맞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액이요?" 제 대인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예. 질문은 하지 마시고, 그저 치료에 협조만 해주십시오. 병세가 꽤 심각한 편입니다." 원경릉은 제 대인이 폐렴이라 확신했고, 중증 폐렴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대인은 병이 심하다는 말에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말했다. "의원 나리, 제발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십시오… 저에게는 아직 모셔야 할 노모가 있습니다. 지난달 병으로 형님께서 세상을 떠난 터라, 형님의 자식들도 제가 돌봐야 하니, 절대 이대로 목숨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원경릉이 답했다.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치료에만 집중하시지요!" 제 대인은 감동을 받은 듯 감사 인사를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경릉은 곧바로 약을 지어 수액을 준비했다. 수액을 맞는 동안, 제 대인은 여전히 놀란 모습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