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마친 후 그는 우아한 표정으로 우문호를 곁눈질하더니 앞에 놓인 찻잔을 들었다. 우문호는 그의 뻔뻔한 태도에 치가 떨리는 듯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았다.“장부를 조정에 공개하지 않아도 당신의 죄를 묻기에는 충분한 상황입니다. 도대체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은화를 횡령한 겁니까? 문둥산에 사는 환자들에게 다 쉬어가는 시큼한 냄새가 나는 떡을 먹게 하다니 이게 사람이 할 짓입니까? 대체 양심이 있기는 한 겁니까?”소답화는 우문호의 말을 듣고 단번에 낯빛이 바뀌었다. “다섯째, 우리는 핏줄로 이어진 관계가 아닌가? 삼촌의 체면을 생각해서라도 이러지 말게! 그리고 그 아무 쓸모 없는 병자들을 북당에서 먹여주고 입혀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지. 지금 길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병자들보다 배고픔에 굶주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태자는 장차 이 나라의 황제가 될 텐데 백성들을 살펴야지 한낱 병자들에게 연민을 느껴서 되겠는가?”“당신이 중간에서 횡령한 은화가 과연 얼마나 될지 참으로 기대가 됩니다. 몇 년 동안 분수에 맞지도 않는 몇 십만 냥의 은화를 먹고 마시는데 흥청망청 쓰다니, 조정에서 문둥산관련 얘기를 꺼려 한다고요? 난 내 방식대로 이 일을 처리할 테니 알아서 하세요.”“……”’“아, 가장 좋은 방법은 당장 관아로 들어가 이 일을 자백하는 것일 겁니다.”소답화는 우문호의 말에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이내 우습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마음대로 해. 난 죽어도 절대 혼자 죽지 않을 테니까. 그 많은 은화를 설마 나 혼자 꿀꺽했을까? 내일 관아에 들어가기 전에 네 모친을 찾아가 은화의 행방을 물어보거라. 적지 않은 은화가 지금 너에게도 쓰였을 거니까 말이야!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고 참나 어이가 없어서는 원!”소답화는 가슴을 쳐들고 기고만장한 표정으로 우문호를 노려보더니 씩씩거리며 밖으로 나갔다. 우문호는 소로의 말대로 현비가 이 일에 관련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마음이 초조해졌다. ‘모친, 도대체 왜 이런 일에 휘말린 겁니까……’밖에
다음 날 아침.우문호는 입궁해 현비가 있는 경여궁으로 갔다.현비는 이전에 한바탕 자살 소동을 일으켰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고, 심지어 명원제마저 거들떠보지 않았다. 화가 치밀던 차에 우문호가 찾아와 문둥산 횡령에 대해 물으니 그녀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그 사실을 시인하였다.“그래, 내가 네 셋째 삼촌하고 그랬다 왜? 설마…… 너 모비를 단죄하려는 것이냐? 좋아, 이렇게 된 거 네 맘대로 하거라! 어디 한번 네 손으로 모친을 죽여보거라!”우문호는 악을 쓰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실망한 듯 침통해했다. “모비, 도대체 왜 그러신 겁니까?” “왜냐고?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모두 널 위해서 그런 것이야! 네가 2년 전에 싼 똥을 치우느라 네 어미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아느냐?”현비의 말을 듣고 우문호는 주먹을 쥐며 분노했다.“제가 언제 모비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습니까? 저도 제 나름대로 생각이 있다고요! 모비가 굳이 외삼촌과 나서지 않아도 알아서 제 살길 찾았을 겁니다! 모비는 외삼촌이 문둥병 환자들에게 하루에 한 끼만 줬다는 거 알고 있었습니까? 그것도 개떡을요?”“아, 그 옥수수 개떡? 병자들에게 그것도 감지덕지지 어디서 반찬투정이야? 문둥병이면 곧 죽을 판인데 그들이 억울할게 뭐 있어? 그리고 너희 외할아버지와 네 삼촌이 아니었다면 병자들은 이미 다 불에 타 죽었을 것이야!”“그게 무슨 말입니까?”“그때 누군가 문둥병의 싹을 없애버려야 한다며 병자들을 한데 모아 태워버리자고 했는데, 너희 외할아버지가 부황께 문둥산을 운영하자고 설득해서 병자들이 지금까지 살아있는 거야! 오히려 그들을 우리 가문에게 고마워해야 해.”현비의 말을 들은 우문호는 깜짝 놀란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봤다.“몰랐던 사실에 놀랐느냐? 그러니까 내가 중간에서 좀 떼어 먹어도 그들은 아무 말도 할 수 없다는 거야. 난 지금까지 내 부친이 그들의 목숨을 구해준 값을 받는 거라고 생각해. 그들도 이에 대해 불만 없을걸?”우문호는 현비의 차가운 얼굴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
우문호가 떠난 후 왕씨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현비를 보았다.“현비 마마, 태자가 정말로 이 일을 조정에 폭로할까요?”현비는 우문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물을 한 모금 마셨다.“그렇지는 못할걸? 태자가 아무리 화가 났다고 해도 내가 태자의 모친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 내가 죄인이 되면 분명 그의 명성도 나빠질 것이야.”“어휴, 문둥산은 소씨 가문의 마르지 않는 샘물 같은 존재였는데…… 태자는 왜 갑자기 문둥산에 관심이 생긴 겁니까?”“그걸 나한테 물으면 어떡해? 소답화하고는 얘기를 해보았느냐?”현비가 화를 내자 왕씨는 우물쭈물하며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조사는 했지만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다만 그들이 문둥산에 갔다면 분명 서주를 통해 갔을 텐데…… 그때 태자비도 같이 갔을 겁니다.”현비는 왕씨의 말을 듣고 기함을 토했다.“이 일에 또 원경릉이 관련되어 있다는 말이야? 그 계집이 얼마나 신통방통한 능력을 가지고 있기에 불치병인 문둥병까지도 관여하려고 한단 말인가? 이래서 옛말 틀린 거 하나 없어! 집안에 여자가 잘 들어와야 했는데 말이야! 원경릉 이 몹쓸 계집이 내 아들을 망치고 있어!”“현비 마마 고정하시옵소서……”“그래서 그 두 사람이 문둥산에 갔다 온 게 확실한 것이냐?”“예, 거의 확실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렇게 된 이상 우리 쪽에서도 빠져나갈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무슨 방법?” “태자비는 사사건건이 소씨 집안의 트집을 잡고 있습니다. 심지어 태자비는 기왕비하고도 왕래가 잦다고 합니다! 태자비는 적군인지 아군인지 모를 사람입니다. 현비 마마,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빠른 시일 내 태자비를 처리하지 못하면 조만간에 소씨 집안이 큰 화를 입을 것입니다.”“본궁이 그걸 모르겠느냐? 하지만 태상황과 황제가 모두 그녀를 아끼니 본궁이 어떻게 손을 쓸 수 있겠어!”근심스러운 현비의 표정과는 다르게 왕씨의 눈에는 독기가 스쳤다.“현비 마마, 전과는 다르게 저돌적으로 나가야 합니다.”“무슨 좋은 수라도 있느냐?
초왕부의 소월각.삼둥이는 뭐가 그리 서러운지 서로 앞다투어 울었고, 우문호와 원경릉은 어쩔 수 없이 세 아이를 데리고 침실로 들어왔다. 우문호는 경단이와 만두를 원경릉은 찰떡이를 안아 달랬다. 시간이 흐르고 세 아이의 울음소리가 잦아들자 두 사람은 서로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두 사람은 삼둥이를 나한 침상에 살포시 올려두고 잠자리에 들기 위해 누웠다. 그것도 잠시 삼둥이들은 또 울음을 터뜨렸다. “애들이 왜 저렇게 울지? 전에는 저렇게 소란스럽지 않았는데 오늘 어디 아픈 것 아니야?” 우문호는 축 가라앉은 목소리로 원경릉에게 물었다.“그럴 리 없는데…… 아프면 이것보다 더 심할걸? 어쩌면 환절기라 그런가?”“그럼 계절이 바뀔 때까지 매일 이런다고? 손 타면 힘든데!”우문호는 아이를 돌보는 것이 이렇게 힘든 일인 줄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아이 하나도 무거운데 둘을 안아 재우려니 허리가 부러질 것 같았다. 우문호의 불평을 듣고, 원경릉은 웃으면서 말했다“부모가 되는 게 그렇게 쉬울 줄 알아? 아이를 낳기 전에는 건강한 아이가 아니면 어떡하나 걱정하고, 낳고 나면 잘 커야 할 텐데 걱정하고, 좀 크면 공부는 잘 하나 걱정하고, 아이가 생기고 나서는 매일매일이 걱정의 연속이야.”이 말을 들은 우문호는 예쁜 세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걱정 자체가 아이에게 기대를 하기에 생기는 것이야. 그건 걱정이 아니라 욕심이지. 우리 삼둥이는 나비가 되든 그냥 벌레가 되든 상관없어. 난 삼둥이가 행복하게 하고 싶은 걸 하고 살았으면 좋겠어.”우문호의 말을 듣던 원경릉은 문득 문둥산 일이 생각났다.“참, 일은 아직 안 끝났어? 꽤 어려운 일인가 봐.”우문호는 만두의 앞머리를 만지작거리며 담담하게 말했다.“어렵다고 하기엔 그다지 어렵지 않지만, 어렵지 않아도 하기에도 좀 그래……”“어? 그게 무슨 말이야?”원경릉이 이불을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며 말했다.우문호는 그녀의 맑은 눈동자를 보며 한참을 망설였다.“사실 모비가 문둥
“좋으신 분들도 계시잖아. 예를 들어 조모님과 태상황님 말이야.”“두 분이라도 계셔서 다행이지.”“그나저나 현비께서는 얼마나 횡령을 하신 거야?”“칠팔십만 냥 정도 될 것 같아.”“세상에! 그렇게 많은 은화를 횡령하셨단 말이야? 그럼 조정에서 원칙적으로 중간에서 횡령한 탐관오리들이나 관리, 후비(后妃)들은 어떻게 벌했어?” “관리의 경우에는 파직시키고 은화를 뱉어내게 했지. 그리고 형벌을 내리거나 더 심하게는 죽이기도 했지. 후비 같은 경우엔……”“후비는 어떻게 벌했는데?”우문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후비들은 선례가 없어.”원경릉은 수심이 가득 찬 우문호의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 “현비께서 횡령한 금액이면 사형에 처할 수도 있는 거야?”“십만 냥이 이상은 무조건 사형이야.”우문호의 목소리를 슬프고 처량했다.원경릉은 그런 우문호의 두 손을 잡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부황은 현비를 사형시킬 수 없을 것이다. 그 이유는 다섯째 때문이겠지…… 만약 태자의 생모가 불미스러운 사건에 휘말린다면 조정의 하이에나들이 태자를 물고 뜯을 것이니까. 하지만 태후께서 현비가 중병에 걸렸다고 궁안에 소문을 내놨으니…… 어쩌면 조용히 처단할 수도 있지 않을까?’원경릉은 골치가 아팠다. 현비가 문둥병 환자들에게 못된 짓을 한 것은 맞지만, 다섯째의 하나뿐인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만약 현비가 사형을 당한다면 가장 슬퍼할 사람은 다섯째이다.“내일 부황께 이 일을 말씀드리려고 해.” 우문호가 피곤한 목소리로 말했다. “응.”원경릉은 삼둥이들을 사이에 두고 그의 손을 꼭 잡았다. 아이들은 심란한 아버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새근새근 잠을 잤고, 우문호와 원경릉은 한밤중이 되어 잠이 들었다. 얼마 후 유모 상궁이 와서 새벽 수유를 해야 한다고 아이들을 데리고 갔다. 우문호는 뒤척이다가 유모 상궁이 아이들을 다시 데리고 들어오는 것을 보고 잠들었다.전 같았으면 유모 상궁이 들어옴과 동시에 우문호는 잠에서 깼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원경릉은 정자에 앉아 아이들과 여유롭게 햇볕을 쬐고 있었고 설랑들도 그들의 옆을 지키듯 엎드린 자세로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따스한 햇살과 아이들 그리고 붉게 물들어가는 가을 낙엽,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에 원경릉은 마음이 편안해졌다.잠시 후, 사식이가 찾아와 원경릉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정원에는 기상궁의 명을 받은 시녀들이 시든 꽃들을 정리하기 바빴고, 만아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기라와 함께 수를 놓고 있었다.“원누이, 날씨도 좋고, 시간도 이른데 뭐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사식아 네가 젊긴 젊구나. 나는 그냥 가만히 앉아서 쉬고 싶은데…… 생각해 보니 나도 네 나이 때는 가만히 못 있었던 것 같아.”원경릉이 사식이를 보며 미소를 지었고, 사식이는 아침 햇살을 받으며 기지개를 켰다. *서일이 돌아와 우문호가 아침 일찍 입궁했다가 지금은 관아로 들어갔다고 보고했다. “서일,전하의 기분은 어떠신 것 같으냐?”“썩 좋아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전하께서 궁을 나오자마자 한 마디를 하셨는데……”“뭐라고요?” 사식이가 물었다. “태자비께 자신의 행적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원경릉은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네. 그럼 가보게.”라고 말했다. ‘우문호의 성격상 사실 그대로를 명원제에게 전했을 것이다. 명원제는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초왕부에서 막 점심을 준비하려던 차에 궁 내시감(内侍監)이 원경릉을 데리러 왔다. 원경릉은 궁에서 자신을 부른다는 소리에 깜짝 놀랐지만, 분명 자신을 부른 이유가 현비와 관련이 있을 거라고 추측했다.‘근데…… 황상은 왜 이 일에 나를 부르시는 거지?’홀로 입궁한 원경릉은 내시감이 그녀를 동난각(冬暖閣)으로 안내하자 원경릉이 깜짝 놀랐다.“안에 황상께서 계십니까?”내시감이 대답을 하지 않자 목여 태감이 웃으며 그녀에게 말했다.“태자비, 마침 잘 오셨습니다. 황상께서 같이 식사를 하기 위해 기다리고 계십니다.”원경릉은 불편한 사람과 식사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머리가 아팠다. “태자비 어서 들어
잠시 후, 세 사람 앞에 요리가 연달아 차려졌다. 세 가지는 야채 요리였고, 나머지 하나는 고기볶음이었다. 호비는 입맛을 다시며 수저를 들었다. 말없이 밥만 먹던 명원제가 원경릉을 보고 조심스럽게 물었다.“너희들 초왕부 음식이 짐의 수채보다 더 푸짐하지 않느냐?”그 말을 들은 원경릉은 깜짝 놀랐다. ‘설마 황제가 현비가 횡령한 은화가 모두 초왕부로 들어갔다고 생각하는 건가?’원경릉은 그의 물음에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부황, 초왕부 식사는 아주 간단합니다. 저와 다섯째 둘이 먹을 때는 항상 반찬 두 가지 이상은 두지 않습니다.”“그래?”명원제는 담담했다.“초왕부는 조금도 사치스럽지 않습니다. 지금 입추인데 저와 다섯째 그리고 삼둥이들의 새 옷도 만들지 않았습니다.”“왜 옷을 만들지 않느냐? 설마 초왕부의 은화가 부족한가?”그의 목소리에는 의심이 가득했다.“은화야…… 부족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전에 입던 옷들도 충분히 입을만합니다. 은화를 낭비하면 못 쓰지요.”“그래? 보아 하니 태자비는 살림을 잘 아는구나. 집안 살림을 맡아하는 사람이니 초왕부에서 은화를 얼마나 쓰는지 잘 알겠군. 금년 초왕부에 남은 은화가 얼마인지도 말해 보시오.”명원제는 고개를 들어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이 말을 들은 원경릉은 사실대로 말해야 할 뿐아니라, 초왕부에 있는 은화가 어떤 경로로 들어오는지 똑똑히 설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명원제는 현비가 횡령한 은화가 모두 초왕부에 있을 것이라고 오해할 것이다.원경릉은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명원제를 보고 말했다.“밭과 집, 그리고 차용증을 제외하고 지금 수중에 있는 은화 이백만 냥 정도 됩니다.”“……”명원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아마 그럴 겁니다.”원경릉이 다시 조심스럽게 덧붙였다.“차용증? 차용증이 있는가?”원경은 머리를 숙이고 천천히 말했다.“예, 부황께서 저에게 주신 차용증 말입니다.”그러자 원나라 황제가 넋이 나간 표정으로 그녀를 빤히 보았다.“그 차용증은
명원제의 물음에 원경릉이 즉답하지 않았다.“아, 며느리 현비 마마의 일에 대해 자세히는 모르고…… 얼추 알고 있습니다.”명원제는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보았다. “그럼 이건 알았느냐 몰랐느냐? 이 일의 진실이 밝혀지면 현비는 사형에 처하게 될 것이야.”원경릉은 명원제의 말을 듣고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하는지 몰라 고개만 떨구었다. “태자비, 네 생각은 어떻느냐? 짐이 현비의 횡령을 낱낱이 조사해 그녀를 사형을 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느냐?”원경릉은 흔들리는 눈빛으로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다. “부황, 모르옵니다. 며느리가 어찌 조정의 일에 간섭할 수 있겠습니까?”명원제는 담담한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짐이 네 의견을 묻는 것이니, 눈치 보지 말고 솔직하게 답하거라.”원경릉은 명원제가 일부러 그녀를 난처하게 하려는 게 아닌가 의심이 됐다. ‘현비가 사형을 당하든 말든 나와는 상관이 없지만, 어쨌든 다섯째의 생모니까…… 도대체 부황이 원하는 대답이 도대체 뭐지? 현비의 잘못을 눈감고 넘어가자고 하기엔 북당의 백성들을 볼 면목이 없는데.’원경릉은 두 눈을 꼭 감고 한숨을 내쉬었다.“부황, 너무 어려운 질문이십니다. 며느리 정말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조정의 일은 부녀자가 간섭하는 것이 아니라고 배웠습니다.”“짐이 지금까지 태자비를 과대평가했구나. 항상 대담하고 솔직한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이기적인 사람이었어.”원경릉은 그의 뜻을 헤아리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만약 현비에게 사형을 내린다면, 다섯째에게 큰 영향을 미칠 것이야. 오점이 있는 모비를 가진 태자를 누가 환영하겠느냐? 그 말 즉슨 앞으로 다섯째의 미래에 훼방꾼이 많아질 것이라는 거다. 하지만 현비의 죄가 가볍지 않아 그냥 넘어갈 수는 없지.”“……”“일단 복잡한 일이니 시간을 두고 더 생각을 해야겠다.”원경릉은 그의 말을 듣고 어떠한 의견을 표명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속으로 명원제가 어떠한 결정을 내리든 그의 의견에 따를 생각이었다.“짐이 생각할 시
이리 나리가 말했다."훼천이 집으로 왔는데, 기쁘면서도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소. 그래서 물으니 다 말해주었소. 석 달 동안 비밀로 하려 했지만, 그래도 사전에 검사도 하고 미리 대비하는 게 좋을 것 같아, 황후에게 알리는 게 낫다고 생각했소."목여 태감은 고개를 끄덕이고, 재빨리 원경릉을 찾아갔다.원경릉은 실험실에 틀어박혀 있다가 요 부인이 임신했다는 목여 태감의 말을 듣고 깜짝 놀라, 손에 들고 있던 실험 도구를 급히 내려놓으며 물었다."정말인가?""부마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목여 태감이 대답하자, 원경릉이 말을 이었다."정말 큰 일이네. 요부인의 건강 상태가 원래 좋지 않았는데, 이제야 임신하다니. 그래도 큰 경사니, 내일 당장 찾아가야겠소."지금은 이미 오후였기에 다음 날 아침 일찍 출발하는 것이 좋았다.저녁이 되어 우문호가 궁으로 돌아오자, 원경릉이 말했다."내일 요부인을 만나러 갈 것이오. 아마 밤늦게 돌아오게 될지도 모르오.""다녀오시오."우문호가 말했다.그는 겉옷을 벗으며 물었다."이 나이에 임신해도 괜찮소?""아직 쉰 살은 안 됐지만, 고령 임산부인 건 맞소. 게다가 건강 상태가 원래부터 좋지 않아서 나도 좀 걱정되오.""그럼 당신이 곁에서 잘 챙겨주시오."우문호가 배려하며 말했다.그는 오래전부터 어디서든 원경릉의 도움이 필요하면 무조건 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오늘 저녁 여섯째도 궁에 왔소. 그래서 이 소식을 전했으니, 아마 내일 미색도 갈 것이오."우문호가 말했다."미색이 알게 됐다면 내일 아주 많은 사람이 몰리겠소."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미색은 비록 수다스럽지는 않았지만, 기쁜 일에는 지나치게 열정적이었다.다음 날 아침, 원경릉은 이른 아침부터 약상자를 들고 출발했다.요부인의 저택 앞에 도착하니, 역시 미색의 마차뿐만 아니라 원용의와 손 왕비의 마차까지 줄지어 서 있었다.문을 들어서자마자 미색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언제부터입니까? 대체 언제부터 우리한테 비밀로 하고 있었던
특히 황제가 된 지금, 그는 평화가 있어야만 발전이 가능하다는 것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두 사람은 손을 꼭 맞잡았다. 각자 자신의 신념과 소망을 위해 나아갈 것이다.이틀 후, 이리 나리가 궁에 찾아와 다섯째와 함께 경단이 경성으로 돌아오는 일을 의논했다.그러자 우문호가 의아해하며 물었다."돌아오다니? 난 전혀 몰랐습니다.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없었습니다."어젯밤에도 교류했지만, 귀경에 관한 이야기는 없었다."지금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언제쯤 불러들일 생각인지 묻는 것입니다.""한두 해는 지나고 부를 셈입니다. 무슨 일이십니까?""계획을 세울 생각입니다."이리 나리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1~2년이라면 금방 지나가겠군.’우문호는 미간을 찌푸렸다."무슨 속셈입니까?""전에 말했잖습니까? 경단이는 내 가업을 이어받아야 합니다. 제자가 그럴 능력이 되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이 제자의 자식을 탐낼 수밖에요."이리 나리의 제자 원경릉은 장사에 소질이 없었기에 그저 냉가의 가업을 그녀에게 맡길 수 없었다.이리 나리는 전부터 경단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만두는 경성으로 돌아와 군무를 배우고 있으니, 경단도 그의 가업을 이어받아야 할 때였기 때문이다. 한두 해 뒤에 돌아오면, 몇 년만 더 가르치면 대성할 것이었다.그러자 우문호가 웃음을 터뜨렸다."하하하. 진심이십니까? 냉가의 산업을 몽땅 삼켜버릴까 봐 걱정되지 않습니까?"하지만 이리 나리는 조금도 걱정되지 않았다."우선 몇 년 동안 가르칠 것입니다. 먼저 배울 것이 바로 부친의 뻔뻔한 요구를 단호하게 거절하는 것입니다."우문호가 바로 인상을 찌푸렸다."내 아들을 데려가면서, 어찌 이득도 못 보게 하는 것입니까?!""이득은 무슨, 이건 그야말로 통째로 삼켜버리는 거잖습니까? 욕심이 너무 크십니다."이리 나리는 옷소매를 휘날리며 자리에 앉은 후, 목여 태감에게 말했다."황후에게 가서 전하시오. 할 일이 생겼다고."목여 태감은 어리둥절했다."부마, 황후 마마께서 무슨 일을 하셔야
우문호는 종일 바빴다. 그는 차 한 잔을 들고 멀리 있는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특별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아닌, 그저 밥은 먹었는지, 무엇을 먹었고 내일 무엇을 할 셈인지 묻는 것 뿐이었다. 더불어 아이들에게 요즘 잘 지내는지, 무슨 책을 읽고 있느지에 대해서도 물었다.마치 처음으로 전화기를 접한 시골 사람처럼 신기해했지만 그는 마땅한 대화 주제를 찾지는 못했다.한편 원경릉은 홀로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우문호는 이미 능숙해진 듯 보였고, 심지어 목욕하러 가면서도 아이들에게 말을 남겼다.그가 목욕하러 가자, 원경릉은 곧장 아이들과 교감하며 이 일을 의논하기 시작했다.다섯째는 지금 억제제를 맞은 상황이었다.아이들은 잔뜩 흥분한 채 앞으로 언제든 아버지와 이야기할 수 있다고 좋아했다. 하지만 그는 의식으로 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말을 해야 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보면 그를 미친 사람으로 오해할 수도 있었다.목욕을 마친 우문호는 마치 의기양양한 수탉처럼 걸음걸이조차 전보다 더 당당해 보였다."원 선생, 계란이가 그곳이 이곳보다 훨씬 덥고, 과일도 적다고 하오. 과일을 말려, 아이들에게 나누어 보내는 것이 어떻소?"그러자 원경릉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좋소. 그럼 내일 함께 말리는 것이 어떻소?""좋소! 아, 그리고 만두한테도 물어야겠소. 깜빡하고 어디까지 갔는지 묻지를 못했소."우문호는 앉아서 머리를 수건으로 닦은 뒤 다시 눈을 감고 우문예와 대화를 시도했다.그 모습을 보며 원경릉은 차마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침대에 누워서도 우문호는 여전히 흥분 상태였다. 그는 두 손을 베고 말했다."원 선생, 당신이 없었으면, 정말 많은 재미를 놓쳤을 것이고, 이렇게 많은 걸 배울 수도 없었을 것이오. 세상에 이런 것도 있다는 것을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소. 우리가 경험한 일들이 정말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인지조차 믿기 어렵소.""알겠소."원경릉은 그의 충격에 휩싸인 표정을 바라보며 말했다."난 당신이 살던
"그래, 좋구나. 죽여서 천도를 꼭 바로잡아야 한다!"우문호가 말했다."천도?""법이다! 죽여서 법을 바로 세워야 한다!"냉정언이 꼬투리를 잡자, 우문호가 급히 정정하며 억울한 표정으로 까다로운 그를 바라보았다.천도가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그는 요즘 천도를 따르는 것을 원하고 있었다.저녁 무렵 소월궁으로 돌아온 우문호는 흥분한 얼굴로 원 선생에게 이 이야기를 전하려 했다. 하지만 미간을 찌푸린 채 사색에 잠겨 한쪽에 앉아 있는 원경릉을 발견했다. 그녀는 그가 돌아온 것도 모르는 듯했다."원 선생...?"우문호가 그녀를 부르며 다가갔다.원경릉은 아이들과 교감할 수 없는 문제를 어떻게 이야기할지 고민하며 넋을 잃고 있다가, 우문호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정신을 차렸다. 그녀가 다급히 일어나 말했다."돌아왔소? 곧 저녁을 올릴 테니, 손 씻고 오시오."그가 괜히 입맛을 잃을 수도 있으니, 그녀는 일단 배를 채우고 이야기하려 했다.하지만 우문호는 신이 나서 앉더니, 두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감싸며 말했다."급할 거 없소. 할 말 있소."원경릉이 그의 반짝이는 눈을 보며 따라 웃었다."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소? 어찌 이렇게 기뻐하는 것이오?"우문호는 목소리를 낮췄지만, 여전히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오늘 계란이와 연락이 닿았소.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소."그러자 원경릉이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정말이오? 목소리를 들었소? 뭐라고 했소?"순간 우문호의 얼굴에 빛이 나는 듯했다."밥 먹었냐고 물으니, 먹었다고 답하며 나한테 식사를 했는지 물었소. 그래서 굴비를 먹었다고 말했네. 우리를 그리워하고 있고, 조만간 우리를 보러 오겠다고 했소."원경릉은 그의 말이 사실인지 헷갈렸다. 그와 아이들이 교감할 수 있는 것은 자기장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다섯째는 그들과 다른 상황이라 교감이 가능할 리가 없었지만 기쁨에 가득 찬 그의 표정으로 보아, 거짓은 아닌듯했다."말을 한 것이오?"원경릉이 다시 묻자, 우문호가 이내 고개를
점심을 먹은 후, 그녀는 혼자 산꼭대기로 올라가 먼 곳에 있는 금나라의 도성을 바라보았다. 거세게 부는 바람을 느끼며, 그녀는 문득 스승님이 금나라로 돌아갔는지 궁금해졌다.그녀는 스승님이 며칠 더 머물기를 바랐지만,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급히 금나라로 떠났다. 그가 이렇게까지 신경 쓰는 일은 좀처럼 없었기에 이상했다.방금 들린 낮은 목소리를 떠올리며, 그녀는 순간 스승님이었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아버지의 목소리와 비슷하게 들려, 어머니가 아버지에 대해 말했던 것이 떠올랐다. 설마 아버지의 정신력이 이렇게 먼 곳까지 전달될 수 있는 걸까?그녀는 마음을 집중해 답해 보았다.“아바마마, 저는 식사를 했습니다. 아바마마는 드셨습니까?”한편, 경성 황궁 어서방에서 냉수보, 이리 나리, 탕양, 그리고 몇몇 친왕과 중신들이 과거 시험 개혁에 대해 논의하고 있었다.이리 나리가 자신의 의견을 차근차근 얘기하고 있었고 모두가 집중해서 듣고 있었는데, 그러던 중, 우문호가 갑자기 고개를 살짝 기울이더니, 이내 탁자를 세게 내리치며 벌떡 일어났다. 그는 기쁨에 찬 얼굴로, 흥분된 목소리로 외쳤다."먹었어, 먹었다. 굴비를 먹었는데, 정말 맛있더구나."그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모두 놀라 그를 쳐다보았다.그가 탁자를 세게 내리치는 바람에 잔이 앞으로 날아가, 열변을 토하던 이리 나리의 얼굴을 강타해 버렸다. 이리 나리는 코를 맞은 것도 모자라, 온몸이 흠뻑 젖고 말았다.이리 나리는 그를 가만히 쳐다보다가 천천히 일어나서 옷을 털어내고는,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사과와 해명을 하시지요."그러나 우문호는 여전히 흥분한 상태였다. 그는 이리 나리의 어깨를 붙잡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듣고 있으니, 어서 계속 이야기 하십시오. 나리의 의견이 너무 뛰어나, 듣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습니다! 나리는 정녕 전무후무한 북당 최고 부자입니다! 훌륭합니다!"냉수보가 무표정하게 말했다."북당의 수보는 접니다만."이때, 목여 태감이 황급히 달려와 걱정스러운 얼
같은 균이긴 하지만 서로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어, 이곳에서 처리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일이었기에, 이제 양여혜에게 기대는 수밖에 없다.원경릉은 귀영위 나장군과, 경천의 일을 담은 편지를 써 양여혜에게 보내면서, 혹시 해결책이 있는지도 함께 물었다. 주변 나라의 안정은 북당에게 중요한 일이다. 특히 두 나라는 이제 막 협력을 시작한 상황이었기에, 주변 나라의 안정은 북당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우문호는 어서방에서 신하들과 함께 국사를 논하며 식사하고 있었다.즉위한 이후부터 그는 늘 배불리 먹을 수 있지만, 간소한 식사를 해왔다. 사적으로 모임을 가질 때는 이리 나리가 따로 준비하기에 밥상은 꽤나 풍성했다.우문호는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신하들과 모여 식사하며,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때로는 취한 신하들이 거리낌 없이 말하기도 했지만, 실언으로 황제가 화를 내지 않는 것을 알고 자유로이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그 덕분에 군신 간의 관계는 유례없이 돈독해질 수 있었다.오늘 역시 분위기가 좋았다. 우문호는 어제처럼 화를 내지 않고, 차근차근 일을 처리하게 명을 내렸다. 그리고 만두도 서일과 함께 보내어, 실무를 배우게 했다.식사를 마치자마자 신하들은 너도나도 밖으로 나가 몸을 움직이며 소화를 시켰다.우문호는 궁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오가는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원 선생이 실험실에 있을 테니, 그녀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그는 어서방에 있는 연탑에 걸터앉아 다리를 꼬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 그는 다시 계란이와 교감을 시도했다.그는 안에 있던 시종들을 모두 내보냈고, 심지어는 목여 태감도 물러나게 했다.그는 원 선생이 말한 대로 잡념을 비우고 오로지 계란이와의 교감을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계란아, 밥은 먹었느냐?"하지만, 오랫동안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능력이 부족한 것인지 의심스러워했지만, 천천히 배우다 보면 언젠가는 익숙해질 것이니, 걱정은 하지 않았다. 똑똑하며, 타고난 재능까
점심때가 되자 희 상궁은 궁을 떠났고, 사식이도 아이를 돌보러 돌아갔다. 원경릉이 실험실로 가려고 할 때, 목여 태감이 땀을 뻘뻘 흘리며 뛰어왔다. 원경릉이 문을 나서는 모습을 보고, 그가 다급히 소리쳤다."마마, 잠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원경릉은 그의 다급한 모습에 깜짝 놀라 물었다."무슨 일인가?! 어서방에 무슨 문제라도 생긴 것인가?""아닙니다, 그건 아닙니다."목여 태감은 자리에 가만히 서서 눈치라도 보는듯, 계속 뒤를 힐끔 돌아보았다. 문득 녹주와 기라가 전각 밖에 서 있는 것을 보고, 그가 손을 흔들며 말했다."다들 일을 보거라. 마마께 드릴 말씀이 있다."녹주와 기라는 중요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눈치채고 공손히 예를 올리며 물러났다.목여 태감이 심각한 표정을 짓자, 원경릉도 덩달아 긴장되었다. 그녀는 그를 전각 안으로 불러 앉히며 말했다."태감, 대체 무슨 일인가?"목여 태감은 조회에 따라갔을 때부터 이 말을 꺼내지 못해 속이 타들어 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는 황제가 어서방에서 대신들과 함께 식사하는 틈을 타 급히 마마를 찾아온 것이었다. 전각에 들어온 그는 숨도 제대로 고르지 못한 채 서둘러 말했다."마마, 오늘 축시쯤에 일찍 일어나 폐하의 시중을 들려고 밖으로 나섰습니다. 그제야 폐하께서 전각 밖에서 혼잣말하고 계신 것을 보았지요. 공주의 이름을 여러 번 부르시는 것으로 보아, 공주를 너무 그리셔서 넋을 잃으신 게 아닌지 걱정됩니다. 폐하께는 감히 여쭤볼 수가 없기에, 이렇게 마마께 보고드리러 왔습니다. 폐하께 약이라도 지어 드리는 건 어떤지요?""전각 밖에서 혼잣말을 했다니?!"원경릉은 그만 깜짝 놀랐다. 며칠 동안 바삐 움직였고, LR과 어린 황제의 일로 고민이 깊어진 터라, 어젯밤 그녀는 깊이 잠들어 있었기에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예. 공주의 이름을 몇 번이나 부르셨습니다."그는 원경릉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할까 봐, 황제의 모습을 흉내 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계란아, 계란아, 자고 있느냐?
희 상궁은 사식이를 아주 예뻐했다. 특히 사식이의 아들이 아직 어리기에, 궁에 오면 사식이에게 붙어 아이를 돌보는 것을 좋아했다.그녀는 이번에 궁에 들어와 만두를 만나지 못해, 사식이의 아이를 돌보며 그리움을 달래려 했다.사식이는 어느새 살이 조금 올라, 눈매에서 마저도 행복 가득하든 것을 알 수 있었다. 귀한 집안에 시집가지 않았지만, 좋은 사람을 만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늘 행복한 사람은 어린 시절의 순수함을 간직하기 마련이다.그녀는 세월이 지나서도, 예전처럼 서일에 대해 불평하고 있었다.“그저 며칠 외출하는 것 뿐인데, 걱정 가득 잔소리만 몇 번을 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그를 밀어내고 싶어질 정도입니다!”하지만 그녀는 투덜거리면서도 입가에 미소를 지었고, 그녀의 눈 속에 행복만이 가득 차 있었다. 조금도 복잡한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어찌 불만이 있는 것이냐? 누군가 잔소리를 하는 것은 행복한 일이란다.”희 상궁이 그녀에게 말했다.“희 상궁, 그만하시오. 불만이 아니라 그저 잉꼬라는 것을 자랑하는 것이네.”원경릉은 연탑에 다리를 꼬고 앉아, 웃으며 말했다.“자랑이라.”희 상궁도 그녀의 뜻을 단숨에 알아차렸다. 붉어진 사식이의 얼굴을 보며 희 상궁이 입을 열었다. "정말 젊은이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행복한데도 불평하다니."“행복이라니요? 정말로 짜증이 납니다.”사식이는 몸을 구부려서 신발을 발판에 올리고는, 원경릉 옆에 앉았다. 이 신발은 서일이 황제와 함께 외출할 때 사 온 것이었다. 이곳에서는 본 적이 없는 신발인 '하이힐'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그녀는 이 신발을 엄청나게 아끼고 있었다.희 상궁이 말했다.“짜증은 무슨. 어찌 좋은 말을 하지 않는 것이냐? 서일을 칭찬할 수는 없는 것이냐?”“희 상궁, 믿지 않으시겠지만, 남자는 칭찬을 자주 하면 안 됩니다. 너무 자주 칭찬하면 익숙해져서 효과가 없습니다.”사식이가 웃으며 말했다.“헛소리!”그러자 희 상궁이 웃으며 나무랐다.“욕을 하다니, 어찌 연세도
원경릉은 피곤한 나머지 말을 하다 그만 잠에 들어 버린 반면, 우문호는 너무 흥분해서 잠을 잘 수 없었다. 그는 잠이 안 와 뒤척일 때마다 원경릉을 깨울까 봐 걱정되어, 복도에 나가 앉아 더 많은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 시도했다.그는 두 손으로 큰 돌을 들어 올리며 힘을 주고 외쳤다."일어나, 일어나, 날아오르거라."큰 돌이 움직이지 않자, 그는 그것을 내려놓고 더 작은 돌을 들었다."일어나거라."한참 노려봤지만, 여전히 움직이지 않자, 그는 또 다른 돌로 바꾸어 다시 시도했다.더 작은 돌을 쥐다가, 결국 두 손가락으로 모래를 쥐었다. 그러나 모래는 떠오르지 않았고, 오히려 손으로 꽉 쥐어, 몇 알의 모래가 빠져나갔다.그는 어쩔 수 없이 손바닥에 낙엽을 올려놓고,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나 나뭇잎은 여전히 떠오르지 않았다. 화가 치밀어 오른 그는 입김을 불어 나뭇잎을 날려 보냈다.그는 손을 두드리며 눈을 굴리고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나뭇잎보다 가벼운 것이 떠오르지 않아, 결국 이 능력을 포기하기로 했다. 대신 그는 계란이와 소통해 보려고 했다. 원경릉과 아이들이 쉽게 할 수 있으니, 그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조용한 소월궁 복도에서 그는 조용히 계란이의 이름을 두 번 불렀다."계란아, 자고 있냐?""계란아...!"정확히 두 번 부른 후, 그는 순간 늦은 시각이라 계란이가 분명 자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 이렇게 부르면 오히려 잠든 계란이까지 깨울 것 같아 입을 다물었다.일찍 일어난 목여 태감은 황제가 일어날 때까지 기다리고 준비를 도우려 했다. 돌아서려던 참에 황제가 복도에서 공주의 이름을 부르며 소리치는 것을 들었다. 그는 황제가 공주를 그토록 그리워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 공주는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황제와 함께한 시간이 많지 않았다.그마저도 가끔 공주가 보고 싶을 정도인데, 황제는 오죽하겠는가?그러나 계속 그리워하는 것도 답은 아니었다. 그리움이 병이 되면 안 되니, 그는 이제 황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