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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작가: 군닝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4-10-30 11:25:54
그 순간, 도준의 온몸이 굳어버렸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진단서를 받아들고 내 평평해진 배를 바라보며 겨우 입을 열었다.

“사산이라니... 어떻게... 어떻게 우리 아이가...”

도준은 중얼거리듯 계속해서 말하더니, 갑자기 미친 듯이 소리쳤다.

“말해봐! 도대체 왜 사산된 거야? 우리 아이에게 무슨 짓을 한 거냐고!”

“설마 내가 집에 없었다고 딴 남자라도 만난 거 아니야? 그래서 애를 죽인 거냐고!”

“대답해, 당장!”

도준의 얼굴은 분노와 의심으로 일그러져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차가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날 너 같은 더러운 사람 취급하지 마, 변도준.”

“대체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네가 며칠 전에 내가 뭐라고 했는지 기억이나 해볼래?”

도준은 갑자기 말문이 막힌 듯, 공허한 눈빛을 띠며 고개를 떨궜다. 마치 자신이 한 말을 되새기기가 두려운 사람처럼 보였다.

나는 그를 증오에 가득 찬 눈빛으로 바라보며 쏘아붙였다.

“내가 뭐라고 했는지 기억 안 나? 내 배가 너무 아프고, 피가 멈추지 않아 너한테 도와달라고, 구해달라고 했던 거.”

“그때 네가 뭐라고 했더라? 나정희 구하느라 바쁘다고, 내가 쓸데없는 소란을 피운다고 했지.”

“하지만 너는 몰랐겠지. 그때 건물에 불이 나서 내가 연기에 질식해 죽기 직전이었다는 걸.”

도준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난 그저...”

나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는 듯 그를 외면하고 성훈을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

“그리고 너도 똑같아, 주성훈.”

“수정이가 방화일 가능성이 있다고 했을 때, 너는 뭐라고 했지?”

“우리 자매가 매사에 유난스럽다고 비웃었잖아.”

“그리고 네가 뭐라고 했더라? 계속 귀찮게 하면 우리 둘 다 대가를 치르게 될 거라고?”

나는 그를 차가운 눈빛으로 쏘아보며 말했다.

“그럼 내가 하나 묻지. 아이를 가진 아내의 전화를 무시하고, 한 여자 집에 며칠씩이나 머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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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 같았으면, 나는 아마 도준의 말에 감동하고 그를 용서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그럴 수 없었다. 과거의 기억들이 끊임없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비 오는 어느 밤, 도준은 서슴없이 정희에게 생리대를 가져다주러 달려갔다. 반면, 임신 초기 감기로 아파하던 나에게는 아침까지 참으라는 차가운 한마디만 돌아왔었다. 또 주방에 갑자기 나타난 뱀에 놀라 비명을 질렀을 때는 나를 예민하다고 핀잔을 주었으면서, 정희가 집에 작은 나방 몇 마리 보였다고 하자 점심시간까지 포기하고 달려갔다. 정희가 자신의 매력을 자랑할 때마다 도준과 성훈은 그녀를 따라 부잣집 남자와의 맞선 자리에까지 갔다. 그런가 하면 수정이 임신 초기 계단에서 넘어져 무릎이 부어오를 때조차, 성훈은 바쁘다는 핑계로 병원에 함께 가지 않았다. 이런 남자들을 우리가 그토록 소중히 여겼다니, 지금 생각하면 차라리 내 손으로 내 뺨이라도 때리고 싶을 만큼 어리석었다. “소용없어.” 나는 냉정하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너희가 무릎 꿇고 빌어도 바뀔 건 없어.” 수정은 발이 아픈 듯 구두를 벗어 손에 든 채, 성훈을 똑바로 쳐다보며 냉소적으로 말했다. “나정희에게 모든 탓을 돌린다고 해서 죄책감이 사라져? 결국 나정희에게 기회를 준 것도 너희 자신이었잖아!” 성훈은 식은땀을 닦으며 다급하게 말했다. “수정아, 네 말이 맞아. 난 변도준과 달리 정말 다 인정해, 변명하지 않을게. 그러니까 제발, 이혼만은 하지 말자, 응?” 도준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성훈을 쳐다봤고, 나는 그 모습에 실소를 참을 수 없었다. 이 상황에서도 서로를 끌어내리는 모습이라니, 정말 끝까지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구나. 그때, 도준이 갑자기 내 앞에 무릎을 꿇고 두 손으로 자신의 뺨을 치기 시작했다. “아진아, 네가 얼마나 상처받았는지 알아.” “하지만 난 주성훈과 달라! 주성훈은 입만 살았지, 난 행동으로 보여주잖아!” 도준의 얼굴은 금세 부어오르고 흉측하게 변

  • 멍청한 남편들   제9화

    지금의 도준은 마치 모든 걸 잃은 사람처럼 비참하고 조심스러워 보였다. 연애할 때부터 결혼을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가 이렇게 불안하고 초라한 모습을 보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마치 잘못을 저지르고 꾸짖음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이런 모습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잘못을 깨달았다고 해서 무조건 용서해줘야 하는 건 아니야.” 나는 담담하게 고개를 저었다. “늦었어, 변도준. 우리는 정말로 끝났어.” “아진 누나, 제발! 우린 이제 진실을 알아냈어!” 성훈이 다급하게 말했다. “우리 아파트 배전실에서 접지를 끊고 방화 장치를 설치한 사람은 정희였어! 정희는 일부러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고층 빌딩 옥상에 가서 자작극을 벌인 거야. 우리 둘 다 자기를 구하러 오게 하려고 했던 거라고!” “목적은 우리 둘이 위급한 순간에 누구를 선택할지를 시험해보고 싶었던 거였어!” “그리고 그 택배 상자에 들어있던 쪽지들도 전부 정희가 직접 만든 거였어. 서아진, 네 말이 맞았어. 정희는 악독한 여자였는데, 우리는 멍청하게도 정희가 순진하고 착한 사람이라고 믿은 거야. 완전히 속았어!” 성훈은 죄책감에 사로잡힌 얼굴로 한 걸음 다가오며 말했다. “우리가 정말 잘못했어. 큰 잘못을 했어. 너희 둘에게 상처를 줬고, 아이까지 잃었어.” “그런데 정말로 정희와는 아무 사이도 아니었어. 그저 친구로 지냈을 뿐이야. 그렇지 않았으면 애초에 너희와 결혼하지도 않았을 거야.” “아진 누나, 수정아, 제발 다시 한번 생각해 줄 수 없어?” 성훈은 눈에 눈물까지 글썽이며 나를 간절히 바라봤다. 지금껏 그가 나를 ‘누나’라고 부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야 그 단어를 꺼내다니, 그저 우습기만 했다. 그 순간, 수정이 비웃는 듯한 표정으로 그들이 찍힌 자극적인 사진을 꺼내 보이며 냉소했다. “이게 네가 말하는 그냥 친구라는 거야? 친구끼리 옷 벗고 서로 몸을 더듬고 그래?”

  • 멍청한 남편들   제8화

    “아니, 난...” 도준은 순간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마치 큰 충격을 받은 사람처럼, 입술만 달싹일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순간, 나는 불길 속에서 수정에게 업혀 나오던 때가 떠올랐다. 숨이 턱턱 막혀 목구멍과 폐가 칼에 베이는 것 같았고, 배 속에서 느껴지는 고통과 흘러내리는 피가 나를 산산조각내는 것 같았다. 그때 얼마나 무력했던가? 얼마나 사랑하는 남편이 내 곁에 있어주길 바랐던가? 의식이 흐려지면서도, 그저 도준의 얼굴이 눈앞에 나타나 주길 간절히 원했다. 마치 기적처럼 그가 나를 안아주고 “걱정하지 마, 내가 여기 있어”라고 말해주길 바랐다. 그러나 눈을 떴을 때 내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죽을 듯한 고통 속에서 홀로 사산의 아픔을 견디고, 그 후에도 혼자 외롭게 의식을 잃었다. 도준은 내 옆에 단 한 번도 있어주지 않았다. 나는 그런 사람을 어떻게 미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러나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런 것들을 그에게 설명할 필요조차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준은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는 그저 계속해서 나를 실망시키며 내 삶을 갉아먹을 뿐이었다. 나는 깊이 숨을 들이쉬고, 운전석에 앉아있던 택시 기사에게 말했다. “기사님, 이 남자 때문에 제 아이가 죽었어요. 지금도 저를 괴롭히고 있으니 빨리 출발해 주세요.” “뭐야, 그런 거였어?”기사는 이미 우리 대화를 듣고 있었던 터라, 곧바로 반응했다. 그는 도준에게 쏘아보며 침을 퉤 뱉었다. “남자 망신 다 시키고 있네!”그리고 힘껏 엑셀을 밟아 택시를 출발시켰다. 도준은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무기력하게 길바닥에 주저앉았다. 택시 문이 그의 손에서 벗어나는 순간, 그는 그대로 땅에 쓰러져 오랫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그런 건 더 이상 내 일이 아니었다. 도준을 떨쳐내고, 나는 수정과 함께 근처 쇼핑몰로 향했다. 새 옷과 화장품을 사고, 호화로운 호텔에 들러 푹 쉬고 따뜻

  • 멍청한 남편들   제7화

    주성훈은 상처받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나는 수정의 손을 꽉 잡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 이제 그만 가자.” 아이를 낳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사산의 고통을 겪었지만, 자연 분만이었기에 그나마 몸이 회복될 수 있었다. 하지만 수정은 낙태 수술을 받았고, 아직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 스트레스를 받으면 상태가 더 악화될 수도 있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내 동생을 돌보고 지켜야 했다. 그런데 그 순간, 도준이 내 손목을 거칠게 잡아당겼다. “그냥은 못 가!” “아이를 잃은 게 화재 때문일 수 있어도, 정희가 자살을 시도한 건 너와 관련이 있잖아!” “너랑 서수정은 반드시 경찰서로 가서 조사받아야 해!” 성훈 역시 무언가 생각이 난 듯, 의심 어린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맞아, 이대로는 못 가. 정희는 항상 착하고 주변 사람들과 잘 지내왔어. 네가 질투심 때문에 정희를 자극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거야!” 그러면서 성훈은 손에 수갑을 들고 위협하듯 내밀었다. 그들의 말이 터무니없어서 나는 비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택배 상자에 우리 이름이나 연락처라도 적혀 있었어?” 성훈은 당황한 듯 얼굴을 찡그렸다. “아니, 그건 아니지만...” “그렇다면 정희 집 주변에 CCTV라도 있겠지?” “그 상자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라면 누군가가 건네주거나 문 앞에 두고 갔을 거 아니야?” 나는 냉소를 멈추지 않고 덧붙였다. “너희 둘은 며칠 동안 정희 곁을 지키면서도 전혀 알지 못한 걸, 유산 후 입원해 있던 우리가 어떻게 알겠어?” 그들의 얼굴에 할 말 잃은 표정이 서렸다. 그때, 응급실에서 정희가 침대에 실려 나왔다. “정희야!” 도준은 곧바로 그녀에게 달려갔고, 성훈도 뒤따랐다. 정희는 눈물을 글썽이며 약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해요... 도준 오빠랑 성훈 오빠... 제가 또 괜히 걱정을 끼쳐 드렸네요...” 하지만 성훈은 조급하게 물었다

  • 멍청한 남편들   제6화

    그 순간, 도준의 온몸이 굳어버렸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진단서를 받아들고 내 평평해진 배를 바라보며 겨우 입을 열었다. “사산이라니... 어떻게... 어떻게 우리 아이가...” 도준은 중얼거리듯 계속해서 말하더니, 갑자기 미친 듯이 소리쳤다. “말해봐! 도대체 왜 사산된 거야? 우리 아이에게 무슨 짓을 한 거냐고!” “설마 내가 집에 없었다고 딴 남자라도 만난 거 아니야? 그래서 애를 죽인 거냐고!” “대답해, 당장!” 도준의 얼굴은 분노와 의심으로 일그러져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차가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날 너 같은 더러운 사람 취급하지 마, 변도준.” “대체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네가 며칠 전에 내가 뭐라고 했는지 기억이나 해볼래?” 도준은 갑자기 말문이 막힌 듯, 공허한 눈빛을 띠며 고개를 떨궜다. 마치 자신이 한 말을 되새기기가 두려운 사람처럼 보였다. 나는 그를 증오에 가득 찬 눈빛으로 바라보며 쏘아붙였다. “내가 뭐라고 했는지 기억 안 나? 내 배가 너무 아프고, 피가 멈추지 않아 너한테 도와달라고, 구해달라고 했던 거.” “그때 네가 뭐라고 했더라? 나정희 구하느라 바쁘다고, 내가 쓸데없는 소란을 피운다고 했지.” “하지만 너는 몰랐겠지. 그때 건물에 불이 나서 내가 연기에 질식해 죽기 직전이었다는 걸.” 도준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난 그저...” 나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는 듯 그를 외면하고 성훈을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 “그리고 너도 똑같아, 주성훈.” “수정이가 방화일 가능성이 있다고 했을 때, 너는 뭐라고 했지?” “우리 자매가 매사에 유난스럽다고 비웃었잖아.” “그리고 네가 뭐라고 했더라? 계속 귀찮게 하면 우리 둘 다 대가를 치르게 될 거라고?” 나는 그를 차가운 눈빛으로 쏘아보며 말했다. “그럼 내가 하나 묻지. 아이를 가진 아내의 전화를 무시하고, 한 여자 집에 며칠씩이나 머물면서

  • 멍청한 남편들   제5화

    수정은 눈물을 머금은 채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언니, 아까 언니가 욕할 때 정말 멋졌어.” “이혼하고 나서 삭발이라도 하면 더 멋질 것 같아.” 나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수정의 손을 꼭 잡고 퇴원 수속을 밟았다. 그리고 미용실에 들러 새롭게 스타일링을 하고, 오후에는 당당하게 싱글 라이프를 시작하자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퇴원 수속을 밟으려던 순간, 누군가 우리를 세게 밀어냈다. “간호사님!” “빨리 의사 좀 불러주세요, 이 사람이 수면제를 다량 복용한 것 같아요!” 성훈이 눈을 감은 정희를 안고 있었다. 경찰 제복을 입은 그의 모습에 간호사들은 긴장한 듯 빠르게 움직였다. 곧이어 도준이 헐레벌떡 달려왔고, 나를 보자 잠시 멈추더니 얼굴이 일그러지며 소리쳤다. “서아진, 네가 이렇게 악랄할 줄 몰랐어! 정희가 잘못되면 널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 그렇게 말하며 그는 곧바로 응급실로 뛰어들어갔다. 나는 어처구니없는 비난에 쓴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수정은 분노에 손을 떨며 말했다. “저 두 어리석은 인간들, 만약 정희가 정말 죽기라도 한다면 내가 손에 장을 지질 거야.” 이런 수법은 처음이 아니었지만, 도준과 성훈은 늘 쉽게 속아 넘어가며 정희의 말에 휘둘렸다. 결국, 그들의 문제였다. “서수정!” 정희를 응급실로 들여보내고 나온 성훈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내가 방금 네 언니랑 연락을 끊으라고 했지? 또 말을 안 듣고 날 열 받게 만드는 거냐?” “네가 정희를 이렇게 만든 거라고!” 성훈은 갑자기 손을 들어 수정의 얼굴을 강하게 내리쳤다. 수정은 피할 틈도 없이 옆으로 쓰러졌고, 이마가 벽 모서리에 부딪혀 피가 흐르며 정신을 잃었다. “주성훈, 너 지금 뭐 하는 짓이야!” 나는 머릿속이 하얘지며 그의 옷깃을 붙잡았다. “경찰이면 첫사랑을 위해 아내를 때려도 되는 거야?” 내 목소리에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네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네가

  • 멍청한 남편들   제4화

    “내가 변호사를 부른 이유가 뭔지 알아?” 나는 눈을 감고 깊게 숨을 들이쉬며 차분히 말했다. “변도준, 처음부터 난 진심으로 이혼을 결심했어. 네가 혼자 착각하고, 내가 너한테 목 매달 거라 믿어온 것뿐이지.” “그리고 주성훈한테도 전해줘. 오늘 오후에 법원에서 보자고.” 핸드폰 너머로는 한동안 아무 말도 없었지만, 이미 내 결심은 분명히 전달되었으니 상관없었다. 전화를 끊으려는 순간, 도준이 갑자기 폭발하듯 소리쳤다. [서아진! 너 진짜 죽을 각오한 거지? 끝까지 가보자는 거지?] [대체 얼마나 더 설명해야 알아듣겠어? 구조하는 건 내 일이야!] [정희가 지금도 충격 때문에 잠을 못 자고 있어. 친구로서 이틀 정도 옆에 있어주는 게 뭐가 문제냐고!] 도준의 말이 끝나자마자 정희의 약한 울음 섞인 목소리가 핸드폰 너머로 들려왔다. [도준 오빠, 이제 그만 성훈 오빠랑 함께 돌아가세요. 저 혼자 있어도 괜찮아요...] [아진 언니랑 수정 언니는 아이가 생겼잖아요. 저 때문에 두 분께 무슨 일이 생긴다면, 평생 죄책감에 시달릴 것 같아요. 두 분을 뵐 면목도 없고...] 도준은 짜증스럽게 대꾸했다. [정희야, 네가 신경 쓸 일은 없어. 네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잘 쉬고 다시 기운을 되찾는 것뿐이야. 나머지는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까.] [그리고 애 낳고 나면 내가 돌아가지 않을 것도 아니잖아.] [서아진은 며칠 내내 피가 난다고 난리를 피우더니, 알고 보니 별일 없었잖아. 진짜 매번 이렇게 징징대고, 내 얼굴에 얼마나 먹칠하는 건지 아냐?] ‘별일 없다고?’ 나는 헛웃음이 터져 나왔고, 얼굴은 더욱 창백해졌다. 더 이상의 대화가 무의미하다는 걸 깨닫고, 전화를 끊었다. 옆에 있던 수정 역시 그 모든 말을 고스란히 들은 듯, 고개를 떨군 채 침울해 있었다. “언니, 울고 싶으면 울어도 돼.” 수정은 눈물을 글썽이며 내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언니, 울고 나면 마음이 조금이라도 나아

  • 멍청한 남편들   제3화

    우리 부모님은 일찍 세상을 떠나셨다. 그 때문에 나와 수정은 서로에게 의지하며 자라야 했고, 수정은 내게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이 되었다. 난 수정이가 손가락 하나 다치는 것조차 가슴이 아플 정도로 그녀를 소중히 아끼며 보살펴왔다. 그런데도 나는 눈이 멀어 그토록 귀한 수정에게 주성훈이라는 사람을 소개해주고, 결혼까지 시켜버렸으니...우리는 진심을 다해 사랑을 주고, 고된 임신의 시간을 버텼다. 하지만 그 결과가 두 남자의 비열한 장난감이 되는 운명이라니, 마음이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었다. “허...” 수정은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더니, 이내 훌쩍이며 울음을 쏟아냈다. 눈가를 훔친 그녀의 손에는 핸드폰이 들려 있었고, 화면 속에는 사진 한 장이 있었다. 사진 속에서 도준은 상의를 벗고 강한 허리에 로프를 묶고 있었고, 그의 품에는 정희가 안겨 있었다. 정희가 도준의 보호 속에서 지상으로 내려오는 장면, 그리고 그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다급하게 달려오는 경찰 제복의 주성훈까지...모든 것이 한 편의 영화처럼 담겨 있었다. 정희는 마치 기사들이 지켜주는 공주같아 보였고, 그 모습은 방금 전 정희가 올린 SNS 게시물 속에서 한층 더 극적으로 묘사되고 있었다. 정희는 게시물에 이런 도발적인 문구까지 남겨두었다. [만약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소방관 오빠와 경찰 오빠 중 누구를 선택해야 할까요?] 댓글 창은 그야말로 폭발적이었다. [선택은 필요 없어! 나는 둘 다 가질 거니까!] [이 세 사람, 그냥 결혼시켜 주세요! 이미 영화 한 편이네요.] [진짜 베드 엔딩이 예상되는 멘트다.] 난 쓴웃음이 나면서 가슴 속 깊이 아픔이 밀려왔다. 무엇보다 내 마음을 아프게 찔렀던 건, 사진 속 정희의 목에 걸려 있는 목걸이 펜던트가 바로 도준과 주성훈의 결혼 반지와 같은 디자인이라는 사실이었다. “결혼식 때 네 사람의 반지가 똑같아서 우정의 증표인 줄로만 알았어.” “근데 알고 보니, 그 반지가 남성용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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