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은 서로 눈치를 보며 우리 곁에 머물러 있었다. 간간이 주시하는 그들의 시선에는 우리가 언제라도 도망갈까 두려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이 두 남자를 다시 볼 이유도, 그럴 필요도 없었다. 단지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었다. “좋아, 이렇게 하자.”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지금 당장 각자 뛰어서 꽃 한 다발씩 사 와. 차도 타지 말고, 택시도 부르지 말고, 무조건 뛰어야 해. 누가 먼저 오느냐에 따라 우리가 용서를 고려할지도 모르지.” 나는 일부러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체크하며 말했고, 수정도 눈치채고 곧바로 맞장구쳤다. “맞아! 그렇게 하자!” “알겠어, 수정아!” “아진아, 걱정하지 마. 나는 소방관이라 체력 훈련을 매일 하니까 쟤보단 빠를 거야!” 두 사람은 마치 마지막 기회를 잡기라도 한 듯 얼굴에 희망이 어린 채 서둘러 달려나갔다. 그들이 필사적으로 달려가는 모습을 보자, 나는 수정과 눈을 마주치고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곧바로 택시에 올라탔다. “기사님, 빨리 좀 가주세요! 변태 두 명이 쫓아오고 있어요!” 도준과 성훈이 우리가 사라진 걸 깨달았을 때는 한참 뒤였다. 그들의 전화는 당연히 연결되지 않았고, 우리는 이미 새 번호로 바꾸었고 떠날 준비까지 완벽히 마친 상태였다. 이제부터는 우리만의 새로운 삶이 시작될 차례였다. 다음 날, 뉴스는 빠르게 보도되었다. 정희는 악의적인 방화와 허위 신고 등의 혐의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그리고 도준과 성훈 역시 병원에서 벌인 소란 장면이 누군가에 의해 촬영되어 인터넷에 퍼지면서 파문이 일었다. 결국, 둘은 공직에서 해임된 것은 물론, 6개월간 구류 처분까지 받았다. 그들의 고향에 있는 부모들조차도 그들과 연을 끊기로 했다. 이 모든 것은 그들이 자초한 결과였다. 그리고 나는 수정과 함께 새로운 도시에서 작은 꽃집을 열었다. 매일 향긋한 꽃내음에 둘러싸여 환한 미소로 손님을 맞이하는 일상이
결혼식을 얼마 지나지 않아, 저랑 동생이 모두 임신했다. 내가 출산을 열흘 앞둔 어느 날, 아파트에 갑작스럽게 화재가 발생했다. 집안은 순식간에 자욱한 연기로 가득 차 올랐고, 나는 숨이 막혀 금세 진통이 시작되었다. 두 다리를 타고 피가 흐르기 시작했고, 정신은 몇 번이나 아찔하게 흐려졌다. 떨리는 손으로 몇 번이나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돌아온 건 싸늘한 답변뿐이었다. [서아진, 지금 출동 중인데 내가 네 전화에 일일이 답해야 하냐?] [정희가 지금 정체 모를 범인에게 옥상에 묶여 있는 상황이야!] [그러니 헛된 전화 좀 그만 걸고 가만히 있어!] 남편은 내 말을 끊어버리듯 전화를 툭 끊었다. 다시 걸어보았지만, 이미 전원은 꺼져 있었다. 죽음의 문턱에서 날 구해준 건 다름 아닌 동생, 수정이었다. 수정은 연기를 뚫고 달려와 나를 등에 업은 채 아래층으로 데려갔지만, 그 또한 무리한 탓에 유산의 징후가 나타났다. 아파트 경비원은 이번 화재가 방화일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배전실의 접지가 일부러 잘려 있었다는 것이다. 수정은 다급히 자신의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돌아온 것은 차가운 비난뿐이었다. [너희 자매는 왜 이렇게 매사에 유난을 떠는 거야?] [정희를 유괴한 범인을 아직 잡지 못했으니, 제발 전화 좀 그만 걸어!] [나랑 변도준은 처음부터 너희 자매랑 결혼하지 말았어야 했어!] 역시나 전화는 냉정하게 끊어졌다. 결국, 나는 병원에 도착하기도 전에 아이를 잃었고, 수정 또한 소중한 생명을 지키지 못했다. 그 후, 우리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한없이 눈물만 흘렸다. 그리고 깊은 고통 속에서 이혼을 결심하게 되었다. ... 지금 내 몸은 여전히 쇠약하고,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전화번호를 찾고 통화 버튼을 누르는 것만으로도 식은땀이 흐르고 숨이 턱 막힐 정도로 기운이 빠져갔다. 드디어 다섯 번째 시도 만에 변도준이 분노를 억누르는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또 뭐야? 아직도 정신 못 차렸
한때 나는 결혼 후 매일이 행복할 거라고 굳게 믿었다. 하지만 도준은 정희의 고소공포증을 기억하면서도, 내 임신 중 천식과 건강 문제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날, 숨 막히는 연기 속에서 나는 호흡이 곤란해 핸드폰을 몇 번이나 떨어뜨렸고, 격렬한 진통으로 인해 옅은 노란색 드레스가 붉게 물들어갔다. 그런데 도준은 내 전화를 받지 않았고, 거의 의식을 잃어갈 무렵에야 겨우 전화를 받았다. “여보, 나... 배가 너무 아파... 제발 구해줘...” 내 목소리는 힘이 빠져 간신히 들릴 정도였고, 단어 하나하나를 제대로 내뱉기조차 어려웠다. 그러나 전화 너머로 들려온 건 정희의 울음소리였다. [너무 위험해요, 도준 오빠. 제발 나 구하러 오지 마요!] 순간, 내 마음은 싸늘하게 식어갔다. 불길은 이미 아파트 전체로 번져 가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그런데도 도준은 망설임 없이 나에게 화를 내며 소리쳤다. [아프다 아프다, 매번 아프다고만 하냐. 다른 사람들도 아이를 가졌어도 너처럼 유난 떨진 않아!] [네가 금수저로 자란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예민하게 구는 건데!] [난 지금 당장 구조하러 가야 해. 더 이상 전화하지 마!] 도준은 나의 고통이나 다급함을 전혀 모르는 듯,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전화를 끊어버렸다. 나는 갈수록 흐려지는 정신 속에서, 떨리는 손으로 마지막 힘을 짜내 다시 외쳤다. “안 돼! 피, 피가 흐르고 있어...” [아악! 도준 오빠, 저 너무 무서워요!] 그러나 핸드폰 너머로 들려온 건 정희의 비명 소리였다. 그러자 도준은 참지 못하고 인내심을 잃은 목소리로 차갑게 말했다. [피가 나면 곧 아이가 태어난다는 거 아니야? 이런 것도 내가 다 알려줘야 해?] [왜 매번 내가 출동할 때마다 귀찮게 전화를 거는 거야!] [정희가 지금 옥상에 묶여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이라고!] [네가 혼자 병원에 전화해서 의사를 부르면 되잖아. 내가 의사야?] 도준은 더 이상 말을 할 필요가
우리 부모님은 일찍 세상을 떠나셨다. 그 때문에 나와 수정은 서로에게 의지하며 자라야 했고, 수정은 내게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이 되었다. 난 수정이가 손가락 하나 다치는 것조차 가슴이 아플 정도로 그녀를 소중히 아끼며 보살펴왔다. 그런데도 나는 눈이 멀어 그토록 귀한 수정에게 주성훈이라는 사람을 소개해주고, 결혼까지 시켜버렸으니...우리는 진심을 다해 사랑을 주고, 고된 임신의 시간을 버텼다. 하지만 그 결과가 두 남자의 비열한 장난감이 되는 운명이라니, 마음이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었다. “허...” 수정은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더니, 이내 훌쩍이며 울음을 쏟아냈다. 눈가를 훔친 그녀의 손에는 핸드폰이 들려 있었고, 화면 속에는 사진 한 장이 있었다. 사진 속에서 도준은 상의를 벗고 강한 허리에 로프를 묶고 있었고, 그의 품에는 정희가 안겨 있었다. 정희가 도준의 보호 속에서 지상으로 내려오는 장면, 그리고 그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다급하게 달려오는 경찰 제복의 주성훈까지...모든 것이 한 편의 영화처럼 담겨 있었다. 정희는 마치 기사들이 지켜주는 공주같아 보였고, 그 모습은 방금 전 정희가 올린 SNS 게시물 속에서 한층 더 극적으로 묘사되고 있었다. 정희는 게시물에 이런 도발적인 문구까지 남겨두었다. [만약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소방관 오빠와 경찰 오빠 중 누구를 선택해야 할까요?] 댓글 창은 그야말로 폭발적이었다. [선택은 필요 없어! 나는 둘 다 가질 거니까!] [이 세 사람, 그냥 결혼시켜 주세요! 이미 영화 한 편이네요.] [진짜 베드 엔딩이 예상되는 멘트다.] 난 쓴웃음이 나면서 가슴 속 깊이 아픔이 밀려왔다. 무엇보다 내 마음을 아프게 찔렀던 건, 사진 속 정희의 목에 걸려 있는 목걸이 펜던트가 바로 도준과 주성훈의 결혼 반지와 같은 디자인이라는 사실이었다. “결혼식 때 네 사람의 반지가 똑같아서 우정의 증표인 줄로만 알았어.” “근데 알고 보니, 그 반지가 남성용이었어
“내가 변호사를 부른 이유가 뭔지 알아?” 나는 눈을 감고 깊게 숨을 들이쉬며 차분히 말했다. “변도준, 처음부터 난 진심으로 이혼을 결심했어. 네가 혼자 착각하고, 내가 너한테 목 매달 거라 믿어온 것뿐이지.” “그리고 주성훈한테도 전해줘. 오늘 오후에 법원에서 보자고.” 핸드폰 너머로는 한동안 아무 말도 없었지만, 이미 내 결심은 분명히 전달되었으니 상관없었다. 전화를 끊으려는 순간, 도준이 갑자기 폭발하듯 소리쳤다. [서아진! 너 진짜 죽을 각오한 거지? 끝까지 가보자는 거지?] [대체 얼마나 더 설명해야 알아듣겠어? 구조하는 건 내 일이야!] [정희가 지금도 충격 때문에 잠을 못 자고 있어. 친구로서 이틀 정도 옆에 있어주는 게 뭐가 문제냐고!] 도준의 말이 끝나자마자 정희의 약한 울음 섞인 목소리가 핸드폰 너머로 들려왔다. [도준 오빠, 이제 그만 성훈 오빠랑 함께 돌아가세요. 저 혼자 있어도 괜찮아요...] [아진 언니랑 수정 언니는 아이가 생겼잖아요. 저 때문에 두 분께 무슨 일이 생긴다면, 평생 죄책감에 시달릴 것 같아요. 두 분을 뵐 면목도 없고...] 도준은 짜증스럽게 대꾸했다. [정희야, 네가 신경 쓸 일은 없어. 네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잘 쉬고 다시 기운을 되찾는 것뿐이야. 나머지는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까.] [그리고 애 낳고 나면 내가 돌아가지 않을 것도 아니잖아.] [서아진은 며칠 내내 피가 난다고 난리를 피우더니, 알고 보니 별일 없었잖아. 진짜 매번 이렇게 징징대고, 내 얼굴에 얼마나 먹칠하는 건지 아냐?] ‘별일 없다고?’ 나는 헛웃음이 터져 나왔고, 얼굴은 더욱 창백해졌다. 더 이상의 대화가 무의미하다는 걸 깨닫고, 전화를 끊었다. 옆에 있던 수정 역시 그 모든 말을 고스란히 들은 듯, 고개를 떨군 채 침울해 있었다. “언니, 울고 싶으면 울어도 돼.” 수정은 눈물을 글썽이며 내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언니, 울고 나면 마음이 조금이라도 나아
수정은 눈물을 머금은 채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언니, 아까 언니가 욕할 때 정말 멋졌어.” “이혼하고 나서 삭발이라도 하면 더 멋질 것 같아.” 나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수정의 손을 꼭 잡고 퇴원 수속을 밟았다. 그리고 미용실에 들러 새롭게 스타일링을 하고, 오후에는 당당하게 싱글 라이프를 시작하자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퇴원 수속을 밟으려던 순간, 누군가 우리를 세게 밀어냈다. “간호사님!” “빨리 의사 좀 불러주세요, 이 사람이 수면제를 다량 복용한 것 같아요!” 성훈이 눈을 감은 정희를 안고 있었다. 경찰 제복을 입은 그의 모습에 간호사들은 긴장한 듯 빠르게 움직였다. 곧이어 도준이 헐레벌떡 달려왔고, 나를 보자 잠시 멈추더니 얼굴이 일그러지며 소리쳤다. “서아진, 네가 이렇게 악랄할 줄 몰랐어! 정희가 잘못되면 널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 그렇게 말하며 그는 곧바로 응급실로 뛰어들어갔다. 나는 어처구니없는 비난에 쓴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수정은 분노에 손을 떨며 말했다. “저 두 어리석은 인간들, 만약 정희가 정말 죽기라도 한다면 내가 손에 장을 지질 거야.” 이런 수법은 처음이 아니었지만, 도준과 성훈은 늘 쉽게 속아 넘어가며 정희의 말에 휘둘렸다. 결국, 그들의 문제였다. “서수정!” 정희를 응급실로 들여보내고 나온 성훈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내가 방금 네 언니랑 연락을 끊으라고 했지? 또 말을 안 듣고 날 열 받게 만드는 거냐?” “네가 정희를 이렇게 만든 거라고!” 성훈은 갑자기 손을 들어 수정의 얼굴을 강하게 내리쳤다. 수정은 피할 틈도 없이 옆으로 쓰러졌고, 이마가 벽 모서리에 부딪혀 피가 흐르며 정신을 잃었다. “주성훈, 너 지금 뭐 하는 짓이야!” 나는 머릿속이 하얘지며 그의 옷깃을 붙잡았다. “경찰이면 첫사랑을 위해 아내를 때려도 되는 거야?” 내 목소리에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네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네가
그 순간, 도준의 온몸이 굳어버렸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진단서를 받아들고 내 평평해진 배를 바라보며 겨우 입을 열었다. “사산이라니... 어떻게... 어떻게 우리 아이가...” 도준은 중얼거리듯 계속해서 말하더니, 갑자기 미친 듯이 소리쳤다. “말해봐! 도대체 왜 사산된 거야? 우리 아이에게 무슨 짓을 한 거냐고!” “설마 내가 집에 없었다고 딴 남자라도 만난 거 아니야? 그래서 애를 죽인 거냐고!” “대답해, 당장!” 도준의 얼굴은 분노와 의심으로 일그러져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차가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날 너 같은 더러운 사람 취급하지 마, 변도준.” “대체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네가 며칠 전에 내가 뭐라고 했는지 기억이나 해볼래?” 도준은 갑자기 말문이 막힌 듯, 공허한 눈빛을 띠며 고개를 떨궜다. 마치 자신이 한 말을 되새기기가 두려운 사람처럼 보였다. 나는 그를 증오에 가득 찬 눈빛으로 바라보며 쏘아붙였다. “내가 뭐라고 했는지 기억 안 나? 내 배가 너무 아프고, 피가 멈추지 않아 너한테 도와달라고, 구해달라고 했던 거.” “그때 네가 뭐라고 했더라? 나정희 구하느라 바쁘다고, 내가 쓸데없는 소란을 피운다고 했지.” “하지만 너는 몰랐겠지. 그때 건물에 불이 나서 내가 연기에 질식해 죽기 직전이었다는 걸.” 도준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난 그저...” 나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는 듯 그를 외면하고 성훈을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 “그리고 너도 똑같아, 주성훈.” “수정이가 방화일 가능성이 있다고 했을 때, 너는 뭐라고 했지?” “우리 자매가 매사에 유난스럽다고 비웃었잖아.” “그리고 네가 뭐라고 했더라? 계속 귀찮게 하면 우리 둘 다 대가를 치르게 될 거라고?” 나는 그를 차가운 눈빛으로 쏘아보며 말했다. “그럼 내가 하나 묻지. 아이를 가진 아내의 전화를 무시하고, 한 여자 집에 며칠씩이나 머물면서
주성훈은 상처받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나는 수정의 손을 꽉 잡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 이제 그만 가자.” 아이를 낳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사산의 고통을 겪었지만, 자연 분만이었기에 그나마 몸이 회복될 수 있었다. 하지만 수정은 낙태 수술을 받았고, 아직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 스트레스를 받으면 상태가 더 악화될 수도 있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내 동생을 돌보고 지켜야 했다. 그런데 그 순간, 도준이 내 손목을 거칠게 잡아당겼다. “그냥은 못 가!” “아이를 잃은 게 화재 때문일 수 있어도, 정희가 자살을 시도한 건 너와 관련이 있잖아!” “너랑 서수정은 반드시 경찰서로 가서 조사받아야 해!” 성훈 역시 무언가 생각이 난 듯, 의심 어린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맞아, 이대로는 못 가. 정희는 항상 착하고 주변 사람들과 잘 지내왔어. 네가 질투심 때문에 정희를 자극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거야!” 그러면서 성훈은 손에 수갑을 들고 위협하듯 내밀었다. 그들의 말이 터무니없어서 나는 비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택배 상자에 우리 이름이나 연락처라도 적혀 있었어?” 성훈은 당황한 듯 얼굴을 찡그렸다. “아니, 그건 아니지만...” “그렇다면 정희 집 주변에 CCTV라도 있겠지?” “그 상자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라면 누군가가 건네주거나 문 앞에 두고 갔을 거 아니야?” 나는 냉소를 멈추지 않고 덧붙였다. “너희 둘은 며칠 동안 정희 곁을 지키면서도 전혀 알지 못한 걸, 유산 후 입원해 있던 우리가 어떻게 알겠어?” 그들의 얼굴에 할 말 잃은 표정이 서렸다. 그때, 응급실에서 정희가 침대에 실려 나왔다. “정희야!” 도준은 곧바로 그녀에게 달려갔고, 성훈도 뒤따랐다. 정희는 눈물을 글썽이며 약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해요... 도준 오빠랑 성훈 오빠... 제가 또 괜히 걱정을 끼쳐 드렸네요...” 하지만 성훈은 조급하게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