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만 좋아하시면 돼요.”도아린은 배추 모양 옥을 유민정에게 준 후 나머지 박스들은 전부 위층으로 가져갔다.“사모님, 이거...”유민정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가짜예요.”도우미도 가짜인 걸 알아봤는데 주현정이 모를 리가 없었다. 주현정이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이 선물 준 사람 육씨 가문을 무시하는 게 틀림없어. 가는 길에 버려. 우리 육씨 가문과 친분도 있는데 망신당하게 해선 안 되지.”그러면서 배건후를 쳐다보았다.“지유 아직 어리니까 어떤 일은 오빠인 네가 잘 가르치도록 해. 아린이가 생각이 깊어서 우리 배씨 가문의 체면을 남겨둔 거야. 만약 다른 사람이 지유가 새언니 물건으로 선물 준 거 알면 우리 집이 망할 수도 있다고.”“...”배건후는 어두운 표정으로 라이터를 돌렸다. 그가 아무 반응이 없자 주현정이 쿠션을 확 던졌다.“가끔은 네가 내 아들이 맞나 의심이 들어!”배건후는 쿠션을 잡고 소파에 내려놓았다.“지유 말이에요...”‘됐어. 목걸이는 나중에 얘기하자.’“걔가 철이 없다고 너도 없을 셈이야?”주현정이 호통쳤다.“레스토랑까지 예약해서 밥 먹으러 가라고 했더니 귓등으로 들어? 마음 같아선 널 정말 호적에서 파버리고 싶어.”배건후는 도아린의 ‘남자들’만 생각하면 표정이 싸늘해졌다....도아린은 나영옥의 친구들이 준 선물과 비취 팔찌만 따로 골라냈고 나머지는 다용도실에 넣었다.그녀가 금고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열었다. 그런데 맨 위에 두었던 벨벳 케이스가 사라졌다. 도아린은 자신을 비웃었다.비취 팔찌마저 배지유에게 줬는데 루비 목걸이를 남에게 준 것도 딱히 놀랍진 않았다.그녀는 드레스룸으로 들어가 옷장에서 숄을 찾았다.갑자기 바람이 불고 온도가 급격히 떨어져 주현정이 추울까 걱정되었다. 그런데 돌아선 순간 배건후의 품에 부딪히고 말았다.도아린은 재빨리 뒷걸음질 쳤다.“비켜요.”배건후는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금고를 열어보았으니 루비 목걸이가 사라졌다는 걸 분명 알았을 것이다. 이 일은 그녀에게 직접 말하
도아린은 자신이 잘못 들은 건 아닌지 의심마저 들었다.‘아니야. 배건후의 머리가 잘못된 거야. 이런 파렴치한 요구를 대체 무슨 낯짝으로 한 거지?’“건후 씨, 손보미 씨는 건후 씨가 아끼는 여자지, 나랑은 상관없는 사람이에요. 그리고 내가 그리 체면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내가 무슨 수로 바다 진주를 구해요?”도아린이 가려는데 배건후가 어깨를 꽉 잡았다. 그러고는 벽 쪽으로 확 밀어붙였다.배건후의 눈빛이 날카로워졌고 안색도 어두워졌다.“체면이 없다고? 체면이 없다면 서대은 씨가 왜 귀한 드레스까지 공짜로 줬겠어?”그의 분노가 극에 달해 도아린의 어깨를 꽉 잡고 말았다. 도아린이 어깨가 아픈 나머지 발버둥 치자 숄이 바닥에 떨어졌다.두 사람은 서로의 눈을 빤히 쳐다보았다. 배건후는 그녀의 대답을 듣기 전에는 절대 포기하지 않을 기세였다. 도아린이 점점 대놓고 비웃었다.“내 남편이 내연녀한테 드레스를 사주면서 연회에서 가장 예쁜 사람으로 만들어주겠다고 한 걸 서대은이 듣고 보다 못해 드레스를 협찬해줬어요.”배건후가 잔뜩 찌푸린 얼굴로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네가 내 돈 쓰지 않겠다고 했잖아.”‘내가 안 쓰겠다고 해서 내연녀한테 마구 써? 이건 무슨 이상한 논리야?’도아린이 그의 손을 뿌리쳤다.“내가 무슨 방식으로 드레스를 얻었든 건후 씨랑은 상관없는 일이에요.”배건후의 두 눈에 분노가 이글이글 타올랐다. 도아린은 한시라도 빨리 그와 멀리하고 싶었다.배건후는 그녀의 아래턱을 잡고 허리를 숙였다.“건후야, 아린아.”주현정의 목소리가 계단에서 들려왔다. 배건후와 도아린의 코끝이 서로 맞닿아 있어 뜨거운 숨결이 고스란히 전해졌다.발걸음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자 도아린은 배건후를 밀어내고 숄을 주웠다.“어머님... 오늘 날씨가 춥다고 해서 숄을 챙겼어요.”도아린은 숄을 주현정에게 걸쳐주었다.“의사 선생님이 감기 걸리지 않게 조심하라고 했잖아요.”“역시 내 걱정하는 건 며느리밖에 없어. 아들은 날 화병 나게 하려고 태어난 것 같아.”주
배지유가 신호등이 빨간불로 바뀌기 전 빨리 달리려다가 그만 탱크차 뒷부분과 부딪치고 말았다.BMW R59가 옆으로 돌면서 앞쪽이 탱크차 뒷부분과 부딪쳤다. 에어백이 순식간에 터졌고 배지유는 한쪽 갈비뼈 골절에 발목 인대가 늘어났다.배건후 일행이 병원으로 도착해보니 배지유가 침대에 누워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당신이 의사야? 살살해 좀. 아프다고!”“지유야.”배지유는 주현정을 보자마자 발버둥 치며 일어나려다가 고통이 밀려와 다시 누웠다.병원으로 오는 길 내내 주현정은 딸 걱정에 한시도 마음을 놓지 못했고 도아린의 손을 하도 꽉 잡아서 퍼렇게 되었다. 다행히 큰 문제가 없는 걸 확인하고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무서워하지 마. 오빠가 병원 다른 데로 옮겨줄게. 엄마가 입원한 병원으로 가자.”“오빠, 너무 아파요...”함께 온 도아린을 본 배지유의 얼굴에 두려움이 스쳤고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도아린 씨, 여긴 왜 왔어요? 내 꼴이 어떻나 비웃으려고 왔어요?”그러자 주현정이 호통쳤다.“지유야, 예의 없게 굴지 마.”“엄마.”배지유가 엉엉 울기 시작했다.“쟤가 얼마나 많은 사람 앞에서 날 때렸는지 알아요? 창피해서 이젠 연회 같은 데 갈 수가 없어요. 도아린 씨! 보기 싫으니까 당장 나가요!”주현정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도아린이 배지유를 괴롭힐 리가 없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배지유의 기분이 좋지 않은 데다가 다치기까지 해서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주현정이 입을 열기 전에 도아린이 먼저 말했다.“밖에서 기다릴게요.”“병원 옮기는 절차 처리하고 올게요.”배건후도 따라 나갔다. 키가 크고 다리가 길어서 두세 걸음 만에 바로 도아린을 따라잡았다.“지유 다쳐서 상태가 불안정해서 그래.”“때린 건 사실이잖아요.”도아린이 피식 웃었다.“날 미워하는 것도 정상이죠.”배건후가 엘리베이터를 눌렀다. 도아린은 그와 함께 있고 싶지 않아 이렇게 말했다.“절차는 1층에서 하면 돼요. 난 지현이 보러 갈게요.”도아린은 에
“지현이한테는 누나 하나밖에 없어요.”도아린이 싸늘하게 잘라버렸다. 순간 말문이 막힌 도정국의 눈빛이 사나워졌다.“내 양아들이 지현이 형이 아니면 뭔데?”“지현이를 위해 아무것도 한 게 없으면서 무슨 자격으로 형이에요?”“네가 유준이한테 투자했더라면 쟤가 돈 벌어서 지현이 챙겨주지 않았겠어?”도아린은 조롱 섞인 눈빛으로 도정국을 쳐다보았다.“아버지는 많이 벌어도 지현이 병원비 일전 한 푼 낸 적이 없잖아요.”“...”도정국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병원에서 싸워봤자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숨을 길게 내뱉고는 화제를 돌렸다.“네 시어머니 또 입원했다며? 이번 약 효과 없는 거 아니야? 내가 사람 찾아서 다시 바꿔 달라고 할게.”도아린은 병실 안의 환자 감시 모니터를 보면서 말했다.“그럴 필요 없어요. 배씨 가문의 인맥이 아버지보다 넓은데 당연히 아는 사람이 더 많죠.”“인맥이 아무리 넓어도 그건 그 집 거지. 우리가 보여줘야 하는 성의는 보여줘야 하는 거야.”도정국은 도아린이 자신을 경계하는 것에 대해 불만이 많았다.“매장 있잖아, 얼른 해결해. 유준이 데리고 먼저 갈게.”그가 가자마자 도아린은 배건후에게 전화를 걸었다.뚜... 뚜...‘빨리 받아요.’도아린이 다급한 나머지 발을 동동 굴렀다. 드디어 휴대전화 너머로 배건후의 굵은 중저음이 들려왔다.“말해.”“우리 아버지 방금 내려갔어요. 혹시 만나면 해외에서 의사 찾았으니까 지현이 깨어날 가능성 있다고 해요.”배건후는 아무 말이 없었다. 도아린이 멀리서 내다보니 엘리베이터가 어느덧 1층에 도착했다.“내가 건후 씨 어머니 앞에서 연기하니까 건후 씨도 우리 아버지 앞에서 연기해요. 그래야 공평하죠.”“근데 넌 4천억이 있잖아.”도아린이 휴대전화를 꽉 쥐고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았다.‘내가 손보미를 돕지 않겠다고 해서 지금 이러는 거야? 그러는 거라면...’“건후 씨, 나한테...”“집으로 들어와서 지내.”도아린이 화들짝 놀랐다. 배건후가 이런 조건을
도아린은 갑자기 마음이 움찔했고 불길한 예감이 물밀 듯이 밀려왔다.‘아버지랑 도유준이 바로 뒤에 있는데 건후 씨가 까발리기라도 하면...’“누나!”도유준이 그녀를 불렀다.“아빠 엠파이어 빌딩 매장 때문에 매일 잠도 제대로 못 주무셔. 오늘 매형 앞에서 아빠한테 확답을 주는 건 어때?”도정국은 친구들 앞에서 곧 지사를 관리할 거라고 말했었다. 그런데 계속 잠잠하자 친구들이 그의 말을 의심하기 시작했다.도유준도 사적으로 배건후를 찾아간 적이 있었다. 그런데 모건 그룹은 물론이고 에이트 맨션도 들어갈 수 없었다. 오늘 겨우 배건후를 만났기에 확답을 듣고 싶었다.“그래. 내 친구들은 내가 허세를 부린 줄 알아.”도정국이 말했다.“계속 안 주면 아버지 얼굴 들고 다니지 못해.”“누나, 내가 큰일을 해낼 능력은 없어도 인테리어 일꾼들을 감시할 능력 정도는 있어.”“유준이한테 창업할 기회를 못 주겠으면 이번 인테리어 얘한테 맡겨. 단련도 하고 좋잖아.”두 사람은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도아린에게 매장을 내놓으라고 강요했다.‘근데 문제는 나한테 없는데?’도아린이 배건후를 쳐다보았다. 그의 두 눈이 하도 어두워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당최 알 수가 없었다. 조금 전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몰라 함부로 대답할 수 없었던 도아린이 배건후의 팔을 꼬집었다.“아버지한테 뭐라 했어요?”배건후는 그녀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알아맞혀 봐.”‘알아맞히긴 개뿔.’그녀가 아무 말이 없자 도유준이 그녀 앞으로 다가갔다.“누나, 그동안 나 열심히 공부했어. 이번에는 진짜 실망하게 하지 않을게.”“그래.”도정국이 계속 말했다.“내가 지켜보고 있으니까 넌 걱정하지 마.”도아린은 배건후의 뜻을 알아차린 것 같았다.조금 전의 거래는 도지현의 병에 관한 것이었고 조건은 도아린이 에이트 맨션에서 지내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화제는 매장이었다. 계속 배건후의 도움을 받으려면 더 큰 대가를 치러야 했다.역시 사업가는 달랐다. 무슨 일이든 다 거래가 가능했다. 하지만
도정국은 붉으락푸르락해서 화를 냈다.“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건후가 비웃으면 어쩌려고 그래!”그녀는 배건후가 비웃는 것이 전혀 두렵지 않았다.오히려 그가 말실수할까 봐 더 걱정이었다.그가 입을 다물기만 한다면 그녀는 위세를 부릴 수 있으니까.“아빠랑 유준은 계속 나한테 가게를 달라고 쫓아다니는데, 이 사람 보기 부끄럽지 않아요?”도아린은 배건후의 팔짱을 끼고 그에게 느긋하게 기대며 말했다.“엠파이어의 가게는 금싸라기 땅이라 얼마나 많은 사람이 노리고 있는지 몰라요. 국제 일류 브랜드들도 아직 입점하지 않았는데 아빠의 작은 디저트 가게가 입주해서 무사하게 오픈하기나 하겠어요?”“...”도정국은 주먹을 꽉 쥐었다.자신의 가게가 그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그는 더욱 그 자리를 차지하고 싶었다.상장도 안 된 작은 가게가 입점하면 분명 주변 브랜드들이 불만을 가질 것이다. 그러니 모든 게 완벽히 준비된 후 바로 오픈하는 것이 최선이었다.도정국은 이 모든 상황을 잘 알고 있었지만, 도아린이 자신을 속이고 자리를 주지 않을까 봐 걱정됐다.“누나 말이 맞긴 한데...”도유준은 무언가 더 말하려 했지만, 도정국은 눈빛으로 그를 말렸다.“내가 너무 성급했어.”도정국은 어색하게 웃으며 배건후를 바라보았다.“내 몫으로 하나만 있다면 안심할 건데. 그렇지? 건후야.”그는 배건후가 직접 그에게 약속해주기를 바랐다.배건후의 시선은 줄곧 도아린에게 고정되어 있었고 눈빛은 그윽하고 강렬했다.오늘 그는 집에서 입는 옷을 입고 있었다. 캐주얼한 운동복은 그의 날카로운 기운을 누그러뜨렸지만, 카리스마는 여전히 강렬했다.시선이 느껴지자 도아린은 웃으며 그의 시선을 마주했다.그녀는 남자의 귀에 대고 조용히 말했다.“굳이 말하지 않아도 돼요”그녀가 물러서려는 찰나, 배건후는 그녀의 허리를 잡고 나지막이 말했다.“말하지 않는 건 협조하는 거야.”“...”도아린은 그의 팔을 세게 움켜잡으며 이를 악물고 웃었다.“원하는 게 뭐죠?”
배건후가 없었더라면 도정국은 진작에 한 대 쳤을 것이다.그가 아직 죽지도 않았는데, 벌써 재산을 나누려고 하다니.그리고 배건후가 백조 원대 자산가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쥐꼬리만 한 돈에 욕심을 부리고 있는 도아린이 너무나도 탐욕스러웠다.도정국은 손을 움찔거리다가 배건후의 차가운 시선에 결국 사람을 때리지는 못했다.그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건후야, 너에게 우스운 꼴을 보였구나. 아린이 이 녀석은 원래 이렇게 장난이 심해.”배건후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은 채 코웃음을 쳤다.“아린은 공정한 걸 좋아하잖아요.”그를 발기불능이라고 저주한 내용이 담긴 이혼 합의서가 세상에 알려지면 그는 관련된 사람들을 절대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도아린은 남자의 팔을 더 꼭 끌어안고 웃으며 말했다.“가요. 영화 시작하겠어요.”그녀가 힘을 주어 당겨서야 배건후는 마침내 발걸음을 옮겼다.도정국과 도유준은 급히 길을 비켜주었고 그들이 문을 나서자 도유준은 그제야 말을 꺼냈다. “아빠, 내가 대체 뭘 잘못했길래 누나가 저렇게 나를 싫어하는 걸까요?”“여기 2천만이야. 일단 이걸 쓰고 있어. 새 가게가 계약되기 전까지는 아린을 절대 자극하지 마라.”도정국은 도유준에게 카드를 건네며 입가에 냉소를 지었다.“지현은 오래 못 살 거야. 걔가 죽으면 그 몫은 네 거야. 그리고 아린은 내 재산을 받을 자격이 없어.”...병원 밖으로 나가자마자 도아린은 배건후의 팔을 놓았고 얼굴에 있던 친근한 웃음도 사라졌다.“나는 병원 옮기지 않을게요.”배건후가 입을 열려던 순간, 주현정의 전화가 걸려왔다.“수속은 다 됐어? 지유가 아파 죽겠대.”“바로 갈게요.”배건후는 도아린을 바라보며 말했다.“저녁에 집에 가서 얘기하자.”무슨 얘기?손보미에게 진주 사주라는 얘기?절대 안 되지.그녀가 거절할 틈도 없이 배건후는 병원 엘리베이터로 들어갔다.찬 바람이 불어와 도아린은 몸을 움츠렸다.점심에는 반팔을 입고도 더웠는데 지금은 너무 추워서 덜덜 떨렸다. 찬바람이 이렇게 빨리
모든 준비를 마친 도아린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두 층을 내려갔을 때, 병상이 하나 들어왔고 도아린은 의료진에 밀려 문 쪽으로 몰렸다.“이 약 전혀 효과가 없어요! 아직도 너무 아프단 말이에요!”“조금만 참으세요. 병원장에게 이미 연락했으니 정형외과 전문의가 곧 검사할 겁니다.”주현정은 병상을 따라 들어오면서 자신의 숄을 배지유에게 덮어주며 말했다.“오늘 한파래, 괜히 감기 들지 말고.”배건후가 엘리베이터에 들어왔을 때 옆에는 가녀린 여자가 함께 있었다.삐삐!엘리베이터가 과부하 상태가 되었다.“무슨 엘리베이터가...”고개를 들자 배지유는 문 앞에 서 있는 도아린을 보았다.“아린 씨, 왜 아직도 안 갔어요? 엘리베이터가 과부하인 거 안 보여요?”주현정은 그제야 도아린을 보고 배지유의 손을 가볍게 쳤다.“아린은 위에서 내려온 거니까 과부하라고 해도 그녀가 내려야 할 이유는 없지.”그녀의 말에 배건후 옆에 있던 손보미의 얼굴이 굳어졌다.그녀는 배지유의 전화를 받고 병문안하러 온 거였는데 주현정은 내내 냉담한 태도를 보였던 것이다.“건후 씨가 지유를 병원에 데려다줘. 난 내릴게.”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전혀 나가려 하지 않았다.엘리베이터는 계속 삐삐 소리를 냈다.“아린 씨, 귀가 먹었어요?”배지유가 소리쳤다.“일부러 내 치료를 방해해서 내 병을 키우게 하려는 거죠?”“조용히 해.”주현정이 나지막하게 나무랐다.“내가 내릴게.”그녀는 엘리베이터 가장 안쪽에 있어서 입구에 있는 손보미와 배건후가 내려야만 나갈 수 있었다.배건후의 눈빛이 어두워지자 손보미는 마지못해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지유야, 조금만 참아. 곧 병원에 도착할 거야.”도아린은 그녀가 달팽이보다 더 느리게 움직이는 것을 보고 성큼 엘리베이터 밖으로 나갔다.손보미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려던 한쪽 다리를 다시 안으로 집어넣고는 웃음을 지었다.‘진작 알아서 물러서야지, 눈치 없기는.’하지만 그 웃음도 오래가지 못했다.삐삐—엘리베이터는 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