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탁하는 일이라 가게 문 앞에 ‘손보미와 배건후 출입 금지’라는 팻말이 걸려있다는 건 얘기하지 않았다. 우정윤은 할 수 있는 얘기만 골라서 했다.“서대은 씨 디자인계에서 명성이 자자하고 성격도 불같다고 합니다. 마음에 든 사람한테는 공짜로 퍼주기도 하는데 거슬리는 사람한테는 얼마를 줘도 팔지 않는대요.”배건후가 펜을 꽉 쥐었다. 그는 서대은과 아무런 친분이 없었고 서대은도 도아린만 도와줄 뿐 손보미를 괴롭힐 이유가 없었다.도아린은 블랙 카드를 그에게 돌려주었다. 전에 장뇌삼을 사느라 도아린이 전 재산을 거의 다 털었을 것이다. 게다가 그 가게 드레스도 비싸고 메이크업까지 더하면 지출이 꽤 컸다.“도아린 누구 카드 긁었어?”배건후는 우정윤이 가장 대답하기 싫어하는 질문을 했다. 하지만 대답을 피할 수도 없었다. 우정윤이 아무 말이 없자 배건후가 고개를 들었다.배건후의 싸늘한 눈빛에 우정윤은 폴더를 꽉 잡고 화를 당해낼 준비를 했다.“사모님 드레스랑 메이크업 다 공짜로 받으셨어요. 서대은 씨가 선물한 겁니다.”차가운 냉기가 순식간에 커다란 사무실을 휩쓸었다. 사인펜이 뚝 부러졌고 배건후의 손등에 핏줄이 다 튀어나왔다.결혼 3년 동안 도아린은 배건후의 옆에만 있거나 주방에만 있었다. 인맥을 넓히라고 여러 번 설득했었는데도 도아린은 귓등으로 듣기만 했다.‘대체 언제 서대은과 친해진 거야? 그것도 비싼 드레스를 공짜로 받을 정도로?’조금 전 우정윤이 말했던 ‘마음에 든 사람에게는 공짜로 퍼준다는’ 말이 계속 귀에 맴돌았다.‘그렇게 급하게 에이트 맨션에서 나간 게 저런 볼품없는 사람들을 만나려고 그런 거였어?’우정윤은 그가 풍기는 위압감에 숨조차 제대로 쉴 수가 없어 천천히 문 쪽으로 물러났다. 나가려는데 배건후의 어두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지난번에 알아보라고 했던 일 어떻게 됐어?”우정윤이 발걸음을 멈췄다.‘깜빡할 뻔했네.’그는 다시 돌아서서 조사 상황을 솔직하게 말했다.“손보미 씨가 귀국한 그날에 뒤에서 오던 버스가 피하려다가 배수구에
배건후는 오늘따라 일 처리 효율이 별로 높지 않았다. 도아린이 밖에서 아무나 만나고 다닌다는 생각만 하면 가슴이 답답하고 화가 났다.우정윤은 그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지만 프로젝트가 곧 빼앗길 위기에 놓여 보고를 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대표님, 유럽 그 프로젝트 말이에요. 어떤 사람이 우리보다 3% 높은 가격을 제시했대요.”배건후의 집안과 명성이라면 10% 높은 가격을 불러도 그쪽에서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망설인다는 건 그분이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사람이라는 걸 뜻했다. 하여 가격을 많이 부르지도 않았고 딱 3%만 올렸다. 대놓고 배건후와 맞서겠다는 뜻이었다.배건후가 주먹을 불끈 쥐었고 검은 두 눈에 냉기가 가득했다.지난번에 급히 귀국하는 바람에 상대에게 기회를 주고 말았다. 그렇지 않으면 진작 계약했을 텐데!“그 사람 누군지 알아봐.”“알겠습니다.”...주현정은 계속 기다렸지만 배건후는 사진을 보내지 않았다.‘얘는 일 말고는 다른 걸 잘하는 게 없어. 와이프 달래는 것도 제대로 못 하고.’그녀는 유전자검사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 들었다.‘진짜 내가 낳은 아들 맞아? 왜 자기 아버지처럼 로맨틱한 면이라곤 하나도 없어?’“아린아, 집이야?”결국 도아린에게 전화를 걸었다.“저... 지금...”도아린이 하던 일을 멈추고 물었다.“어머님, 어디 안 좋으세요?”“그게 아니라 에이트 맨션에 가본 지 오래돼서 너희들 보러 가려고.”“지금요?”“응. 민정 아줌마랑 같이 갈 생각이야.”도아린은 전화를 끊자마자 가방을 챙기고 집으로 달려갔다. 가는 길에 배건후에게도 문자를 보냈다.[어머님 에이트 맨션에 오신대요. 아무래도 검사하러 오시는 것 같아요.]주현정이 출발하자마자 배지유가 병원에 도착했다. 간호사에게서 아들 집에 가서 밥을 먹고 온다는 소리를 듣고 배지유는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다.도아린이 루비 목걸이가 사라진 걸 발견한다면 그녀의 욕을 얼마나 할지 안 봐도 비디오였다.‘안 돼. 막아야 해!’배지유는 BMW R59를
그렇게 천천히 조건 반사가 됐는지 뭐만 먹으면 토하는 버릇이 생겼다.어느 하루 배건후가 집에 왔는데 밥을 먹자마자 도아린은 화장실로 달려가서 토해버렸다. 심하게 토할 땐 가끔 저도 모르게 소변이 나올 때도 있었다.배건후는 화장실 문 앞에 서서 싸늘하게 지켜보면서 그녀에게 동정심을 얻기 위해 꾀병을 부리는 거라고 했었다...유민정은 도아린이 꿈쩍도 하질 않자 웃으면서 설명했다.“사모님, 이건 몸에 좋은 한약이에요.”‘언제는 뭐 몸에 좋지 않다고 했나요? 그럼 차라리 아들한테 먹일 것이지. 약 먹고 몸은 뜨겁게 달아오르는데 독수공방하는 기분이 어떤지 아무도 모를 거라고요!’“어머님.”도아린이 손을 무릎 위에 놓고 주먹을 쥐었다.“이 약 더는 먹지 않겠어요. 저랑 건후 씨 지금...”“아이 가질 준비하고 있어요.”배건후의 굵은 목소리가 갑자기 들려오자 도아린이 고개를 들었다. 그와 눈이 마주친 순간 경고의 빛이 스쳤다. 그는 4천억 원을 주고 어머니의 기쁨을 샀다.도아린은 그가 손보미와 뜨거운 시간을 보내면서 다리를 다치게 했다는 생각만 하면 속이 다 울렁거렸다.웩.주현정이 도아린의 손을 잡고 놀랍고도 기쁜 얼굴로 물었다.“아린아, 벌써 생긴 건 아니지?”‘생리 금방 끝났는데...’배건후는 차 키를 현관 앞 상자에 넣고 슬리퍼를 갈아신은 후 들어왔다.“의사 선생님이 아이 가질 준비하는 기간에는 약을 먹지 말라고 했어요.”배건후가 커다란 주머니를 들고 도아린의 옆으로 다가왔다.“앞으로는 한약 준비하지 않아도 돼요.”유민정이 주현정의 눈치를 살폈다.“이 한약은 몸에 좋은 거야. 근데 의사 선생님이 먹지 말라고 하면 먹지 말아야지, 뭐.”주현정은 도아린이 임신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기쁨에 아들마저 눈에 거슬리지 않는 것 같았다.“회사 일로 핑계 대지 말고 아린이 옆에 자주 있어 줘. 임산부는 기분이 좋아야 아이한테도 좋아.”주현정이 도아린의 손을 하도 주물러서 아플 지경이었다.그녀는 진짜로 할머니가 되고 싶었다. 손녀든 손자든
“어머님만 좋아하시면 돼요.”도아린은 배추 모양 옥을 유민정에게 준 후 나머지 박스들은 전부 위층으로 가져갔다.“사모님, 이거...”유민정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가짜예요.”도우미도 가짜인 걸 알아봤는데 주현정이 모를 리가 없었다. 주현정이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이 선물 준 사람 육씨 가문을 무시하는 게 틀림없어. 가는 길에 버려. 우리 육씨 가문과 친분도 있는데 망신당하게 해선 안 되지.”그러면서 배건후를 쳐다보았다.“지유 아직 어리니까 어떤 일은 오빠인 네가 잘 가르치도록 해. 아린이가 생각이 깊어서 우리 배씨 가문의 체면을 남겨둔 거야. 만약 다른 사람이 지유가 새언니 물건으로 선물 준 거 알면 우리 집이 망할 수도 있다고.”“...”배건후는 어두운 표정으로 라이터를 돌렸다. 그가 아무 반응이 없자 주현정이 쿠션을 확 던졌다.“가끔은 네가 내 아들이 맞나 의심이 들어!”배건후는 쿠션을 잡고 소파에 내려놓았다.“지유 말이에요...”‘됐어. 목걸이는 나중에 얘기하자.’“걔가 철이 없다고 너도 없을 셈이야?”주현정이 호통쳤다.“레스토랑까지 예약해서 밥 먹으러 가라고 했더니 귓등으로 들어? 마음 같아선 널 정말 호적에서 파버리고 싶어.”배건후는 도아린의 ‘남자들’만 생각하면 표정이 싸늘해졌다....도아린은 나영옥의 친구들이 준 선물과 비취 팔찌만 따로 골라냈고 나머지는 다용도실에 넣었다.그녀가 금고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열었다. 그런데 맨 위에 두었던 벨벳 케이스가 사라졌다. 도아린은 자신을 비웃었다.비취 팔찌마저 배지유에게 줬는데 루비 목걸이를 남에게 준 것도 딱히 놀랍진 않았다.그녀는 드레스룸으로 들어가 옷장에서 숄을 찾았다.갑자기 바람이 불고 온도가 급격히 떨어져 주현정이 추울까 걱정되었다. 그런데 돌아선 순간 배건후의 품에 부딪히고 말았다.도아린은 재빨리 뒷걸음질 쳤다.“비켜요.”배건후는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금고를 열어보았으니 루비 목걸이가 사라졌다는 걸 분명 알았을 것이다. 이 일은 그녀에게 직접 말하
도아린은 자신이 잘못 들은 건 아닌지 의심마저 들었다.‘아니야. 배건후의 머리가 잘못된 거야. 이런 파렴치한 요구를 대체 무슨 낯짝으로 한 거지?’“건후 씨, 손보미 씨는 건후 씨가 아끼는 여자지, 나랑은 상관없는 사람이에요. 그리고 내가 그리 체면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내가 무슨 수로 바다 진주를 구해요?”도아린이 가려는데 배건후가 어깨를 꽉 잡았다. 그러고는 벽 쪽으로 확 밀어붙였다.배건후의 눈빛이 날카로워졌고 안색도 어두워졌다.“체면이 없다고? 체면이 없다면 서대은 씨가 왜 귀한 드레스까지 공짜로 줬겠어?”그의 분노가 극에 달해 도아린의 어깨를 꽉 잡고 말았다. 도아린이 어깨가 아픈 나머지 발버둥 치자 숄이 바닥에 떨어졌다.두 사람은 서로의 눈을 빤히 쳐다보았다. 배건후는 그녀의 대답을 듣기 전에는 절대 포기하지 않을 기세였다. 도아린이 점점 대놓고 비웃었다.“내 남편이 내연녀한테 드레스를 사주면서 연회에서 가장 예쁜 사람으로 만들어주겠다고 한 걸 서대은이 듣고 보다 못해 드레스를 협찬해줬어요.”배건후가 잔뜩 찌푸린 얼굴로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네가 내 돈 쓰지 않겠다고 했잖아.”‘내가 안 쓰겠다고 해서 내연녀한테 마구 써? 이건 무슨 이상한 논리야?’도아린이 그의 손을 뿌리쳤다.“내가 무슨 방식으로 드레스를 얻었든 건후 씨랑은 상관없는 일이에요.”배건후의 두 눈에 분노가 이글이글 타올랐다. 도아린은 한시라도 빨리 그와 멀리하고 싶었다.배건후는 그녀의 아래턱을 잡고 허리를 숙였다.“건후야, 아린아.”주현정의 목소리가 계단에서 들려왔다. 배건후와 도아린의 코끝이 서로 맞닿아 있어 뜨거운 숨결이 고스란히 전해졌다.발걸음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자 도아린은 배건후를 밀어내고 숄을 주웠다.“어머님... 오늘 날씨가 춥다고 해서 숄을 챙겼어요.”도아린은 숄을 주현정에게 걸쳐주었다.“의사 선생님이 감기 걸리지 않게 조심하라고 했잖아요.”“역시 내 걱정하는 건 며느리밖에 없어. 아들은 날 화병 나게 하려고 태어난 것 같아.”주
배지유가 신호등이 빨간불로 바뀌기 전 빨리 달리려다가 그만 탱크차 뒷부분과 부딪치고 말았다.BMW R59가 옆으로 돌면서 앞쪽이 탱크차 뒷부분과 부딪쳤다. 에어백이 순식간에 터졌고 배지유는 한쪽 갈비뼈 골절에 발목 인대가 늘어났다.배건후 일행이 병원으로 도착해보니 배지유가 침대에 누워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당신이 의사야? 살살해 좀. 아프다고!”“지유야.”배지유는 주현정을 보자마자 발버둥 치며 일어나려다가 고통이 밀려와 다시 누웠다.병원으로 오는 길 내내 주현정은 딸 걱정에 한시도 마음을 놓지 못했고 도아린의 손을 하도 꽉 잡아서 퍼렇게 되었다. 다행히 큰 문제가 없는 걸 확인하고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무서워하지 마. 오빠가 병원 다른 데로 옮겨줄게. 엄마가 입원한 병원으로 가자.”“오빠, 너무 아파요...”함께 온 도아린을 본 배지유의 얼굴에 두려움이 스쳤고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도아린 씨, 여긴 왜 왔어요? 내 꼴이 어떻나 비웃으려고 왔어요?”그러자 주현정이 호통쳤다.“지유야, 예의 없게 굴지 마.”“엄마.”배지유가 엉엉 울기 시작했다.“쟤가 얼마나 많은 사람 앞에서 날 때렸는지 알아요? 창피해서 이젠 연회 같은 데 갈 수가 없어요. 도아린 씨! 보기 싫으니까 당장 나가요!”주현정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도아린이 배지유를 괴롭힐 리가 없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배지유의 기분이 좋지 않은 데다가 다치기까지 해서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주현정이 입을 열기 전에 도아린이 먼저 말했다.“밖에서 기다릴게요.”“병원 옮기는 절차 처리하고 올게요.”배건후도 따라 나갔다. 키가 크고 다리가 길어서 두세 걸음 만에 바로 도아린을 따라잡았다.“지유 다쳐서 상태가 불안정해서 그래.”“때린 건 사실이잖아요.”도아린이 피식 웃었다.“날 미워하는 것도 정상이죠.”배건후가 엘리베이터를 눌렀다. 도아린은 그와 함께 있고 싶지 않아 이렇게 말했다.“절차는 1층에서 하면 돼요. 난 지현이 보러 갈게요.”도아린은 에
“지현이한테는 누나 하나밖에 없어요.”도아린이 싸늘하게 잘라버렸다. 순간 말문이 막힌 도정국의 눈빛이 사나워졌다.“내 양아들이 지현이 형이 아니면 뭔데?”“지현이를 위해 아무것도 한 게 없으면서 무슨 자격으로 형이에요?”“네가 유준이한테 투자했더라면 쟤가 돈 벌어서 지현이 챙겨주지 않았겠어?”도아린은 조롱 섞인 눈빛으로 도정국을 쳐다보았다.“아버지는 많이 벌어도 지현이 병원비 일전 한 푼 낸 적이 없잖아요.”“...”도정국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병원에서 싸워봤자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숨을 길게 내뱉고는 화제를 돌렸다.“네 시어머니 또 입원했다며? 이번 약 효과 없는 거 아니야? 내가 사람 찾아서 다시 바꿔 달라고 할게.”도아린은 병실 안의 환자 감시 모니터를 보면서 말했다.“그럴 필요 없어요. 배씨 가문의 인맥이 아버지보다 넓은데 당연히 아는 사람이 더 많죠.”“인맥이 아무리 넓어도 그건 그 집 거지. 우리가 보여줘야 하는 성의는 보여줘야 하는 거야.”도정국은 도아린이 자신을 경계하는 것에 대해 불만이 많았다.“매장 있잖아, 얼른 해결해. 유준이 데리고 먼저 갈게.”그가 가자마자 도아린은 배건후에게 전화를 걸었다.뚜... 뚜...‘빨리 받아요.’도아린이 다급한 나머지 발을 동동 굴렀다. 드디어 휴대전화 너머로 배건후의 굵은 중저음이 들려왔다.“말해.”“우리 아버지 방금 내려갔어요. 혹시 만나면 해외에서 의사 찾았으니까 지현이 깨어날 가능성 있다고 해요.”배건후는 아무 말이 없었다. 도아린이 멀리서 내다보니 엘리베이터가 어느덧 1층에 도착했다.“내가 건후 씨 어머니 앞에서 연기하니까 건후 씨도 우리 아버지 앞에서 연기해요. 그래야 공평하죠.”“근데 넌 4천억이 있잖아.”도아린이 휴대전화를 꽉 쥐고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았다.‘내가 손보미를 돕지 않겠다고 해서 지금 이러는 거야? 그러는 거라면...’“건후 씨, 나한테...”“집으로 들어와서 지내.”도아린이 화들짝 놀랐다. 배건후가 이런 조건을
도아린은 갑자기 마음이 움찔했고 불길한 예감이 물밀 듯이 밀려왔다.‘아버지랑 도유준이 바로 뒤에 있는데 건후 씨가 까발리기라도 하면...’“누나!”도유준이 그녀를 불렀다.“아빠 엠파이어 빌딩 매장 때문에 매일 잠도 제대로 못 주무셔. 오늘 매형 앞에서 아빠한테 확답을 주는 건 어때?”도정국은 친구들 앞에서 곧 지사를 관리할 거라고 말했었다. 그런데 계속 잠잠하자 친구들이 그의 말을 의심하기 시작했다.도유준도 사적으로 배건후를 찾아간 적이 있었다. 그런데 모건 그룹은 물론이고 에이트 맨션도 들어갈 수 없었다. 오늘 겨우 배건후를 만났기에 확답을 듣고 싶었다.“그래. 내 친구들은 내가 허세를 부린 줄 알아.”도정국이 말했다.“계속 안 주면 아버지 얼굴 들고 다니지 못해.”“누나, 내가 큰일을 해낼 능력은 없어도 인테리어 일꾼들을 감시할 능력 정도는 있어.”“유준이한테 창업할 기회를 못 주겠으면 이번 인테리어 얘한테 맡겨. 단련도 하고 좋잖아.”두 사람은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도아린에게 매장을 내놓으라고 강요했다.‘근데 문제는 나한테 없는데?’도아린이 배건후를 쳐다보았다. 그의 두 눈이 하도 어두워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당최 알 수가 없었다. 조금 전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몰라 함부로 대답할 수 없었던 도아린이 배건후의 팔을 꼬집었다.“아버지한테 뭐라 했어요?”배건후는 그녀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알아맞혀 봐.”‘알아맞히긴 개뿔.’그녀가 아무 말이 없자 도유준이 그녀 앞으로 다가갔다.“누나, 그동안 나 열심히 공부했어. 이번에는 진짜 실망하게 하지 않을게.”“그래.”도정국이 계속 말했다.“내가 지켜보고 있으니까 넌 걱정하지 마.”도아린은 배건후의 뜻을 알아차린 것 같았다.조금 전의 거래는 도지현의 병에 관한 것이었고 조건은 도아린이 에이트 맨션에서 지내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화제는 매장이었다. 계속 배건후의 도움을 받으려면 더 큰 대가를 치러야 했다.역시 사업가는 달랐다. 무슨 일이든 다 거래가 가능했다.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