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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도아린은 나형욱을 만나러 가던 길에 유명한 인삼 가게에서 고급 인삼을 들여왔다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소유정은 전에 그녀에게 소유정의 능력을 알아준 송민혁이 야생 산삼을 무척이나 좋아한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이번에 소유정이 송민혁이 연출한 작품의 OST를 따냈기에 선물하고 싶었다.

도아린이 후방 주차를 하려고 절반 정도 후진한 그때 뒤에 있던 빨간색 람보르기니가 먼저 주차했다. 여성 운전자는 차를 삐뚤게 세운 후 그냥 가버렸다.

결국 도아린은 하는 수 없이 차를 좀 먼 곳에 세운 다음 걸어갔다. 그런데 아까 그 여성 운전자도 그 가게에 있었다.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점원이 열정적으로 맞이했다.

“방금 들여온 백 년 된 야생 산삼 보여주세요.”

“죄송한데 이미 팔렸어요. 장뇌삼도 괜찮은 게 있어요.”

도아린이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요. 됐어요, 그럼.”

그녀가 돌아서려는데 뒤에서 누군가 그녀를 불렀다.

“도아린 씨죠?”

여성 운전자가 다가왔다.

“아린 씨가 운전한 그 카이엔 사실 손보미한테 선물하려던 거였어요. 차 번호도 손보미의 행운 숫자거든요. 그래서 알아요.”

“...”

도아린은 그녀가 누구인지 알아봤다.

점원은 야생 산삼을 포장한 후 종이와 펜을 건넸다.

“수취인의 성함과 연락처 적어주세요. 나중에 배 대표님한테 확인해야 하니까요.”

도아린은 휴대전화를 꽉 쥐었다. 연성에서 야생 산삼을 살 수 있는 배 대표라면 생각하지 않아도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여성 운전자는 팔짱을 끼고 오만한 태도로 도아린을 쳐다보았다.

“청호상 후보에 오른 손보미 알죠? 배 대표님이 손보미를 위해 주문한 거예요. 연예인의 정보는 함부로 누설해서는 안 되니까 제 이름 적을게요. 전 손보미의 매니저 김지민입니다.”

도아린의 얼굴에는 놀란 기색도, 분노한 기색도 없었고 차분하면서도 덤덤하기만 했다. 하지만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진 것처럼 아팠다.

손보미는 이마가 살짝 긁혔을 뿐인데 배건후는 몸조리하도록 백 년 된 야생 산삼까지 사주었다. 역시 좋아하는 여자는 달랐다.

도아린이 아무런 반응이 없자 김지민은 계속하여 도발했다.

“아린 씨 참하고 점잖아 보이는 것과 달리 남의 것을 빼앗길 좋아하네요. 사람을 빼앗아봤자 마음을 얻지 못했는데 재미있어요? 충고하는데 아직 젊었을 때 자신한테 어울리는 남자를 만나요. 나중에 씁쓸하게 맨몸으로 쫓겨나지나 말고.”

“손보미 씨가 말하던가요?”

도아린이 턱을 살짝 들어 올렸다.

“끼리끼리 어울린다더니 내연녀가 되고 싶은 것도 모자라 개까지 풀어서 조강지처 앞에서 짖게 할 줄은 몰랐어요.”

도아린이 진지해지면 저도 모르게 도도하면서 오만해졌다. 김지민은 그녀 앞에서 명함도 못 내밀 정도였다.

“배 대표님을 먼저 만난 건 보미라고요.”

김지민은 내키지 않았다.

“두 사람이 헤어진 틈을 타서 아린 씨가 끼어들었으니까 내연녀는 아린 씨죠.”

“김지민 씨 아직 솔로예요?”

도아린이 옆머리를 쓸어넘겼다.

“어린이집에서 남편감을 찾아봐요. 아니다, 그냥 산부인과 가는 게 좋겠어요. 내연녀를 엄청 싫어하니까 내연녀가 될 확률이 더 높거든요.”

김지민은 말문이 막힌 나머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도아린이 코웃음을 치면서 느긋하게 말했다.

“야생 산삼을 가져갈 수는 있지만 점원한테 절반 나눠달라고 해요. 우리 남편의 돈으로 산 거니까 아내인 나한테 절반의 소유권이 있거든요. 만약 강제적으로 가져간다면 오늘 저녁에 혼인신고서를 SNS에 올려서 손보미 씨가 내연녀라는 걸 다 까발릴 겁니다.”

“...”

김지민이 들은 바에 따르면 도아린은 온순하고 연약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런데 오늘 보니 전혀 아니었고 절대 만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도아린에게 굴욕을 줘서 스스로 물러나게 할 생각이었지만 되레 김지민이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점원은 전화를 끊은 후 빠른 걸음으로 도아린 앞으로 다가왔다.

“죄송합니다, 사모님. 대표님께서 바로 오신다니까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오늘 일은 그야말로 반전에 반전을 거듭했다.

비서가 전화를 스피커폰으로 받았는데 배건후의 목소리가 들리자 점원은 부들부들 떨기까지 했다.

도아린은 쓰레기만도 못한 남편이 와서 내연녀의 편을 드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았지만 김지민과 점원이 가로막은 바람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배건후는 바로 근처에 있었는지 눈 깜짝할 사이에 문밖에 나타났다.

190cm 가까이 되는 남자는 맞춤 제작한 수제 양복을 입고 있었다. 긴 다리를 뻗으며 들어온 순간 등 뒤에 10m 되는 커다란 날개라도 단 듯 엄청난 위압감이 밀려왔다.

완벽한 몸매와 멋진 카리스마에 반하지 않을 여자가 없었다.

도아린은 잠깐 넋을 놓았다가 이내 다시 이성을 찾았다. 훤칠한 키의 배건후가 그녀 앞에 멈춰 섰다.

“장난 그만하고 일단 집에 가자.”

“귀먹었어요? 그럼 한 번 더 얘기할게요.”

도아린이 고개를 들고 그를 쳐다보았다.

“난 에이트 맨션에서 나왔고 앞으로 다시는 들어가지 않을 겁니다.”

도아린이 문 앞으로 걸어갔는데 따라오던 비서가 막아섰다.

“대표님께서는 사모님을 찾으러 오신 겁니다.”

‘날 집에 데려가서 계속 가정주부나 하게 하려고?’

비서 우정윤은 그녀와 배건후의 관계를 알고 있었다. 배건후 대신 도아린의 전화를 받고 거짓말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실장님은 정말 충성이 지극한 개네요. 건후 씨 대신 남을 무는 건 물론이고 꼬리까지 흔들잖아요.”

“도아린.”

배건후의 말투가 확 무거워졌다.

“계속 억지를 부려봤자 너한테 좋을 게 없어. 집으로 들어와. 파리 패션 위크에서 마음에 드는 거 있으면 다 사.”

옷, 가방, 액세서리 등 사고 싶은 건 다 사도 되었다. 도아린은 이렇게 매번 선물로 위로를 받고 무마하곤 했다.

왜냐하면 배건후가 그녀에게 돈을 아낌없이 쓴다는 건 마음속에 그녀가 있긴 하지만 낭만과 다정함이 뭔지 몰라서 그러는 것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손보미가 귀국한 후로 배건후는 그녀에게 보여준 적이 없었던 관심과 다정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도아린은 팔짱을 끼고 마음을 진정하고는 비웃는 말투로 말했다.

“돈 아껴서 손보미 씨 홍보나 많이 해줘요. 그 정도 연기력에 청호상 후보에 오른 거 보면 적어도 수십억은 들이부었을 텐데. 우리 아직 이혼 안 했으니까 건후 씨 재산 절반이 내 것이긴 하지만 이미 쓴 거 달라고 하진 않을게요. 두 사람 결혼 축의금이라고 생각해요.”

김지민은 드디어 반격할 틈을 찾았다.

“도아린 씨, 보미는 실력으로 후보에 올랐어요. 보미가 배 대표님을 존경하는 건 사실이지만 절대 남의 가정을 깨는 행동을 한 적이 없어요. 고작 별거 아닌 야생 산삼 때문에 두 사람의 관계를 오해해선 안 되죠.”

‘별거 아니라고? 이 야생 산삼이 적어도 수십억 원은 하는데 대체 어떤 사람이 수십억 원이 별거 아니라고 할까?’

“별거 아니라면...”

도아린이 환하게 웃었다.

“그럼 야생 산삼은 내가 가져갈게요. 보미 씨한테는 선물 다른 거로 줘요.”

쉽게 구할 수 없는 야생 산삼이라면 소유정의 체면을 제대로 살려줄 것이다.

배건후가 준 블랙 카드를 긁으려 했지만 그가 이미 돈을 냈으니 그럴 필요도 없었다. 그가 손보미에게 무엇을 선물하든 도아린의 눈에만 띄지 않으면 되었다.

도아린이 점원을 향해 손을 흔드는데 배건후가 손목을 덥석 잡았다.

“너 산삼 안 먹잖아. 우 비서, 바로 티켓 끊어. 파리 가서 사고 싶은 거 다 사.”

도아린의 마음은 이미 쿡쿡 찔려 만신창이가 되었고 손가락마저 부들부들 떨었다.

독수공방 3년 동안 수많은 무시와 냉대를 당했었다. 귀국하자마자 사랑을 듬뿍 받은 손보미에 비하면...

도아린은 배건후의 뜻을 잘 알고 있었다. 뭐든지 다 사줄 수 있지만 손보미가 이미 고른 물건은 안 된다는 뜻이었다.

그녀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배건후에게 들키기 싫어 점원을 보며 말했다.

“장뇌삼 포장해 주세요.”

배건후는 도아린이 타협을 택하고서야 손목을 풀어주고는 덤덤하게 말했다.

“내 차 타. 우 비서더러 짐 가져오라고 할게.”

“남성분한테 드리는 거니까 파란 포장지로 포장해 주세요.”

도아린은 그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았다.

“매듭은 하트 매듭으로 묶어주시고요.”

배건후의 누그러들었던 표정이 다시 찌푸려졌다.

“나 주면 돼요. 포장할 필요 없어요.”

도아린이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건후 씨한테 주는 거 아니고 건후 씨 다음에 만날 남자한테 주는 거예요.”

“...”

배건후의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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