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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Author: 온유
도아린은 밤새 푹 자고 이튿날 맑은 정신으로 나형욱을 만나러 갔다.

소유정이 가는 녹음실이 그녀의 목적지와 한 건물이라 두 사람은 도착한 후 A 구역과 D 구역으로 흩어졌다.

“안녕하세요. 실례지만 엘리베이터 눌러주실래요? 7층 가려고요.”

“네...”

프런트 직원은 절반 정도 가다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신작 오디션은 D 구역입니다.”

요 며칠 손보미가 맡았던 역할의 오디션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많이 왔는데 이쪽으로 잘못 찾아오는 사람이 꽤 있었다.

프런트 직원은 도아린을 보자마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오늘 이분은 지금까지 본 사람들 중에서 가장 괜찮은 것 같아. 분위기도 좋고 메이크업을 살짝만 해도 성형한 사람들보다 훨씬 낫겠어.’

도아린이 덤덤하게 웃어 보였다.

“전 LH 스튜디오로 가려고요.”

프런트 직원은 그녀를 엘리베이터에 태운 후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보면서 어리둥절해 했다.

‘LH 스튜디오는 옷을 수선하는 곳인데... 대부분 몸가짐에 신경을 쓰지 않는 중년이 많고. 근데 방금 그 여자는 젊고 또 예뻐. 그렇다면 무조건...’

“천장에 뭐가 있어요?”

한 잘생긴 남자가 그녀 뒤에서 웃으면서 농담을 건넸다.

“샹들리에에 붙어있는 크리스털을 떼려고요?”

빌딩의 대표 성대호가 밖에서 들어왔다. 성대호는 유머러스하고 시원시원한 사람이라 직원들이 많이 따랐다.

“대표님이 샹들리에를 스와로브스키로 바꾸면 그때 뗄게요.”

“잊지 않게 노트에 적어야겠어요...”

성대호는 농담으로 어린 여자의 기분을 맞춰주었다. 뒤에서 구두 소리가 들려오자 그는 바로 대표의 카리스마를 뽐냈다.

“나형욱 씨한테 전화해서 귀한 손님이 온다고 알려줘요.”

“나형욱 씨 귀한 손님은 이미 올라갔어요.”

“올라갔다고요?”

성대호가 화들짝 놀랐다.

“어떻게 생겼어요?”

“엄청 예쁘고 분위기 있고 또 교양도 있는 여자였어요.”

성대호의 두 눈에 교활함이 스쳤다. 돌아선 순간 배건후의 싸늘한 얼굴을 보고는 새어 나오는 미소를 참으며 휴대전화를 꺼냈다.

“내가 말할게요.”

전화가 단번에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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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아린이 미세하게 미간을 찌푸린 채 작은 상자 안을 내려다보았다.벨벳 상자 안에는 결혼반지가 아닌 다이아몬드 커프스단추가 들어 있었다. 그것은 현무의 신분을 나타내는 상징이었다.‘현무의 직위를 포기하고 라윤주 자리에 대한 경쟁도 그만두겠다는 건가?’서빙 직원이 음식을 가져오자 강재민은 도아린이 좋아하는 음식을 그녀 앞에 놓았다.권력을 내려놓은 남자는 조금도 아쉬움이 없었고 오히려 한결 가벼워진 느낌이었다.식사가 끝나자 강재민은 시계를 한 번 확인한 뒤, 미안한 듯 말했다.“이따 데려다 줄 수 없을 것 같아요. 바로 공항으로 가야 되거든요.”그는 일어나며 손을 내밀었다.“인연이 닿으면 그때 다시 만나요.”도아린이 일어나서 그의 손을 잡았다.“강재민 씨도 잘 지내요.”강재민은 손을 꽉 쥔 뒤 미소를 지으며 손을 뗐다.도아린을 따라나서던 일북은 한 번 뒤를 돌아봤다. 강재민은 와인잔을 한 모금에 비우고 창밖을 보며 도아린에게 더 이상 눈길을 주지 않았다.차로 돌아오자 일북이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아가씨. 배 위에서 있었던 일 때문에... 헤어지자고 하는 그런 사람을 위해 슬퍼할 필요 없어요. 어떻게 아가씨를 믿지 않을 수 있죠?”도아린이 고개를 숙인 채, 그 다이아몬드 단추를 바라보았다.그 위로 눈물이 떨어지며 다이아몬드의 날카로운 모서리가 빛났다.“재민 씨는 나를 믿지 않았던 게 아니야.”“그렇다면 왜... 결국 이별을 말한 건 그 일 때문 아닌가요?”일북은 두 사람의 대화를 모두 듣고 있었다.강재민은 도아린과 육하경이 몇 날 며칠 같이 배에 있으면서 그들 사이에 무언가가 있었다는 걸 확신했다.일북의 눈에 강재민은 도아린이 어쩔 수 없이 그런 선택을 한 거라는 걸 이해한다고 하면서도 결국은 받아들이지 못해 헤어지는 사람으로 비치고 있었다.도아린이 눈물을 닦으며 단추를 가방에 넣었다.“만약 재민 씨가 정말 그런 걸 중요하게 생각했다면, 내가 건후 씨와 결혼한 뒤에도 건후 씨한테 시비를 걸지 않았을 거야. 그리고 우리가 이혼

  • 또 한 번의 거절   제874화

    도아린은 급히 시선을 돌린 채 음료를 한 모금 마셨다.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도망치고 싶었다.‘만약 재민 씨가 정말로 청혼을 하는 거라면 어떻게 거절해야 할까?’‘결혼에 대한 희망을 잃었어요. 당분간은 결혼하고 싶지 않아요.’‘아시다시피 재민 씨 가족과는 어색해 앞으로도 계속 갈등이 생길 것 같아요.’‘어떤 게 좋을까?’“저것 봐봐!”레스토랑에 들어온 한 커플이 공중의 드론을 보고 놀라며 소리를 질렀다. 여자는 흥분해서 남자 친구의 소매를 당기며 말했다.“너무 예쁘다! 자기도 나한테 청혼할 때 이렇게 해주면 안 돼?”“나한테 시집오기만 하면 내가 하늘의 별이라도 따올 수 있어!”“그럼 가서 별이라도 따와!”두 사람은 웃으며 창문 쪽으로 걸어갔다.강재민이 장난기 어린 눈빛으로 물었다.“하고 싶은 말 없어요?”도아린은 음료컵을 꽉 쥔 채 입을 열었다.“재민 씨. 우리는 아무래도...”그녀는 강재민과 진지하게 시작해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두 사람에게 일어난 일들은 그들이 함께할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알게 해주었다.강재민이 다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의 유리처럼 맑은 눈동자가 불빛에 비쳐 반짝였지만 얼굴에는 알 수 없는 쓸쓸함이 스쳤다.“더 이상 안 보면 끝날 텐데요.”“...”“도저히 볼 자신이 없어요?”도아린은 다시 음료를 한 모금 마시고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거절을 하더라도 강재민이 준비한 이벤트를 보고 싶었다. 하지만 공중에 떠 있는 글자를 보고 눈물이 스쳤다.‘행복해야 해.’도아린은 코가 찡해져 눈을 크게 뜬 채 눈물이 흐르지 않도록 애썼다.드론들이 밤하늘에서 귀여운 파란색 애벌레 모양을 만들더니 천천히 나비로 변하며 쇼는 막을 내렸다.강재민이 도아린에게 와인잔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애벌레에서 이제는 멋진 나비로 변한 걸 축하해요.”도아린은 또다시 심장이 두근거렸다. 강재민이 자신에게 청혼하려는 줄 알았는데 결국 그것은 단지 축복이었다.그 축복은 그녀를 묘하게 울컥하게 했다.“재민 씨, 미안해요

  • 또 한 번의 거절   제873화

    앞에 신호등이 빨간불로 바뀌자 강재민은 서서히 속도를 줄이며 차를 멈췄다.그는 옆에 앉은 도아린을 곁눈질로 바라보았고 그의 눈빛에는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서려 있었다.도아린은 그 시선이 느껴졌지만 고개를 들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재민 씨에게 라윤주의 자리를 차지하라고 한 건 육청아 본인의 계획을 위해서였겠죠. 재민 씨가 보스가 되면 그 여자는 재민 씨 다음으로 권력이 있는 사람이니까, 조직을 육하경에게 넘겨줄 수 있고, 문제가 생기면 재민 씨를 희생양으로 쓸 수도 있을 테니까요.”강재민은 잠시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육청아의 속셈은 그렇게 잘 꿰뚫어 봤으면서 내 마음은 못 읽어요?”도아린은 그제야 고개를 들어 그의 눈을 마주쳤다.그 순간,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었고 강재민은 시선을 돌려 다시 차를 운전했다.도아린은 미처 그의 눈동자에 스친 쓸쓸함을 보지 못했다.집에 도착한 도아린은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뒤, 아래층으로 향했다.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게임을 하고 있던 강재민은 그녀의 발소리가 들리자 고개도 돌리지 않고 휴대폰에 대고 말했다.“그만할게, 여자 친구랑 나가야 돼.”“젠장! 팀 킬하고 도망가냐...”상대가 욕을 다 끝내기도 전에, 그는 게임을 끄고 웃으며 일어났다.“가요!”“어디를요?”“밥 먹으러.”그는 옷걸이에 걸려 있던 외투를 도아린에게 건네고 다정하게 그녀의 옷깃을 정리해 주었다. 그 손길은 평소와 다르게 어딘가 진중했다.그들이 밖으로 나가려던 찰나, 일북이 돌아왔다.그는 경계심 가득한 눈빛으로 강재민을 바라봤고 강재민은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차 키를 그에게 던졌다.도아린이 고개를 끄덕이자 일북은 그제야 차로 향했다.강재민의 안내로 도착한 곳은 도심의 고급 호텔이었다.그는 미리 예약한 창가의 테이블에 다가가 신사적으로 도아린의 의자를 빼주고, 일북을 돌아보았다.“먹고 싶은 걸 골라요. 계산은 내가 할게요.”일북이는 바로 뒤쪽 테이블에 앉은 채 두 사람한테서 시선을 떼

  • 또 한 번의 거절   제872화

    강재민이 어느새 다가와 말을 걸었다.그는 배건후의 경계 어린 시선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도아린의 옆으로 다가갔다.“마침 근처에 있다가 폭발 소리를 듣고 열혈 시민으로서 의무를 다할 생각에 달려왔는데 아린 씨가 여기 있는 줄은 몰랐네요. 우리 참 인연이 깊은 거 아니에요?”도아린은 그를 흘깃 쳐다봤다. 그 말을 믿겠냐는 눈치였다.강재민은 개의치 않게 웃으며 도아린의 어깨를 감싸안았다.“형사님, 이제 제 여자 친구 데려가도 되죠?”“...”고민성의 시선이 저도 모르게 배건후를 향했다.‘제발 시끄럽게 주먹질하고 그러지 마.’그는 자신의 경찰서가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는 걸 원치 않았다.특히 경찰서 앞에서 일어난 폭발 사건만으로도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하기 충분했다.“물론이죠!”고민성이 정중하게 말했다.“도아린 씨, 나중에 차량 구매 영수증만 경찰서로 보내주세요.”도아린은 사실 남궁유민의 상황이 궁금했지만 지금은 적절한 시점이 아니었다.“알겠어요.”도아린은 배건후의 간절한 눈빛을 무시하고 여유롭게 강재민의 차에 올라탔다.강재민은 창문을 내리고 도발적인 휘파람을 불며 차를 몰고 떠났다.고민성이 배건후의 옆으로 다가가며 혀를 차며 말했다.“아린 씨가 너를 그렇게 걱정하는 걸 보고 난 또 네가 기회가 있을 줄 알았지. 지금 보니... 에잇!”“차 보상은 경찰서에서 직접 책임져.”배건후가 고민성을 지나쳐 구치소로 걸어갔다.“야, 아까랑 말이 다르잖아!”고민성이 서둘러 그를 따라가며 불평을 늘어놓았다.“우리 경찰서 예산 알잖아! 이 사건도 네가 지원해 줬으니 해결할 수 있었던 거 알면서! 경찰서에 너를 위해 현수막도 걸겠다고 약속했어!”배건후가 걸음을 멈추었다.“그런 건 당연히 나라에서 보상해야 하는 거 아니야?”그는 무표정하게 고민성을 바라보며 말했다.“그리고 난 당신들 계획에 참여하느라 내 아내까지 잃었어. 그것도 보상해 줘야 해.”고민성이 단칼에 거절하려다 그가 경비를 다시 거둬들일까 두려워 결국 대답을 피했다.그리고

  • 또 한 번의 거절   제871화

    “빨리 도망가요!”고민성이 큰 소리로 외치자 도아린은 뒤돌아서서 하얀 카옌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갑자기 차 문에 검은색 코트가 끼어 있는 게 눈에 들어오자 도아린은 멈칫했다.“건후 씨!”도아린은 급히 뛰어 돌아가 차 문을 힘껏 당겼다. 그러나 차 문은 이미 충격에 의해 휘어져 있었고, 밴에서 새어 나오는 검은 연기가 차 안을 가득 채워 내부 상황을 알 수 없었다.펑!차창이 다시 폭발하며 유리가 공중으로 튕겨 나갔고 불길은 삽시간에 마치 차를 삼키려는 듯 거세졌다. 도아린은 본능적으로 머리를 움켜쥐고 쪼그려 앉았다. 유리 조각이 튀었지만 다행히 상처는 입지 않았다.그녀가 다시 일어나 차 문을 잡으려 할 때, 갑자기 누군가가 그녀의 손목을 꽉 붙잡았다.“뛰어!”도아린은 상대방의 손에 이끌려 몇 미터를 달리다가, 뒤에서 또 한 번 폭발음이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뜨거운 열기에 두 사람은 뒤로 튕겨 나갔다.도아린은 본능적으로 두 눈을 꼭 감았다. 그러나 예상한 고통은 찾아오지 않았다. 누군가가 도아린을 꼭 껴안으며 그녀를 모든 충격으로부터 보호하고 있었다. 폭발음과 함께 귀에서는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남자의 손이 그녀의 짧은 머리를 쓸어 넘기며 손끝이 그녀의 얼굴에 닿았다.도아린은 고개를 돌려 배건후의 얼굴을 보았다. 그가 무엇인가 말하고 있었지만 도아린은 그의 말을 들을 수 없었다.“뭐라고요?”도아린이 크게 외쳤다.배건후도 마치 그녀의 말을 듣지 못한 듯, 도아린을 안전한 곳으로 끌고 간 뒤, 그녀의 팔과 다리를 움켜잡았다. 도아린은 그가 방금 자신이 다쳤는지 물어본 것임을 깨달았다.“난 괜찮아요!”도아린이 입을 크게 벌려 대답하며 배건후를 가리켰다.“당신은 괜찮아요?”배건후의 까만 눈동자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 속에는 먼 곳에서 비친 불꽃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상처가 없었지만 연한 색의 터틀넥 스웨터에는 약간의 피가 묻어 있었다. 그 피는 심장 근처에 있었다.도아린이 놀라 급히 그의 가슴을 만지며 갈비뼈

  • 또 한 번의 거절   제870화

    제복을 입었을 때는 늠름했는데 지금은 치마를 입고 가발까지 써서 그런지 고민성은 유독 우아하게 걷는 듯한 느낌이었다.도아린으로 분장한 고민성은 손을 들어 배건후의 얼굴을 쓰다듬으려 했고 두 사람 사이의 눈빛은 아주 끈적했다.“나 엄청 기다렸다니까. 이제 빨리 가자.”배건후는 그의 손을 단숨에 쳐내고 도아린의 손에서 차 키를 가져갔다.도아린은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일부러 골반을 흔들면서 걷는 고민성을 보고 그녀는 어이가 없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경찰이 다가오더니 도아린에게 휴게실에서 기다려 달라고 했다.휴게실에 막 들어서자마자 그녀의 휴대폰이 울렸고 경찰은 차를 따라주겠다며 자리를 비웠다.도아린은 창가 쪽으로 갔다. 그녀는 바깥 상황을 볼 수 있으면서도 공격당하지 않을 만한 위치를 찾아서 전화를 받았다.“말하세요.”“육씨 가문에서 육하경 씨에게 누명을 씌우려 했어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은 육하경 씨가 그들의 약점을 쥐고 있다는 걸 몰랐죠. 육하경 씨는 죽었지만 그 자료가 어디에 있는지는 아무도 몰라요. 그래서 아무도 나서지 못하고 있어요.”강재민의 목소리는 경멸스러움과 조소로 가득했다.“그리고 또 하나 신기한 소식이 있어요. 육청아 씨는 애초에 육씨 가문의 먼 친척이 아니라는 거예요. 육청아 씨는 나영옥 어르신이 며느리로 삼으려고 데려온 사람이었어요. 그렇게 계속 육청아 씨를 통제할 생각이었는데 육청아 씨가 되려 육하경이 육씨 가문을 반격하는 수단으로 되어버린 거죠.”도아린이 미간을 좁혔다.그녀가 있는 곳에서는 유치장 앞 도로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경찰이 남궁유민을 어떻게 체포했는지 알 수 없었다.창문을 열려고 하던 찰나, ‘쿵’ 하는 굉음이 들려왔다.곧이어 유리창에 불길이 일렁이며 비쳤다.“어디예요?”강재민이 다급하게 물었다.도아린은 그의 질문에 대답할 겨를도 없이 전화를 끊고 밖으로 뛰어나갔다.차를 가져다주려던 경찰도 소리를 들었는지 손에 든 종이컵을 꽉 쥐어 구겼고, 뜨거운 물이 손등에 쏟아졌다. 그는 곧장 밖으

  • 또 한 번의 거절   제869화

    “아니야! 그런 게 아니라...”손보미는 세차게 고개를 저었지만 그녀의 눈빛이 흔들리기 시작했다.“성형 수술을 한 남궁유민 변호사님이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과연 완전히 회복할 수 있을까? 설령 얼굴을 또 바꿨다 해도 DNA까지 바꿀 순 없잖아. 경찰이 수색하고 있으니 곧 잡힐 거야!”“아니야, 아니라고!”손보미는 격양된 목소리로 외쳤다.경찰이 감정을 가라앉히라고 호통쳤지만 손보미는 온몸을 떨며 안절부절못했다.“설마 남궁유민 변호사가 내 약점을 잡고 경찰들을 협박하면 경찰이 널 풀어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네 딸 율이 말이야... 살 희망이 있었는데도 남궁유민 변호사가 장기 기증 동의서에 서명해서 죽었어!”“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손보미는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그녀는 도아린을 향해 손을 뻗었지만 경찰이 재빠르게 그녀를 제압했다.“손보미 씨, 진정하세요!”“율이는 무사할 거야! 절대 무사할 거야... 잘 보살필 거라고 나한테 약속했었다니까? 우리 세 명이서 함께할 거라고 약속했단 말이야! 도아린, 거짓말이지? 맞지?”손보미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채 경찰에게 눌려 테이블에 얼굴을 박았다. 볼을 타고 눈물이 쏟아졌다.그녀는 부모의 사랑을 받아본 적 없었다. 어린 시절부터 남의 눈치를 보며 살아야 했다.율이가 자신의 딸이라는 걸 알았을 때, 그녀는 율이를 곁에 두기로 했다.처음엔 율이를 인질로 삼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함께 지내면서 율이의 착하고 속 깊은 모습에 점점 정이 들었다.남궁유민이 미친 듯이 주먹을 휘두를 때, 율이는 따뜻한 물을 받아 그녀더러 목욕을 하라고 했었다. 그럴 때마다 율이는 조심스럽게 연고를 발라 주면서 물었다.“언니를 안 좋아해서 때리는 거예요?”남궁유민이 율이를 떠나보내자고 했을 때, 손보미는 막지 않았다. 그녀는 그가 병약한 딸을 원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이 부녀 사이라는 건 변함없었다.생활이 조금 힘들더라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율이는 보육원에서도 그렇

  • 또 한 번의 거절   제868화

    “사실은 말입니다. 손보미 씨가 이미 세 번이나 신청했거든요. 도아린 씨가 만나고 싶지 않다고 하면 앞으로 다시는 방해하지 않을 거라고 하면서 말이죠.”경찰이 말했다.도아린은 잠시 생각해 보더니 알겠다며 전화를 끊었다.‘온갖 수를 써서 날 찾은 건 분명 그에 따르는 목적이 있을 거야.’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당장 손보미를 만나러 갈 필요는 없었기에 그녀는 회사로 향했다.회사에 도착하자 윤가인이 이름 후보를 몇 개 가져왔다. 도아린은 ‘레브’라는 이름을 선택했다.도아린은 윤가인에게 최대한 빨리 변경 절차를 밟으라고 했다.“그리고 이 프로젝트 말인데요. 배... 배건후 씨가 맡아서 진행했다고 하더군요.”윤가인이 또 다른 서류를 건네면서 말했다.서류를 펼쳐 본 도아린은 비웃음을 흘렸다.신지훈이 정말이지 온 힘을 다해 배건후를 띄워주고 있었다.도아린이 전에 신지훈더러 조사하라고 했던 강재민이 중단시킨 프로젝트의 건축 자재에 대한 서류였다. 아마도 신지훈이 조사하고 나서 공을 세울 기회를 배건후에게 준 것이었다.“배건후 씨가 맡게 놔두세요.”도아린은 거절하지 않았다.하지만 그렇게 쉽게 넘어갈 일은 아니었다. 그에게 다른 어려움이 없다면 그녀라도 장애물을 놓아야 했다.도아린은 퇴근 직전까지 바쁘게 일했다. 그리고 경찰서에 전화를 걸어 급한 일이 생겨 갈 수 없을 것 같다고 전했다.하루 종일 기다린 손보미는 욕설을 퍼붓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다음 날도 그녀는 계속해서 기다렸지만 도아린은 오지 않았다.사흘이 지나자 손보미는 도아린이 자신을 가지고 노는 거라고 확신했다. 애초부터 만날 생각조차 없었던 것이라고 말이다.그때, 경찰이 와서 그녀에게 면회 소식을 알렸다.면회실에 들어선 손보미는 도아린을 보자마자 살기를 뿜어냈다.예전의 화사하고 아름다웠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원래 단정하던 긴 머리는 싹둑 잘라버려서 그런지 오늘따라 건조하고 푸석했다. 감옥에 있는 동안 시술을 받을 수 없어서인지 얼굴은 점점 변형되었고 콧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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