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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Author: 온유
도아린은 홀로 쓸쓸하게 복도에 앉아있다가 응급조치를 마쳤다는 간병인의 말을 듣고서야 정신을 차렸다.

도지현은 다시 한번 저승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왔다. 하지만 의사는 도지현의 각 수치가 한계에 도달했다면서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

도아린은 의사에게 허리 굽혀 인사한 후 병실로 돌아와 남동생의 팔을 어루만졌다.

“이모, 가서 쉬세요. 지현이랑 단둘이 있고 싶어요.”

간병인은 도아린이 자존심이 강해서 남들에게 연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럼 옆에 탕비실에 있을 테니까 무슨 일 있으면 불러요.”

도지현은 무릎 밑으로 두 다리를 절단했고 허벅지 근육도 거의 다 수축해서 다리가 팔보다도 더 가늘었다.

그녀보다 도지현을 더 잘 아는 사람은 없었다. 아픈 몸 때문에 힘들어도 늘 밝았던 동생이었다.

장애인 농구팀에 입단한 후에는 열심히 운동하고 생활을 공유하기도 했다. 절대 시합을 한 게임 졌다고 목숨을 끊을 사람이 아니었다. 하여 그녀는 도지현이 깨어나서 그날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직접 말해주길 바랐다.

두 팔을 다 마사지하고 나니 도아린의 손이 다 떨릴 정도로 저릿했다. 간병인이 와서 도지현의 몸을 닦아주었고 도아린은 옥상으로 가서 소유정의 전화를 받았다.

“널 방해한 건 아니지?”

“아니. 나 지금 병원이야.”

도아린은 젖은 머리가 마르도록 풀어헤쳤다.

“지현이...”

“다시 살려냈어.”

“그래. 의료 기술이 계속 발전하니까 언젠가 깨어날지도 몰라.”

소유정은 그녀를 위로한 후 본론을 얘기했다.

“나형욱 선생님이 또 날 찾아왔어. 네가 지난번에 수선한 자수 드레스가 엄청 마음에 든다면서 선생님 팀으로 들어오래.”

나형욱은 수선 명인이었다. 그와 한 번만 손을 잡아도 몸값이 배로 뛰는 건 문제없었다. 그런 그가 도아린을 직접 스카우트하려 한다는 건 그녀의 실력을 인정한다는 뜻이었다.

도아린의 솜씨도 업계에서는 손꼽히는 정도였다. 배건후와 결혼한 후에는 가정에만 충실하다 보니 그저 손이 굳어지지 않으려고 세컨드 계정으로 일을 조금씩 받곤 했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반드시 열심히 노력해서 돈을 벌어 이혼 후에도 남동생이 똑같은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했다.

“그렇게 할게.”

“뭐?”

소유정이 화들짝 놀랐다. 전에 도아린에게 본격적으로 시작하라고 여러 번이나 타일렀었지만 도아린은 계속 거절했었다.

“주소 보내줘. 한번 다녀올게.”

도아린이 계속하여 말했다.

“내가 자주 쓰는 그 계정은 아무한테도 알려주지 마.”

소유정이 정신을 차리고 물었다.

“너 출근할 수 있어? 남편 챙기지 않아도 돼?”

“이혼하겠다고 했는데 동의 안 하더라고. 근데 언젠가는 할 거야.”

도아린의 말투는 마치 당사자가 아닌 것처럼 차분하기 그지없었다.

“진작 그렇게 했었어야지. 그 인간쓰레기는 널 못살게 굴기만 하고. 넌 그런 사람이 뭐가 좋다고 그렇게 매달렸는지, 참.”

소유정이 분노를 터트렸다.

“둘이 친밀한 관계인 거 보여주는 사진을 찍으면 혼인신고서를 꺼내서 보여줘. 두 연놈 아주 작살나게!”

“사진?”

“그건 중요하지 않아.”

소유정이 교활하게 웃었다.

“하늘은 우리 편이라서 두 연놈 언젠가는 망할 거야. 그럼 지금 나 선생님께 전화할게. 선생님 엄청 기뻐하시겠다.”

도아린은 소유정이 뭔가를 숨기고 있는 것 같아 캐물으려 했지만 소유정이 전화를 끊어버렸다.

머리를 흩날리며 무심결에 고개를 돌렸는데 복도에 익숙한 모습이 스쳤다. 도아린이 재빨리 다가갔지만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내가 잘못 봤나? 그 사람일 리가 없는데.’

...

도아린은 병실에 밤새 있다가 이튿날에 택시를 타고 소유정네 집으로 갔다. 잠이 마구 쏟아지던 그때 전화벨 소리가 그녀를 깨웠다.

“여보세요?”

도아린이 목청을 가다듬고 전화를 받았다.

“사모님...”

도우미가 주눅이 든 목소리로 말했다.

“대표님 아침은...”

밤을 새운 탓에 도아린은 아직 제정신이 아니었다.

“냉장고 두 번째 층에 준비한 거 있으니까 그거 챙겨주면 돼요.”

도우미는 전화를 움켜쥐었다가 이내 또 말했다.

“없는데요? 두 번째 층에는 하루 지난 샐러드밖에 없어요.”

“그럴 리가요. 어제 국수를 말아먹었는데 샐러드라니요?”

도아린이 미간을 어루만졌다.

“그럼 건후 씨한테 뭘 먹겠는지 물어봐서 지금 해줘요.”

도우미의 겁먹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난번에 제가 아침을 준비한 바람에 대표님께서 두 달 치 보너스를 깎았어요. 죄송한데 사모님이 직접 와서 하시면 안 돼요?”

도아린은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말투를 들어보니 배건후가 옆에 있는 게 분명했다.

배건후는 지금도 몸매가 완벽한데도 저지방 음식을 먹겠다고 고집했다. 도아린이 영양이 균형적인 식단을 만들기 위하여 냉장고에 음식을 많이 준비해뒀는데 찾지 못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냉장실에 없으면 냉동실에서 찾아봐요. 그래도 없으면 배달시키고요.”

그러고는 가차 없이 전화를 확 끊어버렸다.

‘손보미는 한밤중에 불러내서는 밥도 안 챙겨준 거야?’

그 시각 도우미는 화가 난 배건후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전화 끊었어요...”

옆에서 다 들은 배건후가 시선을 늘어뜨렸다.

“제가... 해드릴까요?”

배건후는 차가운 얼굴로 잠깐 고민하다가 말했다.

“단호박 몇 분 삶아야 하는지 물어봐요.”

도우미는 어이가 없었다.

단호박을 어느 정도 사이즈로 자르고 몇 분 삶아야 하는지는 배건후가 수차례 트집을 잡은 후에 고정된 기준이 생겼다. 맨날 먹는 그가 모를 리가 있겠는가?

도우미의 월급이 높고 또 평소 일도 많지 않고 한가했기에 이만큼 좋은 일자리가 없었다.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도우미는 하는 수 없이 도아린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는 한참이 지나서야 전화를 받았다.

“사모님, 찾았어요. 근데 안에 소고기랑 옥수수가 있어서 대표님이 어떤 걸 좋아하시는지 몰라 아무렇게나 할 수가 없네요.”

소유정네 집 문 앞까지 도착한 도아린은 어깨로 휴대전화를 받쳐 들고 키를 찾은 다음 문을 열었다.

“3cm 되는 갈비를 육수에 삶고 옥수수는 갈면 돼요.”

도우미의 목소리가 잠깐 있다가 들려왔다.

“육수 어디 있어요?”

“...”

도아린은 숨을 깊게 들이쉬고 말했다.

“건후 씨 바꿔줘요.”

“대표님 러닝하러 나가셨어요...”

“그럼 들어오면 다시 전화해요.”

잠깐 조용해졌다가 다시 소리가 들렸을 땐 배건후의 낮게 깔린 목소리였다.

“무슨 일이야?”

‘뭐지? 어디서 시치미야?’

소유정네 집으로 들어온 도아린은 오늘 입을 옷을 찾아낸 다음 침착하게 말했다.

“오늘은 그냥 배달시켜 먹고 음식 잘하는 도우미 구해요. 난 이제 더는 건후 씨 시중 못 들어요.”

“못 든다고?”

배건후가 조롱 섞인 말투로 말했다.

“누가 집의 도우미를 자르고 요리 학원 다녔더라? 또 누가 남자의 마음을 잡으려면 입맛부터 잡아야 한다고 했지? 나한테 실패한 맛없는 요리를 먹이면서 좋아했던 거 아니었어?”

도아린은 또다시 가슴을 칼로 도려내듯 아팠다. 요리를 배우느라 손을 여러 번 다쳤었다. 그런데 배건후는 걱정하기는커녕 오히려 그녀를 비웃었다.

단둘이 있을 때도 뭐라 하더니 이젠 도우미 앞에서까지 말하는 건 너무나도 큰 치욕이었다.

화가 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그런지 도아린은 구역질이 다 났다. 하지만 참고 또 참으며 달라진 말투로 말했다.

“얼른 이혼 합의서에 사인하면 내가 해준 쓰레기 음식 먹지 않아도 돼요. 누굴 만나고 싶으면 만나도 되고.”

그녀의 말에 배건후의 눈빛이 확 싸늘해졌다.

“도아린, 오냐오냐하니까 눈에 뵈는 게 없어?”

“나한테 언제 오냐오냐해준 적이 있었어요?”

도아린은 화가 나다 못해 웃음을 터트렸다. 이번에는 배건후가 먼저 전화를 끊어버렸다. 도아린은 두 눈을 비빈 다음 옷을 갈아입었다.

매번 음식을 기분 좋게 배건후에게 해줬지만 돌아오는 건 그의 혐오 가득한 눈빛이었다. 그가 음식을 삼키면서 구역질을 참았을지도 모른다.

도아린은 배건후의 마음을 얻으려고 맨날 가스 불 앞에서 맴돌았다. 그렇게 점점 생존 능력을 잃어가는 여자로 되면서 기생충처럼 그의 옆에 붙어있었다.

배건후가 아니라 이젠 도아린마저도 그런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대표님, 제가 아침 준비해드릴까요?”

도우미가 도아린이 준비한 반찬통을 꺼냈다. 두 부부가 말다툼하는 건 본 적이 있어도 배건후의 표정이 이토록 어두운 건 처음 봤다.

배건후는 냉장고 안의 일주일 치 반찬통과 그 위에 붙어있는 조리방법을 쳐다보았다. 마음이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답답하고 괴로웠다.

“도아린이 말한 대로 해요.”

도우미는 타이머까지 사용하면서 도아린의 조리방법대로 조리했다. 그런데 배건후가 맛을 봤을 때 그녀가 해준 것과 완전히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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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사랑
인간쓰레기한테 동생 거액의 병원비도 내게하고 온갖 사치품과 돈도 받고 도우미짓은 니가 자청해서 하는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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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보미의 스캔들이 세간을 발칵 뒤집어놓았고 그녀가 딱히 부인하지 않는 건 인정과도 다름없었다.도유준이 성급하게 돈을 요구하는 건 아마도 도아린이 차이면 이용가치가 없어질까 봐 걱정한 듯싶다.엠파이어 빌딩에는 각 분야의 엘리트들이 모였고 물론 훌륭한 변호사도 있었다. 도아린은 사무실로 돌아가기 전에 알고 지내던 변호사 한 분을 찾아가 취지를 설명했다.“재산을 절반씩 나누는 건 어려울 것 같아요.”장수현 변호사는 배건후의 변호사와 법정에 설 생각을 하니 식은땀이 저절로 났다.“제가 한발 물러서면요?”도아린은 애초에 돈을 가질 생각이 없었고 단순히 그를 엿 먹이고 싶었을 뿐이다.장수현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중요한 건 배건후 대표님도 이혼 의사가 있느냐 없느냐의 여부입니다. 만약 대표님이 이혼에 동의하지 않으면 아주 긴 법정 싸움이 될 거예요. 아린 씨가 상대방이 잘못했다는 확실한 증거를 내놓지 못하는 한 법정에서는 화해를 도모할 거예요.”도아린은 가방끈을 꽉 잡았다. 배건후가 손보미를 위해 그렇게 많은 일을 했는데 어찌 그녀에게 명분을 주고 싶지 않을까.도아린과 배건후는 비밀 결혼이라 아무도 이 사실을 모르는데 법정 싸움으로 번진다면 손보미는 고스란히 치욕을 당해야 할 것이다.그러니까 배건후가 이혼을 거부하는 거겠지.“그럼 이렇게 해요.”도아린이 큰 결심을 내린 듯싶었다.“내일 저 대신 건후 씨 한번 만나 뵙고 오세요. 건후 씨가 먼저 이혼을 언급한 것처럼 이혼협의서를 작성하라고 하세요. 재산 분할은 어떻게 하든 상관없으니 이번 일을 소리 없이 진행하고 그 사람 명예에 절대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하는 거예요.”장수현은 행동파답게 다음날 바로 배건후에게 소식을 전했다.모건 그룹은 오전 내내 먹구름이 가득하고 임원들은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다. 비서실은 심지어 숨도 제대로 고르지 못할 지경이었다.우정윤이 커피를 들고 들어오다가 담배 연기로 꽉 찬 대표이사 사무실에 하마터면 화재 신고를 할 뻔했다. 입사해서부터 지금까지 그는 대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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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그가 먼저 도아린에게 짐을 싸달라고 부탁하고 있고 말투도 최근 들어 가장 누그러진 편이다. 이에 도아린은 문득 마음이 씁쓸해졌다.그녀가 아무 말 없자 배건후도 말을 잇지 않았고 두 사람은 휴대폰을 든 채로 고요한 침묵만 흘렀다.요즘 SNS에 돌고 있는 밈이 하나 있는데 내용은 이러했다.[만약 당신 남편이 달마다 용돈을 2천만 원씩 주는 대신 집에 돌아오지 않는다면 받아들일 수 있나요?]이에 ‘좋아요’가 가장 많이 달린 댓글은 [1초라도 망설이면 그건 돈에 대한 예의가 아니죠.]였다.이 논리대로라면 배건후보다 더 완벽한 후보는 없다. 달마다 도아린에게 한도 제한 없는 카드를 줄 뿐만 아니라 고급 저택에 좋은 차, 게다가 도우미들까지 고용해서 그녀의 시중을 들고 있으니까.어디 그뿐인가, 외모면 외모, 능력이면 능력 뭣 하나 빼놓을 게 없는 완벽한 남편감이었다. 두 사람의 신분 차이가 현저하지만 배건후는 도씨 일가에서 원하는 자원은 최대한 만족시켜주고 있다.돈도 몇 푼 못 벌면서 시답잖은 일만 벌이고 험상궂게 생긴 남자들과 비하면 배건후는 너무 괜찮은 편이다.도유준은 그가 일편단심이라고 했는데 손보미에게 줄곧 일편단심인 건 사실이다. 그의 베프 성대호는 만났던 여자친구가 산을 이룰 지경이니까.어쩌면 도아린이 좀 더 ‘너그러워’진다면 이 결혼생활도 계속 이어나갈 수 있을 듯싶다.그녀가 이제 막 한 걸음 물러나려고 하는데 전화기 너머로 대뜸 익숙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건후 씨, 나 다 씻었어.”순간 도아린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미친!’‘방금 나 스스로한테 가스라이팅한 거야?!’왜 굳이 흠집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 가장 완벽한 사람을 찾으려고 고집한 걸까?연성에 널리고 널린 게 훌륭한 남자들인데 말이다.“약속 꼭 지켜요.”말을 마친 도아린이 전화를 끊었다.그 시각 빨간색 람보르기니가 맞은 편에서 질주해 오더니 모건 그룹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갔다.도아린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에 배건후는 슬슬 짜증이 몰려왔고 짙은 얼굴에 싸늘한

  • 또 한 번의 거절   제14화

    배건후를 위해 짐 정리를 하면 그가 한약을 어머님께 드릴 것이다. 이건 매우 공평하고 합리한 딜이다.도아린은 밤새 운전하여 에이트 맨션으로 돌아왔다. 이제 막 단지 입구에 들어서려는데 배씨 저택에서 전화가 걸려왔다.다만 그녀가 길옆에 차를 세우기도 전에 전화가 끊겼다.이에 도아린은 잘못 건 줄 알고 계속 운전하여 맨션으로 돌아갔다.배건후가 출장 갈 때마다 그녀는 안팎으로 옷을 3세트씩 준비한다.짙은 색 외투에 연한 색 셔츠, 깔 맞춤한 넥타이와 브로치, 시계 그리고 커프스까지...도아린은 배건후의 더 매력적인 모습을 사람들 앞에 보여주려고 한다. 어떤 단추가 그의 신분에 더 잘 어울리는지 연구하고 있고 또 한편으로는 주객전도를 금지하기 위해 인터넷으로 많은 자료를 수집해 보곤 한다.오늘 그녀는 이전의 열정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채 마치 AI처럼 딱딱하게 다 고른 3세트의 옷을 캐리어에 넣었다.하지만 루비 목걸이를 금고에 넣을 때 액세서리가 몇 개 없어진 걸 발견했다. 이제 막 자세히 살펴보려고 하는데 휴대폰이 또다시 울려댔다.이번에도 배씨 저택에서 걸려온 전화였다.“작은 사모님, 잠시 이리로 오실 수 있나요?”가정부 유민정이 떨리는 목소리로 울먹이며 말했다.“큰 사모님께서 저녁 식사 후 산책하러 나가시려다가 일어나자마자 머리가 심하게 어지러워 가정의도 불러왔는데 병원에 가서 검사받아보시라고 하네요...”“알았으니까 일단 진정하세요. 지금 바로 갈게요.”전화를 끊은 도아린은 황급히 저택으로 향했다.주현정은 꾸준히 한약을 먹고 있지만 자꾸 병이 난다. 이 집에서 제일 한가한 도아린이기에 가정부 유민정은 크고 작은 일이 생길 때마다 항상 그녀에게 먼저 연락한다.유민정이 대문 앞에서 도아린을 마중하며 두 눈이 빨갛게 충혈돼 있었다.“그날 도련님이랑 함께 새벽에 집을 나가신 이후로 사모님께서 밤새 잠을 설쳤어요. 그러더니 다음 날 바로 적신호가 와서 입원해야 하는데 사모님께서 기어코 고질병이라면서 집에 돌아가겠다는 거예요. 그러다가 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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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또 한 번의 거절   제715화

    의사가 급히 다가와 도아린을 확인하더니 주사를 한 대 더 놓았다. 그리고는 운전기사에게 속도를 빨리라고 재촉했다.“환자의 상태가 매우 위급합니다. 빨리 가주세요!”“도아린, 너 절대 죽으면 안 돼! 나랑 이혼할 때는 그렇게 난리를 치더니 이렇게 죽으면 안 되지. 그렇게 자존심이 강하다며? 그럼 지금이 네 대단한 자존심을 보여 줄 때야!”배건후는 점점 더 초조해져서 말을 가리지 않고 마구 내뱉었다. 눈물은 통제할 수 없이 흘러내려 도아린의 이마 위로 떨어졌다.눈물이 상처에 닿자 그녀는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중상 환자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 쪽에서는 미리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구급차가 도착하자마자 다들 한마음 한뜻으로 도아린을 들것에 올리고는 병원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환자분도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한 의사가 배건후를 붙잡았다.“저는 괜찮습니다.”배건후는 의사의 팔을 뿌리치고는 다리를 절뚝이며 따라붙었다.“아내가 괜찮은지 먼저 확인해야 해요!”하지만 그 의사는 끝까지 배건후를 따라가면서 그의 상태를 관찰했다. 그는 팔과 다리에 골절 가능성이 있었고 귀에서 출혈이 있는 걸 봐서 뇌 손상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의사가 뭐라 하든 배건후는 듣지 않았고 오직 도아린 곁을 지키려 했다.진경수를 비롯한 진씨 가문 사람들도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왔다. 집으로 돌아가던 중 도아린의 사고 소식을 접한 윤명희도 서둘러 병원으로 왔다.“배건후, 이 개자식아!”진경수는 배건후를 향해 주먹을 날리려 했으나 경찰이 막아서며 상황을 설명했다.“건후 씨의 빠른 판단이 없었으면 아린 씨는 더 큰 부상을 입었을 겁니다. 그 자리에서 바로 사망했을 수도 있고요. 건후 씨가 트럭의 충격을 막아줘서 그나마 다행입니다.”“아린아, 조금만 버텨. 가족들도 다 너 보러 왔어. 아무 일도 없을 거고 무사할 거야. 우리가 그렇게 만들 거니까...”윤명희는 창백한 얼굴을 하고 도아린에게 손을 뻗으려 했지만 혹여 그녀를 아프게 할까 봐 조심스러웠다.“건후야, 너도 치료

  • 또 한 번의 거절   제714화

    어떤 사람은 차 문을 열자는 생각에 찬성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무리 힘을 써도 열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배건후의 간절함에 영향을 받았는지 다들 어떻게든 해보려고 애썼다. 모두가 차 안에 있던 도구를 꺼내 들고 힘을 합쳐 문을 열려고 했다.“하나, 둘, 셋! 하나, 둘, 셋!”“조금만 더 힘내요. 움직이기 시작했어요!”누군가가 이렇게 외치자 다들 이를 악물었고 어떤 이는 손에 들고 있던 도구를 부러뜨릴 정도로 힘을 썼다. 마침내 ‘쾅’하는 소리와 함께 차 문이 열렸다.“도아린!”문이 열리자마자 배건후는 앞으로 달려가서 안전벨트를 풀어주고 그녀의 몸을 일으켜주었다. 배건후는 그녀의 얼굴을 조심스레 감싸고는 쉰 목소리로 물었다.“어디 다쳤어? 어디가 아픈지 말해줘.”힘겹게 눈을 뜬 도아린은 배건후의 부어오른 눈, 갈라진 입술과 멍든 뺨을 바라보았다. 우아하고 단정했던 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배건후는 고개를 숙여 그녀의 다리가 끼이지는 않았는지 확인했다. 그때, 도아린은 그의 귀에서 피가 흐르는 것을 보았다.그녀는 손가락을 살짝 움직이며 그의 옷을 잡아당겼다. 그러자 배건후는 즉시 고개를 번쩍 들고 그녀를 바라보았다.“내가 있으니까 걱정 마! 곧 구급차가 올 거고 아무 일도 없을 거야.”배건후는 이렇게 말하며 직접 도아린을 안아 올렸다. 그러나 좌석에서 벗어나자마자 두 사람은 함께 바닥으로 쓰러졌다.그 모습을 본 주변 사람들이 다가와서 그들을 도왔다.어떤 이는 차량 뒤쪽에 경고 표지를 설치했고 어떤 이는 경찰에 신고를 했으며 또 어떤 이는 휴지를 찾아서 출혈을 막아주었다.구급차는 경찰차보다 먼저 도착했다.의사는 부상자가 두 명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구급차를 한 대 더 부르려 했다.“전 괜찮습니다! 제 아내부터 봐주세요. 부탁드립니다!”의사는 배건후가 걸을 수 있고 말도 조리 있게 할 수 있는 것을 보고 두 사람을 함께 태웠다.도아린은 산소마스크를 쓴 채로 몽롱하게 잠에 빠지려 했다.그녀를 살펴본 의사는 표정이 심각

  • 또 한 번의 거절   제713화

    급커브를 빠져나가면 피할 곳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녀는 급하게 액셀을 밟았다.차량 속도가 너무 빨랐기에 커브를 돌 때 브레이크를 여러 번 밟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칫하면 차가 옆으로 넘어갈 뻔했다.도아린이 막 안도의 한숨을 돌리려는 순간, 맞은편에서 트럭 한 대가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뒤쪽 트럭도 경적을 울렸고 맞은편의 트럭도 그에 응답하듯 경적을 울렸다.맞은편에서 오는 트럭이 도아린의 차를 향해 정면으로 돌진해 왔다. 그녀는 순식간에 온몸의 혈액이 머리로 쏠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건 계획된 살인이었다.그녀는 필사적으로 침착하려고 했지만 몸은 이미 마비된 상태였다.옆에서는 또 다른 트럭이 밀어붙여서 도망칠 공간이 없었다. 브레이크를 밟거나 정면충돌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그렇다고 속도를 줄이면 뒤에 있는 검은색 밴에 부딪힐까 봐 걱정이었다.‘돌발 상황에 직면했을 때, 여자는 정말 남자보다 판단력이 약한 것일까?’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사실인 듯했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지만 떠오르는 방법이 없었다.그 아슬아슬한 순간에 검은색 밴이 도아린의 차 앞으로 뛰어들었다. 검은색 밴은 급브레이크를 밟더니 도아린의 차와 트럭 사이를 가로막았다.맞은편 트럭 운전사는 이런 변수를 예상하지 못했는지 반사적으로 핸들을 꺾어 버렸고 도아린 옆에서 나란히 달리던 트럭과 충돌해 버렸다.두 대의 트럭은 세게 부딪히고 나서 절벽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하지만 그 와중에 트럭에 있는 트레일러가 검은색 밴을 세게 들이받았고 ‘쾅’하는 소리와 함께 도아린도 속도를 줄이지 못한 채 밴에 부딪혀 버렸다. 그 충격에 검은색 밴은 완전히 납작하게 눌려 버렸다.에어백이 터지면서 그녀는 온몸이 쑤셨다. 머리가 지끈거렸고 시야도 흐릿해졌다.그때, 부서진 검은색 밴의 문이 힘겹게 밀려 열리더니 한 남자가 굴러떨어졌다.배건후였다. 그의 팔은 피투성이였고 새하얀 셔츠도 온통 핏자국으로 물들어 있었다.그는 다리를 절뚝거리며 힘겹게 도아린의 차 앞으로 걸어왔다.“도아린,

  • 또 한 번의 거절   제712화

    배건후는 도아린을 따라 아래층 정원까지 내려왔다.“도아린...”그제서야 입을 열었지만 말을 꺼내기도 전에 그녀가 말을 끊어버렸다.“지금 소송 문제로 바쁘시잖아요. 더 이상 건후 씨 시간 낭비하지 않겠습니다. 안녕히 가세요.”“도아린, 우리 제대로 이야기 좀 해.”“그럴 필요 없다고 생각합니다만...”배건후는 미간을 찌푸리며 그녀 앞을 막았다.“넌 그놈들의 이익을 건드렸어. 다들 널 가만두려 하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경찰에게 내가 제공한 정보라고 말해. 그러면 나를 찾아올 거니까.”도아린은 아무 말 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눈빛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싸늘했다.어젯밤 그녀가 변슬기를 구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경찰뿐이었다. 경찰 측에서는 피해자의 신변 보호를 위해 도아린과 진수혁의 신분을 노출하지 않았다.주현정 역시 변슬기가 납치되었다는 사실만 듣고 그녀와 함께 병문안을 온 것이었다.하지만 배건후는 너무나도 정확히 알고 있었다.“유민 씨가 말해줬어요?”배건후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부정하지도 않았고 결코 인정하지도 않았다.그는 왠지 할 말이 많아 보였지만 단 한 마디도 입 밖으로 내지 못했다.배건후는 손을 뻗어 도아린의 어깨를 잡으려 했다. 하지만 그녀의 차가운 시선을 보고는 허공에서 망설이다가 결국 손을 거두었다.“도아린, 넌 지금 보호가 필요해.”“보호가 필요하다고 해도 배 대표님의 보호는 필요 없어요.”도아린은 그가 건드리지도 않은 어깨를 툭 털어내고는 싸늘하게 말했다.“저희는 감정적으로 얽힌 사이도 아니고 경제적으로도 더더욱 아무 관계 없는 사이에요. 그러니까 앞으로 제 앞에 나타나지 말아 주세요.”“그럼 법정에는 왜 간 거야?”그녀가 법정에 온 걸 보고 배건후는 몇 날 며칠 동안 설레발을 쳤다. 하지만 그의 설레는 감정은 결국 바닥에 내팽개쳐져 처참히 짓밟히고 말았다.“법정에 간 건 저희 할머니 소송 때문이에요.”도아린은 그를 지나치고는 앞으로 걸어갔다. 배건후가 뒤를

  • 또 한 번의 거절   제711화

    강재민은 등을 돌린 채 손을 휘저으며 강재희를 돌려보냈고 그녀는 조용히 방문을 닫고 나왔다.계단을 내려가던 그녀는 갑자기 위층에서 ‘쾅’ 하는 소리를 들었다.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였다....변슬기는 다치지 않았지만 극도의 공포를 겪은 탓에 밤사새 열이 올라 결국 병원에 입원했다.채원미가 밤새 그녀 곁을 지켰고 다음 날, 변우빈이 교대하러 왔다.그날, 도아린은 주현정과 함께 병문안을 왔다.“도 선생님!”변슬기는 도아린을 보자마자 눈물이 터질 듯한 얼굴로 그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아버지, 저 도 선생님이랑 단둘이 얘기하고 싶어요.”“그래. 몸이 안 좋으면 바로 불러.”변우빈은 주현정과 함께 병실 밖으로 나갔다.도아린은 침대 옆에 의자를 가져와 변슬기의 곁에 앉으면서 그녀의 손을 잡았다.“어제 잡힌 건 기절한 두 놈뿐이에요. 나머지는 전부 도망쳤어요.”변슬기는 입술을 꾹 다물며 울음을 참았다.“대표님은 괜찮아요?”“몇 바늘 꿰매긴 했지만 큰 문제는 없대요.”도아린은 변슬기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보며 담담히 말했다.“슬기 씨가 무사해서 다행이에요. 어제 다들 걱정했어요.”변슬기는 살짝 시선을 피하더니 조심스레 물었다.“진 대표님도 제 걱정을 했을까요?”“당연하죠. 비서잖아요. 퇴근 후에 사고가 났으니 산재 처리해야 할지도 모르죠.”변슬기의 가슴 한구석에서 두근거리던 감정이 도아린의 한마디에 싸늘하게 식어버렸다.“아... 그렇군요.”도아린은 입꼬리를 살짝 내리며 변슬기의 반응을 살폈다.“오빠는 좀 눈치가 없는 편이라 어떤 감정이든 스스로 깨닫지 못할 때가 많아요. 그러니까 슬기 씨, 오빠한테 마음이 있는 거라면 직진하는 게 좋을 거예요.”변슬기는 살짝 움찔하더니 도아린을 쳐다보았다. 놀람, 기쁨, 그리고 믿기지 않는 듯한 여러 감정이 한꺼번에 섞인 눈빛이었다.“도 선생님, 저... 저 같은 사람이 대표님이랑 어울릴까요?”“왜 안 어울린다고 생각하죠?”도아린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슬기 씨는 충분히 좋은 사람이에요

  • 또 한 번의 거절   제710화

    변슬기는 겉옷을 벗은 후, 한쪽 어깨끈을 떼어냈다. 그리고는 재빨리 진수혁의 팔을 감싸서 지혈했다.무표정이던 그의 표정에 드디어 약간의 변화가 일었다. 진수혁은 굳어 있던 몸을 돌리며 낮은 목소리로 감사 인사를 전했다....“뭐라고? 창고가 털렸다고?”전화를 받자마자 남궁 유민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분노에 차서 주먹을 휘두르자 모니터가 박살이 났다.‘또 도아린, 그 여자야.’도아린은 그가 부자로 되어가는 길목에서 끊임없이 걸림돌이 되고 있었다. 완전히 제거하지 않는 한, 그녀가 또 어떤 방해를 할지 알 수 없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기사가 났다. 해남에서 목장으로 위장한 불법 장기 매매 조직의 은신처가 발견되었으며 현장에서 두 명의 용의자가 검거되었다고 말이다.경찰은 구체적인 내용을 발표하지 않았지만 이 지하 조직이 연성의 인신매매 사건과 연관되어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고 사람들은 어디에서든 이 사건을 화제로 삼아 얘기를 나눴다.강재희는 이 소식을 듣자마자 급히 강재민을 찾아갔다.“뉴스 봤어?”강재민은 1인용 소파에 앉아 있었는데 손에는 얼음을 넣은 위스키 한 잔이 들려 있었다. 그는 눈을 감고 깊은 생각에 잠긴 듯했다.“뉴스 봤냐고 묻잖아!”강재희는 그 앞까지 걸어가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내려다보며 따져 물었다.“너 계속 인신매매 사건을 조사하고 있었잖아. 정말 몰랐어?”강재민은 천천히 눈을 떴다. 짙은 갈색인 그의 눈동자는 차갑게 얼어붙어 있었다. 강재민은 아무 말 없이 술을 한 모금 삼켰다.“대답해!”강재희가 날카롭게 말했다.“정말 몰랐던 거야? 아니면 그들과 같은 편에 선 거야?”강재희에게 인신매매 사건은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였다. 그녀는 사람을 물건처럼 이용해 먹는 자들을 제일 증오했다. 그보다 더 혐오스러운 것은 사람의 장기를 강제로 빼앗아서 거래까지 하는 끔찍한 범죄였다.비록 강재민은 항상 아버지의 반대편에 서서 살아왔지만 사실 그는 그동안 암암리에 계속 이 사건을 추적하고 있었다.강재희를 구해

  • 또 한 번의 거절   제709화

    도아린은 지름길로 달려갔다가 하마터면 발을 헛디딜 뻔했다. 그녀가 물웅덩이 근처에 도착했을 때, 변슬기가 힘겹게 기어오르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손 이리 줘요!”도아린은 바닥에 엎드려 팔을 길게 뻗고는 그녀의 손을 붙잡으려 애썼다. 하지만 변슬기의 손은 진흙투성이였기에 잡자마자 미끄러져 버렸다.그녀는 손을 옷에 문질러서 대충 닦은 후 다시 손을 뻗었다. 도아린은 위에서 힘껏 끌어당겼고 변슬기는 아래에서 발을 굴렀다. 마침내 그녀는 물웅덩이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멀지 않은 곳에서 진수혁이 한 남자와 몸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그 남자는 쇠 파이프를 들고 있었기에 확실히 상대 쪽이 우세인 상황이었다.“일단 차로 가요!”도아린은 변슬기의 손을 잡고 황급히 뛰어갔다.차 안에서는 계속해서 남녀의 격렬한 신음이 흘러나오고 있었지만 변슬기는 금방 공포 속에서 탈출했다는 사실에 그것을 미처 인식하지 못했다.도아린 역시 음악을 끌 겨를도 없이 차에 시동을 걸고 진수혁 쪽으로 몰았다.갑자기 켜진 헤드라이트 불빛이 상대의 얼굴을 환히 비추었다. 순간, 그는 너무 눈부셔서 제자리에 멈춰섰고 그 틈을 타 진수혁이 상대를 발로 걷어찼다.차는 두 사람 앞으로 돌진하더니 급히 방향을 틀었다.“빨리 타요!”도아린이 소리쳤다.진수혁은 변슬기가 조수석에 앉았을 거라 생각해 본능적으로 뒷좌석 문을 열고 몸을 던졌다. 상대방은 그들이 도망치는 걸 보고 필사적으로 뒤쫓아왔다.그러자 도아린은 재빨리 후진했다. 문이 아직 완전히 닫히지도 않은 상태에서 차는 그들을 튕겨내듯 밀어버렸다. 그리고는 다시 거칠게 액셀을 밟아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목장에서 마을로 향하는 유일한 도로에서, 경찰차 한 대가 그들과 스쳐 지나갔다. 세 사람은 그제야 가까스로 살아남았다는 실감이 들었다.도아린은 속도를 늦추고 진수혁에게 문을 제대로 닫으라고 했다.주변이 조용해지자 차 안에서 남녀의 격렬한 신음이 선명하게 들려왔다. 아까까지 벌벌 떨고 있던 변슬기는 이 소리를 듣고 순간적으로 몸이

  • 또 한 번의 거절   제708화

    갑자기 나타난 차는 더 이상 다가오지 않았고 차의 불빛도 순식간에 꺼져 버렸다.“가자. 가서 확인해 보자!”두 사람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고 나머지 한 명은 문 앞을 지키고 있었다.“뭐가 그렇게 급해? 아프단 말이야. 좀 천천히 해.”“넌 나 안 보고 싶었어? 난 너 보고 싶어서 죽을 뻔했는데...”차 안에서 희미한 소리가 들렸다. 상태를 확인하러 나간 두 남자는 서로 눈을 마주치며 미소를 지었다.‘굳이 이런 곳까지 찾아오다니...’‘제 발로 굴러왔는데 놓쳐서야 되겠어? 본때를 보여줘야지.’두 사람은 손짓으로 신호를 주고받으며 차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차와 점점 가까워질수록 소리는 더 선명해졌고 차까지 흔들리는 듯했다.하지만 차 안에 있는 사람들은 너무 몰두하는 바람에 누가 다가오는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중 한 명이 차 문을 열려고 손을 뻗었지만 문은 잠겨 있었다.그중 한 남자가 창문을 두드렸다.“여기서 뭐 하는 거죠?”다른 쪽에 있던 남자도 말했다.“여긴 개인 목장이에요. 아무나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라고요. 신분증 좀 봅시다.”“윽...”낮은 신음과 함께 창문을 두드리던 남자는 갑자기 힘없이 쓰러졌다. 그러자 반대쪽 남자도 뭔가 이상한 걸 느끼고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그때, 갑자기 뒤에서 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퍽’하는 소리와 함께 쇠 파이프가 남자의 등 뒤를 강하게 가격했다.도아린은 진수혁에게서 들은 적이 있었다. 목덜미를 때리면 잠깐 기절시킬 수 있다고 말이다. 그녀는 목덜미를 때리려 했으나 손이 너무 떨려서 목덜미 대신 등을 세게 때렸다.남자는 곧바로 몸을 돌려 도아린을 잡으려 했으나 그때, 진수혁이 나타나서 남자의 목덜미를 가격했다.그러자 그 남자는 그 자리에서 기절했다.“무슨 일이야!”문을 지키던 남자는 무언가 소리가 나는 것을 들었지만 밤이라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제대로 보지 못했다.“다들, 빨리 와! 그 여자가 도망쳤어!”안에서 남자의 분노에 찬 외침이 들려왔다. 그러자 문을 지키던 남

  • 또 한 번의 거절   제707화

    변슬기가 고개를 돌리자 흐릿한 시야 속에는 작은 수레가 하나 보였고 그 위에는 각종 의료 기기와 약품이 놓여 있었다. 수술용 칼과 크고 작은 핀셋들도 줄지어 있었다.코를 찌르는 강한 피비린내가 그녀로 하여금 단숨에 정신 차리게 했다.이곳은 환경이 극도로 열악한 수술실이었다.변슬기는 재빨리 몸을 일으켰다. 막 수술대에서 내려오려는 순간, 누군가가 이쪽으로 다가오는 소리가 들려왔다.“오늘은 왜 이렇게 갑자기 소집했대?”“누가 알겠어? 어쨌든 일만 하면 돈을 받는 거잖아. 요즘 장기가 꽤 부족한가 봐. 이따가 피 뽑아서 상세 정보 올리면 바로 구매자한테서 연락이 올 거야.”“넌 네가 할 거 해. 난 얼음이나 가져올게. 저 여자 말이야. 아무래도 누굴 제대로 건드린 모양이지? 살아 있는 상태로 수술하라니...”어떤 남자와 여자가 대화를 나누며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변슬기는 다시 수술대에 누웠다. 너무 두려워서 그녀는 온몸이 저절로 떨렸다.비록 그들이 정확히 무엇을 하려는지는 몰라도 절대 좋은 일이 아니라는 것만큼은 확실했다.안민아는 그녀의 목숨을 원하고 있었다.‘뭐 얼마나 큰 원한이 있었다고...’예전에 변슬기는 혹시나 그녀가 괴롭힘을 당할까 봐 걱정되어 도유준을 때려준 적도 있었다.‘고마워하기는커녕, 오히려 이렇게 비열한 방법으로 해코지하려 하다니...’그 여자는 얼음이 든 양동이를 들고 안쪽 욕실로 가서 욕조에 모두 부어 버렸다. 그리고는 욕조에 물을 틀었다.다른 남자는 변슬기 쪽으로 다가와 그녀의 팔에 붕대를 단단히 감은 뒤, 여러 개의 혈액 샘플을 채취했다. 너무 많이 해 온 작업이라 무감각해졌는지 그는 변슬기의 눈꺼풀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피를 뽑은 후, 그가 자리를 뜨자 변슬기는 재빨리 몸을 일으켰다.‘지금 도망치지 않으면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거야.’욕실에 있는 여자는 여전히 욕조에 물을 받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따금 혼잣말을 했다.“얼음을 한 통 더 가져와야겠네. 아직 온도가 부족해.”변슬기는 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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