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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Author: 온유
last update Last Updated: 2024-09-10 13:27:57
도아린은 홀로 쓸쓸하게 복도에 앉아있다가 응급조치를 마쳤다는 간병인의 말을 듣고서야 정신을 차렸다.

도지현은 다시 한번 저승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왔다. 하지만 의사는 도지현의 각 수치가 한계에 도달했다면서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

도아린은 의사에게 허리 굽혀 인사한 후 병실로 돌아와 남동생의 팔을 어루만졌다.

“이모, 가서 쉬세요. 지현이랑 단둘이 있고 싶어요.”

간병인은 도아린이 자존심이 강해서 남들에게 연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럼 옆에 탕비실에 있을 테니까 무슨 일 있으면 불러요.”

도지현은 무릎 밑으로 두 다리를 절단했고 허벅지 근육도 거의 다 수축해서 다리가 팔보다도 더 가늘었다.

그녀보다 도지현을 더 잘 아는 사람은 없었다. 아픈 몸 때문에 힘들어도 늘 밝았던 동생이었다.

장애인 농구팀에 입단한 후에는 열심히 운동하고 생활을 공유하기도 했다. 절대 시합을 한 게임 졌다고 목숨을 끊을 사람이 아니었다. 하여 그녀는 도지현이 깨어나서 그날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직접 말해주길 바랐다.

두 팔을 다 마사지하고 나니 도아린의 손이 다 떨릴 정도로 저릿했다. 간병인이 와서 도지현의 몸을 닦아주었고 도아린은 옥상으로 가서 소유정의 전화를 받았다.

“널 방해한 건 아니지?”

“아니. 나 지금 병원이야.”

도아린은 젖은 머리가 마르도록 풀어헤쳤다.

“지현이...”

“다시 살려냈어.”

“그래. 의료 기술이 계속 발전하니까 언젠가 깨어날지도 몰라.”

소유정은 그녀를 위로한 후 본론을 얘기했다.

“나형욱 선생님이 또 날 찾아왔어. 네가 지난번에 수선한 자수 드레스가 엄청 마음에 든다면서 선생님 팀으로 들어오래.”

나형욱은 수선 명인이었다. 그와 한 번만 손을 잡아도 몸값이 배로 뛰는 건 문제없었다. 그런 그가 도아린을 직접 스카우트하려 한다는 건 그녀의 실력을 인정한다는 뜻이었다.

도아린의 솜씨도 업계에서는 손꼽히는 정도였다. 배건후와 결혼한 후에는 가정에만 충실하다 보니 그저 손이 굳어지지 않으려고 세컨드 계정으로 일을 조금씩 받곤 했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반드시 열심히 노력해서 돈을 벌어 이혼 후에도 남동생이 똑같은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했다.

“그렇게 할게.”

“뭐?”

소유정이 화들짝 놀랐다. 전에 도아린에게 본격적으로 시작하라고 여러 번이나 타일렀었지만 도아린은 계속 거절했었다.

“주소 보내줘. 한번 다녀올게.”

도아린이 계속하여 말했다.

“내가 자주 쓰는 그 계정은 아무한테도 알려주지 마.”

소유정이 정신을 차리고 물었다.

“너 출근할 수 있어? 남편 챙기지 않아도 돼?”

“이혼하겠다고 했는데 동의 안 하더라고. 근데 언젠가는 할 거야.”

도아린의 말투는 마치 당사자가 아닌 것처럼 차분하기 그지없었다.

“진작 그렇게 했었어야지. 그 인간쓰레기는 널 못살게 굴기만 하고. 넌 그런 사람이 뭐가 좋다고 그렇게 매달렸는지, 참.”

소유정이 분노를 터트렸다.

“둘이 친밀한 관계인 거 보여주는 사진을 찍으면 혼인신고서를 꺼내서 보여줘. 두 연놈 아주 작살나게!”

“사진?”

“그건 중요하지 않아.”

소유정이 교활하게 웃었다.

“하늘은 우리 편이라서 두 연놈 언젠가는 망할 거야. 그럼 지금 나 선생님께 전화할게. 선생님 엄청 기뻐하시겠다.”

도아린은 소유정이 뭔가를 숨기고 있는 것 같아 캐물으려 했지만 소유정이 전화를 끊어버렸다.

머리를 흩날리며 무심결에 고개를 돌렸는데 복도에 익숙한 모습이 스쳤다. 도아린이 재빨리 다가갔지만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내가 잘못 봤나? 그 사람일 리가 없는데.’

...

도아린은 병실에 밤새 있다가 이튿날에 택시를 타고 소유정네 집으로 갔다. 잠이 마구 쏟아지던 그때 전화벨 소리가 그녀를 깨웠다.

“여보세요?”

도아린이 목청을 가다듬고 전화를 받았다.

“사모님...”

도우미가 주눅이 든 목소리로 말했다.

“대표님 아침은...”

밤을 새운 탓에 도아린은 아직 제정신이 아니었다.

“냉장고 두 번째 층에 준비한 거 있으니까 그거 챙겨주면 돼요.”

도우미는 전화를 움켜쥐었다가 이내 또 말했다.

“없는데요? 두 번째 층에는 하루 지난 샐러드밖에 없어요.”

“그럴 리가요. 어제 국수를 말아먹었는데 샐러드라니요?”

도아린이 미간을 어루만졌다.

“그럼 건후 씨한테 뭘 먹겠는지 물어봐서 지금 해줘요.”

도우미의 겁먹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난번에 제가 아침을 준비한 바람에 대표님께서 두 달 치 보너스를 깎았어요. 죄송한데 사모님이 직접 와서 하시면 안 돼요?”

도아린은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말투를 들어보니 배건후가 옆에 있는 게 분명했다.

배건후는 지금도 몸매가 완벽한데도 저지방 음식을 먹겠다고 고집했다. 도아린이 영양이 균형적인 식단을 만들기 위하여 냉장고에 음식을 많이 준비해뒀는데 찾지 못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냉장실에 없으면 냉동실에서 찾아봐요. 그래도 없으면 배달시키고요.”

그러고는 가차 없이 전화를 확 끊어버렸다.

‘손보미는 한밤중에 불러내서는 밥도 안 챙겨준 거야?’

그 시각 도우미는 화가 난 배건후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전화 끊었어요...”

옆에서 다 들은 배건후가 시선을 늘어뜨렸다.

“제가... 해드릴까요?”

배건후는 차가운 얼굴로 잠깐 고민하다가 말했다.

“단호박 몇 분 삶아야 하는지 물어봐요.”

도우미는 어이가 없었다.

단호박을 어느 정도 사이즈로 자르고 몇 분 삶아야 하는지는 배건후가 수차례 트집을 잡은 후에 고정된 기준이 생겼다. 맨날 먹는 그가 모를 리가 있겠는가?

도우미의 월급이 높고 또 평소 일도 많지 않고 한가했기에 이만큼 좋은 일자리가 없었다.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도우미는 하는 수 없이 도아린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는 한참이 지나서야 전화를 받았다.

“사모님, 찾았어요. 근데 안에 소고기랑 옥수수가 있어서 대표님이 어떤 걸 좋아하시는지 몰라 아무렇게나 할 수가 없네요.”

소유정네 집 문 앞까지 도착한 도아린은 어깨로 휴대전화를 받쳐 들고 키를 찾은 다음 문을 열었다.

“3cm 되는 갈비를 육수에 삶고 옥수수는 갈면 돼요.”

도우미의 목소리가 잠깐 있다가 들려왔다.

“육수 어디 있어요?”

“...”

도아린은 숨을 깊게 들이쉬고 말했다.

“건후 씨 바꿔줘요.”

“대표님 러닝하러 나가셨어요...”

“그럼 들어오면 다시 전화해요.”

잠깐 조용해졌다가 다시 소리가 들렸을 땐 배건후의 낮게 깔린 목소리였다.

“무슨 일이야?”

‘뭐지? 어디서 시치미야?’

소유정네 집으로 들어온 도아린은 오늘 입을 옷을 찾아낸 다음 침착하게 말했다.

“오늘은 그냥 배달시켜 먹고 음식 잘하는 도우미 구해요. 난 이제 더는 건후 씨 시중 못 들어요.”

“못 든다고?”

배건후가 조롱 섞인 말투로 말했다.

“누가 집의 도우미를 자르고 요리 학원 다녔더라? 또 누가 남자의 마음을 잡으려면 입맛부터 잡아야 한다고 했지? 나한테 실패한 맛없는 요리를 먹이면서 좋아했던 거 아니었어?”

도아린은 또다시 가슴을 칼로 도려내듯 아팠다. 요리를 배우느라 손을 여러 번 다쳤었다. 그런데 배건후는 걱정하기는커녕 오히려 그녀를 비웃었다.

단둘이 있을 때도 뭐라 하더니 이젠 도우미 앞에서까지 말하는 건 너무나도 큰 치욕이었다.

화가 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그런지 도아린은 구역질이 다 났다. 하지만 참고 또 참으며 달라진 말투로 말했다.

“얼른 이혼 합의서에 사인하면 내가 해준 쓰레기 음식 먹지 않아도 돼요. 누굴 만나고 싶으면 만나도 되고.”

그녀의 말에 배건후의 눈빛이 확 싸늘해졌다.

“도아린, 오냐오냐하니까 눈에 뵈는 게 없어?”

“나한테 언제 오냐오냐해준 적이 있었어요?”

도아린은 화가 나다 못해 웃음을 터트렸다. 이번에는 배건후가 먼저 전화를 끊어버렸다. 도아린은 두 눈을 비빈 다음 옷을 갈아입었다.

매번 음식을 기분 좋게 배건후에게 해줬지만 돌아오는 건 그의 혐오 가득한 눈빛이었다. 그가 음식을 삼키면서 구역질을 참았을지도 모른다.

도아린은 배건후의 마음을 얻으려고 맨날 가스 불 앞에서 맴돌았다. 그렇게 점점 생존 능력을 잃어가는 여자로 되면서 기생충처럼 그의 옆에 붙어있었다.

배건후가 아니라 이젠 도아린마저도 그런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대표님, 제가 아침 준비해드릴까요?”

도우미가 도아린이 준비한 반찬통을 꺼냈다. 두 부부가 말다툼하는 건 본 적이 있어도 배건후의 표정이 이토록 어두운 건 처음 봤다.

배건후는 냉장고 안의 일주일 치 반찬통과 그 위에 붙어있는 조리방법을 쳐다보았다. 마음이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답답하고 괴로웠다.

“도아린이 말한 대로 해요.”

도우미는 타이머까지 사용하면서 도아린의 조리방법대로 조리했다. 그런데 배건후가 맛을 봤을 때 그녀가 해준 것과 완전히 달랐다.
Comments (1)
goodnovel comment avatar
소사랑
인간쓰레기한테 동생 거액의 병원비도 내게하고 온갖 사치품과 돈도 받고 도우미짓은 니가 자청해서 하는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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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st Updated : 2024-09-10
  • 또 한 번의 거절   제13화

    지금 그가 먼저 도아린에게 짐을 싸달라고 부탁하고 있고 말투도 최근 들어 가장 누그러진 편이다. 이에 도아린은 문득 마음이 씁쓸해졌다.그녀가 아무 말 없자 배건후도 말을 잇지 않았고 두 사람은 휴대폰을 든 채로 고요한 침묵만 흘렀다.요즘 SNS에 돌고 있는 밈이 하나 있는데 내용은 이러했다.[만약 당신 남편이 달마다 용돈을 2천만 원씩 주는 대신 집에 돌아오지 않는다면 받아들일 수 있나요?]이에 ‘좋아요’가 가장 많이 달린 댓글은 [1초라도 망설이면 그건 돈에 대한 예의가 아니죠.]였다.이 논리대로라면 배건후보다 더 완벽한 후보는 없다. 달마다 도아린에게 한도 제한 없는 카드를 줄 뿐만 아니라 고급 저택에 좋은 차, 게다가 도우미들까지 고용해서 그녀의 시중을 들고 있으니까.어디 그뿐인가, 외모면 외모, 능력이면 능력 뭣 하나 빼놓을 게 없는 완벽한 남편감이었다. 두 사람의 신분 차이가 현저하지만 배건후는 도씨 일가에서 원하는 자원은 최대한 만족시켜주고 있다.돈도 몇 푼 못 벌면서 시답잖은 일만 벌이고 험상궂게 생긴 남자들과 비하면 배건후는 너무 괜찮은 편이다.도유준은 그가 일편단심이라고 했는데 손보미에게 줄곧 일편단심인 건 사실이다. 그의 베프 성대호는 만났던 여자친구가 산을 이룰 지경이니까.어쩌면 도아린이 좀 더 ‘너그러워’진다면 이 결혼생활도 계속 이어나갈 수 있을 듯싶다.그녀가 이제 막 한 걸음 물러나려고 하는데 전화기 너머로 대뜸 익숙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건후 씨, 나 다 씻었어.”순간 도아린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미친!’‘방금 나 스스로한테 가스라이팅한 거야?!’왜 굳이 흠집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 가장 완벽한 사람을 찾으려고 고집한 걸까?연성에 널리고 널린 게 훌륭한 남자들인데 말이다.“약속 꼭 지켜요.”말을 마친 도아린이 전화를 끊었다.그 시각 빨간색 람보르기니가 맞은 편에서 질주해 오더니 모건 그룹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갔다.도아린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에 배건후는 슬슬 짜증이 몰려왔고 짙은 얼굴에 싸늘한

    Last Updated : 2024-09-10
  • 또 한 번의 거절   제14화

    배건후를 위해 짐 정리를 하면 그가 한약을 어머님께 드릴 것이다. 이건 매우 공평하고 합리한 딜이다.도아린은 밤새 운전하여 에이트 맨션으로 돌아왔다. 이제 막 단지 입구에 들어서려는데 배씨 저택에서 전화가 걸려왔다.다만 그녀가 길옆에 차를 세우기도 전에 전화가 끊겼다.이에 도아린은 잘못 건 줄 알고 계속 운전하여 맨션으로 돌아갔다.배건후가 출장 갈 때마다 그녀는 안팎으로 옷을 3세트씩 준비한다.짙은 색 외투에 연한 색 셔츠, 깔 맞춤한 넥타이와 브로치, 시계 그리고 커프스까지...도아린은 배건후의 더 매력적인 모습을 사람들 앞에 보여주려고 한다. 어떤 단추가 그의 신분에 더 잘 어울리는지 연구하고 있고 또 한편으로는 주객전도를 금지하기 위해 인터넷으로 많은 자료를 수집해 보곤 한다.오늘 그녀는 이전의 열정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채 마치 AI처럼 딱딱하게 다 고른 3세트의 옷을 캐리어에 넣었다.하지만 루비 목걸이를 금고에 넣을 때 액세서리가 몇 개 없어진 걸 발견했다. 이제 막 자세히 살펴보려고 하는데 휴대폰이 또다시 울려댔다.이번에도 배씨 저택에서 걸려온 전화였다.“작은 사모님, 잠시 이리로 오실 수 있나요?”가정부 유민정이 떨리는 목소리로 울먹이며 말했다.“큰 사모님께서 저녁 식사 후 산책하러 나가시려다가 일어나자마자 머리가 심하게 어지러워 가정의도 불러왔는데 병원에 가서 검사받아보시라고 하네요...”“알았으니까 일단 진정하세요. 지금 바로 갈게요.”전화를 끊은 도아린은 황급히 저택으로 향했다.주현정은 꾸준히 한약을 먹고 있지만 자꾸 병이 난다. 이 집에서 제일 한가한 도아린이기에 가정부 유민정은 크고 작은 일이 생길 때마다 항상 그녀에게 먼저 연락한다.유민정이 대문 앞에서 도아린을 마중하며 두 눈이 빨갛게 충혈돼 있었다.“그날 도련님이랑 함께 새벽에 집을 나가신 이후로 사모님께서 밤새 잠을 설쳤어요. 그러더니 다음 날 바로 적신호가 와서 입원해야 하는데 사모님께서 기어코 고질병이라면서 집에 돌아가겠다는 거예요. 그러다가 결국

    Last Updated : 2024-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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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또 한 번의 거절   제472화

    “그건 안돼.”강홍련은 단호하게 반대했다. “안민아 씨, 전에도 하마터면 우리 아들의 명예를 망가뜨릴 뻔했었죠. 그런데 오늘 또 똑같은 수법을 쓰는 거예요? 손보미와 배지유는 소리를 듣고 문을 두드린 거예요. 원하지 않았다면 왜 처음부터 도움을 청하지 않은 건가요?”“숨어 있으면서 도아린이 찾는 데도 잠자코 있었죠. 그런데 뭐예요? 우리 아들한테 책임질 일까지 해놓고 모른 척하는 거예요? 사람들한테 들켰다고 지금 우리 아들한테 다 뒤집어씌우냐 말이에요?”강홍련의 말솜씨에 안민아는 할 말이 없어졌다. 한편, 안준휘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손에 든 찻잔을 꽉 움켜쥐었다. 양측이 심하게 다툴 때, 강재희의 담담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도정국의 빚이 도대체 얼마나 되는 거예요?”거실 안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조금 전까지 날뛰던 강홍련은 갑자기 얼굴이 굳어진 채 눈빛이 흔들리면서 안절부절못하였다. 어떻게 반박해야 할지 몰랐던 안준휘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야? 당신들 지금 내 딸한테 그 빚을 갚으라고 할 생각인 거야? 이러고도 우리 안씨 가문을 모해하지 않았다니...”강홍련이 뭐라 변명하려 할 때 강재희가 손을 뻗어 그녀를 막아섰다. “도유준이 성을 바꾼다면 도정국의 채무는 그와 무관해요. 그리고 언니가 이리 결혼도 안 한 신분으로 성이 다른 아들을 데리고 있는 건 보기에도 안 좋아요.”현재 강씨 가문은 강태식과 그의 자식들이 절대적 발언권을 가지고 있었다. 강재희가 딸이긴 해도 맏이로서 이미 회사 일을 많이 인계받은 상황이었다. 그러니 강재희의 뜻이 곧 강태식의 뜻이기도 했다. 강홍련은 내키지 않았지만 도유준은 내심 기뻤다.도정국의 빚을 갚을 필요가 없게 되었고 또한 강씨 가문의 도련님이 되었으니 남들 앞에서 당당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강씨 가문에서 준비한 예단도 받을 수 있고 안민아를 괴롭히고 도아린의 심기를 건드릴 수 있게 되었으니 일석이조가 아니겠는가? “난 좋아요.”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자신에게로 향해

  • 또 한 번의 거절   제471화

    안민아가 입을 열기도 전에 누군가 그녀의 뺨을 세게 내리쳤고 그녀는 바로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천한 계집애.”“아빠?”당황한 그녀는 자신의 목과 다리에 난 자국들을 가리려고 했지만 도저히 가릴 수가 없었다. 안준휘가 앞으로 한 발짝 더 다가와 뺨을 치려는 그때, 도유준이 그를 막아섰다.“민아와 저 서로 좋아하는 사이입니다. 민아랑 결혼하고 싶습니다.”“아니요. 난 싫어요... 난 원하지 않았어요.”고개를 가로젓던 안민아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도아린을 바라보았다.“차를 마시고 나서 몸이 안 좋았어요. 언니가 쉬러 가자고 했는데 일어나보니...”그 말에 안준휘는 독살스럽게 도아린을 노려보았다. 도아린의 손에는 손수건이 들려 있었는데 그건 강재민이 그녀를 위해 준비해 준 것이었다. 미리 양파즙을 발라놓은 손수건으로 눈을 닦자 이내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내가 마신 차는 민아가 나한테 준 거예요. 똑같은 차를 마셨지만 난 아무 일 없었고요.”그녀는 기억을 되짚어 보는 척하며 말을 이어갔다. “민아가 화장실에서 돌아온 뒤, 차에 감귤향이 난다고 하는 말에 민아도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어요.”안민아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도아린이 자신의 계획을 미리 알아차리고 화장실을 간 사이 찻잔을 바꿔치기 했을 거라는 의심이 들었다. 하지만 이곳에 와서 손보미 배지유와 얘기를 나눈 적이 없는데 도대체 뭐가 잘못된 걸까? 한편, 강씨 가문에서 이런 일이 생긴만큼 좀처럼 나서지 않던 강태식도 그 자리에 나타났다.강재희가 강씨 가문을 대표하여 입을 열었다.“안민아 씨, 도유준이 당신을 강요한 건가요? 아니면 두 사람이 서로 원해서 생긴 일인가요?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솔직하게 대답해요.”“도유준이 강요한 거라면 경찰에 신고하죠. 우리 가문은 절대 감싸고 돌지 않을 거예요. 만약 두 사람이 서로 좋아하는 사이라면 도유준이 우리 가문의 먼 친척이긴 해도 우리 가문에서 예단을 준비하도록 할게요. 절대 안민아 씨를 섭섭지 않게 할 거예요.”안민아

  • 또 한 번의 거절   제470화

    “이 사람들이 다짜고짜 쳐들어온 거야.”몸을 감싸고 싶었지만 이불이 안민아의 몸을 감싸고 있어 어쩔 수가 없었다.잡아당겨도 꿈쩍도 하지 않자 그는 아예 안민아의 치마를 잡아당겨 앞을 막았다. 손보미는 비명을 지르며 급히 몸을 돌리고 서둘러 배지유를 데리고 발길을 돌렸다.“이제 그만 나가자.”그러나 도아린이 어찌 그들을 그냥 이대로 돌려보낼 수 있겠는가? 모해를 하려다가 실패하니까 도망갈 생각인 것 같은데 어림도 없지...“민아 봤어요? 발꿈치가 닳아서 하인에게 연고 좀 가져다 달라고 했는데.”이불 밖으로 드러난 발이 빠르게 움츠러들었다. 손보미는 고개를 저었다.“글쎄. 다른 데 가서 찾아봐.”도아린이 길을 비켜주길 바랐지만 도아린은 문 앞에서 서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 방에 있는 여자가 나라고 생각한 거야? 또 날 모함할 생각이었네?”손보미는 휠체어 손잡이를 꽉 잡았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휠체어로 도아린을 날려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화가 치밀어오른 배지유는 다들 말이 없자 먼저 입을 열었다.“도아린 씨 핸드폰이 방안에서 울렸기 때문에 다들 그렇게 생각한 거예요. 그러니까 멋대로 사람 오해하지 말아요.”“내 핸드폰은 사촌 동생이 가지고 있어요. 핸드폰이 방에 있다는 건 민아도 이 방에 있다는 뜻인데.”얼굴이 싸늘해진 그녀가 경계에 찬 눈빛으로 손보미를 쳐다보았다. “지난번에 날 음해하려다가 실패하니까 이젠 내 여동생한테까지 분풀이를 하는 거야?”“나 아니야.”말을 하던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며 휠체어 손잡이를 꽉 잡았다.“지난번에도 날 모욕했었잖아. 도대체 왜 또 이러는 거야? 내가 건후 씨랑 결혼하게 되니까 질투하는 거야?”차갑게 콧방귀를 뀌던 도아린은 들고 있던 꽃다발을 서랍장에 던져버렸다.“재민 씨, 내 핸드폰으로 다시 전화 걸어줘요. 핸드폰에 민아 연락처 있으니까 어디 한번 전화해 보죠. 민아를 찾지 못하면 오늘 누구도 이 방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해요.”배지유는 급한 마음에 손보미를 돌아보았고

  • 또 한 번의 거절   제469화

    “아린 씨는요?”“발이 아프다고 하인에게 게스트룸으로 안내해달라고 한 것 같아요.”말을 하던 손보미가 배지유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너도 휠체어에 너무 오래 앉아 있었어. 가서 좀 쉴래?”“그래요.”세 사람은 이내 게스트룸으로 향했고 하인이 문을 열 때, 건너편 방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손보미는 이내 배지유의 귀를 틀어막았다. 혹여라도 배지유가 나쁜 물이 들까 봐 걱정되었던 것이다.한편, 안색이 굳어진 강재민이 앞으로 다가가 방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뜨겁게 달아오른 방안의 두 사람은 노크 소리를 전혀 듣지 못하였다.“아린 씨. 아린 씨, 어디 아픈 거야? 의사라도 불러줘?”그 누구도 그 안에 있는 사람이 도아린이라고 한 적이 없지만 손보미는 그녀에게 누명을 씌우기에 바빴다. 얼굴이 한껏 어두워진 강재민은 핸드폰을 꺼내 들고 전화를 걸었고 도아린의 전화가 방안에서 울리기 시작했다.손보미는 애써 득의양양한 표정을 감추고는 문을 더 세게 두드렸다. 강씨 가문의 모든 사람에게 이 일을 알리고 싶다는 듯이 그녀는 목소리를 한껏 높였다. “아린 씨, 문 좀 열어봐. 걱정돼 죽겠어. 건후 씨랑 이혼은 했지만 그렇다고 강씨 가문에서 이런 사고가 나면 안 되는 거잖아.”강재민의 눈빛에 살기가 가득했다. 문고리를 잡고 있는 힘껏 당겼지만 안에서 문을 잠가버린 상황이었다.“열쇠 가지고 와요. 얼른 열쇠 가져오라고요.”손보미가 하인을 향해 소리쳤다. 돌발상황에 놀란 듯 멍해 있던 하인은 손보미의 말을 듣고서야 정신을 차리고 급히 자리를 떴다. 이때, 강재민이 두 발짝 물러서더니 문을 거세게 걷어찼다.쾅!방문이 바닥에 쓰러지고 침대 위 뒤엉켜 있던 두 사람은 순식간에 몸이 굳어졌다.“아악.”여자는 재빨리 이불을 집어 들고 자신을 감쌌다. 손보미는 앞으로 다가가 남자의 등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도유준 나쁜 자식.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아린 씨는 네 누나인데. 누나한테 어떻게 이런 짓을 해.”“우리 누나 아니야.”그가 손보미의

  • 또 한 번의 거절   제468화

    안민아는 마시면 마실수록 목이 말랐다. 한 잔 마시고는 또 한 잔 따라 마셨다. 이번에는 도아린의 말처럼 달콤한 맛이었다. 설마 내가 찻잔을 잘못 집어 든 걸까?그럴 리가 없는데. 분명히 지정된 찻잔을 언니한테 건네줬었는데...생각하면 할수록 무서웠고 점점 식은땀이 나고 잔을 들고 있던 손이 주체할 수 없이 떨렸다. “왜 그래? 얼굴이 왜 이렇게 빨간 거야?”도아린은 핸드폰에서 시선을 떼고 그녀의 이마를 향해 손을 뻗었다.급히 뒤로 물러나면서 안민아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괜찮아요, 그냥 좀 더워서요.”“그래? 몸이 불편하면 재민 씨한테 말하고 먼저 돌아가자.”도아린이 서재로 통하는 계단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아니에요.”급히 도아린의 손을 움켜쥐던 그녀는 재빨리 손을 뺐다. 그녀는 눈 밑의 당황스러움을 애써 감추고 발을 들어 도아린에게 보여주었다.“아침에 정원을 구경하다가 뒤꿈치가 닳았어요. 반창고 좀 가져다줄래요?”도아린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애원하는 그녀의 눈빛에 도아린은 결국 하인에게 부탁했다. ...“젠장, 사람을 어떻게 이리 깔볼 수가 있는 거야?”도유준은 문을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들어와서 밥도 먹지 못하게 하더니 이제는 남은 음식까지 내놓지 않는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그들도 어엿한 강씨 가문의 일원이고 구걸하는 거지가 아닌데 말이다. “그만해. 힘 아껴두었다가 나중에 쓰란 말이야.”강홍련은 화장대 거울을 보며 이마에 반창고를 붙였다.“나중에 또 뭐요? 화장실도 못 가는데 무슨 일을 더 해요?”문을 향해 발을 걷어차고는 그가 침대에 털썩 주저앉았다.상처를 처리한 뒤, 강홍련은 뒤돌아서서 도유준을 쳐다보았다. “도아린이 그 일을 알고 있는 한 우리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도아린을 이대로 둘 수는 없어. 아주 처참히 짓밟아서 다시는 일어설 수 없게 만들어야 해.”주먹을 불끈 쥔 채 이를 악물던 그가 음흉하고 흉악한 눈빛을 보였다.도아린을 짓밟고 싶다는 마음이 굴뚝 같았지

  • 또 한 번의 거절   제467화

    강씨 가문의 남매는 긴 테이블의 양 끝에 앉았고 손보미는 배지유와 한쪽에, 도아린은 안민아와 한쪽에 앉았다. 그들은 식사를 하면서 가볍게 얘기를 주고받았고 분위기도 꽤 좋은 편이었다. 잠시 후, 하인이 들어와서 강재희의 귓가에 대고 몇 마디 속삭였다.강재희는 도아린을 힐끔 쳐다보고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정신을 잃었으면 그냥 돌려보내요. 문 앞에서 얼쩡거리게 하지 말고.”“네.”한편, 하인에게서 그 일을 듣고도 손보미는 모른 척 시치미를 뗐다.“올 때 보니까 강홍련 모자가 문 앞에 무릎을 꿇고 있던데 무슨 일인가요?”“새언니한테 미운털이라도 박힌 거예요? 연성에서도 그러더니 해남까지 와서도 날뛰는 건 마찬가지네요.”얼핏 들으면 강홍련 모자를 말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도아린을 비아냥거리는 것이었다. 두 사람이 서로 맞장구를 치는 와중에도 도아린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가 안민아를 향해 물었다.“새우 먹을래?”갑작스러운 물음에 안민아는 당황한 얼굴이었고 고개를 끄덕이다가는 다시 급히 고개를 갸웃거렸다. 테이블 위에 있는 새우는 한 사람당 한 마리씩이었고 그녀는 이미 한 마리 먹었다. 정신을 딴 데 팔고 있는 걸 언니가 눈치챈 걸까?“내 거 먹어.”도아린은 자신 앞에 있던 새우를 안민아에게 건네주었고 안민아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이때, 손보미가 팔꿈치로 배지유를 건드리며 테이블 맞은편에 앉아 있는 도아린을 쳐다보았다.“몸매가 좋은 건 다 이유가 있다니까. 아린 씨 식단 조절 하나 봐?”“하긴 건후 씨가 식단 조절하니까 그렇지. 건후 씨 식단 같이 먹으면 몸매가 더 좋아질 거야.”손보미는 사람 가슴에 비수를 꽂은 일을 참 잘한다. 그녀의 빈정거림에도 도아린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러나 배건후의 얘기만 나오면 손보미는 몸이 근질근질하였다. 문득 생각이 떠오른 도아린이 입을 열었다.“어제 보미 씨가 산 물건들을 건후 씨가 안 받겠다고 하던데. 결국 어떻게 처리했어?”젓가락을 쥐고 있던 손보미의 손에 힘이

  • 또 한 번의 거절   제466화

    “허튼소리 하지 마. 지금 나와 정국 씨 사이를 이간질하려는 거야?”바닥에서 일어난 강홍련은 오랜 시간 무릎을 꿇고 있던 탓에 다리가 저려 비틀거리다가 다시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내가 도씨 가문으로 들어온 후, 엄마는 몇 번이나 임신한 적 있었죠. 그러나 뱃속의 아이가 여자아이라는 이유만으로 도정국은 엄마한테 아이를 지우길 강요했었어요. 그러다가 엄마가 지현이를 임신하였고 도정국은 임산부한테 좋다는 이유로 대량의 보양식을 엄마한테 먹게 하였고 결국 뱃속의 아이가 보통 아이들보다 훨씬 많이 컸었죠.”“출산 당일, 제왕절개를 해야 한다는 의사의 소견에도 도정국은 수술 동의서에 사인을 거부하였고 결국 최적의 치료 시간을 놓친 탓에 엄마는 양수색전증으로 사망하게 되었어요.”도아린은 싸늘한 목소리로 한마디 한마디 내뱉었다. 그녀의 말에 강홍련은 두 손으로 땅을 짚고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 모든 것들을 당신이 도정국한테 시킨 거죠?”강홍련이 아니라면 남자인 도정국이 어찌 아이를 낳는 위험에 대해 이리 잘 알 수가 있었겠는가? 두 사람은 정은채를 죽이고 정은채의 재산을 가로챈 것도 모자라 정은채의 하나뿐인 아들마저 잘 키우려 하지 않았다. 바닥에 쓰러지던 강홍련은 계단 모서리에 이마를 부딪혔고 순식간에 피가 흘러나왔다. 힘겹게 일어서는데 핏방울이 얼굴을 타고 눈 속으로 흘러 들어가 참기 힘들 정도로 따끔거렸다.이때, 도유준이 달려와 그녀를 부축하면서 도아린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무슨 증거가 있어 이러는 거야?”도아린의 차가운 시선이 강홍련에게서 도유준의 얼굴로 향했다. 그녀는 칼날처럼 날카로운 검은 눈동자를 치켜들고 계속해서 쏘아붙였다. “팥 심은 데 팥 나고 콩 심은 데 콩 난다고 하더니. 지현의 다리가 어떻게 부러졌는지 지현이가 왜 그 높은 곳에서 떨어졌는지 도유준 넌 잘 알고 있잖아.”손에 힘이 풀리는 탓에 강홍련은 또 바닥에 주저앉았고 계단에 머리를 부딪히게 되었다. 오른쪽과 왼쪽 이마에 상처가 생겼고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 또 한 번의 거절   제465화

    문으로 가정부들이 드나들면서 강씨 가문의 전체 사람들이 그들의 추태를 보게 되었고 앞으로 강씨 가문에는 그들의 지위가 사라지게 된 셈이다도아린이 아버지가 공개 사과를 하게 억지를 부리지 않을 수만 있다면 강홍련 같은 먼 친척 한 명쯤은 체면이 깎여도 상관없었다.강씨 가문의 뒤뜰에는 아카시아 꽃을 넓게 심었고 작은 꽃봉오리가 꽃을 피워 공기 속에는 꽃향기가 은은하게 풍겨왔다. 안민아는 일부러 늦게 걸으면서 셀카를 몇 장 찍었고 인스타그램에 올릴 때 위치까지 설정했다.그녀가 고개를 들었을 때 도아린과 강재민은 멀리 가 있었다.도아린은 오늘 옅은 색의 몸에 딱 붙는 셔츠에 진한 색의 청바지를 입었고 가방을 가로 메고 있었다. 뒤에서 봤을 때 허리가 유독 가늘어 보였고 힙업이 돋보였다.안민아는 자신의 허리를 만져보았다. 그녀는 도아린보다 살집이 적었지만, 몸매가 좋지는 않았다.남자가 아닌 자신이 봐도 도아린의 몸매가 탐이 났다.강재민은 안민아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보고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당신 사촌 동생은 아직 마음을 접지 않았나 봐요.”도아린은 허리를 숙여 꽃을 하나 따고는 천천히 말했다.“일을 좀 깔끔하게 처리해요. 저를 방패막이로 삼지 말고 재희 씨를 오해하게 만들지도 말아요. 우리는 함께 할 수 없어요.”강재민은 그녀의 손에서 꽃을 건네받고는 중지로 그것을 으깼다.“이혼 숙려 기간이 곧 끝나가요. 아린 씨도 깔끔하게 처리했으면 좋겠어요.”“...”도아린은 그의 눈을 쳐다보았다.강재민은 눈썹 뼈가 튀어나왔고 눈이 깊었는데 어머니의 유전이었다.입체적인 오관은 도도한 느낌을 주었고 도아린을 쳐다볼 때 더 단호한 눈빛이었다.“엠파이어 빌딩의 고객 자료는 배지유가 준 거죠.”도아린이 말했다.“재민 씨는 진작에 배건후를 노렸던 거예요. 일부러 저에게 관심이 많은 척하는 건 배건후의 화를 돋우는 수단일 뿐이죠. 건후 씨의 사업을 빼앗고 여자까지 빼앗아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다 충격을 주려는 거죠.”강재민은 한참 침묵하더니 갑자

  • 또 한 번의 거절   제464화

    “도아린, 강씨 가문의 사람들이 말하는데 끼어들지 마!”강홍련은 화를 냈다. 당장 주머니에 들어올 돈이 날아 나서는 절대 안 된다.“네가 도정국을 아버지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아가씨가 준 돈도 손을 대지 마!”강홍련은 당당하게 말했다.“나는 정국 씨와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지만, 아들을 낳아줬고 십몇 년을 함께 살았기에 사실혼 사이야. 아가씨가 준 돈은 반드시 내가 관리해야 해!”도아린은 웃음을 터뜨렸고 그 웃음에 강홍련은 소름이 끼쳤다.그녀는 못마땅하게 도아린을 째려보고는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강홍련을 쳐다보았다.“아가씨, 정국 씨는 도아린의 함정에 빠져 빚을 지게 된 거예요. 정국 씨에게 새로 시작할 기회를 준다면 반드시 아가씨의 은혜에 보답할 거예요!”강재희는 강홍련이 멍청하기 그지없다고 생각했다.방금 자신이 도아린의 의견을 묻는 것을 못 봤다는 말인가? 강홍련은 강재희가 불쾌해하는 것이 도아린 때문인 줄 알고 더 의기양양해서 말했다.“도아린, 진씨 가문에서는 네가 허영에 눈이 먼 속물이라는 것을 언젠가는 알게 될 거야. 그때가 돼서 진씨 가문에서 쫓겨난다고 하더라도 우리를 찾아올 생각은 하지 마!”강재희는 깊은 한숨을 내쉬고 도아린을 보며 물었다.“합의는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도아린은 찻잔을 들었다. 강재희는 한참을 기다려도 도아린이 대답하지 않자 불쾌함이 더 증가했다.체면을 봐주니까 더 허세를 부리고 있는 모양이다.“강씨 가문 사람들이 얘기하고 있는데 도씨 성을 가진 사람한테 물어서 뭐해?”강재민이 느긋하게 말했다.강재희는 강재민을 흘겨보고는 강홍련을 쳐다보았다.“당신과 도정국 씨가 사실혼 관계라면 그 사람의 채무도 두 사람의 공동채무가 되는 거죠. 당신과 도정국 씨가 함께 갚아요.”강홍련은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다.“아가씨, 방금 한 얘기는...”“제가 도아린 씨와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끼어들지 마세요.”강홍련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그들보다 나이가 많은 어른이었지만 강재희가 왜 도아린을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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