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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도아린은 홀로 쓸쓸하게 복도에 앉아있다가 응급조치를 마쳤다는 간병인의 말을 듣고서야 정신을 차렸다.

도지현은 다시 한번 저승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왔다. 하지만 의사는 도지현의 각 수치가 한계에 도달했다면서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

도아린은 의사에게 허리 굽혀 인사한 후 병실로 돌아와 남동생의 팔을 어루만졌다.

“이모, 가서 쉬세요. 지현이랑 단둘이 있고 싶어요.”

간병인은 도아린이 자존심이 강해서 남들에게 연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럼 옆에 탕비실에 있을 테니까 무슨 일 있으면 불러요.”

도지현은 무릎 밑으로 두 다리를 절단했고 허벅지 근육도 거의 다 수축해서 다리가 팔보다도 더 가늘었다.

그녀보다 도지현을 더 잘 아는 사람은 없었다. 아픈 몸 때문에 힘들어도 늘 밝았던 동생이었다.

장애인 농구팀에 입단한 후에는 열심히 운동하고 생활을 공유하기도 했다. 절대 시합을 한 게임 졌다고 목숨을 끊을 사람이 아니었다. 하여 그녀는 도지현이 깨어나서 그날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직접 말해주길 바랐다.

두 팔을 다 마사지하고 나니 도아린의 손이 다 떨릴 정도로 저릿했다. 간병인이 와서 도지현의 몸을 닦아주었고 도아린은 옥상으로 가서 소유정의 전화를 받았다.

“널 방해한 건 아니지?”

“아니. 나 지금 병원이야.”

도아린은 젖은 머리가 마르도록 풀어헤쳤다.

“지현이...”

“다시 살려냈어.”

“그래. 의료 기술이 계속 발전하니까 언젠가 깨어날지도 몰라.”

소유정은 그녀를 위로한 후 본론을 얘기했다.

“나형욱 선생님이 또 날 찾아왔어. 네가 지난번에 수선한 자수 드레스가 엄청 마음에 든다면서 선생님 팀으로 들어오래.”

나형욱은 수선 명인이었다. 그와 한 번만 손을 잡아도 몸값이 배로 뛰는 건 문제없었다. 그런 그가 도아린을 직접 스카우트하려 한다는 건 그녀의 실력을 인정한다는 뜻이었다.

도아린의 솜씨도 업계에서는 손꼽히는 정도였다. 배건후와 결혼한 후에는 가정에만 충실하다 보니 그저 손이 굳어지지 않으려고 세컨드 계정으로 일을 조금씩 받곤 했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반드시 열심히 노력해서 돈을 벌어 이혼 후에도 남동생이 똑같은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했다.

“그렇게 할게.”

“뭐?”

소유정이 화들짝 놀랐다. 전에 도아린에게 본격적으로 시작하라고 여러 번이나 타일렀었지만 도아린은 계속 거절했었다.

“주소 보내줘. 한번 다녀올게.”

도아린이 계속하여 말했다.

“내가 자주 쓰는 그 계정은 아무한테도 알려주지 마.”

소유정이 정신을 차리고 물었다.

“너 출근할 수 있어? 남편 챙기지 않아도 돼?”

“이혼하겠다고 했는데 동의 안 하더라고. 근데 언젠가는 할 거야.”

도아린의 말투는 마치 당사자가 아닌 것처럼 차분하기 그지없었다.

“진작 그렇게 했었어야지. 그 인간쓰레기는 널 못살게 굴기만 하고. 넌 그런 사람이 뭐가 좋다고 그렇게 매달렸는지, 참.”

소유정이 분노를 터트렸다.

“둘이 친밀한 관계인 거 보여주는 사진을 찍으면 혼인신고서를 꺼내서 보여줘. 두 연놈 아주 작살나게!”

“사진?”

“그건 중요하지 않아.”

소유정이 교활하게 웃었다.

“하늘은 우리 편이라서 두 연놈 언젠가는 망할 거야. 그럼 지금 나 선생님께 전화할게. 선생님 엄청 기뻐하시겠다.”

도아린은 소유정이 뭔가를 숨기고 있는 것 같아 캐물으려 했지만 소유정이 전화를 끊어버렸다.

머리를 흩날리며 무심결에 고개를 돌렸는데 복도에 익숙한 모습이 스쳤다. 도아린이 재빨리 다가갔지만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내가 잘못 봤나? 그 사람일 리가 없는데.’

...

도아린은 병실에 밤새 있다가 이튿날에 택시를 타고 소유정네 집으로 갔다. 잠이 마구 쏟아지던 그때 전화벨 소리가 그녀를 깨웠다.

“여보세요?”

도아린이 목청을 가다듬고 전화를 받았다.

“사모님...”

도우미가 주눅이 든 목소리로 말했다.

“대표님 아침은...”

밤을 새운 탓에 도아린은 아직 제정신이 아니었다.

“냉장고 두 번째 층에 준비한 거 있으니까 그거 챙겨주면 돼요.”

도우미는 전화를 움켜쥐었다가 이내 또 말했다.

“없는데요? 두 번째 층에는 하루 지난 샐러드밖에 없어요.”

“그럴 리가요. 어제 국수를 말아먹었는데 샐러드라니요?”

도아린이 미간을 어루만졌다.

“그럼 건후 씨한테 뭘 먹겠는지 물어봐서 지금 해줘요.”

도우미의 겁먹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난번에 제가 아침을 준비한 바람에 대표님께서 두 달 치 보너스를 깎았어요. 죄송한데 사모님이 직접 와서 하시면 안 돼요?”

도아린은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말투를 들어보니 배건후가 옆에 있는 게 분명했다.

배건후는 지금도 몸매가 완벽한데도 저지방 음식을 먹겠다고 고집했다. 도아린이 영양이 균형적인 식단을 만들기 위하여 냉장고에 음식을 많이 준비해뒀는데 찾지 못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냉장실에 없으면 냉동실에서 찾아봐요. 그래도 없으면 배달시키고요.”

그러고는 가차 없이 전화를 확 끊어버렸다.

‘손보미는 한밤중에 불러내서는 밥도 안 챙겨준 거야?’

그 시각 도우미는 화가 난 배건후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전화 끊었어요...”

옆에서 다 들은 배건후가 시선을 늘어뜨렸다.

“제가... 해드릴까요?”

배건후는 차가운 얼굴로 잠깐 고민하다가 말했다.

“단호박 몇 분 삶아야 하는지 물어봐요.”

도우미는 어이가 없었다.

단호박을 어느 정도 사이즈로 자르고 몇 분 삶아야 하는지는 배건후가 수차례 트집을 잡은 후에 고정된 기준이 생겼다. 맨날 먹는 그가 모를 리가 있겠는가?

도우미의 월급이 높고 또 평소 일도 많지 않고 한가했기에 이만큼 좋은 일자리가 없었다.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도우미는 하는 수 없이 도아린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는 한참이 지나서야 전화를 받았다.

“사모님, 찾았어요. 근데 안에 소고기랑 옥수수가 있어서 대표님이 어떤 걸 좋아하시는지 몰라 아무렇게나 할 수가 없네요.”

소유정네 집 문 앞까지 도착한 도아린은 어깨로 휴대전화를 받쳐 들고 키를 찾은 다음 문을 열었다.

“3cm 되는 갈비를 육수에 삶고 옥수수는 갈면 돼요.”

도우미의 목소리가 잠깐 있다가 들려왔다.

“육수 어디 있어요?”

“...”

도아린은 숨을 깊게 들이쉬고 말했다.

“건후 씨 바꿔줘요.”

“대표님 러닝하러 나가셨어요...”

“그럼 들어오면 다시 전화해요.”

잠깐 조용해졌다가 다시 소리가 들렸을 땐 배건후의 낮게 깔린 목소리였다.

“무슨 일이야?”

‘뭐지? 어디서 시치미야?’

소유정네 집으로 들어온 도아린은 오늘 입을 옷을 찾아낸 다음 침착하게 말했다.

“오늘은 그냥 배달시켜 먹고 음식 잘하는 도우미 구해요. 난 이제 더는 건후 씨 시중 못 들어요.”

“못 든다고?”

배건후가 조롱 섞인 말투로 말했다.

“누가 집의 도우미를 자르고 요리 학원 다녔더라? 또 누가 남자의 마음을 잡으려면 입맛부터 잡아야 한다고 했지? 나한테 실패한 맛없는 요리를 먹이면서 좋아했던 거 아니었어?”

도아린은 또다시 가슴을 칼로 도려내듯 아팠다. 요리를 배우느라 손을 여러 번 다쳤었다. 그런데 배건후는 걱정하기는커녕 오히려 그녀를 비웃었다.

단둘이 있을 때도 뭐라 하더니 이젠 도우미 앞에서까지 말하는 건 너무나도 큰 치욕이었다.

화가 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그런지 도아린은 구역질이 다 났다. 하지만 참고 또 참으며 달라진 말투로 말했다.

“얼른 이혼 합의서에 사인하면 내가 해준 쓰레기 음식 먹지 않아도 돼요. 누굴 만나고 싶으면 만나도 되고.”

그녀의 말에 배건후의 눈빛이 확 싸늘해졌다.

“도아린, 오냐오냐하니까 눈에 뵈는 게 없어?”

“나한테 언제 오냐오냐해준 적이 있었어요?”

도아린은 화가 나다 못해 웃음을 터트렸다. 이번에는 배건후가 먼저 전화를 끊어버렸다. 도아린은 두 눈을 비빈 다음 옷을 갈아입었다.

매번 음식을 기분 좋게 배건후에게 해줬지만 돌아오는 건 그의 혐오 가득한 눈빛이었다. 그가 음식을 삼키면서 구역질을 참았을지도 모른다.

도아린은 배건후의 마음을 얻으려고 맨날 가스 불 앞에서 맴돌았다. 그렇게 점점 생존 능력을 잃어가는 여자로 되면서 기생충처럼 그의 옆에 붙어있었다.

배건후가 아니라 이젠 도아린마저도 그런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대표님, 제가 아침 준비해드릴까요?”

도우미가 도아린이 준비한 반찬통을 꺼냈다. 두 부부가 말다툼하는 건 본 적이 있어도 배건후의 표정이 이토록 어두운 건 처음 봤다.

배건후는 냉장고 안의 일주일 치 반찬통과 그 위에 붙어있는 조리방법을 쳐다보았다. 마음이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답답하고 괴로웠다.

“도아린이 말한 대로 해요.”

도우미는 타이머까지 사용하면서 도아린의 조리방법대로 조리했다. 그런데 배건후가 맛을 봤을 때 그녀가 해준 것과 완전히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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