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건후가 손목에 실로 딴 붉은 팔찌를 하고 있었는데 팔찌 가운데 금색 오팔이 몇 개 있었다.도아린은 온몸이 굳어버리면서 눈빛이 급격하게 흔들렸고 호흡마저 불안정해졌다. 배건후는 그런 그녀를 보면서 여전히 다정한 말투로 말했다.“잃어버린 줄 알았는데 오늘 커프스단추 찾다가 찾았어.”도아린은 떨리는 마음을 애써 눌렀고 배건후의 눈조차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다.“화장실 다녀올게요.”배건후는 그녀의 다급한 발걸음을 싸늘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육민재의 시선이 배건후의 손목에 닿았다. 아직 두 사람 사이의 미묘한 기류를 알아채지 못했다.“이 빨간 팔찌는 무슨 의미라도 있어?”“없어.”배건후는 담뱃재를 털면서 다른 곳을 쳐다보았다.“오늘 저녁에 손님들이 많이 왔구나. 가서 손님들 맞이해.”그러고는 도아린을 따라갔다.도아린이 손보미가 아까 있었던 자리에 갔을 때 손보미는 그곳에 없었다. 마음을 가라앉히자 빨간 팔찌가 눈에 맴돌았다. 3년 동안 보이지 않아서 배건후가 버린 줄 알았는데...그때 그 빨간 팔찌가 아니었더라면 사람을 잘못 봤을 리도 없었다.발걸음 소리가 들려오자 도아린은 정자에 들어가 앉았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그녀가 있는 줄 모르고 뒷담화했다.“도아린 봤어? 무슨 낯짝으로 여길 왔는지, 참. 내가 다 민망하더라고. 근데 걔는 민재 도련님이랑 배 대표님 앞에서 아주 예쁜 척하더라?”“낯가죽이 두꺼운데 뭔 짓인들 못 하겠어. 배 대표님 조건이 얼마나 좋아. 그때 당하고 아직도 트라우마에서 못 벗어났어.”“그러게 말이야. 근데 손보미가 귀국했으니까 상황이 달라졌어.”대화 소리가 갑자기 끊기더니 다급하게 지나가는 발걸음 소리만 들렸다.도아린은 마음을 완전히 가라앉히고 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계단을 내려가다가 그만 발을 헛디뎌 한 남자의 품에 와락 안기고 말았다.“죄송합니다...”립스틱이 상대의 옷깃에 묻고 말았다....화이트 드레스를 입은 손보미는 마치 예쁜 꽃처럼 여리여리했다.“오빠한테 전화해볼까요?”배지유의 말이
그러다가 배건후에게 들킬까 봐 살짝 도발만 하고 휙 가버렸다....다행히 상대가 도아린의 어깨를 잡은 덕에 넘어지진 않았다. 도아린이 재빨리 거리를 넓히고 고개를 든 순간 머리가 쭈뼛 서는 것 같았다.“여긴 왜 왔어요?”배건후의 시선이 그녀의 입가에 묻은 립스틱으로 향했고 눈빛이 차갑기 그지없었다.“누구 찾아?”“길을 잃었어요.”도아린이 마음을 가라앉히긴 했지만 조금 켕기는 게 있긴 했다. 배건후는 그녀를 정자 쪽으로 밀어붙이더니 손을 내밀어 빨간 팔찌를 보여주었다.“이거 보니까 괴로워?”알고 보니 그의 계획이었다.도아린이 고개를 들고 쳐다보자 배건후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왜 이렇게 긴장해? 이 팔찌 때문에? 아니면 팔찌 뒤에 숨은 일 때문에? 아니면... 그 사람 때문에?”도아린은 등골이 다 오싹했다. 배건후는 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 치욕을 잊지 않았다.“도아린.”배건후의 말투가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그의 비꼬는 듯한 말투에 도아린은 마치 밧줄로 목을 조른 것처럼 머리가 지끈거렸다. 뒤로 한걸음 물러나자 기둥에 부딪히고 말았다.배건후는 다시 바짝 다가가 내려다보며 말했다.“도아린, 그때 그 일 계획이었어? 아니면...”“사람 잘못 보지 않았더라면 절대 건후 씨 방에 들어가지 않았어요.”도아린이 그의 말을 잘라버렸다. 아무 의미도 없는 질문을 그는 여러 번이나 물었다. 진실이 그렇게 중요할까?배건후는 갑자기 도아린의 허리를 감싸 안고 품 안으로 잡아당겼다.“내 얼굴 봤을 때 죽이고 싶었지? 만약 민재였더라면 엄청 다정했을 텐데. 널 병원까지 가게 하지도 않았고.”“배건후 씨, 그 입 다물어요!”‘입 다물라고?’배건후의 표정이 더욱 어두워졌다.“3년을 버티니까 민재가 돌아왔네? 아까 내가 잡지 않았더라면 민재 품에 안겼겠어.”그는 도아린의 드레스를 보며 싸늘하게 웃었다.“일부러 걔랑 커플룩으로 맞춰 입기까지 하고. 근데 아쉬워서 어쩌나. 그때 민재가 널 버렸는데 지금 한 번 다녀온 널 쳐다보기나 할까?”배
먼 곳의 소리가 갑자기 멈췄다. 하도 조용해서 서로의 숨소리마저 들릴 정도였다.배건후는 엄지손가락으로 도아린의 얼굴을 쓰다듬었다.“어머니 건강을 위해서 이혼하지 않기로 했어.”도아린은 조롱 가득한 그의 두 눈을 빤히 보면서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건후 씨, 어머님을 핑계로 대지 말아요. 그때 일 때문에 화가 나서 일부러 날 못살게 구는 거잖아요. 난 그렇다 쳐도 손보미 씨를 이렇게 내버려 둘 거예요?”그의 두 눈이 어찌나 깊은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아예 알 수가 없었다. 그가 도아린을 밀어내고 옷을 정리하자 그녀도 재빨리 드레스를 여미고 화장을 수정했다.도아린이 수정을 마친 후 배건후는 어디로 갔었는지 연회가 시작돼서야 다시 돌아왔다.오늘 생일 연회의 주인공 나영옥은 육민재의 부축을 받으며 연설했다. 연설이 끝난 다음에 선물 증정식이 이어졌다.재벌인 그녀가 못 본 게 뭐가 있겠는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들은 속물이나 마찬가지였다. 하객들이 줄을 서서 선물을 주자 나영옥은 웃으면서 옆 카트에 놓으라고 했다.배건후가 준비한 선물은 맑고 투명한 비취 목걸이였는데 평안을 뜻했다.도아린도 재빨리 선물을 꺼냈다. 사실 두 사람이 선물 하나만 준비해도 됐었다. 이런 행동은 오히려 그와 관계를 끊고 싶어 한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십상이었다.배건후의 표정이 어두워졌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나영옥은 도아린을 보자마자 줄곧 차분했던 표정이 조금 환해졌다.“아린아, 네가 만든 향낭이야?”3년 전 도아린은 나영옥에게 향낭을 선물한 적이 있었다. 그 향낭을 몸에 지니고 다닌 후로 정신이 한결 맑아진 것 같았다. 나중에 그런 일이 있은 후에 향낭의 향이 옅어졌는데도 아까워서 버리질 못했다.“할머니 만수무강하세요.”도아린이 다정하게 웃으면서 말했다.이 향낭을 만드느라 그녀는 밤까지 새웠다. 밖의 자수는 평소 자주 보던 그런 평범한 무늬가 아니었고 3년 전에 나영옥에게 줬던 것과 같은 모양이었다.나영옥은 기뻐하며 비취 목걸이와 향낭을 주머니에 넣었다
도아린은 연회장을 나가서 메시지를 보냈다.손보미의 차례가 됐을 때 나영옥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집사에게 그냥 카트에 담으라고 했다. 손보미는 배건후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렇지 않으면 비싼 돈을 들여 준비한 게 물거품이 되니까.그런데 나영옥은 그녀의 선물만 카트에 담은 게 아니었다. 넣었던 걸 다시 꺼내서 열어본다면 다른 사람들이 손보미를 싫어할 게 뻔했다.손보미가 망설이던 그때 배지유가 선물을 꺼냈다.“할머니, 제가 준비한 건 비취 팔찌예요. 하는 일이 뜻대로 되길 바랍니다.”나영옥이 그녀가 준비한 선물을 보지 않을까 봐 미리 꺼냈다.그런데 그때 배건후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배지유가 준비한 선물이 바로 도아린의 비취 팔찌였던 것이었다.나영옥이 힐끗 쳐다보다가 무덤덤한 얼굴로 말했다.“받아서 카트에 넣어.”배지유는 배건후의 옆에 앉아 나지막하게 말했다.“오빠, 도아린 단속 좀 해요. 이러다 우리 가문 망신당하겠어요.”옆에서 느껴지는 싸늘한 기운에 배지유는 음료수를 먹다가 멈칫하고 고개를 돌렸다.“오빠, 왜 그렇게 봐요? 보미 언니가 오자고 해서 온 거예요. 이따가 집에 들어가서 안 나오면 되잖아요.”“아린이 팔찌를 선물로 가져와?”배건후의 목소리가 얼음장처럼 차가웠고 눈빛도 매우 날카로웠다. 그러자 배지유가 손을 바들바들 떨었다.‘망했다. 아까 열지 말았어야 했는데. 오빠가 옆에 있는 거 깜빡했어.’그의 날카로운 시선에 배지유는 가시방석에 앉아 있는 것만 같았다.“오빠가 내 카드 정지해서 선물 살 돈이 없었어요.”배지유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팔찌는 오빠가 사준 거잖아요. 할머니께 드린 건 우리 가문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해서예요.”배건후의 시선이 배지유의 목에 머물렀다. 그가 도아린에게 준 루비 목걸이를 하고 있었다.집 비밀번호를 바꿨기에 배지유는 더는 들어갈 수 없었다. 그렇다면 도아린이 직접 목걸이를 줬을 가능성밖에 없었다.도아린은 이런 주얼리 같은 걸 전혀 아까워하지 않았고 배지유에게 마음대로 주었다.순간 분노
“사람들이 내가 나영옥 할머니와 관계가 좋은 걸 믿고 민재 씨한테 결혼을 강요하고 빚을 갚아달라고 강요한 줄 알아요. 해명해도 되고 부인해도 되고 심지어 모른 척해도 돼요. 근데 내가 매번 힘들게 빌린 돈을 가로막진 말았어야 했어요.”도아린의 눈시울이 붉어졌다.그해 겨울, 도아린은 돈을 빌리려고 뭐든지 다 했었다. 상대가 겨우 돈을 빌려주겠다고 해서 이튿날에 찾아갔었는데 갑자기 태도를 바꾸면서 절대 빌려주지 않겠다고 했었다. 이유를 설명하진 않았지만 육민재가 압력을 가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육민재는 그녀의 말을 가만히 듣다가 안경을 닦고는 다시 꼈다.“너도 배후 조종자가 나라고 생각하는구나.”도아린은 침묵으로 답을 대신했다. 육민재의 두 눈에 취기가 조금 사라진 듯했다. 안경 유리알에 빛이 반사되어 눈빛을 가렸다. 도아린이 자리를 떠나려던 그때 육민재가 덤덤하게 말했다.“내가 그런 거 아니야.”육민재도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았고 도아린도 캐묻고 싶지 않았다. 아무런 의미가 없으니까.두 사람이 아무도 말이 없자 분위기가 삽시간에 어색해졌다.“먼저 가보겠습니다.”도아린이 한마디를 던지고 자리를 비웠다....손보미가 배지유를 살짝 잡아당겼다.“건후 씨한테 약 타 먹이지 마. 이건 좀 아닌 것 같아.”사실은 약을 먹였는지 확인하는 거였다. 배지유는 오빠가 근처에 없는 걸 확인하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아까 내가 일어나자마자 오빠가 앞에 있던 차를 바꿔버렸어요.”경계심이 정말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가족까지 경계할 줄은 몰랐다.‘이게 다 도아린 때문이야!’손보미는 몰래 이를 꽉 깨물었다. 이 결과가 그녀의 예상대로이긴 했다.“이게 다 도아린 그년 때문에 트라우마가 생겨서 그래요.”배지유가 음료수를 들고 물었다.“언니, 음료수 마실래요?”“너 마셔. 난 다이어트 중이라.”배지유는 약을 만지던 손가락을 잊은 채 잔을 만졌다. 그녀는 음료수를 벌컥벌컥 마시고는 인파 속에서 육하경을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육하경의 외할머니한테 일이
하지만 두 사람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두어 마디 나눈 후 바로 헤어졌다.손보미는 계속 도아린을 따라다녔다. 도아린이 분수 쪽으로 걸어가자 빠른 걸음으로 따라갔다.“도아린.”도아린이 발걸음을 멈추자 손보미는 그녀 앞으로 다가가 조롱과 도발 섞인 웃음을 짓더니 돌아서서 가짜 바위에 쾅 부딪혔다.“으악!”부딪힌 순간 손보미는 본능적으로 잡으려다가 네일이 끊어졌고 팔도 긁히고 말았다. 하얀 드레스에 피와 물이 가득 묻어 꼴이 초라하기 그지없었다.종업원이 비명을 듣고 달려오더니 바로 다른 사람에게 알리러 갔다.나영옥은 손보미를 가볍게 지나치고 도아린의 손을 잡았다.“손 괜찮아?”“괜찮아요.”손보미는 화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저 할망구 눈이 삐었나? 넘어진 건 난데 도아린한테 무슨 일이 있겠어.’사람들이 거의 모여들자 손보미는 눈가가 그렁그렁해지더니 눈물을 뚝뚝 떨구었다.“아린 씨, 인터넷에 떠도는 기사 같은 거 믿지 마. 나랑 건후 씨는 진짜 그냥 친구야... 여러분, 내가 실수로 넘어진 거지, 아린 씨가 민 거 아니에요.”이해 능력을 테스트하는 때가 왔다.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지만 또 말한 듯했다.손보미가 울먹거리면서 가여운 척하는 모습에 사람들은 그녀가 도아린을 무서워해서 일부러 거짓말을 한 거라고 생각했다.구경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이 모여들었다. 배지유는 손보미가 넘어진 걸 보자마자 불같이 화를 내더니 인파 속을 뚫고 뛰어 들어갔다.“도아린 씨! 하루라도 보미 언니를 괴롭히지 않으면 어디 덧나기라도 해요?”“지유야, 그런 말 하지 마...”“오빠가 당신이랑 이혼하겠다고 했길래 망정이지, 이러다가 나한테까지 손을 대겠어요. 당장 보미 언니한테 사과해요!”배건후와 손보미, 그리고 도아린의 복잡한 관계는 재벌들 사이에서 부풀릴 대로 부풀려졌다.어떤 사람은 도아린이 파렴치한 수단으로 배건후에게 매달리고 있기에 인과응보라고 했고 또 어떤 사람은 배건후와 도아린이 부부인데 끼어든 손보미가 내연녀라면서 내연녀를 가만두면 안 된다고
배건후는 눈살을 찌푸리고 도아린을 쳐다보았다. 잘생긴 얼굴이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도아린의 행동에 대해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배지유 씨, 자기 주제부터 알고 나대든지 말든지 해요.”도아린이 손을 툭툭 털었다.‘어우, 속 시원해.’“오빠!”배지유는 화가 나서 발을 동동 굴렀다. 지난번에는 엄마에게 뺨을 맞았는데 오늘에는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도아린에게 맞았다.앞으로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닌단 말인가!“입 다물어.”배건후가 그녀에게 호통쳤다. 그는 한 손에 배지유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 손보미를 끌어당기고는 밖으로 걸어 나갔다. 구경하던 손님들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육민재가 걱정스럽게 말했다.“너희들 그동안...”도아린이 손수건으로 손을 닦았다. 그녀와 배건후 사이에 이혼 얘기가 오갔다는 걸 육민재가 분명 들었을 것이다.“그때 민재 씨한테 물어보고 결혼할 걸 그랬어요.”어쨌거나 오랜 친구이니 배건후를 더 잘 알 것이다.도아린이 배건후와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은 후 육민재는 사적으로 그녀를 찾아가 다시 한번 고려해보라고 했었다.친구들은 배건후의 마음속에 다른 여자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무턱대고 결혼하면 좋은 결과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도아린은 다른 방법이 없었다. 배건후와 결혼하지 않으면 남동생을 살릴 수 없었다.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육민재가 오늘 같은 결과를 예상하고 그녀를 말린 것 같았다.“나랑 결혼하면서 누구한테 의견 묻는다는 거야?”갑작스럽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도아린이 화들짝 놀랐다. 배건후가 다시 왔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손보미가 다쳐서 속상한지 배건후의 얼굴이 무서울 정도로 어두웠다.“어디 외국 가서 장기라도 팔라고 하면 팔 거야?”육민재가 입술을 적셨다.‘이건 나 들으라고 한 소리야?’“건후야, 그 뜻이 아니라...”배건후가 담배에 불을 붙이고 아래턱을 들었다.“손님들이 널 기다리고 있어.”육민재는 이 자리에 더는 있어서는 안 될 것 같아 연회장으로 들어갔다.도아린도 그만
다른 사람들의 인맥 관리는 술이었지만 나영옥과 함께하는 인맥 관리는 선물이었다.“내 성의니까 받아줘.”“급히 나오느라 좋은 건 준비 못 했어.”두 어르신이 하고 있던 팔찌와 목걸이를 벗어서 도아린에게 건넸다. 뒤에서 도아린을 욕하던 사람들은 질투가 나서 미칠 것만 같았다.‘도아린 아주 고단수야. 남자를 홀린 건 물론이고 할머니들까지 제대로 구워삶았어. 어르신의 친구들이 최고 재벌까진 아니더라도 그래도 실력 있는 자들인데. 선물 하나도 일반 직장인들이 몇 년은 살 수 있는 정도야.’도아린에게 쏠린 이목이 더 많아지자 배건후의 표정이 더욱 어두워졌다.‘남들한테는 저렇게 순진하게 웃으면서 왜 나한테만 날을 세우는 건데?’도아린은 거절하고 싶었지만 말하기도 전에 나영옥이 먼저 가로챘다.“주는 건 받아. 다들 네가 올 줄 모르고 미리 준비 못 했어. 나중에 보상해줄게.”이렇게까지 얘기한 이상 도아린도 거절할 수가 없었다.배건후와 이혼하면 돈이 많이 필요한 건 사실이었다. 이 주얼리들이 딱 봐도 값어치가 어마어마할 것 같았다.“예쁜 할머니들 감사합니다.”도아린은 달콤한 말로 어르신들의 기분을 즐겁게 해주었다. 연회가 끝났는데도 도아린을 보내기 아쉬워했다.“시간 되면 운진에 놀러와.”“영산도 오고.”“할머니가 해남에서 기다릴게.”도아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가방에서 펜던트를 꺼냈다.“저도 미처 선물을 준비하지 못해서요. 어르신들 아프지 마시고 하는 일마다 잘되길 바랄게요.”펜던트 여러 개를 한데 모으면 작은 공이 만들어졌다. 정교하긴 했지만 그리 비싼 물건은 아니었다.하지만 도아린을 예뻐했던 할머니들은 값어치에 상관없이 아주 마음에 들어 하며 받았다.가기 전 나영옥은 선물 카트에서 선물 몇 개를 꺼내 도아린에게 주었다. 도아린이 한 아름 안고 차에 타자 성대호가 화들짝 놀랐다.“아린 씨, 뭘 또 이렇게 챙겨가기까지 해요?”성대호가 혀를 끌끌 차면서 고개를 내저었다.“아린 씨처럼 알뜰한 여자를 찾았더라면 우리 어머니도 날 뭐라 욕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