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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화

Aвтор: 온유
도무지 밥 먹을 기분이 아닌 김영실은 일이 있다는 핑계로 자리를 떴다. 게다가 연장미가 데려온 사람인지라 그녀도 뒤따라 집을 나섰다.

배건후는 도아린과 함께 돌아가려고 했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순순히 보내 줄 주현정이 아니었다.

“아린아, 이모님이 요리 준비했으니까 먹고 가. 살이 빠진 것 좀 봐.”

“어머님도 많이 드세요.”

주현정이 이상한 낌새라도 눈치챌까 봐 도아린은 배건후의 접시에 반찬을 덜어주었다.

주현정은 아들을 흘겨보며 말했다.

“저놈은 몸매 관리해야 하니까 야채만 먹으면 돼.”

말을 마치고 나서 일부러 팔을 찰싹 때렸다.

그때 여자의 손톱에 긁혀 상처가 났던 일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배건후는 눈을 내리깔았고, 풍성한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내가 친아들 아닌가요?”

“성인이 될 때까지 키워줬으면 의무를 다했지, 뭐. 앞으로 아린과 함께 있을 때만 엄마라고 불러.”

식사를 마치고 주현정은 약을 먹고 쉬러 가기 전에 나지막한 목소리로 도아린에게 말했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마. 괜히 마음만 약해졌다가는 점점 더 기고만장할지도 몰라.”

그동안 배건후의 행세는 그녀도 지켜봐 와서 잘 알고 있다.

아들이 바람 피우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유독 손보미한테만 약했다. 게다가 워낙 잔꾀가 많은 여자라서 도아린이 손해 볼까 봐 걱정이었다.

시어머니의 배려에 그녀는 감동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뒷정리를 마치고 쓰레기를 버리러 가는 유민정을 불러 세웠다.

“혹시 한약재 찌꺼기인가요?”

“네.”

“왜 예전 거랑 냄새가 다르죠?”

유민정이 서둘러 고개를 숙였다.

“지난번에 사모님이 주신 처방전인데 여사님께서 드셔보더니 몸이 훨씬 개운하다고 하셨어요.”

“아, 약재가 바뀐 게 있긴 했죠. 알겠어요, 일 보세요.”

도아린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한약 덕분인지 양약 덕분인지 몰라도 이번에 다시 집으로 돌아온 주현정은 예전보다 안색이 많이 밝아졌다.

도아린이 방에 돌아오자 배건후는 샤워하고 있었다. 그녀는 바디 필로우를 침대 한가운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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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그래요?”강재민이 고개를 들었다.눈은 약간 충혈돼 있었지만 그 안엔 또렷한 이성이 빛나고 있었다.그는 말없이 와인 병을 따 다시 잔을 채웠다.자기 잔에 먼저, 그리고 신지훈의 잔에도 조용히 와인을 따랐다.“신 대표님의 사업장은 전부 항성에 있는 걸로 아는데요.”그가 비릿하게 웃었다.“그런 분이 굳이 연성까지 와서 배건후 뒷수습을 한다? 이렇게 자꾸 밖으로 나돌면 사모님이 딴 남자랑 바람이라도 피우면 어쩌시려고요?”신지훈의 입술이 굳게 다물렸다.말은 없었지만 눈빛만으로도 경멸이 가득했다.“듣자 하니, 사모님한테 붙어 다니던 소꿉친구가 있다던데요?”강재민은 잔을 흔들며 말을 이었다.“지난달 동창회에서 우연히 재회했다더군요. 요즘은 매일 붙어 다닌다던데... 그거 알고는 계셨어요?”신지훈이 들고 있던 잔이 허공에 멈췄다.그의 표정이 서서히 식어가며 냉기 어린 침묵이 테이블 위로 내려앉았다.“강재민 씨.”신지훈이 낮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배건후에게 쓰던 방식 나한테는 안 통해요. 난 내 아내와 모든 걸 공유하고 있거든요.”“그래요?”강재민이 비웃듯 웃으며 휴대폰을 꺼냈다.사진 한 장을 꺼내 화면을 신지훈 쪽으로 내밀었다.그 사진 속엔 신지훈의 아내가 그 소꿉친구의 팔에 팔짱을 끼고 웃고 있었다.그리고 쇼케이스 너머 사파이어 커프스단추가 눈에 띄게 전시돼 있었다.“이 커프스단추...”강재민이 화면을 확대하며 말했다.“신 대표님은 받아보셨나요?”신지훈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탕!잔이 내려앉는 소리와 함께 와인잔 바닥이 깨졌다.하지만 그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냅킨을 들고 천천히 입가를 닦았다.“아린 씨에게 접근하는 사람은 전부 조사하는 게 내 원칙이에요.”강재민은 무심하게 말했다.“누가, 어떤 꿍꿍이로 다가오는지 모르니까. 게다가...”그가 시선을 치켜들었다.“신 대표가 굳이 항성의 가족과 사업 다 제쳐두고 연성까지 와서 배건후를 돕는 이유가 순수한 우정이라는 말, 난 죽어도 못 믿겠거든

  • 또 한 번의 거절   제911화

    도아린은 진심으로 기뻤다.처음 대기업 대표 자리에 앉았을 때 그녀는 뚜렷한 목표도 없이 그저 기존 계획을 무난히 이어가기에도 벅찼다.그랬던 그녀가 이제는 사업 기회를 읽고 판단하고 추진하는 과정에서 분명히 성장하고 있었다.그리고 그 성장의 곁에는 늘 배건후가 있었다.그의 빠르고 날카로운 사업 감각은 언제나 도아린에게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차가 멈췄을 때도 도아린은 여전히 기분 좋은 여운에 젖어 있었다.배건후가 조심스럽게 안전벨트를 풀어주고 도아린을 이끌어 차에서 내려 조용한 샤부샤부 가게로 향했다.배건후는 아무 말 없이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메뉴로 주문했다.도아린은 익숙한 손길로 주문서를 다시 확인하며 그의 입맛에 맞는 메뉴도 꼼꼼히 포함시켰다.“오늘은 신 대표의 송별회였잖아요. 전화 한 통쯤은 해야겠어요.”도아린이 핸드폰을 꺼내려는 순간 배건후가 슬쩍 그것을 가로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굳이 안 해도 돼. 알아서 챙길 테니까.”“...혹시 신 대표랑 짜고 날 불러낸 거예요?”도아린이 피식 웃었다.그녀는 이미 눈치챘다.그가 건넨 봉투 안엔 이미 준비 완료된 서류가 가득했고 내용상 급한 것도 아니었다.‘굳이 지금 불러낸 이유는 아마 강재민에게 기회를 주고 싶지 않았던 것이겠지.’배건후는 별다른 대꾸 없이 그녀를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이번 일, 마음에 들었다면... 나 보상 하나 받아도 돼?”도아린은 차를 한 모금 마시며 휴대폰을 들어 톡톡 두드렸다.“이미 친구 수락했어요.”그는 그렇게 많은 친구 요청을 보내놓고도 정작 친구로 추가되자마자 딱 한 문장만 보냈다.‘잘 자.’그게 정말 단순한 인사였는지 아니면 그녀를 낚기 위한 계산된 한 수였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도아린이 핸드폰을 내려놓으려던 순간 배건후가 조용히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았다.크고 따뜻한 손이 그녀의 손가락을 단단하게 감쌌다.음식이 나왔지만 그는 좀처럼 손을 놓지 않았다.그러다 도아린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자 그제야 아쉬운 듯 그녀

  • 또 한 번의 거절   제910화

    “결혼한다면 나한테도 청첩장 줄 거예요?”강재민이 다시 물었다.짙은 파란색 머리카락에, 몇 가닥 밝은색이 섞여 더욱 도도하고 매혹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도아린이 입을 열기도 전에, 그는 먼저 입꼬리를 올렸다.“...근데, 만약 청첩장을 보내지 않는다면 그건 내가 신랑이라서 청첩장이 필요 없단 뜻이겠죠?”그의 자신만만한 미소에 맞은편에 앉아 있던 신지훈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강재민은 신지훈의 반응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도아린에게 얼굴을 가까이 들이댔다.“아린 씨. 그날 이후로 많이 후회했어요. 다시 한번 기회를 주면 안 될까요?”도아린은 말없이 손을 들어 그를 밀어냈고 곧장 웨이터를 불렀다.“여기 수저 하나만 더 주세요.”신지훈이 못마땅한 듯 말했다.“이건 제 송별식입니다.”그러나 강재민은 무심한 얼굴로 도아린의 의자 등받이에 손을 올렸다.“아린 씨는 술을 못 마시니까, 내가 대신 송별주를 한잔하죠.”“강재민 씨.”신지훈이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해외에 오래 계셔서 그런가 봐요. 우리말 속뜻을 잘 이해 못 하시는 것 같은데요.”두 사람 사이에 팽팽한 기류가 흐르던 그때, 웨이터가 요청한 식기와 와인을 가져왔다. 그 순간, 도아린의 핸드폰이 진동했다.배건후의 메시지였다.[할 얘기 있어. 만나서 얘기해.]도아린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신지훈에게 향했다.그는 ‘걱정 마요’라는 듯,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화장실 좀 다녀올게요.”“나도 같이 갈게요.”강재민이 뒤따르려 하자 신지훈이 잔을 들어 말했다.“강재민 씨, 아까 송별주 같이 하기로 했잖아요?”강재민의 눈빛에 불쾌한 기색이 스치더니 그는 마지못해 자리에 앉았다.“좋아요. 한 잔 마셔보죠.”복도를 빠져나온 도아린은 바로 배건후에게 전화를 걸었다.“지금 코이지 하우스에서 신 대표 송별회 중이에요. 건후 씨도 와요.”“나 아래서 기다리고 있을게.”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온 도아린은 길가에 정차한 차를 발견했다.차 안에서 내린 배건후가 경적을 울리며

  • 또 한 번의 거절   제909화

    배건후의 숨결이 갑자기 거칠어지더니 날카로운 눈매에 번뜩이는 불꽃이 일었다.순간, 그는 마치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듯 도아린을 힘껏 끌어안았다.그때 마침, 윤명희와 주현정이 서재 문을 열고 나왔다.“시간 되면 우리랑 같이 여행 갈래요?”윤명희가 환한 웃음과 함께 말을 건넸다.“여행이 정말 기분 전환에 좋더라고요!”주현정도 미소를 머금은 채 말을 이었다.“저야 좋죠. 다만 제가 방해되진 않을지 걱정이네요.”“무슨 말이에요. 우리 아린이의 대모잖아요.”윤명희가 단호하게 말했다.“우린 이제 한 가족이에요.”잠시 정적이 흐르자 윤명희가 슬쩍 화제를 돌렸다.“그러니 말인데요, 누가 우리 딸을 괴롭히면 우리 같이 혼내줘요.”주현정은 옆에 있는 아들을 슬쩍 째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럼요, 당연하죠. 아, 그리고...”무언가 떠오른 듯 그녀가 도아린을 바라봤다.“아린아. 너희 부모님도 연성에 오셨다면서? 킹캐슬에서 며칠 머무는 건 어때? 가을 단풍이 지금 제일 예쁘거든.”윤명희는 애써 무심한 척했지만 눈빛엔 기대가 가득 담겨 있었다.사실 그녀 자신도 단풍을 보고 싶었지만 도아린의 일정을 방해할까 고민하던 참이었다.‘생각해 보니 1년 가까이 못 갔네. 부모님도 오셨고 오빠들도 함께라면 충분히 괜찮겠지.’그렇게 생각이 미치자 도아린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그럼 근처도 좀 구경하고, 단풍도 같이 보러 가요. 그 전에 청소 좀 시켜야겠네요. 어머님도 함께 가시죠.”그녀는 혼자 남을 주현정을 염려해 일부러 함께 가자고 했다.“좋지!”주현정이 기쁘게 대답했다.다음 날.도아린은 브레인 팀과 회의를 진행하던 중, 배건후가 아직 연남 신도시 프로텍트를 맡고 있다는 말을 듣고 눈썹을 살짝 찡그렸다.‘...연남 신도시에 육원그룹 인수까지? 건후 씨가 그 많은 일을 감당할 수 있을까?’그녀가 생각에 잠긴 사이, 고유리가 따뜻한 차를 건넸다.“대표님, 잠시 쉬실까요?”“괜찮아요.”도아린은 조용히 차를 한 모금 마시고 고개를 들었다.“

  • 또 한 번의 거절   제908화

    배건후의 뜨거운 시선이 도아린의 얼굴선을 따라 미끄러지듯 흘렀고 그 뜻밖의 눈빛에 도아린은 본능적으로 몸을 뒤로 뺐다.순간, 그녀의 손끝이 남자의 단단한 가슴에 닿았고 그곳에서 전해진 강한 심장 박동은 마치 전류처럼 그녀를 얼어붙게 만들었다.배건후의 시선은 그녀의 입술에서 멈췄다.거친 숨결이 고요한 밤공기처럼 그녀를 감쌌다.“...키스해도 될까?”예전의 배건후였다면 묻지도 않았을 것이다.그는 늘 먼저 손을 잡고 아무 말 없이 입술을 가져다 댔던 사람이다.그런 그가, 지금은 조심스럽게 물었다.예의 바른 말투가 낯설어 도아린은 순간 말을 잃었다.“...안 돼요.”거절이 입 밖으로 나오기도 전, 배건후는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그리고 그녀는 그의 익숙한 나무 향기와 담배 냄새에 휩싸였다.그 향기는 그의 존재 자체처럼 깊숙이 그녀 안으로 스며들었다.가슴속에서 거세게 일렁이는 감정의 파도가 터져 나왔다.급히 고개를 돌리는 그녀에게 배건후는 조용히 이마에 입을 맞추고는 머리카락을 다정하게 쓸어내렸다.“미안. 나도 모르게...”도아린의 심장은 격하게 뛰었다.그녀는 입술을 꼭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배건후는 그녀를 품에 안은 채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육씨 가문 사업 일부가 한경 그룹과 겹쳐. 기회를 잡아서 인수하는 게 좋겠어.”그 한 마디에 도아린의 가슴 속 소용돌이가 조금씩 가라앉았다.공적인 이야기는 언제나 감정을 뒤로 미루게 했다.그녀는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정말 그렇게 할 생각이에요?”“육민재가 회사를 지킬 수 없다면 우리가 뺏어야지. 실력으로.”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육원 그룹은 육하경의 고발로 인해 큰 타격을 입었다.몇몇 프로젝트는 좌초됐고 고위층에 대한 조사가 시작되며 실체가 하나둘 드러났다.홍보팀이 온 힘을 다해 수습했지만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나빠졌다.상업 전쟁은 언제나 무혈이었다.하지만 누군가 무너지면 그 자리를 다른 이가 채웠다.다만 ‘부자가 망해도 3대는 간다’

  • 또 한 번의 거절   제907화

    게다가 도아린을 위해 회사의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하려는 그의 결심에 소유정은 더욱 놀랐다.만약 윤명희 부부가 아닌 다른 사람이 배건후가 이혼 후 도아린에게 자신의 모든 재산과 회사를 넘겨줬다고 말했으면, 소유정은 절대 믿지 않았을 것이다.도아린이 책상을 정리한 후에야, 소유정은 자리에 앉았다.“옛말에 개과천선이 있잖아. 그런데 제 버릇 개 못 준다는 말도 있지.”도아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그러니까. 모순되긴 하지만 말이야.”소유정이 턱을 만지며 대답했다.“마음 가는 대로 해. 네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난 항상 지지할 거야.”역시 가장 친한 친구들은 말하지 않아도 서로 통하는 법이다.“진혁 씨랑은 어떻게 됐어?”도아린의 말에 소유정은 잠시 망설이다가 CD 플레이어를 꺼내며 말했다.“내 데모 한번 들어봐.”유진혁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고 싶지 않은 듯한 소유정의 태도에 도아린은 더 이상 묻지 않고 그저 묵묵히 응원하는 마음으로 바라보았다.소유정이 만든 데모는 도아린의 취향을 완벽하게 저격했다.도아린은 바로 감독에게 연락했고, 감독도 OST를 고민하고 있었기 때문에 흔쾌히 약속을 받았다.소유정은 그날 바로 해남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한편, 윤명희는 연성에 도착하자마자 주현정을 찾아갔다.다만, 윤명희는 남편을 데려가지 않았다.최근 진범준이 아내에게 더 집착을 보였기에 그를 데려가면 위로의 의미보다는 애정을 과시하는 느낌이 들 것 같았다.간단한 인사를 나눈 후, 윤명희와 주현정은 서재로 향했고 거실에는 도아린과 배건후만 남았다.“희망초등학교 일은 내가 오해한 거였어요.”도아린이 먼저 입을 열었다.“나도 당신한테 숨기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그 틈을 파고들게 만든 거지.”배건후는 귤을 하나 집어 들고 껍질을 벗겨 도아린에게 건넸다.도아린이 힐긋 보고 말했다.“위에 흰 실.”배건후는 귀찮아하지 않고 오히려 그 요구를 받아들였다.그녀는 그의 부속품이 아니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그에게 말할

  • 또 한 번의 거절   제906화

    도아린의 움직임이 잠시 멈췄다.그날 아침, 두 사람이 혼인신고를 마친 후, 배건후는 그녀에게 명함 한 장을 건넸다.명함에는 에이트 맨션 출입을 위한 비밀번호가 적혀 있었다.배건후는 출장이 있어 3일 후에 돌아온다고 했고 도아린은 생각끝에 소유정의 집으로 향했다.혼인 신고 소식에 소유정은 망고 케이크를 주문해 축하해 주었고 두 사람은 밤새 이야기를 나누었다.그다음 날, 소유정은 중요한 녹음 테스트를 놓쳐 그날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아가씨.”일북이 거실로 들어서며 말했다.“일남이 돌아왔습니다.”도아린이 세수하러 가던 중, 소유정의 웃음소리가 들렸다.나가 보니, 일남도 단 며칠 만에 햇볕에 타서 까무잡잡한 피부가 되었다.다만 까무잡잡한 피부는 오히려 일남에게 더 강인한 남성미와 야성미를 더해주었다.“미안해요, 참을 수가 없었어요.”소유정은 키득키득 웃으며 안마의자에서 일어났다.그녀는 화장실로 향하다가 도아린을 발견하고 어깨동무하며 말했다.“미안, 저 갑자기 저 모습에 나도 모르게... 하하하!”도아린은 못 말린다는 듯 그녀를 한 번 쳐다보다 일남과 일북을 서재로 불렀다.일남은 몇 개의 봉투를 꺼내서 건넸다.“아린 희망학교의 자료예요. 이건 현재 계획 중인 자료입니다.”일남이 조사한 자료는 배건후가 가진 증거와 일치했다.배건후는 학교에 기부할 때 명예나 이익을 바라고 하지 않았고 학교 관계자들에게 자신의 신분을 알리지 말라고 당부했다.하지만 배건후의 진짜 목적은 따로 있었다.그가 기부한 학교는 모두 도아린을 위해 준비한 결혼기념일 선물이었다.학교에 그림 재능을 가진 아이들은 무료로 지도와 교육을 받을 수 있었고 성과가 나오면 학교는 전폭적으로 지원했다.마지막 학교는 구현성이 기부한 돈으로 세운 것이었으나 아직 위치도 정해지지 않았고 공사도 이루어지지 않았다.“첫 번째 학교는 육하경이 도와서 세운 거라, 구현성은 그걸 따라 했을 거예요.”일남이 설명했다.“하지만 배 대표가 현장 조사를 갔다는 사실이나 전문 재단을

  • 또 한 번의 거절   제905화

    배건후는 태연한 얼굴로 말했다.“내가 만든 건 마셔도 돼요.”소유정은 깜짝 놀라며 도아린의 팔을 잡고 속삭였다.“너, 건후 씨한테 무슨 짓 한 거야?”도아린은 웃으며 손에 든 밀크티를 반쯤 나눠 그녀에게 건넸다.소유정은 컵을 들고 배건후를 힐끔 보며 도발적인 눈빛을 날렸다.그리고 아주 조심스럽게 한 모금 입에 댔다.‘청소 한번, 밥 한 끼 직접 해본 적 없는 재벌가 도련님이 무슨 대단한 밀크티를 만들 수 있겠어. 독만 안 들었으면 다행이지.’그런데 딱 한 모금만으로도 그녀의 눈이 커졌다.소유정은 다시 컵을 들어 꿀꺽꿀꺽 두세 모금 더 마셨다.입에 남는 잔향, 단맛은 과하지 않고 묘하게 쌉쌀한데 부드럽고 따뜻했다.“야, 너도 마셔봐!”소유정이 도아린에게 재촉하며 컵을 흔들었다.도아린은 한 모금 마시고 고개를 갸웃했다.“여기... 자몽즙 넣었어요?”배건후는 고개를 끄덕였다.그의 눈빛엔 묘하게 따뜻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도아린은 평소 꿀자몽차를 즐겨 마셨던 걸 기억한 배건후가 수십 번의 실험 끝에 완성한 조합이었다.자몽의 향은 살리고 밀크티 특유의 부드러움은 해치지 않는 절묘한 밸런스였다.그 순간 윤명희가 흥미로운 듯 몸을 기울였다.“나도 한 모금만. 궁금해서 미치겠네.”남편 진범준이 말리려 했지만, 그녀는 손을 뿌리쳤다.윤명희는 요즘 아무 생각 없이 전국을 돌아다니는 듯했지만 도아린과 배건후의 관계를 계속 주시하고 있었다.일북이 바로 그녀의 정보원이었다.하지만 그래도 직접 보는 게 가장 확실하다고 판단한 그녀는 그들 사이의 미묘한 기류를 확인하고 싶어졌다.배건후는 조용히 손을 들어 직원을 불렀고 잠시 후 큰 맥주잔에 밀크티가 가득 담겨 돌아왔다.그는 먼저 도아린의 잔을 가득 채워주고 그다음 윤명희에게 한 잔을 따라 건넸다.그 모습을 보며 소유정도 슬쩍 컵을 들었지만 배건후는 밀크티가 담긴 잔을 회전 테이블에 올려놓고 휙 돌렸다.잔은 진수혁의 앞에 멈췄고 그는 능숙하게 맥주잔을 들어 나머지 밀크티를 변슬기의 잔에 나

  • 또 한 번의 거절   제904화

    “소유정?”도아린의 눈이 놀라움과 의문으로 흔들렸다.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며 연락을 끊었던 소유정이 눈앞에 서 있었다.햇볕에 까맣게 탄 피부와 살이 빠져 까마득히 변한 얼굴.도아린은 거의 못 알아볼 뻔했다.소유정은 한때 ‘곡은 뜨지만 사람은 안 뜨는’ 무명 싱어송라이터였다.햇빛에 탄 듯 거칠어진 볼, 그러나 그 눈은 여전히 맑고 마치 고요한 샘물처럼 맑았다.“너 영화 곧 개봉하잖아. 거기에 어울릴 노래 하나 만들었어.”소유정은 도아린 앞에 다가와 가지런한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낙하산으로 들어가겠다는 건 아니야. 그냥 한 번만, 내 무대를 보여줄 기회만 줘.”그녀의 눈빛은 예전과 달라져 있었다.이제 더 이상 방황하는 예술가의 허영도 아닌, 세상에 휘말리지 않으려는 꺾이지 않는 고집이 그 안에 자리 잡고 있었다.“좋아.”도아린은 주저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소유정이 더 말하려던 찰나, 반대편에서 다가오는 키 큰 남자를 보곤 무의식적으로 두 걸음 물러섰다.“제가 들게요.”배건후가 진범준의 손에서 카트를 넘겨받았다.진범준은 도아린을 살짝 살폈고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비로소 손을 놓았다.“수고 좀 해줘.”“별말씀을요.”배건후는 미리 준비해 둔 7인승 밴에 사람들을 태워 호텔로 향했다.한편, 진수혁은 공항에 나오지 않았다.대신 집이 더 편하겠다며 송 비서와 변슬기를 데리고 집 안을 정리하고 있었다.일을 마친 후, 모두가 호텔 레스토랑에서 다시 만났다.도아린은 변슬기가 눈에 띄게 자신을 피하며 거리를 두는 걸 눈치채고 먼저 그녀를 불렀다.“슬기 씨, 우리랑 같이 식사해요.”“아, 아니에요, 괜찮아요! 송 비서님이랑 밖에서 간단히 먹을게요!”변슬기는 다급하게 눈짓을 보내며 송 비서를 향해 도와달라는 신호를 보냈고 송 비서도 눈치껏 거들었지만 소용없었다.“송 비서도 같이 앉아요. 오늘은 우리 가족 모임이니까 너무 격식 차릴 필요 없어요.”도아린은 직원에게 수저를 부탁했다.변슬기가 당황한 눈으로 진수혁을 바라보자 그는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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