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아린은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물론 병실에 못 들어가게 해서 발끈한 나머지 일부러 골탕 먹이려고 벌인 짓이긴 했다.그나마 대신 진료를 예약했으니 망정이지 아니면 우정윤이 데리러 오는 일도 없었을 테니까.도아린이 목을 가다듬고 말했다.“그래서 언제 이혼하러 갈 거예요?”배건후는 긴 다리를 쭉 뻗어 도아린의 발목에 살짝 걸쳤고, 잘생긴 얼굴에 싸늘함이 감돌았다.“그것도 아니면 네 입맛에는 역부족이라고 했나?”도아린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살림밖에 모르던 여자가 대신 진료를 예약할 정도로 굶주렸어?”결국 다리에 걸려 소파에 넘어졌는데 벌떡 일어나서 그를 바라보았다.“바다처럼 넓은 아량을 가진 분이 고작 오해로 인한 해프닝 때문에 말다툼을 시전하는 건 아니겠죠?”배건후는 발갛게 달아오른 그녀의 귀를 빤히 쳐다보았다.“오해를 풀어야 이혼 합의서를 작성하든 말든 하지.”지금 손보미에게 사과를 안 했다고 일부러 트집 잡는 건가?‘그래, 어디 한번 해보자고.’도아린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싱긋 웃었다.“차라리 내가 불감증 혹은 건강 때문에 3년 동안 한약을 마셨는데도 애 하나 낳지 못했다고 하지 그래요?”배건후는 두 팔로 그녀를 품에 가두고 소파 등받이를 짚더니 허리를 숙여 물끄러미 바라보았다.“불감증이라는 사람이 코스플레이 옷 입고 내 옆에 앉아 있었어?”도아린은 주먹이라도 한 방 날리고 싶었다.배건후가 곧바로 휴대폰을 꺼내 살랑살랑 흔들었다.“심지어 대신 진료까지 예약해주고?”그를 골탕 먹이려고 했던 모든 일이 자신의 외로움과 욕구 불만을 표출하는 증거가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저기요, 그쪽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배건후도 물러서지 않고 휴대폰 화면을 터치했다.“내 분신의 건강이 사뭇 궁금한 것 같은데 본인이 과연 이 거대한 물건을 감당할 수 있는지부터 검사해 보는 게 어때?”도아린이 주먹을 불끈 쥐며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이 부분은 우선 건너뛰고 구청부터 갈까요?”배건후는 한참 동안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보더
도아린은 괘씸해서 그의 목이라도 조르고 싶었다.하지만 날짜를 정하기 위해서는 일단 참아야만 했다.이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오랜만에 마사지하는 거라 감을 좀 찾아야 해요.”남자의 미간이 서서히 펴지기 시작하자 그녀는 질세라 말을 보탰다.“이혼은 병 치료와 같은 맥락이라 최대한 빨리 처리해야죠. 만약 큰 병이 아니라면 치료하기도 쉬울 테니까. 구청도 VIP 서비스가 있지 않을까요? 건후 씨 인맥으로 충분히 방문 요청이 가능하리라 믿는데 일하는 시간도 확보하고 얼마나 좋아요? 그리고 출장비에 관해서는 반반 부담하면 되잖아요.”옆에서 조잘거리는 여자 때문에 배건후의 짜증 지수가 점점 상승했고, 이내 싸늘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한 마디만 더 지껄여 봐.”이미 인내심이 바닥난 도아린은 배건후를 힘껏 밀쳤다.“아침에 소원 이뤄준다고 본인이 직접 얘기했잖아요. 이제 와서 번복하기 있어요? 다 큰 성인이 왜 이렇게 유치하게 굴어요?!”순한 양이 다시 고슴도치로 변하자 배건후의 표정이 오히려 누그러졌다.이내 눈을 뜨고 그녀를 쳐다보았다.“나랑 선을 긋기 급급하면서 모건 그룹의 리소스로 도정국을 살리려는 거야? 실속은 본인이 다 차리고, 대체 누가 유치한 건데?”도아린이 입을 꾹 닫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사실 지금은 배건후를 떠날 수 없는 상황이지만, 미래가 컴컴한 결혼 생활을 고수하고 싶지 않았다.그녀의 처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소원을 이뤄준다는 둥 하는 말은 단지 거짓말에 불과했다.지금이 아니고서야 나중에 손보미의 배가 점점 커지고 배씨 집안에서 쫓겨나는 날에는 도정국이 그녀와 도지현을 받아들이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따라서 반드시 사전에 준비를 마쳐야만 했다.도아린의 표정이 돌변했다.“건후 씨가 모건 그룹의 CEO로 임명받은 이후로 회사가 승승장구하던데 비록 이혼이라는 큰 문제에 직면할 테지만 건후 씨라면 손쉽게 처리할 거로 믿어요. 하지만 정성스럽게 가꾼 연약한 꽃이 거센 폭풍우를 견뎌낼지는 미지수네요.”
“어머님, 이건 아버님께서 드린 선물이시잖아요. 제가 이걸 어떻게 받아요...”“그이가 날 줬으니 내 거고 이젠 내가 널 주면 네 거야.”주현정이 그녀의 손을 꼭 잡으며 얼른 챙겨 넣으라고 했다.“나쁜 놈의 자식이, 한 번만 더 널 건드리면 그땐 아무 말 말고 그냥 그리로 가서 며칠 푹 지내. 그놈도 안달 나서 초조해 봐야 알아. 남자들은 다 똑같아. 너무 오냐오냐하지 말고 항상 위기감 느끼게 해줘야 소중한 걸 깨닫는다고.”도아린은 끝내 주현정을 못 이기고 챙겨 넣을 수밖에 없었다.식사를 마친 후 그녀는 주현정과 잠시 얘기를 더 나누다가 가정부 유민정이 오고 나서야 자리를 떠났다.도아린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결국 집문서를 에이트 맨션 금고에 넣어두고 나와서 배건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JK 클럽.성대호와 육하경이 한창 당구를 치고 있을 때 배건후가 어두운 표정으로 들어왔다. 이를 본 성대호가 비아냥거리며 말했다.“역시 희비가 교차하고 있어.”“당구나 쳐.”배건후는 자리에 앉아서 담배를 한 대 꺼내 지그시 입에 물었다.육하경이 칠 순서가 되자 성대호가 배건후 곁으로 다가왔다.“왜? 아직도 화 못 풀어줬어?”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도아린의 메시지가 도착했다.배건후는 눈썹을 들썩거렸다. 그는 절대 먼저 다가갈 사람이 아니지.서둘러 메시지를 확인하긴커녕 담배를 반쯤 다 피우고 나서야 느릿하게 휴대폰을 꺼냈다.[건후 씨 양심은 개나 줘버렸어요? 닭 염통이 비록 작지만 건후 씨 두 점이나 먹었으니 어느 정도 커버할 순 있을 거예요.]그 순간 배건후는 동공이 수축되고 속이 울렁거렸다.그는 부랴부랴 담뱃불을 끄고 화장실로 뛰쳐 가서 구역질을 해댔다.도아린은 동물 내장을 안 먹는 배건후에게 콩류인 척하며 일부러 염통을 집어줬다. 자꾸 번복하는 그의 태도에 복수하기 위해서...“얘가 왜 이래? 설마 네 마누라가 역겹게 만든 거야?”성대호가 선심 쓰듯 그에게 물 한 잔 건네다가 되레 발로 걷어차였다.“그 입 닥쳐!”...그 시각 소유정은 팩
도아린은 이 타이밍에 도정국의 전화를 받고 싶지 않았지만 피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그녀는 미리 둘러댈 핑곗거리를 생각해둔 후에야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도정국은 전화를 받자마자 그녀에게 쏘아붙였다.“왜 이제야 받아?”“샤워하느라고요. 그 빌...”“나 오늘 병원 다녀왔어.”이때 도정국이 그녀의 말을 잘랐다.“의사가 지현이 의식 돌아올 가망이 거의 없대.”도아린은 순간 휴대폰을 꽉 잡고 주먹만 한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도정국은 그녀가 탐탁지 않으니 이젠 또 도지현을 겨냥하기 시작했다.한편 옆에 있던 소유정은 그녀의 안색이 확 어두워지자 다급하게 손을 꼭 잡았는데 손가락이 차갑게 식고 파르르 떨리기까지 했다.“그 기계들 지현이한테 2차 가해를 주는 거 몰라? 그 아이는 이미 충분히 많은 고통을 겪었어. 정말 걔가 망가진 몸으로 너희 엄마 보러 가길 원하는 거야?”도정국은 마치 낯선 이처럼 한없이 냉정한 말투로 쏘아붙였다.“병원에서 지금 남은 비용으로 이달 말까지 버틸 수 있을 거야. 그냥 날자 정해서...”“안돼요!”도아린이 언성을 높였다.“천분의 일의 희망이라도 절대 포기하면 안 돼요!”“너 이거 아집이야. 지난번에 응급처치로 지현이 갈비뼈가 부러질 뻔했어. 그 아이 고통은 전혀 안중에 없는 거니?”도아린은 숨을 깊게 들이쉬고 흘러내리려는 눈물을 꾹 참으며 말했다.“건후 씨 요즘 해외 프로젝트 때문에 바빠서 아빠 점포 골라줄 시간 없어요. 어디 봐둔 곳 있으면 나한테 보내요. 대신 전달해줄게요.”도정국은 잠시 침묵하다가 담뱃불을 지폈다.“너 이렇게 말하니까 꼭 내가 지현이 앞세워서 협박하는 것 같잖아.”그는 속셈을 다 차리고도 선심 쓰는 척하고 있었다.“입지 선정은 유준이더러 연락하라고 할게.”“그리고 지현이는 이젠 시달릴 만큼 충분히 고통에 시달렸어. 그만 놓아줄 때도 됐다는 말이야. 건후 그 아이도 돈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건 아니잖니. 이제 그만 의미 없는 일엔 퍼 쓰지 말란 뜻이야. 한두 번은 그
...실은 배건후가 식자재에 대한 요구가 까다롭다 보니 도아린이 일부러 대형 마트에 가서 엄선해왔다.집에 돌아간 후 그녀는 먼저 함박스테이크를 굽고 이어서 콘 옥수수를 만들었다.이제 막 계란찜을 하려고 인덕션에 불을 켜려던 참인데 소유정의 전화가 걸려왔다.“아린, SOS! 지금 아주 긴급해!!”소유정은 업계에서 줄곧 인기가 미지근했다. 송민혁 감독의 OST를 부른 후에도 노래만 떴을 뿐 그녀는 인기 반열에 오르지 못해 평상시에 행사를 뛰면서 돈을 버는 수준이었다.오늘 마침 도성에서 행사가 있는데 그녀의 파트너가 가족이 위독하다면서 펑크낸 바람에 당장 대타를 찾아야만 했다.소유정은 단번에 도아린이 생각났다.그해 [보이스]에 지원할 때도 그녀는 도아린에게 함께 가달라고 부탁했다. 도아린은 애초에 데뷔 생각이 없어서 소유정이 20등으로 탈락할 때 함께 퇴출했다.“나 이 소속사랑 협력이 잘 돼가고 있으니 절대 펑크내면 안 돼. 제발 부탁이야!”소유정이 초조하게 말했다.“넌 바로 오면 돼. 의상이랑 여기 다 있어...”이때 전화기 너머로 누군가가 그녀를 부르자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도아린은 인덕션을 멍하니 바라봤다. 도정국이 바로 도지현의 치료를 멈출 건 아니니 저녁 먹을 때 다시 배건후랑 얘기를 나눠도 시간이 충분할 듯싶었다.생각을 마친 그녀는 곧장 배건후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도통 받질 않았다.그녀는 마지못해 메시지를 보냈다.[점심 간단하게 먹어요. 저녁에 풍성하게 차려줄 테니까.]메시지를 보낸 후 그녀는 차 키를 챙겨서 도성으로 향했다....모건 그룹 대표이사 사무실.김지민은 전화벨 소리가 울리고 나서야 배건후가 나갈 때 개인 휴대폰을 안 챙긴 걸 알아채고 화면을 힐긋 봤는데 도아린한테서 걸려온 전화였다.그녀는 밖에 나가 배건후를 찾으려 했지만 두어 걸음 만에 전화가 꺼지고 메시지가 곧바로 도착했다.문 앞까지 걸어간 그녀는 배건후가 근처에 없는 걸 확인하고 신속하게 돌아와 휴대폰을 챙겼다.배건후의 개인 휴대폰은 비밀번호를 설
도아린은 도성에 도착하고 나서야 소유정의 공연이 저녁 타임이란 걸 알았다. 이제 막 리허설을 마친 소유정은 그녀를 데리고 대기실로 향했다.“이 클럽 사장이 누군지 몰라도 오픈 이벤트가 엄청 화려하네! 여기 분명 재벌가 도련님들이 있을 거야. 내가 대신 너한테 어울리는 사람으로 몇 명 물색해볼게.”“배건후가 너 이러는 거 알면 이 바닥에서 매장해버릴걸.”도아린이 농담 삼아 말했다.그도 그럴 것이 배건후의 권력과 그가 가진 인맥은 절대 만만하게 볼 것이 아니다. 소유정의 아빠가 사무관이 아니라 국장이라 해도 바로 끌어내릴 수 있다.“네가 나 까발릴 것도 아니잖아.”소유정이 대기실 문을 잠그고 공연복을 건네주었는데 이를 본 도아린은 화들짝 놀라서 턱이 빠질 지경이었다.“이런 옷을 입고 무대에 서라고?”그녀에게도 조금 파격적인 드레스가 몇 벌 있고 레드카펫에서 화끈한 드레스를 수없이 봐왔었다. 하지만 그땐 다 공식 석상이라 깊게 파인 드레스를 입어도 신분과 지위가 있다 보니 감탄을 자아낼 뿐 다른 방향으로 분위기가 와전되지는 않았다.한편 소유정이 지금 건넨 공연복은 질감이나 디자인이나 대놓고 선정적인 의상이었다.“돈 버는 게 다 힘들지 뭐.”그녀는 또 가발을 꺼내 도아린에게 건넸다.“여기선 아는 사람 안 마주칠 거야. 화장하고 어두운 곳에 앉아서 연주하고 노래 부르면 아무도 못 알아봐.”소유정은 그녀에게 얼른 옷을 갈아입으라고 부추겼다.“3년 동안 아줌마로 살았으니 내가 다 속 터지겠어. 몇 년 전 학교 축제 때 기억나? 네가 무대에 섰을 때 얼마나 많은 남학생들이 너한테 홀딱 반했는데? 네가 연예계 진출하면 무조건 날 뛰어넘을 테고 손보미 그년도 훌쩍 뛰어넘었을 거야!”대학교 때 도아린은 눈부신 존재였다. 한 선배가 그녀의 공연이 끝난 후 꽃을 선물했다가 다음 날 손이 부러질 지경이었다.이 사건은 도아린과 아무런 연관도 없지만 그날 이후로 그 선배는 도아린만 보면 피해 다녔다.또 누군가는 학교 게시판에서 도아린에게 고백했다가 얼마 안
배건후는 말문이 턱 막혔다.그의 짙은 눈동자에 싸늘한 한기가 스쳤다.한편 성대호는 전화를 끊고 배건후에게 도아린의 뒷모습을 사진 찍어서 보냈다.“대표님...”배건후가 온몸으로 싸늘한 한기를 뿜어내자 사무실 분위기가 살얼음판이 될 것 같았다. 이를 눈치챈 우정윤이 조심스럽게 물었다.“저녁 주문해 드릴까요?”“됐어.”배건후는 책상 위에 손을 올리고 몇 번 튕기다가 벌떡 일어나서 사무실을 나섰다.클럽에 도착했을 때 한창 공연 중이라 배건후는 몰래 뒷좌석에 가서 앉았다.무대 위에서 도아린은 조명 뒤의 키 높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옅은 스모키 메이크업에 웃을 때 매혹적인 눈빛을 더하니 꼭꼭 가린 그 옷을 당장 찢어버리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소유정은 그녀의 마이크를 조절해주더니 발을 툭툭 치며 나지막이 속삭였다.“왜 멍하니 있어? 긴장돼?”이에 도아린이 고개를 살짝 들었다.“배건후 본 것 같아서.”“장난치지 마!”소유정은 VIP석을 쭉 둘러보았는데 하나같이 그보다 신분이 낮은 사람들이라 배건후가 이런 곳에 올 리는 없었다.“배건후가 그렇게 보고 싶어? 아주 보고 싶어 미치겠어? 설사 클럽에 간다고 해도 네 남편 같은 신분이면 연성에 있는 골든 홀이나 다닐 거야.”도아린도 나름 일리 있다고 생각하며 숨을 깊게 들이쉬고 자세를 다잡았다. 이때 소유정이 불쑥 손을 들어 올리고 그녀의 옷깃을 푹 파일 정도로 찢어놨다.“이래야지.”도아린이 말리고 싶었지만 이미 한발 늦었고 쇄골이 훤히 드러났다. 그녀는 소유정을 째려보며 다시 옷을 위로 올렸다.모든 준비를 마친 후 소유정이 웃으며 말했다.“룸에서 기다릴게. 이 곡 다 부르면 우리 신나게 놀아!”한편 도아린은 오랜만에 서는 무대이지만 여전히 실력이 살아있어 감미로운 목소리로 웬만한 가수들보다 더 잘 불렀다.앞줄에 앉은 몇몇 남자들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공연이 끝난 후 도아린이 룸으로 걸어갈 때 갑자기 연예 기획사 매니저가 앞길을 막았다.“이분은 해인 그룹 박규형 대표님입니다.”연예
“이거 놔!”도아린은 필사적으로 반항했다.다만 워낙 덩치 큰 박규형이다 보니 그녀의 등을 확 짓누르고 어깨를 다잡더니 곧게 룸으로 향했다.스쳐 지나가는 종업원이 이상한 눈길로 쳐다볼 때마다 연예 기획사 매니저가 웃으며 해명했다.“좀 많이 취해서요. 괜찮아요, 아무 일 아니에요...”그 시각 도아린을 한참 기다리던 소유정이 그녀가 막 누군가에게 시달리는 걸 발견하곤 곧장 종업원의 손에서 술병을 건네받고 가차 없이 내던졌다.“그 손 안 놔?!”기획사 매니저가 그 술병을 잡고 소유정에게 으름장을 놓았다.“너 미쳤어? 이분은 해인 그룹 대표님이란 말이야!”빨간 와인이 소유정의 손목을 타고 거꾸로 흘러서 옷소매와 치마까지 빨갛게 물들였다.그녀는 대충 닦으며 분노 조로 쏘아붙였다.“대표든 뭐든 다 집어치워! 누가 감히 우리 아린이 건드리래?! 죽고 싶어 환장했어?”연예 기획사 매니저가 버럭하는 소유정을 잡아당겼고 박규형은 계속 도아린을 이끌고 룸으로 들어갔다. 도아린은 두 손이 꽉 잡혀서 하는 수 없이 뒤통수로 그의 턱을 맞받아쳤다.마침 머리에 핀을 꽂고 있어서 박규형의 턱에 피가 줄줄이 흘렀다.분노가 극에 달한 박규형은 그녀의 손을 확 비틀었다.“감히 나한테 손을 대? 팔을 확 부러트릴라!”그는 말하면서 룸 문을 걷어차고 도아린을 안에 밀쳐 넣었다.도아린은 그가 비튼 방향대로 빙그르르 돌아가면서 다른 손으로 재빨리 그의 귀싸대기를 내리쳤다.그의 뺨을 후려칠 수 있었던 이유는 사실 박규형이 제자리에 넋 놓고 서 있었기 때문이다.“배 대표님...”순간 도아린은 머리를 번쩍 들고 소파 한가운데 앉아 있는 남자를 바라봤는데 상대가 글쎄 배건후였다.그는 한없이 차갑고 예리한 눈빛으로 째려보며 입에 담배를 지그시 물고 있었다.도아린은 온몸이 싸늘하게 변해가고 손끝이 걷잡을 수 없이 떨렸다.그래도 부부의 연을 맺은 사이인데 제 사람이 이렇게 괴롭힘을 당하는 걸 아무렇지 않게 지켜보고 있다니.박규형의 협력 파트너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뜬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