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금방 갈게요.”도아린이 말하며 운전대를 틀었다.육하경은 뒤로 물러섰고, 얼굴에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U턴하고 나서도 그녀만 하염없이 바라보는 육하경을 발견하자 도아린은 차창을 내리고 큰 소리로 외쳤다.“알겠어요, 육하경 씨!”육하경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한편, 배지유는 육하경이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사실에 화가 나서 펄쩍펄쩍 뛰었다.“하경 오빠한테 대체 누구를 소개해 준 거예요?”아직 시차 적응이 안 된 배건후는 머리가 지끈거려 퉁명스럽게 말했다.“내가 돌아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왜 나한테 히스테리야!”“오빠 말고 다른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동안 건후 오빠는 어머님이 소개한 여자는 단 한 번도 만나 적이 없었잖아요. 아니면 성대호가 주선했는지 물어봐 줘요. 상대방이 누군지! 나보다 더 예쁜지도!”배건후는 이마에 얹은 팔을 내리며 버럭 화를 냈다.“계속해서 떠들 거면 내 집에서 나가!”배지유는 입을 꾹 닫고 자리에 앉았다. 비록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차마 표출할 수는 없었다.이때, 손보미의 문자가 도착했다. 박물관 입구에서 도아린을 만나 작은 소동이 있었는데 배건후가 기분이 안 좋은 것도 도아린 때문에 열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오빠, 혹시 도아린 때문에 화가 난 거예요?”배건후가 그녀를 흘겨보았다.“뭐라고?”“새언니 말이에요! 새언니가 오빠 심기 건드렸죠?”배지유는 히스테리를 부리며 되물었다.“어른 일에 참견하지 마.”이내 배건후의 시선이 그녀의 손목으로 향했다.보라색 비취 팔찌는 첫 결혼기념일에 도아린이 사달라고 했던 선물인데 당시 어머니 생신 연에 딱 한 번 착용했었다.단지 팔찌를 아끼는 마음에 일부러 안 하는 줄 알았더니 다른 사람에게 줬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급속도로 어두워지는 오빠의 표정을 보자 배지유는 서둘러 손목을 가렸다.“나 먼저 가볼게요. 친구랑 밥 먹기로 해서.”배건후가 의자에 기대어 잠깐 눈을 붙이려는 찰나 손보미의 문자가 도착했다.[건후 씨, 도아
“휴대폰이 배터리가 없어서 대신 배건후 대표님께 연락해주실 수 있나요? 도아린이 병문안 왔다고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간호사는 예의 바르게 잠시만 기다리라고 양해를 구한 뒤 전화를 걸었다. 이내 통화를 마치고 그녀에게 말했다.“대표님께서 모르는 사람이라고 하네요.”젠장.아침에 이혼을 승낙하자마자 오후에 바로 체면 불고할 줄이야.물론 주현정에게 곧바로 연락할 수도 있었지만 유민정한테서 몸이 안 좋다는 소리를 듣고 나니 굳이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도아린은 엘리베이터 앞에서 한참을 기다리다가 결국 다시 1층으로 내려갔다.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도 고운 법, 상대방이 매몰차게 구는 이상 그녀도 굳이 비위를 맞춰줄 필요는 없었다.병실.배건후는 어머니를 위해 과일을 깎아주고 있었다. 이때, 문득 휴대폰 진동음이 울렸다.휴대폰을 확인해보자 다름 아닌 진료 안내 문자였고, 비뇨기과라는 글자가 뜨는 순간 자칫 과도를 테이블에 떨어뜨릴 뻔했다.“아린이 문자야?”주현정이 물었다.“아니요.”배건후가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우정윤은 자기가 산 과일이 문제라도 있는 줄 알고 서둘러 다가갔다. 배건후가 그의 귓가에 대고 나지막이 속삭이자 이내 안색이 돌변하며 병실을 나섰다.“혹시 아린이랑 싸웠니?”주현정이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눈치챘다.“지난번에 만났을 때부터 얘기해주고 싶었는데 밤에는 여자를 부드럽게 다뤄야 해. 너무 거치면 다들 싫어한다고.”“내가 그랬다고 하던가요?”배건후는 화가 나서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주현정이 그의 소매를 걷어 올리며 말했다.“아무 일도 없는데 아린이가 널 다치게 할 수는 없잖아.”배건후의 팔에 난 상처는 거의 다 아물었고, 눈에 띄지 않는 흰색 흉터만 남아 있었다. 그는 소매를 내리고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도아린이 한 게 아니에요.”퍽!주현정이 대뜸 배건후를 향해 베개를 던졌다.“이 썩을 놈아, 감히 아린이 몰래 바람이라도 피우는 거야? 내가 어떻게 너 같은 아들을 낳았을까? 이참에 내일 구청 가서 친
황당한 표정을 짓는 그녀를 보자 우정윤이 설명을 보탰다.“대표님이 피곤하면 위가 안 좋으신데 그럴 때마다 신경이 예민해지거든요.”도아린은 할 말을 잃었다. 시차 적응과 위가 아픈 게 대체 무슨 연관성이 있냐는 말이다.설마 배건후가 오늘 아침 느닷없이 화부터 낸 이유에 대해 변명이라도 하는 건가?물론 내연녀 때문이든 컨디션 난조이든 그녀에게 중요하지는 않았다. 이미 이혼하기로 한 이상 번복하는 건 절대로 용납 불가했으니까.이내 문을 열고 들어서자 거실의 전경이 눈에 들어왔고, 옆에 병간호하는 가족들을 위한 휴게실이 있다. 얼핏 보기에 특급 호텔과 별반 다를 바 없고 맞은편이 바로 병실이다.“그동안 협상을 이어가면서 워낙 긴박한 하루하루를 보냈는지라 대표님께서 제대로 쉬지 못하셨어요. 어젯밤만 해도 비행기 타기 전까지 미팅을 진행했죠. 대표님뿐만 아니라 저도 밤새워 일했더니 어깨가 뻐근하네요.”우정윤은 말을 이어가면서 목 근육을 풀었다.이렇게 대놓고 암시하는 경우가 어디 있는가?그녀는 주현정을 보러 왔지, 빌어먹을 배건후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찾아온 건 아니었다.“병원에 정형외과도 있잖아요. 실력은 걱정 안 하셔도 되니까 의사 선생님께 진료 한 번 받아봐요.”“사모님도 알다시피 대표님은 다른 사람이 만지는 걸 별로 안 좋아하셔서...”결혼한 지 얼마 안 되어 배건후밖에 보이지 않던 그 시절, 도아린은 항상 밥을 차리고 그가 퇴근하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식사를 마치고 나서는 그동안 갈고 닦은 마사지 솜씨를 한껏 뽐냈었다.배건후를 위해서라면 그녀는 뭐든지 배웠다. 섬섬옥수가 기름에 데어 만신창이가 되든 마사지해서 뼈마디가 쑤시든 안중에도 없었다.정작 쓰레기 같은 놈이 일말의 고마움도 모르고 되레 자신을 유혹하려고 몸을 더듬거린다고 착각까지 했었다.나중에는 마사지를 관두었고, 배건후도 집을 비우는 횟수가 점점 늘어났다. 이제 와서 이런 소리를 한다는 자체가 그녀를 모욕하는 셈이지 않은가?“실장님, 저는 어머님을 뵈러 왔어요.”“네, 의
도아린은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물론 병실에 못 들어가게 해서 발끈한 나머지 일부러 골탕 먹이려고 벌인 짓이긴 했다.그나마 대신 진료를 예약했으니 망정이지 아니면 우정윤이 데리러 오는 일도 없었을 테니까.도아린이 목을 가다듬고 말했다.“그래서 언제 이혼하러 갈 거예요?”배건후는 긴 다리를 쭉 뻗어 도아린의 발목에 살짝 걸쳤고, 잘생긴 얼굴에 싸늘함이 감돌았다.“그것도 아니면 네 입맛에는 역부족이라고 했나?”도아린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살림밖에 모르던 여자가 대신 진료를 예약할 정도로 굶주렸어?”결국 다리에 걸려 소파에 넘어졌는데 벌떡 일어나서 그를 바라보았다.“바다처럼 넓은 아량을 가진 분이 고작 오해로 인한 해프닝 때문에 말다툼을 시전하는 건 아니겠죠?”배건후는 발갛게 달아오른 그녀의 귀를 빤히 쳐다보았다.“오해를 풀어야 이혼 합의서를 작성하든 말든 하지.”지금 손보미에게 사과를 안 했다고 일부러 트집 잡는 건가?‘그래, 어디 한번 해보자고.’도아린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싱긋 웃었다.“차라리 내가 불감증 혹은 건강 때문에 3년 동안 한약을 마셨는데도 애 하나 낳지 못했다고 하지 그래요?”배건후는 두 팔로 그녀를 품에 가두고 소파 등받이를 짚더니 허리를 숙여 물끄러미 바라보았다.“불감증이라는 사람이 코스플레이 옷 입고 내 옆에 앉아 있었어?”도아린은 주먹이라도 한 방 날리고 싶었다.배건후가 곧바로 휴대폰을 꺼내 살랑살랑 흔들었다.“심지어 대신 진료까지 예약해주고?”그를 골탕 먹이려고 했던 모든 일이 자신의 외로움과 욕구 불만을 표출하는 증거가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저기요, 그쪽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배건후도 물러서지 않고 휴대폰 화면을 터치했다.“내 분신의 건강이 사뭇 궁금한 것 같은데 본인이 과연 이 거대한 물건을 감당할 수 있는지부터 검사해 보는 게 어때?”도아린이 주먹을 불끈 쥐며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이 부분은 우선 건너뛰고 구청부터 갈까요?”배건후는 한참 동안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보더
도아린은 괘씸해서 그의 목이라도 조르고 싶었다.하지만 날짜를 정하기 위해서는 일단 참아야만 했다.이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오랜만에 마사지하는 거라 감을 좀 찾아야 해요.”남자의 미간이 서서히 펴지기 시작하자 그녀는 질세라 말을 보탰다.“이혼은 병 치료와 같은 맥락이라 최대한 빨리 처리해야죠. 만약 큰 병이 아니라면 치료하기도 쉬울 테니까. 구청도 VIP 서비스가 있지 않을까요? 건후 씨 인맥으로 충분히 방문 요청이 가능하리라 믿는데 일하는 시간도 확보하고 얼마나 좋아요? 그리고 출장비에 관해서는 반반 부담하면 되잖아요.”옆에서 조잘거리는 여자 때문에 배건후의 짜증 지수가 점점 상승했고, 이내 싸늘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한 마디만 더 지껄여 봐.”이미 인내심이 바닥난 도아린은 배건후를 힘껏 밀쳤다.“아침에 소원 이뤄준다고 본인이 직접 얘기했잖아요. 이제 와서 번복하기 있어요? 다 큰 성인이 왜 이렇게 유치하게 굴어요?!”순한 양이 다시 고슴도치로 변하자 배건후의 표정이 오히려 누그러졌다.이내 눈을 뜨고 그녀를 쳐다보았다.“나랑 선을 긋기 급급하면서 모건 그룹의 리소스로 도정국을 살리려는 거야? 실속은 본인이 다 차리고, 대체 누가 유치한 건데?”도아린이 입을 꾹 닫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사실 지금은 배건후를 떠날 수 없는 상황이지만, 미래가 컴컴한 결혼 생활을 고수하고 싶지 않았다.그녀의 처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소원을 이뤄준다는 둥 하는 말은 단지 거짓말에 불과했다.지금이 아니고서야 나중에 손보미의 배가 점점 커지고 배씨 집안에서 쫓겨나는 날에는 도정국이 그녀와 도지현을 받아들이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따라서 반드시 사전에 준비를 마쳐야만 했다.도아린의 표정이 돌변했다.“건후 씨가 모건 그룹의 CEO로 임명받은 이후로 회사가 승승장구하던데 비록 이혼이라는 큰 문제에 직면할 테지만 건후 씨라면 손쉽게 처리할 거로 믿어요. 하지만 정성스럽게 가꾼 연약한 꽃이 거센 폭풍우를 견뎌낼지는 미지수네요.”
“어머님, 이건 아버님께서 드린 선물이시잖아요. 제가 이걸 어떻게 받아요...”“그이가 날 줬으니 내 거고 이젠 내가 널 주면 네 거야.”주현정이 그녀의 손을 꼭 잡으며 얼른 챙겨 넣으라고 했다.“나쁜 놈의 자식이, 한 번만 더 널 건드리면 그땐 아무 말 말고 그냥 그리로 가서 며칠 푹 지내. 그놈도 안달 나서 초조해 봐야 알아. 남자들은 다 똑같아. 너무 오냐오냐하지 말고 항상 위기감 느끼게 해줘야 소중한 걸 깨닫는다고.”도아린은 끝내 주현정을 못 이기고 챙겨 넣을 수밖에 없었다.식사를 마친 후 그녀는 주현정과 잠시 얘기를 더 나누다가 가정부 유민정이 오고 나서야 자리를 떠났다.도아린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결국 집문서를 에이트 맨션 금고에 넣어두고 나와서 배건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JK 클럽.성대호와 육하경이 한창 당구를 치고 있을 때 배건후가 어두운 표정으로 들어왔다. 이를 본 성대호가 비아냥거리며 말했다.“역시 희비가 교차하고 있어.”“당구나 쳐.”배건후는 자리에 앉아서 담배를 한 대 꺼내 지그시 입에 물었다.육하경이 칠 순서가 되자 성대호가 배건후 곁으로 다가왔다.“왜? 아직도 화 못 풀어줬어?”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도아린의 메시지가 도착했다.배건후는 눈썹을 들썩거렸다. 그는 절대 먼저 다가갈 사람이 아니지.서둘러 메시지를 확인하긴커녕 담배를 반쯤 다 피우고 나서야 느릿하게 휴대폰을 꺼냈다.[건후 씨 양심은 개나 줘버렸어요? 닭 염통이 비록 작지만 건후 씨 두 점이나 먹었으니 어느 정도 커버할 순 있을 거예요.]그 순간 배건후는 동공이 수축되고 속이 울렁거렸다.그는 부랴부랴 담뱃불을 끄고 화장실로 뛰쳐 가서 구역질을 해댔다.도아린은 동물 내장을 안 먹는 배건후에게 콩류인 척하며 일부러 염통을 집어줬다. 자꾸 번복하는 그의 태도에 복수하기 위해서...“얘가 왜 이래? 설마 네 마누라가 역겹게 만든 거야?”성대호가 선심 쓰듯 그에게 물 한 잔 건네다가 되레 발로 걷어차였다.“그 입 닥쳐!”...그 시각 소유정은 팩
도아린은 이 타이밍에 도정국의 전화를 받고 싶지 않았지만 피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그녀는 미리 둘러댈 핑곗거리를 생각해둔 후에야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도정국은 전화를 받자마자 그녀에게 쏘아붙였다.“왜 이제야 받아?”“샤워하느라고요. 그 빌...”“나 오늘 병원 다녀왔어.”이때 도정국이 그녀의 말을 잘랐다.“의사가 지현이 의식 돌아올 가망이 거의 없대.”도아린은 순간 휴대폰을 꽉 잡고 주먹만 한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도정국은 그녀가 탐탁지 않으니 이젠 또 도지현을 겨냥하기 시작했다.한편 옆에 있던 소유정은 그녀의 안색이 확 어두워지자 다급하게 손을 꼭 잡았는데 손가락이 차갑게 식고 파르르 떨리기까지 했다.“그 기계들 지현이한테 2차 가해를 주는 거 몰라? 그 아이는 이미 충분히 많은 고통을 겪었어. 정말 걔가 망가진 몸으로 너희 엄마 보러 가길 원하는 거야?”도정국은 마치 낯선 이처럼 한없이 냉정한 말투로 쏘아붙였다.“병원에서 지금 남은 비용으로 이달 말까지 버틸 수 있을 거야. 그냥 날자 정해서...”“안돼요!”도아린이 언성을 높였다.“천분의 일의 희망이라도 절대 포기하면 안 돼요!”“너 이거 아집이야. 지난번에 응급처치로 지현이 갈비뼈가 부러질 뻔했어. 그 아이 고통은 전혀 안중에 없는 거니?”도아린은 숨을 깊게 들이쉬고 흘러내리려는 눈물을 꾹 참으며 말했다.“건후 씨 요즘 해외 프로젝트 때문에 바빠서 아빠 점포 골라줄 시간 없어요. 어디 봐둔 곳 있으면 나한테 보내요. 대신 전달해줄게요.”도정국은 잠시 침묵하다가 담뱃불을 지폈다.“너 이렇게 말하니까 꼭 내가 지현이 앞세워서 협박하는 것 같잖아.”그는 속셈을 다 차리고도 선심 쓰는 척하고 있었다.“입지 선정은 유준이더러 연락하라고 할게.”“그리고 지현이는 이젠 시달릴 만큼 충분히 고통에 시달렸어. 그만 놓아줄 때도 됐다는 말이야. 건후 그 아이도 돈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건 아니잖니. 이제 그만 의미 없는 일엔 퍼 쓰지 말란 뜻이야. 한두 번은 그
...실은 배건후가 식자재에 대한 요구가 까다롭다 보니 도아린이 일부러 대형 마트에 가서 엄선해왔다.집에 돌아간 후 그녀는 먼저 함박스테이크를 굽고 이어서 콘 옥수수를 만들었다.이제 막 계란찜을 하려고 인덕션에 불을 켜려던 참인데 소유정의 전화가 걸려왔다.“아린, SOS! 지금 아주 긴급해!!”소유정은 업계에서 줄곧 인기가 미지근했다. 송민혁 감독의 OST를 부른 후에도 노래만 떴을 뿐 그녀는 인기 반열에 오르지 못해 평상시에 행사를 뛰면서 돈을 버는 수준이었다.오늘 마침 도성에서 행사가 있는데 그녀의 파트너가 가족이 위독하다면서 펑크낸 바람에 당장 대타를 찾아야만 했다.소유정은 단번에 도아린이 생각났다.그해 [보이스]에 지원할 때도 그녀는 도아린에게 함께 가달라고 부탁했다. 도아린은 애초에 데뷔 생각이 없어서 소유정이 20등으로 탈락할 때 함께 퇴출했다.“나 이 소속사랑 협력이 잘 돼가고 있으니 절대 펑크내면 안 돼. 제발 부탁이야!”소유정이 초조하게 말했다.“넌 바로 오면 돼. 의상이랑 여기 다 있어...”이때 전화기 너머로 누군가가 그녀를 부르자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도아린은 인덕션을 멍하니 바라봤다. 도정국이 바로 도지현의 치료를 멈출 건 아니니 저녁 먹을 때 다시 배건후랑 얘기를 나눠도 시간이 충분할 듯싶었다.생각을 마친 그녀는 곧장 배건후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도통 받질 않았다.그녀는 마지못해 메시지를 보냈다.[점심 간단하게 먹어요. 저녁에 풍성하게 차려줄 테니까.]메시지를 보낸 후 그녀는 차 키를 챙겨서 도성으로 향했다....모건 그룹 대표이사 사무실.김지민은 전화벨 소리가 울리고 나서야 배건후가 나갈 때 개인 휴대폰을 안 챙긴 걸 알아채고 화면을 힐긋 봤는데 도아린한테서 걸려온 전화였다.그녀는 밖에 나가 배건후를 찾으려 했지만 두어 걸음 만에 전화가 꺼지고 메시지가 곧바로 도착했다.문 앞까지 걸어간 그녀는 배건후가 근처에 없는 걸 확인하고 신속하게 돌아와 휴대폰을 챙겼다.배건후의 개인 휴대폰은 비밀번호를 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