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도아린의 신상은 낱낱이 털렸다. 무명인 수공예자에 불과한 그녀는 능력이 부족해 감독한테 손보미의 대역을 거절당하더니 앙심을 품고 손보미의 안티팬이 되었다고 한다.그들은 도아린의 얼굴로 이모티콘을 만들어서는 인터넷에 마구 퍼뜨렸다.도아린은 사람들이 핸드폰을 들고 있는 게 단지 손보미의 스튜디오에서 촬영하는 일상 브이로그인 줄 알았을 뿐 자신이 이미 온라인에서 유명해진 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녀는 율이의 안색이 전보다 나아진 것을 보고 국민의 관심을 받은 후로부터 보육원에서 더는 구박하지 않는 줄 알았다.“아린 언니도 노래 부르러 왔어요?” 율이는 고개를 들어 도아린을 올려다보며 물었다.도아린은 몸을 낮추고 말했다.“친구 따라온 거야.”“저도 보미 언니 따라 왔어요. 언니랑 같이 프로그램 봐도 돼요?” 율이는 도아린의 손을 꼭 잡고 눈을 깜박거렸다.도아린은 율이가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걸 느끼고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자.”김지민은 슬며시 손보미를 쿡 찌르더니 율이와 더 호응하기를 바랐다. 더 이상 도아린이 주목받지 않도록 유도했다.오는 길 내내 율이는 손보미를 잡고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아린 언니는 왜 저를 만나러 오지 않는 거죠? 혹시 아린 언니의 연락처를 알고 있어요?”손보미는 순식간에 짜증이 났다. 율이는 분명 손보미의 팬이지만 이제 도아린을 겨우 두 번 만났을 뿐인데 그녀를 엄청 따랐다.도아린은 역시 사람을 홀리는 재주가 있는 게 분명했다. 남자뿐 아니라 아이까지 매혹시켰다.손보미는 율이한테 도아린이 요즘 스파와 피부 관리로 바쁘다 보니 율이를 신경 쓸 겨를이 없다고 않고 했다. 만약 진심으로 율이를 걱정했다면 함께 갔어야 하지 않겠냐며 사실을 왜곡했다.율이는 반신반의하며 계속해서 물어보려 하자 손보미는 날카로운 눈빛을 보내며 경고했다. 곧 촬영이 시작되니 더 이상 도아린에 대해 언급하지 말라고 했다.그렇지 않으면 율이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도아린을 나쁜 사람으로 여길 것이라고 했
“마음만 받을게.”도아린은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향해 말했다. “브랜드명을 알려주시면 제가 밖에서 사 올게요.”“지금 사러 가시면 언제 메이크업을 마치죠? 오늘 출연자가 너무 많다 보니 별로 시간이 없어요.”“유정이는 마지막 순서니까 다 끝내고 해주셔도 되잖아요.”메이그업 아티스트는 그녀를 흘겨보더니 파운데이션을 닫아버렸다. 도아린이 나가려 하자 손보미는 급히 자리에서 일어섰다.“메이크업 아티스트님께서 아침 일찍부터 와서 모든 출연자의 메이크업을 끝내고 이제야 잠깐 쉴 수 있는데, 게다가 촬영이 시작되면 수정 메이크업까지 해줘야 하거든. 그냥 내 거 쓰는 게 어때? 굳이 다른 사람의 휴식 시간을 뺏지 말고.”손보미는 마치 도아린을 무례한 사람처럼 몰아갔다. 그녀는 도아린이 거절할 틈도 없이 파운데이션을 건넸다.비록 도아린은 그녀와 엮이고 싶지 않았지만 그녀가 거절하면 악의적으로 편집할까 걱정되었다. 자신이 욕먹는 것쯤이야 상관없었지만 소유정이 피해를 보는 건 원치 않았다.“그럼 잘 쓸게.”도아린이 파운데이션에 건네받기도 전에 소유정은 손을 확 놓아버렸다.쨍그랑.파운데이션은 바닥에 떨어졌다.손보미는 놀란 표정을 지은 채 방황하는 눈동자로 쳐다봤다.순간 주위의 사람들은 핸드폰을 그녀의 얼굴에 갖다 댄 채 아무도 파운데이션이 어떻게 떨어졌는지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저 손보미의 반응으로 인해 도아린이 일부러 떨어뜨렸다고 추측하기 시작했다.[정말 악하네요. 두 눈으로 직접 보지 못했으면 오버하는 줄 알았어요.][보미 씨가 너무 착하다 보니까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위해 참아주는 거잖아요.][저 여자는 공예가가 아니라 여우 년인가 봐요.]댓글 창은 온통 도아린에 대한 비난으로 가득했다.도아린은 덤덤하게 손보미를 쳐다보며 마치 예상했다는 듯이 손보미가 몸을 굽혀 파운데이션을 줍는 것도 대수롭지 않아 했다.손보미는 파운데이션을 집어 들더니 더는 도아린에게 건네주지 않고 소유정의 메이크업 아티스트에게 건네주었다.“제 거 사용하세요.”그리
스태프들과 한참을 조율한 끝에 손보미 혼자만 들어가도록 허락을 받았다.“선배님, 저 보미예요.” 손보미는 테이블에 캐리어를 올려놓으며 말했다. “오늘 선배님께서 이 드레스로 촬영하신다고 전해 들어서 특별히 가져왔어요.”임진희는 음악계의 톱스타로 많은 인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녀는 무명의 신인을 스타로 만들어낸 적도 있었고 인기 가수를 나락으로 떨어뜨린 적도 있었다.손보미는 영화, 음악, 드라마에서 모두 성공할 욕심은 없었지만 그래도 유명한 선배님을 화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임진희의 한마디면 업계에서 매장당할 수도 있었다.“이 드레스, 네가 입어본 적 있니?” 임진희는 눈빛에 불쾌함이 스쳤다.손보미는 침을 꿀꺽 삼키며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 “사진 두 장 찍었을 뿐이에요. 절대 유출하지 않았어요. 그저 개인적인 아쉬움을 채우려고...”“아쉬움이라니?”“남자 친구가 이 드레스에 담긴 이야기를 듣고 나서 고가에 구입하려 했어요. 결혼식 예복으로 입게 하려고요. 근데 아무리 비싼 값을 불러도 팔지 않더군요. 선배님께서 이 드레스를 예약하셨다는 걸 듣고 유일한 기회인 것 같아서 마음대로 빌려 입어봤어요.”“...”임진희는 무심히 손가락을 튕겼다. 손보미는 모든 책임을 자신의 잘못으로 돌렸다.그러나 스태프가 빌려준 걸 봐서는 손보미가 고가를 부른 것도 사실이고 결국 쌍방의 잘못이었다.이 브랜드는 오랫동안 임진희의 활동을 후원해 주며 원만하게 협력해 왔다. 굳이 이런 일로 틀어질 필요는 없었다.임진희가 용서하려던 찰나 갑자기 비서가 와서 뭔가를 보고했다.“예진 씨께서 오셨습니다.”“얼른 들어오라고 해.”임진희는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맞이했다. 그 모습을 본 손보미는 순간 몸이 작게 떨려왔다.둘은 서로 포옹하며 인사를 나눈 뒤 칭찬을 건네기 시작했다. 함예진은 곧 도아린을 데려와 소개했다.“내 조카 아린이야.”뒤에 서 있던 손보미의 눈에서 분노가 넘쳐났다.‘어딜 가나 도아린이 끼어들다니!’만약 함예진이 도아린을
도아린은 그녀가 이곳에 있는 것도 드레스를 돌려주러 온 것도 전혀 놀랍지 않은 표정이었다. ‘도아린은 어떻게 이 드레스를 대여한 사람이 임진희라는 것을 알았을까? 심지어 임진희가 오늘 방송에서 이 드레스를 입는다는 사실도 어떻게 안 거지?’손보미는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어쩌면 도아린은 그녀가 알던 것보다 훨씬 무서운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셨고 아버지의 사랑도 받지 못한 채 동생은 마치 없는 사람처럼 살아가는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도아린이 어떻게 연성의 상류층인 배건후와 결혼하고 주현정의 편애도 받을 수 있는 거지?대체 그녀보다 나은 게 뭐라고?도아린의 생각 밖의 인맥에 손보미는 소름이 끼쳤다.“얼른 가져와.”임진희는 다시금 재촉했다.손보미는 마치 땅에 박힌 듯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이끌고 다가갔다. 다행인 건 인플루언서들이 아직 밖에 있다 보니 그녀한테 불리한 장면은 녹화되지 않았다. 하마터면 그들의 입을 막는데 막대한 돈을 쓸 뻔했다.그녀는 깊게 숨을 들이마신 뒤 떨리는 손가락으로 캐리어를 열었다. 치맛자락의 얇은 망사 부분이 살짝 튀어나온 채 테이블 위에 평평하게 펼쳐졌다.임진희는 캐리어 속의 별도 수납공간에서 전용 손전등을 꺼냈다. 손보미는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무도 그녀에게 이런 도구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다.모두의 기대가 어린 시선 속에서 임진희는 손전등의 빛을 드레스에 비추었다. 순간, 은은한 파란빛의 별빛 무늬가 물결처럼 퍼졌다. 이 드레스의 이름은 별들이 떠받드는 달로, 스커트의 최고급 진주는 안드로메다 성운을 모티프로 한 디자인이었다. 특수 조명에 비춰졌을 때만 얕은 푸른빛이 은은하게 퍼져나왔다. 안드로메다는 그리스 신화에서 사랑과 아름다움을 의미하기에 이 드레스는 가장 사랑하고 가장 아름다운 여인에게 바치는 것이다.모든 이들이 놀라움의 탄성을 쏟아낼 때 손보미는 갑자기 입을 틀어막더니 깜짝 놀란 눈으로 드레스를 바라봤다. 치맛자락의 별빛 무늬 중 한 곳에
도파민을 자극하는 제목 덕분에 라이브 방송에는 순식간에 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그중 일부는 손보미의 팬들로 방송 시간을 기다리다 바로 들어온 사람들이었고 나머지는 소문을 듣고 호기심에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었다.손보미는 조금 앞으로 다가갔다. 휴대폰은 주머니에 넣어 화면은 보이지 않았지만, 현장의 소리는 라이브 방송을 통해 고스란히 전해졌다.“도아린 씨, 디자인 비용만 억대에 달하는 드레스를 이렇게 아무렇게나 다뤄질 순 없잖아.”손보미가 애처로운 표정으로 반문하자 시청자들은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연예인들이 행사에 참석할 때 착용하는 옷이나 장신구는 대부분 브랜드에서 협찬해 주며 담당 매니저나 보조는 인수인계할 때 여러 차례 점검해 책임 문제를 피하려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사실을 다들 알고 있었다.손보미가 비록 최고 위치에 있진 않았어도 연예계에서 7~8년 지냈다면 그 정도는 알 법했다.누군가 도아린을 의심하기 시작하자 도아린은 즉시 핸드폰을 꺼내 그날의 녹음을 재생했다.손보미는 속으로 분노했다. 자신이 영상으로 인수인계하는 걸 거절하자 도아린은 몰래 녹음까지 해두었다니 정말 뻔뻔하다고 생각했다.분위기가 급변하며 사람들의 의심스러운 시선이 그녀에게 쏠렸다. 손보미는 눈물로 가득 찬 눈을 했지만, 끝내 눈물을 흘리지 않으며 억울함이 배어 나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당시 난 병원에서 율이를 돌보고 있었고, 도아린 씨는 잠시도 기다려 주지 않고 당장 검사를 해보라 재촉했어...아현 씨의 신뢰가 목숨보다 중요하다는 거야? 나중에 도아린 씨를 찾으려 했지만 이미 병원을 떠났지...”손보미의 말에 다시 도아린이 가해자로 몰렸다.율이의 생사를 무시하고 검사만 강요했다는 점은 확실히 도아린의 잘못처럼 보였다.게다가 병원을 서둘러 떠난 모습은 책임을 회피하려는 듯 보였고 이후 손보미가 사실을 확인하더라도 도아린은 자신과 무관하다고 발뺌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인수인계 시 영상을 찍는 대신 녹음을 선택한 것도 녹음이 전체 상황을 담고 있는지 아
임진희는 고개를 들어 도아린을 바라보며 의심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이 업계에서 아현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아현은 과거 문화재인 곤룡포를 복원해 낸 인물이었다.아현의 손을 거친 용 자수는 컴퓨터 작업보다 훨씬 생동감 넘쳤다. 아현이 있었다면 복원도 문제없었을 것이다.하지만 조수에 불과한 그녀가 큰소리를 치는 것은 너무 주제넘은 일이라고 생각했다.“도아린 씨, 제발 불난 집에 기름을 붓지 마.”손보미의 눈가에 맺힌 눈물이 마침내 떨어졌다. 손보미의 눈가에 맺혀있던 눈물이 마침내 흘러내렸다.“조수 일을 시작한 지 한 달도 안 됐잖아. 뭘 배웠다고 그런 소리를 하는 거야.”손보미의 눈물은 도아린을 걱정해서가 아니라 아까의 험악한 분위기에 겁을 먹었기 때문이었다.배건후가 도아린을 감싸주고는 있었지만, 연예계 전체를 적으로 돌릴 수는 없었다.만약 임진희의 눈 밖에 나거나 브랜드 관계자들에게도 좋지 않은 인상을 남긴다면 앞으로 좋은 광고나 예쁜 옷을 빌리기는 어려울 터였다.“선배님, 이번 일은 제 불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제 무지와 경솔함에 대해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제 친구가 디자이너 서대은 씨와 아는 사이인데 서대은 씨의 정교한 드레스가 있으니 우선 촬영에 사용해 보시는 게 어떨까요?”“그 후 그 드레스 소유자에게 저를 맡기셔도 괜찮습니다. 어떤 조치를 취하셔도 원망하지 않겠습니다.”손보미의 제안은 현재로선 최선의 해결책이었다.임진희 역시 드레스가 없다고 해서 출연 가수들 스타 멘토들 심지어 프로그램 전체 일정을 조정할 수는 없었다. 생방송이기 때문이었다.비록 마음에 들지 않아도 당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었다.임진희가 고개를 끄덕이자 손보미는 서둘러 배건후에게 전화를 걸었다.최고급 바다 진주도 구할 수 있는 그였으니 ‘브랜드의 메인 상품’이라 불리는 드레스 또한 구할 수 있을 것이다.전화가 연결되기 직전 도아린이 침착하게 말했다.“제가 스승님께 배운 실력은 아직 부족하지만, 이 회색 얼룩은 실이 끊어진 게 아니라 오염된 흔적
“민재야, 도와줘...”“한 번 더 말해 봐!”도아린은 누군가에게 머리를 잡혀 억지로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뒤에 있는 남자의 싸늘한 이목구비를 본 순간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건후 씨? 건후 씨가 왜 여기에...”남자는 안개가 자욱한 유리 벽에 도아린을 밀어붙이더니 그녀의 아래턱을 잡고 눈을 마주쳤다.“여긴 내 방이야, 누구이길 바라는데? 응?”도아린이 미친 듯이 발버둥 쳤다.“이거 놔요. 놓으라고요...”“날 건드렸으면 끝까지 버텨야지.”남자는 도아린의 허리를 감싸 안고 마구 더듬었다.“으악...”쿵!도아린은 차 유리창에 머리를 부딪치면서 꿈에서 깼다.앞에 교통사고가 일어났는데 버스가 미처 피하지 못하고 길가의 배수구에 빠지면서 옆으로 넘어지고 말았다. 버스 안에는 온통 욕하는 사람들과 우는 사람들뿐이라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3년 전 그날 밤의 사고에 비하면 이번 사고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도아린은 그 사고만 생각하면 아직도 심장이 벌렁거렸다. 그날 밤 그녀는 배건후 때문에 병원에 가게 되었고 그러다가 배씨 가문 사모님이 되어 위기들을 해결하긴 했지만...“죽고 싶어요? 얼른 밖으로 기어 나와요!”누군가의 재촉에 도아린은 이미 망가진 케이크를 버리고 선루프로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구급차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도아린은 구급차가 멀지 않은 곳의 아우디 밴 옆에 멈춰 있는 걸 발견했다.의료진들이 구급차에서 내려 차 안의 다친 환자를 부축했다. 그때 훤칠한 키의 한 남자가 상체를 숙이고 차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조심스럽게 여자를 안고 나온 후 구급차에 태웠다.찰나였지만 도아린은 그 남자가 바로 결혼한 지 3년 된 남편이라는 걸 알아봤다. 그리고 남편의 품에 안겨 있는 여자는 늘 잊지 못했던 그의 첫사랑이었다. 그는 유학 간 그녀를 줄곧 잊지 못했다.도아린은 팔이 아픈 것도 참아가며 휴대전화를 꺼내 전화를 걸었다. 휴대전화 너머로 남자의 싸늘하고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용건만 간단히.”“오늘 집에 들어와
“대표님!”배건후의 차를 알고 있는 경비원이 허리 굽혀 인사했다.“대표님, 아린 씨도 자주 농땡이 치는 건 아니에요. 근데 다른 도우미로 바꾸고 싶다면 소개해드릴게요...”관리사무소 팀장은 웃으면서 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냈다.배씨 가문의 도우미들은 좋은 것만 먹고 좋은 것만 썼다. 게다가 월급이 높을 뿐만 아니라 재벌 2세를 만날 기회가 많기에 도아린의 자리를 빼앗으려는 사람이 많았다.배건후는 차 안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카리스마는 모두를 압도해 버렸다.환하게 웃던 사람들의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연성의 7월은 한창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지만 사람들은 마치 공기가 얼어붙은 것처럼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1분 후, 유리창이 서서히 내려오면서 배건후의 어두운 목소리가 들려왔다.“할 일 다 하고 여기서 수다질이야? 하기 싫으면 그만두고 꺼져.”관리사무소 팀장은 놀란 나머지 두 다리를 부들부들 떨었고 당장 무릎이라도 꿇을 기세였다.배건후의 언행은 상업계의 발전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그런 그가 관리사무소를 내쫓는다면 관리사무소는 연성에서 더는 발을 붙이기 어려울 것이다.사람들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고 배건후의 날카로운 시선이 도아린에게 머물렀다.“타.”“난 할 일이 있어서요...”그러자 배건후의 표정이 확 일그러졌다.“같은 말 반복하게 하지 마.”도아린은 하는 수 없이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차에 올라탔다. 그러고는 배건후와 거리를 유지하려고 차 문 쪽에 최대한 붙어 앉았다.마이바흐가 맨션을 나간 후 배건후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가 하얀 연기를 내뱉으며 싸늘하게 말했다.“평소에는 기고만장하다가 침대 위에서는 힘 한 번 쓰지 못하는 남자?”“...”도아린은 시선을 내리깔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담배를 다 피운 배건후가 서류를 툭툭 두드렸다.“이거 무슨 뜻이야?”도아린이 힐끔 쳐다보니 그녀가 작성한 이혼 합의서였다.“이혼하고 싶어요.”차 안의 공기가 순식간에 숨 막힐 듯이 답답해졌다.운전기사 조수현은 당장이라도 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