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아린, 네 머리엔 도대체 뭐가 들어찼어?’‘어떻게 그렇게 멍청할 수 있지?’‘이미 마음이 떠난 남자랑 사랑을 논하다니, 그냥 돈만 따지면 되는 거지.’도아린은 물을 두어 모금 마시고 나서 서서히 마음을 가라앉혔다. 경찰은 밴이 리조트에서부터 미행했다고 했지만 오늘 그곳에 갈 거라는 걸 그녀도 몰랐는데 그들이 어떻게 알고 있었을까.아마 손보미가 배건후의 일정을 알고 미리 사람을 보냈을 가능성이 제일 컸다. 도아린은 쓴웃음을 지으며 되레 소유정을 위로했다.“오늘 당한 건 꼭 배로 갚아줄 거야.”발걸음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며 병실 문이 열렸다. 배건후는 차가운 분위기를 풍기며 들어오더니 침대에 기대있는 도아린을 보고 잠시 멈칫했다.“깼네.” 그는 눈에 깊은 그림자가 드리운 채 가까이 다가섰다. “얘기 좀 해.”“아린이가 당신이랑 무슨 얘기를 나눌 게 있죠?”소유정은 겨우 멈췄던 눈물이 다시금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사람이 납치당했을 땐 돕지도 않더니 이제 와서 존재감을 과시하러 오는 것도 아니고.’그녀는 배건후를 조금 두려워했다. 그는 겉보기에 다가가기조차 어려운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도아린이 심하게 당하면서 그녀는 거의 각오를 다졌다. 연예계를 떠나는 한이 있더라도 친구가 괴롭힘 당하는 걸 참을 수 없었다.도아린은 담담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유정아, 나 밀크티 마시고 싶어. 토핑 가득 넣어서.”소유정은 자신을 내보내려는 핑계라는 걸 단번에 알아차렸다. 그녀는 도아린과 눈빛을 교환하며 바로 밖에 있을 테니 무슨 일이 있으면 부르라고 했다. 그러고는 배건후를 흘겨보며 병실을 나갔다.배건후는 의자를 끌어와 병상 옆에 앉았다.“어제 사모님께서 해남으로 돌아왔어. 너도 함께 배웅하길 바랐는데...” 그는 잠시 멈췄다가 계속해서 말했다. “사모님께서 정신적으로 불안정하셔서 네가 사고를 당했다는 얘기는 아직 하지 않았어.”도아린은 비웃음을 흘렸다. “엄마도 모르겠죠?”“크게 다친 것도 아닌데. 엄마가 알면 병세
그는 손보미의 출생에 대해 말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었다. 배건후는 본능적으로 타고난 고고한 자태를 풍기며 도아린을 내려다보았다.“경찰은 결코 범인을 놓치지도 무고한 사람을 억울하게 만들지도 않을 거야.”도아린은 눈을 감은 채 창백한 얼굴엔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 ‘손보미가 그동안 고생한 게 지금 무슨 상관이지?’그녀는 감독과 밤늦게까지 대본을 논의하다가 평판이 망가지고 여러 곳에서 압박을 받게 되자 어쩔 수 없이 해외로 연수를 나갔다. 가엾은 사람에게는 미워할 점이 있기 마련이다. 누구나 힘들겠지만 그게 폭력의 이유는 될 수 없다.“그만 가세요. 혼자 쉬고 싶어요.”배건후는 무언가를 말하려 입을 열다 말고는 그대로 꾹 참아 누른 채 돌아섰다.소유정은 병실 맞은편 의자에 앉아 있다가 문이 열리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경계의 눈빛을 보냈다.“당신이 아직도 아린이를 와이프로 여긴다면 아린이가 푹 쉴 수 있도록 귀찮게 하지 말아주세요.”“소유정 씨, 당신 말에 책임질 준비 하세요.” 배건후는 차갑게 경고했다.소유정은 고집스레 고개를 들어 올렸다. “배건후 씨, 고소하고 싶으면 하세요. 당신이 저지른 일에 후회하지나 말고.”“지금 뭐하는 거야?” 갑자기 들려오는 육하경의 온화한 목소리에 두 사람은 실랑이를 멈추었다.배건후가 고개를 돌리자 손에 밀크티 두 잔을 들고 있는 육하경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가슴속에 쌓여 있던 답답한 감정이 점점 뚜렷해지는 것 같았다. 배건후의 눈빛은 마치 칼처럼 날카로웠다.육하경이 건넨 밀크티에 소유정은 즉시 환하게 웃어 보였다. 배건후를 대하던 태도와는 하늘 땅 차이였다.“아린이가 제일 좋아하는 토핑이 들어간 밀크티네요. 역시 세심한 분이라 그러신지 따뜻한 걸로 사 오셨네요.” 소유정은 일부러 배건후가 들을 수 있게 큰 소리로 말했다. “이제 들어가야겠어요. 아린이가 한참을 기다렸거든요. 하경 씨도 어서 들어와요.”배건후가 날카로운 눈빛을 던졌지만 소유정은 이미 병실로 들어가 버렸다.육하경은 배건후에
그는 전화를 끊고 육하경에게 함께 가자는 눈빛을 보냈다.“유정 씨가 날 찾아.” 배건후는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는 육하경을 들추어내고 싶지도 않았다. 비록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혼자 떠나야 했다.소유정은 육하경이 들어오자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잠깐만요! 오늘의 주인공께서 등장합니다!”육하경은 그녀의 농담에 약간 민망해하며 말했다. “그만 놀리세요. 별것도 아닌데요 뭐.”도아린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늘 일은 정말 고마워요. 하경 씨가 아니었다면 전...”“오늘이라니!” 소유정이 그녀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벌써 이틀 전이야. 너 꼬박 이틀이나 의식을 잃었엇어.”“...” 도아린은 눈이 휘둥그레졌다.소유정은 핸드폰을 꺼내 날짜를 보여줬다. 도아린은 이내 받아들이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제야어제 진 대표님과 사모님께서 해남으로 돌아갈 때 그녀에게 배웅하지 말라고 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녀는 이틀이나 혼수상태에 빠졌던 것이다.“오는 길에 경찰서에 들렀어요. 이제 간단한 진술을 받으러 올 거예요.” 육하경은 온화한 시선에 약간의 엄숙함을 더한 채 말했다. “비록 그때의 일을 떠올리기 싫겠지만 아린 씨의 진술이 범인을 잡는 데 도움이 될 거예요.”도아린은 입에 빨대를 문 채 비웃음을 흘렸다. 굳이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도 없이 손보미만 주시하면 진범을 찾을 수 있는데 말이다. 그러나 경찰이 믿어줄까? 설령 믿는다 해도 출동할까? 배건후가 여전히 손보미의 편에 서 있는 한 손보미는 두려울 게 없었다.도아린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와 같다는 걸 알면서도 한 번쯤 시도는 해보고 싶었다.“최대한 기억해 낼게요.” 도아린은 토핑을 한 입 크게 씹으며 물었다. “하경 씨는 어떻게 제가 폐창고에 있는 걸 알았어요?”“사실...”“내가 하경 씨한테 전화했어.” 소유정은 육하경의 말을 끊어버렸다. “그 인간이 너 죽든 말든 신경도 안 쓰길래 초조한 마음에 여기저기 헤매다 결국 하경 씨한테 연락
“네. 뭔데요?”“하경 씨, 아린이를 좋아하죠? 아린이랑 배건후는 곧 이혼할 거예요. 그럼 우리 아린이한테 고백할 마음 있어요?”육하경이 주저하는 모습에 소유정은 급히 덧붙였다.“결혼하고 3년 동안 배건후는 아린이한테 손 하나 대지 않았어요.”육하경의 온화한 눈빛에 순간 놀라움이 스쳐 갔다. “뭐라고요?”“결혼 3년동안...”갑자기 병실 문이 열리며 경찰이 나왔다. 육하경은 경찰을 배웅했고 소유정은 병실로 돌아가 도아린을 위로했다. 10여 분 뒤 육하경이 다시 병실로 돌아오고 세 사람은 함께 저녁을 먹었다.“대학교 때 생각이 나네요. 식당에서 토마토 소갈비에 옥수수나 사과 조각을 넣어 주곤 했죠. 진짜 악마의 요리였어요.” 소유정은 육하경을 바라보며 말했다. “근데 아린이는 그걸 가장 좋아했어요. 왜인지 알아요?”육하경은 도아린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린 씨가 과일을 좋아했나요?”도아린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그럼 양이 많아서?”소유정은 하마터면 밥을 뿜을 뻔했다. “식당 아줌마가 손을 한 번 떨면 절반이나 줄어들잖아요.”세 사람은 그렇게 한참을 웃다가 육하경이 다시 토마토 소갈비에 대해 물었다.“사실 토마토 소갈비의 국물에 밥을 비벼 먹을 수 있어서요.” 도아린이 웃으며 설명했다. 그녀는 도정국이 준 제한된 생활비로 하루하루 아껴 써야 했다. 게다가 동생의 병원비까지 마련해야 하다 보니 식비를 아낄 수밖에 없었다. 반찬을 조금만 담고 국물을 듬뿍 담으면 밥을 두 공기나 먹을 수 있었다.결혼 후에는 비싼 소갈비를 마음껏 먹을 수 있었지만 배건후는 식단을 조절하기 시작했고 그녀도 더 이상 옛날을 돌아보지 않게 되었다.지금까지도 배건후는 그녀가 왜 토마토 소갈비를 좋아하는지 모른다....가로등이 두 개나 나간 어두운 골목길이었다. 희미한 빛이 들어오는 골목길 한가운데에 술 취한 양아치 두 명이 비틀거리며 쓰레기통을 넘어뜨렸다.쾅!“젠장, 재수 없게!”“형님 눈이 먼 거 아니야? 겨우 10만 원 때문에 구치소에
육하경은 도아린을 차마 바라보지 못했다. 그는 잠시 멈칫하더니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혹시라도 그녀의 얼굴에서 실망하는 기색을 볼까 두려웠다. 더군다나 그녀의 신뢰를 잃을까 더욱 두려웠다.병실은 바늘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만큼 쥐 죽은 듯 조용했다. 육하경은 티베트에서 마적을 만났을 때조차 겁을 내지 않았지만 지금은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눈동자를 몇 번 굴리다 도아린을 쳐다보곤 다시 시선을 내렸다가 갑자기 고개를 들어 그녀를 빤히 바라봤다.도아린은 입가에 미소를 띤 채 맑은 눈빛에는 선의와 따뜻함 그리고 약간의 장난기가 엿보였다.“아린 씨... 저한테 실망한 거 아니에요?”육하경이 긴장하며 물었다.“실망할 게 뭐 있어요?” 도아린은 피식하더니 말을 이어갔다.“하경 씨가 현장에 제일 먼저 도착했다는 사실은 하경 씨 입으로 말한 게 아니라 유정이의 오해일 뿐이잖아요. 하지만 나를 병원에 데려다준 건 사실이니까 제 은인이 맞죠.”육하경은 오히려 마음이 무거워졌다. 도아린은 이미 그들의 대화를 듣고 진실을 추측해 냈다. 그녀는 이를 굳이 드러내지도 않았고 육하경의 체면을 지키면서 배건후에 대한 미련도 남겨두었다. 만약 소유정의 말이 사실이라면 배건후가 그녀를 건드리지 않았음에도 도아린이 그와 3년을 함께한 걸 봐서는 그에 대한 감정이 깊다는 의미였다. 마음속에 그만한 자리를 차지한 사람을 대신하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육하경은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사실대로 말하길 잘했네요.”그렇지 않았다면 친구로 남지 못했을지도 모른다.“하경 씨 같은 친구가 있어서 다행이죠.”육하경은 그녀의 밝은 눈동자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배건후가 차에서 내리려는 찰나 병원 문을 나서는 육하경을 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드물게 순진하면서 어딘가 멍해 보이는 미소가 피어있었다. 배건후는 그 미소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는 다시 다리를 거두어들였다.차는 점점 멀어져 갔고 고요한 침묵만이 흘렀다. 운전하던 조 기사도
곧 도아린의 신상은 낱낱이 털렸다. 무명인 수공예자에 불과한 그녀는 능력이 부족해 감독한테 손보미의 대역을 거절당하더니 앙심을 품고 손보미의 안티팬이 되었다고 한다.그들은 도아린의 얼굴로 이모티콘을 만들어서는 인터넷에 마구 퍼뜨렸다.도아린은 사람들이 핸드폰을 들고 있는 게 단지 손보미의 스튜디오에서 촬영하는 일상 브이로그인 줄 알았을 뿐 자신이 이미 온라인에서 유명해진 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녀는 율이의 안색이 전보다 나아진 것을 보고 국민의 관심을 받은 후로부터 보육원에서 더는 구박하지 않는 줄 알았다.“아린 언니도 노래 부르러 왔어요?” 율이는 고개를 들어 도아린을 올려다보며 물었다.도아린은 몸을 낮추고 말했다.“친구 따라온 거야.”“저도 보미 언니 따라 왔어요. 언니랑 같이 프로그램 봐도 돼요?” 율이는 도아린의 손을 꼭 잡고 눈을 깜박거렸다.도아린은 율이가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걸 느끼고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자.”김지민은 슬며시 손보미를 쿡 찌르더니 율이와 더 호응하기를 바랐다. 더 이상 도아린이 주목받지 않도록 유도했다.오는 길 내내 율이는 손보미를 잡고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아린 언니는 왜 저를 만나러 오지 않는 거죠? 혹시 아린 언니의 연락처를 알고 있어요?”손보미는 순식간에 짜증이 났다. 율이는 분명 손보미의 팬이지만 이제 도아린을 겨우 두 번 만났을 뿐인데 그녀를 엄청 따랐다.도아린은 역시 사람을 홀리는 재주가 있는 게 분명했다. 남자뿐 아니라 아이까지 매혹시켰다.손보미는 율이한테 도아린이 요즘 스파와 피부 관리로 바쁘다 보니 율이를 신경 쓸 겨를이 없다고 않고 했다. 만약 진심으로 율이를 걱정했다면 함께 갔어야 하지 않겠냐며 사실을 왜곡했다.율이는 반신반의하며 계속해서 물어보려 하자 손보미는 날카로운 눈빛을 보내며 경고했다. 곧 촬영이 시작되니 더 이상 도아린에 대해 언급하지 말라고 했다.그렇지 않으면 율이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도아린을 나쁜 사람으로 여길 것이라고 했
“마음만 받을게.”도아린은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향해 말했다. “브랜드명을 알려주시면 제가 밖에서 사 올게요.”“지금 사러 가시면 언제 메이크업을 마치죠? 오늘 출연자가 너무 많다 보니 별로 시간이 없어요.”“유정이는 마지막 순서니까 다 끝내고 해주셔도 되잖아요.”메이그업 아티스트는 그녀를 흘겨보더니 파운데이션을 닫아버렸다. 도아린이 나가려 하자 손보미는 급히 자리에서 일어섰다.“메이크업 아티스트님께서 아침 일찍부터 와서 모든 출연자의 메이크업을 끝내고 이제야 잠깐 쉴 수 있는데, 게다가 촬영이 시작되면 수정 메이크업까지 해줘야 하거든. 그냥 내 거 쓰는 게 어때? 굳이 다른 사람의 휴식 시간을 뺏지 말고.”손보미는 마치 도아린을 무례한 사람처럼 몰아갔다. 그녀는 도아린이 거절할 틈도 없이 파운데이션을 건넸다.비록 도아린은 그녀와 엮이고 싶지 않았지만 그녀가 거절하면 악의적으로 편집할까 걱정되었다. 자신이 욕먹는 것쯤이야 상관없었지만 소유정이 피해를 보는 건 원치 않았다.“그럼 잘 쓸게.”도아린이 파운데이션에 건네받기도 전에 소유정은 손을 확 놓아버렸다.쨍그랑.파운데이션은 바닥에 떨어졌다.손보미는 놀란 표정을 지은 채 방황하는 눈동자로 쳐다봤다.순간 주위의 사람들은 핸드폰을 그녀의 얼굴에 갖다 댄 채 아무도 파운데이션이 어떻게 떨어졌는지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저 손보미의 반응으로 인해 도아린이 일부러 떨어뜨렸다고 추측하기 시작했다.[정말 악하네요. 두 눈으로 직접 보지 못했으면 오버하는 줄 알았어요.][보미 씨가 너무 착하다 보니까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위해 참아주는 거잖아요.][저 여자는 공예가가 아니라 여우 년인가 봐요.]댓글 창은 온통 도아린에 대한 비난으로 가득했다.도아린은 덤덤하게 손보미를 쳐다보며 마치 예상했다는 듯이 손보미가 몸을 굽혀 파운데이션을 줍는 것도 대수롭지 않아 했다.손보미는 파운데이션을 집어 들더니 더는 도아린에게 건네주지 않고 소유정의 메이크업 아티스트에게 건네주었다.“제 거 사용하세요.”그리
스태프들과 한참을 조율한 끝에 손보미 혼자만 들어가도록 허락을 받았다.“선배님, 저 보미예요.” 손보미는 테이블에 캐리어를 올려놓으며 말했다. “오늘 선배님께서 이 드레스로 촬영하신다고 전해 들어서 특별히 가져왔어요.”임진희는 음악계의 톱스타로 많은 인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녀는 무명의 신인을 스타로 만들어낸 적도 있었고 인기 가수를 나락으로 떨어뜨린 적도 있었다.손보미는 영화, 음악, 드라마에서 모두 성공할 욕심은 없었지만 그래도 유명한 선배님을 화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임진희의 한마디면 업계에서 매장당할 수도 있었다.“이 드레스, 네가 입어본 적 있니?” 임진희는 눈빛에 불쾌함이 스쳤다.손보미는 침을 꿀꺽 삼키며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 “사진 두 장 찍었을 뿐이에요. 절대 유출하지 않았어요. 그저 개인적인 아쉬움을 채우려고...”“아쉬움이라니?”“남자 친구가 이 드레스에 담긴 이야기를 듣고 나서 고가에 구입하려 했어요. 결혼식 예복으로 입게 하려고요. 근데 아무리 비싼 값을 불러도 팔지 않더군요. 선배님께서 이 드레스를 예약하셨다는 걸 듣고 유일한 기회인 것 같아서 마음대로 빌려 입어봤어요.”“...”임진희는 무심히 손가락을 튕겼다. 손보미는 모든 책임을 자신의 잘못으로 돌렸다.그러나 스태프가 빌려준 걸 봐서는 손보미가 고가를 부른 것도 사실이고 결국 쌍방의 잘못이었다.이 브랜드는 오랫동안 임진희의 활동을 후원해 주며 원만하게 협력해 왔다. 굳이 이런 일로 틀어질 필요는 없었다.임진희가 용서하려던 찰나 갑자기 비서가 와서 뭔가를 보고했다.“예진 씨께서 오셨습니다.”“얼른 들어오라고 해.”임진희는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맞이했다. 그 모습을 본 손보미는 순간 몸이 작게 떨려왔다.둘은 서로 포옹하며 인사를 나눈 뒤 칭찬을 건네기 시작했다. 함예진은 곧 도아린을 데려와 소개했다.“내 조카 아린이야.”뒤에 서 있던 손보미의 눈에서 분노가 넘쳐났다.‘어딜 가나 도아린이 끼어들다니!’만약 함예진이 도아린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