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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화

작가: 온유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4-10-29 19:42:56
사실 도아린이 대역을 하든 말든 LH 스튜디오가 송민혁의 담당 컨설턴트임은 변함이 없었다.

도아린은 더 좋은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박물관을 예약해서 관람하기로 했다.

그녀가 박물관에 도착했을 때 이미 줄이 길게 이어졌다.

이때, 문나연이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수선이 필요한 고객 옷 때문에 그녀의 의견을 물었는데 곧바로 답장을 보내며 사람들을 따라 앞으로 조금씩 이동했다.

마침내 그늘진 곳에 도착하자 누군가의 그림자가 앞을 가로막았다.

“이런 우연이 있나? 너도 구경하러 온 거야? 일이 있어서 좀 늦었는데 맨 뒷줄은 해가 너무 쨍쨍해서 같이 들어가면 안 될까?”

도아린이 고개를 들어보니 검은색 점프슈트를 입은 손보미가 손으로 이마를 가린 채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공들인 메이크업과 커다란 선글라스, 그리고 목에서 반짝이는 다이아몬드 목걸이까지 더해 부티가 줄줄 흘렀다.

운명의 장난인지 아니면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나기 마련인지 몰라도 매번 두 사람이 마주칠 때면 옷이 항상 같은 색 계열이었다.

비록 도아린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액세서리가 하나도 없었지만 분위기든 몸매든 상대방을 압도했다.

그녀는 딱 잘라 거절했다.

“뒤에서 줄 서는 사람도 생각해야지.”

마침 줄이 이동하자 손보미는 자연스럽게 나란히 섰다.

“어쨌거나 얼굴이 알려진 사람인데 괜히 악성 루머나 생성하지 마.”

도아린이 쌀쌀맞게 말하더니 팔꿈치로 손보미를 밖으로 밀어냈다.

그러나 장본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번에는 뒤로 비집고 들어갔다.

“그날 밤 너랑 건후 씨를 방해해서 미안해. 두 사람의 사이를 훼방 놓을 생각은 없었어. 단지 어찌할 바를 몰라서... 건후 씨가 그렇게 늦은 밤에도 찾아올 줄 몰랐지.”

도아린은 그녀의 변명 따위 가뿐히 무시하고 계속해서 사람들을 따라 앞으로 걸어갔다.

“일을 저질러 놓고 욕은 듣기 싫다는 건가? 우습군.”

만약 손보미가 계속해서 이 화제를 이어간다면 스스로 먹칠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이내 침묵을 지키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비아냥거리는 얼굴로 말했다.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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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석준은 잠시 멈칫하더니 목에 무언가 걸린 것처럼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김지민이 찾아온 것은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것과 다름없었다.주현정은 피식하더니 새우 딤섬을 밀어내고 옆에 있는 곡물 전병을 집어 들었다.“마침 지민 씨도 왔으니 같이 이야기하죠.”“지민 씨는 내 비서일 뿐이야.”배석준은 어두운 표정으로 나가더니 김지민을 한쪽으로 불렀다.싸늘하게 식어버린 눈으로 바라보는 그한테서 오랜 권력자의 위엄이 저절로 뿜어져 나왔다.“여기까지 왜 온 거야?”김지민은 그의 기에 눌린 채 조심스레 가방에서 물건을 꺼내 건넸다.“시계를 저희 집에 놓고 가셔서요. 사모님께서 오해하실까 봐 얼른 가져다드리려고요.”그녀가 이렇게 찾아오는 게 주현정에게는 더 큰 오해의 빌미가 될 터였다.“중요한 일이 아니면 저택에 찾아오지 마.” 배석준은 시계를 건네받고 돌아서려 했다.김지민은 그의 팔을 급히 붙잡았다.“저랑 보미가 지유를 보러 가고 싶은데 가족이 아니라서 어려워요. 도와주실 수 있나요?”“곧 나올 거라는 걸 알면 지유도 마음이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싶어서요.”배석준은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곳에서 하루하루를 힘겹게 보내고 있을 텐데 대회가 끝나면 도아린이 합의서를 제출할 것이라고 알려주면 배지유도 기대를 할 수 있었다. 현재 가장 중요한 것은 주현정을 달래는 일이라 손보미가 소식을 전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배석준은 전화를 걸려다가 또다시 김지민에게 팔이 붙잡혔다.“옆에서 하세요. 사모님께서 지유가 보미랑 어울리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으세요.”배석준은 그녀의 말을 듣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전화를 걸었다. 김지민은 그런 배석준을 숭배하는 눈빛으로 바라봤다.모든 일이 정리된 후, 김지민은 배석준과 함께 돌아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그의 품에 안기며 쓰러졌다. 그는 본능적으로 그녀의 허리를 감싸안았다.순간 김지민은 그를 밀쳐내며 말했다.“사모님, 오해하지 마세요. 그냥 발을 헛디뎠을 뿐이에요.” 그녀는

  • 또 한 번의 거절   제343화

    고개를 돌리자 배건후는 무표정하게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배건후가 배씨 그룹을 맡고 나서부터 둘은 몇 번이고 의견이 엇갈렸지만 매번 배건후의 판단이 옳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배석준은 때론 아들이 소름 돋기도 했다.“왜 그렇게 보는 거니? 이게 다 널 위해서야. 만약 지유가 자기 대신 도아린이 대회에 나간 걸 알게 되면 널 얼마나 미워하겠어?”배건후가 말했다. “지유는 경영학을 전공하고 있어요.”배석준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전공과 취미는 별개야.”“아버지, 많이 늙으셨네요.” 배건후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눈빛에 차가운 비웃음을 번뜩이며 아버지를 내려다보았다. “당하는 줄도 모르고.”배석준은 문을 쾅 닫고 나가버리는 아들을 보며 분노가 치밀어 오르다 못해 주먹까지 떨려왔다. “이 망나니 녀석이 감히 아버지한테!”고개를 돌리자 주현정은 계단에 서서 똑같이 비웃음 가득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당신도 내가 노망났다고 생각해?”주현정은 차갑게 말했다. “당신은 돌아오지 말아야 했어요.”배석준은 빠르게 계단을 올라가려 했지만 주현정은 그를 들여놓지 않았다. 그는 화가 잔뜩 나서 말했다. “당신은 이미 지유한테 깊은 상처를 주었어. 지금 내가 하는 모든 게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야. 아들은 도아린에게 홀려있는데 당신도 도아린을 따라다니며 헛소리나 하고 말이야.”주현정은 그의 셔츠에 묻은 립스틱 자국을 가리키며 비웃음을 흘렸다. “지민 씨가 당신을 제대로 홀린 것 같네요.”“지민 씨는 무려 8억 원을 손해 보고도 당신한테 원망 한마디 안 했는데, 어떻게 되레 당신이 지민 씨를 원망할 수 있어?” 배석준은는 억울해하는 김지민의 모습을 떠올리며 불쾌해졌다.주현정은 그의 눈을 빤히 쳐다보더니 담담하게 말했다. “우리 이혼해요.”“뭐라고?” 배석준은 언성을 높여 말했다. 이미 쉬고 있던 유민정은 옷을 걸치고 나와 상황을 살폈다.배석준은 그녀에게 돌아가라고 한 뒤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주현정을 바라보았다.“이것도 도아린

  • 또 한 번의 거절   제342화

    육하경은 주먹을 날리려는 배건후를 말리며 성대호를 쏘아밨다.“입 닥쳐.”성대호는 고개를 들고 눈에 비웃음을 띄웠다.“건후야, 제대로 설명할 수 있겠어? 네 아버지, 그리고 네 스캔들 상대에 네 절친까지 전부 지유를 구하기 위해 아린 씨를 해치고 있잖아. 그런데도 네가 이 일과 관계없다고 할 수 있겠어?”그의 눈동자에는 깊고 검은 파도가 일었다. 금방이라도 잠식될 듯 넘실거렸다.성대호는 입술에 묻은 피를 닦더니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육하경은 긴장된 분위기를 완화하려 애썼지만 입을 열기도 전에 배건후는 전화를 받고 급히 자리를 떠났다....바 VIP룸.손보미는 술잔을 높게 들어 올리며 말했다.“우리 잘해 봅시다!”김지민은 배석준의 품에 기댄 채 그의 가슴을 다정하게 쓰다듬었다.“걱정 마세요. 대회가 끝나면 지유도 풀려날 거예요.”배석준은 비꼬듯 술잔을 들었다.“대회에 나간다 한들 수상하겠어?”“사실 지유는 전부터 스타 대회에 참가하고 싶어 했어요. 그런데 도아린이 지유를 이렇게 만든 걸 생각하면 차마 도아린이 대회에 나가도록 둘 수 없었어요.”손보미는 배석준과 잔을 부딪치며 눈물을 글썽였다. “설령 건후가 절 미워하게 되더라도 지유를 위해서라면 참가자 명액을 반드시 빼앗아야 했어요.”배석준은 진지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는 배건후가 손보미와 사귄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는 반대했었다. 아무래도 배경도 능력도 없는 그녀는 배씨 가문의 며느리 자격이 없었다. 그녀가 자진해서 해외로 떠나는 바람에 배씨 가문의 보복을 피할 수 있었다.도아린이 그 틈을 타서 배씨 가문으로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배석준은 차라리 손보미를 며느리로 받아들이고 싶었다. 어쨌든 손보미는 배지유를 위해서라면 진심을 다했기에 배씨 가문을 망가뜨리려는 도아린과 달랐다.“너와 건후 사이 문제는 내가 끼어들 수 없단다.”배석준은 술을 한 모금 마시며 말을 꺼냈다. “어릴 때부터 자기 주장이 강한 아이였다.”“전 대표님 마음속에 우리 보미가 어느

  • 또 한 번의 거절   제341화

    이 남자는 바로 어제 열린 경매에서 배건후와 토지를 두고 경쟁하던 사람이었다. 그는 경제적인 조건뿐만 아니라 입찰서까지 완벽하게 갖춘 강력한 경쟁자였다. 배건후의 사업을 빼앗고 심지어 지금 그의 사람까지 빼앗으려 하니 그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참가자는 반드시 회사의 직원이어야 하는데 도아린이 지금 티파니 주얼리에 입사하기엔 늦었어요.”배건후가 냉정하게 말했다.진경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배 대표님 말이 맞아요.”배건후가 긴장한 마음을 조금 풀려는 순간 그는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아린이는 진씨 가문의 사람이자 티파니 주얼리의 주주에요. 굳이 입사할 필요가 없죠.” 진경수는 배씨 그룹의 신청서를 병상에 던져버리더니 새로운 신청서를 꺼내 펜과 함께 도아린에게 건넸다.도아린은 손을 뻗어 신청서를 건네받았다.배건후는 그녀의 손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도아린, 지금 외부인과 손을 잡기라도 하겠다는 거야?”“진 대표님은 아린이의 둘째 오빠예요. 진정한 외부인은 당신이죠.” 소유정은 펜 뚜껑을 열고 도아린에게 건넸다.도아린은 오른손으로 펜을 제대로 잡지도 못했지만 천천히 자신의 이름을 적어 내려갔다.배건후가 갑자기 앞으로 다가가려 하자 진경수가 그를 막아섰다.“배 대표님, 지금 제 여동생에게 손이라도 대려는 겁니까?”“...”배건후는 동공이 흔들리더니 잠시 멍해졌다.‘여동생?’진씨 가문과 혈연관계도 없는 도아린을 이렇게까지 아끼다니, 보기엔 은혜를 갚으려는 것 같았지만 실상은 그녀를 이용해 배씨 가문을 무너뜨리려는 계획이었다.배건후는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진씨 가문이 연성에서 한몫 챙기고 싶다면 정정당당하게 경쟁하세요. 그럼 상대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경쟁자라고 생각할게요. 근데 지금 부부 사이를 이간질하는 건 너무 비겁한 거 아닌가요?”진경수는 전혀 화를 내지 않고 오히려 자신만만한 미소를 띤 채 눈썹을 치켜세우며 말했다.“제가 둘의 관계에 이간질한다고 뭐가 달라질까요? 배 대표님은 보미 씨와 스캔들이 그렇게

  • 또 한 번의 거절   제340화

    성대호가 도아린의 손을 잡는 순간 그녀는 살을 파고드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병원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배건후는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왔다. 그는 당근처럼 부어오른 도아린의 중지를 보며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여기서 가식 떨지 마세요.” 소유정이 그를 세게 밀쳤다. 그녀는 눈시울이 붉어진 채 그의 살벌한 눈빛조차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당신이 아린이보고 배씨 그룹을 대표해서 대회에 나가라고 했을 때부터 뭔가 이상하다 했어요.”“대회 참가 자격을 손보미에게 주고 싶었으면 당당하게 주면 되잖아요. 왜 비겁하게 아린이를 다치게 하는 거죠? 당신도 아린이한테 손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잖아요.”배건후는 사늘한 눈빛으로 도아린을 바라보며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도 그렇게 생각해?”도아린은 그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차분한 표정으로 말했다.“건후 씨, 배씨 그룹의 대표로 대회에 참가하지 않을 테니 참가 자격은 건후 씨가 원하는 사람한테 넘기세요. 다만 디자인은 넘길 수 없어요.”배건후는 소유정을 병실 밖으로 내쫓더니 그녀가 밖에서 아무리 울고불고 난시를 쳐도 가볍게 무시했다. 그는 도아린 앞에 서서 주먹을 쥐었다 폈다 몇 번 반복하더니 마침내 입을 열었다.“손보미한테 널 찾아가라고 시킨 적 없어.”그 당시 배건후는 화가 나다 못해 별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지만 회의가 끝난 뒤 뭔가 수상함을 느꼈다. 만약 도아린이 참가하기를 거부했다면 직접 그에게 전화를 걸었을 것이다. 비서를 통해 전했을 리가 없었다.그는 아까 전화를 받은 비서를 사무실에 부르더니 통화 기록을 책상에 던지며 솔직하게 말하라고 했다.그녀는 사실 회장님께서 시키신 것이라며 정확한 이유는 모른다고 했다.배건후는 아버지를 찾아가 물어보려던 중 성대호가 목숨을 갖고 협박하다가 도아린의 손을 다치게 했다는 소식에 곧장 방향을 틀어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는 머리가 아파왔다.갑자기 나타난 경쟁자들이 배씨 그룹의 프로젝트를 하나씩 빼앗으려 하고 있었다. 게다가

  • 또 한 번의 거절   제339화

    “도아린, 엠파이어 빌딩 상가의 서류야. 지금 돌려줄게.”도아린은 서류를 건네받고 문을 닫으려는 순간 손보미는 손으로 급히 막았다.“아직 할 말 남았어. 상가를 돌려줄 테니 보증금은 주지 않아도 돼. 대신 네가 가진 대회 참가 자격을 나한테 팔아.”“뭐라고?” 도아린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갑자기 불길한 예감이 들며 가슴이 쿡쿡 쑤셔오는 듯 아파왔다.손보미는 마치 모르는 척하지 말라는 듯 비웃음을 흘렸다.“스타 대회의 참가 자격을 건후가 나한테 넘겼어. 내가 네 동생을 위해 유명한 교수님을 찾아준 공도 있으니 나한테 양보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니야?”도아린은 피식하더니 말했다.“남자? 그런 거면 네가 가져.”그리고 이내 단호한 표정으로 한마디 한마디 내뱉었다. “그러나 참가 자격은 안 돼.”“안 되든 말든 이미 내 손에 있어. 게다가 참가 자격만이 아니라...”손보미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건후가 그러던데 네가 작업한 디자인도 나한테 넘기라고.”도아린은 반응할 새도 없이 그녀를 발로 차버렸다.손보미는 예상치 못한 공격에 옅은 신음을 흘렸다.“그만 나갈래 아니면 또 맞을래?” 일풍은 어느새 문밖에 서서 손보미를 지켜보고 있었다.그녀는 코웃음을 치더니 다리를 절며 엘리베이터에 탔다.그리고 곧장 배건후에게 전화를 걸었다.“건후야, 아린이를 설득해서 대회에 참가하게 하려 했는데 글쎄 나를 발로 차버렸어. 괜히 좋은 마음으로 일을 망쳤나 봐... 흑흑...”도아린은 문을 닫고 옷을 갈아입은 뒤 즉시 엠파이어 빌딩 운영부로 가서 명의를 변경했다. 단 자신의 명의가 아닌 도지현의 명의로 옮겼다.사무실을 나서자마자 성대호가 그녀를 불러세웠다.“아린 씨, 부탁이에요. 지유를 용서해 줘요.”성대호는 수염이 덥수룩했고 눈에는 광기가 서려 있었다. 일남은 상황을 보고 재빠르게 그녀 앞을 막아섰다.“지유는 잠시 실수한 것뿐이에요. 진심으로 아린 씨를 해치려던 게 아니에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그럼 방우진 때문

  • 또 한 번의 거절   제338화

    김지민은 도아린의 언급에 그제야 9억 원이 생각났다.배석준이 떠나고 뒤따르던 직원들이 뒤에 서 있었지만 김지민은 9억 원이라는 거액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손보미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했지만 예상대로 모욕만 당하고 말았다. 결국 손보미는 돈을 빌려주기로 했고 앞으로 모든 건 자신의 지시에 따라야 한다는 조건을 걸었다.배씨 그룹 사장실.손보미는 눈썹을 찌푸린 채 난처해하며 입을 열었다.“난 지유가 걱정되는 마음에 지민이를 시켜 아저씨한테서 상황을 알아보라고 부탁한 건데, 아린이가 오해할 줄은 몰랐어.”“아린이는 워낙 모든 걸 민감하게 받아들이잖아. 분명 아주머니께 말씀드릴 거야. 아주머니의 건강도 좋지 않은데 네가 곁에서 잘 설명해 줘.”그녀는 한편으로 가만히 배건후의 표정을 살폈다. 배건후는 얼음장마냥 차가운 표정을 한 채 새까만 눈동자로 테이블을 응시했다.“할 말 끝났으면 그만 나가.”“...”손보미는 가까이 다가가서 말했다. “건후야, 그러지 마...”그녀는 눈물을 글썽이며 목이 메어서 훌쩍거렸다.“아린이가 날 싫어하는 것도 알고 네가 날 챙겨주는 걸 질투하는 것도 알아. 불만이 있다면 나한테 풀어도 돼. 근데 지민이는 이제 내 비서도 아닌데 괜히 미움받으면 안 되잖아.”“이제 네 비서가 아닌데 왜 계속해서 네 일을 도와주는 거야?” 그는 손에 잡고 있던 펜을 내려놓더니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손보미는 멍하니 서 있다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친구니까.”“널 배신한 사람과 친구 할 수 있어?”“...”손보미는 손톱자국이 날 정도로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그녀는 그의 말에 왜 가시가 돋아 있는지 알 수 없었다.“지유는 네 여동생이야. 배씨 가문에서 아무도 지유를 챙기지 않아서 아저씨께 물어볼 수밖에 없었어... 내가 지유를 걱정하는 게 잘못이야? 건후야, 너 예전에 나한테 이렇게 대하지 않았잖아...”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배건후의 얼굴에서 동정의 기색을 찾으려 애썼지만 그의 깊고 날카로운 눈빛은 오히려 더 차갑게

  • 또 한 번의 거절   제337화

    배석준은 보지도 않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 용패는 직원의 실수로 600만 원으로 표기된 거야.”주현정은 여전히 담담한 미소를 띠고 말했다. “전 당신이 지민 씨에 대해 설명할 줄 알았는데.”배석준은 다시 한번 도아린을 날카롭게 쳐다보았다. 주현정이 오랫동안 사람들 앞에 나서지 않다가 갑자기 나타난 게 어쩌면 도아린이 뒤에서 조종한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주현정이 무례하게 행동하지 않아서 다행이라며 속으로 안도했다. 만약 사람들 앞에서 난리를 쳤다면 그의 체면은 말이 아니었을 것이다.“도아린, 지민 씨는 내 임시 비서일 뿐이야. 사실을 왜곡하지 말렴.”“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이 배씨 그룹에 들어가려고 애를 쓰나 봐요. 회장님께서 비서를 위해 드레스와 액세서리까지 챙겨주시다니 놀랍네요.”도아린은 담담하게 말했다. “아버님 비서가 가격을 표기하지 않아서 직원이 우리에게 와서 도움을 요청했고 우리가 수정해 준 거예요.”배석준은 안색이 굳어진 채 주현정을 향해 말을 꺼냈다. “지민 씨는 단지 내 비서일 뿐이야. 못 믿겠다면 당장 불러올게.”전화를 걸려는 순간 김지민이 눈앞에 찾아왔다. 직원들은 그녀가 도망갈까 봐 딱 따라붙어 있었다.“회장님, 전 그분이 쉽게 포기할 줄 몰랐어요. 더 높은 가격을 유도하려다...”김지민은 도아린을 보자마자 반감을 드러냈다, 자세히 보니 앞에 서 있는 주현정이 바로 높은 가격을 부르던 사람이었다.“아린 씨가 사모님에게 입찰을 못 하게 한 거죠? 나한테 복수하려고.”주현정은 오랜만에 밖에서 얼굴을 드러낸 데다 평범한 차림을 하고 있었기에 김지민은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다. 주현정에 대한 인상은 전에 뉴스 인터뷰에서 봤던 모습으로 남아 있었다.“사모님, 아린 씨 말을 믿지 마세요. 보아하니 사모님께서도 비취 용패를 마음에 들어 하시는 것 같은데 제가 8억 원에 넘기겠습니다.”이렇게 하면 손해는 1억 원에 그칠 수 있었다.김지민은 꽤 영리한 편이었다. 그녀는 배석준이 여기까지 따라 나온 걸

  • 또 한 번의 거절   제336화

    도아린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은 채 주현정을 잡고 있던 손에 힘을 살짝 줬다. 주현정은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미소를 지으며 직원이 건네준 등록부를 받아들었다.“미안해요. 또 번거롭게 했네요.” 그녀는 얼굴에 미소를 띠며 종이에 600만 원을 적었다.생각지 못한 금액에 직원도 살짝 놀란 눈치였다. “사모님... 확실하신가요?”‘6억 원이 아니라 600만 원이라고?’구하기 힘든 비취라 6,000만 원도 모자랄 텐데 사모님은 300만 원을 시작가로 하다니 놀라웠다.“만약 인연 있는 사람이 나타나면 30억 원이라도 그 값어치를 하겠지요.” 주현정은 펜을 다시 직원에게 건네며 조용히 도아린을 바라보았다. “결국 누가 이 비취의 주인이 될지 엄마랑 함께 보고 나서 다시 공부하러 돌아가도 되겠어?”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도아린도 피할 이유가 없었다. 두 사람은 손을 잡고 행사장에 들어가 눈에 띄지 않는 자리에 앉았다.도아린은 주현정에게 다가가 조용히 말했다.“어머님, 건강이 제일 중요해요. 힘드시면 언제든지 저한테 말하세요.”그녀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김지민이 그들 옆을 빠르게 지나갔다. 주현정은 눈을 내리깔며 그녀의 뜻을 이해한 듯 미소를 지었다.경매는 곧 시작되었고 누군가 자신의 딸이 그린 그림을 자선 행사에 내놓았는데 솔직히 말해 초등학생의 그림보다 못했다. 하지만 위상이 높은 가문이라 인맥을 얻고 싶은 사람은 당연히 거액을 지불하며 사 갔다.곧이어 비취 용패가 나오고 사회자가 600만 원이라는 시작가를 내놓자 여기저기서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초등학생의 수준보다도 못한 그림을 1억 2천만 원에 내놓았는데 이렇게 좋은 비취 용패의 시작가가 600만 원이라니. 게다가 올해는 마침 용의 해임에도 불구하고 시작가가 너무 낮았다.사회자도 자신이 잘못 본 게 아닌지 재차 확인한 뒤 기증자의 이름을 천천히 읽었다. 순간 많은 이들의 시선이 배석준에게 쏠리더니 호기심과 의심 그리고 비웃음이 섞인 표정이 드러났다.배석준은 얼굴이 굳어진 채 옆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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