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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화

작가: 온유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4-09-10 13:27:57
병실에 들어서자 안경을 쓴 채 침대에 기대어 신문을 읽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에 눈에 들어왔다.

“엄마, 오늘은 훨씬 좋아 보이시네요.”

“개나 소나 찾아오지 않으면 더 빨리 나았을 텐데 말이야.”

주현정이 신문을 넘기며 무심한 말투로 말했다.

배지유는 뻘쭘한 얼굴로 침대 옆에 앉았다.

“엄마, 사실 그때 ‘야밤의 대본 리딩’은 오해였어요.”

당시 손보미는 배역을 따내기 위해 감독이 흑심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밤늦게 방까지 찾아갔다. 모든 건 그녀의 예상대로 흘러갔고, 본인을 희생한 대가로 목적을 이루기도 했다.

다만 피곤한 몸을 이끌고 복도에 걸어 나오는 순간 마침 집에 묵고 있던 주현정의 눈에 띄게 되었다.

결국 주현정은 손보미라면 치를 떨었다.

“그럼 이것도 오해겠네?”

주현정이 대뜸 신문을 던져 버렸다.

기사에는 배건후가 ‘야밤의 미팅’을 진행했다는 내용이 보도되었을뿐더러 누군가 청호상 시상식 백스테이지에서 찍힌 사진을 공개하기도 했다. 그리고 두 남녀가 서로 껴안은 흑백 실루엣도 얼핏 보였는데 모든 상황이 당사자가 배건후와 손보미라는 사실을 증명했고, 게다가 곧 좋은 소식이 들릴지도 모른다고 했다.

배지유는 코를 쓱 만지며 미소를 쥐어 짜냈다.

“언론사들이 내용을 조작했겠죠.”

“이 사진을 누가 제보했는지 알아?”

주현정은 젊었을 때 JS 픽처스의 대표였다. 나중에 딸을 낳고 건강 악화 이슈로 일선에서 물러나 경영권을 인계한 지 얼마 안 되었다.

배건후는 출신 자체가 달랐고, 비록 몰래 결혼한 것 때문에 가끔 소란을 일으키기도 했으나 본인의 허락 없이는 아무도 감히 폭로하지 못했다.

언론이 손보미와 함께 찍은 사진을 공개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즉, 사진을 제공한 사람이 배건후의 총애를 한 몸에 받는 측근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든든한 존재가 방패막이 되어주니 매체들도 믿는 구석이 있고 대거 홍보했다.

사실 주현정은 아들이 도아린을 어떻게 대하는지 알고 있었지만 어쨌거나 며느리가 꽤 마음에 들었는지라 지켜주기로 마음먹었다.

“네 큰아버지한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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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아린은 SNS에 새가 새장 밖으로 날아가는 사진을 올렸다. 자신이 마침내 자유를 얻은 것을 축하하는 뜻에서였다. 잠시 후, 음식을 배달시켜려고 하는데 문득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한 집안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주방에 들어가 냉장고를 열었고 그 안에는 그녀가 좋아하는 신선한 재료와 과일들로 가득했다. 큰오빠의 배려에 감동했다. 가뜩이나 바쁜 사람인데 연성으로 돌아온 그녀가 걱정돼서 이리 모든 것을 준비해 주다니...진수혁에게 감사의 문자를 보내려는 그때, 육민재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연성에 돌아온 거야?”“네.”“할머니가 아린 씨 많이 보고 싶어 하셔. 잠깐 들렀다 갈래?”“위치 보내줘. 내가 데리러 갈게.”이번에 연성을 떠나면 중요한 일이 없는 이상 다시는 돌아올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할머니한테 작별 인사는 해야 할 것 같았다. “혼자 갈 수 있어요.”전화를 끊은 그녀는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 “대표님, 사모님... 아니 아린 씨가 집을 나섰습니다.”그에게 물병을 건네던 유정윤은 길가에 서서 차를 기다리는 도아린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그가 물병을 건네받으며 약을 입에 넣었다.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고 입술이 파래졌다. 잠시 후, 통증이 조금 누그러지자 그가 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따라가.”“네.”고개를 끄덕이던 우정윤은 이내 차에 시동을 걸었다. 사실 오늘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이사회 사람들에게 붙잡혀 회사로 끌려가 회의에 참석했다. 사람들은 모건 그룹의 다음 계획에 대해 대책을 세우라고 그를 닦달했다. 그러다가 뭔가 이상하다는 점을 깨닫고 그는 재빨리 구청으로 달려갔고 마침 배석준이 도아린에게 손을 대고 있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순간,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하루 종일 밥도 먹지 못한 탓에 위가 또 말썽인 듯하다. 두 사람의 관계가 틀어진 후, 위병은 점점 더 심해졌고 진통제를 아무리 많이 먹어도 그다지 효과가 없었다. 그녀가 탄 택시가 익숙한 길로 접어들자 그의 눈빛이

  • 또 한 번의 거절   제479화

    “뭐 하는 짓이에요?”배건후가 품 안에 그녀를 감싸고 차가운 눈빛으로 배석준을 쏘아보았다. 살짝 당황한 배석준은 해명하려다가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아 고개를 치켜들었다.“네가 제정신이냐? 여자 하나 때문에 대표 이사를 그만둬? 회사가 무슨 소꿉장난도 아니고.”“그건 제 일입니다.”“넌 내 아들이야. 너한테 뭐라 할 자격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해.”배석준은 이를 갈며 소리를 질렀다. 분노가 차올라 이마에 핏줄이 불거지고 눈이 충혈되었다.그러나 배건후는 그를 무시한 채 그녀를 조심스럽게 안았다.“다친 데 없어?”그녀는 그의 품에서 빠져나와 손목을 주무르며 입을 열었다.“얼른 가서 이혼 신고 마무리해요.”뭔가 말을 하려던 그가 잠시 망설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계단을 오르는 것을 보고 배석준은 다급하게 소리를 질렀다.“배건후, 너 사인 하기만 해. 그럼 진짜 우리 부자지간도 이젠 끝이야.”배건후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성큼성큼 구청 안으로 들어갔다.그들이 다시 나왔을 때, 배석준은 화가 나서 몸을 부들부들 떨었고 배건후와 도아린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이젠 다 컸다 이거지? 내가 외국에서 힘들게 회사를 키우는 동안 네 엄마가 널 이렇게 가르쳤어?”그러나 배건후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차 문을 열었다.“데려다줄게.”거절하려고 했지만 주변에서 기웃거리는 배석준의 사람들 때문에 그녀는 그냥 차에 올라탔다.“고마워요.”차에 탄 후, 그녀는 그에게 주소를 말해주었다. 두 사람이 탄 차량은 뒤따라오던 차들을 따돌리고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하였다.차에서 내린 그가 근처의 건물들을 올려다보며 물었다.“여기 살아?”“친구 집이에요. 잠깐 머물고 있어요.”그와 더 이상 자세한 얘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내일 해남으로 돌아갈 거예요. 잘 지내요.”그녀가 돌아서려는 그때, 그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율이 사건에 진전이 있어.”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하경 씨한테서 들었어요.”...그

  • 또 한 번의 거절   제478화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을까?”주주들이 다그치지 않았더라면 도아린을 절대 만나러 오지 않았을 것이다. 딸의 다리를 반쯤 부러뜨리고 그와 아내의 사이를 이간질시킨 것도 모라자 집안에 바람 잘 날이 없게 만든 도아린이 주주들에게는 목숨을 건질 지푸라기 같은 존재라니.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그녀의 눈빛은 차가웠고 태도는 서먹서먹하였다. 이것이 이혼에 필요한 절차라면 그녀는 양보할 수 있었다.“10분 드릴게요.”도아린은 옆 벤치로 가서 앉았다. 심호흡하던 그도 그녀를 따라 자리에 앉았다.“네가 우리 집안에 시집온 3년 동안, 우리 집안에서도 할 만큼 했다. 도정국 가게의 비용을 전부 부담했고 네 남동생의 병원비도 건후가 다 책임졌었지. 그동안 네가 입고 먹고 쓰고 한 것도 다 우리 가문의 돈이야.”“건후가 널 소홀히 한 건 다른 여자가 생겨서가 아니었다. 막 회사를 인수했으니 눈코 뜰 새 없이 바빴겠지. 손보미와의 스캔들은 손보미가 귀국한 후, 언론에서 마구 퍼뜨린 것이야. 두 사람은 전혀 문제가 없었어.”...조용히 듣고 있던 그녀가 한마디 내뱉었다.“3분 남았습니다.”배석준은 마음이 불편했다. 윗사람이 체면을 구기고 호의를 베풀고 있는데 어찌 이리 쌀쌀맞기만 하는 건지.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전혀 굽힐 생각이 없는 그녀를 보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남자가 사업을 하다 보면 이런저런 일이 생길 수도 있는 거다. 네가 눈감아 주거라. 어차피 너한테서 건후의 아내 자리를 빼앗을 사람은 없을 테니까. 꼭 이렇게까지 해야겠느냐? 건후의 명성에 금이라도 가면 너한테도 좋을 것이 없어.”배석준은 점점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배건후와 닮은 그의 얼굴에 짜증이 한껏 묻어났다. “이렇게 하자. 기자회견을 열 테니 최근의 일은 모두 네가 벌인 자작극이라고 하거라. 너희 두 사람 사이에는 제3자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기자들한테 말해. 이혼 얘기는 네가 먼저 꺼낸 것이 사실이 아니더냐? 건후는 널 쫓아낼 생각이 단 한 번도 없었어.”그녀는 피식

  • 또 한 번의 거절   제477화

    도아린은 일의 자초지종에 대해 얘기하면서도 안민아와 손보미가 손을 잡고 벌인 짓이라는 걸 끝까지 말하지 않았다. 사실 안민아가 계속해서 강씨 가문으로 가자고 할 때부터 그녀는 수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가 강씨 가문에서 손보미를 보니 안민아와 손보미가 손을 잡았다는 걸 바로 눈치챘다. 지난번 백화점에서 안민아는 손보미를 싫어했고 경멸했다. 그러나 이번에 강씨 가문에서 두 사람은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고 서로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의식적으로 서로를 피하는 것이 눈에 훤히 보였다. “엄마, 내일 연성에 좀 다녀올게요.”“뭐 하러?”“내일이 이혼 숙려기간의 마지막 날이에요. 건후 씨와 깨끗이 정리하려고요.”또한 도지현을 데려올 생각이었다. 눈에 뵈는 것이 없는 도정국이 무슨 일이라도 벌일까 봐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윤명희는 그녀를 껴안으며 입을 열었다.“시집가기 싫으면 평생 엄마랑 같이 살아. 엄마가 너 평생 보살펴줄 테니까.”“고마워요.”“또 한 번 고맙다고 하면 엄마 진짜 화낼 거야.”도아린의 어깨를 살짝 내리치면서 피식 웃었다.“둘째 오빠랑 같이 갔다 와. 배건후가 후회라도 하면 일이 복잡해지니까.”“그럴 리 없어요.”그녀의 말투는 아주 단호했다. 그날 저녁, 욕조에 누워 마사지를 즐기고 있는데 옆에 놓인 핸드폰이 울렸다.확인해 보니 배건후였다.그녀는 다시 핸드폰을 옆에 두고 눈을 감았다.전화가 한번 끊기더니 다시 또 울리기 시작했다. 한동안 울리던 벨 소리가 잠잠해지고 문자 한 통이 날아왔다. 잠시 후, 머리를 말리고 침대에 누운 그녀는 그제야 핸드폰을 꺼내 답장을 보냈다. [강재민: 강홍련이 도유준이 성을 바꾸는 걸 동의했어요. 내일 예단을 준비해서 찾아갈 생각인데 어디로 가면 되나요?][서대은: 안준휘와 계약을 취소한 두 회사는 모두 손보미가 강재희라는 이름으로 접근한 회사들이야. 나중에 계약을 이행하라고 했을 때, 상대 쪽에서 받아들이지 않았어.][소유정: 며칠 쉬러 갔다 올게. 전화기는 꺼둘 거야. 그러니

  • 또 한 번의 거절   제476화

    억울했던 안민아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그녀는 입술을 떨며 차마 말을 하지 못하였다.도아린이 통화 내용을 들을까 봐 일부러 물을 틀어놓았는데 어떻게 이리 자세히 알고 있는 것일까?“아직도 도유준 편을 들고 싶어?”도아린은 그녀의 주머니에 손을 뻗어 핸드폰을 찾았다. “도유준한테 전화한 거 맞잖아. 결혼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또 도유준한테 속아 넘어간 거야?”안민아는 괴성을 지르며 급히 주머니 속의 핸드폰을 움켜쥐었다. 통화기록을 절대 도아린에게 보여줄 수 없었던 것이다. “아니에요. 핸드폰 뺏지 말아요.”“도유준 그 자식이 또 널 속인 거지? 걱정하지 마. 내가 단단히 혼내줄게.”겉으로는 안민아를 걱정하고 있는 척했지만 사실 도아린의 손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그러나 핸드폰을 꺼내려고 할 때마다 안민아가 한사코 그녀를 막았다.당황스러운 얼굴의 안민아는 안준휘에게 몇 번이나 도움의 시선을 보냈다. 이때, 안준휘가 손에 들고 있던 담배를 끊고는 언짢은 얼굴로 도아린을 쳐다보았다. “강요하지 말거라. 말하기 싫다는 애를 왜 그리...”“왜요?”손을 놓던 도아린은 시선을 안민아에게 돌리더니 뭔가 생각이 떠오른 듯했다.“설마 강재민 씨야?”“아니에요. 누구와도 약속한 적 없었어요.”“통화 기록은 양측한테 다 있는 거잖아.”이때, 윤명희가 갑자기 현관에 나타났다. 마트를 다녀온 윤명희는 식재료를 하인에게 건네주고는 손수건을 받아 손을 닦으며 안민아를 향해 걸어왔다. “민아야, 통화 기록은 양측한테 다 있는 기록이야. 나중에 도유준이 기록이라도 내세워 네가 먼저 만나자고 했다면 그땐 어떡할 거니? 차라리 지금 사실대로 털어놓거라. 그래야 우리도 뭔가 대책을 세우지. 안 그래?”안민아는 온몸을 벌벌 떨고 있었다. 그녀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만약 손보미와 손을 잡고 도아린을 음해한 사실을 진씨 가문에서 알게 된다면 결혼을 물론 사업도 물 건너가고 원수가 되고 말 것이다. 고민 끝에 안민아는 결국 자신이 도유준에게 전화를 걸

  • 또 한 번의 거절   제475화

    갑작스럽게 나타난 사람으로 인해 깜짝 놀란 강홍련은 무의식적으로 반박하려 하였다.오늘의 일은 네 몫도 있는데 여기서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것이냐고.그러나 문 뒤에서 걸어 나오는 남자를 보니 온몸의 피가 차가워지는 듯했다. “배 대표님이 여긴 어떻게...”그녀는 재빨리 도정국의 뒤에 몸을 숨기며 극구 변명했다.“오해하지 말아요. 난 그런 적 없으니까. 손보미 씨가 한 말은 전혀 사실이 아니에요. 안민아가 그런 거예요. 내 아들과 결혼하고 싶어서 꾸민 짓이고 그걸 도아린한테 뒤집어씌운 거라고요.”옆에 있던 손보미가 그녀를 노려보며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걸 배건후는 눈치채지 못하였지만 도정국은 두 사람이 주고받는 눈빛을 단번에 알아차렸다.그들이 합심하여 도아린을 모해하려고 일을 꾸몄다가 오히려 도아린에게 당한 것이었다. 손에 들고 있는 금속 라이터를 만지작거리며 배건후가 차가운 눈빛으로 도정국을 쳐다보았다. “도아린이 도유준의 성을 내일 당장 바꾸겠다고 했어요.”거절하려는 도정국을 보며 손보미가 먼저 입을 열었다.“도유준까지 시궁창에 끌어들이지 말아요. 강씨 가문의 사람이 되면 그래도 명문 가문의 도련님으로 인정받는 거니까. 다른 사람은 꿈도 못 꾸는 일이죠.”그녀는 필사적으로 강홍련에게 눈짓을 했고 강홍련도 따라서 도정국을 설득하기 시작했다.화가 치밀어 입술이 파랗게 질렸지만 도정국은 타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잠시 후, 손보미와 배건후가 자리를 뜬 뒤, 그가 강홍련을 발로 차서 바닥에 넘어뜨렸다.“이게 다 당신 탓이야. 이 여편네가 생각이 있는 건지.”문득 도아린의 말이 생각났다. 그동안 도정국의 거짓말에 속아 넘어간 걸 생각하면 마음속에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가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 “당신, 내가 강씨 가문의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던 거죠? 정은채 그 여자의 모든 것을 다 빼앗고도 한편으로 달콤한 말로 날 속이고 훗날 날 이용해 강씨 가문의 덕을 보려고 한 거 아니에요?”“그게 무슨

  • 또 한 번의 거절   제474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불안해하는 두 사람의 모습을 그가 빤히 지켜보고 있었다. 가뜩이나 차가운 남자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또 도아린 괴롭히러 간 거야?”“아니. 그런 거 아니야.”손보미가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우리도 강씨 가문에 가서야 아린 씨가 있는 걸 알게 되었어. 그리고 지유가 아린 씨한테 사과도 했고. 두 사람 사이에 있었던 일은 다 잊기로 했어. 안 그래? 지유야.”“맞아요. 도아린 씨가 나한테 꽃까지 줬어요. 휠체어에 있는 꽃잎이 바로 그 꽃이에요. 우리 화해했어요.”그는 손에 들고 있던 담배를 재떨이에 꾹 누르며 차가운 눈으로 두 사람을 훑어보았다. 원한을 다 풀었다면 도아린이 준 꽃을 이리 으스러뜨렸을까?그의 어두운 눈빛이 쇠 방망이처럼 배지유의 가슴을 두드렸고 그녀를 더욱 두렵게 만들었다. “오빠, 보미 언니. 나 다리가 너무 아파요...”그 말에 손보미는 급히 의사를 찾아갔다. 그녀가 병실을 나간 뒤, 배지유는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배건후를 쳐다보았다. “오빠, 이제 곧 보미 언니랑 결혼할 거잖아요. 오빠가 그렇게 말하면 언니가 많이 상처받을 거예요. 내 기분 풀어주려고 언니가 날 강씨 가문에 데리고 간 거예요. 재민 씨가 도아린 씨를 초대할 줄은 우리도 정말 몰랐어요.”“도아린 씨가 그러더라고요. 자기가 버린 남자를 언니가 주워가는 거라고. 그래도 보미 언니는 화 한번 내지 않았어요. 정말 도아린 씨 괴롭히려고 간 거 아니에요. 그리고 내가 지금 이런 꼴인데 누구를 괴롭혀요?”잠시 후, 손보미는 의사를 데리고 들어왔고 의사가 배지유 다리의 상처를 치료해 주었다. “연성에서 오느라고 수고했어. 얼른 가서 쉬어. 지유도 푹 쉬라고 해야지.”손보미가 그의 팔짱을 끼려고 하는데 그가 그녀의 손길을 피했다.“얌전히 병원에 있어. 합병증이라도 생기면 그땐 정말 다시 일어설 수 없을 테니까.”그가 차갑게 배지유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이불을 움켜쥐고 고개를 떨구고 있던 배지유의 눈빛에 원망이 가득했다.

  • 또 한 번의 거절   제473화

    고개를 들어 올리는데 그녀의 눈은 여전히 부어 있었지만 눈빛은 매우 날카로웠다.천천히 입꼬리를 올리는 그녀의 얼굴에 조롱이 깃들여 있었다. “여동생의 일은 양가 어르신들께서 결정할 문제예요. ‘봉황의 시대’는 덕과 재능을 겸비한 사람을 찾아 관리할 생각입니다.”그 말에 강태식의 안색이 굳어졌다. 나한테는 덕이 없다는 뜻인가?늦게 결혼하고 늦게 아이를 가진 그는 얼마 전에 일흔여덟 번째 생일을 맞이했다. 아직까지 혈기 왕성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검버섯과 주름살이 가득했다. 늘어진 눈꺼풀이 날카로운 시선을 감추었고 그가 도아린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어린 계집애가 복수를 위해 강씨 가문까지 이용하려 들다니...침착하고 생각이 깊은 계집애군. 그러나 이런 사람은 양날의 검이었다.“배건후와 이혼했다는 소문은 들었네. 괜찮은 젊은 친구들을 내가 좀 알고 있는데 소개해 줄까? 우리 재민이는 외국에서 자라서 성격이 방탕하고 좋은 남자가 아닐세.”“아버지. 어떻게 아들을 그리 비하할 수 있어요?”“널 비하하는 것이 아니라 도아린 양한테는 네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뜻이다.”그의 태도는 명확했다. 도아린을 강씨 가문의 며느리로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이었다. 그 말에 도아린도 피식 웃었다. “어르신, 제 결혼은 저희 부모님께서 신경 써주실 거예요. 그리고 여자가 꼭 시집을 잘 가야 잘 살 수 있다고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안 그래요? 강재희 씨.”차를 마시던 강재희는 흠칫했다. 짙은 속눈썹을 드리운 채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강태식은 단목구슬을 꽉 움켜쥐었다. 아주 빈틈이 없구나. 네가 강씨 가문의 주가를 통제할 수 있을지 어디 한번 두고 보자....해남병원. 병실 문을 들어오던 배지유는 그 자리에서 멍해졌다. “오빠? 오후에 도착한다고 하지 않았어요?”그녀는 당황한 얼굴로 뒤를 돌아 손보미를 쳐다보았다. 서둘러 돌아온다고 했는데 결국 한발 늦은 것이다. 그는 창가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창문이 반쯤 열려있었고 창턱의 재떨이

  • 또 한 번의 거절   제472화

    “그건 안돼.”강홍련은 단호하게 반대했다. “안민아 씨, 전에도 하마터면 우리 아들의 명예를 망가뜨릴 뻔했었죠. 그런데 오늘 또 똑같은 수법을 쓰는 거예요? 손보미와 배지유는 소리를 듣고 문을 두드린 거예요. 원하지 않았다면 왜 처음부터 도움을 청하지 않은 건가요?”“숨어 있으면서 도아린이 찾는 데도 잠자코 있었죠. 그런데 뭐예요? 우리 아들한테 책임질 일까지 해놓고 모른 척하는 거예요? 사람들한테 들켰다고 지금 우리 아들한테 다 뒤집어씌우냐 말이에요?”강홍련의 말솜씨에 안민아는 할 말이 없어졌다. 한편, 안준휘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손에 든 찻잔을 꽉 움켜쥐었다. 양측이 심하게 다툴 때, 강재희의 담담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도정국의 빚이 도대체 얼마나 되는 거예요?”거실 안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조금 전까지 날뛰던 강홍련은 갑자기 얼굴이 굳어진 채 눈빛이 흔들리면서 안절부절못하였다. 어떻게 반박해야 할지 몰랐던 안준휘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야? 당신들 지금 내 딸한테 그 빚을 갚으라고 할 생각인 거야? 이러고도 우리 안씨 가문을 모해하지 않았다니...”강홍련이 뭐라 변명하려 할 때 강재희가 손을 뻗어 그녀를 막아섰다. “도유준이 성을 바꾼다면 도정국의 채무는 그와 무관해요. 그리고 언니가 이리 결혼도 안 한 신분으로 성이 다른 아들을 데리고 있는 건 보기에도 안 좋아요.”현재 강씨 가문은 강태식과 그의 자식들이 절대적 발언권을 가지고 있었다. 강재희가 딸이긴 해도 맏이로서 이미 회사 일을 많이 인계받은 상황이었다. 그러니 강재희의 뜻이 곧 강태식의 뜻이기도 했다. 강홍련은 내키지 않았지만 도유준은 내심 기뻤다.도정국의 빚을 갚을 필요가 없게 되었고 또한 강씨 가문의 도련님이 되었으니 남들 앞에서 당당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강씨 가문에서 준비한 예단도 받을 수 있고 안민아를 괴롭히고 도아린의 심기를 건드릴 수 있게 되었으니 일석이조가 아니겠는가? “난 좋아요.”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자신에게로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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