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보미의 목소리가 커서 조용한 침실 안에서 똑똑히 들렸다. 도아린은 일어나 앉아서 옷을 챙겨 입기 시작했다....어린이 병원.율이는 로비에서 향주머니를 가지고 놀다가 한 남녀가 고통스러워하는 임신부를 부축하여 병원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율이는 저도 모르게 그들을 따라갔다.임신부는 순산이 어려워 의사가 제왕절개를 권했지만, 남편은 자신의 어머니의 의사를 물었다. 임산부의 시어머니는 여자가 아이 낳을 때 아픈 게 당연하다면서 뭔 호들갑이냐며 거절했다. 의사가 거듭 설득했지만 두 사람은 끝내 서명을 거부했고 결국 임산부와 아이는 모두 목숨을 잃게 되었다.죽은 아이가 아들이었다는 소식을 들은 시어머니는 통곡하며 난리를 피웠고 죽은 임신부의 남편은 어디선가 과도를 꺼내 들고는 이성을 잃고 휘둘렀다. 율이를 찾고 있던 당직 간호사는 난동을 부리는 환자의 보호자가 동료를 찌르는 장면을 목격하고 다급하게 외쳤다.“보호자 분, 진정하세요!”“아!”보안 요원이 제때 출동하여 난동을 피우는 남편을 제압해 빈 병실에 가뒀다. 율이는 간호사 품에 매달려 몸을 달달 떨었고 병원은 그녀의 후원자인 손보미에게 즉각 연락했다.손보미는 오늘 밤 계약할 광고 건이 있었다. 바로 그녀의 인스타에 글을 남긴 국내 브랜드였는데 오랫동안 주목받지 못하다가 그녀의 인기로 주목받기를 바라는 브랜드였다. 언론은 율이의 사건을 항상 주시하고 있어 그녀가 율이를 내버려 두고 광고 계약을 위해 갔다가는 쇼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너는 병실에서 얌전히 자고 있을 것이지 뭣 하러 나가서 돌아다녀?” 병실에 들어오자마자 손보미는 율이를 나무랐다.율이는 침대 머리맡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었고 창백해진 얼굴을 하고 입술은 파랗게 질렸다.손보미는 그녀의 얼굴을 가볍게 어루만지며 말했다. “진정해. 조금 있다가 기자들이 인터뷰하러 올 수도 있어. 네가 운이 좋네. 그 간호사가 널 제때 발견하지 않았다면 너도 칼에 찔렸을 거야.”율이는 크게 몸을 떨었고 두려움이 가득한 눈으로
손보미의 고통스러운 표정을 무시하고 배건후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의사 말은 뭐래.”“...그냥 놀랐다고 해.”손보미가 뒤돌아보니 율이가 침대에 앉아 도아린과 조용히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녀는 시선을 이리저리 피하며 말했다.“오늘 밤 광고를 계약하려고 광고주랑 만나기로 했었는데, 이런 일이 생길 줄은 몰랐어. 아무리 상대가 국내 최고 브랜드라 해도 어쩔 수 없지. 율이가 안전한 게 제일 중요하니까.”손보미는 일부러 자신의 손해를 크게 말했는데, 배건후가 반드시 그 대가를 배로 보상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배건후는 아무 말이 없었다.손보미는 그를 힐끔 쳐다보았다. 그의 그윽한 시선이 도아린에게 고정된 것을 발견한 그녀는 질투심 때문에 미칠 것 같았지만 입 밖으로 나온 목소리는 여전히 다정했다.“건후 씨?”“의사 좀 만나봐야겠어.” 배건후는 뒤돌아 걸어갔다.손보미는 율이가 도아린과 단둘이 있는 게 불안했지만, 배건후와 단둘이 있을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 뒤따라갔다.“아린 언니…” 율이는 몇 번 정도 흐느끼다가 도아린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면서 말했다. “죄송해요. 그 향 주머니가 망가졌어요.”도아린은 그녀의 얼굴에 맺힌 눈물을 닦아 주었다.“그 향 주머니는 네가 무사하기를 바라는 거야. 네가 괜찮은 게 무엇보다 중요해.”율이는 고개를 들어 혼란스럽지만, 안도감이 가득한 눈으로 도아린을 바라보았다. 율이는 도아린이 손보미처럼 자신을 나무라거나, 심지어 자신을 때린다고 해도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율이는 도아린이 자신을 차갑게 대할까 봐 봐 그게 제일 두려웠다.도아린은 아름다운 이목구비를 가졌지만 웃지 않을 때는 차갑고 다가가기 어려운 느낌을 주었다.그러나 지금 율이는 그녀가 진심으로 자신을 아껴 준다고 느꼈다.손보미가 떠난 것을 확인한 율이가 조용히 말했다. “아린 언니, 저 비밀 하나 알려 드릴게요...”율이는 목소리를 낮추어 거의 속삭이듯 말했다.“그 아저씨가 저한테 달려들 때, 누군가가
“아악!”비명에 간호사가 달려왔고 도아린과 율이도 따라 들어왔다.율이는 손보미의 피투성이가 된 등을 보자 겁에 질려 차마 제대로 보지 못하고 얼굴을 살짝 돌렸다.도아린은 재빨리 율이의 눈을 가리고 그녀의 머리를 품에 안았다.손보미는 배건후의 품에 매달려 그의 팔을 꼭 붙들고 있었다.“건후 씨... 아파... 너무 아파...”배건후는 그녀를 밀어내려고 했지만, 손보미는 아파서 바들바들 떨면서 그를 생명줄처럼 붙잡고 있었다.남자는 인내심을 갖고 말했다.“걱정하지 마, 의사가 곧 올 거야.”간호사는 당직 의사를 불러와 함께 손보미를 치료실로 옮겼다.그녀의 등에는 모니터의 브라켓에 긁혀 삼각형 모양의 상처가 생겼다. 상처는 깊진 않지만, 꽤 컸다.의사는 피를 닦아내며 미간을 찌푸렸다.“손보미 씨, 우리 병원의 봉합기술로는 흉터가 남을 것 같은데요.”“안 돼요, 흉터는 절대 안 돼요!”손보미는 갑자기 강렬하게 저항하기 시작했다.그녀는 상처가 찢어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벌떡 일어나려고 했지만, 배건후는 힘껏 눌렀다.손보미는 그의 손을 잡고 울며 애원했다.“건후 씨, 난 흉터가 생기면 안 돼. 흉터가 생기면 좋은 드라마도 광고도 다 못 찍는단 말이야...”도아린은 비웃듯 콧방귀를 뀌었다.배건후는 그녀를 흘끗 쳐다보더니 그녀의 무심한 표정에 짜증 난 듯싶었다.어쨌거나 손보미가 이렇게 다쳤는데 그녀는 동정심이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걱정하지 마, 병원에 연락해볼게.”배건후는 몇 마디 위로한 뒤, 밖으로 나가 전화를 걸었다.그는 도아린의 곁을 지나며 적당히 하라는 듯한 눈짓을 던졌다.손보미의 시선은 배건후를 쫓아가다 결국 도아린의 얼굴에 고정했다.그녀는 속으로 깜짝 놀랐다.도아린의 맑은 눈동자에 조롱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마치 모든 걸 미리 알고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도아린 씨.”손보미는 몸을 일으켜 그녀를 바라보았다.“혹시 그 모니터가 고장이 난 거 알면서도 나한테 말 안 한 거야?”도아린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율이의 병실을 지나면서 배건후는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어린이 병원에 와서 아린이를 데려가.”20분 후, 손보미는 수술실로 들어갔고 배건후도 우정윤의 전화를 받았다.배건후는 이마를 문지르며 물었다.“저택으로 간 거야, 맨션으로 간 거야?”“대표님, 제가 도착했을 때 사모님은 이미 가고 없었어요.”배건후는 가슴 속에 무엇인가 얹힌 듯 답답하고 괴로웠다.도아린은 저택에도 맨션에도 돌아가지 않고 작업실로 갔다.방해받지 않으려고 그녀는 휴대폰을 무음으로 바꿔놓고 푹 자고 일어났다.집 근처 죽 가게에서 아침을 사 먹으면서 그녀는 메시지를 하나씩 확인하며 답장을 보냈다.소유정은 그녀에게 진행 상황을 보고했다. 그녀가 보육원 리모델링 과정을 기록해 인스타에 게시하자마자 사람들은 바로 손보미와 비교하기 시작했다.문나연에게서도 문자가 와 있었다. 송 감독이 어떻게 마음을 바꿨는지 모르겠지만 드라마 의상 디렉팅을 도아린에게 맡기고 싶다는 내용이었다.그리고 두통의 부재중 전화가 있었는데 도정국과 배건후였다.도아린은 먼저 문나연에게 답장을 보내 일을 맡기로 했다.소유정에게 답장을 보내려던 찰나, 도정국의 전화가 걸려왔다.“돈은 언제 보낼 거냐?”“무슨 돈을 언제 보내요?”도아린은 만두를 한입 베어 물며 모르는 척 물었다.“아린아, 지금 장난하자는 거냐? 유준의 그 3억은 새 가게의 운영 자금이니 반드시 메워야 해!”도아린이 비웃으며 말했다.“새 가게는 절차도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운영 자금이 벌써 유준의 손에 들어갔다니, 설명이 좀 필요한 거 아니에요?”“내 가게니까 어떻게 하든 내 마음이야!”“아빠 가게라면서 왜 나한테 운영 자금을 달라는 거예요?”전화기 너머에서 도정국은 컵을 던지며 그녀를 욕했다.“양심도 없고 불효막심한 놈 같으니라고! 정말로 배은망덕한 놈이야!”도아린은 휴대폰을 옆에 내려놓고 천천히 죽을 마셨다.그때 머리 위에 갑자기 그림자가 드리워졌고 맞은편에 남자가 앉았다.육하경은 장아찌 한 접시를 그녀 앞에 밀어주
육하경이 설명하려고 하던 찰나, 신호등이 빨간불에서 초록 불로 바뀌었다.뒤차가 경적을 눌러 재촉했고 교차로를 지나면서 그 이야기도 끝이 났다.보육원에 가까워질 때, 도아린은 문득 소유정에게도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급히 휴대폰을 꺼내 문자를 보냈다.보육원의 경비는 육하경이 경적을 누르기도 전에 문을 열어주었다.차가 마당으로 들어서자 한 여자가 경비실에서 달려 나왔다.“하경 오빠!”육하경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너 여기 왜 있어?”핑크색 원피스를 입고 정교한 화장을 한 배지유는 한정판 가방을 들고 수줍게 대답했다.“오빠가 오라고 하지 않았어요?”“...”육하경은 잠시 멈칫했다.“네가 새로 온 보조야?”“오빠, 난 집에서 마련해준 직장을 마다하고 오빠의...”배지유는 뒤에서 내리는 사람을 보고 얼굴색이 확 바뀌었다.“네가 어떻게 하경 오빠랑 같이 있어?”도아린은 차 문을 닫고 담담하게 웃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어떤 자격으로 묻는 거야?”“난 하경 오빠의 보조거든!”배지유는 자랑스럽게 고개를 쳐들었다.“아. 그럼 너도 참 자격이 없어. 네 사장님이 왜 나와 함께 있는지도 모르니 말이야.”배지유는 화가 나서 이를 악물며 말했다.“난 네 시누이야!”도아린은 더 밝게 웃으며 말했다.“네 오빠도 신경 쓰지 않는데 네가 왜 걱정해?”“...”배지유는 너무 화가 나서 육하경을 불만스럽게 바라봤다.육하경은 설명할 생각이 없다는 듯 차 문을 잠그고 성큼성큼 안내 교사에게 걸어갔다.“안녕하세요, 육하경입니다.”“육 대표님께서 이렇게 우리 보육원을 방문해주시니 참으로 영광입니다!”안내 담당인 유은서 선생님은 도아린을 보고 잠깐 놀라더니 다시 육하경을 바라보았다.“그럼 아이들이 사는 곳을 먼저 보여드릴까요?”“서두를 것 없어요. 일단 주방부터 봅시다.”육하경이 부드럽게 말했다.유은서는 앞서서 길을 안내하며 가는 동안 문자를 보냈다. 그녀의 긴장된 뒷모습은 뭔가 수상했다.주방에 거의 도착했을 때 도아린이 갑자기 말
도아린은 소유정에게 문자를 보냈다.그녀는 소유정에게 사랑의 마음을 전한다는 핑계로 들어오라고 했지만, 오늘 귀한 손님이 오셔서 불편하다는 이유로 경비원은 소유정을 거절했다.소유정도 머리가 좋았다. 그녀는 경비원에게 대단한 점쟁이가 말하기를 자신이 올해 대운이 트려면 생일인 오늘 착한 일을 해야 한다고 했다며 그녀를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면 다른 곳으로 가겠다고 했다. 어차피 연성에는 보육원이 많으니까.돈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었다. 경비원은 유은서에게 연락한 후 그녀를 들여보냈고 방문할 범위를 지정해 주었다.도아린은 고개를 들고 말했다.“우린 들어와서 아이들을 하나도 못 봤네요.”이제 막 아침을 먹은 시간이라 지금은 아이들이 마당에서 활동해야 할 때였다. 실내에서 놀더라도 소리가 나야 정상이었다.그런데 그들이 들어온 이후로 마당은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다.장애 어린이는 물론이고 선생님조차 보이지 않았다.곧 직원이 등록부를 가져왔다.등록된 아이는 20명이고 자립할 수 없는 아이가 4명, 지능 장애가 있는 아이가 8명, 선천적 병을 가진 아이가 8명이었다.율이는 선천적 질병이 있는 아이 중 가장 어렸고 나머지는 모두 15~16세였으며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주말에만 돌아왔다.육하경은 수입과 지출 내역을 도아린에게 보여주었고 두 사람은 서로의 눈에서 원하는 답을 읽었다.“보육원의 조건은 정말 열악하네요.”육하경은 자료를 직원에게 건네며 말했다.“등록된 아이 중에 이동해야 할 아이가 12명이네요. 방을 준비하라고 할게요.”“아니, 생활 교사도 있어요.”직원이 급히 말했다.“그리고 나와 유 선생님, 경비 그리고 주방장까지 합치면 8개의 방이 더 필요해요.”“보육원을 리모델링 하려면 선생님과 경비원은 당연히 남아서 감독해야겠죠.”도아린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유 선생님은 병원에서 율이를 돌봐야 하고 주방장은 필요 없어요. 호텔에서 음식을 제공하니까요.”“...”직원의 얼굴이 확연히 안 좋아 보였다.그는 눈을 굴리더니 뭔가 생각난
“거기 서!”건장한 남자 둘이 후문에서 쫓아 나왔다.유진혁은 땅에 떨어진 막대기를 집어 들고 휘두르며 소유정에게 얼른 도망치라고 외쳤다.소유정은 다리가 후들거려 두 걸음을 뛰다가 유진혁이 걱정되어 다시 돌아왔다.하지만 노래를 부르는 연예인이었던 그들은 결국 힘 좋은 남자들을 당해내지 못하고 순식간에 제압당하고 말았다.키 큰 남자는 유진혁의 휴대폰을 빼앗아 몰래 찍은 영상을 보고 냉소를 지었다.“우리 보육원이 이제 유명해졌나 보네.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찾아오는 걸 보니.”그는 유진혁의 머리를 툭 치며 말했다.“너, 무슨 블로거야?”유진혁은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난 아직 계정도 없어요. 우린 진짜 아무것도 못 봤으니까 그냥 보내주세요. 바로 갈게요.”“여기가 공원인 줄 아냐? 오고 싶으면 오고 가고 싶으면 가게?”꺽다리 남자는 보육원 관련 영상을 삭제하고 나서 자신의 휴대폰으로 스캔한 후 다시 휴대폰을 유진혁에게 내밀었다.“입장료는 내야지.”휴대폰 화면에는 600만 원 결제창이 떠 있었다.“저... 저는 그렇게 많은 돈이 없어요... 돈 있으면 여기서 이러고 있겠어요?”“돈이 없다? 그럼 네 여자친구를 담보로 내놔.”꺽다리 남자는 소유정의 얼굴을 들어 올리며 난쟁이 남자에게 말했다.“며칠째 손님이 없어서 사장님도 기분이 별로던데.”“빌어먹을!”소유정이 욕설을 퍼붓자 그들은 그녀의 머리를 힘껏 눌렀다.“내 여자친구 건드리지 마! 돈 줄게, 돈 줄게!”유진혁은 남자에게 풀어달라고 요구했지만 남자는 먼저 비밀번호를 말하라고 요구했다.결국, 유진혁은 돈을 지불하고 소유정을 품에 안았다.“빨리 나가자.”소유정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브로치로 다 녹화했어. 이놈들, 반드시 폭로해버릴 거야!”그들에게 문을 열어주려던 경비원은 마침 전화를 받더니 눈빛이 순식간에 변했다.그러고는 찰칵 소리와 함께 다시 문을 잠갔다.“두 분 불편하시겠지만, 잠시만 기다렸다가 우리 귀한 손님이 조사를 마치면 가세요.”“무슨 뜻이죠?
건장한 남자는 소유정을 매섭게 노려보았다.소유정은 더듬거리며 말했다.“저, 저는 방금 왔는데 여기 환경이 너무 안 좋아서 그만두려고요.”“보육원은 복지 기관이니 현재 조건이 다소 열악한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이제 육 대표님이 리모델링하고 나면 많이 좋아질 거예요.”도아린은 일부러 설득하듯 말했다.“천사 보육원은 현재 많은 네티즌의 관심을 받고 있으니 여기서 계속 있으면 미녀 선생님으로 유명해질 수도 있어요.”“하지만 난...”“돌아가서 잘 생각해보세요.”도아린은 건장한 남자를 보며 말했다.“이분을 보내주세요. 제가 보기엔 남을 것 같아요.”건장한 남자는 당연히 쉽게 풀어주고 싶지 않았다.육하경은 도아린을 위험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말했다.“아린 씨가 이분을 집에 모셔다드리면서 길에서 잘 설득해주세요. 젊은이라면 멀리 내다봐야죠.”도아린은 그의 의도를 알았지만, 유진혁을 보며 말했다.“두 분 사귀는 사이죠? 그럼 남자친구분이 집에 데려다주는 게 좋겠네요. 이분은 남자친구 의견을 더욱 신경 쓰는 것 같은데.”건장한 남자가 반응하지 않자 육하경의 표정이 굳어졌다.“왜요? 내 말도 안 통하는 건가요?”남자는 마지못해 손을 놓으며 소유정의 귓가에 속삭였다.“네가 가수라는 걸 알고 있어. 찾으러 갈게.”소유정은 순간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비틀거렸다. 그러자 유진혁은 이내 그녀를 부축했다.두 사람은 도아린의 시선 아래 보육원을 떠났고 경비는 차량 번호를 적어두었다.도아린이 한숨을 돌리려던 찰나, 배지유가 미친 듯이 뛰어왔다.“도아린! 너 이 뻔뻔한 년! 감히 하경 오빠한테 꼬리 쳐...”배지유가 그녀의 어깨에 걸친 옷을 잡자 도아린은 반대로 배지유의 머리채를 잡았다.“하경 씨는 너를 쳐다보지도 않는데 무슨 자격으로 나랑 싸우겠다는 거야.”“나쁜 년! 오빠한테 다 말해서 혼쭐내 줄 거야!”“어디 한번 해보라지, 오빠가 네 말을 들을지 아니면 내 말을 들을지!”건장한 남자는 잠시 어리둥절해졌다. 하지만 오늘 한꺼번에 미녀가 셋이나
도아린은 변슬기를 데리고 연회장 안으로 들어갔다.배지유가 자신을 일부러 모욕하려고 그런 말을 한다고 생각했지만 정말로 이곳에 유명 스타들이 모여 있다는 걸 알게 됐다.스크린에서만 보던 유명인들을 실제로 보니 변슬기는 입을 다물지 못했고 두 눈으로는 전부 다 담을 수 없을 정도였다.그녀는 다소 어색하게 셔츠를 만지작거렸다.아버지가 친구를 만나러 가니 단정하게 차려입으라고 당부했지만, 변슬기는 또 소개팅 자리일 거로 생각하며 일부러 평소 입던 옷을 입고 왔다.그녀는 상대가 아버지의 돈이 아니라 자신의 평범한 모습을 좋아하길 바랐다.그러나 여기에서 음료를 나르는 여직원들조차 자신보다 더 격식 있게 차려입은 것을 보고 당황했다.“도 선생님, 저 이러고 있으니까 너무 볼품없는 거 아니에요?”도아린은 그녀의 셔츠 뒷면에 약간의 땀 자국이 있는 것을 보고 온화하게 미소 지었다.“제가 여분의 드레스를 준비해 놨어요. 갈아입어도 좋아요.”변슬기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일단 아빠 친구를 만나고 나서 생각할게요.”멀리서 변우빈이 그녀를 보고 약간의 타박 섞인 눈빛을 보였지만, 곧 미안하다는 듯 설명했다.“우리 딸은 성격이 참 고집스러워.”그는 변슬기에게 손짓했고 딸이 곁에 앉자 말했다.“내가 단정하게 입고 오라고 했잖아. 그런데 일하는 옷을 입고 오면 어떡하니.”변슬기는 당황스러워 목을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들었는데, 그 순간 주현정이 보이자 긴장한 표정으로 도아린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눈빛을 보냈다.‘큰일 났다!’문 앞에서 배지유와 다툰 것도 모자라 이번엔 배지유의 엄마까지 만나게 됐다.지난번처럼 자신에게 온화하게 대해줄 리가 없을 것이다.“...네 딸이구나?”주현정은 마치 이해했다는 듯 더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지난번에 봤을 때 어쩐지 낯이 익다 했어.”변슬기는 몰래 아버지의 옷자락을 꽉 잡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분 배지유 엄마예요.”변우빈은 그녀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하고 웃으며 소개했다.“이분은 주현정
배지유가 휠체어를 돌리자마자 누군가와 부딪힐 뻔했다.“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저... 배지유?”“변슬기?” 배지유는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 “너 여기서 아르바이트하는 거야? 이 시간에 오다니, 연회가 거의 끝나가잖아.”변슬기는 공유 자전거를 타고 와서 온몸에 땀범벅이었고 앞머리가 하얀 이마에 붙어 있었다.그녀는 손으로 머리를 정리하며 숨을 고르면서도 자신감 있게 말했다.“아니야, 난 사람을 찾으러 온 거야.”이어지는 장면이 바로 도아린이 목격한 것이다.배지유는 휠체어를 움직여 변슬기의 주위를 맴돌면서 눈에 비웃음이 가득했다.“너희 집은 이번 생은 물론이고, 전생에도 이런 호화로운 사람들을 본 적 없을걸? 여기를 시장으로 착각한 거야? 아무나 데려와서 ‘내 삼촌, 내 이모’라고 하면 통할 것 같아? 여기는 모두 톱스타들이야! 너 콘서트 한 번이라도 가본 적 있어?”배지유는 입을 가리며 더 경멸하는 표정을 지었다.“생활비 벌려고 아르바이트까지 해야 하는 주제에 무슨 돈으로 콘서트를 본다는 거야! 연예인을 만나고 싶어? 기숙사로 돌아가서 기다려. 누굴 보고 싶은지 댓글 남기면 내가 대신 사진 찍어줄게. 미리 말해두는데, 나는 돈을 안 받아. 대신 너는 우리 기숙사의 1년 치 청소를 맡고 내 빨래도 다 해야 해. 속옷과 양말도 손빨래로!”변슬기는 차갑게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난 연예인 보러 온 게 아니야.”“올해 최고의 억지상은 바로 너네!” 배지유는 엄지를 세우며 비웃었다.“여긴 다 연예인들뿐이야. 네가 누굴 찾는다고 하면, 내가 직원한테 말해서 불러줄게.”변슬기는 그녀를 무시하고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냈다.그러자 배지유의 눈빛이 갑자기 험악해지며 휠체어를 몰아 변슬기에게 돌진했다.거의 부딪힐 뻔한 순간, 휠체어가 갑자기 멈췄다.화가 난 배지유가 고개를 돌려보니 그녀가 표현할 말을 찾지 못할 정도로 매혹적인 도아린의 아름다운 얼굴이 보였다.“네가 왜...” 도아린은 왜 자신과 똑같은 드레스를 입고 있는 건가?
주현정은 이혼 얘기를 꺼내지 않았기에 그저 화났다는 의미일 것이다.그러니 그녀의 기분만 풀어주면 도아린이 그 자리를 넘보는 건 불가능해질 것이다.“현정아, 사람은 성인이 아니니 누군들 실수하지 않겠어?” 배석준은 화를 억누르며 말했다.“내가 증명해 보일게. 나와 지유야말로 네 뒤를 든든히 지켜줄 사람이라는 걸 말이야!”그는 배지유를 찾아 그녀를 데리고 주현정을 만나러 가려고 했다.세 식구가 언론 앞에 함께 나타나기만 하면 이혼 소문은 사라지게 될 것이고 도아린 같은 외부인은 배씨 가문의 재산에 끼어들 수 없게 될 것이다.하지만 그가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배지유가 사라진 후였다.“엄마, 화내지 마세요.” 도아린이 다정하게 위로했다.“배 대표님은 함부로 결단을 내리지 못할 거예요.”“차라리 저 사람이 결단을 내렸으면 좋겠네.”주현정은 도아린과 함께 인파를 지나갔다.소파에 앉아 있는 남자는 정장을 입고 있었지만,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그는 다소 어색하게 무릎을 문지르며 이따금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폈다가 다시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잠겼다.주현정을 본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온화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내가 방해되지는 않았어?”“그 말은 내가 해야 할 말인 것 같은데. 그렇게 바쁜 와중에도 내 연회에 와줘서 고마워.”주현정은 도아린의 손을 잡고 다가갔다. 세 사람은 원형 소파에 앉았다.“이쪽은 내 딸 도아린이야. 이분은 변우빈이라고 하고 내 가장 친한 친구야. 아저씨라고 불러.”“아저씨, 안녕하세요.” 도아린은 무심코 상대방을 살펴봤다.변우빈은 이목구비가 단정하고 배석준와 비슷한 체격이었지만 조금 말랐다. 그의 얼굴과 손에는 노동으로 살아온 사람이 가진 강인함이 배어 있었다.두 사람이 대화하는 동안 변우빈은 계속 주현정의 눈을 바라봤고 주현정의 미소는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진심이 담겨있었다.“네 딸도 데리고 온다고 하지 않았어?”주현정이 뒤를 돌아보며 묻
석 대표는 멈칫하더니 그제야 앞에 휠체어 하나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거기에 요란하게 치장한 여자가 앉아있는 것을 보았다.“이분은...”그는 주현정이 이혼한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고 첫 반응은 배석준이 다른 여자를 찾았다는 것이었다. 배석준의 새로운 연인은 주현정과 닮은 구석이 있었다.“석 대표님, 짓궂으십니다. 방금까지도 저희 딸을 카메오로 요청한다고 하셨으면서...”배석준은 말을 하면서 주변 사람들의 표정이 변하는 것을 발견했다.그들은 이상한 눈빛으로 배지유를 보고 있었고 의아해하는 사람도 있고 심지어 비교하는 사람도 있었다.배지유는 엄청 민감해서 의식적으로 치마를 잡았는데 그들이 자신의 얼굴만 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그제야 천천히 손을 떼었다.“배 대표님 따님이 몇 명이세요?”석 대표가 물었다.“... 한 명입니다.”석 대표는 웃어 보이고는 볼 일이 있다면서 자리를 떴고 그가 떠나자 다른 사람들도 흩어졌다.“아빠! 저 사람들 무슨 뜻이에요?”“...”배석준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영문을 알게 되었다.배지유는 휠체어에 앉아있어 시선이 막혔지만, 배석준은 멀지 않은 곳에서 도아린을 데리고 인사를 나누는 주현정을 보았다.그들이 칭찬하는 사람은 배지유가 아니라 도아린이었다.“지유야, 여기서 아빠를 기대려. 아빠가 가서 엄마를 찾아볼게.”그는 배지유가 충격을 받을까 봐 그 자리에서 자신을 기다리라고 하고는 빠르게 걸어갔다.“주현정! 당신 지금 지유는 병원에 내버려 두고 도아린을 데리고 연회에 참가하고 있어? 당신 같은 엄마가 어디 있어?”손님들은 배석준의 표정이 안 좋은 것을 보고 자리를 피했고 주현정의 얼굴에 있던 웃음도 점차 사라졌다. 그녀는 입꼬리를 올리고 대답했다.“지유는 당신 같은 아빠만 있으면 돼요.”배석준은 목소리를 깔고 물었다.“앞서 당신은 외부인 하나 때문에 나랑 이혼하려고 했고 이제는 이혼 얘기를 하지 않으니 각종 방법으로 우리를 치욕스럽게 하고 있어. 당신이 다시 JS 픽처스를 운영하게 되었는데도 나한테 얘기
JS 픽처스의 고위인사는 배석준을 알고 있었기에 그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앞으로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배 대표님, 또 해외로 가신 줄 알았습니다.”“현정이의 몸이 나아진 지 얼마 되지 않아 좀 더 머물다가 가려고 합니다.”배석준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평소에 연회에 거의 참가하지 않는 연예인들이 참석한 것을 보고 주현정이 JS 픽처스에서 지위가 여전히 굳건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그들은 각종 이유를 찾아 함께 공식 석상에 나타나기를 거부했지만, 약속이나 한 듯 카메라 앞에서는 활짝 웃었다. 그들은 모두 주현정 덕분에 잘 되었기에 체면은 반드시 살려주어야 했다.“크흠.”배지유는 배석준에게 자신을 소개하라고 헛기침을 했다.“아, 우리 딸이 마침 해남대학교에서 대학원을 다니고 있어서 데리고 왔습니다.”배석준을 둘러싼 고위인사들의 표정이 이상해졌다.주현정은 배지유가 연예계의 나쁜 물을 먹을까 봐 현역일 적에 절대 배지유를 데리고 활동에 참석하지 않았다. 고위인사들도 그저 주현정에게 딸이 있다는 것만 알았지 본 적은 없었다.반응이 빠른 누군가가 술잔을 들며 공손하게 말했다.“따님은 주 대표님과 배 대표님의 우수한 점을 다 닮으셔서 단정하고 청초하십니다. 우리가 올해 새로 영입한 신인보다 예쁘신 것 같습니다.”“맞아요. 해남대학교의 대학원을 다닌다고 하시니 예쁘시고 학식도 많으시네요. 지금 업계에서는 이렇게 완벽한 인재를 제일 좋아합니다!”배지유는 칭찬을 듣고 얼굴이 발그레해졌고 그녀는 두 손으로 팔걸이를 잡고 살짝 몸을 앞으로 했다.“죄송합니다. 제가 발을 삐끗해서 일어서서 인사를 올리지 못하겠네요.”“별말씀을요. 발을 삐끗하면 잘 치료해야 해요. 젊고 예쁘신데 후유증을 남기면 안 되죠.”좋은 마음으로 한 말이지만 배지유의 마음속에서는 저주로 들렸다.그녀는 발 한쪽을 다친 게 아니라 다리 하나를 잃었다. 나머지 생은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말이다.배석준은 배지유의 성격을 알기에 그녀가 난리를 피울까 봐 얼른 다른 곳으로
주현정은 말투가 가라앉았고 표정이 엄숙했다.“남자의 내연녀로 이십몇 년을 있다가 아이까지 낳았는데도 결혼을 하지 못했으니 어른이 화병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가 있나. 도아린의 양아버지는 양어머니의 혼수를 가로챈 것도 모자라 목숨까지 위협했어. 이런 쓰레기 같은 놈은 딸의 효도를 받을 자격 없어!”현장에는 여자 연예인들도 많았다.같은 딸의 마음으로 이렇게 심란한 일들이 있었는데 어떻게 효도를 할 수 있겠는가?그들은 도아린이 매정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오히려 도아린이 양어머니를 위해 복수를 했다고 여겼다.강홍련은 주위 사람들이 모두 도아린의 편을 드는 것을 보고 당황했다. 자신을 향해 손가락질하는 것은 견딜 수 있지만 방금 자신의 말이 강씨 가문에게 영향을 줄까 봐 두려웠다.그녀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도아린은 단호한 눈빛으로 목소리를 높였다.“강씨 어르신은 사적인 감정으로 공적인 자리에서 복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강씨 어르신께서 좋은 마음으로 당신을 받아주었는데 당신은 밖에서 어르신의 명성이나 흐리고 다니면 안 되죠. 농부와 뱀의 이야기를 재희 씨도 들어봤을 거로 생각해요.”도아린은 강씨 어르신의 편에 섰는데 강재희는 반박할 수 없었다.여론에서 아버지의 대회에 흑막이 있다는 일로 들끓던 것이 금방 사그라들었는데 강홍련 저 멍청이 때문에 다시 수면으로 올라왔다.주현정은 도아린이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조금도 용납할 수 없었다.“도아린은 제 딸이고 JS 픽처스의 후계자예요. 강씨 가문에서 이렇게 제 딸을 치욕스럽게 하다니, 저희 협력은 앞으로 계속하지 않을 생각입니까?”강재희는 눈썹을 꿈틀했다. 그녀는 도아린이 연회에 참가한 것은 단지 주현정과 예전에 시어머니와 며느리 정 때문이라고 생각했다.주현정이 도아린을 딸로 삼고 JS 픽처스의 후계자로 생각한다는 것은 예상치 못했다.만약 도아린과 모순이 격화된다면 앞으로의 협력에는 장애가 생길 것이다.“강홍련 씨, 사과해요!”강홍련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강재희는 지금 자신을
도아린의 표정은 아주 평온했다.진열대에 있는 다이아몬드의 빛이 꺾이어 그녀의 눈동자를 비춰 유독 눈부셨다.강홍련은 그녀의 앞으로 가서 섰다.강홍련은 도아린보다 머리 하나쯤 작아서 고개를 들어 도아린을 바라보았는데 도도한 척하는 모습이 광대 같았다.“네가 JS 픽처스에게 ‘봉황의 시대’를 광고하도록 넘겼는데 강씨 가문의 고급 주얼리들은 모두 JS 픽처스의 연예인들이 광고하고 있다는 것을 간과했어. ‘봉황의 시대’와 JS 픽처스의 연예인이 동시에 나타난다면 사람들은 당연하게 ‘봉황의 시대’가 강씨 가문의 것으로 생각하게 될 테지.”이게 바로 연예인을 찾아 광고하는 이유였다.예를 들어 어떤 톱스타가 운동화의 모델이 되었다면 그가 나타났을 때 팬들은 어떤 브랜드의 신발을 신었는지 알게 된다. 따로 브랜드를 찾아볼 필요가 없게 되는 것이다.도아린은 도덕과 재능을 겸비한다는 말로 강씨 가문에게 치욕을 안겨주었지만 결국은 강씨 가문이 이득을 보게 되는 것이다.“강씨 가문에서 이득을 보는 게 당신이랑 무슨 상관이죠?”도아린은 담담하게 대답했다.“나는 강씨 가문의 사촌이야!”강홍련은 불쑥 얘기했다.“강씨 가문에서 손보미를 밀어준다면 배건후와 결혼할 수 있어. 강씨 가문에서 안씨 가문을 지지한다면 내 아들은 안씨 가문의 딸과 결혼할 수 있는 거야!”“그래서요.”강홍련은 도아린이 모른 척할 줄 몰랐고 그녀의 코에 대고 얘기했다.“그래서 나한테 잘하라고. 그러면 강씨 가문에서는 네가 해남에서 살아나갈 기회라도 줄 수 있을 거야. 그렇지 않으면 너의 대회 성적을 조작하는 것은 물론 너를 디자인 업계에서 쫓아내는 것도 일이 아니지. 내 삼촌 강태식은 이 바닥을 꽉 잡고 있어. 내 삼촌이 뭐라고 하면 그대로 따라야 하는 거야. 너의 ‘봉황의 시대’도 잘난 척할 거 없어. 언론에서 만들어준 것뿐이야. 만약 삼촌의 학생들이 다 그게 별로라고 얘기한다면 너를 따르는 사람들이 모두 사라질 거야!”많은 손님이 주위에서 구경하고 있다가 강홍련의 지나친 말에 시선을 두
“아빠가 방법을 대서 가볼게. 너는 오지 마.”배석준은 배지유가 걱정되었다. 지난번에 배지유가 밖으로 나갔다 왔을 때도 돌아와서 다리가 아파 잠이 들지 못했다.배지유는 붉어진 눈으로 애원했다.“제 친구들은 제가 아직 안에 갇혀있는 줄 알아요! 아빠랑 제가 함께 엄마의 연회에 간다면 매체에서는 저희 세 식구의 화목한 모습을 찍게 될 것이고 소문들은 자연스레 사그라질 거예요!”배석준은 일리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딸의 명성은 도아린 때문에 엉망이 되었다.돌이킬 방법을 계속 찾지 않는다면 배지유가 해남대학교로 돌아갔을 때 반드시 동기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조롱당할 것이다.“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메이크업과 코디를 해줄게.”배석준이 데리고 온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김지민이었다.김지민은 연예계를 잘 아는 사람이라 참석하는 연예인들이 무슨 브랜드를 입었는지 알아냈다. 배지유는 똑같은 옷을 입으면 안 됐고 다리의 흉터를 가릴 수 있으면서 예쁘고 매력적이어야 했다.이 부분에서 김지민은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배지유는 만족스럽게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 같았다.그녀의 치마를 들지 않는 이상 그녀가 다리 하나가 없다는 것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다른 사람이 물어보면 발을 삐끗해서 휠체어를 탔다고 하면 될 것이다.이런 장소에 김지민은 절대 나타나서는 안 되므로 부녀가 떠나는 것을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연회장의 중심에는 도아린이 검은 드레스를 입고 나타났고 잘록한 허리에 긴 다리는 현장에 있는 연예인들의 시선을 끌었다.이 여자의 아름다움이 너무 지나쳤다.연예계의 스타들은 자주 레드카펫을 밟고 시상식에 참가하므로 어떻게 분위기를 휘어잡는지를 잘 알고 자신이 어느 각도에서 가장 예쁘게 찍히는지도 알고 있었다.도아린은 처음 보는 얼굴이고 업계에 대해 영향력이 큰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의 행동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다 자신감이 넘쳤다.그녀가 스크린 앞으로 가서 사인할 때 스크린에는 ‘봉황의 시대’의
도아린은 가슴이 철렁했지만, 표정은 여전히 아무런 감정의 변화도 나타나지 않았다.그녀의 덤덤한 눈빛은 ‘라윤주’의 이름을 듣고 초점을 잃었다.“뭐라고요?”“...”육하경은 입술을 깨물었다. 두 사람은 잠시 침묵하다가 육하경이 말을 이었다.“향 주머니로 화를 면한 것은 우연이에요. 정말 저를 도왔던 것은 세인트존스 호텔의 책임자가 되게 만들었던 것이죠.”육하경은 입꼬리를 올려 조롱하는 듯한 웃음을 지었다.“어르신들을 3일이나 괴롭혀서야 알아냈어요. LY에서 저를 후임자로 추천했다고 하더라고요.”육하경의 학업은 각 부분에서 다 뛰어났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고 육씨 가문에서 두각을 나타내려면 실력이 좋을 뿐만 아니라 빽빽이 필요했다.육민재를 예로 들어보면 능력은 가장 뛰어나지 않을지는 몰라도 맏아들의 장손 혈통을 이어받아 어렸을 때부터 최고로 좋은 자원과 경험을 쌓을 기회들을 누리고 있었다. 이변이 없다면 그는 육씨 가문의 후계자일 것이다.다른 사람들이 두각을 나타내려면 모든 게 알맞게 부합되어야 한다.육하경은 모든 것을 통찰하고 있었고 육씨 가문의 산업에 기대를 두지 않아 오랜 시간 밖에서 떠돌며 공부를 했고 자신의 사업을 하고 싶었다.세인트존스 호텔의 관리 권한이 그의 손에 들어갔을 때, 그는 기쁘기도 놀랍기도 했다.놀란 마음으로 육하경은 전임자를 찾아갔고 온갖 방법을 다 써서야 LY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육씨 가문 뿐만 아니라 많은 명문가가 LY와 관계가 있었고 그들은 인재를 추천하면서 한편으로는 그들을 도와주었기에 자연스레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육하경은 그때 손에 향 주머니를 들고 있었는데 전임자가 이상해하며 무늬를 찍어서 물어보았는데 그것은 ‘추천서’라고 하는 것이다. “무슨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하경 씨가 말하는 그 이야기에도 관심 없습니다.”도아린은 책을 육하경에게 돌려주고는 차 문을 열었다.“도아린 씨!”육하경은 그녀를 잡고 싶었지만, 손을 허공에 멈추고 결국 그녀에게 닿지 않았다.육하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