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하는 거야?” 익숙한 목소리에 손보미는 깜짝 놀라며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건후 씨, 보육원에 내 팬인 아이가 있는데 그 아이가 지금 위중해. 원장님이 나한테 아이를 한 번 봐달라고 하셨어.” 배건후의 눈빛은 아주 무거웠다.“가봐야겠네.” “그런데...” 손보미는 억울한 표정으로 도아린을 바라봤다. “만약 아린 씨가 이 대역 자리를 원한다면 내가 양보할게. 율이 몸이 많이 안 좋아서 나를 꼭 보고 싶어 해. 아린 씨도 그 아이를 안타깝게 여긴다면 내 상황을 이해해줬으면 좋겠어.” 도아린은 바늘을 손수건에 고정시키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가지 말라고 한 적 있어요?” 손보미는 억울한 듯 입술을 앙다물며 말했다. “아린 씨가 날 믿지 않을까 봐.” “믿어요.” 도아린은 가볍게 비웃었다. “이렇게 딱 맞추다니... 자수 실력을 보여줘야 할 때마다 무슨 일이 생긴다는 게 정말 우연일까요?” 손보미는 뒤돌아 배건후를 애처롭게 바라봤다. “원장님이 지민이에게 전화를 했지만 결정을 못 내려서 나한테 전화가 온 거야. 사실 나는 그동안 꾸준히 자선 활동을 해왔고 내 팬들도 많이 도왔어. 그런데 매체들이 거기 있다고 해서 가지 말라는 조언도 있었어. 하지만 율이는 너무 안타까운 아이야. 희귀병에 걸렸는데 이 위기를 넘길 수 있을지 모르겠어...” 배건후는 도아린을 차갑게 쳐다봤다. “넌 일이 사람 목숨보다 중요해?” 도아린은 고개를 들며 대답했다. “난 정직함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송 감독의 새 드라마 제작사는 JS 픽쳐스였고, 주현정이 비록 일선에서 물러났다고는 해도 여전히 영향력이 있었다. 송 감독은 배건후의 말을 감히 거스를 수 없었다. “배 대표님, 대본 리딩 중이니까, 보미 씨와 함께 병문안을 가셔도 될 것 같습니다.” 손보미는 속으로 기뻐했지만 겉으로는 마치 도아린의 동의를 구하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함예진 또한 도아린을 바라봤다. 도아린은 여전히 무표정
함예진은 도아린의 손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미안해.” 그녀는 원래 도아린을 도와주려 했지만 오히려 도아린이 억울한 상황을 겪게 만들었다. “이건 이모 잘못이 아니에요.” 도아린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이모, 부탁드리고 싶은 일이 있어요.” “너와 나 사이에 부탁이라고 할 건 없단다.” 도아린은 더 이상 격식 차리지 않고 바로 소유정의 상황을 설명했다. 함예진은 소유정에게 곡 준비를 철저히 해서 심사위원을 놀라게 하라고 조언했다. 영화 촬영장을 나서자마자 도아린은 이 기쁜 소식을 소유정에게 전했다. 소유정은 유진혁과 함께 노래 연습을 하고 있다가 둘이 얼싸안고 기쁨에 소리쳤다. 몇 초 뒤, 두 사람은 동시에 얼어붙었다. 소유정은 유진혁의 품에서 서둘러 몸을 떼고는 등을 돌려 걸어갔다. “알겠어, 고마워.” 유진혁도 얼굴이 빨개져서 장비를 만지는 척하며 어색함을 숨겼다. 도아린은 전화를 끊고 차에 시동을 걸었다. 후진을 시작하자마자 ‘쿵’ 소리가 들렸다. 지난번 긁힌 후로, 그녀는 차에 타기 전에 항상 장애물이 있는지 확인하는 습관을 들였는데, 분명 아무것도 없었다. 황급히 차에서 내려 확인해 보니 차 뒤에 일곱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쓰러져 있었다. 경찰에 신고하려던 찰나, 여자아이는 스스로 일어나 다리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더니 돌아서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잠깐만!” 도아린은 급히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가 곧바로 손을 놓았다. 아이의 몸은 너무 말라서 뼈에 피부만 걸쳐져 있는 듯했다.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보는 게 좋겠어. 부모님 연락처가 어떻게 돼? 병원에 오시라고 할게.” “부모님 없어요.” 여자아이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쳐다봤다. 아이의 얼굴빛은 창백했고 눈두덩이는 움푹 패여 있었다. 영양 상태가 심각하게 부족해 보였다. 이 아이, 학대를 당하는 건가? 도아린은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내가 널 쳤으니 보상해 줘야겠지. 원하
도아린은 눈을 깜박였다. 손보미 같은 사람이 이런 귀여운 팬을 가지고 있다니 놀라웠다. 자신의 우상을 언급하자 여자아이는 금세 말문이 트였다. 손보미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보육원 출신이었다며, 그녀는 선하고 노력하는 사람이었고 운명에 굴복하지 않으며 온갖 고난을 헤치고 지금의 성공을 이뤘다고 했다. 힘든 날들을 버틸 때마다 여자아이는 손보미가 출연한 드라마를 보며 위로를 받았다. 그녀도 손보미처럼 되고 싶다며, 손보미에게 응원과 축복을 받고 싶다고 했다. “손보미를 모르는 거예요? 저 사진 있어요.” 여자아이는 주머니에서 잡지에서 오려낸 사진 한 장을 꺼냈다. 옷은 더러워졌지만 그 사진만은 깔끔하게 보관되어 있었다. 손보미가 그녀의 마음속에 얼마나 중요한 인물인지를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도아린은 사진을 받아들었다. 그 사진은 손보미가 청호상 시상식에 참석했을 때의 인터뷰 장면이었다. 사진 속 손보미는 환하게 웃고 있었고 비록 상을 받지는 못했지만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표정이었다. 배건후의 편애를 받는다는 건 세상을 가진 것과 다름없으니까. “나 이 사람 알아.” 도아린은 사진을 여자아이에게 돌려주며 말했다. “근데 지금 여기에 없어.” “있어요!” 여자아이는 목소리를 높였다. “스케줄에 오늘 여기서 촬영한다고 나와 있었어요!” 도아린은 여자아이가 스케줄까지 알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지만 차분하게 설명해 주기로 했다. “맞아, 오늘 여기서 촬영했어. 그런데 반 시간 전에 보육원에서 누가 보고 싶다고 해서 먼저 갔어.” 여자아이는 잠시 멍하니 서 있더니 갑자기 흥분하기 시작했다. “희망의 집 맞죠? 저를 빨리 희망의 집으로 데려다주세요!” 도아린은 그녀의 간절한 부탁에 못 이겨, 결국 그녀를 희망의 집 보육원으로 데려갔다. 여자아이는 연락처를 남길 새도 없이 차 문을 열고 대문 쪽으로 빠르게 달려갔다. 문을 지키던 경비 아저씨는 여자아이를 알아본 듯 문을 열어주며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도아린은 네 대역을 하지 않을 거야.” “아린 씨가 내 대역을 안 한다면, 왜 일부러 날 찾아와서 소란을 피운 거야? 대중 앞에서 나랑 자수를 비교하겠다고 나서더니...” 남자의 눈빛이 점점 더 차가워지자 손보미는 점차 말을 잃고 입을 닫았다. 차 안의 공기는 점점 더 무겁게 가라앉았고 담배 연기가 짙게 퍼져 숨이 막힐 것 같았다. 결국 우정윤이 나서서 말했다. “손보미 씨, 이제 들어가셔야 합니다. 저기 율이라는 소녀가 아직 기다리고 있는데 그 아이에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손보미는 마스크를 쓰고 눈에 눈물을 매단 채 안쓰럽고 가엾은 모습으로 차에서 내렸다. 그녀가 내리자마자 우정윤은 참다못해 투덜거렸다. “대표님께서 서둘러 촬영장에 간 건 사모님께서 공개적으로 망신당하는 걸 막기 위해서였는데, 마치 손보미 씨를 응원하러 간 것처럼 보였습니다.” 배건후는 한숨을 내쉬며 담배 연기를 뿜어냈지만, 속에 쌓인 답답함은 털어낼 수 없었다. “우 비서가 보기엔 내가 손보미를 두둔하는 것 같나?” “사모님께서 무슨 일을 겪었는지 묻지도 않고 그저 그분께 일이 생명보다 중요한지 따지셨잖아요. 사모님뿐만 아니라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물어봤는데.” 그가 묻고 싶었던 사람은 바로 도아린이었다. 하지만 도아린은 그저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비웃듯 바라봤을 뿐이었다. 손보미가 그 순간 말을 잇지 않았더라면 그는 그대로 얼어붙었을 것이다. 우정윤은 속으로 생각했다. 그의 보스는 사업에선 천재지만 감정 문제에서는 정말 어설프다고. “예전에 사모님께서 좋아하시던 야생 인삼을 손보미 씨에게 준 것도 그렇고, 아가씨께서 선물한 귀걸이를 억지로 사모님에게 착용하게 해서 알레르기를 일으킨 것도 그렇습니다. 사실 사모님이 원한 건 선물이 아니라 대표님의 태도였을 겁니다.” 배건후는 미간을 찌푸렸는데 그의 눈빛이 더욱 어두워졌다. 태도라...? 태도가 실질적으로 유용한가? 도아린은 너무 좋은 환경에서 지내
“...”성대호는 속으로 불안했지만, 보호자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에 물러설 수 없었다. 배지유는 오빠가 이렇게 엄격한 적은 처음이었다. 그녀는 오빠가 진실을 말할까 봐 두려웠고 성대호가 더 이상 자신을 감싸주지 않을까 봐 불안했다. “오빠, 내가 정말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제발...” 배지유는 간절한 눈빛으로 배건후를 바라보며 애원했다. 그녀는 고개를 살짝 흔들며 후회하는 기색을 보였다. 배건후는 그녀를 몇 초간 바라보다가 등을 돌려 걸어갔다. “대호 오빠...” 배지유는 성대호의 허리를 뒤에서 꼭 안으며, 그 틈을 타 손에 쥐고 있던 물건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성대호는 그녀를 품에 안고 부드럽게 그녀의 등을 두드리며 달래주었다. “이제 그만 울어, 오빠가 있잖아. 걱정 마.” 배지유는 흐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호 오빠, 만약 내가 앞으로 또 잘못을 저지른다면 그때도 이렇게 나를 감싸줄 거야?” “네가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내가 잘 이끌어줄 거야.” 배지유는 고개를 숙이며 눈 속에 깊은 분노를 담았다. 분명 자신도 윤 여사님을 구하는 데 참여했는데, 왜 여사님은 오직 도아린에게만 감사를 표하고 양녀로 삼겠다는 말까지 한 거지? 심지어 몰래 혈액을 채취해 친자 확인까지 하다니! 다행히 어젯밤 혈액을 채취한 간호사가 자신의 친구였기에, 이 멋진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도아린이 진씨 가문의 친딸일 가능성은 아예 없었다. 자신이 이미 검사 자료를 바꿔치기한 걸 생각하며 배지유는 속으로 쾌감을 느꼈다. 배건후는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준비하던 중, 빠르게 병원 밖으로 나가는 김지민과 그녀를 뒤따르는 손보미를 보았다. “갔는지 확인해 봐.” “병문안 다 끝났어?” “아!” 손보미는 깜짝 놀라며 헛기침을 했다. 그녀는 억지로 침을 삼키며 어색하게 해명했다. “지민이가 착각했어. 율이는 병원에 있는 게 아니라 보육원에 있어. 지금 바로 그쪽으로 갈 거
“너무 서두르지 마.” 진범준의 눈에는 가득한 다정함이 담겨 있었다. “아들들에게는 아직 말하지 말고, 나중에 깜짝선물처럼 알려주자고.” “혈연관계라는 건 참 신기해요. 난 확신해요, 아린이가 바로 우리 딸이에요!” 윤명희는 기쁨 뒤에 약간의 걱정을 드러냈다. “여보, 아린이는 가족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해요. 만약 자신이 도정국의 친딸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면 많이 상처받지 않을까요?” “상처는 무슨, 오히려 사랑해 주는 사람이 네 명이나 더 생기는데 기뻐해야지!” 진범준은 윤명희의 허리를 감싸며 말했다. “여보, 이제 거의 나으니 더 예뻐졌어. 난 지금...” “바보 같아.” 윤명희는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돌렸다. 진범준은 그녀의 턱을 살며시 잡고 몸을 숙여 가까이 다가갔다. 윤명희가 정신적인 문제를 겪은 이후로, 그들은 한동안 부부로서의 친밀한 시간을 갖지 못했다. 갑작스러운 문 두드리는 소리에 윤명희는 깜짝 놀라며 진범준을 밀어냈다. 진범준은 소파에서 굴러떨어지며 허리를 삐끗했고 기분도 망쳐버렸다. “누구예요?” “저예요, 도아린.” 윤명희는 급하게 머리와 옷을 정리하며 그를 째려보았다. “딸이 볼 텐데 부끄럽지도 않아요?” 진범준은 웃으며 말했다. “그게 뭐가 부끄러워. 우리 부부가 사이가 좋은 걸 보면 딸도 기뻐할 거야.” 그는 문을 열었다. “넌 엄마랑 먼저 얘기 좀 해. 난 담배 좀 피우고 올게.” 도아린은 그가 이상하다고 느꼈지만 가지고 온 닭고기 수프를 식탁 위에 놓고 물었다. “아빠, 허리를 삐셨어요?” 윤명희는 그 질문을 넘기고 도아린의 손을 잡았다. “앉아봐. 우리 가족에 대해 얘기 좀 해줄게.” 도아린은 양딸인 자신에게 진씨 집안 이야기를 굳이 많이 알려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진범준 부부가 해남으로 돌아가면, 자신들과의 교류도 점차 줄어들 테니 말이다. 하지만 윤명희는 그녀에게 아무것도 숨기지 않았다. 진씨 가문이 해남에서 하는 사업부터
도아린은 주현정의 상태가 나빠진 것을 보고 급히 의사를 불렀다. 내일 퇴원하기로 했던 주현정은 다시 며칠 더 입원해야 했다. 배지유는 병실 문 앞에서 도아린을 가로막고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말했다. “우리 엄마 네가 화나게 해서 쓰러진 거야. 넌 도대체 왜 들어오려는 거야? 엄마를 아예 죽이려고?” 의사도 옆에서 환자를 자극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도아린은 어쩔 수 없이 발길을 돌렸다. 다음 날, 그녀는 이른 아침부터 다시 주현정을 보러 갔고 복도를 걷던 중 배건후와 마주쳤다. 배건후는 병실 반대쪽에서 다가와 우정윤에게 가방 하나를 건넸다. “같은 사이즈로 한 켤레 더 사 와.” 우정윤이 가방을 제대로 받지 못해, 그 안에 있던 하이힐 한 짝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날렵한 6인치 힐에, 신발 끝엔 반짝이는 다이아몬드 장식이 박혀 있었다. 누가 봐도 주현정이 신을 스타일은 아니었다. 도아린은 그 장면을 피하려다 돌아서자마자 누군가 그녀를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도아린.” 도아린은 걸음을 멈추었다. 배건후가 그녀 옆으로 다가오더니 그녀가 들고 있던 보온병을 힐끗 바라보았다. “얼음물을 뿌리고 나서 이제는 닭고기 수프를 가져다 위로해? 네가 연기를 잘하는 줄은 몰랐네, 도아린.” 도아린은 미소를 지으며 눈썹을 살짝 올렸다. “배건후 씨, 나도 당신이 이렇게 위선적인 줄은 몰랐어요.” “무슨 소리야.” “손보미 씨를 그렇게 애지중지하면서도, 나랑 이혼하고 손보미 씨한테 정식 명분을 주는 건 원하지 않잖아요.” 도아린은 냉정한 눈빛으로 보온병을 배건후에게 내밀며 말했다. “연기를 하려면 착하고 현명한 며느리 역할을 할 거예요. 대단한 효자시니까, 직접 가져다드려요.” 배건후는 얼굴을 찡그렸다. 도아린은 보온병을 그의 품에 던지듯이 넘기고 뒤돌아 걸음을 재촉했다. 하지만 그의 손이 갑자기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넌 왜 안 가는데.” “배건후 씨가 애지중지하는 사람의 드레스 찾으
배지유는 상황이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느꼈지만, 주현정이 말을 꺼내지 않으니 자신도 먼저 도아린에게 사과할 생각은 없었다. “닭고기 수프를 데울게요.” 도아린은 보온병을 들고 병실 밖에 있는 주방으로 향했다. 주현정은 배건후를 손짓해 부르며 말했다. “앞으로는 아린이랑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정을 쌓아. 그 엉망진창인 사람들과는 깔끔하게 끝내고.” 배건후는 여전히 보온병에 담긴 죽에 신경이 쓰였다. 도아린은 손보미를 보러 간 것도 아니었고 아마 그녀가 입원한 사실조차 몰랐을 것이다. 우정윤이 그에게 미리 도아린의 생각을 물어보라고 제안했지만, 배건후는 또다시 도아린에게 설명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보미 언니는 제 친구예요.” 배지유는 입을 삐죽거리며 불만스럽게 말했다. “제가 해외에서 교환학생을 할 때 언니가 저를 돌봐줬잖아요.” 주현정은 그녀를 눈으로 흘기며 말했다. “네 친구는 네가 알아서 만나. 네 오빠를 끌어들이지 말고.” 주현정은 다시 배건후를 바라보며 신신당부했다. “진씨 부부는 인터넷에 떠도는 소문을 굉장히 신경 써. 그룹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너는 조심해야 한다. 며칠 후 네 아빠가 돌아왔을 때 네가 진씨 집안과의 협상을 잘 마무리한 걸 알면 굉장히 기뻐할 거다. 이 기간 동안 아린이에게 잘해.” 도아린은 주현정의 말이 끝난 걸 듣고 나서야 문을 두드리고 병실로 들어갔다. “어머니, 닭고기 수프를 데워 왔어요.” 도아린의 발걸음과 함께 병실 안에 풍겨온 것은 진한 닭고기의 향기와 은은한 버섯 향이었다. 배지유는 침을 삼키며 눈치를 살폈지만 먼저 마시고 싶다는 말을 하지는 못했다. 도아린도 그녀에게 수프를 권할 생각은 없는 듯, 고기 한 점을 건져내어 반 그릇의 수프와 함께 주현정에게 내밀었다. “천천히 드세요, 뜨거우니까요.” “역시 닭고기 수프가 죽보다 맛있어.” 주현정은 어린아이처럼 만족스럽게 두 그릇을 후루룩 마셨다. 도아린과 배건후는 눈을 마주치며 무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