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파 옆에 서 있던 남자는 깜짝 놀라며 도아린을 바라봤다. 그는 흰 셔츠를 입고 있었고 바지는 손에 들고 있었다.“아... 아현 씨?”육하경은 당황한 듯 발가락으로 바닥을 움켜쥐려 하며 어쩔 줄 몰라 했다.도아린은 재빨리 등을 돌리며 말했다.“죄송해요. 옆방에 있던 한 여성분께서 사탕에 목이 막혀서 제가 응급처치를 했어요. 병원으로 좀 데려가 달라고 해 주세요.”“알겠습니다.”육하경은 정신을 차리고 서둘러 바지를 입었다.방금 한 여성이 자신에게 접근하려고 일부러 주스를 엎질렀기에 이 방에서 옷을 갈아입으려고 들어왔던 터였다.그런데 이런 당황스러운 상황을 도아린에게 들킬 줄은 몰랐다.곧 돌아온 육하경은 도아린이 아직 그 자리에 있는 것을 발견했다.그녀는 상황을 잘 이해해준 듯 침착하게 행동하고 있었다.“가봤는데 이미 병원으로 옮겨졌더라고요.”“다행이네요.”도아린은 귀걸이를 뺐다.금속 알레르기가 있었던 그녀는 귀가 가렵고 뜨거운 것은 물론 이미 염증까지 생긴 상태였다.“귀가 알레르기가 돋은 것 같네요.”육하경은 상냥하게 말했다.“제가 약 발라줄까요?”방금 만난 사람조차 이를 눈치챘는데 배건후는 3년 동안 도아린에게 금속 알레르기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도아린은 스스로를 비웃으며 말했다.“괜찮아요. 신경 쓰지 마세요.”“별거 아니에요. 같은 층에 의무실이 있으니 금방 다녀올게요.”육하경은 그녀에게 앉으라고 권했다.“그럼 감사합니다.”도아린이 자리에 앉자마자 조금 전의 문은 또다시 자동으로 닫혔다. 이 디자인이 꽤 흥미롭다고 생각한 그녀는 잠시 방을 둘러봤다.육하경은 곧 약을 가져와 면봉에 약을 묻힌 후 그녀에게 다가왔다.“제가 발라줄게요.”“제가 할게요.”도아린은 그와 친구가 되는 것은 괜찮았지만 과도한 신체 접촉은 사양했다.육하경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도아린을 바라보았다.그녀가 착용한 비취 팔찌와 다이아몬드 팔찌 그리고 이 고급스러운 드레스는 모두 값비싼 것들이었다.이런 재정 상태라면 저질 귀걸이를 착용하고 연
육하경은 상황을 전혀 알지 못했지만 보안 요원의 반응을 보니 도아린이 분명 곤란한 상황에 처한 것 같았다.그는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반성문 작성해서 제출하세요.”“네, 네! 바로 하겠습니다!”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보안 요원은 문을 잡고 육하경과 도아린이 들어갈 수 있도록 공손히 배웅했다.그들이 탄 엘리베이터가 닫히자 바로 옆의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그곳에서는 성대호와 배건후가 걸어 나왔고 성대호는 초대장을 보안 요원에게 건네며 연회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아까 먼저 기다리라고 한 말... 무슨 의미였어?”배건후는 냉정한 눈빛으로 답했다.“말 그대로의 의미.”성대호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역시 다시 시작하려는 속셈이구나.’손보미가 울고불고하며 난리를 치면 배건후는 언제나 그녀에게 무한한 배려를 해왔다.‘아린 씨에게 자리 배정을 끝냈다고 말하지 않아서 다행이야. 이 자리가 다시 손보미에게 넘어갔다가 상황이 퍽 난감해졌겠어...’도아린을 위해 몇 마디 하려다 성대호는 배건후의 어두운 표정을 보고는 그만두기로 했다.대신 그는 핸드폰을 꺼내 육하경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우리 도착했어. 이제 팀장 된 거 티 좀 내는 거냐? 빨리 마중 나와.]아래층에서 육하경은 도아린에게 옷을 건네며 말했다.“문 잠그고 갈아입고 내가 오면 열어줘요.”육하경의 배려는 섬세했지만 너무 친근하진 않아 도아린은 편안함을 느꼈다.“고마워요.”육하경이 방을 나가자 옷을 가져온 사람이 도아린의 뒷모습을 보더니 참지 못하고 말했다.“팀장님, 여자친구분 몸매가 너무 좋으시네요.”“입 다물어요.”육하경의 귀가 붉어졌다.그때 핸드폰이 진동했고 그는 메시지를 받았다.하지만 육하경은 바로 확인하지 않고 보안 요원을 찾아 상황을 물어봤다.도아린이 한 여객에게 괴롭힘을 당했다는 말을 들은 그는 CCTV 영상을 확인했다.도아린을 괴롭힌 여자는 다름 아닌 그에게 접근하려다 실패해 온몸에 주스를 쏟아낸 여자였다.또다시 성대호에게서 메시지가 왔다.[여자친구도
육하경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 성격에 그럴 리가 없지.”성대호는 여전히 납득하지 못한 듯 말했다.“그래도 아직 공개하지 말고 적어도 우리 둘한테 먼저 보여줘야지. 요즘 여자들 수법이 대단하다고! 천생연분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치밀하게 계획한 덫일 수 있어!”“어쩌면 동시에 여러 명과 만나면서 누가 더 능력 있는지 보고 결정하는 걸지도 몰라. 여자들은 겉으로는 온순하고 착해 보여도 사실은 속에 날카로운 가시가 숨어 있거든!”여태 아무 말도 하지 않던 배건후는 그 말을 듣고 눈빛이 더 어두워졌다도아린 역시 무해한 토끼에서 손댈 수 없는 고슴도치로 변해버렸다.“맞는 말이네.”그는 동의했다.성대호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그 사람은 사랑과 미움을 분명히 할 줄 아는 사람이야. 공을 다투지도, 타협하지도 않아. 이런 여자는 세상에 드물지. 이런 사람을 숨기는 건 진주를 먼지 속에 묻어두는 거랑 같아.]육하경의 말에 성대호는 놀라서 숨을 들이쉬며 말했다.“대체 어떤 여자길래 그동안 늘 신중하던 네가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거냐? 꼭 확인해봐야겠어. 좋은 건 다 조용히 가져가겠다는 거야?”[난 못 믿어. 직접 봐야 네 말이 맞는지 확인할 수 있지.][얼굴 안 붉어지게 조심해.]배건후는 연회장을 둘러보며 도아린을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성대호도 그의 시선을 따라가며 말했다.“설마 배지유도 데리고 왔냐? 너 하경이랑 지유가 함께 하는 거 반대하지 않았어?”“지유는 도아린과 함께 왔어.”성대호는 말문이 막혔다.‘손보미랑 겨우 끝내놓고 아린 씨랑 연회에 참석하다니... 대체 이 남자 머릿속엔 뭐가 들어있는 거야?’배건후가 다시 한번 연회장을 확인했지만 도아린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하여 바로 도아린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전화는 꺼져 있었다.표정이 차갑게 굳어지더니 배건후는 조수현에게 전화를 걸었다.“도아린도 연회에 왔어?”“사모님은 아가씨와 함께 들어가셨습니다.”조수현이 대답했다.“저는 밖에 있었지만 사모님이 나가시는 걸 보지
배건후는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말도 안 돼.”“뭐가 말도 안 돼요!”배지유의 눈가가 붉어졌다.“오자마자 새언니가 어딨냐만 물어보고... 오빤 왜 나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안 해요?”“또 무슨 사고 쳤냐고 물어볼까, 그럼?”“오빠 눈엔 내가 항상 사고만 치는 애로 보여요?”배지유는 발을 동동 구르며 화를 냈다.“아까 난 휴게실에서 사람도 구했다고요!”그러자 배건후는 피식 콧방귀를 뀌었다.“네가 사람을 구했다고?”“그래요! 됐어요! 난 못해요! 난 새언니 화나게 할 줄만 알지 아무것도 할 줄 몰라요. 됐어요?”배건후는 배지유의 눈을 몇 분 동안 응시하더니 몸을 돌려 걸어갔다.그가 떠나자마자 배지유는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이번엔 운이 좋았다.도아린에게 문을 열어주러 갔을 때 안에 기력이 약해 보이는 여자가 있었다.원래는 신경 쓰고 싶지 않았지만 그 여자가 계속해서 감사 인사를 하길래 어쩔 수 없이 좋은 일을 하는 척 받아들였다.덕분에 배지유는 다행히 배건후의 의심을 받지 않을 수 있었다.그때 재벌가 여성들이 다시 다가왔다.“대표님이 칭찬해 주셨죠? 이제 갓 졸업했는데 모건 그룹의 이미지를 이렇게 긍정적으로 만들어 주셨잖아요.”“어디서 들었는데 진 대표님께서 연성에서 프로젝트를 준비한대요. 모건 그룹이랑 협력하게 될 거라고 하더라고요.”이 말에 배지유는 마음이 동했다.“진 대표님께서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에요?”“그럼요. 해남의 스카이 빌딩도 진 대표님을 끌어들이려 했대요. 진 대표님께서 연성에 온 건 협력자를 찾으려는 게 틀림없어요.”“지유 씨가 진 대표님의 아내분을 구했으니 무슨 요구를 해도 지나치지 않을걸요?!”“맞아요. 게다가 하임리히법까지 할 줄 알았다니! 진짜 대단해요.”배지유는 속으로 흐뭇해졌다.‘만약 진 대표님과 협력할 수 있다면 내가 서류를 유출한 일도 오빠에게 말할 수 있을 거야. 공이 있으니 오빠가 크게 나무라지 않겠지.’“먼저 이야기 나누세요. 저 전화 한 통만 걸고 올게요.”배지유는 고개를
여자는 반응할 새도 없이 머리카락이 잡혔다.그 힘이 너무 세서 두피가 벗겨질 뻔했다.“너 한 번 더 하경 오빠 귀찮게 하면 내가 제대로 혼내줄 테니까 두고 봐!”“배지유 씨?”배지유의 눈은 질투로 붉게 물들어 더 이상 적과 아군을 구분할 수 없었다. 그녀는 여자의 얼굴을 향해 또다시 손을 휘둘렀다.“내가 누군지 알긴 알아?!”“지유 씨, 저예요!”여자는 배지유의 손을 붙잡고 얼굴을 들어 보였다.“아까 지유 씨 대신 도아린을 혼내준...”“닥쳐!”배지유는 그녀를 알아보았다.얼굴이 좀 부어 있었지만 여전히 아첨하는 표정이었다.하지만 그녀가 자신을 백 번을 도와준다 해도 육하경을 탐내는 것은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다.“네가 무슨 일을 했든지 상관없어. 너가 은하계를 구했더라도 하경 오빠를 귀찮게 할 수는 없어. 하경 오빠는 내 거니까!”“배지유.”육하경은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그만해.”“난 장난이 아니에요!”창백했던 얼굴이 다시 붉어지며 배지유는 화를 냈다.“하경 오빠, 내가 겨우 우리 오빠한테 부탁해서 여기 온 건데 어떻게 다른 여자랑 춤을 출 수가 있어요?”육하경은 한숨을 쉬며 설명했다.“이분이 나한테 옷을 준 건 아까 실수로 나한테 과일 주스를 쏟아서 그런 거야. 오해하지 마.”육하경의 말에 여자는 속으로 생각했다.‘지금 나 변호해주는 거야? 아니, 이건 불에 기름을 붓는 꼴이잖아!’배지유의 눈은 금세 커졌다.“이런 교활한 수작을 부릴 줄이야!”곧 배지유는 여자의 머리카락을 잡아 테이블에 박으며 외쳤다.“네가 감히 발칙하게 굴어? 제대로 혼내줄게!”“아!”테이블 위에 있던 술병이 땅에 떨어져 깨지며 요란한 소리가 났고 연회장은 엉망진창이 되었다.주변의 손님들은 하나둘씩 자리를 피했고 어떤 이들은 경멸하는 표정을 지으며 어떤 이들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채 혼란스러워했다.“배지유!”성대호가 다급히 달려와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어서 그만둬!”그는 배지유에게 눈짓을 보내며 진정하라고 했다. 그러나 배지유
“안 돼!”배지유는 미친 듯이 달려와 육하경의 명함을 빼앗아 두 동강 내며 외쳤다.“어떻게 저 여자한테 개인 번호를 줄 수 있어요?!”결국 배건후는 배지유의 손목을 붙잡고 강제로 연회장 밖으로 끌고 나갔다.“책임자.”책임자를 부르는 육하경의 눈빛에는 평소의 부드러움이 사라진 상태였다.“이분을 병원에 모셔다드리세요. 치료비는 제가 부담하겠습니다.”“육 팀장님...”“이쪽으로 가시죠...”그렇게 연회 책임자는 여자를 데리고 뒷문으로 나갔다.성대호는 육하경에게 뭔가 말하려다 배지유가 또 혼날까 봐 입을 다물고 뒤따라 나갔다.“건후야, 너 지유 너무 겁주는 거 아니야?”성대호는 배지유를 뒤로 숨기며 말했다.“지유가 잘못한 건 맞지만 제대로 타이르고 말해줘야지.”그는 한숨을 쉬며 배지유를 보고 답답한 듯 말했다.“아무리 화가 나도 사람을 때리면 안 돼. 그 사람도 연회장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이면 분명 신분이 보통이 아닐 텐데 네가 공개적으로 창피를 주면 건후가 회사 관리하기 어렵잖아.”“...”하지만 배지유는 억울한 듯 여전히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그 여자가 먼저 하경 오빠를 꼬셨잖아...”“하경이는 뛰어나니까 세인트존스 호텔 총괄 팀장 자리에 오른 거야. 정말 하경이랑 함께하고 싶은 거라면 하경이의 좋은 조력자가 되어야지 발목을 잡는 사람이 되면 안 돼.”배지유는 만약 배건후가 성대호처럼 자신에게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더라면 자기 말을 들었을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배건후는 조금 전 너무 무섭게 혼내며 소리쳤다. 그래서 배지유는 더욱 반항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 것이다.배지유는 배건후와 대화를 시도하려 했지만 그 주위에 감도는 차가운 기운이 가까이 다가가기를 망설이게 했다.그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배건후가 자신에게 이렇게 화가 난 이유가 너무 큰 실수를 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도아린을 배건후에게 넘기지 않아서 화풀이를 하는 건지 말이다.그때 핸드폰이 울렸고 배지유는 화면을 보고 눈이 번쩍였다.그녀는 웃으며 전화를
“굳이 만나지 않아도 돼요.”도아린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그저 작은 도움을 드린 것뿐이에요.”“생명보다 중요한 건 없죠.”육하경은 부드러운 표정으로 말했다.“그분께도 참 안타까운 사연이 있더라고요.”진 대표의 아내라는 윤명희는 두 아들을 낳고 셋째 아이로 어렵게 딸을 얻었지만 첫돌 잔치에서 딸을 당했다고 한다.그 사건 이후로 윤명희는 우울증에 걸려 정신 상태가 오락가락했다. 진씨 가문은 막대한 돈을 들여 딸을 찾았지만 20년이 넘도록 찾지 못했다.일부는 이미 세상을 떠났다고 했지만 윤명희는 언젠가 딸을 만날 수 있을 거라 믿고 있었다.그래서 그녀는 딸이 좋아했던 사탕을 항상 가지고 다니며 딸을 찾으면 그 사탕을 주고 어릴 적 기억을 떠올리게 해주고 싶어 했다.도아린은 자신의 어머니도 양수 색전증으로 돌아가신 일을 떠올리며 윤명희의 슬픔이 깊이 마음에 와닿는 듯했다.그녀는 가슴이 아파져 윤명희를 위해 무언가를 해주고 싶었다.“알겠어요. 만나러 갈게요.”...“빨리 말해봐. 어떻게 사람을 구한 거야?”차 안의 어색한 분위기를 풀기 위해 조수석에 앉은 성대호가 먼저 배지유에게 말을 걸었다.그러자 배지유는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자랑스럽게 말했다.“그때 좀 다쳐서 휴게실에서 상처를 확인하려고 했는데 소파에 누군가가 있더라고. 그래서 내가 하임리히법으로 그 사람을 구했지.”성대호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어린 나이에 하임리히법도 할 줄 알아? 나도 못 하는데.”“우리 학교에서 가르쳐줬어. 게다가 TV에서도 많이 봤잖아.”배지유는 인터넷에서 배운 방법을 흉내 내며 말했다.“이렇게, 힘을 줘서 확 눌러.”성대호는 뒤를 돌아 배건후를 봤지만 배건후는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아 아무 말도 듣지 않는 듯했다.“아린 씨가 그리 쉽게 사라지겠어? 지유가 사람 목숨을 구했는데 넌 칭찬도 안 해?”성대호가 배건후에게 말했다.하지만 배건후는 아무런 반응도 없이 핸드폰을 꺼내 들고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무슨 소식 있어?”“객실에
진범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배지유를 향해 말했다.“제 아내가 방금 깨어났으니 두 분은 이쪽에서 잠시 쉬세요. 제가 배지유 씨를 데리고 아내에게 가겠습니다.”진범준은 배지유에게 안쪽 방으로 가자는 신호를 보내고 도우미에게 손님들에게 차를 대접하라고 지시했다.배건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성대호는 다소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구해준 사람의 오빠도 병문안 못 하게 하다니... 대체 누굴 경계하는 거야?”그러자 차를 내오던 도우미가 웃으며 설명했다.“저희 대표님께서는 사모님을 매우 아끼십니다. 사모님께서 방금 깨어나셔서 옷차림이나 머리 모양이 정돈되지 않았을까 봐 두 분이 보시고 놀라실까 봐요.”즉, 아내가 집에서의 편안한 모습이 외부 남자들에게 보여지기엔 부적절하다는 의미였다. 이건 확실한 보호욕이자 소유욕이었다.배건후는 성대호를 한 번 쓱 보며 담담하게 말했다.“너 나한테 뭔가 숨기고 있지.”“아니야!”성대호는 심장이 순간적으로 철렁했다.“내내 지유를 감싸고 있었잖아. 또 무슨 사고 친 거 아니야?”성대호는 깨달았다. 배건후는 차 안에서 아무것도 듣지 않은 게 아니라 그들의 대화를 일부러 무시하고 있었던 것이다.“아니야. 배지유는 아린 씨가 연회에 안 간 게 자기 때문이라고 네가 오해할까 봐 걱정한 거야. 사실은...”하지만 배건후가 피식 콧방귀를 뀌었고 성대호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한편 병실 안.윤명희는 멍한 눈으로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언가 중요한 것을 잊어버린 듯한 표정이었다.발소리가 병상 옆에서 멈추자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여보, 배지유 씨가 당신 보러 왔어.”진범준은 부드러운 말투로 윤명희의 침대 머리를 높여주며 그녀의 머리카락을 매만졌다.그들 부부의 다정한 모습을 보며 배지유는 더욱 자부심이 느껴졌다.자신이 우연히 윤명희를 구한 덕분에 배건후의 큰 사업을 성사시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사모님.”배지유는 침대 옆으로 다가가 손을 잡으며 말했다.“배지유라고 불러주세요.”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