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지유는 도아린의 손을 놓았다.잠시 생각하더니 그녀는 과일 바구니에서 큰 사과를 하나 꺼내서 도아린에게 건넸다.“사과 좀 깎아줄래요?”여전히 그녀를 도우미 취급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었다.도아린은 거절하려다가 배지유의 상태가 어젯밤보다 더 안 좋아 보여서 그냥 넘어갔다.그녀는 사과를 깨끗이 씻고 껍질을 깎은 뒤, 잘게 썰어 배지유에게 건넸다.“난 일이 있어서 어머님을 기다리지 않을게요.”“잠깐만요.”배지유는 침대 옆 서랍에서 종이 서류봉투를 꺼내 들었다.“이건 어제 오빠가 여기 두고 간 서류인데 오빠한테 전해줘요.”“시간 없어요.”“그냥 서류 하나 전해주는 거니까 얼마 안 걸려요!”배지유는 당황해하며 말했다.“사무실에 올라가기 싫으면 비서한테 받아가라 하면 되잖아요.”“...”도아린의 눈빛이 점점 어두워졌다.배건후가 집에서 일할 때도 그녀는 그의 서류에 손을 대지 않았다.“내가 전화해서 가져가라고 할게요. 건후 씨도 금방 집에서 나왔을 테니까.”“전화하지 말아요!”배지유는 도아린의 휴대폰을 세게 쳐서 떨어뜨리고는 거의 울먹이며 말했다.“내가 사과도 다 했는데 서류 하나 전해주는 것도 못 해줘요?”배지유가 서류를 급하게 밀어 넣을수록 도아린은 점점 더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지유 씨, 또 무슨 수작 부리려는 거예요?”“수작이라니요.”배지유는 눈물이 글썽해서 말했다.“내가 보미 언니를 더 좋아하는 건 인정해요. 하지만 엄마는 아린 씨만 며느리로 인정한다잖아요. 어젯밤에는 너무 아파서 실수로 보미 언니 앞에서 아린 씨를 망신 줬어요. 그래서 오늘은 아린 씨에게 오빠에게 접근할 기회를 주려고요. 난 진심으로 두 사람을 엮어 주고 싶을 뿐인데 무슨 나쁜 속셈이 있겠어요.”‘지유가 나와 건후를 엮어준다고? 누가 그 말을 믿겠어. 어제 엘리베이터에서 나한테 목을 길게 뽑고 소리쳤으니 어머님이 따끔하게 혼내줬겠지. 아마 서류를 보내라는 것도 어머님이 시켰을 거야.’도아린이 잠시 망설이자 배지유는 서둘러 서류를 건넸다.“
“아주머니가 믿어주시니까 말씀해보세요.”성대호는 도아린을 바라보며 물었다.“이 서류는 대체 어떻게 된 거죠?”도아린은 눈살을 찌푸렸다.“지유 씨가 이 서류는 건후 씨가 여기에 두고 간 거라면서 나보고 대신 회사에 갖다 주라고 했어요.”“그런 거 아니야!”배지유가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아린 씨가 이게 오빠 서류인 걸 알고 일부러 회사에 가져가서 자기 위치를 과시하려고 한 거야!”“...”배지유를 바라보는 도아린의 눈빛에 섬뜩한 기운이 스쳤다.‘아침부터 날 불러서, 결국 나를 함정에 빠뜨리려는 거였구나.’서류를 가져다주며 자기 위치를 과시하려는 건 아내로서 당연한 일인데 그녀는 왜 이렇게 겁을 내는 걸까?배지유는 감히 도아린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시선을 드리우고 떨고 있었다.성대호는 그녀의 이런 모습을 보자 마음이 안쓰러워서 부드럽게 말했다“도아린 씨가 가져다주겠다면 그냥 주면 되지 그걸로 뭐하러 다퉈.”그는 한결 부드러운 목소리로 배지유를 달래며 동시에 손을 뒤로 뻗어 서류를 도아린에게 내밀었다.몇 초 후 성대호는 뒤돌아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서류를 가져다주려고 한 게 아니었어요?”“지유 씨가 자꾸 나한테 보내 달라고 한 거예요. 난 거절했어요.”도아린의 말에 배지유의 얼굴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성대호를 힐끔 쳐다보았다.성대호는 그녀에게 안심하라는 눈빛을 보내며 미소를 지었다.“알았어. 그럼 내가 서류를 갖다 줄게.”그는 말하며 침대 머리맡에 있는 깎아놓은 사과를 배지유에게 건넸다.“과일 좀 먹어, 입술이 다 말랐잖아.”배지유는 그릇을 들고 있었지만, 도저히 먹을 수 없었다.“아린한테 사과하라니까 이렇게 한 거야?”주현정의 목소리는 꾸짖는 듯했지만, 눈빛만은 딸의 상처를 걱정하는 듯 따뜻했다.“스스로 넘어져서 아픈 것이니 쌤통이야.”배지유는 입을 꾹 다물고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도아린은 주현정에게 의자를 끌어다 주며 말했다.“어머니, 전 볼 일이 있어서 먼저 가볼
“좋아요. 내가 CCTV를 확인해볼게요. 누가 가져갔든 간에 난 건후에게는 절대 말하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도아린 씨가 가져갔다면 꼭 지유에게 사과해야 해요!”“내가 가져간 게 아니라면요?”도아린은 성대호를 차가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성대호는 바로 배지유를 보호하며 말했다.“도아린 씨를 억울하게 했다면 내가 지유를 대신해 보상해 드리죠.”그 말을 끝내고 그는 주현정을 바라보았다.“아주머니, 제가 가서 CCTV를 확인해도 괜찮을까요?”주현정은 미간을 찌푸렸다.배건후는 물론이고 그녀도 멋대로 서류를 열어보는 걸 싫어했다. 게다가 원래 서류봉투에 있어야 할 USB가 왜 밖에 나와 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그래.”성대호는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도아린의 옆을 지나칠 때 그는 차가운 목소리를 들었다.“성 팀장님께서 공정하게 처리해 주길 바라요.”성 팀장이라니.지금까지 도아린은 계속 그의 이름을 불렀다.성대호는 심장이 찌릿해지며 병실 문을 나섰다.CCTV는 복도 끝에 있는 방에 모두 집중되어 있었다.그는 곧바로 모니터 화면을 조작했다.성대호의 얼굴은 점점 창백해졌다. 마치 누군가에게 한 대 맞은 듯한 기분이었다.USB는 분명 배지유가 서류봉투에서 꺼낸 것으로 도아린이 주방에서 사과를 깎는 사이에 그녀의 가방에 넣었고 또 가방을 향해 사진을 찍어 누군가에게 보내주고 있었다.배지유는 금이야 옥이야 사랑받으며 자란 아이였고 배건후의 친구들도 그녀를 아주 많이 귀여워했다.성대호는 특히 배지유에게 남다른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자신이 애지중지하던 동생이 이런 일을 저지른 것을 보니 마음은 정말 편치 않았다.그는 2초 동안 가만히 서 있다가 마우스를 잡고 삭제 버튼을 클릭했다.그는 마음속으로 자신에게 말했다.‘보미가 오기만 하면 건후의 태도는 불분명했어. 그리고 지유도 본래 보미를 좋아했으니 아마도 오빠와 새언니의 사이를 이간질하려고 그랬을 거야. 지유는 단순한 장난이었고, 악의는 없었어.도아린은 건후의 아내이고
도아린의 마음에 찌르듯 한 통증이 스쳤다.배씨 가문에서 자신을 진심으로 대해주는 사람은 오직 주현정뿐이었다.그녀 대신 배건후를 욕해주기도 했고 배지유가 함부로 말하면 혼내주기도 했다.하지만 그녀는 잊고 있었다. 주현정은 그들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말이다.작은 일들은 가정의 평화를 위해 자식이 억울해도 참을 수 있었지만, 회사 문서에서 USB를 몰래 꺼내는 건 장난이라고 말하기엔 너무 큰 문제였다. 심하면 기밀을 훔친 혐의가 될 수 있는 일이었다.이런 책임을 주현정은 배지유에게 지게 할 리가 없었다.성대호는 도아린의 눈에 비친 실망을 보고 주먹을 꽉 쥐었다.그는 도아린에게 사과를 시킬 생각은 없었다. 단지 배지유가 창피를 당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을 뿐이었다.“아주머니, 지유가 사과하지 않아도 된다잖아요.”“옳은 것은 옳은 거고 틀린 것은 틀린 거야.”주현정이 고집을 부렸다.도아린은 주현정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매우 잘 관리되어 있어 50세에 가까운 나이에도 30대처럼 보였고 한때 강인한 사업가로 뼛속 깊이 자부심과 위엄이 있었다.도아린과 눈을 마주치는 주현정의 눈빛은 아주 밝았다.사과의 말을 도아린은 입 밖으로 내기 힘들었고 애초에 사과할 생각도 없었다.“저는 사과하지 않을 겁니다.”도아린은 확고하게 말했다.배지유는 초조하게 성대호의 소매를 잡아당기며 고개를 살짝 저었다. 상황을 어떻게든 해결해 달라는 뜻이었다.성대호는 늘 도아린을 아끼던 주현정이 그녀에게 사과하라고 할 줄은 몰랐다.“아주머니, 가족끼리 잘못을 알면 됐지 않나요?”“내가 뭘 잘못됐는데요?”도아린의 차가운 눈빛이 그에게로 향했다.순간 성대호의 얼굴이 굳었다.그는 입술을 오므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대호야.”주현정이 조용히 말했다.“넌 건후의 절친이자 그가 가장 신뢰하는 사람이야. 그러니 난 네 능력을 믿고 네 사람됨도 믿어. 네가 아린이가 USB를 가져갔다고 했으니 아린의 잘못이 맞는 거겠지.”“아주머니.”성대호는 지금처럼 당황한 적이 없었다.
도아린에게 사과를 시킨 건, 사실 성대호가 죄책감을 느껴 먼저 사실을 고백하도록 유도하기 위해서였다.동시에 그녀에게 준 경고이기도 했다. 잘못한 게 있으면 용감하게 인정해야 한다고 말이다.하지만, 그녀의 잘못은... 인정할 수 없었다.일단 솔직하게 털어놓으면 그녀의 인생은 끝장이었다.“어머님, 전 좀 바빠서 이만 가봐야겠어요.”주현정에 대한 도아린의 감정은 마치 꽁꽁 얼었던 얼음이 따뜻한 물에 녹아들듯 서서히 풀려 차갑던 마음이 사라지고 따뜻함이 스며들었다.“들었지?”주현정이 배지유를 보며 차갑게 말했다.“얼른 사과해. 새언니는 바빠서 너랑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어.”배지유는 고개를 숙인 채 거의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말했다.“미안해요.”“안 들려.”배지유의 눈물이 이불 위로 떨어지며 번졌다.“미안해요!”주현정은 도아린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만족했는지 묻고 있는 것이었다.주현정은 그녀의 체면을 지켜주려 했고 동시에 배지유의 명예도 지키려 했다. 그녀가 눈치가 있다면 이쯤에서 그만두는 게 맞았다. 배지유가 크게 잘못한 게 아니니 이번 한 번은 넘어가 주라는 뜻이었다.도아린이 고개를 끄덕이자 주현정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가서 일 봐.”도아린이 막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 성대호가 그녀를 쫓아왔다.“도아린 씨!”그는 차 문을 막으며 말했다. “도아린 씨의 아버지가 엠파이어의 점포를 가진다면 인테리어부터 운영까지 전부 저한테 맡기세요. 제가 사업을 번창하게 해드릴게요.”“뭘 하려는 거죠?”도아린은 차가운 시선으로 그를 쳐다보았다.“보상이라고 생각하세요.”“받을 생각 없어요.”성대호는 그녀가 이렇게 빠르게 거절할 줄은 몰랐다.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큰일이 아니었다.오히려 도아린이 그의 사과를 받아주지 않는 게 죄책감이 더 컸다.“지유는 어릴 때부터 장난꾸러기였고 당신에게 악의는 없었어요.”성대호는 변명하려 했다.“지유는 금방 졸업했는데 어머니를 실망시킨다면 모건에서 일하기 어려워질 거예요. 하지만 도아린
“사실 난... 보미 언니를 도와주고 싶었어.”배지유는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아린이가 밀어놓는 바람에 보미 언니가 발목을 접질렸잖아.”성대호는 한숨을 쉬었다.그도 그날 그 자리에 있었다.도아린의 성격상, 만약 정말로 사람을 밀었다면 분명히 인정했을 것이다.“이미 지난 일이니 나도 아린과 더 이상 싸우고 싶지 않았어. 그런데 그녀가 또 보미 언니가 드레스를 수선하는 걸 방해하잖아. 그래서 너무 화가 났던 거야!”“무슨 드레스?”배지유는 바다 진주 사건을 설명했다.성대호는 그녀의 얼굴을 따뜻한 수건으로 닦아주며 말했다.“그만 울어, 눈 부으면 안 예쁘잖아. 진주 문제는 내가 해결해줄게.”“정말?”“내가 언제 너를 속인 적 있어?”배지유는 감격하며 그의 손을 잡았다.“우리 오빠 말고 나한테 잘해주는 사람은 대호 오빠뿐이야.”성대호는 재빨리 손을 뺐다.“푹 쉬어, 난 이만 갈게.”배지유는 그가 황급히 떠나는 모습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하지만 그 미소는 3초도 가지 않았다.그녀가 도아린과 가방의 사진을 상대에게 보냈으니 이쯤이면 그들도 물건을 빼앗으러 갔을 것이다.다만 이번 실수로 상대방이 화내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래도 서류 몇 장은 찍어서 보냈으니까......소유정이 사는 아파트 단지에는 오늘 결혼식이 있었다.그래서 주차공간이 부족해 도아린은 차를 아파트 밖에 세웠다.그녀가 전화를 걸려고 휴대폰을 꺼내려는 순간, 갑자기 누군가 강하게 가방을 낚아챘다.검은색 오토바이가 그녀 앞을 휙 지나갔고 뒤에 앉은 남자는 그녀의 가방을 빼앗아 품에 안고 있었다.“거기 서!”도아린은 소리치며 그들을 쫓았다.한창 결혼식 차량이 단지에서 연이어 나오고 구경하는 사람들도 많아 오토바이는 속도를 제대로 내지 못했다.“그 여자가 거의 쫓아와!”“빌어먹을!”운전하던 남자는 욕을 내뱉으며 무작정 앞으로 달렸다.도아린은 거의 다 따라잡았지만, 뒤에 있던 남자가 가방으로 그녀의 손을 내리쳤다.곧 오토바이는 골목길로 빠르게 사라졌다
오토바이 도둑은 결국 육하경에 의해 경찰서로 넘겨졌다. 육하경은 경찰서에서 나오면서 뭔가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전과자래요. 적어도 반년은 안에 있어야 할 거예요.”그러고는 잠시 생각하다가 덧붙였다.“이번엔 진짜 도둑이 맞아요. 오해한 거 아니고요.”도아린은 그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그러네요. 이번엔 오해가 아니네요.”그녀는 육하경이 생긴 건 점잖아도 주먹이 이렇게 셀 줄은 몰랐고, 특히 안 보이는 곳만 골라서 세게 때릴 줄은 몰랐다.육하경도 그녀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내가 우연히 지나가다가 본 거라면 믿겠어요?”도아린이 어디 사는지 알고 나서부터 육하경은 계속 우연한 만남을 만들고 싶어 했다. 오늘은 아파트에 결혼식이 있어서 출입 금지가 해제되자 그는 들어가 보려고 했다.그런데 뜻밖에도 도아린이 오토바이를 쫓으면서 그에게 영웅이 되는 기회를 주었던 것이다.도아린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물론 믿죠.”몇 번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육하경은 다시 한번 그녀를 도와주었다. 그래서 그가 커피 한잔하자고 제안했을 때, 도아린은 흔쾌히 응했다.카페 안에는 고객들이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잡지가 놓여 있었고 도아린은 무심코 보석 잡지를 집어 들었다.육하경이 전화를 받고 돌아왔을 때 그의 시선은 잡지 속 화려한 진주 사진에 머물렀다.“인어의 눈물.”“보석에 대해 잘 알아요?”도아린이 고개를 들며 물었다.육하경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친구한테서 들었어요. 이 진주는 저주받았다고 하더라고요. 소유자가 이유 없이 우울해지거나 자살 충동을 느낀다던데.”도아린은 무표정하게 잡지를 덮었다.어떤 사람들은 돈과 이익에 눈이 멀어 양심을 저버렸지만 아무도 그들의 어두운 면을 폭로하지 않으면 그들은 모든 게 잘 해결된 것처럼 착각한다.이른바 저주란, 그들이 저지른 악행을 직시하게 만드는 것뿐이다.“사실 저주보다는 난 축복이 더 믿음이 가요.”육하경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난 예전에 전남에서 한동안 살았는데 그곳에는 축복의
“지금 날 의심하는 거야?”성대호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배건후의 날카로운 시선을 견디며 그는 애써 침착하려고 했다.“내 비서가...”그는 문득 배지유가 떠올랐다.이 서류는 배지유가 하룻밤 가지고 있었다.아니, 그럴 리 없다!배지유가 USB로 도아린에게 누명을 씌운 건 단순한 장난이었을 뿐, 그녀는 서류의 내용을 외부인에게 누설할 리가 없었다.그녀가 아무리 어리석어도 외부인과 손잡고 모건 그룹의 이익을 해칠 리는 없을 것이다.성대호는 배지유를 믿었지만, 그의 눈꺼풀은 불운이 닥칠 거라는 경고를 보냈다.“확실하게 조사해볼게.”배건후의 눈빛은 깊고 차가워서 그의 속마음을 읽어내기가 어려웠다.그는 서랍에서 봉투 하나를 꺼내 성대호에게 건넸다.성대호가 열어보니 엠파이어 빌딩 내의 좋은 위치에 있는 점포 서류였다.“그깟 디저트 가게를...”남자의 차가운 눈빛에 성대호는 말을 삼켰다.비록 둘은 절친한 사이였지만 최근 몇 년 동안 모건 그룹은 너무나 빠르게 성장했다.배건후는 마치 신의 축복을 받은 것처럼 무슨 사업을 하든 순조로웠고 불과 3년 만에 다른 재벌들과 큰 격차를 벌렸다.배건후와 사석에선 농담을 주고받았지만 일할 때만큼은 너무 엄격해서 성대호는 그를 두려워했다.“나한테 맡겨.”도아린이 사과를 받아들이든 말든, 그는 약속을 이행해야 했다.“아린이 명의로 이전해.”배건후가 담담하게 말했다.성대호는 그 말이 잘 이해되지 않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가 나간 뒤, 배건후는 서류를 우정윤에게 건네며 위약 사항을 확인하라고 지시했다.우정윤이 배건후의 비서임을 알고 상대방은 그나마 솔직하게 그들이 해남의 스카이 빌딩으로 옮길 예정이라고 밝혔다.스카이 빌딩은 임대료가 저렴할 뿐 아니라 한 가지 더 매력적인 점이 있었다.“그들이 말하길 라윤주의 작업실이 스카이 빌딩에 자리 잡을 거래요.”우정윤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라윤주는 디자인 업계에서 행운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인물이죠. 듣는 소문에 의하면 그녀의 작품을 소유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