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결과 수천 개의 기사가 검색되었다. 제일 위에 뜬 건 며칠 전 온천 호텔에 있었던 유강후 관련 기사였다. 사진 속의 유강후는 차분한 느낌의 정장 차림이었는데 많은 사람들 속에서도 단연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다음으로 시선이 가는 곳엔 여자가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임청하다. 포니테일을 한 임청하는 유강후의 정장과 같은 톤의 옷을 입고 그와 멀지 않은 곳에 서 있었다. 활기찬 그녀의 모습에 유강후의 분위기까지 더해지자 왠지 두 사람이 잘 어울릴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은 온다연은 조금 남아있던 잠까지 모두 사라졌다. 그녀는 입술을 깨문 채 아래에 뜬 다른 기사들을 클릭했다. 모두 며칠 전 온천호텔에서 찍힌 사진들인데 정말 신기하게도 모든 사진에 임청하가 담겨있었다. 두 사람이 서로 가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서로 대화를 주고받는 것도 아니었지만 임청하의 시선이 유강후에게 고정되어 있음을 본능적으로 캐치했다. 온다연은 임청하가 유강후를 좋아하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유강후가 워낙 사람의 눈길을 끄는 존재라 그를 좋아하는 여자가 생기는 건 이상할 게 없지만, 그 여자가 임청하라는 게 이상하게 기분이 나빴다. 어쩌면 온다연은 첫인상부터 임청하가 마음에 들지 않았을 수도 있다. 다른 기사 몇 개를 더 훑어봤지만 보면 볼수록 마음이 심란해져 점점 잠을 이룰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뾰로통해서 핸드폰을 한쪽에 내팽개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섰다. 원래는 우유 한잔을 마시고 다시 방으로 돌아갈 계획이었는데 문이 반쯤 열린 서재에서 새여 나오는 불빛이 온다연의 걸음을 멈추었다. 그녀는 우유를 손에 들고 2분 동안 망설이다가 안으로 들어갔다. 그 시각 유강후는 바쁜지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서류를 살펴보고 있었다. 옅은 회색의 잠옷을 입고 있으니 정장을 입었을 때의 강렬하고 우아한 분위기는 없지만 눈부신 미모는 평소와 똑같았다. 머리도 잔뜩 헝클어져 있었는데 몇 가닥이 이마 앞으로 늘어져 있어서 그런지 평소보다 훨씬 젊어 보
“가지 마...” 온다연이 중얼거렸다. 그녀는 유강후의 손을 꽉 잡은 채 얼굴을 기대며 혼잣말을 했다. “가지 마...” 유강후는 가슴이 미어졌다. ‘또 그 사람 꿈을 꾸는 건가?’ “아저씨...” 들릴 듯 말듯한 온다연의 그 목소리에 유강후는 기분이 심란해졌다. ‘무슨 꿈을 꾸는 거지? 나랑 같이 있는 꿈을 꿨나?’ 그는 고개를 숙여 온다연의 이마에 가볍게 입맞춤하며 말했다. “얼른 얘기해 봐. 나 좋아하지?” 온다연은 표정을 살짝 찡그리더니 몸을 뒤척이며 중얼거렸다. “아기...” 그 말은 유강후의 가슴을 심하게 후려쳤고 눈빛마저 유난히 어둡게 변했다. 그들의 아이가 없어졌다는 걸 온다연이 알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감히 상상할 엄두도 나지 않았다. 유강후의 손은 온다연의 부드러운 얼굴에 닿았고,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선을 따라 가볍게 미끄러졌다. 만약 지금 이 순간 온다연이 눈을 뜬다면 평소 강인하기만 하던 유강후가 조금 무너진 모습을 보게 된다. 심지어 그의 눈빛에는 형용할 수 없는 착잡함이 담겨있다. 숨김없는 미련과 깊은 슬픔에 더불어 공허함과 쓸쓸함마저 곁들어 있다. “다연아, 우리의 아기는 더 이상 여기에 없어...” 그의 목소리는 너무 낮아서 거의 들리지 않았다. “나도 너무 괴로워...” 극도로 절제된 목소리는 마치 누군가가 그를 수천 킬로그램의 돌로 짓누르는 것처럼 무거웠다. 희미한 불빛이 그의 옆모습을 비추자 오늘따라 유난히 연약해 보이는 그림자가 드리웠다. 모두가 의지하는 강한 남자의 아이콘이 지금은 극심한 고통에 빠져 절망 속에서 그를 구원해 줄 누군가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유강후는 그녀의 옆에 누웠다. 온다연은 잠결에 느껴진 익숙한 온도와 숨결에 저도 모르게 다가가 그의 품에서 몸을 웅크렸다. 그 후 작은 손을 유강후의 허리에 걸치고 가녀린 다리로 그를 감쌌다. 유강후는 고개를 숙여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선 손을 뻗어 그녀를 껴안았다. 이 순간만큼은 고통에서
유강후는 단번에 강해숙의 의도를 알아챘고 곧장 임청하를 미국 지사로 옮겼다. ‘질투할 줄은 몰랐네? 이럴 줄 알았으면 안 보내고 여기에 남겨두는 건데. 그럼 매일 질투할 거잖아.’ 이때 온다연이 그의 품에서 움직이며 중얼거렸다. “아저씨...” 온다연이 깨어난 줄 알고 막 입을 열려던 찰나 또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프니까 살살해요...” 유강후는 눈빛이 의미심장하게 변했다. ‘무슨 꿈을 꾸는 거지? 설마 키스하는 꿈을 꿨나?’ 꿈을 현실로 만들고 싶었던 유강후는 고개를 숙이더니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에 입을 맞췄다. 온다연은 깊이 잠들었다. 꿈속에서 유강후와 키스하고 있었는데 도망가지 못하게 손으로 꽉 누르고 있었고 어찌나 힘이 센지 숨이 안 쉬어질 정도였다. 다음날, 날이 채 밝기도 전에 유강후가 집을 나섰다. 그는 평소와 달리 숙연한 모습이었다. 검은 셔츠의 단추는 끝까지 채웠고 손목에는 검은 구슬로 이루어진 팔찌를 찼다. 차는 이미 밖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이권은 손에 작은 상자를 든 채 유강후를 기다리고 있었다. 차에 탄 유강후는 그 상자를 손에 넣고 고통스러운 눈빛으로 말없이 바라봤다. 차는 교외를 향해 속도를 냈다. 차 안의 분위기는 매우 무거웠고 누구도 감히 말을 하지 못했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목적지에 도착하자 이권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법사님께서 아이를 좋은 곳으로 인도하실 겁니다. 이제 도련님이 움직일 때가 왔습니다.” 유강후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는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가장 귀중한 보물을 만지듯 작은 상자를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이권은 다시 속삭였다.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이런 시련을 겪는 것도 어쩌면 하늘의 뜻일 겁니다. 다연 씨가 몸이 좋아지면 아이는 반드시 다시 찾아올 겁니다.” 유강후는 어두운 표정으로 차갑게 말했다. “당시 수술에 참여했던 모든 사람을 교체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무조건 경원에서 떠나게 만들어. 그전에 계약서 체결하고 조금이라도 소문을
바람이 불자 주위의 편백나무 잎사귀가 그의 슬픔에 화답하는 듯 바스락 소리를 냈고 애절하고 쓸쓸한 분위기는 극에 달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유강후는 고개를 숙이더니 상자에 가볍게 입맞춤하고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가야, 넌 영원히 엄마 아빠의 아이야. 영원히.” 그 후 미리 준비한 자신과 온다연의 머리카락을 엮어 안에 넣고선 상자를 닫았다. 이때 비서가 묘비 위쪽의 작은 구멍을 바라보며 말했다. “대표님, 이제 보내줄 때가 됐습니다.” 유강후는 앞으로 나서서 상자를 넣었다. 그는 상자가 천천히 가라앉고 작은 구멍이 서서히 닫히는걸 두 눈으로 지켜봤다. 유강후는 넋을 잃고 그 자리에 오랫동안 서 있었다. 정오가 되어서야 차는 정원을 빠져나와 눈에 띄지 않은 작은 사찰로 향했다. 이때 장화연이 전화를 걸었다. “다연 씨 깨어났습니다. 도련님께서 어디로 가셨는지 여쭤보시는데...” 줄곧 찌푸리고 있던 미간이 그제야 풀리기 시작했다. “회사라고 얘기해 줘. 오후에 들어갈 거야.” “방금 일어났어? 또 아무것도 안 먹었겠네?” “조금 드셨습니다.” “뭐 먹었어?” “계란찜이랑 제비집 몇 입 드시고선 화방에 그림 그리러 가셨습니다.” “또 신발 안 신고 돌아다닐 수 있으니까 옆에서 잘 지켜봐. 찬 음식은 절대로 주지 말고.” “알겠습니다. 도련님.” 통화를 마친 유강후는 다시 싸늘한 표정으로 돌변해 이권을 바라봤다. “뭘 봐? 한동안 가만히 있으니까 맞고 싶어서 몸이 근질거리나 봐?” 이권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아닙니다. 전 단지 도련님이 다연 씨를 무척이나 아끼시는 것 같아서...” 유강후는 차갑게 코웃음 쳤다. “당연히 아껴야지.” 이권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속으로 푸념을 늘어놓았다. ‘아끼는 것도 정도가 있어야지. 밥은 그렇다 치고, 신발 신는 것까지 신경 쓰는 건 참...’곧 차는 고풍스러운 사찰 앞에 멈춰 섰다. 이권은 유강후의 뒤를 따르며 나지막하게 속사였다. “법사님께서 내일 바로 돌
팔을 뻗어 그림을 만져보니 손에 물감이 묻었다. 유강후는 그림을 떼어내 장화연에게 주었다. “액자에 넣어서 사무실에 걸어줘.” 장화연은 그림을 들고나갔다. 소파로 걸어간 유강후는 온다연의 얼굴을 가리고 있는 머리카락을 정리했다. 그의 차디찬 손끝이 부드러운 볼에 닿자 온다연은 얼굴을 찡그리며 눈을 떴다. 졸음이 가득한 눈빛은 매우 흐릿해 보였고 목소리마저 가냘팠다. “아저씨...” 유강후는 허리를 굽히고 두 손을 그녀의 몸 양쪽에 뻗은 채 나지막하게 물었다. “하루종일 잤어?” 온다연은 그의 손에 얼굴을 비볐다. “계속 졸려요...” “어젯밤에 너무 늦게 자서 그런가 봐요. 잠이 안 왔어요...” 유강후는 잠꼬대를 하는 온다연을 의미심장하게 바라봤다. “혼자 자면 더 잘 잔다며? 잠이 안 왔어?” 정말 이상하게 자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다가도 옆에 유강후가 있으면 마치 잠꾸러기로 빙의되듯 바로 졸음이 밀려왔다. 그 질문에 정확한 답을 할 수 없었던 온다연은 그저 말없이 유강후를 바라봤다. 그녀의 검은 눈동자에 유강후의 그림자가 고스란히 비쳤고 마치 사랑하는 사람을 애틋하게 바라보고 있는 듯했다. 온다연의 입술은 유난히 촉촉했는데 부드럽고 키스하기 좋아 보였다. 유강후는 눈을 감으며 고개를 숙여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격렬하면서도 유연한 움직임에 온다연은 심장이 두근거렸다. 가느다란 목소리는 저도 모르게 신음이 나왔고 팔로 유강후의 목을 꽉 감싸 안은채 결코 놓지 않았다. 이성을 통제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자 그녀의 부드러운 몸은 계속하여 유강후에게 달라붙었고 목소리에서는 애틋함이 느껴졌다. “아저씨...” “느낌이 이상해요...” 유강후도 거의 통제력을 잃을 위기에 처해 있었다. 그저 가볍게 키스하고 싶었을 뿐인데 온다연은 사람이 바뀐 것처럼 그의 입술을 물어뜯거나 깨물면서 손으로 몸 곳곳을 쓰다듬었다. 그녀의 손길이 몸에 닿으니 유강후도 흥분되기는 마찬가지다. 몸이 아직 회복되지 않아서 망정이지 그렇지
이때 온다연의 다른 손도 그의 허리에 닿았다. “아저씨...” 작고 부드러운 목소리에는 애교와 간절함이 묻어나 뭔가를 원하는듯했다. 유강후는 그녀를 쳐다볼 용기조차 나지 않았고 목이 점점 메어왔다. “ 잠깐 나갔다가 올게...” 유강후는 더 이상 여기에 머물 수가 없어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냉장고를 열어 얼음물 두 병을 연거푸 마시고 나서야 마음속의 욕구를 가까스로 누그러뜨렸다. 온다연이 마음먹고 달려드는 순간 유강후는 꼼짝없이 넘어가게 되어있다. 노골적인 행동이 아니더라도 지금처럼 조금만 반응을 보이면 유강후는 통제력을 잃기 십상이다. 유강후는 온다연이 야릿한 옷을 입고 그에게 애교를 부리며 원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다시 욕구가 밀려오는지 한겨울에 욕실로 들어가 찬물에 샤워를 하고 나왔다. 그는 온다연은 안고 서재로 데려갔다. 그 후 작은 상자에서 정교한 팔찌 두 개를 꺼냈다. 팔찌는 세심하게 연마된 흑요석 구슬로 만들어졌으며 그 위에는 난해한 문자가 가득 새어져 있었고 가운데는 투명한 물방울 모양의 호박석이 있었다. 호박석의 중앙에는 머리카락 같은 것이 보였다. 온다연은 호박석을 만지며 호기심 어린 질문을 던졌다. “안에 있는 건 뭐예요? 벌레?” 유강후의 눈에 고통이 번쩍였다. 그는 팔찌를 온다연에게 채워주며 부드럽게 말했다. “일종의 식물인데... 똑같은 게 나타날 확률은 아주 드물거든? 우연히 발견했는데 마침 법사님도 경원에 계셔서 특별히 부탁했지. 안전과 건강을 빌어주는 작용을 한달까?” 온다연은 다른 팔찌도 살펴보았다. 유강후의 팔찌는 구슬이 조금 클 뿐 가운데 호박석과 머리카락처럼 보이는 것도 똑같이 들어있었다. 아마 커플용인듯싶다. 유강후에게 커플템을 선물 받는 게 처음이었던 온다연은 기분이 좋은지 웃음을 머금고 재빨리 팔찌를 그에게 채워줬다. 그러고선 애정 어린 눈빛으로 호박석을 어루만지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호박석이 둘도 없는 존재라고
온다연은 봉현수 옆에 서 있는 사람을 보고 얼굴이 더 빨개졌다. “손님 계시잖아요. 얼른 놓아줘요.” 유강후는 그제야 봉현수 옆에 있는 지예솔을 발견하고선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 “6개월 만에 찾은 건가요? 생각보다 능력이 별로네요.” 봉현수의 잘생긴 얼굴은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형수랑 아이 보려고 선물까지 챙겨 왔는데 너무 푸대접하는 거 아니에요? 그리고 절 평가할 짬이 아닌 것 같은데...” 형수라는 호칭에 온다연은 귀까지 빨개졌다. 그녀는 유강후의 손을 놓으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손님 오셨으니까 나가서 차 준비해 올게요.” “예솔 씨랑 잠깐 얘기 나누고 있어. 난 봉 대표랑 상의할 일이 있어서.” 거실. 온다연은 지예솔을 바라봤다. 단정한 앞머리와 긴 생머리에 아름다운 외모가 더해지니 인형이 따로 없다. 온다연은 지금껏 만나봤던 사람들 중에 단언컨대 지예솔이 가장 예쁘다고 생각했다. 다만 지난번보다 훨씬 야위었고 피부는 오랫동안 햇빛을 보지 못한 듯 창백하고 병적인 모습이었다. 온다연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떻게 발견된 거예요?” 지예솔은 소파에 앉아 갓 내린 차 한 모금을 마시며 지친 목소리로 답했다. “엄마 기일이었어요. 직접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사람을 구했거든요? 어떻게 알았는지 그곳까지 찾아갔더라고요. 전화번호 내려놓으라고 그 사람한테 협박을 한 모양이에요. 그러다가 절 찾게 된 거죠.” 말하는 동안 그녀의 야윈 손목이 드러났는데, 거기에는 선명한 흉터와 핏자국이 남아있었다. 온다연은 깜짝 놀라 그녀의 손을 잡고 옷소매를 걷어올렸다. 팔 전체가 상처로 뒤덮인 충격적인 모습에 온다연은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의 동정 어린 눈빛을 본 지예솔은 불편함을 느끼며 재빨리 팔을 거두었다. “예전에 생긴 흉터예요.” 온다연은 착잡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설마 또 감금했어요?” 지예솔은 잠시 침묵하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더 큰 체인으로 바꿨어요... 그래도 다연 씨 덕분에 이렇게 바깥공기를
흑요석 구슬로 만든 팔찌는 정교한 기술과 뛰어난 재질로 만들어졌기에 한눈에 봐도 예사롭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지예솔은 그 팔찌가 얼마 전 경매에서 고가에 낙찰된 것과 매우 흡사하다고 생각했다. 단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인공적으로 합성한 호박석이 추가되어 있다는 것이다. 지예솔은 팔찌를 가리키며 물었다. “유 대표님이 경매에서 팔찌를 낙찰하셨나 봐요? 2개 모두 법사님 손에서 나온 거라 당시 20억 정도의 가격까지 올라서 인상이 깊었거든요.” 온다연은 팔찌가 마음에 드는 듯 시도 때도 없이 호박석을 어루만졌다. “법사님한테 부탁했다고 들었어요. 자세한 건 저도 잘...” “이거 맞아요. 제가 정확하게 기억하거든요. 그런데 여기에 인공적으로 만든 호박석을 왜 추가했는지 모르겠네요. 유 대표님이 이런 스타일을 좋아하나 봐요.” ‘인공적으로 만든 호박석이라고?’ ‘아저씨가 분명히 희귀한 천연 호박석이라고 했는데?’ 온다연이 답하기도 전에 지예솔은 그녀의 손목을 잡고 호박석을 자세히 관찰했다. “합성된 게 맞아요. 그리고 이 안에 들어있는 건 태아의 머리카락인 것 같네요.” “제가 예전에 주얼리 디자인했었는데, 태아의 머리카락을 넣는 손님들이 꽤 있었어요.” 지예솔은 온다연의 손을 놓더니 서운한 기색을 드러냈다. “유 대표님은 아이를 무척이나 아끼시나 봐요. 이렇게까지 신경 쓰는 걸 보면...” 그 후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아랫배를 만지작거리더니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이때 장화연이 디저트를 가지고 다가왔다. 지예솔이 온다연의 팔찌를 유심히 구경하는 모습까지 지켜본 장화연은 조용히 디저트를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예솔 씨, 주얼리에 대해 잘 아시나 봐요?” “네. 예전에 주얼리 디자인을 담당했거든요.” “그러시군요. 방금 만든 디저트인데 한번 맛보세요.” 말을 하던 장화연은 담요 꺼내 온다연에게 덮어주었다. “약 준비됐습니다. 손님이 계시니 저쪽으로 가서 드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 후 온다연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김원도는 목소리를 높이며 말했다.“여기는 경원시야!”유강후는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그게 뭐 어때서? 다시 나를 건드리면, 경원시에서도 너를 죽일 수 있을 거야!”말을 마친 그는 총을 던지고는 돌아서서 차에 올랐다.차가 장원을 떠날 때까지 김원도는 여전히 충격에 휩싸여 있었다.그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송지원은 냉정하게 말했다.“김원도 씨, 내가 당신이라면 당장 경원시를 떠날 겁니다. 여기는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떠나는 유강후의 차를 예리하게 응시하던 김원도의 눈빛은 더욱더 악의에 차올랐다.송지원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로운에게 말했다.“이 사람들 다 처치해, 서둘러!”한 시간 전, 고위층은 긴급회의를 열었다.그들은 미래 그룹이 비상 무기를 사용하고, 저격수들을 동원했다는 소식을 들었다.비록 큰 사건은 아니었지만, 바로 경원시에서 벌어진 일이라 그들은 강경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조사 결과, 상부에서는 엄중히 경고했고 만약 30분 안에 모든 일이 정리되지 않으면 무력 진압이 불가피하다고 했다.그때에는 누구도, 설령 신선이라 해도 유강후를 구할 수 없을 것이다.이 소식을 접해듣고 송지원은 급히 달려왔다.그는 유강후가 경원시에서 무력을 사용할 정도로 미쳤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제시간에 도착했으니 다행이지, 만약 10분만 늦었어도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모른다.헬리콥터들이 점차 멀어져 가자, 송지원은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이제 더 중요한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새벽 2시, 서교 파출소 안에서 유강후는 진술서를 마친 뒤,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이번 일은 너무 큰 소란을 일으켜 상위층에까지 긴급 연락이 갔고, 필요한 절차들을 다 밟아야 했다.하지만 이 일을 벌이기 전, 그는 그 후폭풍도 감당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그의 개인 변호사, 미래 그룹의 수석 법무팀장인 허윤재는 이미 그에게 이번 사태를 모면하기 위해 며칠간 이곳에 머물러야 할 수도 있다고 알려주었다.유강후는 아무 말 없이 휴대폰을
그때, 큰 파도가 몰려오며 유람선이 흔들리더니 갑판 위의 여자와 아이는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김원도는 얼굴이 창백해지며 달려가려 했지만, 누군가가 그를 가로막았다.그의 눈빛은 점점 더 날카로워졌고 그는 냉혹하게 말했다.“유강후, 네 여자가 죽는 게 두렵지 않냐?”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총알이 그의 머리카락을 스치며 지나가더니, 바로 뒤에 있는 기둥에 박혔다.그와 함께 김원도의 머리카락 일부가 잘리며 떨어졌다.하지만 김원도는 그저 미동도 없이, 여유를 부리며 웃었다.그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유강후, 이 정도로 나를 겁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이렇게 한다고 내가 두려워할 것 같아?”그는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이럴수록 네가 도대체 뭘 두려워하는지 알 수 있어. 영상 속의 모자로 나를 협박할 수 있다고 생각해? 어림없는 소리!”“나한테 아들이 하나뿐인 줄 알아? 그 애가 죽을 운명이면, 죽게 두면 되는 거지!”“유강후, 넌 여자 몇 명을 만나고 있어? 그중 가장 마음에 드는 여자가 누구야?”그는 갑자기 고개를 들며, 서늘한 표정으로 유강후를 노려보았다.“맞춰볼까? 가장 사랑하는 여자, 온다연 맞지?”유강후는 아무 말 없이 그를 죽일 듯 노려보며 손을 천천히 들었다. 순간, 검은 총구가 김원도를 겨누었다.김원도는 조롱하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쏴, 내가 겁낼 줄 알아? 이곳은 경원시야. 법도가 있는 곳이지. 네 아버지가 아무리 대단해도 널 지킬 수 없어!”유강후는 눈을 가늘게 뜨며 아무 대답 없이, 손가락을 천천히 방아쇠에 올렸다.김원도의 얼굴이 미세하게 굳어졌고, 그 순간 검은색 한 대가 급히 달려왔다.순간, 송지원이 차에서 뛰어내렸다.그는 달려와서 유강후의 팔을 붙잡았다.“유강후, 너 미쳤어?”유강후는 여전히 김원도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차갑게 말했다.“로운, 네가 이 녀석을 부른 건가?”송지원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그게 무슨 말이야? 네가 백 명이 넘
“로운! 당장 저격수를 배치하고, 김원도의 은신처를 알아내!”로운은 유강후의 손을 잡아 제지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대표님, 아직 때가 아닙니다. 성급하게 움직이면 그동안 쌓아온 계획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자는 이제 막다른 길에 몰렸습니다. 한 달, 길어야 한 달이면 끝장날 겁니다.”유강후의 관자놀이에 핏줄이 불끈 튀어나오며, 차갑게 일갈했다.“닥쳐! 이해 못 했나? 두 번 말하게 하지 마!”로운은 그의 분노에 기세가 눌려 고개를 숙이고, 마지못해 대답했다.“알겠습니다. 바로 실행하겠습니다!”밤 12시, 수십 대의 대형 헬리콥터가 외곽의 한 산속 저택을 향해 돌진했다.개조된 수백 대의 허머 차량은 전투 차량처럼 산길의 아스팔트를 짓밟으며 저택 앞에 도착했다.저택은 희미한 불빛만 비추고 있었고, 헬리콥터들은 저공에서 낮게 맴돌며 마치 죽음의 전조처럼 낮은 굉음을 울렸다.아무도 문을 열러 나오지 않았다.그러나 곧 단단했던 철문은 허머에 의해 산산이 부서졌고, 전투 장비를 갖춘 저격수 수백 명이 중무장을 한 채 저택 안으로 돌진했다.차량과 사람들은 동양국 건축 양식의 저택을 완전히 포위하며 바늘 하나 들어갈 틈도 남기지 않았다.중앙에 멈춘 검은색 차량의 문이 열리고, 유강후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그는 검은 롱코트를 입고 있었는데 어둠 속에서 차량과 한 몸이 된 듯 보였다.산바람이 그의 옷자락을 휘날렸고 저택에서 새어 나오는 희미한 불빛 아래, 그의 눈에 스친 날카로운 살기가 바람에 흩어졌다.입구에 선 집사는 이런 압도적인 기세를 본 적이 없는지 다리가 풀려 주저앉더니 그대로 바닥에 엎드렸다.저택의 정문은 반쯤 열린 상태였지만 내부 상황은 알 수 없었다.유강후가 말문을 열기도 전에 로운이 손짓으로 신호를 보냈다.곧이어 무겁고 둔탁한 소리와 함께 정문이 강제로 부서졌고, 안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 다급히 걸어 나왔고,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잠옷 차림의 김원도였다.그는 유강후를 보자마자 눈을
“위층 화장실이 또 막혔다니! 후속 처리가 너무 엉망 아니야?”“그러니까, 요 며칠 내내 아래층까지 내려가야 하니 정말 불편하네.”...두 사람이 자리를 뜬 후에야 온다연은 천천히 화장실 밖으로 나왔다.유강후가 위층에 있는 걸까?거의 무의식적으로 그녀는 엘리베이터를 탔다.복도 모퉁이에 다다르자, 온다연은 로운이 한 여자를 부축하며 수술실에서 나오는 모습을 보았다.곧바로 유강후가 그 여자의 붕대를 감은 손을 잡고 무언가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거리가 멀어 무슨 말을 하는지는 들리지 않았지만, 그의 얼굴에 스친 걱정과 안타까움은 너무나 선명했다.방금까지 마비된 듯했던 마음이 다시금 고통스럽게 저려왔다. 온다연은 숨을 참으며 허리를 숙여 자신의 배를 눌러야 겨우 서 있을 수 있었다.이번에는 그 여자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이 여자가 바로 진시현인가?’그녀는 깜짝 놀랐다.그 여자는 자신과 많이 닮아 있었다. 그러니 장화연이 ‘대체품' 어쩌고 운운했던 것이다.하지만 실은 자신이 그 대체품이었다. 진시현이야말로 그의 진짜 연인이었다.온다연은 더 이상 보기 힘들어 돌아서며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그녀는 두려웠다. 더 보면 자신이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달려들어 그를 추궁할까 봐. 그렇게 되면 마지막 자존심마저 무너질 테고, 서로 더 이상 돌이킬 수 없게 될 거다.그리고 만약 그가 진시현을 위해 아이마저 외면한다면, 아이의 병은 언제 나을지 기약도 없을 것이다.의사가 아까 말했었다.“폐렴 치료는 짧아야 열흘에서 보름, 길면 한두 달은 걸립니다.”온다연은 속으로 다짐했다.‘참자, 아이가 안전해질 때까지만...’온다연이 돌아서는 순간, 로운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됐습니다. 연기 그만하셔도 됩니다. 저쪽은 철수했습니다.”유강후는 다른 출구 쪽 문을 바라보며 얼음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지시했다.“사람을 붙여. 당분간은 모르는 척해.”로운이 즉시 대답했다.“네, 알겠습니다!”아래층.온다연은 마치 혼이 빠져나간 사람처럼 중환자
온다연은 영상 속 장면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그러다 또 다른 음성 메시지가 도착했다.그제야 정신을 차린 그녀는 무겁게 고개를 들어 옆에 서 있던 장화연을 바라보았다.장화연은 벽에 기대어 있었고,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말없이 서 있었다.온다연은 당장이라도 그녀에게 다가가 추궁하고 싶었다.‘대체 강후 씨를 위해 얼마나 많은 걸 숨겨왔어요?’그렇게 외치고 싶었지만 꾹 참고 말았다.장화연은 유강후의 사람이었다. 그녀가 아무리 소리쳐봤자 장화연은 끝까지 그를 감싸기만 할 것이다.온다연은 알고 있었다.만약 장화연이 정말 자신을 도우려는 마음이 있었다면, 지난 1년이라는 시간은 진실을 털어놓기에 충분했을 것이다.하지만 장화연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그 순간, 마음속에서 ‘신뢰'라는 단어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온다연의 시선이 느껴졌는지 장화연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순간, 창백하게 질린 온다연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장화연이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몸을 움직이려 하자, 온다연이 먼저 일어섰다.“장 집사님, 저 몸이 좀 안 좋아서 화장실에 다녀와야겠어요.”장화연은 그녀가 아이에 대한 걱정으로 힘들어하는 줄 알고 조용히 말했다.“우림 도련님은 괜찮을 겁니다. 열이 떨어지기만 하면 곧 그룹 병원으로 옮길 거예요. 그쪽이 장비도 더 좋고, 의사들도 더 뛰어나니까요.”그럴듯한 위로를 들으며, 온다연은 주먹을 꼭 쥐었다.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복도 끝에 있는 화장실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화장실에 도착한 온다연은 손을 떨며 그 음성 메시지를 재생했다.“이 사람이 제 약혼녀입니다.”“온다연 씨 되시죠? 대표님께서 아주 각별히 아끼신다고 들었습니다...”“아니요, 저는 진시현입니다.”“아, 맞다, 진시현 씨. 제가 착각했네요. 두 분, 안으로 들어가시죠. 불편한 부분이 있으면 말씀만 하세요!”“근데, 유 대표님이 온다연이랑 이미 혼인신고 했다던데? 어떻게 된 거야?”“혼인신고? 진짜인지 누가 알아? 나도 들은 얘긴데,
두 시간이 지났다.아이에게 열이 났다는 걸 유강후도 알고 있었을 텐데, 그는 단 한 통의 전화도 없었다. 심지어 메시지 한 줄조차 없었다.도대체 무슨 일, 무슨 회의가 그렇게 바빠서, 전화 한 통조차 걸 시간이 없는 걸까?그는 항상 말해왔다. 그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은 바로 그녀와 아이라고.하지만 지금 온다연의 머릿속은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아이의 모습과 더불어, 전화 속에서 들었던 그 목소리로 어지러웠다.그녀는 과연 그를 믿어야 할까, 아니면 자신이 들은 것을 믿어야 할까?유강후의 전화를 대신 받을 수 있는 사람은 그의 비서이거나 이권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둘은 모두 남자였다.그녀가 혼란 속에서 깊은 생각에 빠져 있을 때, 휴대전화의 알림음이 울렸다.‘틀림없이 강후 씨가 보낸 메시지일 거야!’그녀는 재빨리 메시지를 확인하며 초조함을 달래려 했다. 그러나 메시지는 낯선 번호에서 온 친구 추가 요청이었다.검은색 프로필 사진에는 두 개의 눈만 드러나 있었다. 그 눈은 마치 어둠 속에서 그녀를 노려보는 악몽 같았다.친구 요청 메시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네가 원하는 답을 가지고 있어.]온다연은 프로필 사진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무심결에 친구 요청을 수락하고 말았다. 그리고 상대방은 기다렸다는 듯, 그녀에게 여러 개의 영상과 사진을 보냈다.온다연은 아무 생각 없이 영상을 하나 눌러봤고, 곧 온몸의 피가 얼어붙는 듯한 충격에 사로잡혔다.영상 속에는 유강후가 어떤 여자와 함께 아이를 데리고 놀고 있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영상은 꽤 먼 거리에서 찍힌 듯했지만, 그가 유강후라는 건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그는 여자를 품에 안고, 그녀의 품에 안긴 작은 아기를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미소 짓고 있었다.그의 얼굴에 스치는 다정함은 그녀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깊은 온기를 담고 있었다. 여자는 고개를 숙이고 있어 얼굴은 정확히 보이지 않았지만, 그 아담하고 온화한 실루엣은 뚜렷했다.흰색 홈웨어를 입고 있었는데, 평소 온다연이 입
“그 빨간 점은 딱 심장을 겨냥한 위치였어요. 만약 그대로 맞았다면 분명 심장에 명중했을 겁니다. 설령 나은별 씨가 총알을 대신 맞았다고 해도, 그분의 키를 고려하면 그 상처는 턱 아래에 있어야 해요. 하지만 지금 그분의 상처는 왼쪽 가슴에서 어깨 쪽으로 치우쳐 있죠.”진시현은 차분한 목소리로 덧붙였다.“제 판단으로는, 암살자가 나은별 씨가 나타난 걸 보고 즉시 무기의 위치를 조정한 겁니다.”그녀는 응급실 쪽을 한 번 바라보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암살범이 왜 나은별 씨를 보고 갑자기 위치를 바꿨을까요? 대표님, 그 이유는 직접 조사해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유강후는 감정이 담기지 않은 얼굴로 수술실을 뚫어지게 응시하며 말없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그때 로운이 다가와 진시현을 안아 들고 수술실로 향했다.진시현은 몸을 살짝 비틀며 저항했다.“팀장님, 괜찮습니다. 제가 걸어갈 수 있어요.”하지만 로운은 무표정하게 단호히 말했다.“움직이지 마.”결국 진시현은 더 이상 저항하지 않고 고개를 숙인 채 그의 품에 안겨 수술실로 들어갔다.그 시각, 대형 주택 내부에서는 온다연이 안절부절못하며 초조해하고 있었다.우림이 고열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오전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아이가 오후 두세 시쯤 갑작스럽게 미열이 났다.처음에는 단순히 소화 문제일 거라 생각하고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주 박사에게 전화를 걸어 상태를 설명하고 소화제를 조금 먹였다.그러나 저녁 여섯 시가 되자 아이의 열이 갑자기 급상승했다.다급히 달려온 주 박사가 진찰한 결과, 폐렴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하지만 주 박사는 서양의학 전문의가 아닌 데다 전문 장비를 가져오지 않았기에 병원으로 즉시 데려가야 한다고 권했다.문제는 밖의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이었다. 집 주변에 수상한 사람들이 출몰해 장화연은 이 주택도 감시당하고 있을 가능성을 의심했다.그래서 병원에서 의사와 장비를 호출하려고 논의했지만, 전문 장비를 가져오는 과정에서 소란이 클 것 같았다.게다가 이 건
말을 마친 유강후는 바닥에 쓰러져 있는 나은별을 안아 들고, 거침없이 밖으로 달려 나갔다.옆에서 소이섭도 서둘러 따라붙었다. 가는 내내 나은별의 피는 멈출 기색이 없었다.소이섭이 간단히 응급 처치를 해보았지만, 효과는 미미했다.의식을 잃은 나은별을 바라보는 그의 얼굴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유강후, 은별 씨는 이런 사람이야. 널 위해서라면 목숨까지 버릴 수 있다고!”그는 차갑게 비꼬듯 말했다.“그 고아 출신 여자애 때문에 네가 은별 씨를 몇 번이나 벼랑 끝으로 몰아넣었지? 앞으로도 계속 몰아세울 거야?”유강후는 이를 악물며 낮게 소리쳤다.“닥쳐. 내가 뭘 하든 네가 훈계할 자격은 없어!”소이섭은 냉소를 지었다.“그래도 말해야겠어. 넌 은별 씨한테 너무나 많은 빚을 졌어. 어떻게 갚을 건데? 돈으로? 네가 가진 돈이 만능이라도 된다고 생각해?”그 순간, 유강후의 전화가 울렸다.화면에 뜬 이름은 온다연이었다.그녀의 목소리는 다급하고 떨려 있었다.“강후 씨, 아이가 열이 펄펄 끓고 있어요. 너무 높아서 당장 병원에 데려가야 할 것 같아요. 지금 어디예요?”유강후가 대답하려는 찰나, 소이섭이 낮게 속삭였다.“설마 은별 씨를 내버려두고, 그 고아 출신 여자애를 찾아가려는 건 아니겠지? 네 아들은 단순히 열이 나는 거고, 은별 씨는 지금 죽어가고 있어!”그다음 순간, 차갑고 무거운 총구가 소이섭의 머리 뒤에 닿았다.유강후는 전화를 손으로 가린 채 낮고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한마디만 더 하면 네 목숨은 끝이다.”소이섭은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결국 입을 다물었다.총구를 치우고 나서 유강후는 차분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다연아, 걱정하지 마. 지금 회사에 급한 일이 있어서 바로 못 가. 장 집사랑 병원으로 먼저 가 있어. 내가 끝나는 대로 바로 갈게.”하지만 온다연의 목소리에는 눈물이 배어 있었다.“주 박사님께서 진찰했는데, 대엽성 폐렴일 가능성이 크대요. 해열제도 소용이 없어서 아까 체온이 40도까지 올라갔어요. 빨리
술이 준비된 곳으로 걸음을 옮기니, 사람이 조금 뜸했다.진시현은 유강후의 팔을 조심스럽게 놓으며 공손하게 말했다.“대표님, 우리가 이렇게 있으면 사모님께서 보시고 오해하시는 건 아닐까요?”유강후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너는 지금까지 잘 해왔어. 다른 건 신경 쓰지 말고, 오늘 맡은 역할만 제대로 해.”그는 방금 전 험담을 늘어놓던 사람들 쪽을 아주 잠깐 바라보더니 차가운 말투로 덧붙였다.“아까 수군거리던 사람들 찍어서 이권에게 보내서 처리하게 해.”진시현은 즉시 대답했다.“네, 대표님.”그녀가 살짝 고개를 들며 긴장된 표정을 띠었다.“김원도가 왔습니다.”말을 마치자마자 그녀는 다시 유강후의 팔을 친밀하게 잡고, 그의 몸에 기댔다.애교 섞인 목소리로 속삭였다.“강후 씨, 저 조금 추워요.”유강후는 손짓하자마자 누군가 부드러운 캐시미어 숄을 가져왔다.그는 직접 숄을 집어 들고 진시현의 어깨에 다정하게 걸쳐주었다.그리고 숄을 걸쳐주며 살짝 몸을 기울여, 마치 그녀에게 입을 맞추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그는 낮은 목소리로 경고했다.“조심해. 저 근처에도 몇 명이 있어.”진시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낮게 대답했다.“네, 대표님.”그때 김원도가 다가왔다.그는 진시현을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유 대표, 이분은 누구지?”유강후는 진시현의 어깨를 감싸안으며 담담하게 말했다.“김씨 집안 사람이라면 강씨 집안의 휘장을 모를 리가 없겠지. 내 약혼녀야.”김원도는 손가락에 낀 반지를 쓰다듬으며 낮게 웃었다.“유 대표는 정말 복이 많네. 이렇게 아름다운 분이 곁에 있으니 오늘 밤에도 많은 여성분들이 마음 아파하겠어.”유강후는 김원도의 말을 무시한 채, 시선을 그에게서 돌려 방금 막 들어온 다른 남자를 바라보았다.그 남자는 김원도와 닮았지만, 그의 음험한 기운은 전혀 없었다.그는 유강후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김원도에게 다가갔다.“형, 형도 여기 있었어?”김원도는 얼굴빛이 변하며 말했다.“김원혁, 네가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