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웬을 죽이거나 그의 가족을 죽여도 아이를 살릴 수는 없었다.그 순간, 수술실은 절망에 빠졌다.한편, 유강후는 병실에서 온다연의 곁을 지키며 조용히 그녀를 달래고 있었다.“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의사를 데리고 왔으니까 아이는 문제없을 거야.”하지만 온다연의 얼굴에는 생기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수술 후, 그녀는 한숨도 자지 못했다.진정제를 맞았음에도 전혀 눈을 감지 못했다.그녀는 지금까지 유강후가 그 능력 좋다는 의사를 데려온다는 기적이 일어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하지만 그러면서도 온다연 역시 이 세상에 기적이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만약 정말 기적이 있었다면 그녀의 어머니가 죽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주한도 목숨을 잃지는 않았을 것이다.그녀의 영혼은 지금 고통 속에서 천천히 죽어가고 있었다.유강후는 온다연의 핏기 하나 없는 얼굴을 어루만지며 낮게 말했다.“괜찮을 거야. 나만 믿어.”하지만 그 말에도 온다연의 눈에는 전혀 생기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힘없이 유강후의 말을 따라 중얼거렸다.“괜찮을 거야.”하지만 이 말은 직접 내뱉은 자신들조차 확신이 없었다. 병실에는 쥐 죽은 듯한 침묵이 다시 찾아왔다.얼마나 지났을까. 의사가 다급히 병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그의 이마는 땀으로 흥건했다. 의사가 입을 열기도 전에 유강후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를 응시했다.의사가 헛숨을 들이쉬더니 조용히 입을 열었다.“대표님, 그웬 박사님께서 긴히 하실 말씀이 있다고 하는데요.”유강후가 자리를 뜨려 하자 온다연이 다급히 그의 팔을 붙잡았다.“아기가 죽은 거예요?”유강후는 온다연의 손을 부드럽게 다독이며 말했다.“아니야. 긴히 할 얘기가 있는 거지, 아이한테는 아무 문제 없어.”유강후는 온다연을 안심시키려는 듯 이불을 잘 덮어주고는 병실은 나섰다.병실 문을 닫자마자 의사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대표님, 정말 아무 방법이 없습니다. 아이가… 직접 가서 확인하시죠.”엄청난 절망과 차가운 공포가 유강후를 휘감았다.
손끝에서 전달되는 온기에 유강후가 재빨리 고개를 들어 외쳤다.“애 아직 살아있어! 아직 따뜻하다고, 아직 살아있단 말이야!”주위의 모두가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다.오직 그웬만이 서투른 한국어로 유강후의 말에 대답했다.“아이의 심장은 이미 멈췄고, 장기들도 기능을 멈췄습니다. 아이의 온기가 아직 남아 있는 이유는 아이가 인큐베이터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표님, 우린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렇게 작은 태아가 산모의 몸을 떠나 지금까지 살아있었던 것만으로도 이미 기적입니다…”“나가! 다 나가라고!”유강후가 낮은 목소리로 포효했다.나락으로 떨어져 버린 짐승과도 같은 고통스러운 울부짖음에 곁에 있던 사람들 모두 섬뜩함을 느꼈다.그 아무도 감히 유강후에게 말을 하지 못하고 조용히 물러났다.오직 장화연만이 문가에서 슬픔과 연민 섞인 눈빛으로 유강후를 지켜보고 있었다.유강후는 이미 목숨을 잃은 작은 아이를 손에 올렸다.정말이지 너무 작았다. 지나치게 가벼운 아이의 무게는 백 그램도 덜된 것 같았다. 정말 의사들의 말대로 엄마의 뱃속에서 완전히 발달하지 못한 게 분명했다.어제까지만 해도 온다연의 뱃속에서 평화롭게 잘 자라고 있던 아이는 지금 목숨을 잃고 말았다. 유강후는 점점 자신의 숨통을 조여오는 운명에 갑갑함을 느꼈다.이미 오래전부터 이런 날이 올 거라고는 예상하였지만, 그는 저도 모르게 이 아이에게 엄청난 희망을 품고 있었다.하지만 아이는 하루 만에 이런 끔찍한 방식으로 세상을 떴다. 그리고 유강후는 이 현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여전히 모든 것이 꿈 같았다.꿈에서 깨어난다면 온다연은 여전히 그의 곁에 누워있을 것이고, 아이 역시 그녀의 배 속에서 평화롭게 잘 있을 것 같았다.하지만 눈앞의 현실은 잔혹하게도 그가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너무 잘 자각시켰다.이 모든 것은 현실이었다.아이는 정말로 이 세상에 없었다.유강후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온다연과 자신의 관계가 어떤 방향으로 향할지도 알 수
그녀는 지금 유강후가 문제를 일으킬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 장화연은 유강후의 커다란 등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고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손을 내밀며 낮게 말했다. “그 아이를 저에게 주세요. 제가 처리할게요.” 유강후는 아이를 놓지 않고 낮게 말했다. “장 집사, 이 아이는 나와 온다연의 첫아이야.” 장화연은 어린 시절처럼 그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알아요. 하지만 온 아가씨와 도련님은 또 아이를 가질 수 있어요. 온 아가씨의 몸이 회복되면 앞으로 더 많은 아이를 가질 수 있을 거예요.” 유강후의 눈빛에서 전에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혼란스러운 감정이 비쳤다. “그럴 수 있을까?” 장화연은 확신에 찬 말투로 말했다. “있을 겁니다. 그땐 제가 직접 돌봐줄게요. 셋째 도련님이 어렸을 때 돌봐줬던 것처럼 잘 돌봐줄게요. 그러니 걱정 말고 그 아이들을 저에게 맡겨도 돼요.” 유강후의 목소리에는 끝없는 슬픔이 담겨 있었다. "장 집사, 나 너무 고통스러워.” 그는 천천히 한쪽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였다. 이내 어깨가 떨리기 시작했다. 장화연은 어린 시절처럼 그의 등을 천천히 쓰다듬으며 그의 슬픔을 함께 나누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유강후는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가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는 낮게 말했다. “장 집사, 그 아이를 데리고 가줘. 화장은 하지 말아 줘. 너무 어리잖아. 몇 천 도의 열을 견딜 수 없을 거야.” 그의 목소리는 약간 떨리고 있었다. “좋은 상자를 찾아서 그 아이를 넣어줘. 그리고 내가 준비한 나중에 온다연과 함께 묻힐 관을 열어 아이를 그 안에 넣어줘.” 그는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을 다루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숨이 끊긴 작은 태아를 장화연의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장화연은 다시 인큐베이터에 그 아이를 넣고 흰 천으로 감쌌다. 유강후는 그녀가 모든 것을 끝낸 것을 보고 눈을 감으며 낮게 말했다. “그 아이를 데리고 가. 소식을 전하지 말고 아이가 인큐베이터에
장화연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안돼요.” 유강후의 목소리에는 온통 분노가 가득했다. “왜? 내 아이는 그냥 그렇게 헛되이 없어져야 한다는 거야?” 장화연은 그의 등을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온 아가씨는 매우 보수적인 사람이에요. 이런 사람들은 마음을 열지 않거나 아니면 그 반대로 너무 깊이 사랑에 빠지죠. 도련님이 온 아가씨가 보호하고 싶은 사람을 다치게 하면 도련님은 아마 온 아가씨의 원수가 될 거예요.” “주희 씨를 처리하려 해도 지금은 아니에요.” 유강후는 주먹을 꽉 쥐었고 뼈의 마찰음이 들렸다. 그는 천천히 밖으로 나가서 곧바로 주희가 입원해 있는 방으로 걸어갔다. 주희는 심하게 맞아 갈비뼈가 약간 부러져 침대에 기대어 링거를 맞고 있었다. 유강후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주희는 미소를 띠며 기괴한 표정을 지었다. 유강후는 그런 그를 노려보았다. 그는 사진 속의 사람과 어느 정도 닮아 있었다. 그에게는 소년 특유의 밝고 깨끗한 분위기가 있었다. 온다연처럼 순수하고 깨끗한 사람과 함께 있으면 정말 잘 어울릴 만했다. 온다연과 그 주한이라는 사람이 함께 찍은 사진들을 생각할 때마다 유강후는 겨우 억누르고 있던 분노가 다시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유강후는 주희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주한이 당신 형입니까?” 주희는 비웃듯 낮게 웃으며 말했다. “전지전능한 유 대표님이 그것조차 알아내지 못했나 보네.” 그는 비웃는 듯한 미소를 짓고 천천히 말했다. “내 형과 누나는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랐어.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알던 사이야. 10년이 넘었지. 그런데 유 대표님은 그 사실을 전혀 몰랐군. 누가 이 정보를 숨긴 건지 알아보는 게 좋겠어.” 유강후는 질투가 나서 미칠 것 같았다! 몇 살 안되었을 때부터 알고 있었다니! 어릴 때부터 함께 있었다니! 온다연의 기억 속에는 온통 그 주한이라는 소년뿐이었다! 그럼 자신은 뭐지? 그의 손은 천천히 주먹을 쥐었고 위로 솟아오른 핏줄과 함께 그의 눈은
그때의 일이 떠올리자 유강후의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주희는 그를 주시하며 계속 말했다. “사실 유 씨 가문에서는 당시에 체면을 위해 우리에게 보상금을 줬어. 6억! 내 형의 목숨 값이 6억이야!” 그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잔인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우린 그 돈을 받지 못했어. 그 6억조차 유하령이 사람을 시켜 한 푼도 남김없이 전부 가져갔지!” “유강후, 우리 가족이 얼마나 증오하는지 알아? 우리가 그때 어떻게 버텼는지 알아?” “우린 거의 살아남지 못할 뻔했어. 그런데도 유하령의 친구들은 온다연을 놔주지 않고 학교에서 온갖 방법으로 괴롭히고 음해까지 했어!” 그때를 떠올리자 주희는 주먹을 꽉 쥐었고 눈에는 피에 굶주린 듯한 광기가 스쳤다. “난 너무 증오해! 나 자신이 강하지 않은걸, 나 자신이 병에 걸린 걸 증오해! 그때 나는 병이 도졌고 약 값을 벌기 위해 누나는 하루에 서너 가지 일을 했어. 누나는 몇 년 동안 같은 패딩을 입고 다녔고 그 옷은 헐어서 솜도 빠져나갔지!” “우린 생활비와 약 값을 위해 필사적으로 버텼는데 유하령과 너 같은 살인자는 내 형의 목숨 값으로 호화로운 생활을 했지!” “당신도 말해봐. 누나가 당신을 용서할 것 같아? 너는 유하령과 공범이야. 유하령의 친 삼촌이잖아!” 주희가 한 마디 한 마디 할 때마다 유강후의 마음은 점점 더 얼어붙었다. 그때 그는 온다연을 데려오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때 온다연은 아직 성인이 아니었고 그는 온다연에 대한 통제 욕망을 억제할 수 없었기 때문에 결국 손을 쓰지 않았다. 그는 심지어 온다연의 상황을 더 알아보는 것도 두려워했다. 그는 심미진이 온다연의 친 이모니까 최소한 굶어 죽을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그의 이기적인 마음은 온다연이 본가에서 최대한 눈에 띄지 않기를 바랐고 나중에 온다연을 데려가 새로운 신분으로 함께할 수 있기를 원했다. 하지만 그는 예상하지 못했다. 자신이 손을 놓은 그 세월 동안 온다연은 계속 괴롭힘을 당했고 그의
‘쾅!’순식간에 주희는 유강후에게 옷깃을 붙잡힌 채 쓰레기처럼 침대 아래로 내던져졌다. 주희는 이미 부상을 입은 상태였기에 바닥에 내팽개쳐지자마자 입에서 피를 한가득 쏟아냈다. 유강후는 천천히 앞으로 다가와 위에서 아래로 주희를 내려다보았다. 마치 죽어가는 벌레를 바라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주희는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손으로 입가의 피를 닦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유강후, 너 온다연을 좋아하지? 하지만 누나는 널 좋아하지 않아. 그래서 괴로운 거지?” “하지만 넌 겁쟁이야. 누나를 좋아할 자격조차 없어!” “너는 이렇게 많은 권력을 가지고도 네가 좋아하는 사람조차 지키지 못해. 내 형처럼 누나를 목숨 걸고 지킨 것도 아니잖아. 넌 평생 내 형을 이기지 못해. 뭘로 이길 건데? 유 씨 가문의 사람이라는 신분으로? 아니면 유하령의 친 삼촌이라는 신분으로?” “하하하. 너는 누나가 그 아이를 정말로 좋아한다고 생각해? 유 씨 가문의 피를 이은 그 저주받은 아이를? 확실히 누나가 그 아이를 좋아할 거라고 생각해?” “어쩌면 누나는 그 아이를 원하지 않았을 수도 있어. 복수를 끝내고 떠날 생각이었을지도 모르지!” “너 역시 마찬가지야. 너도 누나에게는 복수의 도구일 뿐이야. 그저 도구일 뿐!” 주희가 하는 말 하나하나가 유강후의 가슴에 깊게 박혔다. 비록 주희가 미쳤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가 하는 말이 모두 사실은 아니라는 것도 알았지만 그 단어들은 유강후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그는 주희의 입을 꿰매고 싶었다. 그 입에서 더 이상 그 어떤 추한 말도 나오지 않게 하고 싶었다. 주희가 다시 무언가를 말하려는 순간 유강후는 발을 들어 그의 가슴을 짓밟았다. 거칠게 짓밟았다! 주희는 또다시 피를 쏟아냈다. 하지만 그는 죽음을 무릅쓰고도 유강후를 자극했다. “내 형과 누나의 사진이 아주 많아. 이메일에 보관되어 있어. 수천 통의 메일 속에는 그들이 함께 자라며 겪은 일들이 담겨 있지. 질투 나지? 거의 미칠 지경이지?” 유강후는 수많
남하윤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차 있었지만 그녀는 이를 억지로 참으며 떨어뜨리지 않았다. “주희야, 나한테 말해 줘...” ‘나한테 말해 줘. 혹시 계속 날 이용하고 있었던 거야?’ 하지만 그 말은 결국 그녀의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 말을 내뱉는 순간 그녀와 주희는 완전히 끝날 것이다. 이 사랑에서 그녀는 언제나 스스로를 낮추며 사랑한 쪽이었다. 처음부터 그녀는 주희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기꺼이 그를 사랑했다. 그녀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그날 밤 술에 만취한 소년이 그녀를 껴안고 누나라고 부르며 한 번 또 한 번 애절하게 속삭이던 그 순간을. 그 속에 담긴 깊고 무거운 감정은 그녀가 평생 본 적 없는 것이었다. 소년의 눈에는 그 빛과 집착이 깃들어 있었고 그것은 그녀를 놀라게 하고 감동시켰다. 그 한 번의 눈 맞춤만으로도 그녀는 완전히 빠져들었다. 물론 그녀는 그가 부르는 누나가 자신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그녀가 충분히 잘해주면 그도 언젠가는 마음을 열어주리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원래 깨끗하고 순수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지만 누나처럼 보이기 위해 의도적으로 성숙한 모습을 연출했고 진한 화장도 했다. 그녀는 주희에게 있어서는 그야말로 모든 것을 맞추어주며 순응했다. 그가 조기 졸업을 원하자 그녀는 바로 조기 졸업을 처리해 주었고 경원시의 유명 대학에도 연락을 취해 주었다. 그가 연예인이 되고 싶다는 말 한마디에 그녀는 그를 위해 모든 수단과 인맥을 동원해 그를 띄웠다. 그녀는 주희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녀는 언젠가는 주희의 눈에 자신만이 보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모든 것을 떠올리며 그녀는 깊이 숨을 들이쉬고 조용히 말했다. “나랑 같이 돌아가. 며칠 전의 상처도 아직 낫지 않았잖아. 지금 또 이렇게 다치면 버틸 수 없어. 가서 같이 치료하고 모든
주희는 맞은 곳을 만졌고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저는 누나의 유일한 가족이에요. 누나는 다른 가족이 필요 없어요!” 임혜린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막 욕을 하려던 찰나 한이준이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그만해. 이런 인간에게 말해봤자 시간 낭비야. 주희는 아무것도 들을 생각이 없어.” “그리고 때리지 마. 네 손만 다칠 테니까.” 그때 밖에서 간호사가 급히 달려와 말했다. “유 대표님, 온 아가씨가 꼭 침대에서 내려가겠다고 하십니다. 강하게 고집하셔서 저희가 막을 수가 없습니다. 어서 가서 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유강후는 이 말을 듣자마자 바로 온다연의 병실로 향했다. 주희도 따라가려 했지만 문 앞에서 경호원들이 막아섰다. 그는 화가 나 욕설을 퍼부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유강후는 금세 모퉁이를 돌아 사라졌다. 온다연의 병실에 다다르기 전에 안에서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비켜! 너희가 무슨 권리로 날 막는 거야!” “놔! 잡지 마!” “온 아가씨, 지금은 침대에서 내려가시면 안 됩니다. 아직 회복할 시간이 필요해요. 걷는 건 무리입니다!” “비켜! 놔! 잡지 말라고!” 그리고 다시 한 번 무언가 쓸려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병실 앞에는 몇 명의 간호사와 의사들이 서 있었고 그들은 모두 난처한 표정으로 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유강후가 오자 그들은 마치 구세주를 본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유 대표님, 드디어 오셨군요!” “어서 온 아가씨를 말려 주세요!” 유강후가 방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는 깨진 유리 조각과 도자기 파편이 바닥에 흩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몇 명의 의사와 간호사들이 온다연을 침대에서 못 내려가게 붙잡고 있었다. 온다연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고 얼굴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유강후가 들어오는 것을 보자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한쪽으로 물러섰다. 온다연은 곧바로 침대에서 내려왔다. 그러나 그녀가 막 침대에서 내리자마자 유강후는 그녀를 번쩍 들어 다시 침
표정이 굳어지더니 유강후는 온다연을 잡으려 손을 뻗었다.그러나 그녀는 이를 피하며 차갑게 쏘아보았다.“왜요? 저 여자랑 관련된 일이면 물러서야 하는 거예요? 뭐든 내가 원하는 대로 해도 된다고 하지 않았어요? 근데 고작 내가 저 여자를 몇 번 밟았다고 이러는 거예요?”그녀는 혐오스럽다는 듯 말했다.“아저씨, 정말 구역질 나게 만드네요.”유강후의 얼굴은 더욱 어두워졌고 지그시 그녀를 바라보더니 무거운 입을 열었다.“온다연, 네가 말한 것들이 사실인지 아닌지 철저히 조사할 거야. 하지만 우리 곧 결혼하잖아. 결혼 후에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면 안 될까?”하지만 온다연은 이미 그에게 마지막 남은 인내마저 잃은 듯 차갑게 웃으며 대답했다.“필요 없어요. 설령 진실이 밝혀진다 해도 아저씨는 날 믿지 않을 테니까. 아저씨의 사랑은 편애받을 사람에게나 주라고요.”지친 듯 낮은 목소리였다.“아저씨, 우린 끝이에요.”말을 마치며 그녀는 옷 주머니에서 한 서류를 꺼냈다.“난 아저씨랑 결혼 안 할 거예요.”얼굴이 크게 일그러지더니 유강후는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온다연, 도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온다연은 그의 화난 모습에 심장이 찢어지는 듯했지만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여기까지 오게 된 상황에서 그가 온다연을 깊이 사랑하는 듯 가장하는 모습이 역겹기만 했다.“아저씨, 우리 이혼해요.”이혼이라는 두 글자는 가벼운 울림이었지만 유강후의 귀에는 마치 천둥처럼 울려 퍼졌다.큰 충격을 받았는지 그는 숨조차 제대로 쉬기 어려운 듯 보였다.그러다 곧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뭐라고 했어?”온다연은 그를 차갑게 바라보며 말했다.“이혼하자고요. 만약 이 혼인신고서가 진짜라면 이혼해요. 가짜라면 그만둬도 되고요.”유강후의 눈동자가 붉게 물들었다.“온다연, 이 혼인신고서가 가짜라고 의심하는 거야?”온다연은 비웃으며 말했다.“내가 믿을 만한 게 있긴 해요?”“아저씨가 구청에 갈 리는 없겠죠. 상관없어요. 다른 방법을 찾아볼 테니까. 방법은
온다연은 유강후의 손을 뿌리치며 다시 한번 나은별의 손을 짓밟았다.고통에 나은별은 비명을 질렀다.“아! 아파! 내 손!”유강후는 급히 온다연을 끌어내며 단호하게 말했다.“그만해!”그의 눈은 짙은 분노로 어두워져 있었다.“오늘 일은 내가 CCTV 확인할 거야. 하지만 네가 너무 지나친 것도 사실이야!”온다연은 그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CCTV? 아저씨, 여기 CCTV가 있어요? 아까 관리인이 뭐라고 했더라? 아직 설치 중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지금 뭐 하자는 거예요? 이렇게 나은별 씨 편들 거면 차라리 저 여자랑 결혼하지 그래요!”유강후는 즉시 관리인을 향해 냉랭한 목소리로 물었다.“왜 아직 CCTV 설치가 안 끝난 거지?”그러자 관리인은 몸을 떨며 대답했다.“어제 설치 도중 문제가 생겨서 내일 다시 설치하기로 했습니다. 결혼식 전에 완료하면 될 줄 알고... 그런데 이런 일이...”“당장 정리하고 떠나.”유강후는 차갑게 말했다.“이 집엔 제대로 일하지 못하는 사람 필요 없어.”온다연은 냉소적으로 말했다.“뭐예요, 저 여자가 아프다고 하니까 하인한테 분풀이하는 거예요?”그녀의 목소리에는 강한 비웃음이 담겨 있었다.“아저씨랑 나은별 씨 정말 닮았다. 남을 짓밟는 모습이 똑같아요.”이 말에 유강후의 이마에는 핏줄이 튀어나왔다.그래도 겨우겨우 화를 삼키며 그는 온다연의 손을 잡으려 했다.“그만하자. 얘기는 안으로 들어가서 하자.”하지만 온다연은 몇 걸음 물러서며 그의 손길을 피했다.“손 치워요! 저 여자를 만진 더러운 손으로 나 건드리지 마요. 역겨우니까!”유강후는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온다연은 피식 코웃음 쳤다.“내가 무슨 소리 하는지 몰라요? 방금 두 사람이 생사를 함께하는 듯한 모습, 정말 감동적이더라고요. 차라리 며칠 뒤에 저 여자랑 결혼해요.”결국 유강후의 분노가 폭발했다.“닥쳐! 온다연, 내가 정말 너를 너무 오냐오냐했나 보다!”온다연은 웃음을 터뜨렸다.
온다연의 눈에는 일말의 온기도 없었다. 그녀는 차갑게 유강후와 나은별을 바라보고 있었다.나은별은 비명을 지르며 유강후를 강하게 밀쳐냈다.차는 순식간에 나은별 앞으로 돌진했고 겁에 질린 그녀의 몸은 굳어버렸다.“강후 씨! 살려줘!”눈빛이 번뜩이더니 유강후는 나은별을 덮쳐 옆으로 밀어냈다.그러자 차는 급회전하며 풀밭으로 돌진했고 그제야 멈췄다.유강후의 가슴은 크게 들썩였고 이마에 핏줄이 불거진 채 온다연이 앉아 있는 차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얼굴에는 깊은 충격과 분노가 서려 있었다.‘다연이가 은별이를 죽이려 했나? 아니, 나까지 죽이려 했나?’그녀의 차가운 시선은 두 사람을 낯선 타인 대하듯 바라보고 있었다.온다연은 변해버렸다.이전의 그녀는 아주 나약하고 소심해 유강후는 그녀를 손가락 하나로도 짓누를 수 있었다.그러나 지금의 온다연은 그가 알던 사람이 아니었다.운전석에 앉아 있는 그녀는 끔찍할 만큼 냉혹한 눈빛으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그의 마음속엔 심한 고통이 밀려왔고 입술을 살짝 움직였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눈에는 깊은 슬픔만이 스칠 뿐이었다.반면, 온다연은 아무런 흔들림도 없었다.조금 전 그 순간, 그녀는 정말로 나은별을 죽이고 싶었다.하지만 유강후가 뛰어들었고 그 때문에 그녀는 주저했다.‘나은별은 정말로 운이 좋은 사람이야. 위험한 순간마다 항상 누군가 저 여자를 지켜주잖아.’온다연은 의심의 여지 없이 확신했다.그녀에게 익명의 문자를 보낸 사람은 나은별이었을 것이라고.그 외에 이런 짓을 할 사람이 떠오르지 않았다.한편으로 그녀는 이 사실을 유강후에게 말하려 했지만 오늘 그의 행동을 보고 나니 그럴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저녁의 햇살이 비스듬히 비추며 그림자를 길게 드리웠다.그림자는 차와 유강후 사이에 경계선을 그린 듯했다.온다연과 유강후는 그저 서로를 바라보고 있을 뿐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이 침묵을 깨뜨린 건 나은별의 울음소리였다.“강후 씨, 저 여자가 우리를 죽이려 했어!”눈빛에
차가 자신을 덮치리라 생각한 순간, ‘끼이익’ 하는 급브레이크 소리가 울렸다.차는 갑자기 방향을 꺾어 벽으로 돌진했고 곧이어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벽에 충돌하며 멈췄다.차 앞부분에서는 연기가 피어올랐고 충돌로 인해 벽이 움푹 들어가며 먼지가 흩날렸다.온다연은 제자리에 서서 차갑게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상황이 너무 갑작스러워 유강후는 차량이 온다연을 향해 돌진하는 것은 못 보고 벽으로 돌진하는 장면만 목격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충분히 충격을 받았다.그는 급히 달려와 온다연을 품에 안으며 다급하게 물었다.“괜찮아? 놀랐지?”온다연은 움직이지도 않은 채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차에 탄 사람 봐야 하지 않아요?”유강후의 표정은 차갑게 굳어졌다.“우리 신혼집을 망치려 한 사람이야. 내가 살려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할 일이라고!”그러자 온다연은 냉소적인 표정을 지었다.“정말 확실해요?”그녀는 천천히 말했다.“차 안에 있는 사람은 아저씨가 아끼는 나은별 씨예요. 그래도 그 사람을 죽게 놔둘 거예요?”일순간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유강후는 온다연을 놓아주었다.“다연아, 그런 소리 하지 마.”그때 하인들과 관리인이 달려 나왔다. 상황을 파악한 이들은 즉시 경찰에 신고하거나 차로 달려갔다.곧 누군가 소리쳤다.“대표님! 안에 있는 사람이 나은별 씨입니다!”유강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는 급히 차 쪽으로 향하려 했다.그러자 온다연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 여자가 방금 나를 치려고 했어요.”이 말에 유강후는 걸음을 멈췄다.온다연은 고개를 숙인 채 손을 천천히 움켜쥐었다.“난 아저씨가 그 여자를 보러 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만약 간다면 난 아저씨를 완전히 포기할 거예요.”그 순간 차 문이 열리고 하인의 부축을 받으며 나은별이 차에서 내렸다.그녀는 심하게 다친 상태였다.충돌로 인해 에어백이 그녀의 폐를 강타했고 입과 코에서 피가 흘러내려 제대로 서 있지도 못했다.나은별은 유강후를 보자 비참한 목소리로 애타게 외쳤다.“강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덧 결혼식까지 남은 날이 3,4일밖에 되지 않았다.영운산에 있는 집은 완벽하게 공사가 마무리되었고 가구도 모두 배치되었다. 요 며칠 동안은 생활용품들을 하나씩 채우는 중이었다.이 별장은 영운산에서 가장 좋은 위치에 자리 잡고 있으며 대지 면적이 1천 평이 넘고 경운시의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곳이었다.하지만 이 집의 가장 큰 장점은 천연 온천이었다.탁월한 약효를 자랑하는 이 온천은 오랜 기간 몸을 조리해야 하는 온다연에게 그야말로 최적이었다.이곳은 결혼 후 유강후와 함께 머물 신혼집으로, 그는 집을 꾸미는 데 엄청난 정성을 들였다.전체적으로 전통 스타일로 꾸며졌지만 거실 천장은 최상의 채광 효과를 위해 설계되었다.하여 날씨가 좋은 밤이면 소파에 누워 별을 감상할 수도 있었다.마당에는 해바라기와 붉은 장미가 가득 심어져 있었다.장미는 이미 몇 송이가 만개해 있었고 은은한 향기가 온 정원을 가득 메우며 특별한 분위기를 자아냈다.그러나 온다연은 여전히 기운이 없어 보였다.유강후가 고양이 구월이의 집을 배치하고 있을 때, 온다연은 그 모습을 가만히 그네에 앉아 지켜보았다.그런데 구월이의 집이 다 완성되기도 전에 그녀는 그만 잠들어 버렸다.유강후는 온다연이 한쪽으로 기울어 깊이 잠든 모습을 보고 조심스럽게 그녀를 안아 나무 아래에 있는 긴 의자에 눕혔다.그는 요즘 들어 그녀의 상태가 점점 안 좋아지고 있다는 걸 느꼈다.전보다 훨씬 자주 잠에 빠졌고 무언가를 생각하다 멍해지는 일이 늘었다.온다연과 대화를 시도했지만 그녀는 말을 아꼈고 가끔씩 겨우 한두 마디를 내뱉었지만 그 내용조차 마음을 긁는 말들뿐이었다.그녀가 가장 많이 말을 했던 날은 지예솔이 찾아왔던 그날이었다는 게 새삼 떠올랐다.유강후는 잠들어 있는 온다연의 옆모습을 보며 어딘가 모르게 그녀를 놓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느꼈다.그는 낮은 목소리로 혼잣말했다.“다연아, 또 날 떠날 생각 하는 거야? 절대 그렇게 두지 않을 거야.”온다연은 깊이 잠들어
온다연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천천히 말했다.“그중에서도 내가 보기엔 가장 약점이 될 수 있는 건 바로 거래 전문가예요. 내가 무슨 말 하는지 알겠죠?”지예솔은 대답하지 않고 고양이 모양 쿠션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 수 없었다.잠시 후, 하인이 문을 두드렸다.“사모님, 다이닝룸에 사모님이 좋아하시는 우유 커스터드가 준비되었습니다. 대표님께서 사모님을 밖으로 모시고 오라고 하셨어요.”지예솔은 그제야 시선을 거두며 낮게 말했다.“보아하니 강후 씨는 정말 다연 씨를 철저히 통제하나 봐요. 잠깐 떨어졌는데도 불안해하다니... 혹시 내가 다연 씨를 데려갈까 봐 걱정이라도 하는 걸까요?”온다연은 아무 말 없이 일어나 고양이 모양 쿠션을 그녀에게 건네며 말했다.“잘 보관해요. 이 안에 들어 있는 카메라는 구하기 힘든 거예요.”이렇게 말한 뒤, 두 사람은 함께 서재를 나섰다.다이닝룸에 다다르기도 전에 봉현수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다연 씨는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예요? 벌써 30분이나 지났는데 도대체 무슨 말을 그렇게 끝도 없이 하는 거죠? 혹시 우리 집 예솔이를 어딘가로 데려가려는 거 아니예요?”유강후의 반응도 냉랭했다.“우리 다연이가 예솔 씨를 데려간다니요? 예솔 씨야말로 진짜 문제 아니예요? 우리 다연이가 예솔 씨 때문에 나쁜 영향을 받았다고요! 아직 현수 씨한테 따질 말도 많아요, 근데 왜 현수 씨가 먼저 큰소리쳐요?”“현수 씨, 선 넘지 마요!”온다연과 지예솔은 서로 눈을 마주쳤다. 서로의 눈에서 당혹스러움을 읽을 수 있었다.식탁으로 돌아왔을 때, 유강후는 눈에 띄게 안도한 표정을 지었다.막 입을 열려는 순간, 지예솔이 손에 든 고양이 모양 쿠션을 보며 그는 눈살을 찌푸렸다.“쿠션을 좋아하신다면 여러 개 선물해 드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안 됩니다.”그 쿠션은 온다연과 유강후가 처음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을 때, 온다연이 인터넷으로 주문해 그의 책상 의자에 놓은 것이었다.그녀는 그것을 ‘등받이로
온다연은 창밖을 바라보며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나 같은 사람에게 사랑은 필수가 아니에요. 감정도 중요하지 않고요. 강후 씨와 나는 애초에 같은 부류가 아니에요. 우리 사이에는 너무 많은 장벽이 있습니다.”“전 유씨 가문 사람들이 과거에 저에게 했던 짓들을 절대 용서할 수 없어요. 그들이 죽었다고 해도 내 마음의 한은 풀리지 않아요.”“하지만 강후 씨에게 유씨 가문은 가족이잖아요. 그 사람이 그들을 진정으로 끝장낼 리가 없어요.”“봐봐요, 유하령이 그렇게 많은 악행을 저질렀는데도 지금은 겨우 다리 하나 잃은 정도잖아. 유씨 가문 사람들이 여전히 유하령의 재활을 돕고 있고 아마 1,2년 안에 다시 정상적으로 걸을 수도 있을 거예요.”“게다가 내 동생의 죽음, 그리고 나와 나은별 같은 사람들의 얽힌 관계들까지... 이 모든 것들이 나에게 알려줬어요. 나는 결국 희생될 수 있는 사람이란 걸.”“강후 씨는 한편으론 날 사랑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그 사람들이 날 무자비하게 해치도록 방치했어요. 이런 사랑은 나로선 감당할 수 없어요.”눈빛에 어두운 기색이 스치며 온다연이 말을 이었다.“한때는 아이만 있으면 모든 걸 내려놓고 그 사람과 함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그건 내가 순진했던 거예요. 아이가 있어도 그 모든 문제들은 사라지지 않았을 거고 다만 조금 늦게 터질 뿐이었겠죠.”“유강후라는 사람은 겉으론 깊은 정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무정해요. 그 사람은 항상 자신의 사고방식으로만 사람들을 판단해요. 얻지 못하면 가두거나 파괴해버리고 자기 뜻에 따르지 않으면 온갖 방식으로 벌을 주죠.”“완벽한 사업가이자 타고난 리더지만 좋은 연인은 아니에요. 게다가 나 같은 사람은 사랑 같은 건 필요 없어요. 나에겐 사랑보다 배를 채우는 게 더 중요하니까.”그녀의 말이 끝난 후, 서재에는 긴 침묵이 흘렀다.잠시 후, 온다연은 책상 의자에 놓인 고양이 모양 쿠션을 정리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 쿠션의 고
온다연은 말을 마치고 곧바로 곽혜영을 무시한 채 한이준을 향해 말했다.“한 대표님, 안목이 갈수록 떨어지시네요. 눈이 좀 안 좋으신가 봐요. 강후 씨가 갓 사 온 영양제가 있는데 돌아가실 때 몇 개 가져가세요. 눈은 깨끗해야 좋으니까요.”한이준의 얼굴이 즉각 굳어졌고 곽혜영의 표정은 더 심각했다.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지며 그녀는 눈가에 눈물이 맺힌 채 말했다.“유 대표님, 제가 다연 씨의 기분을 상하게 했나요? 화나신 것 같아요. 다 제 잘못이에요. 오지 말았어야 했는데.”유강후는 냉담하게 말했다.“다연이 기분을 상하게 한 걸 알면서도 물어요? 그렇게 생각했으면 저기 문 있잖아요. 나가세요. 배웅은 안 할 테니.”이 말이 끝나자마자 봉현수가 웃음을 터뜨렸다.“강후 씨, 그래도 상대는 여자잖아요. 게다가 은별 씨 사촌인데 손님으로 온 사람을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니에요?”한이준의 얼굴이 극도로 어두워지며 분노했다.“두 사람 다 그만해요! 혜영이는 제 파트너입니다. 적당히 좀 해요!”온다연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어쩐지 익숙하다 했더니. 친척이셨구나.”이렇게 말하며 그녀는 곁에 있던 지예솔의 팔을 잡아당겼다.“예솔 씨, 제가 주얼리 관련해서 여쭐 게 있어요. 서재로 가서 얘기해요.”그렇게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 나갔다.남은 곽혜영은 얼굴이 어두워진 채 침묵을 유지했다.한이준은 눈물이 곧 흘러내릴 듯한 곽혜영의 모습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이끌고 나갔다.봉현수가 한이준이 정말 화가 난 듯해 따라나서려 했지만 유강후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현수 씨, 앉아요.”“신경 쓰지 마요! 이준이는 갈수록 판단력이 흐려지고 있어요. 우리 다연이조차 저 혜영 씨한테 뭔가 꿍꿍이가 있다는 걸 아는데 여전히 즐겁게 받아들이고 있잖아요. 혜린 씨랑 헤어지고 나서는 정말 허기가 졌나 봐요. 아무거나 다 먹을 정도로.”“그냥 스스로 정신 차릴 때까지 둬요.”서재 안에서, 온다연은 앰버 하나를 꺼내며 말했다.“예솔 씨, 부탁 하나 드리고
장화연은 표진아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더니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아마 그냥 지나가는 말일 겁니다. 적어도 사모님 뒷말은 하지 마세요.”“잠시 후에 한 대표님과 봉 대표님이 오셔서 결혼식 장소에 대해 논의할 거예요. 차와 간식을 준비하세요. 한 대표님의 새로운 파트너분은 커피와 서양 과자를 좋아한다고 하니 그것도 준비하시고 나머지는 평소대로 하시면 됩니다.”“네, 장 집사님.”하인이 돌아서려는 순간, 장화연이 다시 말했다.“준비해 두세요. 결혼식이 끝난 뒤, 당신은 영운산 별장으로 가서 일하게 될 겁니다. 모든 일에 좀 더 신경 쓰세요. 셋째 도련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별장으로 가는 사람은 대우가 더 나아질 거라고 하셨습니다.”하인은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알겠습니다,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저녁 식사 전, 한이준과 봉현수가 정말로 도착했다.다만 한이준 옆에 선 사람은 낯선 얼굴이었다.봉현수 옆에는 여전히 지예솔이 함께였다.온다연의 시선이 한이준의 파트너에게 스치듯 지나갔다.단정하고 청순한 외모로 임혜린과 몇 분 닮은 느낌이었다.하지만 곧 그녀는 무표정하게 시선을 돌렸다.그런데도 그 여자는 무척 친근한 척하며 달콤한 미소로 말했다.“유 대표님, 저 기억하시나요? 저는 이진이의 어릴 적 친구 곽혜영이에요. 예전에 모임에서 뵌 적 있는데.”유강후는 별다른 표정 없이 예의상 고개를 끄덕였다.곽혜영은 전혀 어색해하지 않고 여전히 밝은 미소를 지으며 자신감 있게 행동했다.저녁 식사가 무척 풍성하게 준비되었지만 어떤 사람들의 입은 멈추지 않았다.곽혜영은 식사 중 활발하게 대화를 이끌며 마치 유씨 가문과 봉씨 가문에 아주 익숙한 사람처럼 굴었다.그러나 두 남자는 마치 포커페이스를 하듯 냉담한 표정을 유지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곽혜영은 전혀 개의치 않고 국제 정세와 금융 이야기를 꺼내며 온다연과 지예솔을 가끔씩 흘끔거렸다.그 눈빛 속에는 미묘한 경멸이 담겨 있었다.곽혜영은 사전에 조사를 했었다.온다연과 지예솔은 얼굴로 자리를 차지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