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의 사건과 사람들을 다시 조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이 생각이 들자 유강후의 마음속에서는 불길한 예감이 피어올랐다.하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온다연을 품에 안고 차에 탔다.한밤중이 되자 온다연은 다시 열이 나기 시작했다. 그녀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고 의식 역시 온전치 못했다. 그런 온다연의 모습을 보던 유강후의 눈에는 깊은 어둠이 깃들었다.그는 밤새 한숨도 못 자고 온다연의 곁을 지키며 그녀를 간호했다.동이 틀 무렵, 장화연이 안으로 들어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아직도 안 돌아갔습니다.”유강후는 아직 잠들어 있는 온다연을 한 번 쳐다보며 그녀의 이마를 어루만졌다.다행히 열은 내렸다.어젯밤, 온다연은 밤새 뒤척이며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고, 계속 땀을 흘린 탓에 옷도 몇 번이나 갈아입어야 했다.밤새 무슨 꿈을 꾸었던 것인지 자는 내내 고양이의 이름을 부르며 잠꼬대를 했다.고양이의 이름을 부르는 그녀의 목소리에 유강후는 질투마저 느꼈다.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온다연의 이불을 덮어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직접 만나러 가야겠어.”그 말을 남긴 유강후는 겉옷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밖에서는 거센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밤새 눈이 내린 탓에 병원 밖 거리에는 두터운 눈이 쌓여 있었다.온다연의 병실을 마주 보고 있는 오래된 거리에는 검은색 슈퍼카가 서 있었다.아마 밤새 그 자리에 서 있었던 모양이다. 나무에 가려지긴 했지만 그래도 차 지붕에는 눈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하지만 차 주위에는 눈 대신 담배꽁초만 수북이 쌓여 있었다.차 문 옆에는 창백하고도 단정한 모습의 청년이 서 있었다.밤새 잠을 못 잤거나, 담배를 너무 많이 피운 듯 청년의 머리는 헝클어져 있었고 눈에는 실핏줄이 서 있었다.어둡고도 집착 어린 눈빛은 평소 TV에서 보던 밝고 청량한 모습과 정반대였다.유강후가 다가오자 청년은 손에 들고 있던 담배꽁초를 버리고 두 손을 외투 주머니에 넣은 채 차가운 시선으로 그를 노려보았다.둘 다 검은 외투
유강후의 눈에서는 살기가 서서히 번져 나왔다. 그의 눈 안에 숨겨진 차가운 살의는 전혀 숨겨지지 않았다.그는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주혜성, 당신이 예전에 온다연을 도와줬다는 걸 감안해서 이렇게 최대한 공손하게 얘기해주는 거야. 아무리 남씨 가문이 당신을 보호해준다고 해도, 내가 당신 하나 처리 못 할 것 같아? 내가 정말 당신 하나 처리하려고 나선다면, 남씨 가문에서 당신 하나 지키려고 감히 나랑 맞서려고 할까? 가 지금 인내심이 남아 있을 때 원하는 만큼 부르는 게 좋을 거야. 그럼 넌 더 이상 무대 위에서 굳이 춤추고 노래하지 않아도 돼. 그 돈 들고 경원을 떠나. 그리고 당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그 말에 주희의 입가에 비웃음이 어리더니 눈가에 미묘한 빛을 띠었다.“대표님은 제가 이런 것까지 신경 쓸 거라고 생각하시나요?”유강후는 눈을 가늘게 뜨더니 한층 더 냉랭해진 목소리로 말했다.“그렇다면 당신 연예계 생활은 여기서 끝이야.”주희가 경멸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제가 그딴 걸 신경 쓸 거라고 생각하세요? 대표님, 아무리 대표님 권력이 막강하다고 해도 온다연에게는 대표님이 절대 다가갈 수 없는 과거가 있어요. 그 과거를 만들어준 장본인들도 다름 아닌 유씨 가문이라는 건 아세요? 어제 보니까 온다연 참 좋아하는 것 같더라고요. 물론 그렇게 예쁜 여자를 안 좋아하는 게 더 이상하겠지만 안타깝게도…”혀를 끌끌 차던 주희가 도발적인 말투로 말했다.“온다연은 절대 대표님을 좋아할 수 없을 거예요! 대표님이 유씨 성을 가지고 있는 한, 유씨 가문의 피를 이어받은 한, 온다연은 절대 대표님을 좋아하는 일이 없을 거예요!”그 말에 유강후의 심장이 심연 속으로 깊숙이 가라앉더니 이마에는 핏줄까지 불거졌다.그 순간, 유강후는 당장이라도 주혜성을 죽여버리고 싶었다.하지만 그는 곧바로 다시 차분하고도 권위적인 모습을 되찾더니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상관없어, 온다연이 날 좋아하지 않아도 우린 결국 결혼할 사이니까. 여기 밤새 서 있어봤자 온다연은
유강후는 하던 일을 모두 멈춘 채 거의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온다연의 곁을 지켰다.그는 어젯밤의 일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고 주혜성이라는 사람에 대해서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는 온다연을 바라보며 유강후는 비서에게 창가에 의자를 갖다두게 했다. 그러고는 그녀를 끌어안아 창가에 갖다 놓은 의자 위에 앉혔다.온다연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유강후가 이끄는 대로 자신의 몸을 맡겼다.두 사람 사이에는 아무런 대화도 오가지 않았고 그저 침묵을 지키며 창밖으로 내리는 눈을 바라보았다.둘 사이의 분위기는 마치 서로를 깊이 사랑하는 연인처럼 부드럽고도 애틋했다.그렇게 두 사람은 다음 날 아침까지 쭉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잠에서 깬 온다연은 유강후에게 낮은 소리로 말하는 장화연의 목소리를 들었다.“모든 연락을 끊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다연 씨가 보기 전에 핫이슈들 새로 뜬 거 다 지워야죠.”유강후의 지친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장 집사가 권이랑 같이 확실하게 처리해.”그 말에 온다연은 순간적으로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녀는 재빨리 휴대폰을 꺼내 뉴스를 찾아보았다. 어플 추천화면에는 벌써 수십 개의 뉴스가 떠 있었다.“라이징 스타 주혜성, 어젯밤 클럽에서 만취한 채…”“주혜성 음주운전, 교통사고”“톱스타 주혜성, 고속도로에서 추락, 생사는 불분명…”순간적으로 머릿속이 멍해진 온다연은 저도 모르게 휴대폰을 바닥에 떨어트렸다.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분노가 그녀를 순식간에 집어삼켜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온다연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유강후에게 다가갔다.“아저씨가 한 짓이죠?”그 말을 내뱉은 그녀의 얼굴은 창백했고 표정에는 분노와 놀라움이 섞여 있었다.유강후의 시선은 아무것도 신지 않은 그녀의 발로 옮겨지더니 무덤덤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왜 신발 안 신었어?”온다연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유강후를 노려보며 주먹을 꽉 쥔 채 언성을 높였다.“지금 묻잖아요, 아저씨가 한 짓이냐고요!”갑자기 커지는 목
깜짝 놀란 유강후는 몸을 일으켜 온다연을 부축하기 위해 다가갔다.“다연아!”온다연은 허리도 제대로 펴지 못할 고통에 휩싸이면서도 유강후를 한 손으로 밀어내며 말했다.“가까이 오지 마요, 지금 아저씨가 끔찍이도 싫으니까!”극심한 고통을 느끼는 온다연을 보며 가슴 한쪽이 서늘해진 유강후는 다급하게 그녀를 안고 응급실로 달려갔다.당직의도 잔뜩 흥분한 듯한 온다연의 모습에 깜짝 놀라 다급하게 그녀에게 강제로 진정제를 투여했다.온다연은 빠르게 잠이 들었다.빠른 속도로 정밀검사를 마친 의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다행히 태아에게는 아무 문제 없습니다. 그냥 순간적으로 감정이 격해져서 경련이 온 것 같아요.”의사가 유강후를 바라보며 말했다.“대표님, 이번엔 다행히 태아에게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산모가 몸이 너무 약하기도 하고 태아의 상태도 불안정합니다. 다른 산모들에 비해 태아의 발육 상태도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고요. 이 이상의 자극은 최대한 피하셔야 할 겁니다.”더 말을 이으려던 의사는 유강후의 쓸쓸한 눈빛과 무거운 표정을 본 순간, 마음이 약해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유강후와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며 그는 소문으로만 듣던 피도 눈물도 없는 재벌 후계자에 대한 인식을 바꾸게 되었다.유강후는 전혀 차가운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온다연이라는 여자를 극진히 아끼고 사랑하는 한 남자에 불과했다.게다가 간호사들은 종종 온다연이 잠든 틈을 타 그녀의 얼굴에 입 맞추는 유강후의 모습을 본 적도 있다며 수군댔다. 온다연의 모습을 보는 유강후의 눈빛에는 항상 깊은 애정이 담겨 있었다.또 어떤 날에는 온다연을 꼭 안고 다니며 땅에 발을 붙이지도 못하게 했었다. 그런 날에는 아예 온다연을 자신의 무릎 위에 앉혀 밥까지 직접 떠먹여 주곤 했다.다만 유강후의 집착스럽고 강압적인 태도와 방식은 온다연의 숨통을 조여왔다.그리고 온다연을 대하는 그의 표정은 항상 차갑고도 단호했다. 주변 사람들도 온다연이 유강후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할 수 있었
온다연은 눈을 질끈 감고 얼굴을 서서히 들어 올렸다. 그녀는 긴장한 듯 길고 촘촘한 속눈썹을 파르르 떨었다.금방 잠에서 깬 그녀의 볼에는 잔머리가 붙어있었다. 그리고 유강후는 그것을 정리해주기 위해 온다연을 향해 손을 뻗었다.하지만 온다연은 유강후가 정말로 자신에게 손찌검하려는 줄로 오해하고 본능적으로 얼굴을 감싸며 몸을 뒤로 물렀다.“잠깐만요!”유강후의 손이 공중에서 멈췄다. 그의 눈빛에는 복잡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그는 낮은 목소리로 온다연을 바라보며 물었다.“다연아, 내가 정말 널 때릴 거라고 생각해?”온다연이 작게 대답했다.“저번에, 저 때렸잖아요.”온다연이 임혜린의 일로 유강후에게 대들었던 그 날, 유강후는 온다연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엉덩이를 때렸다.지금 그 일을 떠올려보면 온다연은 여전히 부끄럽고 수치스러웠다. 크고 무거운 유강후의 손이 온다연의 엉덩이 위로 떨어질 때마다 그녀는 찌릿한 고통을 맛봐야 했다.유강후도 온다연의 말에 그녀의 새끼손가락이 부러졌던 그 날 일을 떠올렸다.그는 온다연의 손을 들어 다시 한번 찬찬히 살펴보며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이번에 마지막이야. 다음에 또 그러면, 정말 혼날 줄 알아.”말을 마친 유강후는 온다연을 안아 식탁으로 데려갔다.식사하던 도중, 손님이 병실로 찾아왔다.임혜린이 커다란 해바라기 꽃다발을 품에 안고 병실로 찾아왔다. 크고 아름다운 꽃다발은 그녀의 작은 얼굴을 더욱 환하고 아름답게 만들었다.함께 온 한이준은 무슨 일인지 안경을 끼고 있었다.맞춤형 고급 정장에 안경을 매치한 그는 마치 패션 화보 속의 모델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지적인 안경은 한이준의 평소 방탕하던 이미지와 분위기를 눌러주는 대신 차분하고도 절제적인 분위기를 더해주었다.하지만 온다연은 그의 눈 아래에 들어있는 멍을 발견했다. 안경 때문에 눈에 잘 띄지는 않았지만 자세히 보면 금방 발견할 수 있었다.그녀는 무심코 두 번씩이나 시선을 돌려 한이준을 바라보았다.그 모습을 바라보던 유강후는 기분이 상했는지
임혜린은 말을 멈추더니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넌 이런 내가 창피하지 않아?”온다연은 그 말에 미간을 찌푸리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임혜린은 온다연의 유일한 친구였다. 두 사람은 거의 모든 이야기를 공유하는 사이였지만 서로의 가정사에 대해서는 묻지 않기로 암묵적인 약속을 했다.그 때문에 임혜린의 과거 이야기는 온다연도 처음 듣게 되었다.온다연은 한때 임다연을 부러워했다. 그녀를 평범한 중산층 가정의 외동딸로 여기고 부유하진 않더라도 먹고 살 걱정 없이 사랑받으며 살아왔을 것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그녀의 현실은 온다연의 생각과는 완전히 달랐다.온다연이 대답하기도 전에 임혜린이 다시 입을 열었다.“돈 버는 게 뭐가 창피해? 내가 무슨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니고.”그녀는 고개를 돌려 온다연을 바라보며 말했다.“사실 난 말이야, 유 대표님께서 널 괴롭힌다고 생각하진 않아. 이준 씨한테서 들었는데 대표님이 예전에 너 괴롭히던 사람들 하나하나 다 찾아내서 감옥으로 보냈대. 그중 몇 명은 정체 모를 죽임을 당했다고도 하고.”온다연이 임혜린의 말을 끊었다.“설마 너도 날 설득하려는 거야? 만약 내가 너한테, 나도 너 같은 대타에 불과하다고 얘기하면, 그래도 넌 날 설득할 수 있어?”임혜린의 눈빛이 쓸쓸해지더니 더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한참이나 침묵을 유지하던 그녀가 겨우 입을 열었다.“아직도 주희 못 잊은 거야?”온다연은 생각에 잠긴 듯 멍한 표정을 지으며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임혜린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그럴 만도 해. 목숨 걸고 널 지켜준 사람인데, 어떻게 잊을 수가 있겠어?”그녀는 잠시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이 얘긴 이제 그만하자. 은행루 예약해뒀으니까 점심은 거기 가서 먹자. 네가 좋아하는 요리들로만 부탁해놨어. 얼른 가자. 예전에 우리 학교 다닐 때, 매일 은행루 앞을 지나가면서 외제 차들 줄지어 있는 거 보고 세상에서 제일 비싼 레스토랑인 줄 알았잖아. 그때 우리 돈 많이 벌면 꼭 한번 가보자고 했었던 거
두 사람의 모습은 영원히 얽히고설킬 운명처럼 느껴졌다.서로를 힘껏 껴안고 진한 입맞춤을 나누는 두 사람의 뒤에는 주희가 서 있었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주희의 손발은 얼어붙을 듯 차가워졌고 눈에는 핏발이 서 있었다. 끓어오르는 엄청난 질투심에 주희는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그는 오랫동안 참고 기다리며 자신과 온다연 사이에 놓인 수많은 장애물들을 제거해왔다.하지만 그런 주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온다연은 결국 다른 사람과 진한 입맞춤을 나누고 있다.도대체 왜!온다연은 무슨 일이 있어도 그의 것이어야 했다. 오직 주희의 것이어야만 했다. 그녀가 망가지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 모습은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주희는 갈색 봉투를 쥔 손에 힘을 주며 천천히 걸어가 낮게 깔린 음성으로 말했다.“두 사람 정말 애정이 넘쳐 보이네요, 누나. 이런 데서까지 서로한테 푹 빠져 키스를 할 정도라니.”유강후의 폭풍 같은 입맞춤에 금방이라도 다리가 풀릴 것 같던 온다연은 뒤에서 들려오는 주희의 목소리에 온몸이 빳빳하게 굳어버리고 말았다.그녀는 다급히 유강후를 밀어내고 창백해진 얼굴로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주희를 바라보았다.주한과 꼭 닮은 그 얼굴과 두 눈을 마주하자 온다연은 갑자기 주위의 공기가 무겁게만 느껴졌다. 수많은 손가락들이 그녀를 가리키며 “배신자”, “더러운 여자”, “몸이나 파는 하찮은 창녀”라며 저주를 퍼붓는 것만 같았다.온다연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아랫배를 감싸며 입술을 옅게 떨었다.“너, 네가 왜 여기 있어?”주희는 그녀의 불룩한 배를 보자마자 이성을 잃은 듯 핏발이 가득 선 눈빛으로 소리 죽여 웃기 시작했다.“그럼 제가 어디에 있어야 할까요, 누나? 우리 형 묘라도 찾아가서 무릎 꿇고 울고 있어야 할까요? 우리 형 정말 불쌍하죠. 그렇게 비참하게 죽었는데, 형이 그렇게 지키려고 했던 여자는 원수의 아이나 임신하고 이렇게 고급스러운 호텔에서 그 원수 놈이랑 키스나 하고 있으니.”주희의 말을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온다연의 가슴
“아저씨…”배에서 몰려오는 강렬한 통증과 출혈로 온다연은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뒤늦게 깨달았다. 머릿속이 하얘진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낮게 유강후를 불렀다.고개를 숙여 온다연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를 발견한 유강후의 눈동자가 급격히 수축했다.피가 너무 많이 흐르고 있었다.지나칠 정도로 많았다.왜 이렇게까지 많은 피가 흐르는 걸까?유강후는 심장을 얻어맞은 듯 정신이 멍해지더니 숨까지 멈추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다연아!”그는 떨리는 손으로 온다연을 안아 들고 미친 듯이 밖으로 뛰어나갔다.피가 그의 발걸음 뒤로 계속 떨어져 빨간 뱀 같은 자국을 남겼다.깜짝 놀란 주희도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잠시 후, 뒤늦게 정신이 돌아온 주희는 다급히 두 사람의 뒤를 따랐다.마침 룸에서 나온 한이준과 임혜린도 그 장면을 목격하고는 깜짝 놀라 급히 두 사람을 따라갔다.다행히 병원은 멀지 않은 곳에 있었고, 차는 병원을 향해 빠른 속도로 달렸다.눈시울이 빨개진 유강후는 가속 페달을 힘껏 밟았다.10분 정도 달려 온다연은 응급실에 도착했다.의사와 간호사들도 온다연의 상태에 크게 놀란 듯했다.기다리는 시간은 세상에서 가장 견디기 힘든 시간 같았다.기다리는 1분 1초가 너무 고통스러웠고 심장이 찢어질 듯한 끝없는 아픔과 고통만이 유강후를 삼켰다.유강후는 동물원에 갇혀버린 맹수처럼 응급실 밖을 이리저리 서성이며 안절부절못했다.그의 뒷모습은 잔뜩 긴장한 듯 보였고 두 주먹을 꽉 쥔 채 눈가에는 모든 것을 없애버릴 듯한 살기를 머금고 있었다.그의 주위에는 이권과 장화연을 포함한 보디가드와 비서들이 여럿 있었지만 그들 중 아무도 감히 말을 꺼낼 수 없었다.한이준과 임혜린, 그리고 주희가 뒤늦게 병원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그 침묵이 계속되었다.병원에 도착한 임혜린은 유강후를 발견하자마자 무어라 말을 꺼내려 했지만 한이준이 다급히 그녀를 막아섰다.“지금은 말 걸지 마. 지금 저 자식 제정신 아니야. 괜히 건드렸다가는 너만 다쳐.”하지만 그 반면에 주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