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다연은 그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염지훈은 그녀를 잠자코 보다가 다시 말했다.“근데 네 말이 맞아. 난 결혼할 마음이 없어. 그런 오만방자한 아가씨는 정말 별로이거든. 하지만 염씨 가문은 확실히 집안이 좋은 여자가 필요하지.”그는 혀를 차면서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내가 보기엔 네가 적합한 결혼 상대인 것 같아. 유씨 가문에서 지위가 없지만 그래도 유강후 밑에서 자랐으니까. 밖에서 말하기도 나쁘진 않지.”염지훈은 온다연을 위아래로 훑어보다가 마지막에 시선은 그녀의 여전히 부은 얼굴에 두었다.“생김새도 마음에 들어. 오늘 얼굴이 부었지만 아름다움에 영향이 없어.”온다연은 미간을 찌푸렸다.염지훈은 농담조로 말한 것 같지만 농담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그녀는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저한테 수작 부리지 마세요. 저희는 어울리지 않아요.”이에 염지훈은 눈썹을 치켜올렸다.“나는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난 마침 아내가 필요하고 너도 그 변태 유강후에서 벗어나고 싶잖아. 이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이 좋을 걸. 그렇지 않으면 너도 유강후랑 살다가 변태 될 수 있어.”온다연은 말없이 그를 쳐다보았다.염지훈은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지루한 듯이 라이터를 만지작거렸다.하지만 아무도 보지 못한 테이블 아래에 있는 그의 다른 손은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한참 지나서 온다연은 입을 열었다.“저 때문에 파혼하게 돼서 죄송해요. 하지만 유하령과 결혼하지 않는 것이 염씨 가문에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어떻게 보면 제가 지훈 씨를 도와줬다고 생각해요. 예전에 지훈 씨를 이용한 일과 퉁치는 걸로 하시죠. 다시는 저를 찾지 마요.” 온다연은 말을 마치고 벌떡 일어나서 떠나려고 하였다.염지훈은 그녀를 불러 세웠다.“난 진심이야. 유씨 가문에 너와 결혼하겠다는 혼담을 꺼내고 싶어.”온다연은 멈춰 섰지만 뒤돌아보지도 않았다.“저도 진심이에요. 저희는 어울리지 않아요. 지훈 씨, 사실대로 말씀드릴게요. 늦어도 내년 봄에 저는 경원시를 떠나서 다시 돌아오지 않
차가 멀리 나갔으나 그 사람은 여전히 끈질기게 쫓아왔다.경호원은 참다못해 말하였다.“다연 씨, 정말 멈추지 않을 겁니까?”온다연은 손에 땀이 찼으나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그 사람을 만나면 유강후에게 혼날 거예요. 보너스를 받고 싶지 않아요?”경호원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집에 도착한 후 유강후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는 바로 그녀를 도와서 외투를 벗고 안아서 욕실로 들어갔다.그는 그녀를 욕조에 내려놓고 말없이 능숙하게 그녀를 씻어주었다.온다연의 일에 대해 유강후는 어떤 집념이 있는 것 같았다. 그가 직접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절대로 남에게 맡기지 않았다.오늘은 예전과 달랐다.온다연을 씻어줄 때 그의 손은 그녀의 배를 오랫동안 어루만졌다.태동을 다시 느끼고 싶은 것 같았다.그러나 그는 온다연이 반항할 때까지 아무런 반응도 얻지 못했다.온다연은 유강후가 자기의 배를 만지지 못하게 그의 손을 내쳤다.목욕을 마치고 나서 유강후는 온다연을 안고 테이블에 올려놓고 헤어드라이로 머리를 말려주기 시작했다.“이 냄새는 마음에 들어?”온다연은 이미 욕실의 청결 제품은 모두 상쾌하고 숲의 향과 비슷한 은은한 향으로 바꾼 것을 발견했다. 그녀가 전에 온라인에서 구매한 그 기초화장품의 냄새와 비슷했다.당연히 마음에 들었다.그러나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유강후가 하는 데로 하였다.그녀의 반응은 그가 예상한 것과 같았다.유강후는 온다연에게 대답을 강요하지 않았다. 단지 눈빛이 더욱 어두워졌다.온다연은 머리카락이 다 마를 때까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유강후는 바디로션과 크림을 꺼내서 뚜껑을 열고 냄새를 맡게 하였다.“이 냄새를 좋아해?”크리미한 텍스처에 은은한 자몽향이 나서 맡으면 힐링되는 기분이 들었다.“임산부전용 제품이야. 네가 좋아하는 브랜드는 나중에 다시 쓰자.”그러나 온다연은 여전히 반응하지 않았다. 마치 벙어리 인형과 같았다.유강후는 기초화장품을 조금조금씩 발라주었고 새 옷을 가져다 입혔다.아주 부
온다연은 대답하지 않고 그냥 약간 헐떡거리면서 숨을 가쁘게 쉬었다.유강후는 그녀의 입술을 문질렀다. 부드러운 촉감에 그의 눈빛이 더욱 어두워졌다.온다연은 유강후가 또 키스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그녀를 안고 욕실에서 나왔다.식탁 위에는 이미 온다연이 좋아한 음식들이 놓여 있었다.그녀의 위가 안 좋아서 요리는 흔히 물렁물렁할 정도로 끓여야 했고 조미료도 엄격하게 제한되어 있었다. 음식은 맛이 있지만 항상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그러나 오늘의 요리는 예전과 달라 보였다. 때깔이 선명하고 조미료도 많이 넣어서 매우 맛있어 보였다.유강후는 그녀를 편안한 쿠션이 있는 의자에 앉혔다.“음식이 맛있는지 먹어 봐. 오늘 새 셰프가 왔거든.”그는 잠깐 멈추었다가 이어서 말했다.“네가 예전에 묵었던 곳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구한 셰프야.”온다연은 눈을 내리깔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러나 식탁 밑에서 주먹을 불끈 쥐고 있었다.유강후는 그녀가 평소에 즐겨 먹는 음식을 집어서 작은 도자기 그릇에 놓고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먹어 봐.”온다연은 젓가락을 움직였다.아무리 유강후에게 반항을 하더라도 뱃속의 아이로 장난을 칠 수 없었다.정성껏 만든 요리가 아니라 차가운 반찬이라도 그녀는 먹을 것이다.사실 그녀는 며칠 전부터 미각을 잃었다. 무엇을 먹어도 다 똑같은 맛이었다.그래서 그녀는 오늘 차린 음식이 맛있는지 없는지를 전혀 알 수 없었다.온다연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니 유강후의 눈빛이 많이 부드러워졌다. 그래서 고개를 돌려 장화연에게 말했다.“셰프의 월급을 올려줘.”그는 말하고 나서 앉았다.그러나 한 요리를 먹을 때 자기도 모르게 눈썹을 찌푸렸다.맛이 이상했다.가장 중요한 것은 셰프가 식초를 넣어서 신맛이 강했다.온다연은 신맛이 나는 음식을 먹는 것을 매우 싫어했다. 식초를 조금 넣어도 그녀는 먹지 않으려고 했다. 그래서 신맛이 필요한 요리일 때는 모두 레몬즙으로 대체했다.지금 온다연은 신맛을 느끼지 못한 것처럼 그가 집어준
온다연의 말에 유강후는 가슴에 비수가 꽂은 것처럼 엄청 아팠다.그녀는 냉소를 지으면서 말했다.“저의 건강 문제를 핑계로 대지 마세요. 저는 믿지 않을 거예요. 설령 사실대로 말해도 저는 믿지 않을 거예요. 아이를 꼭 낳을 테니까 아저씨가 유산시키면...”그녀의 눈에서 섬뜩거리는 빛을 내뿜었다.“아저씨를 죽여버릴 거예요.”온다연은 말을 마치고 나서 돌아섰고 유강후의 눈빛은 어두워졌다. 장화연은 두 사람의 이런 모습을 보고 가볍게 고개를 흔들었다.“도련님, 주 교수는 다연 씨의 컨디션이 갈수록 나빠질 것이기에 입원치료를 받는 것이 좋다고 하셨어요.”유강후는 오랫동안 침묵을 지키고 나서 낮은 소리로 말했다. “이 아이가 다연이의 생명을 위협해서 유산시켜야 한다면 다연이는 어떻게 될 것 같아?”장화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저도 모르겠어요. 다연 씨는 온화해 보이지만 실제로 고집이 세서...”그녀는 말을 잇지 못하고 화제를 바꿨다.“회장님께서 저녁에 본가에 다녀오라고 전화를 여러 번 하셨습니다.”이에 유강후는 표정이 차가워지면서 냉랭하게 말했다.“시간이 없다고 답장을 보내.”이에 장화연은 이렇게 말했다.“유하령 아가씨의 일로 세간이 떠들썩했어요. 비록 소식을 차단했으나 그래도 적지 않는 사람들은 영상 속의 사람이 아가씨라는 것을 알아채서 아가씨의 평판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었어요. 염씨 가문이 기어코 파혼하겠다면 평판이 더욱 안 좋겠죠. 이 일은 다연 씨와 상관이 없지만 본가에서 꼭 가만 두지 않을 겁니다. 도련님, 조심해야 할 것 같아요.”유강후의 눈빛이 지극히 차가워졌고 눈에 살기로 가득 찼다. “그동안 우리가 많이 참았지. 유자성의 아들과 딸이 정말 한심하군. 난 이미 그들에게 많은 기회를 줬어. 그들이 소중히 여기지 않으니 더 이상 봐줄 필요가 없지!”그러고 나서 잠시 말을 멈추고 다시 입을 열었다.“이번에도 아버지가 계속 유자성을 감싸 돌면 본가도 버릴 거야!”그는 말을 마치고 일어나서 떠났다.두 발짝 가더니 그는 계속
그들이 말하는 사이에 장화연은 십여 명의 경호원을 데리고 달려왔다. 그들은 유강후의 옆에 서서 본가 사람들과 필사적으로 싸울 태세를 취했다.최금영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서 기절할 뻔했다. 그녀는 유강후를 가리키면서 말했다.“이, 이런 불효자손을 봤나? 감히 날 이렇게 대해? 네 아버지는 지금 해외방문으로 돌아오지 못하니까 이런 짓을 하는 거야?”유강후는 차가운 말투로 대꾸하였다.“아버지가 오신다면 저는 더 많은 경호원을 불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버지의 경호원과 싸울 수 있겠어요?”최금영은 화가 나서 온몸이 부들부들 떨었다.“네...네 아버지도 감히 나와 이런 태도로 말하지 못하는데 이 버르장머리가 없는 놈이...”“그만하세요! 저는 할머니의 이런 화법에 넘어가지 않을 겁니다. 아버지에게나 하세요.”유강후는 할머니의 말을 끊고 차가운 눈빛으로 유자성을 쳐다보았다.“형도 오셨네요. 어인 일로 오셨는지 말씀하세요.”유자성은 적어도 20년 이상 권력장에 있어서 아주 차분해 보였다.그는 나지막한 소리로 말하였다.“강후야, 예전에 무슨 일이 있었어도 우린 친형제야. 물보다 진한 피를 가졌어. 남을 위해 형제끼리 다투고 가문에 내란이 일어나면 안 되잖아.”그는 유강후의 뒤쪽을 바라본 후 의미심장하게 말했다.“네가 입양한 아이라 누구도 괴롭히지 못하게 하는 심정을 이해해. 내가 할머니와 아버지를 설득시켜서 온다연을 족보에 올릴 수 있어.”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유하령은 큰 소리를 질렀다.“안 돼요! 그런 미천한 년은 자격이 없어요!”최금영도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안 돼!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그년이 유씨 가문에 들어오는 것을 용납 못 해!”유자성은 심호흡을 하면서 낮은 소리로 말했다.“할머니, 지금 충분히 혼란스러워요. 우리 유씨 가문은 대가족이에요. 남을 위해 형제 사이에 내분이 일어나면 안 돼요. 족보에 한 사람이 많아지든 적어지든 중요하지 않아요. 중요한 것은 유씨 가문의 단합이고 사분오열하는 것을 막아야
유강후는 그가 찾아온 이유를 짐작한 듯 서슬 퍼런 눈빛으로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여기 너를 반기는 사람이 없으니 꺼져.”염지훈은 넥타이를 바로잡더니 어쩌다 정색하며 말했다.“오늘은 당신이 반기지 않아도 어쩔 수 없어요. 죄송합니다.”그는 방 안의 사람들을 빙 둘러보더니 나지막이 말했다.“저는 오늘 결혼 얘기를 나누러 왔어요.”모두가 놀라 멍해졌고, 방 안이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온다연만 극히 복잡한 눈으로 염지훈을 바라보고 있었다.잠시 침묵이 흐른 후, 최금영이 노기등등하여 입을 열었다.“우리 하령을 너한테 못 줘.”“며칠 전 언론에 우리 하령과는 그저 장난이고 노이즈 마케팅일 뿐이라고 말했잖아. 이제 와서 결혼 얘기를 하겠다고? 유씨 가문이 우스워? 네가 결혼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물릴 수 있다고 생각해?”옆에 있던 유하령은 놀랐다가 기뻐하며 급히 말했다.“할머니, 저는 좋아요...”최금영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가로챘다.“바보 같은 계집애, 왜 이렇게 진중하지 못해? 정말 좋아도 안 그런 척해야지. 애를 먹이지 않으면 너의 소중함을 몰라. 너는 어쨌든 유씨 가문의 귀한 딸이야. 저 녀석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그런 작은 가문이 아니라고.”“내 말 듣고 얌전히 있어.”유하령은 미칠 듯이 기뻐서 즉시 대답하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웠지만 할머니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꾹 참았다.이때 유자성이 입을 열었다.“염지훈, 우리 유씨 가문도 명문가야.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며칠 전에 파혼하겠다고 했다가 이제 와서 결혼하겠다고? 너무 애들 장난으로 생각하는 거 아니니?”염지훈은 미간을 찌푸렸다.유씨 집안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 같다. 그가 오늘 결혼 얘기를 꺼낼 상대는 유하령이 아니다.솔직히 그는 설명하기 싫었다. 하지만 심미진이 온다연의 이모이자 유자성의 아내라는 것을 생각하면 확실히 말해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그는 옷매무시를 정리한 후 진중하게 말했다.“이전에 어른들 사이에서
그리고 염씨 가문의 두 형제도 뛰어난 인재다. 첫째 염지호는 마케팅 귀재로, 유강후에게 크게 뒤지지 않는다.한편, 세계 최고 명문대 금융학과를 나온 둘째 염지훈은 여신그룹의 배후 조종자라는 소문이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신그룹의 많은 중요한 결정이 그의 손에 달려 있다고 한다.뛰어난 가정 배경과 우월한 외모 덕분에 염지훈은 경원시 재벌집 아가씨들의 쟁탈 대상이 되었다.그런 사람이 유씨 가문의 아가씨를 버리고 아무것도 없는 고아와 결혼하려 한다고?맨 먼저 정신을 차린 유하령이 소리 질렀다.“뭐라고요?”염지훈이 미간을 찌푸렸다.“이게 이해하기 어려운 말인가요? 다연과 결혼하고 싶어서 결혼 얘기를 하러 왔다고요.”그는 뭔가 생각난 듯 말을 이었다.“깜박했네요. 이모님은 다연과 인연을 끊었고, 지금은 유강후 씨가 돌보고 있다고 들었어요. 그럼, 예물은 유강후 씨에게 드려야 하나요?”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유하령이 미친 듯이 온다연에게 달려들었다.“온다연, 나쁜 년! 네가 감히 염지훈 씨를 꼬셔? 어찌 감히 내 사람을!”“그 엄마에 그 딸이라더니, 남자 꼬실 줄밖에 모르는 쌍년!”그녀는 화가 나서 얼굴이 일그러진 채 온다연을 때리려고 달려들었지만 경호원이 즉시 제지했다.그녀는 곧바로 따귀 한 대를 얻어맞고 바닥에 쓰러졌다.유강후가 차가운 표정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어?”유하령은 울음을 터뜨리더니 온다연에게 손가락질하며 욕했다.“작은 아빠는 왜 저년 편만 들어요? 다 보셨잖아요. 저년이 염지훈 씨를 꼬셨어요. 염지훈 씨를 꼬셨다고요.”“저년이 잘못했는데 왜 저를 때리세요?”이때 염지훈이 입을 열었다.“유하령 씨, 그건 오해예요. 제가 다연에게 첫눈에 반했고, 제가 좋아하는 거예요. 다연이 저를 꼬셨다고 말하는 건 가당치 않아요.”하지만 유하령은 전혀 믿지 않고 울면서 말했다.“그럴 리 없어요. 당신이 어떻게 저년에게 반할 수 있죠? 남자를 유혹할 수 있는 저 얼굴 말고는 아무것도 가진
“이 보석들도 그럭저럭 괜찮은데, 몇 세트를 합치면 가치가 200억 넘어요.”염지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유강후가 매섭게 중간에서 잘랐다.“염지훈, 1분 시간을 줄 테니 물건을 가지고 꺼져.”염지훈이 눈썹을 치켜세웠다.“적은가요?”유강후는 이마에 핏줄이 튀어 오르고 눈이 빨개졌다.“꺼져!”염지훈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차분하게 말했다.“유 대표님이 다연의 삼촌이라서 체면을 세워 드린 거예요. 온다연은 이제 성인이기 때문에 나와 결혼할지 여부를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거든요. 당신이 나한테 물러가라고 해도 소용없어요.”말을 마친 그는 온다연을 쳐다보았다.온다연은 병상에 앉아 극히 복잡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다연아, 동의해? 네 생각은 어떤지 말 좀 해봐.”온다연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지훈 씨, 미쳤어요?”염지훈은 눈썹을 치켜올렸다.“미치지 않았어. 난 내가 뭘 하고 있는지 잘 알아.”그때 갑자기 입구 쪽에서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잠시 후, 염지호가 사람들을 데리고 뛰어 들어왔다.그는 살벌하고 난폭한 기운을 내뿜는 유강후의 눈빛을 보고 순식간에 등골이 오싹해졌다.유강후와 어린 고아의 이야기는 그 바닥 사람들이 모두 다 아는 비밀이다.게다가 한이준한테 들은 바로는, 그 어린 고아가 임신해서 유강후가 결혼식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염지호가 직접 축하 선물을 고르러 가려는 찰나에 동생이 예물을 들고 그 고아와 결혼하겠다고 나섰다는 소식을 들었다.그는 일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고 급히 달려왔지만 여전히 한발 늦었다.마구 덤비는 동생이 벌써 유강후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다.염지훈은 염지호가 온 것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형, 외국에 있는 거 아니었어? 왜 돌아왔어?”염지호는 염지훈의 머리를 쥐어박더니 성난 목소리로 말했다.“따라 나와.”체면이 깎인 염지훈은 강경한 어조로 말했다.“형, 나는 결혼 얘기 나누러 왔어. 이렇게 그냥 갈 수 없어.”염지호가 호통쳤다.“따라 나오라고. 내 말이 안 들려?”
“나 책임진다며. 나랑 결혼한다고 약속했잖아. 그런데 어떻게 다른 여자랑 결혼할 수 있어? 난 오빠를 3년이나 기다렸어. 계속 안 나타나면 평생 기다릴 생각이었다고.”“결혼해서 아이까지 낳았다고? 그럼 나는? 나는 어떡하라고?”한재민은 표정이 일그러졌다.“정말 미안하지만, 일이 이렇게 된 이상 되돌릴 방법은 없어.”“은별아, 임신하게 만든 건 내가 너한테 빚진 게 맞아. 어떻게서든 보상할게. 앞으로 내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해도 돼.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게 전부야.”“아니야.”나은별은 울부짖었다.“안돼. 이러면 안 되잖아. 나한테 평생 미안해해야지.”나은별은 대뜸 그의 팔을 잡더니 눈물을 흘리며 바라봤다.“오빠, 솔직하게 얘기해줘. 그 여자가 오빠를 구한 거야? 맞지?”한재민은 고개를 끄덕였다.“응. 날 구해준 게 맞아.”그러자 나은별은 갑자기 웃음을 지었다.“오빠, 이혼해. 내가 다 이해할 테니까 이혼하고 나한테 와. 절대 탓하지 않을게.”“단지 은혜를 갚기 위해서 그 여자랑 결혼한 거잖아. 목숨을 구해줬으니 그럴 수도 있어. 오빠는 그 여자를 사랑하지 않아. 오빠가 사랑하는 사람은 여전히 나잖아.”“그냥 이혼하고 위자료 주면 되잖아. 아이는 내가 키울게. 나는 안 낳아도 돼. 정말 내 자식처럼 키울 자신 있으니까 믿어줘.”“내가 이렇게 빌게. 제발 이혼해. 은혜에 눈이 멀어서는 안 되잖아. 오빠는 사랑이 아니라 고마운 감정 때문에 결혼했다니까? 오빠가 사랑하는 사람은 나야.”한재민의 잘생긴 얼굴에는 짜증이 드러났고 나은별을 밀어내더니 싸늘하게 말했다.“미안해. 그건 안 될 것 같아. 누굴 사랑하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아. 이혼 안할거야.”나은별은 오열했다.“아니야. 그게 아니잖아. 그럼 나는? 나는 어떡하라고.”한재민이 말했다.“과거에 머무른다고 달라지는 건 없어. 차라리 나를 원망하고 미워해. 내가 잘못한 부분은 반드시 보상할게.”나은별의 머릿속에 수천 가지의 사악한 생각이 스쳤다.‘
한재민은 차 옆으로 물러서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나은별, 흥분하지 말고 내 말 들어. 모든 게 달라졌어. 네가 생각하는 것과 많이 다를 거야.”한없이 차가운 한재민을 마주하자 나은별은 자리에 얼어붙은 채로 눈물을 쏟아냈다.“내가 누군지 잊은 거야? 오빠, 나 은별이잖아. 오빠가 좋아하던 은별이라고.”나은별은 그렇게 말하며 한재민을 안으려고 다가갔다.그러자 한재민은 즉시 그녀에게서 거리를 두었다.“네가 나은별인 걸 알아. 우리에 예전에 그런 관계였던 것도 아는데...”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은별을 달려가 한재민을 꽉 껴안았다.“오빠, 기억하고 있었구나. 날 잊은 줄 알았어. 내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알아?”나은별은 좀처럼 눈물을 그치지 못했다.“나씨 가문이 예전보다 못하니까 사람들이 다 나를 무시해. 강후 씨랑 이준 씨도 더 이상 나한테 신경 안 써. 모든 사람이 괴롭힌단 말이야. 하지만 괜찮아. 오빠가 돌아왔으면 됐어.”“이번 생에는 못 만날 줄 알았는데 정말 살아있었구나. 오빠, 내가 얼마나 비참했는지 알아?”“특히 지난 3년 동안 너무 힘들었어. 강후 씨도 나한테 눈길 한번 안 주고 계속 무시만 해. 혼자서 온갖 수모를 힘들게 버티고 있었어.”“오빠가 없으니까 모든 사람이 나한테 차가워진 것 같아. 나씨 가문도 예전만 못하고...”“마음이 엄청 쓸쓸했어. 아무리 생각해도 나한테 잘해주는 사람은 오빠밖에 없어.”한재민은 천천히 그녀를 밀어냈다.“은별아, 미안해. 솔직히 말하면 지난 몇 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어. 대학 이후의 일은 기억하는 게 없으니까 네 말에 공감도 못 하겠고.”그는 손을 내밀며 결혼반지를 드러냈다.“물에 빠졌다가 정말 운 좋게 구조됐는데 뇌신경이 심하게 손상되었어. 오랜 재활 끝에 일부 기억을 되찾은 건 맞지만 자세하게 아는 건 없어.”“재활하는 동안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고 우린 결혼해서 아이도 낳았어.”“내가 기억하는 우리는 단지 오빠 동생으로 지내던 사이야. 다른 사람을 통해 우리
유강후가 말했다.“설무 스튜디오. 알아서 찾아봐.”한이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지갑을 챙기더니 곧장 밖으로 나갔다.한재민은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물었다.“설마 내가 부딪혔던 그 여자를 좋아하고 있는 거야?”유강후는 고개를 끄덕였다.“곽혜영을 좋아한다고 자기 마음까지 속이고 있었던 거야. 그러다가 가장 소중한 걸 놓치게 된 거지.”한재민이 물었다.“곽혜영? 예전에 이준이를 구해줬던 곽씨 가문 아가씨를 말하는 거야?”유강후는 미간을 찌푸렸다.“곽혜영이 어릴 때 구해줬다고?”“도우미였는지 집사 딸이었는지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예전에 이준이랑 같이 납치된 적이 있었어. 그 딸은 중간에 도망쳤고 나중에 곽씨 가문 아가씨가 이준을 발견해서 경찰서에 데리고 간 거야. 그때 이후로 곽씨 가문을 엄청 잘 챙겨줬지. 그 집 아가씨랑 친하게 지내다가 나중에 해외로 나가면서 멀어졌을 거야.”“내 추측이 맞다면 임혜린이 집사의 딸이겠네? 참 아이러니하다.”한재민은 시계를 보며 말했다.“난 이만 가봐야 할 것 같아. 은하랑 아이들 선물 사러 나왔는데 우연히 널 마주칠 줄은 몰랐네. 가족들이랑 저녁 약속이 있어서 먼저 들어갈게.”그러나 주차장에 도착한 순간 익숙한 그림자가 그의 뒤에 나타났다.“재민 오빠...”한재민은 뒤돌아보지 않고도 그 사람이 누구인지 짐작 갔다.그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돌아섰다.아니나 다를까 나은별이 흰색 원피스를 입은 채 눈앞에 나타났고 청순한 모습은 예전과 똑같았다.순간 한재민은 세 사람이 함께 고등학교를 다녔던 수년 전으로 돌아간 느낌이었다.그때의 나은별은 몹시 순수했고 한재민과 유강후 모두 여동생처럼 그녀를 대했다.그렇게 세 사람은 어린 시절의 공통된 추억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다만 지금의 나은별은 많이 변했다.나은별은 그와 유강후를 자신의 소유물처럼 여기며 두 사람 모두 본인과 결혼하지 못해 안달이라는 헛소문을 퍼뜨렸다.그때부터 그들이 관계는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다.그 후의 일은 기억나는 게
사진 속 단발머리 여자는 밝은 미소를 짓고 있었고 그녀의 눈은 별이 가득 찬 것처럼 반짝였다.바로 임혜린이다.“입구에서 어떤 여자랑 부딪혔어. 아마 그때 떨어진 지갑인 것 같아.”한이준은 어두운 표정으로 유강후를 바라봤다.“너도 있었어?”유강후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한이준은 갑자기 분노하더니 그에게 주먹을 날렸다.단번에 주먹을 막아낸 유강후는 옆으로 밀어내며 화를 냈다.“미쳤어?”한이준은 두 눈이 빨갛게 충혈된 채로 거친 숨을 몰아쉬며 욕설을 퍼부었다.“X발. 넌 인간도 아니다. 내가 미친 사람처럼 찾고 있는 걸 뻔히 알면서 그걸 숨겨? 어디에 있는지 알지?”“이제부터 너 같은 친구는 필요 없어. 꺼져.”유강후는 싸늘하게 말했다.“잘 사고 있는 사람을 왜 찾아? 지금 하고 있는 사업이 얼마나 잘되는지 알아? 유명한 디자이너가 됐어. 좋다고 매달리는 남자가 줄을 섰는데 네가 왜 끼어드냐고.”혹여나 한이준은 충격을 덜 받을까 봐 유강후는 모진 말을 내뱉었다.“넌 곽혜영이랑 같이 있어야지. 첼로 금상이 목표라고 하지 않았나? 얼른 돈으로 싹쓸이해서 곽혜영한테 갖다 줘. 세계적으로 유명해지게 만들어야지.”“닥쳐.”한이준은 화가 나서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나랑 임혜린은 네가 생각하는 그런 사이가 아니야.”“너희가 어떤 관계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봤을 때 넌 곽혜영을 좋아해. 당연히 결혼할 줄 알았다니까? 그런데 3년이 지났는데도 감감무소식일 줄은 몰랐네. 도대체 무슨 생각이야?”줄곧 과묵하던 유강후는 입에 모터라도 달린 듯 쉴 새 없이 말했다.그는 임혜린과 한이준에 대해 모든 걸 알고 있었다. 아무리 임혜린을 좋아하지 않더라도 지난 2년간 한이준의 행동은 선을 넘었고 그에게서 벗어나려는 임혜린의 입장도 이해가 되었다.정작 떠나자 한이준은 후회가 된 듯 여기저기 수소문하며 임혜린을 찾기 시작했다.그러나 임혜린은 일찌감치 그 관계를 놓아버렸다. 경원에 있던 집도 팔고 주변 사람들과 연락도 끊은 채 증발해 버렸다.그제야 조급해진 한
한재민이 말했다.“강후야, 미안. 알다시피 나는 아예 그때의 기억이 없어.”유강후가 답했다.“나은별 지금 휴게실에 있는데 잠깐 만나볼래?”한재민은 고개를 가로저었다.“됐어. 은하가 알면 안 좋아할 거야. 다만 네가 목숨만은 살려줬으면 좋겠다. 그래도 옛정이라는 게 있잖니. 난 앞으로 나은별의 일에 신경 쓰지 않을 거야.”“곧 결혼식인데 올 거지?”한재민은 웃으며 답했다.“은하 출산일이랑 겹치지 않는다면 꼭 갈게.”두 사람이 수다를 떠는 사이 한이준이 도착했다.그는 한재민이 이곳에 있을 줄은 몰랐는지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오랜 세월 떨어져 지내다 보니 두 형제는 이미 낯선 사람처럼 어색했다.게다가 한재민이 한씨 가문에 돌아가는 걸 거부하고 있어서 한이준은 다소 원망스러워했다.두 사람은 집안 상황에 대해 몇 마디 주고받다가 대화가 끊겼다.그러자 한재민은 마음이 조급해졌다.“형, 정말 밖에서 떠돌아다닐 거야?”한재민이 답했다.“한씨 가문은 너만 있으면 돼. 그동안 혼자서도 잘해왔잖아. 내가 있을 때보다 훨씬 더 잘하고 있어서 마음이 놓여.”“하지만... 엄마랑 아빠가 형을 많이 보고 싶어 해.”“엄마, 아빠한테는 네가 있잖아. 은하한테는 나밖에 없거든. 은씨 가문이 재기하는 걸 도와줘야 하는 상황이라 솔직히 한씨 가문에 관여할 여력이 없어. 그리고 지난 몇 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기억이 안 나. 돌아가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하지만 일 년에 서너 번은 꼭 인사드리러 갈 거야. 나도 아들로서 효도는 해야지. 그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아.“한이준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아직도 엄마랑 아빠를 원망하고 있어? 유독 형한테는 많이 엄격하셨잖아. 장남이라서 모든 희망과 가문의 미래를 형한테 걸었던 것 같아. 이제 와서 말하지만 엄마가 남몰래 많이 우셨어.”“열 살 때였나? 아빠가 말도 없이 형을 특수 훈련장에 보내서 엄마랑 대판 싸웠잖아. 그걸 알아? 그 후로 엄마가 매일 훈련장 밖에서 지켜
유강후는 잠시 멈칫하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아니다. 우리 셋이 모이면 현수 씨랑 지원이가 서운하다고 난리 치겠네. 차라리 내가 미리 연락할게. 시간 괜찮다고 하면 이쪽으로 오라고 할게.”한재민이 답했다.“그래. 하루 정도는 여유 있으니까 나중에 시간 정하면 알려줘.”유강후가 다시 물었다.“이번에 형수님이랑 조카도 함께 온 거야? 같이 왔으면 데리고 오지. 아직 형수님을 만나 뵌 적이 없네?”아내와 아이를 언급하자 한재민의 표정은 한층 부드러워졌다.“같이 왔어. 은하 이번에 둘째를 임신했어. 혼자 두고 나올 수는 없어서 그냥 집에 있으라고 했어. 나도 그게 마음이 편하고.”유강후의 눈빛에는 부러움이 스쳤다.“우리 중에서 제일 먼저 아이를 낳을 줄은 몰랐네. 그것도 둘씩이나. 솔직히 제일 많이 놀았던 사람이잖아.”두 사람은 같은 생각이 스친 듯 갑자기 말이 없었다.“화장실 다녀올게요.”이를 알아챈 온다연은 눈치껏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 사람 모두 오랜만에 만났으니 당연히 옛 추억에 대해 언급하고 싶을 것이고 그중에 여자 얘기가 빠질 수는 없다. 아니나 다를까 온다연이 떠나자 한재민은 곧바로 물었다.“어릴 때 사람들이 우리 둘 다 나은별을 좋아한다고 생각했잖아. 사실 나는 네 마음속에 다른 사람이 있다는 걸 눈치챘어. 그런데 너무 깊이 숨겨서 아직도 그 여자가 누군지 모르겠다니까?”유강후는 눈빛이 부드러워졌다.“내 지금 아내야.”한재민은 온다연이 떠난 방향을 바라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그러니까 그때 좋아하던 사람이 저분이라고?”“나이 차이가 꽤 있네?”“어쩐지 그렇게 숨기더라. 사람들이 수군거릴까 봐 얘기 못 했던 거지?”유강후가 답했다.“사람들이 수군거리는 건 대수롭지 않았는데 그때 다연이가 많이 어렸거든. 나도 일 때문에 집 비우는 일이 잦아서 옆에 있을 수가 없었어.”유강후는 그동안 온다연이 겪었던 일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미어졌다.“많이 후회해. 그런데 후회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어.”한재민은 말문이 막혔
온다연은 눈살을 찌푸렸다.“누가 보면 우리가 살 능력이 없는 줄 알겠네.”“서혜윤? 양심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네요. 한국인이면서 한국을 모욕하는 게 사람이 할 짓인가요? 대중의 사랑을 먹고 사는 직업이면 감지덕지할 줄 알아야지 어떻게 이용하고 무시할 생각을 하는 거죠? 이런 사람이 배우를 한다면 아이들이 뭘 보고 자라겠어요.”“출연금지 시키는 게 현명한 선택이네요. 오늘 찍힌 영상도 인터넷에 유포하는 게 좋겠어요. 사람들도 자기가 좋아하던 배우의 본모습은 알아야죠.”“삼촌인 저분도 같이 처리하는 게 좋겠어요. 피를 섞은 가족인데 어떤 사람인지는 안 봐도 뻔해요. 아무튼 앞으로 연예계에서 서혜윤은 보고 싶지 않네요.”유강후는 흐뭇하게 웃었다.“알겠어요. 유나 씨가 원한다면 그렇게 할게요.”“또 뭐 사고 싶은 건 없어요? 쇼핑하러 나왔는데 괜히 저 사람들 때문에 기분 망치면 안 되잖아요. 들어가서 쇼핑할까요?”유강후는 온다연과 함께 걸음을 옮겼다.뒤따라간 임혜린은 대뜸 온다연에게 말했다.“나는 급한 일이 있어서 같이 못 갈 것 같아. 먼저 가볼게.”그렇게 말하고는 온다연의 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부랴부랴 밖으로 뛰쳐나갔다.그러다가 입구에서 어떤 잘생긴 남자와 부딪히고 말았다.남자의 얼굴을 본 순간 임혜린은 표정이 확 돌변했다.“한, 한이준...”남자는 미간을 찌푸렸다.“내 동생을 알아요?”임혜린은 그제야 이 남자가 한이준과 비슷하게 생긴 사람이라는 걸 알아챘다. 디테일하게 말하자면 한이준보다 훨씬 성숙했다.깜짝 놀란 임혜린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한재민?”‘죽은 사람이잖아... 왜 살아있는 거지? 요즘은 죽다 살아나는 게 유행인가?’남자가 물었다.“저를 아세요?”임혜린은 멍하니 끄덕이다가 황급히 고개를 가로저었다.“아니요. 모릅니다.”어렸을 때 멀리서 몇 번 본 게 전부라 아는 사이라고 말하기에는 애매하다.한씨 가문과 그 어떤 일로도 엮이고 싶지 않았던 임혜린은 재빨리 돌아서서 밖으로 나갔다.이때 그녀의
서혜윤은 여전히 아무것도 모른 채 당당하게 말했다.“맞아요. 대작 영화죠. 아참, 방금 지나가신 분이 나 대표님인 것 같아요.”서혜윤은 입구를 힐끗 쳐다보았지만 나은별은 보이지 않았다.“나 대표님과 아는 사이인가요?”유강후는 그녀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곧장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그리고 그는 스피커폰으로 돌렸고 곧이어 한이준의 나른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강후야, 회사 도착했는데 너 지금 어디야?”다른 사람은 괜찮았는데 임혜린은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인상을 찌푸렸다.‘한이준 이 나쁜 X. 설마 유강후한테 끌려온 거야?’유강후는 싸늘한 눈빛으로 서혜윤을 쳐다보더니 담담하게 말했다.“북아메리카에 왔다고?”“응. 왜 계속 헛소리만 해.”안색이 어두워진 임혜린은 당장이라도 유강후의 살점을 찢을 듯 사나운 눈빛으로 노려봤다.‘딱 봐도 정보 유출했네. 진짜 왜 이러는 거지?’유강후는 여전히 태연했다.“서혜윤이라고 알아? 하나 엔터 소속인 것 같은데?”서혜윤은 자신에게 좋은 일이 생기는 줄 알고 기쁨을 감추지 못한 채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유강후를 바라봤다.“들어본 이름이네? 왜? 마음에 들었어?”유강후는 차갑게 말했다.“한이준, 너는 함부로 놀리는 그 입이 문제야. 중요한 얘기를 해주려고 했는데 기분이 상해서 말하고 싶지 않다.”“알았어. 조심하면 되잖아. 중요한 얘기라는 게 뭐야?”유강후는 임혜린을 힐끗 쳐다보더니 그녀의 극도로 화가 난 표정을 보고선 비웃듯이 말했다.“됐어. 다음에 얘기할게. 대신 처리해 줘야 할 일이 생긴 것 같아.”“서혜윤이라는 여자 당장 끌어내려.”이 말이 나오자 모두가 놀랐지만 유독 임혜린만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서혜윤은 그제야 다급해지기 시작했다.“대표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갑자기 저를 끌어내린다뇨?”유강후는 상대하기 싫은지 가볍게 무시하고선 핸드폰 너머의 한이준에게 말했다.“명심해. 어디에 출연하는 꼴은 보고 싶지 않으니까 똑바로 처리해.”“다짜고짜 연락해서 한다는 말이 여배
서혜윤은 멍하니 얼굴을 가리고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서안준을 바라봤다.“삼촌, 왜 때려요?”서안준은 버럭 화를 냈다.“입 다물라고 했잖아. 이 사람이 누군지 알아?”서혜윤은 여전히 고집을 부렸다.“주주라면서요? 그게 뭐 대단하다고. 기껏해야 주식을 조금 더 많이 가지고 있을 뿐이잖아요. 고작 그걸로 사람을 이렇게 무시해도 되는 거예요?”서안준은 바보 같은 조카 때문에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이었다.“쇼핑몰 주주일 뿐만 아니라 미래 그룹의 대표야. 강씨 가문의 후계자라고. 이제 알겠어? 무식하면 입 다물고 있어야지. 너 때문에 괜히 나까지 밉보였잖아.”서혜윤은 충격을 금치 못했다.“이분이 미래그룹 대표라고요?”마침 서혜윤은 이번에 미래 그룹이 투자한 영화에 참여하게 되었다.소문에 의하면 미래 그룹의 고위 임원이 자신의 아내를 위해 그들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시나리오로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영화는 그렇다치고 가장 중요한 건 이 영화의 여주인공이 차기 미래 그룹의 쥬얼리 모델과 많은 고급 화장품 브랜드의 모델로 채택되어 무한한 혜택을 얻을 수 있다.서혜윤은 청순하고 섬세하게 생긴 외모 덕분에 캐스팅 때 어떠한 스폰서의 비서로부터 적극적인 지지를 받았다고 한다. 그분은 서혜윤이 실제 영화의 여주를 닮은 데다가 연기력도 나름 괜찮아서 후보에 올렸다고 한다.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서 미래 그룹의 회장님을 만나게 된 것이다.게다가 영화 속 여주인공의 실물도 보게 되었다.‘젠장. 망했네.’서혜윤은 곧바로 다른 대책을 생각했다.실제 여주인공을 닮았다는 건 눈앞의 이 남자도 분명 그녀에게 어느 정도 동정심을 가지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시밎어 서혜윤은 톱 배우 라인에서도 예쁘다고 소문이 났기에 애교를 부린다면 흔들리지 않을 남자가 없다며 자신했다.이를 생각한 서혜윤은 목소리를 낮추고 눈물을 글썽이며 유강후를 바라봤다.“대표님, 죄송합니다. 일부러 그런건 아니에요. 이분이 대표님의 아내라는 걸 알았다면 절대 함부로 행동하지 않았을 거예요...”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