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강후는 그가 찾아온 이유를 짐작한 듯 서슬 퍼런 눈빛으로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여기 너를 반기는 사람이 없으니 꺼져.”염지훈은 넥타이를 바로잡더니 어쩌다 정색하며 말했다.“오늘은 당신이 반기지 않아도 어쩔 수 없어요. 죄송합니다.”그는 방 안의 사람들을 빙 둘러보더니 나지막이 말했다.“저는 오늘 결혼 얘기를 나누러 왔어요.”모두가 놀라 멍해졌고, 방 안이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온다연만 극히 복잡한 눈으로 염지훈을 바라보고 있었다.잠시 침묵이 흐른 후, 최금영이 노기등등하여 입을 열었다.“우리 하령을 너한테 못 줘.”“며칠 전 언론에 우리 하령과는 그저 장난이고 노이즈 마케팅일 뿐이라고 말했잖아. 이제 와서 결혼 얘기를 하겠다고? 유씨 가문이 우스워? 네가 결혼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물릴 수 있다고 생각해?”옆에 있던 유하령은 놀랐다가 기뻐하며 급히 말했다.“할머니, 저는 좋아요...”최금영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가로챘다.“바보 같은 계집애, 왜 이렇게 진중하지 못해? 정말 좋아도 안 그런 척해야지. 애를 먹이지 않으면 너의 소중함을 몰라. 너는 어쨌든 유씨 가문의 귀한 딸이야. 저 녀석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그런 작은 가문이 아니라고.”“내 말 듣고 얌전히 있어.”유하령은 미칠 듯이 기뻐서 즉시 대답하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웠지만 할머니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꾹 참았다.이때 유자성이 입을 열었다.“염지훈, 우리 유씨 가문도 명문가야.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며칠 전에 파혼하겠다고 했다가 이제 와서 결혼하겠다고? 너무 애들 장난으로 생각하는 거 아니니?”염지훈은 미간을 찌푸렸다.유씨 집안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 같다. 그가 오늘 결혼 얘기를 꺼낼 상대는 유하령이 아니다.솔직히 그는 설명하기 싫었다. 하지만 심미진이 온다연의 이모이자 유자성의 아내라는 것을 생각하면 확실히 말해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그는 옷매무시를 정리한 후 진중하게 말했다.“이전에 어른들 사이에서
그리고 염씨 가문의 두 형제도 뛰어난 인재다. 첫째 염지호는 마케팅 귀재로, 유강후에게 크게 뒤지지 않는다.한편, 세계 최고 명문대 금융학과를 나온 둘째 염지훈은 여신그룹의 배후 조종자라는 소문이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신그룹의 많은 중요한 결정이 그의 손에 달려 있다고 한다.뛰어난 가정 배경과 우월한 외모 덕분에 염지훈은 경원시 재벌집 아가씨들의 쟁탈 대상이 되었다.그런 사람이 유씨 가문의 아가씨를 버리고 아무것도 없는 고아와 결혼하려 한다고?맨 먼저 정신을 차린 유하령이 소리 질렀다.“뭐라고요?”염지훈이 미간을 찌푸렸다.“이게 이해하기 어려운 말인가요? 다연과 결혼하고 싶어서 결혼 얘기를 하러 왔다고요.”그는 뭔가 생각난 듯 말을 이었다.“깜박했네요. 이모님은 다연과 인연을 끊었고, 지금은 유강후 씨가 돌보고 있다고 들었어요. 그럼, 예물은 유강후 씨에게 드려야 하나요?”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유하령이 미친 듯이 온다연에게 달려들었다.“온다연, 나쁜 년! 네가 감히 염지훈 씨를 꼬셔? 어찌 감히 내 사람을!”“그 엄마에 그 딸이라더니, 남자 꼬실 줄밖에 모르는 쌍년!”그녀는 화가 나서 얼굴이 일그러진 채 온다연을 때리려고 달려들었지만 경호원이 즉시 제지했다.그녀는 곧바로 따귀 한 대를 얻어맞고 바닥에 쓰러졌다.유강후가 차가운 표정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어?”유하령은 울음을 터뜨리더니 온다연에게 손가락질하며 욕했다.“작은 아빠는 왜 저년 편만 들어요? 다 보셨잖아요. 저년이 염지훈 씨를 꼬셨어요. 염지훈 씨를 꼬셨다고요.”“저년이 잘못했는데 왜 저를 때리세요?”이때 염지훈이 입을 열었다.“유하령 씨, 그건 오해예요. 제가 다연에게 첫눈에 반했고, 제가 좋아하는 거예요. 다연이 저를 꼬셨다고 말하는 건 가당치 않아요.”하지만 유하령은 전혀 믿지 않고 울면서 말했다.“그럴 리 없어요. 당신이 어떻게 저년에게 반할 수 있죠? 남자를 유혹할 수 있는 저 얼굴 말고는 아무것도 가진
“이 보석들도 그럭저럭 괜찮은데, 몇 세트를 합치면 가치가 200억 넘어요.”염지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유강후가 매섭게 중간에서 잘랐다.“염지훈, 1분 시간을 줄 테니 물건을 가지고 꺼져.”염지훈이 눈썹을 치켜세웠다.“적은가요?”유강후는 이마에 핏줄이 튀어 오르고 눈이 빨개졌다.“꺼져!”염지훈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차분하게 말했다.“유 대표님이 다연의 삼촌이라서 체면을 세워 드린 거예요. 온다연은 이제 성인이기 때문에 나와 결혼할지 여부를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거든요. 당신이 나한테 물러가라고 해도 소용없어요.”말을 마친 그는 온다연을 쳐다보았다.온다연은 병상에 앉아 극히 복잡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다연아, 동의해? 네 생각은 어떤지 말 좀 해봐.”온다연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지훈 씨, 미쳤어요?”염지훈은 눈썹을 치켜올렸다.“미치지 않았어. 난 내가 뭘 하고 있는지 잘 알아.”그때 갑자기 입구 쪽에서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잠시 후, 염지호가 사람들을 데리고 뛰어 들어왔다.그는 살벌하고 난폭한 기운을 내뿜는 유강후의 눈빛을 보고 순식간에 등골이 오싹해졌다.유강후와 어린 고아의 이야기는 그 바닥 사람들이 모두 다 아는 비밀이다.게다가 한이준한테 들은 바로는, 그 어린 고아가 임신해서 유강후가 결혼식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염지호가 직접 축하 선물을 고르러 가려는 찰나에 동생이 예물을 들고 그 고아와 결혼하겠다고 나섰다는 소식을 들었다.그는 일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고 급히 달려왔지만 여전히 한발 늦었다.마구 덤비는 동생이 벌써 유강후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다.염지훈은 염지호가 온 것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형, 외국에 있는 거 아니었어? 왜 돌아왔어?”염지호는 염지훈의 머리를 쥐어박더니 성난 목소리로 말했다.“따라 나와.”체면이 깎인 염지훈은 강경한 어조로 말했다.“형, 나는 결혼 얘기 나누러 왔어. 이렇게 그냥 갈 수 없어.”염지호가 호통쳤다.“따라 나오라고. 내 말이 안 들려?”
염지호는 몸이 굳어졌지만 이내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그래, 돌아가서 잘 가르칠게. 정말 미안해.”그러고 나서 옆에 있는 사람에게 눈짓했다.“더 망신당하기 전에 빨리 치워.”그들 일행은 물건을 챙긴 후 서둘러 걸어 나갔다.이때 모든 사람의 시선이 온다연에게 집중됐는데, 오직 심미진만 넋 놓고 예물을 지켜보다가 염씨 집안 사람들이 멀리 사라져서야 정신을 차렸다.그녀는 유강후를 힐끗 쳐다보더니 그가 자기를 보지 않자 그제야 입을 열었다.“다연아, 너 언제부터 염지훈과 그런 사이가 됐어? 염지훈이 하령의 남자친구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 왜 그랬어?”이 말을 들은 온다연은 화가 나다 못해 웃음이 나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심미진, 누구나 당신처럼 부자만 보면 달려드는 줄 알아? 그리고 내가 누구랑 어떻게 지내든지 당신이 무슨 상관인데? 지금 무슨 신분으로 나를 가르쳐?”심미진은 아직도 그 거액의 예물을 생각하고 있었다.도시 중심의 아파트 20여 채와 상가 10여 개면 적어도 수백억의 가치가 있을 텐데. 이 좋은 일이 원래는 그녀의 것이었다. 하지만 얼마 전에 있었던 일 때문에 온다연과 사이가 멀어졌다.‘안 그랬으면, 오늘 그 예물들이 내 앞에 오는 건데.’그녀는 대단한 자존심을 가진 유씨 가문이 절대 염씨 집안과 혼인을 맺지 않을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그러면 온다연이 염씨 집안에 시집갈 가능성이 크다.그녀는 온다연의 이모이고 유일한 가족이므로 그 예물들은 당연히 그녀의 것이다.며칠 전에 인연을 끊었지만 어릴 때부터 쭉 봐온 아이다.온다연은 성격이 온화하고 다루기 쉬우며 혈육 간의 정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심미진은 온다연을 다시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다고 100% 확신했다.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그녀는 부드러운 말투로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얘가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나는 너의 이모이고 유일한 가족이야. 당연히 이모의 신분으로 너를 가르치는 거지.”온다연이 말하기 전에 유강후가 날카로운 눈빛을 보내왔다.“당신은 그
유강후는 차가운 눈빛으로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을 빙 둘러보더니 마지막에 유자성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또박또박 말했다.“내가 바로 형이 말한 그 애비 없는 자식의 아빠야.”마른하늘에 천둥이 치는 것 같은 소리에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깜짝 놀랐다.현장은 자신의 심장박동 소리를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조용했다.몇 분이 지나서야 최금영이 몸을 부르르 떨며 입을 열었다.“강후야, 그 말은...”유강후는 표정이 극히 담담했다.“네, 제 아이입니다. 날씨가 좀 따뜻해지면 온다연과 결혼식을 올릴 생각입니다.”그제야 정신을 차린 최금영이 버럭 화를 냈다.“안 돼.”유강후는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았다.“동의하지 않아도 소용없어요. 할머니 의견을 묻는 것이 아니라 통보하는 거예요.”최금영은 화가 나서 온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그녀는 원래 온다연 그년을 혼내서 유하령 대신 분풀이하려고 찾아온 것이었다.그런데 유강후가 제 입으로 온다연이 임신했고 그녀와 결혼하겠다고 말할 줄이야.이 소식은 외계인이 지구에 침입했다는 것보다 더 이해할 수 없었다.유씨 가문의 자랑인 유강후는 지혜와 재주가 뛰어나고 장래가 한없이 밝다. 그런 그가 어찌 아무것도 없는 고아와 이런 관계를 맺을 수 있단 말인가?틀림없이 저년이 유강후를 유혹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유강후의 신분으로 어찌 저런 천한 년을 마음에 둘 수 있겠는가?그녀는 온다연 앞에 막아선 경호원들에게 손짓했다.“너희들 비켜. 저 천한 년이 또 무슨 여우 같은 재주를 배워 강후를 유혹했는지 봐야겠어.”경호원들은 유강후의 명령만 따르기에 최금영의 명령을 아예 무시했다.경호원들이 자신을 상대하지 않자, 최금영은 더욱 화가 나서 소리 질렀다.“비켜. 너희들은 귀가 없어?”이때 온다연이 입을 열었다.“아저씨, 경호원들을 한쪽으로 비키게 해주세요. 할 말이 있어요.”유강후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경호원들이 한쪽으로 비켜섰다.모든 유씨 집안 사람의 시선이 그녀의 배에 집중됐다. 온다연은 그런 시선
유씨 집안 사람들이 깜짝 놀라 허둥지둥하는 가운데 심미진이 급히 다가가 최금영을 부축했다.최금영은 숨을 헐떡이며 유강후와 온다연에게 손가락질했고, 부들부들 떨면서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마치 유강후와 온다연이 무슨 큰 죄를 지은 것처럼.심미진이 급히 그녀의 등을 두드려 진정시켰다.몇 분 후에야 최금영은 숨을 가다듬고 온다연을 가리키며 말했다.“너를 절대 유씨 집안에 들이지 않을 거니까 포기해.”온다연은 무슨 우스운 말을 들은 것처럼 피식 웃었다.“내 아이는 유씨 성을 가지지 않을 거예요. 더러워서 싫어요.”“너!”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최금영은 잠시 더 험한 말로 온다연을 욕하지 못해 얼굴이 시뻘게졌다.온다연이 또 무슨 말을 하려 하자, 심미진이 그녀를 말렸다.“다연아, 할머님을 여기서 죽일 작정이야?”“할머님에게 사과해, 어서.”온다연은 그녀를 상대하지 않고 고개를 돌려 유강후에게 말했다.“아저씨, 저는 피곤해서 이 사람들을 상대하고 싶지 않아요. 가라고 하세요. 앞으로도 이 사람들을 보고 싶지 않아요.”유강후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지막하게 말했다.“알았어.”그는 돌아서서 유자성을 바라보았다.“형, 이만 가세요. 안 가면 경호원을 불러 끌어낼 거예요.”유자성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애써 화를 참으며 말했다.“강후야, 일이 이 지경이 됐으니 어떻게 할 건지 상의해야 하지 않겠니? 온다연은 어쨌든 네 형수 조카딸이야. 너희 둘이 결혼하면 우리 유씨 가문이 웃음거리가 돼...”“그건 형이 신경 쓸 일이 아니에요.”유강후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의 말을 잘랐다.“온다연은 가족이 없고 누구의 조카딸도 아니에요. 다연이 누구랑 결혼하든 유씨 집안에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어요.”그의 말투는 극히 차가웠다.“남의 일에 신경 쓸 여유가 있으면 형의 아들과 딸이나 잘 간수하세요. 이 상태로는 민준에게 유씨 가문의 회사를 넘겨줄 수 없어요. 민준이 정말 경영의 길로 갈 수 없다면, 새로운 길을 찾아주는 것이 나을 것 같아요.
유하령이 최근에야 알게 된 사실인데, 유강후는 M국에 있었던 몇 년 동안 많은 산업에 투자했으며 그 규모가 이미 미래그룹과 비슷하다고 한다.하지만 그건 아무것도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유강후가 강씨 가문의 유일한 후계자라는 것이다.그리고 강씨 가문은 북아메리카에서 가장 유명한 재벌 중 하나이며, 일국 경제를 조종할 수 있을 만큼 규모가 크다.그러니 후계자인 유강후의 몸값은 가늠할 수 없다.유씨 가문도 회사를 더러 가지고 있지만, 유강후가 가지고 있는 것과 비교나 되는가?그녀는 원래 유강후에게 기대서 평생 호의호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온다연 때문에 유강후는 이제 더 이상 그녀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카드까지 정지시켰다.그녀가 지난달 눈독 들였던 한정판 가방과 차도 아직 사지 못했다.‘이는 모두 온다연 그 천한 년의 잘못이다.’이제 온다연은 염지훈을 가로챘을 뿐만 아니라 유강후의 아이까지 가졌으니 앞으로 유하령의 처지는 갈수록 어려워질 것이다.유하령의 시선은 독사처럼 온다연의 얼굴에 닿았다가 다시 담요를 덮은 그녀의 배로 내려갔다. 대담하고 악독한 생각이 불쑥 떠올랐다.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주먹을 불끈 쥔 채 나지막이 말했다.“작은 아빠, 잘못했어요. 제가 잘못했어요. 하지만 저를 버리지는 마세요. 제가 고칠게요...”그녀를 상대할 마음이 없는 유강후는 직접 유자성에게 말했다.“당장 나가세요. 안 그러면 경호원을 불러 쫓아낼 거예요.”너무 많은 일이 한꺼번에 일어나서 유자성도 기진맥진했다. 그는 온다연을 빤히 들여다보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모든 것은 아버지가 돌아오면 그때 다시 얘기하자. 강후야, 너무 극단적으로 행동하지 마.”말을 마친 그는 화가 나서 기절할 뻔했던 최금영을 부축해 밖으로 나갔다.떠나기 전에 심미진은 달갑지 않은 듯 온다연을 쳐다보며 무슨 말을 하려 했지만, 유강후의 매서운 눈빛에 놀라서 그만뒀다.유씨 집안 사람들이 떠나자 병실은 즉시 조용해졌다.유강후는 온다연의 귀밑머리를
그런 생각을 하며 유강후는 인내심 있게 말했다.“가구는 고르기 싫으면 그만둬. 커튼과 침구는 밝은색으로 하는 게 어때?”온다연은 여전히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더욱 눈빛이 어두워진 유강후는 거의 빌붙는 말투로 말했다.“그럼, 아기방은 어떤 색으로 페인팅하고 싶어? 노란색으로 할까?”온다연이 마침내 손을 움직이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아저씨, 이런 쓸데없는 짓을 하지 마세요. 아기를 아저씨에게 맡기지 않을 거예요.”유강후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손등에 핏줄이 선명한 것으로 볼 때, 애써 참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그는 온다연의 말을 듣지 못한 것처럼 말을 이어갔다.“정원에 화단을 설계하고 있는데, 이곳에 어울리는 해바라기 모종을 보내오라고 했어. 잘 관리하면 겨울에도 꽃이 필 거야.”온다연은 무표정한 얼굴로 나지막이 말했다.“해바라기를 낭비하지 마세요, 아저씨.”말하고 나서 그녀는 눈을 감고 유강후의 어떤 말에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유강후는 모노드라마 주인공처럼 계속 말했지만 끝까지 대답을 듣지 못했다.온다연이 계속 그를 무시할 줄 알았는데, 이튿날 그에게 컴퓨터를 가져다 달라고 했다.요즘 그녀는 휴대폰을 쓰는 시간이 많아졌는데, 항상 플랫폼에서 스타들의 콘서트를 관람했다.특히 주혜성이라는 신인 톱스타에게 푹 빠진 것 같다.그녀는 하루 중 태반을 그 스타의 동영상을 보는 데 썼다.그의 콘서트는 물론 최근에 찍은 드라마, 예능, 심지어 광고까지 몇 번씩 반복해서 봤다. 보면서 가끔 웃기도 했다.유강후는 지금까지 그런 대우를 받아본 적이 없다. 진짜 큰일 났다.그는 겉으로는 구름 한 점 없는 날씨처럼 평온하고 차분해 보였다. 심지어 그녀가 콘서트를 볼 때 옆에서 노래를 잘 부른다고 칭찬하기도 했다.하지만 뒤에서는 질투심이 폭발해 주혜성의 배경을 낱낱이 캤다.알고 보니, 그는 남씨 가문 아가씨 남하윤의 남자친구였다.나이가 18-19세에 불과하지만 범접할 수 없는 고결한 분위기와 보호 본능을 자극하는 여린 느낌이 있어 처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덧 결혼식까지 남은 날이 3,4일밖에 되지 않았다.영운산에 있는 집은 완벽하게 공사가 마무리되었고 가구도 모두 배치되었다. 요 며칠 동안은 생활용품들을 하나씩 채우는 중이었다.이 별장은 영운산에서 가장 좋은 위치에 자리 잡고 있으며 대지 면적이 1천 평이 넘고 경운시의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곳이었다.하지만 이 집의 가장 큰 장점은 천연 온천이었다.탁월한 약효를 자랑하는 이 온천은 오랜 기간 몸을 조리해야 하는 온다연에게 그야말로 최적이었다.이곳은 결혼 후 유강후와 함께 머물 신혼집으로, 그는 집을 꾸미는 데 엄청난 정성을 들였다.전체적으로 전통 스타일로 꾸며졌지만 거실 천장은 최상의 채광 효과를 위해 설계되었다.하여 날씨가 좋은 밤이면 소파에 누워 별을 감상할 수도 있었다.마당에는 해바라기와 붉은 장미가 가득 심어져 있었다.장미는 이미 몇 송이가 만개해 있었고 은은한 향기가 온 정원을 가득 메우며 특별한 분위기를 자아냈다.그러나 온다연은 여전히 기운이 없어 보였다.유강후가 고양이 구월이의 집을 배치하고 있을 때, 온다연은 그 모습을 가만히 그네에 앉아 지켜보았다.그런데 구월이의 집이 다 완성되기도 전에 그녀는 그만 잠들어 버렸다.유강후는 온다연이 한쪽으로 기울어 깊이 잠든 모습을 보고 조심스럽게 그녀를 안아 나무 아래에 있는 긴 의자에 눕혔다.그는 요즘 들어 그녀의 상태가 점점 안 좋아지고 있다는 걸 느꼈다.전보다 훨씬 자주 잠에 빠졌고 무언가를 생각하다 멍해지는 일이 늘었다.온다연과 대화를 시도했지만 그녀는 말을 아꼈고 가끔씩 겨우 한두 마디를 내뱉었지만 그 내용조차 마음을 긁는 말들뿐이었다.그녀가 가장 많이 말을 했던 날은 지예솔이 찾아왔던 그날이었다는 게 새삼 떠올랐다.유강후는 잠들어 있는 온다연의 옆모습을 보며 어딘가 모르게 그녀를 놓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느꼈다.그는 낮은 목소리로 혼잣말했다.“다연아, 또 날 떠날 생각 하는 거야? 절대 그렇게 두지 않을 거야.”온다연은 깊이 잠들어
온다연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천천히 말했다.“그중에서도 내가 보기엔 가장 약점이 될 수 있는 건 바로 거래 전문가예요. 내가 무슨 말 하는지 알겠죠?”지예솔은 대답하지 않고 고양이 모양 쿠션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 수 없었다.잠시 후, 하인이 문을 두드렸다.“사모님, 다이닝룸에 사모님이 좋아하시는 우유 커스터드가 준비되었습니다. 대표님께서 사모님을 밖으로 모시고 오라고 하셨어요.”지예솔은 그제야 시선을 거두며 낮게 말했다.“보아하니 강후 씨는 정말 다연 씨를 철저히 통제하나 봐요. 잠깐 떨어졌는데도 불안해하다니... 혹시 내가 다연 씨를 데려갈까 봐 걱정이라도 하는 걸까요?”온다연은 아무 말 없이 일어나 고양이 모양 쿠션을 그녀에게 건네며 말했다.“잘 보관해요. 이 안에 들어 있는 카메라는 구하기 힘든 거예요.”이렇게 말한 뒤, 두 사람은 함께 서재를 나섰다.다이닝룸에 다다르기도 전에 봉현수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다연 씨는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예요? 벌써 30분이나 지났는데 도대체 무슨 말을 그렇게 끝도 없이 하는 거죠? 혹시 우리 집 예솔이를 어딘가로 데려가려는 거 아니예요?”유강후의 반응도 냉랭했다.“우리 다연이가 예솔 씨를 데려간다니요? 예솔 씨야말로 진짜 문제 아니예요? 우리 다연이가 예솔 씨 때문에 나쁜 영향을 받았다고요! 아직 현수 씨한테 따질 말도 많아요, 근데 왜 현수 씨가 먼저 큰소리쳐요?”“현수 씨, 선 넘지 마요!”온다연과 지예솔은 서로 눈을 마주쳤다. 서로의 눈에서 당혹스러움을 읽을 수 있었다.식탁으로 돌아왔을 때, 유강후는 눈에 띄게 안도한 표정을 지었다.막 입을 열려는 순간, 지예솔이 손에 든 고양이 모양 쿠션을 보며 그는 눈살을 찌푸렸다.“쿠션을 좋아하신다면 여러 개 선물해 드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안 됩니다.”그 쿠션은 온다연과 유강후가 처음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을 때, 온다연이 인터넷으로 주문해 그의 책상 의자에 놓은 것이었다.그녀는 그것을 ‘등받이로
온다연은 창밖을 바라보며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나 같은 사람에게 사랑은 필수가 아니에요. 감정도 중요하지 않고요. 강후 씨와 나는 애초에 같은 부류가 아니에요. 우리 사이에는 너무 많은 장벽이 있습니다.”“전 유씨 가문 사람들이 과거에 저에게 했던 짓들을 절대 용서할 수 없어요. 그들이 죽었다고 해도 내 마음의 한은 풀리지 않아요.”“하지만 강후 씨에게 유씨 가문은 가족이잖아요. 그 사람이 그들을 진정으로 끝장낼 리가 없어요.”“봐봐요, 유하령이 그렇게 많은 악행을 저질렀는데도 지금은 겨우 다리 하나 잃은 정도잖아. 유씨 가문 사람들이 여전히 유하령의 재활을 돕고 있고 아마 1,2년 안에 다시 정상적으로 걸을 수도 있을 거예요.”“게다가 내 동생의 죽음, 그리고 나와 나은별 같은 사람들의 얽힌 관계들까지... 이 모든 것들이 나에게 알려줬어요. 나는 결국 희생될 수 있는 사람이란 걸.”“강후 씨는 한편으론 날 사랑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그 사람들이 날 무자비하게 해치도록 방치했어요. 이런 사랑은 나로선 감당할 수 없어요.”눈빛에 어두운 기색이 스치며 온다연이 말을 이었다.“한때는 아이만 있으면 모든 걸 내려놓고 그 사람과 함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그건 내가 순진했던 거예요. 아이가 있어도 그 모든 문제들은 사라지지 않았을 거고 다만 조금 늦게 터질 뿐이었겠죠.”“유강후라는 사람은 겉으론 깊은 정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무정해요. 그 사람은 항상 자신의 사고방식으로만 사람들을 판단해요. 얻지 못하면 가두거나 파괴해버리고 자기 뜻에 따르지 않으면 온갖 방식으로 벌을 주죠.”“완벽한 사업가이자 타고난 리더지만 좋은 연인은 아니에요. 게다가 나 같은 사람은 사랑 같은 건 필요 없어요. 나에겐 사랑보다 배를 채우는 게 더 중요하니까.”그녀의 말이 끝난 후, 서재에는 긴 침묵이 흘렀다.잠시 후, 온다연은 책상 의자에 놓인 고양이 모양 쿠션을 정리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 쿠션의 고
온다연은 말을 마치고 곧바로 곽혜영을 무시한 채 한이준을 향해 말했다.“한 대표님, 안목이 갈수록 떨어지시네요. 눈이 좀 안 좋으신가 봐요. 강후 씨가 갓 사 온 영양제가 있는데 돌아가실 때 몇 개 가져가세요. 눈은 깨끗해야 좋으니까요.”한이준의 얼굴이 즉각 굳어졌고 곽혜영의 표정은 더 심각했다.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지며 그녀는 눈가에 눈물이 맺힌 채 말했다.“유 대표님, 제가 다연 씨의 기분을 상하게 했나요? 화나신 것 같아요. 다 제 잘못이에요. 오지 말았어야 했는데.”유강후는 냉담하게 말했다.“다연이 기분을 상하게 한 걸 알면서도 물어요? 그렇게 생각했으면 저기 문 있잖아요. 나가세요. 배웅은 안 할 테니.”이 말이 끝나자마자 봉현수가 웃음을 터뜨렸다.“강후 씨, 그래도 상대는 여자잖아요. 게다가 은별 씨 사촌인데 손님으로 온 사람을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니에요?”한이준의 얼굴이 극도로 어두워지며 분노했다.“두 사람 다 그만해요! 혜영이는 제 파트너입니다. 적당히 좀 해요!”온다연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어쩐지 익숙하다 했더니. 친척이셨구나.”이렇게 말하며 그녀는 곁에 있던 지예솔의 팔을 잡아당겼다.“예솔 씨, 제가 주얼리 관련해서 여쭐 게 있어요. 서재로 가서 얘기해요.”그렇게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 나갔다.남은 곽혜영은 얼굴이 어두워진 채 침묵을 유지했다.한이준은 눈물이 곧 흘러내릴 듯한 곽혜영의 모습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이끌고 나갔다.봉현수가 한이준이 정말 화가 난 듯해 따라나서려 했지만 유강후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현수 씨, 앉아요.”“신경 쓰지 마요! 이준이는 갈수록 판단력이 흐려지고 있어요. 우리 다연이조차 저 혜영 씨한테 뭔가 꿍꿍이가 있다는 걸 아는데 여전히 즐겁게 받아들이고 있잖아요. 혜린 씨랑 헤어지고 나서는 정말 허기가 졌나 봐요. 아무거나 다 먹을 정도로.”“그냥 스스로 정신 차릴 때까지 둬요.”서재 안에서, 온다연은 앰버 하나를 꺼내며 말했다.“예솔 씨, 부탁 하나 드리고
장화연은 표진아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더니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아마 그냥 지나가는 말일 겁니다. 적어도 사모님 뒷말은 하지 마세요.”“잠시 후에 한 대표님과 봉 대표님이 오셔서 결혼식 장소에 대해 논의할 거예요. 차와 간식을 준비하세요. 한 대표님의 새로운 파트너분은 커피와 서양 과자를 좋아한다고 하니 그것도 준비하시고 나머지는 평소대로 하시면 됩니다.”“네, 장 집사님.”하인이 돌아서려는 순간, 장화연이 다시 말했다.“준비해 두세요. 결혼식이 끝난 뒤, 당신은 영운산 별장으로 가서 일하게 될 겁니다. 모든 일에 좀 더 신경 쓰세요. 셋째 도련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별장으로 가는 사람은 대우가 더 나아질 거라고 하셨습니다.”하인은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알겠습니다,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저녁 식사 전, 한이준과 봉현수가 정말로 도착했다.다만 한이준 옆에 선 사람은 낯선 얼굴이었다.봉현수 옆에는 여전히 지예솔이 함께였다.온다연의 시선이 한이준의 파트너에게 스치듯 지나갔다.단정하고 청순한 외모로 임혜린과 몇 분 닮은 느낌이었다.하지만 곧 그녀는 무표정하게 시선을 돌렸다.그런데도 그 여자는 무척 친근한 척하며 달콤한 미소로 말했다.“유 대표님, 저 기억하시나요? 저는 이진이의 어릴 적 친구 곽혜영이에요. 예전에 모임에서 뵌 적 있는데.”유강후는 별다른 표정 없이 예의상 고개를 끄덕였다.곽혜영은 전혀 어색해하지 않고 여전히 밝은 미소를 지으며 자신감 있게 행동했다.저녁 식사가 무척 풍성하게 준비되었지만 어떤 사람들의 입은 멈추지 않았다.곽혜영은 식사 중 활발하게 대화를 이끌며 마치 유씨 가문과 봉씨 가문에 아주 익숙한 사람처럼 굴었다.그러나 두 남자는 마치 포커페이스를 하듯 냉담한 표정을 유지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곽혜영은 전혀 개의치 않고 국제 정세와 금융 이야기를 꺼내며 온다연과 지예솔을 가끔씩 흘끔거렸다.그 눈빛 속에는 미묘한 경멸이 담겨 있었다.곽혜영은 사전에 조사를 했었다.온다연과 지예솔은 얼굴로 자리를 차지한
말을 하면서 마음속으로 다시 한번 감탄했다.보기에는 여리여리하지만 옷감 아래 숨겨진 몸매는 정말 볼륨감이 있었다. 허리는 너무나 가늘어 아찔할 정도였고 가슴은 부드럽고 풍만해 전혀 작지 않았다.외부 사람이 있는 것을 본 온다연은 유강후의 팔에서 벗어나려 했다.눈가에는 아직도 약간의 붉은 기운이 남아 있는 채로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난 고르고 싶지 않아요. 아저씨가 결정한 일이니까 아저씨가 직접 골라요.”말을 마치자마자 돌아서 나가려 했다.하지만 유강후는 그녀를 다시 끌어안으며 성급함을 억누르고 달래듯 말했다.“결혼식이 이제 보름 남았어. 고르지 않으면 그날 입을 게 없잖아.”온다연은 피곤한 듯한 표정으로 유강후의 품에 갇혀 몸을 움직이려 했지만 빠져나갈 수 없었다. 결국 아무 말 없이 그녀는 침묵을 지켰다.표진아의 조수가 몇 벌의 웨딩드레스를 가져왔다. 모두 엄선된 고급 맞춤 드레스였는데 화려하면서도 신선하고 우아한 매력을 잃지 않은 디자인이었다.하지만 20벌이 넘는 드레스를 계속 보여줬음에도 온다연의 표정은 시큰둥했다. 너무 피곤한 듯 보였다.지쳐 보이는 온다연의 모습에 유강후는 안쓰러워하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많이 힘들지? 내일 다시 골라볼까?”그러나 온다연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시선은 드레스들 위에 머물러 있었지만 눈빛에는 생기가 없었다.며칠 동안 그녀는 계속 이런 상태였다.깨어 있는 시간보다 잠들어 있는 시간이 훨씬 길었다.아이를 잃었다는 소식은 그녀의 마음을 철저히 무너뜨렸다.오늘도 유강후가 계속 달래고 유도하며 울고 말하게 하지 않았다면 하루 종일 한마디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그녀의 기운 없는 모습을 보자 유강후는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다.곧 허리를 숙여 그녀를 안아 들고 나가려는 찰나, 표진아가 급히 말했다.“사모님께서 만족하지 못하신다면 제가 다른 시리즈를 준비해왔습니다. 트렌디한 전통 스타일인데 사모님의 기품에 딱 맞을 겁니다. 애프터 드레스로도 사용할 수 있어요.”이런 큰 거래를
표진아가 뚫어져라 온다연을 쳐다보자 옆에 있던 집사가 입을 열었다.“저희 사모님입니다.”표진아는 충격을 금치 못했다.‘나이가 어려 보이는데 설마 미성년자를 만나는 건가?’부유한 집안의 아가씨처럼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유강후라는 온실속에서 곱게 자란 화초처럼 보였다.‘이런 외모를 가졌으면 유 대표님 같은 분을 만나는 게 맞지. 안 그러면 이상한 사람이 얼마나 꼬이겠어.’표진아는 궁금함을 참지 못했다.“사모님이 생각보다 어리시네요. 미성년자는 아니겠죠?”집사는 불쾌한 기색을 드러내며 눈살을 찌푸렸다.“진아 씨, 도련님이 화낼지도 모르니 안에 들어가서는 절대 이런 얘기를 꺼내시면 안 됩니다. 사모님은 혼인신고까지 마친 성인이에요.”“그리고 사모님이 요즘 도련님과 갈등이 생겨 기분이 안 좋으시니 언행을 조심하는 게 좋을 겁니다.”표진아가 막 답하려던 찰나 커다란 문이 열리며 제네시스 한 대가 안으로 들어왔다.집사는 그녀의 옆에서 급히 속삭였다.“도련님이 오셨네요. 진아 씨는 저와 함께 안으로 들어가시죠.”표진아는 집사의 뒤를 따르며 걸음을 옮겼다.고풍스러운 분위기의 다실에는 넓은 유리창이 설치되어 있었고 창문을 열면 바깥소리가 고스란히 들렸다.표진아는 천하의 미래 그룹 대표가 차에서 커다란 상자 몇 개를 옮기고 있는 모습을 목격했다.그런 다음 부하들을 시켜 상자에 들어있는 물건을 꺼내 조립했고 순식간에 2,3m 높이에 달하는 고양이 집이 완성되었다.표진아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유 대표님이 이런 일도 직접 한다고?’곧이어 목격한 장면에 그녀는 충격에 빠지고 말았다.평소 위엄있고 카리스마 넘치는 유강후가 허리를 숙여 조심스럽게 온다연을 달래주고 있었다.그러나 온다연은 가볍게 무시한 채 아무런 반응이 없었고 유강후가 옆에서 한참을 달래도 입조차 벙끗하지 않았다.곧이어 유강후는 비서에게 뭔가를 지시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도우미가 고양이 한 마리를 안고 나왔다.고양이를 보고서야 온다연의 얼굴에는 미세한 표정 변화가 일어났다.그러나
“하는 짓을 봐서는 죽어서 지옥에 떨어질 게 뻔합니다.”유강후는 섬뜩한 눈빛으로 사진을 바라봤다.“로운 불러와.”곧이어 로운이 들어왔다.유강후는 단호하고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오늘부터 본격적으로 공격해. 경원으로 들어온 암살자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죽여버려.”“시간은 딱 한 달이야. 난 한 달 안에 김씨 가문이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졌으면 좋겠어.”로운은 눈살을 찌푸렸다.“대표님, 열흘 정도만 더 기다리면 분명히 성공할 거라 확신합니다만 지금 바로 공격하기에는 미흡한 부분이 있습니다.”“로운.”유강후는 단호하게 그의 말을 잘랐다.“이미 내가 참을 수 있는 최대 인내심에 도달했어. 한 달 후에 임무를 완수한다면 돈, 사람, 물건 네가 원하는 건 전부 다 줄 수 있으니까 넌 여기에만 집중해.”“계정에 나온 모든 암살자를 너한테 맡길 거야. 난 대답만 원하니까 넌 반드시 성공해.”로운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맡겨주신 일은 반드시 깔끔하게 처리하겠습니다.”로운이 나가자 이권이 입을 열었다.“도련님, 열흘이면 되는데 조금만 더 기다리는 건...”“안돼.”유강후의 표정은 한없이 어두웠다.“화창한 봄날에 꽃 피는 언덕에서 가장 로맨틱한 결혼식을 올려주겠다고 다연이랑 약속했어.”“안 그래도 빚진 게 많은데 이런 약속조차 지키지 못하면 내 인생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이권은 할 말이 있는 듯 입을 벙끗했으나 끝내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유강후는 일을 처리하는데 있어 굉장히 침착하고 이성적인 성향이기에 지금처럼 큰 위험을 감수할 때가 많지 않다. 남자로서 유강후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이건 리스크가 너무 큰 모험이다.온다연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미래 그룹의 앞날을 걸고 있는 격이다.유강후는 정말 뼛속까지 온다연을 사랑하고 있었다.봄은 갈수록 날이 길어졌고 햇볕은 점점 더 따뜻해졌다.그러나 생기가 넘쳐야 할 봄날과 달리 한옥은 조용하기 그지없다.듣기로 여주인은 정원 중앙의 나무 밑에 의자를 두어 그
온다연이 너무 안쓰러워 덩달아 괴로움이 밀려온 유강후는 끊임없이 그녀의 등을 토닥이며 위로했다.“아니야. 다연이는 최고의 엄마야.”“우리 아이는 다연이를 엄청 좋아해. 그러니까 계속 꿈에 나타나잖아.”“울고 싶으면 울어. 참지 않아도 돼.”온다연은 울먹였다.“꼭 돌아오겠죠? 강후 씨, 아이는 다시 절 찾아올 거예요. 맞죠?”“그런데 꿈속에는 신발 한 켤레도 없이 맨발이었어요. 너무 불쌍해요.”꿈속의 장면이 떠오른 온다연은 가슴이 터질 듯 울부짖었다.“그곳이 너무 춥대요. 왜 데리러 안 오냐고 원망하는데...”“강후 씨, 아이가 추워하나 봐요.”“나 너무 힘들어요.”“괴로워요.”...극심한 괴로움과 고통은 몸의 경련을 일으켰다.이마에는 식은땀이 가득했고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은 어느새 유강후의 옷자락을 적셨다.그는 온다연의 피와 살에 녹아들듯 있는 힘껏 그녀를 끌어안았다.“돌아올 거야. 무조건 돌아오니까 걱정하지 마. 다연아, 이제 그만 아파해.”...한참 동안 울다가 지쳐버린 온다연은 그의 어깨에 기대어 흐느꼈다.유강후는 온다연을 안고 집으로 들어갔다.안방 문을 열려 있었는데 침대는 깨끗이 치워졌고 도우미 몇 명이 바닥에 엎드려 뭔가를 찾고 있었다.그에게 안겨있던 온다연은 발버둥 치다가 바닥에 넘어지고 말았다.그러나 아랑곳하지 않고 처음 팔찌가 부러진 곳에 무릎을 꿇더니 나무판자 틈을 따라 조금씩 이동하며 찾았다.온다연이 움직이는 방향 따라 눈물 자국이 선명하게 찍혔다.마침내 호박석은 바닥과 벽이 맞닿은 틈새에서 발견됐다.온다연은 그것을 손에 쥔 채 미친 사람처럼 울고 웃었다.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아예 몰랐던 도우미들은 고개를 들 엄두조차 나지 않아 푹 숙인 채 입을 닫았다.유강후는 그녀 앞에 무릎을 반쯤 꿇고 품에 안았다.“다연아, 이제 찾았으니까 좀 쉴래?”온다연은 호박석에 담긴 아이의 체온이라도 느끼려는듯 손에 꽉 쥔채 놓지 않았다.“강후 씨, 아이가 잠든 곳에 가고 싶어요.”온다연은 몸이 너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