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빛에 잠시 혼란스러움이 스쳐 지나갔으나 온다연은 곧 다시 정신을 차리며 염지훈을 바라보았다.“잘 모르겠어요.”그러고는 다시 그의 손목을 잡으며 물었다.“제 고양이는요?”염지훈은 그녀의 머리를 살짝 누르며 다소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나한테 말해봐 봐. 너랑 유강후 씨 대체 무슨 관계야? 왜 그 사람이 너한테 그렇게 신경을 쓰는 거지?”온다연은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 약간 멍한 표정으로 대답했다.“그 사람은 제 아저씨예요.”그러자 염지훈이 그녀를 바라보며 약간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두 사람 혈연관계인 것도 아니잖아. 근데 너를 이렇게 간섭하는 건 좀 지나치지 않나?”이 말에 온다연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데요?”염지훈은 얇은 입술을 단단히 다물고 눈에 차가운 빛을 띠며 그녀의 턱을 잡았다. 그러고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나는 거짓말하는 사람 싫어해. 내 앞에서 거짓말하지 마.”온다연은 조용히 대답했다.“제가 무슨 거짓말을 했는데요? 지훈 씨가 나랑 무슨 사이라고 내가 지훈 씨한테 거짓말을 하겠어요?”잠시 침묵한 뒤, 그녀는 말을 이었다.“지훈 씨도 말했잖아요. 나랑 그 사람은 혈연관계가 없다고. 아니, 우리 두 사람이 무슨 사이라고 한들 그게 또 뭐 어때서요? 그저 평범한 남녀 사이일 뿐인데.”염지훈은 그녀를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두 사람이 어떤 관계든 상관없지만 하나 충고해줄게. 유강후 씨한테 정말 그런 마음이 있는 거면 빨리 접어. 그런 집안은 언제나 이익이 최우선이니까.”그러고는 거친 손가락으로 온다연의 부드러운 뺨을 살짝 쓰다듬었다.“그 집안은 오로지 결혼을 통해 이익을 극대화할 뿐이야. 유강후 씨는 유씨 가문의 가장 큰 자산이니까. 나은별이 아니더라도 비슷한 가문의 여자와 결혼해서 이익을 얻으려고 할 거야.”이어 그는 말했다.“그리고 너도 알겠지만 나씨 가문은 유강후를 묶어두고 싶어 해. 나은별 뒤에 있는 건 나씨 가문 전체야. 나씨 가문은 예전만큼은
그 남자는 혀를 차며 염지훈의 어깨를 한 번 툭 쳤다.“이제 키 크고 허리 잘록한 애들은 안 좋아하는 거야? 이렇게 작은 애들이 좋아지기라도 한 거냐?”그러자 염지훈은 그를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헛소리 그만해!”남자는 큰 소리로 웃으며 말했다.“이제 와서 순진한 척하기엔 좀 늦은 거 아니냐?”곧 염지훈은 그를 밀어내고 온다연의 손을 잡아 밖으로 이끌었다.“가자. 이 사람 있으니까 고양이는 괜찮을 거야. 밖에 나가서 뭐 좀 먹자.”키가 크고 다리도 길어서인지 그는 걸음이 빨랐다. 그래서 온다연은 종종걸음으로 염지훈의 뒤를 간신히 따랐다.얼마 지나지 않아 차 옆에 도착했고 염지훈은 온다연의 의사를 묻지도 않고 차 문을 열어 그녀를 조수석에 태웠다.“밥 먹으러 가자!”시간은 이미 새벽이었고 평진이 크다고는 하지만 대부분의 식당은 문을 닫은 상태였다. 결국 그들은 24시간 영업하는 상가에서 겨우 한 군데를 찾았다.염지훈은 음식을 잔뜩 시켰다.하지만 온다연은 구월이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 식욕이 없었는지 두어 입만 먹고 젓가락을 내려놓았다.기분이 상한 염지훈은 담배를 한 대 피우며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를 바라보았다.“내 체면이 이것밖에 안 돼? 어제 내 생일에 네 고양이 치료해 주러 평진까지 달려왔는데 밥 한 끼 먹자고 하는 게 그렇게 어려워?”온다연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어제 지훈 씨 생일이었어요?”염지훈은 씩 웃으며 그녀를 바라봤다.“어떻게 생각해? 내가 영원시에 있던 사람들 다 놔두고 평진까지 와서 네 고양이 치료해 줬는데... 너는 나랑 제대로 밥도 안 먹어주잖아. 좀 심하지 않냐?”그러자 온다연은 입술을 깨물고 조용히 일어섰다.“잠깐만 기다려요.”그녀는 상가 입구에 케이크 가게가 있던 걸 기억해냈다. 다만 이 시간에 케이크가 남아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다행히 가게는 아직 열려 있었고 물어보니 다른 사람이 주문 취소한 케이크가 하나 있다는 것이다.문제는 핑크색에 작은 공주 인형이 올라가 있는 케이크였다.지금
유강후는 장화연의 핸드폰을 낚아챘다.화면에는 새벽 12시에 서민로에서 교통사고가 발생했다는 뉴스 알림이 떠 있었다.한 젊은 여성이 애완동물을 안고 길을 건너다 버스와 충돌해 중상을 입었으며 현재 시내 병원에서 응급 치료 중이라는 내용이었다.그 사진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유강후의 가슴이 요동쳤다.사진 속 여성은 그가 직접 고른 흰색 캐시미어 코트를 입고 있었고 그 옷은 피로 얼룩져 있었다.이내 머릿속이 하얗게 텅 빈 유강후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향했다.그를 따라가던 장화연은 유강후의 손이 떨리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몇 시간 동안 그는 영원시에 있는 모든 애완동물 가게를 뒤졌지만 온다연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경찰력을 동원해 영원시의 호텔까지 뒤졌지만 그 어디에서도 그녀를 찾을 수 없었다. 이쯤 되자 유강후는 점점 초조해지고 분노가 치밀었다.이 낯선 도시에 온다연이 어디에 있을지 알 수 없었고 무엇보다 그녀가 그 고양이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 잘 알고 있었다.온다연이 지금 어디에서 고통받고 있을지 생각만 해도 유강후의 마음은 찢어질 것 같았다.그러나 그가 듣게 된 소식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시내 응급센터는 그리 멀지 않았지만 그는 몇 개의 빨간 신호등을 무시하고 질주했다.병원에 도착했을 때, 유강후에게 전해진 소식은 충격적이었다.사고를 당한 젊은 여성이 이미 사망했으며 신분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전혀 없어 시신은 이미 영안실로 옮겨졌다는 것이었다.이 부분이 온다연의 상황과 딱 들어맞았다.온다연의 신분증은 유강후의 금고에 보관되어 있었고 그녀에게는 핸드폰 하나밖에 없었다.얼굴이 점점 창백해지고 유강후의 눈빛은 얼음처럼 차가워졌다.영안실은 병원 가장 뒤쪽, 한적한 곳에 있었다. 그들이 도착했을 때 시신은 이미 냉동 보관함에 들어가 있었다.병원장도 통보를 받고 여러 사람들과 함께 급히 달려왔다.유강후는 냉동 보관함 앞에서 한 치의 감정도 없는 차가운 얼굴로 서 있었다.그의 권력을 이미 경험한 병원 사람들은 모
그러자 유강후가 갑자기 고개를 들더니 앞으로 다가갔다.냉동 보관함 안에는 낯선 여자의 얼굴이 있었다. 이미 죽음에 이르러 몸은 싸늘했지만 그녀의 이목구비는 온다연과 전혀 닮지 않았다.그제야 유강후의 온몸은 힘이 빠지며 얼어붙었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심장에서 피가 사지로 퍼지는 소리조차 들리는 것 같았다.처음 이 사고 소식을 접했을 때, 그는 온다연이라고 거의 확신했었다. 그녀가 입고 있던 옷 때문이었다.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유강후의 모든 감각과 감정이 마비된 상태였지만 이 여자가 온다연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나자 모든 것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몸에 다시 온기가 돌아오는 동시에, 유강후의 마음속에는 깊은 분노가 서서히 피어올랐다.‘온다연, 너 정말 대단한 배짱이구나?!’그는 이를 갈며 생각했다.‘감히 이렇게 자꾸 도망치고 전화도 받지 않고 심지어 핸드폰은 꺼놓고... 대체 날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유강후는 차갑게 명령했다.“계속 찾아!”그 시각 평진.온다연은 쇼핑몰에서 돌아온 후, 동물 병원을 떠나지 않고 구월이 곁을 지켰다.하지만 너무 피곤해서였는지 아니면 구월이가 살 수 있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그녀는 휴게실 소파에 몸을 웅크리고 깊이 잠들었다.눈을 떴을 때는 이미 정오가 다 되어 있었고 온다연은 작은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몸 위에는 여전히 남성의 외투가 덮여 있었다.창가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염지훈은 몸을 돌려 온다연을 바라보았다.“깼어?”너무 깊이 잔 탓에 머리가 어지러워 온다연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물었다.“제 고양이는요? 좀 나아졌나요?”염지훈은 그녀의 헝클어진 머리를 바라보며 웃음을 참지 못하고 혀를 찼다.“죽진 않을 거야. 근데 문제야 생겼어. 이거 어떡하면 좋지?”온다연은 염지훈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 그를 쳐다보았다.그러자 염지훈은 그녀의 머리를 헝클이며 이를 악물고 말했다.“유강후 씨가 펫샵 CCTV에서 네가 내 차에 타는 걸 본 것 같아. 내 차 번호를 조회해서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온다연은 본능적으로 몸을 떨기 시작했다.유강후에 대한 공포는 마치 그녀의 유전자에 새겨진 것처럼 결코 떨쳐낼 수 없는 것이었다.더 이상 그를 원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도 여전히 두려웠다.온다연은 고개를 숙이고 입술을 깨물며 유강후를 돌아보지 않았다.아니, 애초에 돌아보고 싶지가 않았다.다음 순간, 염지훈이 그녀의 이마에 손을 올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하... 진짜 하루종일 문제만 일으키네. 잠시만 조용히 있어. 내가 처리할게!”친밀해 보이는 듯한 두 사람의 행동을 보자 이미 붉어진 유강후의 눈은 분노로 가득 찼다.그는 온다연을 차갑게 응시했다. 그 눈빛은 마치 얼음 칼처럼 그녀의 살과 뼈를 벗겨내려는 듯했다.뒤이어 유강후가 입을 열기 전에, 그 뒤에 있던 염지훈가 빠르게 앞으로 나서서 염지훈을 붙잡으며 말했다.“너 이 녀석 뭐 하려는 거야? 당장 나랑 돌아가. 하루 종일 문제만 일으키고 있어.”하지만 염지훈은 형의 손을 뿌리치고 도발적인 시선으로 유강후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랑 다연 씨는 서로 호감을 갖고 있습니다. 뭘 하든 우리 자유예요. 왜요? 유 대표님은 이 상황이 마음에 안 드십니까?”유강후의 눈빛이 더욱 어두워져 갔다. 그는 염지훈을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한 걸음씩 온다연에게 다가갔다.그의 강렬한 위압감에 온다연은 몸을 본능적으로 뒤로 피하려 했지만 그 작은 공간에서 더 이상 피할 곳이 없었다.곧 유강후의 냉혹한 기운이 온다연을 감싸기 시작했다.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는 온다연을 바라보며 무섭게 말했다.“온다연, 하루 종일 찾았잖아.”온다연은 그 말에 몸을 떨었지만 고개를 들지 않고 침대 시트를 손에 꼭 쥔 채 바라보지 못했다.그녀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자 어두운 눈빛의 유강후는 온다연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살짝 만졌다.그의 손은 천천히 머리카락을 타고 내려갔고 움직임은 부드러웠지만 목소리는 차갑고 위협적이었다.“난 네가 교통사고 당한 줄 알고 시신 찾으러 영안실까지 갔었어.”그의
옆에 있던 염지호는 깜짝 놀라 서둘러 염지훈을 떼어내며 웃음을 띄웠다.“유 대표님, 제 동생이 철이 없습니다. 잘못한 것이 있으면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온다연 씨의 고양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널 뻔하여 제 동생이 고양이를 치료하러 데리고 온 것뿐입니다. 다른 의도는 전혀 없었습니다.”“게다가 어젯밤에도 두 사람은 여기에만 있었지 다른 곳에는 가지 않았다는 걸 확인하셨잖아요.”그는 애써 웃으며 말했다.“제 체면을 봐서라도 저 아이 같은 행동은 용서해 주십시오.”말을 마친 염지호는 염지훈을 잡아끌었다.그러나 염지훈은 움직이려 하지 않았고 염지호는 그를 끌어내지 못하자 문밖에 있는 경호원들을 향해 소리쳤다.“다들 죽었냐? 들어와서 이 녀석 좀 끌고 나가!”그러자 염지훈은 형의 손을 뿌리치며 온다연을 바라보더니 낮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형, 이번 일은 나 스스로도 나를 감당할 수 없으니 더 이상 관여하지 마.”“헛소리하지 마!”염지호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네가 생각하는 것과는 달라. 염씨 가문을 망치고 싶지 않다면 어서 나랑 같이 가!”그러고는 경호원들에게 눈짓을 했다. 그중 한 명이 염지훈의 뒤로 다가가 그에게 강하게 목을 내리쳤다.결국 염지훈은 반응할 새도 없이 쓰러졌고 염지호는 그를 부축하며 유강후를 향해 조용히 말했다.“유 대표님, 이번 일은 제 동생이 잘못한 것이니 나중에 제가 직접 찾아가 정식으로 사과드리겠습니다.”그렇게 염지호는 경호원 두 명에게 염지훈을 부축하라고 지시하며 병원을 빠져나갔다.온다연은 염지훈이 쓰러진 것을 보고 급하게 유강후를 밀치며 나가려 했다.그러나 두 발짝도 채 뛰지 못해 유강후에게 붙잡혀 다시 끌려왔다.유강후는 그녀를 단단히 안으며 차갑게 말했다.“내가 여기 있는데 어디로 가려는 거야?”그러자 온다연은 유강후의 손목을 붙잡고 세게 물었다.온몸이 떨릴 만큼 강한 힘이었고 곧 피 맛이 느껴졌다. 온다연은 그제야 정신이 들어 천천히 입을 풀었다.유강후는 온다연을 돌려세우고 거친 손
온다연이 고개를 숙인 채 말없이 버티고 있는 모습은 유강후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억눌러온 폭력적인 욕망을 자극했다.그녀의 고집스러움은 그의 인내심을 한껏 시험하고 있었다.당장이라도 온다연의 가녀린 목을 한 번에 부러뜨리고 그 곧게 뻗은 척추를 산산이 부숴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껴졌으니 말이다.눈빛이 더욱 어두워진 채 유강후는 손에 힘을 더 주며 하나하나 강조하듯 말했다.“온다연, 내 인내심을 시험하지 마.”온다연은 눈을 내리깐 채 가볍게 말했다.“만약 내가 그 사람과 함께 잤다면 유 대표님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내 가죽을 벗기실 건가요, 아니면 구월이처럼 뼈를 부수고 내장이 터지도록 짓밟으실 건가요?”그러자 잠시 손을 멈칫하더니 유강후는 다시 더 강한 힘으로 온다연의 턱을 움켜쥐며 이를 갈았다.“대답해!”온다연은 턱이 부러질 듯한 고통 속에서도 그에게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고통은 점점 견디기 어려워져서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유강후를 떼어내려고 했다.그러나 그의 손은 꿈쩍도 하지 않았고 온다연의 반항은 유강후의 폭력성을 더욱 자극할 뿐이었다.고통에 눈물이 맺힌 온다연은 끝까지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고집스러운 온다연을 보며 유강후는 눈을 가늘게 뜨고 차갑게 말했다.“네가 이런다고 해서 내가 널 어떻게 못 할 거라고 생각하나?”눈물이 가득 찬 눈으로 온다연을 그를 올려다보았다.그 모습은 마치 연약하면서도 끝까지 저항하는 듯한, 애처롭고도 고집스러운 눈빛이었다.유강후는 한밤중에 그녀를 찾아 헤맸던 시간들이 떠올랐다.온다연이 사고를 당했을까 봐, 영안실에서 그녀의 마지막 모습을 봐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는 모든 걸 포기할 각오까지 했다.그녀가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루어주고, 그 후에 유강후는 온다연의 곁에서 죽기로 결심했었다.그러나 온다연은 이곳에서 염지훈과 함께 있었다. 그 생각에 유강후의 눈은 다시 붉어지기 시작했고 목소리도 얼음처럼 차가워졌다.“온다연, 나는 너에게 아무 짓도 안 할 거야.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추격해 온 두 명의 경호원은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온다연의 그림자조차 찾을 수 없었다.어쩔 수 없이 유강후에게 다가가 보고했다. “셋째 도련님, 여기 사람이 너무 많아서 찾기가 어렵습니다.”유강후의 눈빛엔 서늘한 살기가 서려 있었다. 유강후는 즉시 휴대전화를 꺼냈다.몇 분 지나지 않아 매니저가 조수와 함께 황급히 달려왔다.이 쇼핑몰은 미래 그룹 산하의 중요한 사업장이었다. 매니저는 소문으로만 듣던 미래 그룹의 실세를 눈앞에서 마주하자 유강후의 날 선 기세에 눌려 감히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다.매니저는 고개를 깊이 숙인 채 조심스럽게 말했다.“유 대표님, 이미 사람을 동원해 쇼핑몰의 모든 출구를 봉쇄했습니다. 지금 사람들을 대피시키고 있으니 찾으시는 분이 아직 이 안에 계신다면 절대 나갈 수 없을 겁니다”유강후가 말하기도 전에 매니저가 다시 덧붙였다.“곧바로 입구 쪽 CCTV 영상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말이 끝나자마자 이미 누군가가 노트북을 들고 달려왔다.몇 분 분량의 CCTV 영상을 빠르게 재생했다.그러나 온다연이 그곳을 나가는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유강후는 차가운 얼굴로 로비를 훑어보며 명령했다.“찾아!”“네!”그 시각, 온다연은 2층의 한 잡화실에 몸을 웅크린 채 구월이의 상태를 살펴보고 있었다.방금 달리는 과정에서 받은 충격이 컸던 탓에 구월의 상처가 다시 벌어진 듯 아직 아물지 않은 부위에서 피가 조금 새어 나왔다. 온다연은 마음이 아파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온다연은 고양이의 등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으며 낮은 목소리로 달랬다.“구월이, 넌 죽지 않아. 내가 반드시 널 치료할 거야. 곧 너를 데리고 나갈 테니 조금만 더 버텨줘. 우린 가장 좋은 의사를 찾을 거야, 그러니 조금만 참아”구월이는 온다연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 아주 작은 소리로 두 번 울었다.온다연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온다연은 가슴이 미어지는 것을 참으려 애쓰며 구월이를 품에 꼭 안았다. 지금 온다연은 유강후가 자신을 찾지 못하기를 바랐다
그 말과 함께 온다연은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이렇게 빌게요. 제발 아이를 다른 사람한테 주지마요. 안 그러면 확 죽어버릴 거예요.”“시키는 건 뭐든지 할게요. 제발 아이만...”유강후는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지만 애써 이성을 유지하며 온다연을 일으켰다.“다연아, 거짓말이 아니야. 저 아이는 우리 아들이 아니라니까?”온다연은 그를 바라봤다.“말했잖아요. 우림이랑 유전자 검사해 봤다고요. 혈연관계가 없다는 결과를 이미 확인했는데 도대체 언제까지 날 속일 거예요?”하얗게 질린 얼굴에는 눈물이 가득했다.“저 아이가 내 아들이 아니라면 진짜 아들은요? 누구한테 줬어요?”유강후는 말없이 손을 뻗어 그녀의 눈물을 닦았다.그러나 온다연은 여전히 흥분을 주체하지 못했고 점점 더 과격해졌다.“말하라고요. 내 아이는 지금 어디에 있냐고요.”어느새 유강후의 눈에도 슬픔이 차올랐지만 입을 꾹 닫은 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왜 대답을 못 해요? 말해줘요. 내 아이는 어디에 있는지.”“말하라고!”이때 뒤에 서 있던 이권이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도련님, 이제 사실대로 말씀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대로 있다가는 정말 큰일 날 것 같습니다.”온다연은 고개를 돌리더니 이권을 쳐다보며 물었다.“이권 씨는 알고 있죠? 아이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줘요.”“이권, 입 닫아.”유강후가 단호하게 호통을 쳤지만 이권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다연 씨, 아이는 죽었어요.”“그 작은 아이가 5개월 동안 살아있을 리가 없잖아요.”“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도련님의 손바닥 위에서 마지막 숨이 끊겼습니다.”그 말은 날벼락처럼 날아가 온다연의 가슴을 후벼 찧었다.‘죽었다고?’‘내 아들이 죽었다고?’그녀의 눈빛은 서서히 생기를 잃었고 마치 영혼 전체가 고통에 휩싸인 것처럼 공허하고 슬퍼졌다.‘아니야. 분명히 건강을 되찾고 있었어.’‘거짓말하는 게 분명해. 세상이 지금 날 속이고 있는 거야.’심장이 멎은 듯 숨이 막혀온 온다연은 몸을 떨면서 중얼
유강후는 단호하게 말했다.“얼른 막아.”그러자 경호원들이 앞으로 나서며 온다연을 가로막았다.“사모님, 밖에 비가 옵니다. 여기 있는 게 좋을 거예요.”온다연이 계속 피하려고 하자 몇몇 경호원은 아예 문을 막아버렸다.다급함과 초조함이 밀려온 그녀는 또다시 경호원의 허리춤으로 손을 뻗었다.다행히 이를 알아챈 경호원은 재빨리 옆으로 몸을 피했다.“사모님, 또 총을 쓰시려고요?”온다연은 자신의 의도가 간파되자 뒤로 돌아서더니 주저 없이 창문으로 달려갔다.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녀가 창가에 다가가기도 전에 이미 창밖에는 건장한 경호원이 자리 지키고 있었다.절망은 밀물처럼 온다연을 덮쳤다. 이도 저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그녀는 슬픔에 잠식할 듯한 눈빛으로 뚫어져라 유강후를 째려봤다.유강후도 이제는 그녀의 마음을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그는 한 걸음 한 걸음 그녀에게 다가갔다.그녀는 한 걸음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끝내 벽 모퉁이에 다다르고서야 온다연은 품에 있는 아이를 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강후 씨, 이건 내 아이예요.”유강후는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지만 그 고통을 애써 참으며 온다연에게 손을 내밀었다.“다연아, 우리의 아이는 우림이야. 그러니까 이리 줘.”“싫어요.”온다연은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너무 긴장하고 불안한 탓인지 그녀의 옷은 어느새 식은땀으로 젖어있었고 이마와 손바닥도 땀투성이였다.한편으로는 유강후가 아이를 빼앗아 그녀의 곁에서 떼어 놓을까 봐 극도로 두려워했다.온다연은 삶의 이유를 찾지 못했다.그녀는 품에 있는 아이를 꼭 껴안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이 아이가 내 아들이잖아요.”온다연은 고개를 들어 유강후를 바라봤다.“내 아이 맞잖아요! 강후 씨, 제발 부탁인데 빼앗지 마요. 사실 이미 알고 있어요. 우림이가 우리의 아이가 아니라는걸.”유강후는 그대로 얼어붙었고 심장이 터질 듯 아팠다.“이 아이는 재혁이의 아들이야. 경호원 이재혁 알지? 우리의 아이는 우림이가 맞아.”그 말
온다연은 말없이 진시현의 품에 있는 포동포동한 아이를 바라봤다.유강후가 다가오는 것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넋이 나갔다.그녀의 영혼은 아이에게 빨려 들어갔고 아이의 모든 움직임에 매료되었다.유강후는 혼이 나간 듯 얼굴마저 창백해진 온다연의 모습을 보고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그녀의 이마를 짚었다.열은 없었다.그는 온다연의 손을 잡고 부드럽게 말했다.“이 사람이 진시현이야. 로운의 부하이자 네가 말한 그 여자... ”온다연의 눈에는 아이밖에 없었기에 유강후의 말이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그녀는 유강후의 손을 뿌리치고 한 걸음 한 걸음 진시현 앞으로 걸어갔다.진시현은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사모님, 안녕하세요. 진시현이라고 합니다. 저랑 대표님의 관계를 오해하고 계신 것 같은데...”온다연은 정신이 멍해져서 진시현이 무슨 말을 하는지 들리지 않았다.다만 귓가에 맴도는 목소리가 있었다.‘네 아이잖아. 이건 네 아들이라고.’온다연은 가까이 다가가 아이의 생김새를 관찰했다.하얗고 토실토실한 아이는 이리저리 움직이며 맑은 눈동자로 그녀를 바라봤다.순간 아이의 얼굴에서 유강후의 모습이 언뜻 스쳐 갔다.호흡마저 가빠진 온다연은 재빨리 아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안아봐도 될까요?”얼굴은 식겁할 정도로 창백했지만 온다연의 아름다운 미모에는 전혀 영향이 없었다.진시현은 지금껏 멀리서만 온다연을 봤었다. 물론 그때도 청순하고 예쁘다고 생각했지만 오늘처럼 가까이에서 보니 감탄을 금치 못했다. 온다연의 피부는 매우 하얗고, 뚜렷한 이목구비는 만화 속에서 튀어나온 여주인공이라 해도 무방했다.한편으로는 유강후가 이토록 집착하는 이유가 납득되었다.다만 아이를 바라보는 온다연의 눈빛은 평소와 매우 달랐는데 마치 당장이라도 아이를 빼앗으려는 기색이 역력했다.게다가 아이를 안아보고 싶다고 하니 진시현은 무의식적으로 유강후의 눈치를 살폈다.유강후도 온다연의 이상함을 눈치챘다.“다연아, 아이가 보고 싶어서 그래? 장 집사한테 얘기해서 우림이 데려올게.
유강후는 잠시 생각했다.“같이 데려와. 다치지 않게 옆에서 잘 경호해.”그의 눈에는 착잡함이 스쳐 지나갔다.“자식은 부모의 보물이나 다름없어. 재혁이가 날 돕기 위해 기꺼이 아들을 보내줬는데 절대 다치게 해서는 안되지.”이권이 답했다.“그건 당연히 제가 할 일이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재혁 씨의 아들도 하얗고 토실토실해서 엄청 예쁘더라고요. 심지어 전체적인 분위기는 대표님과 많이 비슷해요. 닮은 거로만 봤을 땐 우림 도련님보다 훨씬 더 대표님과 다연 씨를 닮았어요.”유강후는 기분이 언짢은 듯 미간을 찌푸렸다.“그게 무슨 소리야? 재혁이는 우리 엄마 먼 친척의 아들이야. 친척끼리 당연히 닮은 구석이 있겠지.”“권아, 왜 이렇게 뭉그적거리지? 빨리 안 가고 뭐 해.”“지금 바로 가겠습니다.”두 곳은 서로 가까워 얼마 지나지 않아 진시현이 아이를 데리고 함께 찾아왔다.오늘 진시현은 가면 대신 가벼운 메이크업을 했다.최근 온다연을 따라 해서 그런지 눈매와 행동까지 점점 온다연과 매우 흡사해졌다.캐주얼한 운동복을 입은 그녀는 아이를 소파에 눕히고 자연스럽게 놀아줬는데 그 모습은 유난히 온화해 보였고 로운조차도 힐끔힐끔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얼마 후 유강후가 다가와 그녀에게 몇 마디 설명했다.그러고선 자연스레 시선이 아이에게 향했다.보면 볼수록 이재혁의 아들은 강씨 가문과 많이 닮았고 그제야 이권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깨달았다.문득 세상을 떠난 아이가 생각난 유강후는 가슴이 미어졌다.‘우리 아이가 살아있었다면 이만하겠지?’온다연과 유강후의 유전자를 물려받았으니 어쩌면 훨씬 더 예쁠지도 모른다.이때 아이가 갑자기 손을 뻗어 유강후의 옷깃을 잡더니 옹알이했다.흠칫한 유강후는 홀린 듯이 조심스럽게 아이를 안았다.어찌나 작고 가벼운지 깃털처럼 느껴졌고 말랑한 몸은 마치 작은 고양이를 안은 것처럼 부드러웠다.유강후는 씁쓸한 미소를 드러내며 나지막하게 물었다.“이름은 뭐야?”진시현이 웃으며 답했다.“진하림이요.”“재혁이의 아들인데 성
자연스레 유강후도 주성원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고 곧바로 흰머리 한두 가닥을 보게 되었다.그는 겁에 질린 채로 재빨리 다가가 온다연의 손목을 잡고 흔들었다.“다연아.”그러나 온다연은 여전히 의식을 되찾지 못했다.유강후는 그녀의 눈가에 흐르는 눈물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아직 뜨거웠다.가슴을 쥐어뜯듯 고통이 밀려왔다.유강후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되지 않았다. 모든 상황을 설명해 줬고 심지어 아이까지 보여줬는데 도대체 왜 이렇게 고통스러워하는지를 몰랐다.이때 주성원이 입을 열었다.“다연 씨의 현재 상태는 매우 심각합니다. 처음 봤을 때와 비슷한 수준으로 돌아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네요.”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사실대로 말했다.“대표님, 병원에 데려가 정밀검사를 받는 게 어떠신지요?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위에 문제가 있는 것 같네요. 자칫하다가 암으로 발전될 수도 있으니 검사를...”유강후는 고개를 휙 돌렸다.“뭐라고요?”주성원은 말을 이었다.“장난으로 하는 얘기가 아닙니다. 이 일만 30, 40년 해왔는데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다연 씨는 위에 문제가 생긴 게 확실합니다.”“왜 이렇게 짧은 시간에 상태가 악화된 거죠? 불과 한두 달밖에...”순간 유강후의 머릿속에는 막연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어쩌면 온다연이 아이가 없어진 걸 알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러나 그저 이런 추측이 스쳐 지나갔을 뿐, 곧바로 그에게 부정을 당했다.유강후는 진지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다연이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아시잖아요. 굉장히 내성적이고 뭐든 속에 담아두는 성향이에요. 제가 아무리 옆에서 달래도 절대 입을 열지 않거든요. 아마 최근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이렇게 된 것 같네요.”“혹시 다연이의 입을 열 다른 방법이 없을까요?”주성원은 고개를 가로저었다.“이건 대표님이 공들여 유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연 씨는 생각이 깊은 사람이라 어쩌면 마음의 병을 앓고 있을 수도 있겠네요. 대화를 최대한 많이 하는 게 좋습니다. 속에 담아둔
온다연은 심장이 도려내는 듯한 고통에 비틀거리며 비웃었다.“대면이라뇨? 이번에는 또 어떤 연극을 하려는 거예요? 내가 어떻게 협조하길 원하는 거죠?”그녀는 천천히 침대 위 아이를 바라보았다.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요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아이의 맑은 눈동자가 보였다.아이는 참으로 순하고 사랑스러웠다. 하지만 그 아이는 자신의 아이가 아니었다.그녀의 마음은 누군가 마구잡이로 흔들어대는 것처럼 아팠다.내장이 모두 뒤틀리는 듯한 통증에 온다연은 견딜 수 없었다.지금 당장이라도 유강후에게 따져 묻고 싶었다.왜 자신의 아이를 다른 사람에게 넘겼는지, 그리고 침대 위의 이 아이는 누구의 아이인지.하지만 만약 지금 모든 것을 폭로한다면, 유강후가 끝까지 인정하지 않는다면 어쩌겠는가?그가 침대 위의 아이를 어떻게 처리할지 상상만으로도 두려웠다.유강후는 차갑고 냉혹한 사람이었다. 때문에 아이 하나 없애는 건 그에게 아무것도 아닐 터였다.온다연이 아이를 보며 움직이지 않자 유강후는 다가와 아이를 품에 안고 그녀의 앞으로 걸어왔다.그러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아이 깼어. 안아 줘.”그는 아이를 온다연에게 건네려 했다.하지만 온다연은 받아들이지 않고 유강후를 밀쳐냈다.“꺼져요. 내 앞에서 위선 떠는 거 짜증 나니까!”그녀의 목소리가 다소 컸는지라 놀란 아이는 ‘와아’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점점 화가 치밀어 올랐던 유강후는 아이를 그녀에게 억지로 넘기려 했다.두 사람의 실랑이 끝에 결국 아이는 품에서 벗어나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순간 두 사람 모두 얼어붙었다.온다연이 먼저 정신을 차리고 재빨리 아이를 안아 올려 다친 곳이 있는지 확인했다.다행히 방바닥에는 두툼한 카펫이 깔려 있었고 아이도 옷을 두껍게 입고 있어 크게 다치지 않았다.그러나 충격을 받은 아이는 더욱 크게 울기 시작했다.온다연은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파 눈물을 흘리며 아이를 달랬다.그러나 왜인지 평소에는 얌전했던 아이가 이번에는 좀처럼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유강후는 장화연에
“내가 낳은 아이라고요?”온다연은 유강후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마치 그의 영혼 깊은 곳까지 꿰뚫어 보려는 듯한 눈빛이었다.‘어떻게 거짓말을 하면서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을 수 있지? 난 대체 얼마나 어리석었길래 이 사람의 모든 행동을 사랑이라 믿었고 진심이라고 여겼던 걸까?’갑자기 온몸이 지치는 듯한 피로감에 휩싸이더니 온다연은 차갑게 말했다.“아저씨, 나 속이는 게 그렇게 재미있어요?”유강후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눈빛에 잠깐 고통스러워하는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나는 널 속인 적 없어.”“속인 적 없다고요?”온다연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그의 앞에 섰다.눈빛이 마치 처음 보는 낯선 사람을 평가하듯 차갑고 날카로웠다.유강후의 몸에 커다란 구멍이라도 뚫으려는 듯 온다연은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그러다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웃음소리는 점점 커졌고 마침내 눈물까지 흘러내렸다.“속인 적 없다니... 아저씨, 아저씨 입에서 진실된 말이 단 하나라도 나온 적이 있긴 해요?”“하늘을 걸고 맹세해봐요. 날 속인 적 없다고. 정말 진실만 말했었다고요!”“할 수 있겠어요?”그녀는 한 번도 이렇게까지 감정을 폭발시킨 적이 없었다.목이 터질 듯 외치는 모습은 보는 사람마저 불안하게 만들었다.하여 유강후는 온다연의 이마에 손을 대며 물었다.“어디 아픈 거 아니야? 주성원 선생님 부를까?”“손 치워요!”온다연은 그의 손을 세게 쳐내며 격렬히 숨을 몰아쉬었다.‘참을 만큼 참았어.’다정하면서도 유강후의 몸에서는 여전히 달달한 향수 냄새가 났다.역겨웠다. 정말 끔찍하게 역겨웠다.그와 얽혔던 모든 기억이 날카로운 칼이 되어 그녀의 심장을 후벼 파는 것 같았다.온다연은 유강후를 밀쳐냈다.“아저씨는 정말 역겨워요. 진짜 끔찍해요!”순간 유강후의 얼굴이 굳어지더니 창백한 온다연의 얼굴을 보며 그는 천천히 주먹을 쥐었다.“온다연, 지금 무슨 말 하고 있는지 알아? 방금 한 말 당장 취소해.”그러자 온다연은 차가운 웃음을
“예전에는 작은 도련님을 앞에 데려다만 놓으면 꼭 안아서 놓으려 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만지려고도 하지 않아요.”잠시 망설이던 장화연이 이어 말했다.“사모님이 아마 이 아이가 자기 아이가 아니라는 걸 알아버린 것 같아요.”심장이 철렁 내려앉은 유강후는 핸드폰을 바닥에 떨어뜨렸다.그리고 장화연은 떨어진 핸드폰을 주워 건네며 말했다.“차라리 이제 사실을 사모님에게 말하는 게 어때요?”유강후는 마음이 죄어드는 듯한 고통을 느끼며 눈빛이 어두워졌다.“안 돼. 견디지 못할 거야. 정말 죽을 만큼 아파할 거라고...”장화연은 한숨을 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리고 이제는 제 말을 믿지도 않고 제게 응답도 하지 않아요. 진시현 씨 일은 직접 사모님에게 말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유강후는 고개를 돌려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방 안에서 온다연은 유강후가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아이의 볼을 살짝 건드리며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느꼈다.이제 이 아이만 보면 자신의 아들이 그 여자와 함께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그 고통은 마치 칼로 심장을 도려내는 듯했고 유강후에 대한 증오가 점점 깊어졌다.그의 무정함과 거짓말이 더욱 미웠다.장화연을 시켜서 외부의 여자가 자신의 대역이라는 말이나, 누군가 그녀를 암살하려 했기에 보호를 위해 대역을 세웠다는 말까지 하게 만들다니.온다연은 그저 웃음이 나올 뿐이었다.‘이런 허술한 거짓말을 대체 어떻게 만들어낸 걸까? 설령 누군가 내 목숨을 노렸다 해도 어떻게 내 아들을 그 대역한테 맡길 수 있어? 웃겨서 정말!’그의 입에서는 한 마디의 진실도 나오지 않았다.온다연은 멍하니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너는 내 아기가 아니지만 명목상 내 아이니까 정말 좋긴 해. 걱정 마. 내가 널 포기하지 않을 거야. 작은 희망이라도 있으면 반드시 널 데리고 나갈 거야.”“하지만 지금은 널 좋아한다는 걸 티 내면 안 돼. 그렇지 않으면 아저씨가 널 이용해 날 또 옥죌 거니까.”“그 사람은 정말 나쁜 사람이야. 내가 얼마나 괴
병원에서.며칠간의 치료와 정성 어린 간호 끝에 나은별은 상태가 많이 호전되었다.그녀는 핸드폰으로 뉴스를 보며 소이섭이 깎아준 사과를 받아들었다.“그 사람은 어떻게 처리했어요?”소이섭은 안경을 살짝 고쳐 쓰며 차가운 눈빛을 번뜩였다.“죽었어. 너무 많은 걸 아는 사람은 살려둘 수 없지.”나은별은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그 사람... 강후 씨 비서였잖아요. 갑자기 죽으면 의심을 사지 않을까요?”그러자 소이섭은 냉소적으로 대답했다.“강후는 지금 온다연이라는 여자애를 찾느라 온 세상을 뒤지고 있어. 이런 일에 신경 쓸 겨를이 없을 거야.”곧 나은별은 사과를 한 입 베어 물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이번 수는 제대로 먹혔네요. 비서를 이용해 강후 씨의 말을 왜곡해서 아래 사람들에게 전달하게 하고 강후 씨가 온준휘를 구하지 않으려 한다는 오해를 만들었잖아요. 그 결과 온준휘는 골든타임을 놓쳐 죽게 됐고 지금 온다연의 눈에는 강후 씨가 살인범이나 다름없겠죠.”“온다연은 어릴 때부터 부모의 사랑도 받지 못했어요. 자신이 잠깐 돌봐줬다는 이유만으로 심미진이 온다연을 학대하고 유하령이 괴롭히게 놔뒀는데도 아직도 심미진을 잊지 못하더라고요. 그런 애가 가장 중시하는 건 가족이에요. 그런데 온준휘가 강후 씨의 무관심으로 죽었다고 믿고 있으니... 온다연이 강후 씨를 용서할 리 없겠죠.”“게다가 온다연은 강후 씨가 자기 아이를 다른 사람에게 보내버렸다고 믿고 있어요. 이제 강후 씨를 더더욱 용서하지 못할 거예요.”“근데 정말 보고 싶어요. 그 여자가 자기 아이가 사실 이미 죽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어떤 표정을 지을지. 생각만 해도 속이 시원해!”소이섭은 그녀의 손을 잡으며 차갑게 말했다.“지금은 온다연이 그 사실을 알게 하면 안 돼. 김원도와 계획한 대로 모든 걸 진행해야 해. 하지만 걱정 마. 온다연이 너한테 그런 짓을 했던 만큼 내가 온다연한테 그보다 더한 고통을 줄 거니까.”나은별은 이를 드러내며 비웃었다.“온다연 따위가 감히 나와 경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