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다연이 2층 화장실 앞에 도착했을 때 갑자기 뒤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뭔가 직감한 듯 온다연은 급히 몸을 돌렸다.유강후의 경호원들이 온다연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고 유강후는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묵직한 시선으로 온다연을 응시하고 있었다.거리가 있었는데고 불구하고 유강후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서늘한 기운은 온다연의 등을 차갑게 얼어붙게 했다. 온다연은 상자를 꽉 끌어안고 절망에 빠져들었다. 온다연에게는 이 작은 고양이 하나뿐인데 왜 유강후는 끝까지 온다연을 놓아주지 않는 걸까?”왜 유강후는 온다연에게 한순간도 숨 쉴 여유도 주지 않는 걸까?왜 유강후는 언제나 온다연을 궁지에 몰아넣으려는 걸까?온다연은 유강후가 자신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는 모습을 보며 상자를 안고 뒤로 물러섰다.쇼핑몰은 넓었지만 유강후는 금세 온다연에게 다가왔다.온다연은 등을 벽에 기대고 잠시 유강후를 응시했다. 손바닥은 땀으로 흥건했다.유강후가 가까이 오려는 순간, 온다연은 몸을 돌려 유일하게 밖으로 나가는 창문을 열었다.구월이를 이곳에서 죽게 할 수는 없었다.거의 망설임도 없이 온다연은 허리 높이의 창문에 올라타 상자를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온다연이 창문에 오르는 걸 본 유강후는 온다연이 무엇을 하려는지 깨달았고 동공이 수축되며 심장이 멎을 것 같았다. 유강후는 빠르게 온다연에게 달려갔다.“다연아!”온다연은 뒤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2층 창문에서 뛰어내렸다.이는 낮았고 아래 두꺼운 눈이 쿠션처럼 받쳐주었지만, 상자를 든 채 떨어진 충격에 온다연은 다리가 부러질 것만 같았다.순간, 온다연의 손에서 상자가 바닥으로 떨어졌다.작은 고양이는 상자 안에서 몇 번 굴러가며 아픈 듯 울음을 터뜨렸다.온다연은 다리에 밀려오는 통증을 참으며 상자를 다시 집어 들었다.유강후는 창문에서 이 모든 광경을 목격했다.그 순간, 유강후의 심장은 멈춰버릴 것만 같았다.온다연이 상자를 집어 드는 걸 보고 유강후는 손을 뒤로 흔들며 말했다.“누군가 여기서 뛰어내렸으니 그 사람을
작은 고양이는 다시 수술실로 들어갔다.온다연은 수술실 문 앞에 서서 유리문에 기대어 안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지켜봤다.온다연은 구월이의 작은 몸이 열렸다가 다시 봉합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마취에 잠긴 구월이는 소리 한 마디 내지 않았지만 온다연의 가슴은 바깥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찢어질 듯 아팠다.그 순간만이라도 자존심을 내려놓고 유강후에게 한 마디라도 다정하게 말했다면 구월이가 이렇게 큰 고통을 겪지 않았을 텐데.이 모든 것이 자신의 잘못이었다.온다연이 얼마나 오랫동안 문 앞에 서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유강후는 끝까지 그녀 곁을 떠나지 않았다.구월이의 수술이 끝날 때까지 말이다.유강후는 온다연을 조심스럽게 안아 휴게실로 데려갔다. 온다연은 힘없이 유강후의 가슴에 머리를 기대고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구월이는 죽을까요?”유강후는 낮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아니, 죽지 않을 거야. 조금만 기다리면 우리 바로 영원시로 돌아갈 거야. 내가 경원시에서 최고의 동물 의사를 불러왔어. 이미 영원시에서 밤새워 기다리고 있을 거야.”온다연은 그 말을 듣고는 한숨을 내쉬듯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유강후는 온다연을 소파에 앉힌 뒤 작은 담요를 가져와 그녀의 어깨에 조심스럽게 덮어주었다.잠시 온다연을 안고 있던 유강후는 쉰 목소리로 말했다.“다시는 함부로 도망가면 안 돼. 널 찾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알아?”온다연은 말없이 고개를 숙인 채 무언가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온다연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나은별은 괜찮아요?”유강후는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그때 구월이가 서랍장에서 뛰어내려 그녀를 할퀴었어. 아마 많이 놀랐을 거야. 게다가 은별이는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어서 그날 좀 심하게 행동한 것 같아.”온다연은 눈을 내리깔고 손을 꽉 쥐며 말했다.“난 은별 씨가 싫어요! 만약 구월이가 죽으면 난 절대 은별 씨를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유강후는 온다연을 꼭 안아주며 온다연의 작은 손을 자신의 큰 손으로
욕조는 이미 따뜻한 물로 가득 차 있었고 그 위에는 붉은 장미 꽃잎들이 둥둥 떠다니며 은은한 장미 향이 공기 중에 서서히 퍼지고 있었다. 모든 것이 마치 평온하고 고요한 한순간처럼 느껴졌다.온다연은 아직도 어제 입었던 옷을 그대로 입고 있었는데 옷을 벗고 나서야 무릎이 까져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피가 옷감에 달라붙어 있었고 그것을 떼어낼 때 피부까지 벗겨져 나갔다.하지만 온다연은 아무런 감각이 없는 듯 물에 몸을 담그며 잠시 얼굴을 찡그렸을 뿐이었다.유강후는 온다연의 다른 부위를 꼼꼼히 살펴보았다. 다행히도 새로운 상처는 무릎밖에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안심했다.유강후는 온다연을 욕조 가장자리에 앉힌 뒤 부드러운 수건과 특제 오일로 천천히 온다연을 씻기기 시작했다.온다연의 피부는 하얗고 머리카락은 유난히 검었다. 젖은 머리카락이 온다연의 하얀 목과 볼에 찰싹 달라붙으니 그 이목구비가 더욱 섬세해 보였고 눈빛도 한층 더 순수해 보였다.온다연이 그렇게 유강후를 바라보자, 유강후의 몸은 점점 긴장으로 굳어갔다. 샤워를 끝내기도 전에 욕실 안의 공기는 이미 묘하게 변해버렸다.애매한 숨소리가 이어졌고 한참 후에야 유강후는 온다연을 욕실에서 안고 나왔다.식탁 위에는 온다연이 좋아하는 요리들이 여러 가지 놓여 있었고 여전히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온다연은 여전히 구월이를 걱정하며 다른 생각들로 가득 차 있었기에 몇 입만 먹고는 수저를 내려놓았다.유강후는 온다연 앞에 있는 계피향이 나는 달콤한 국물을 밀어주며 말했다.“이거라도 조금 먹어.”온다연은 온몸이 아파서 거의 부서질 것 같았고 기운도 없었다. 겨우 두 입을 먹고는 다시 멈췄다.유강후는 온다연의 지친 모습을 보고 방금 일이 너무 지나쳤음을 깨달았다.유강후는 온다연의 아직 다 마르지 않은 머리카락을 만지며 물었다.“많이 아파?”온다연은 고개를 숙이고 손에 든 은색 작은 숟가락을 툭툭 건드리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리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다음엔 그렇게 오래
오후가 되어 하늘이 어둑해지기 전에 결국 유강후는 온다연을 데리고 경원시로 돌아왔다.다음 날 점심, 온다연이 막 일어났을 때 누군가 드레스를 가져왔다.H 브랜드의 하이엔드 맞춤형 드레스였고 최신 런웨이 작품인 작은 원피스 드레스였다. 디자인은 매우 간결하면서도 우아했다.스커트 길이는 무릎까지였고 허리 부분에는 작고 촘촘한 다이아몬드가 장식되어 있어 전체적으로 심플하면서도 고귀한 느낌을 주었다.같은 색상의 캐시미어 숄도 함께 왔는데 그 위엔 독특한 디자인의 다이아몬드 브로치가 달려 있어 값비싼 물건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그러나 온다연은 이런 것들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온다연의 마음은 오로지 구월이에게만 쏠려 있었고 오전 내내 구월이를 돌보는 사람들에게 몇 번이나 전화를 걸었다.오후가 되어서야 두 명의 스타일리스트가 도착했다.이 두 명의 스타일리스트는 경원시 상류층에서 가장 유명한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었으며 원래는 톱스타들만을 담당하던 사람들이었다.전설적인 본가의 셋째 도련님이 직접 그들을 지정했다는 소식을 들었고 그들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경원시에서 본가와 인연을 맺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일이기 때문이다.아무리 많은 톱스타와 일해도 권력과 부를 가진 태자와 조금이라도 연이 닿는 것이 더 큰 가치를 지니는 일이었다.그렇게 태자에게 선택받은 후, 일이 성사되면 그들의 몸값은 폭등할 것이 분명했다.오후 일찍 두 사람은 함께 유강후의 전통 한옥 입구로 향했다.경원시에서 가장 좋은 위치에 있는 이 전통 한옥은 비록 다른 이들의 대저택처럼 크지는 않았지만, 이런 집은 절대적인 권력과 재력을 상징하는 것이다.입구에 도착하자마자 누군가 나와 그들을 안으로 이끌었다.그들은 주위를 둘러보지 않고 조용히 전통 중국식 정원을 지나 드레스룸으로 향했다.원래는 유강후의 약혼녀 ‘나은별’을 담당할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들어온 사람은 십칠팔세로 보이는 소녀였다.소녀는 매우 간결한 흰색 스웨터와 같은 색의 긴 바지를 입고 있어 전체적으로 얇고 연약해
두 명의 스타일리스트는 순간 멍하니 서 있었다.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동료에게 팔을 잡혀 앞으로 이끌려갔다.“보지 마, 빨리 가자.”얼마나 지났는지 모를 시간이 흘러 그들은 다시 드레스룸으로 돌아왔다.그런데 그들이 발견한 것은 방금까지만 해도 순조롭게 진행되던 메이크업이 이제는 더 이상 그대로 이어질 수 없다는 것이었다.온다연의 입술이 살짝 터져 약간 부어올랐기 때문에 계획했던 입술 메이크업을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었다.하지만 다행히도 온다연은 원래부터 매우 청초하고 정교한 외모를 가졌기 때문에 과도한 화장이 필요하지 않았다.얼마 지나지 않아 메이크업이 끝났고 이제는 헤어스타일을 손보는 차례였다.온다연은 조용히 협조하며 순순히 그들과 호흡을 맞췄다. 그러나 옆에 있는 유강후의 압도적인 존재감이 너무 강렬해 그들은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마지막으로 그들은 온다연의 머리를 간단한 공주 머리로 묶기로 결정했다.머리에 장식물을 올릴 때 집사가 커다란 상자를 하나 들고 들어왔다.상자가 열리는 순간 대형 행사를 숱하게 보아왔던 이 스타일리스트들은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상자 안에는 머리핀, 팔찌, 브로치 등 다양한 장신구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 수는 백 개가 넘을 정도였다.그리고 그 모든 것들은 유명 브랜드의 맞춤형 보석들이었으며 일부는 심지어 앤티크 급의 것들이었다.아무리 작은 장신구 하나라도 그들의 연봉에 맞먹을 정도였다.하지만 스타일리스트들의 눈길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집사는 온다연에게 물었다.“온다연 씨, 어떤 걸 착용하시겠습니까?”온다연은 장신구들을 한 바퀴 둘러본 후, 옷과 같은 색의 머리핀을 집어 건넸다.“이걸로 하죠.”그러나 유강후는 앞으로 나와 온다연이 고른 머리핀을 가져가더니 대신 연한 하늘색 머리핀을 골라 온다연의 귀 근처에 꽂아주었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게 더 낫겠군.”그 후, 유강후는 집사에게 말했다.“그 세트를 꺼내와요.”온다연은 그가 또 어떤 화려한 보석을 꺼내려는지 알 수
온다연은 태어나서 이렇게 정성스럽게 차려입은 적이 처음이라 속으로는 조금 불안했다.곧 가게 될 곳이 큰 행사임을 알았지만, 그런 자리에 가본 적이 없어 더 긴장되었다.온다연은 작고 하얀 손을 꼼지락거리며 조심스럽게 물었다.“도대체 어디로 가는 건가요?”유강후는 온다연의 불안을 눈치챈 듯 집사가 건넨 캐시미어 숄을 받아 온다연에게 곱게 둘러주고 다시 한번 머리를 정돈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걱정하지 마. 장화연만 잘 따라가면 돼. 아무도 너를 신경 쓰지 않을 거야. 넌 그냥 보기만 하면 돼.”온다연은 점점 혼란스러워지며 고개를 들어 맑고 까만 눈동자로 유강후를 바라보았다.온다연이 이렇게 집중해서 사람을 바라볼 때는 정말로 매력적이었다. 더군다나 오늘처럼 차려입은 모습은 유강후조차 자신을 제어하기 힘들게 만들었다.유강후는 온다연을 잠시 응시하다가 침을 삼키며 약간 쉰 목소리로 말했다.“이따가 가서는 이렇게 사람을 뚫어져라 쳐다보지 마. 알겠지?”온다연은 유강후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이해하지 못했고 그저 조용히 유강후를 바라보기만 했다.유강후는 다시 말했다.“만약 누가 널 알아보거나 너에게 말을 걸려고 한다면 곧바로 옆으로 피해.”온다연이 대답할 틈도 없이 유강후는 갑자기 온다연의 가느다란 허리를 꽉 움켜쥐고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기며 온다연의 귀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다른 남자와 말을 섞는다면 오늘 밤은 잠들 수 없을 줄 알아.”유강후의 뜨거운 숨결이 온다연의 여린 귓불을 스치자, 온다연은 깜짝 놀라 몸을 떨며 재빨리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저... 안 가면 안 될까요?”유강후는 앞으로 나와 온다연의 손을 잡아 이끌며 단호하게 말했다.“안 돼. 꼭 가야 해.”온다연은 이를 악물고 말했다.“잠깐만요.”온다연은 화장대 앞으로 걸어가 장신구 상자를 집어 들고 유강후 앞에 다가가 진지하게 말했다.“이거, 다 제 건가요?”유강후는 온다연을 바라보며 말했다.“당연히 네 거지. 너를 위해 산 거니까.”온다연은 여전히
품에 안긴 몸이 살짝 굳은 것을 보고, 유강후는 온다연의 손을 잡았다. 온다연은 창백한 안색으로 밖을 바라봤다. 손도 약간씩 떨리고 있었다.유강후는 싸늘한 눈빛으로 밖을 바라보더니 그녀의 머리에 짧게 입을 맞췄다.“무서워할 필요 없어. 장 집사랑 같이 사람 적은 곳에서 구경할 준비나 해.”온다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밖만 물끄러미 바라봤다.별장의 계단에서 고유정과 장하그룹의 후계자 봉현수가 내려왔다. 맞춤 제작된 드레스를 입은 고유정은 밝지만 과장되지 않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봉현수도 남다른 아우라를 뿜어내며 등장했다.유하령도 고유정과 함께 등장했다. 계단 끝에서 고급 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활짝 웃고 있었다. 그녀의 곁에는 염지훈이 있었다.염지훈은 회색 정장을 입었다. 여유로운 분위기의 그는 오늘따라 예리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를 발견한 유강후는 표정이 빠르게 식었다. 목소리 역시 차갑게 가라앉은 채로 입을 열었다.“이따가 염지훈이랑 말 한마디도 섞지 마.”유강후는 또 장화연을 바라보며 말했다.“애 잘 보고 있어. 우리가 들어간 다음에 다시 내리고.”장화연은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네, 도련님.”말을 마친 유강후는 문을 열고 나갔다. 봉현수와 염지호는 이미 다가와 있었다.유강후는 차가운 표정으로 염지훈을 바라보며 염지호에게 말했다.“당신이 데려왔어요?”염지호는 웃으면서 대답했다.“왜 또 예민하게 굴어. 우리 지훈이가 뭘 어쨌다고. 사람 찾아서 고양이를 구해준 게 전부잖아. 그리고 오늘은 댁 여동생이 사정사정해서 나온 거야.”염지호는 또 유강후가 타고 온 차를 힐끗 보며 물었다.“설마 데리고 온 거야?”“염지훈 잘 단속해요. 애랑 말 한마디라도 하면 손가락을 끊어버릴 테니까요.”“만약 그쪽에서 먼저 말을 건다면?”“흥. 그럴 리 없어요. 내 사람은 내가 잘 알아요.”말을 마친 그는 봉현수에게 물었다.“준비는 어떻게 되어 가요?”봉현수는 살짝 인상을 쓰며 고유정을 바라봤다.“계획대로 되어 가고 있어요. 대신
유하령은 또 주변을 빙 둘러보며 말했다.“은별 씨는 왜 같이 안 왔어요? 둘이 영원에서 같이 있었다면서요.”유강후는 자신의 팔을 빼내면서 담담하게 말했다.“남 일에 신경 끄고 빨리 돌아가기나 해.”유하령은 염지훈을 힐끗대면서 부끄러운 표정을 지었다.“저도 이런 데 와서 공부하고 싶다고요.”“난 이미 경고했어. 후회하지 마.”말을 마친 그는 성큼성큼 걸어갔다.유하령은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마음 같아서는 쫓아가서 무슨 뜻인지 묻고 싶었지만, 괜히 따라갔다가 혼나기만 할 것 같았다.그녀는 유강후가 무서웠다.몇 개월 전 유강후가 온다연을 데려가면서, 두 사람의 사이는 아주 어색해졌다. 분하지만 딱히 할 수 있는 건 없었다.유강후를 건드릴 수 없었던 그녀는 온다연만 탓했다. 지금도 속으로 온다연을 욕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장화연과 함께 들어온 그녀를 보게 되었다.유하령은 안색이 약간 변했다. 온다연이 이런 곳에 올 줄은 몰랐던 것이다.그러나 이번에는 충동적으로 행동하지 않았다. 유강후에게 뺨을 맞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했다. 그날 이후로 온다연이 유강후에게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도 깨달았다.그녀는 온다연을 죽어라 노려보며 다가갔다. 하지만 가까이 가기도 전에 장화연이 입을 열었다.“아가씨, 뺨 한 번 맞은 거로 모자랐나요?”유하령의 안색은 아주 어두웠다. 그녀는 온다연이 입은 한정판 드레스를 쓰레기라도 보는 눈빛으로 바라봤다.“야, 넌 드레스만 입으면 공주가 되는 줄 알지? 꿈도 꾸지 마. 넌 남이야. 우리 작은아빠는 나랑 가족이라고. 질리면 버림받을 주제에 나대지 마.”온다연은 장화연의 옷을 잡아당기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신경 쓰지 말고 어디 가서 앉아요.”그녀는 손을 뻗으면서 다이아몬드 팔찌를 드러냈다. 그걸 발견한 유하령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달의 마음. 유하령은 그 팔찌를 한눈에 알아봤다. 익명의 재벌이 160억으로 낙찰받았다는 소식이 꽤 놀라웠기 때문이다.그런 팔찌가 온다연의 손목에 걸린 것을 보고 그녀는 미칠
유강후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참을 수 없어도 참아야 해. 평생 그렇게 살아야 하는데.”온다연은 지려 하지 않았다.“고쳐야죠. 계속 이러면 제가 어느 날 정말 견딜 수 없어 아기를 데리고 떠날 수도 있어요.”그녀의 허리를 잡은 큰손에 갑자기 힘이 실리고, 몸이 앞으로 확 끌려가 유강후의 다부진 몸에 찰싹 붙었다.그의 목소리에서 차가운 기운이 느껴졌다.“온다연, 다시 또 이런 말을 하면 정말 화낼 거야.”온다연은 수그러들지 않았다.“화를 내면 어쩔 건데요?”유강후는 실눈을 짓더니 손가락으로 그녀의 턱을 받쳐 들고 나지막이 말했다.“이렇게 벌을 내릴 거야.”말을 마친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을 깨물었다.곧 가쁜 숨소리가 전체 공간을 채웠다.온다연은 뒤에 있는 서랍장 때문에 옴짝달싹 못 했다.그녀는 고개를 뒤로 젖히고 그의 강력한 공세를 견뎠다.그러면서 저도 모르게 몸을 떨기 시작했다.저번에 서재에서 관계를 가진 이후로 유강후는 신대륙이라도 발견한 듯 그녀가 만족할 수 있게 힘 조절과 수위 조절을 완벽히 해냈다.그는 부드러우면서도 강하게 그녀가 원하는 모든 것을 만족시켰다.그는 그녀의 귓불을 가볍게 깨물며 쉰 목소리로 말했다.“이래도 떠날 거야?”온다연은 모든 신경이 그의 몸에 집중돼 사고력을 잃은 듯 무의식적으로 대답했다.“아니, 떠나지 않을 거예요...”유강후는 만족스러운 듯 그녀에게 더 큰 보상을 해주었다.온다연은 거의 통제력을 잃고 또 그의 옷을 더럽혔다.다 끝나고 그의 옷이 얼룩덜룩해진 것을 본 그녀는 부끄러워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지만 그의 몸에서 내려올 힘조차 없었다.유강후는 그녀의 몸이 달아올라 옅은 분홍색을 띠는 것이 좋고, 그녀가 자기 손에서 피어나는 모습이 사랑스럽다.수줍어하거나, 참지 못하거나, 약간 요염한 모든 것이 그의 것이다.그는 땀에 젖은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넌 이런 게 좋아?”온다연은 방금 방탕했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니 부끄러워 감히 대답하
온다연은 불만스러운 듯 볼에 바람을 넣고 눈살을 찌푸렸다.“이건 공평하지 않아요. 왜 아저씨는 휴대폰을 쓸 수 있는데, 저는 안 돼요?”너무 귀여운 모습에, 유강후는 참지 못하고 그녀의 볼을 꼬집으며 나지막이 말했다.“알았어. 오늘은 업무용 휴대폰만 쓸게, 됐지?”몇 개 대기업을 관리하는 그에게 휴대폰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온다연은 당연히 잘 알고 있다.중요한 일이 있을 때, 유강후의 전화가 연결이 안 되면 금융시장에 꽤 큰 파문이 일 수도 있다.온다연은 조금 걱정됐지만 기쁘기도 했다.그녀는 살짝 기대하는 눈빛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오늘 하루 종일 같이 있을 거예요?”그동안 유강후는 아침과 저녁에만 집에 있었고, 낮에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그래서 하루 종일 같이 있는다니 약간 기대가 됐다.유강후는 그녀에게 뽀뽀했다.“하루 종일 나와 함께 있고 싶어?”온다연은 귀 끝이 빨개졌지만, 그래도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아기도 함께했으면 더 좋을 텐데.”아기도 곧 돌아온다는 생각을 하니 그녀는 기쁨을 금치 못했다.“가족은 원래 같이 있어야 하는 거예요.”어려서부터 부모의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그녀는 그런 가슴 쓰린 아픔을 알기에 자기 아이에게 똑같은 고통을 주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아이가 커가는 것을 곁에서 지켜볼 것이며, 모든 고요한 밤과 희망찬 아침을 함께할 것이다.유강후도 이 아이를 몹시 아끼는 것 같고, 그녀가 지금까지 잃은 것들을 여기서 되찾을 수 있을 것 같다.유강후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지막이 말했다.“그런 걸 간절히 원해?”온다연은 그의 가슴에 기댄 채, 기대 어린 눈빛으로 중얼거렸다.“이건 저의 모든 희망이에요. 아저씨, 저는 지금 너무 행복해요. 아기도 있고 아저씨도 있는 지금이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에요. 저 같은 사람도 이런 걸 가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아저씨, 고마워요. 아저씨도 아기를 위해 큰 노력을 했어요. 아기를 지켜내지 못했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는 카메라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맑고 깨끗한 목소리로 말했다.“안녕하세요, 저는 주혜성이고 오늘 실검에 오른 온다연의 죽마고우입니다. 우리 둘은 같이 자랐고, 거의 그림자처럼 붙어 다녔습니다. 온다연은 마음이 고운 사람이었고 상간녀가 될 리 없습니다.”그는 잠시 멈추었다가 말을 이었다.“온다연과 그 남자들의 이야기는 모두 누군가가 지어낸 헛소문입니다.”수줍게 웃는 그의 눈에서 반짝반짝 빛이 났다.“제가 오랫동안 쫓아다녔는데도 온다연은 저를 받아주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어떻게 늙은 남자에게 반할 수 있겠습니까?”“제가 그 남자들보다 못생겼을까요? 그래서 그 남자들을 선택하고 저를 선택하지 않았을까요?”“온다연과 그 아가씨가 실랑이를 벌인 데는 뭔가 오해가 있는 게 분명합니다. 게다가 그 영상은 편집된 것입니다. 영상을 올린 분께서 전체 영상을 공개하시길 바랍니다. 일부만 공개해서 오해를 유발하지 마시고요.”“조금만 생각해 보면 헛소문이라는 것을 깨달을 것입니다. 여러분, 법을 지키는 좋은 시민이 되십시오.”말을 마친 그는 카메라를 향해 천천히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그 모습은 성에서 걸어 나온 왕자처럼 우아했다.유강후는 동영상을 꺼버렸다. 그는 안색이 별로 좋지 않았다.이 자식이 이런 방식으로 온다연의 결백을 증명하려고 하다니. 또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 건지 모르겠다.주씨네 형제는 둘 다 정말 성가시다.이때 온다연이 침실에서 나왔다.그녀는 천천히 걸어와 뒤에서 유강후를 끌어안더니 맹한 표정으로 물었다.“왜 아침부터 뉴스를 봐요?”유강후는 숨을 깊이 들이마신 후 돌아섰다.그는 온다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지막이 말했다.“잘 잤어? 점심까지 자겠다고 하지 않았어?”온다연은 얼굴을 그의 손에 비비며 피곤한 듯한 표정으로 대답했다.“또 악몽을 꿨어요.”“무슨 꿈인데?”“꿈에 아기가...”그녀는 말을 멈추었다.왠지 모르지만 그녀는 자꾸 아이가 없어지는 꿈을 꾼다. 게다가 꿈속의 아이는 유강후와 똑 닮았다. 그녀는 꿈속에서 너무
나은별은 전화기 너머에서 울기 시작했다.“강후 씨, 내가 한 게 아니야. 내가 바보도 아니고, 이렇게 뻔한 짓을 왜 하겠어?”“믿어줘. 정말 아니야. 강후 씨, 어려서부터 같이 자란 나에게 이 정도의 믿음도 없어?”유강후가 침묵을 지키자, 나은별이 울면서 말했다.“온다연 씨가 나를 오해하고 때렸어도 나는 온다연 씨한테 화풀이하지 않았어. 어쨌든 강후 씨가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강후 씨 체면을 봐서라도 온다연 씨에게 손을 대지는 않아.”“내가 당장 해명 영상을 올려서 온다연 씨의 누명을 벗겨줄 테니 의심하지 마.”유강후는 휴대폰을 꽉 쥔 채 쌀쌀하게 말했다.“나은별, 이 일이 너랑 상관없기를 바랄게.”말을 마친 그는 전화를 끊었다.이권이 가자마자 한이준에게서 전화가 왔다.“어떻게 된 거야? 지금 일이 너무 크게 번졌어. 여론이 너무 한쪽으로 기울어서 악성 댓글을 아무리 삭제해도 계속 올라와.”“실시간 검색어를 최대한 삭제하고 있지만 이미 널리 퍼져서 덮기는 어려울 것 같다.”“뒤에서 누가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 게 분명해. 그렇지 않고서는 이렇게 빨리 퍼질 수 없어.”유강후는 휴대폰을 잡은 채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무슨 수를 써서라도 덮어야 해. 악성 댓글 작성자 아이디를 전부 기록해. 헛소문을 퍼뜨렸으면 그 대가를 치러야지.”그는 전화를 끊고 즉시 몇몇 대형 SNS와 동영상 사이트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이들 중 몇 명은 평소에도 미래그룹과 사업상 접촉이 많은 터라 전화를 받은 뒤 곧바로 실시간 검색어를 처리하기 시작했다.다른 몇 명은 유강후와 잘 아는 사이는 아니지만, 미래그룹처럼 덩치가 큰 거대기업이 먼저 손을 내미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어쨌든 돈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으니까.얼마 지나지 않아 이 사건은 인기 검색어 순위에서 점점 밀려나다가 점차 실시간 검색어에서 사라졌다.하지만 유강후는 방심하지 않고 동향을 예의 주시하라고 부하에게 시켰다.잠시 후 이권이 누군가가 댓글 알바를 고용해 인터넷에서 온다연의 과거를 캐기 시
집에 들어선 후, 유강후는 시원한 연고를 가져와 온다연에게 발라주었다.그런데 장화연이 어쩌다 이 장면을 보게 될 줄이야. 온다연은 한순간 얼굴을 들 수가 없었고, 밥도 먹지 않고 숨어 있었다.유강후도 너무 후회되어 그녀를 끌어안고 한참을 달랬다.저녁에 아기 보러 병원에 갈 때까지 이 상황은 계속됐다. 아이의 상태가 좋아진 것을 보고 온다연은 그제야 겨우 화를 풀었다.이튿날 아침 유강후가 침실에서 나오니 이권이 벌써 거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셋째 도련님, 인터넷을 좀 보세요. 온다연 씨가 인터넷 스타가 됐어요.”유강후가 미간을 찌푸리며 차갑게 말했다.“인터넷 스타라니, 무슨 소리야?”이권은 한숨을 쉬며 휴대폰을 건넸다.“일단 보세요. 제가 처리하고 있긴 하지만, 실검을 세 번이나 눌렀는데도 상황이 정리가 안 돼요.”‘상간녀가 보석 가게에서 본처를 때렸다’라는 제목의 동영상이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라가 있었고, 그 아래에 비슷한 댓글이 가득 달렸다.유강후는 미간을 찌푸리면서 동영상을 열었다.어제 온다연이 보석 가게에서 나은별과 싸우는 장면이었다.동영상만 보면, 확실히 온다연이 먼저 때렸다. 게다가 온다연은 날뛰고 있고, 나은별은 한 번도 반격하지 않은 채 처참하게 맞는 모습이었다.동영상은 온다연이 나은별을 때리는 데서부터 시작돼 조아영이 그녀를 끌어낼 때까지 1분여 동안 지속됐다.중간에 편집 흔적이 전혀 없어 딱 봐도 원본 영상이었다.‘좋아요’가 600만 개 이상, 리트윗이 300만 개 이상에 달하고, 댓글 창은 온통 욕하는 말들로 도배됐다.[요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상간녀가 이렇게 대놓고 날뛰어도 되는 거야?][이건 너무 심하잖아. 상간녀가 누군지 신상 털어!][진짜 뻔뻔스럽군. 유부남을 꼬신 주제에 감히 이렇게 날뛰다니. 이 여자와 부모의 신상을 털어 온 가족이 고개를 쳐들고 다니지 못하게 해야 해.][본처가 진짜 나약하네. 내가 저 여자라면 그 자리에서 상간녀 머리를 부숴버렸을 거야.][상간녀가 어려 보이는
유강후는 좀 세게 때리긴 했지만 그렇다고 너무 심한 것도 아니었다고 생각했다. 고작 몇 번 때린 것이 이렇게 빨갛게 부어오를 줄은 몰랐다.“많이 아파? 집에 가서 약을 바르자.”‘당연히 아프죠.’온다연은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지 못할 정도로 아프고 몹시 서러웠다.“화를 내도 된다면서요... 아저씨는 말한 대로 하지 않고 전혀 신용을 지키지 않아요.”유강후는 어이없었다.“화를 내도 된다고 했지, 반지를 던져도 된다고는 하지 않았어. 오늘은 세게 때린 것도 아니야. 또 한 번 반지를 던지고 나랑 결혼하지 않겠다고 하면 그때는 아예 의자에 앉지 못하게 엉덩이를 부숴버릴 거야.”온다연도 자기가 잘못했다는 것을 알기에 고개를 숙이고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그녀는 한참 후에야 다시 입을 열었다.“아저씨도 저를 때렸으니 맞비긴 셈이에요. 만약 아이를 보지 못하게 하면, 저도 아저씨의 점수를 깎아버리고 영원히 보지 않을 거예요.”유강후는 걸어가면서 말했다.“이렇게 말을 잘 듣는데 왜 아기를 못 보게 하겠어? 오늘 나한테 순순히 반지를 끼워준 것을 봐서 벌을 취소할게.”“하지만 그 점수라는 게 뭔지 나한테 알려줘.”온다연은 그의 어깨에 엎드려 통증을 참으며 시큰둥하게 말했다.“아저씨만 저를 벌할 수 있는 줄 알아요? 저도 아저씨를 벌할 수 있어요.”유강후는 걸음을 잠시 멈추었다.“무슨 벌인데?”온다연이 코웃음을 치더니 나지막이 말했다.“저한테 점수를 적는 공책이 있어요. 모두 100점인데, 아저씨가 잘하면 가산점이 붙고 잘못하면 감점이 돼요.”그녀는 아주 진지하게 말했다.“원래 70점이었는데, 20점 깎여서 지금 50점이에요. 0점 혹은 마이너스 점수가 되면 저는 아저씨를 버릴 거예요.”유강후는 웃음을 참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어떻게 하면 가산점이 붙고, 어떻게 하면 감점이 되는지 말해봐.”온다연이 정색하며 말했다.“예를 들면, 그웬을 데려다 아기를 살린 것은 589점, 주희를 구한 것은 50점, 저에게 불고기를 만들어준 것은
그는 손을 내밀고 반지를 보며 느릿느릿 말했다.“네가 자발적으로 나한테 반지를 끼워줬잖아. 반지를 끼워준 건 프러포즈한 것과 같으니, 앞으로 네가 나를 책임져야 해.”온다연은 그의 말을 들으며 어딘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그의 강요에 못 이겨 끼워준 것인데, 어떻게 그녀가 프러포즈한 것이 되는지?그녀는 눈을 비비며 울먹거렸다.“아저씨가 끼워달라고 했잖아요.”유강후는 미간을 찌푸리며 살짝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그게 그거지. 별 차이 없어. 내가 끼워달라고 말했더니 네가 바로 끼워줬잖아. 이게 자발적인 것이 아니고 뭐니?”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것을 알지만, 아이를 못 보게 할까 봐 걱정인 온다연은 별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유강후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반지도 꼈으니 결혼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니?”온다연은 선뜻 대답하지 않았다. 혼인신고를 해야 결혼했다고 볼 수 있다.하지만 결혼반지를 나눠 껴도 결혼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 같긴 하다. 적어도 명목상으로는 부부가 된 거니까.그녀가 말을 하지 않자, 유강후는 눈빛이 흔들리더니 나지막이 말했다.“네가 프러포즈했고 내가 받아줬으면 결혼한 것이나 다름없어. 결혼했으면 영원히 서로의 곁에 있어야 하고, 더 이상 다른 사람을 생각하면 안 돼. 알았지?”온다연은 뭔가 잘못된 것 같으면서도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았다.결혼했으면 둘이 같이 잘 지내야 한다.그녀는 눈을 비비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약간 서러웠다.“다시는 나은별을 만지면 안 돼요. 저는 그 여자가 싫어요.”그녀는 또 한마디 덧붙였다.“살짝 닿는 것도 안 돼요.”“만나도 3m 거리를 유지해야 해요.”유강후는 그녀가 덫에 걸린 것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화제를 돌렸다.“아까 나은별이 너한테 어쨌길래 머리가 터질 정도로 쳤어? 온통 유리 조각이던데, 손은 다치지 않았어?”유강후는 말하면서 온다연의 손을 당겨다 자세히 검사했다.그는 그녀의 희고 보드라운 손에 상처가 하나도 없는 것을 보고
유강후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앞으로 아무리 화가 나도 반지를 버리거나 결혼 문제를 가지고 장난치면 안 돼. 알았어?”온다연은 일어나려고 발버둥 쳤지만, 그가 허리를 꽉 잡고 있어 움직일 수 없었다.“제가 아니라 아저씨가 장난쳤잖아요. 아직도 나은별을 마음에 담고 있어요?”그녀는 너무 서러웠다.“아직도 그 여자가 좋으면, 아기를 데리고 떠날 테니 그 여자랑 사세요!”유강후는 화가 나면서도 웃겼다.“내가 언제 나은별을 생각했다고 그래? 뭘 보고 이러는 거야? 내가 나은별을 잡아당긴 것 때문에?”온다연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나은별이 유강후의 품에 기대어 있던 것을 생각하면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 여자를 안고 있었잖아요. 가슴에 기대고 있던데요.”유강후는 웃음이 나왔다. 알고 보니, 질투하는 것이었다.어린 것이 질투심은 왜 이렇게 강한지?“질투 났어?”온다연은 몹시 화가 났다.“누가 질투해요? 놔요. 저는 갈래요.”유강후는 그녀의 허리를 힘껏 끌어안으며 이를 악물었다.“내가 언제 나은별을 안았고, 언제 내 몸에 기대게 했는데? 똑똑히 말해봐.”그는 나은별을 바닥에서 잡아당겨 일으킨 후 온다연이 바로 폭발했던 기억밖에 없다.이 말을 들은 온다연은 더욱 화가 나서 얼굴까지 빨개졌다.“아저씨가 그 여자를 안았고, 그 여자가 아저씨 품에 기대어 있는 것을 똑똑히 봤는데도 인정하지 않을 거예요? 아저씨는 이제 불합격이에요. 미워요. 이거 놔요.”발버둥 치다가 방금 맞은 곳을 건드렸다. 얼얼한 통증에 그녀는 눈물이 핑 돌았고, 엉겁결에 손으로 맞은 곳을 가렸다.유강후는 그녀의 동작을 보고 방금 너무 세게 때려서 부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는 그녀의 몸을 뒤집은 후, 치마를 올리고 살펴보려 했다.온다연은 그가 또 엉덩이를 때리려는 줄 알고 놀라서 그의 손을 잡고 놓지 않았다.“그만 때려요. 아파요.”“반지를 주워 왔잖아요. 또 때리면 다시는 당신을 안 볼 거예요.”유강후는 손을 빼며 말했다.“붓지 않았는지 보려고
유강후는 괴로워하면서도 이를 악물고 참았다.“10일.”“온다연, 너 계속 이러면 아기 퇴원하는 날에도 못 볼 줄 알아.”그 말을 듣고 얼어붙은 온다연은 재빨리 그의 손을 놓았다.유강후가 어떤 사람인지 온다연은 알고 있다. 정말 그를 화가게 한다면 아마 한 달 동안 아기를 보지 못할 수도 있다.온다연은 어쩔 수 없이 분노를 꾹 참고 돌아서서 밖으로 나갔고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억울해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심하게 때려서 그런지 유강후는 온다연의 걷는 자세가 살짝 잘못된 걸 발견했다.하지만 결혼반지를 던지고 걷어찼던 행동을 생각하면 여전히 분을 삭이지 못했다.온다연은 울며 겨자 먹기로 문을 열었는데 밖에는 수많은 경호원들이 서 있었다.이권도 그곳에 있었지만 감히 나서서 말을 건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엉덩이를 맞은 걸 모든 사람이 들었다고 생각하니 분하면서도 수치스러웠다그러나 반지를 주워 오는 것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유강후가 아기로 협박을 하니 그의 장단에 맞춰주는 게 현재로서는 최선이다.온다연은 유강후에 대한 호감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전에는 70점이었다면 이제는 50점밖에 되지 않았다.온다연은 씩씩거리며 눈물을 닦고선 마지못해 바닥에 있는 반지를 주웠다.온다연이 휴게실로 돌아오자 유강후는 자연스레 손을 내밀었다.“끼워줘.”그 모습은 어찌나 무자비하고 싸늘한지 마치 인정머리 없는 제왕 같았다.온다연은 화가 나서 반지를 다시 던져 버리고 싶었지만 아기를 볼 수 없다는 생각에 울분을 참으며 유강후에게 반지를 끼웠다.유강후는 반지를 한번 꼼꼼히 확인하더니 스크래치가 없는 걸 보고선 마음속의 분노가 절반 가라앉았다.그는 자리에 앉아 온다연을 품에 끌어안았다.“뭘 잘못했는지 알겠어?”온다연은 대답하기 싫은 듯 고개를 숙이고 계속 눈물을 닦았다.온다연의 빨갛게 부은 눈과 눈물에 젖은 머리카락을 보니 유강후도 마음이 반쯤 풀렸다. 그는 손을 뻗어 온다연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잔머리를 귀 뒤로 넘겨주었다.“네가 말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