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에 안긴 몸이 살짝 굳은 것을 보고, 유강후는 온다연의 손을 잡았다. 온다연은 창백한 안색으로 밖을 바라봤다. 손도 약간씩 떨리고 있었다.유강후는 싸늘한 눈빛으로 밖을 바라보더니 그녀의 머리에 짧게 입을 맞췄다.“무서워할 필요 없어. 장 집사랑 같이 사람 적은 곳에서 구경할 준비나 해.”온다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밖만 물끄러미 바라봤다.별장의 계단에서 고유정과 장하그룹의 후계자 봉현수가 내려왔다. 맞춤 제작된 드레스를 입은 고유정은 밝지만 과장되지 않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봉현수도 남다른 아우라를 뿜어내며 등장했다.유하령도 고유정과 함께 등장했다. 계단 끝에서 고급 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활짝 웃고 있었다. 그녀의 곁에는 염지훈이 있었다.염지훈은 회색 정장을 입었다. 여유로운 분위기의 그는 오늘따라 예리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를 발견한 유강후는 표정이 빠르게 식었다. 목소리 역시 차갑게 가라앉은 채로 입을 열었다.“이따가 염지훈이랑 말 한마디도 섞지 마.”유강후는 또 장화연을 바라보며 말했다.“애 잘 보고 있어. 우리가 들어간 다음에 다시 내리고.”장화연은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네, 도련님.”말을 마친 유강후는 문을 열고 나갔다. 봉현수와 염지호는 이미 다가와 있었다.유강후는 차가운 표정으로 염지훈을 바라보며 염지호에게 말했다.“당신이 데려왔어요?”염지호는 웃으면서 대답했다.“왜 또 예민하게 굴어. 우리 지훈이가 뭘 어쨌다고. 사람 찾아서 고양이를 구해준 게 전부잖아. 그리고 오늘은 댁 여동생이 사정사정해서 나온 거야.”염지호는 또 유강후가 타고 온 차를 힐끗 보며 물었다.“설마 데리고 온 거야?”“염지훈 잘 단속해요. 애랑 말 한마디라도 하면 손가락을 끊어버릴 테니까요.”“만약 그쪽에서 먼저 말을 건다면?”“흥. 그럴 리 없어요. 내 사람은 내가 잘 알아요.”말을 마친 그는 봉현수에게 물었다.“준비는 어떻게 되어 가요?”봉현수는 살짝 인상을 쓰며 고유정을 바라봤다.“계획대로 되어 가고 있어요. 대신
유하령은 또 주변을 빙 둘러보며 말했다.“은별 씨는 왜 같이 안 왔어요? 둘이 영원에서 같이 있었다면서요.”유강후는 자신의 팔을 빼내면서 담담하게 말했다.“남 일에 신경 끄고 빨리 돌아가기나 해.”유하령은 염지훈을 힐끗대면서 부끄러운 표정을 지었다.“저도 이런 데 와서 공부하고 싶다고요.”“난 이미 경고했어. 후회하지 마.”말을 마친 그는 성큼성큼 걸어갔다.유하령은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마음 같아서는 쫓아가서 무슨 뜻인지 묻고 싶었지만, 괜히 따라갔다가 혼나기만 할 것 같았다.그녀는 유강후가 무서웠다.몇 개월 전 유강후가 온다연을 데려가면서, 두 사람의 사이는 아주 어색해졌다. 분하지만 딱히 할 수 있는 건 없었다.유강후를 건드릴 수 없었던 그녀는 온다연만 탓했다. 지금도 속으로 온다연을 욕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장화연과 함께 들어온 그녀를 보게 되었다.유하령은 안색이 약간 변했다. 온다연이 이런 곳에 올 줄은 몰랐던 것이다.그러나 이번에는 충동적으로 행동하지 않았다. 유강후에게 뺨을 맞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했다. 그날 이후로 온다연이 유강후에게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도 깨달았다.그녀는 온다연을 죽어라 노려보며 다가갔다. 하지만 가까이 가기도 전에 장화연이 입을 열었다.“아가씨, 뺨 한 번 맞은 거로 모자랐나요?”유하령의 안색은 아주 어두웠다. 그녀는 온다연이 입은 한정판 드레스를 쓰레기라도 보는 눈빛으로 바라봤다.“야, 넌 드레스만 입으면 공주가 되는 줄 알지? 꿈도 꾸지 마. 넌 남이야. 우리 작은아빠는 나랑 가족이라고. 질리면 버림받을 주제에 나대지 마.”온다연은 장화연의 옷을 잡아당기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신경 쓰지 말고 어디 가서 앉아요.”그녀는 손을 뻗으면서 다이아몬드 팔찌를 드러냈다. 그걸 발견한 유하령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달의 마음. 유하령은 그 팔찌를 한눈에 알아봤다. 익명의 재벌이 160억으로 낙찰받았다는 소식이 꽤 놀라웠기 때문이다.그런 팔찌가 온다연의 손목에 걸린 것을 보고 그녀는 미칠
염지훈은 유하령의 손을 움켜잡은 채 온다연을 바라봤다. 놀라움과 알 수 없는 감정이 섞여 있는 눈빛으로 말이다.온다연은 뒤로 한 발짝 물러나서 염지훈을 바라봤다. 하지만 금세 고개를 숙이며 무서운 듯 장화연의 뒤로 숨었다.그녀의 모습을 보고 염지훈의 눈빛은 더욱 짙어졌다. 반대로 유하령은 그런 디테일을 발견할 새도 없이 외쳤다.“아파요!”염지훈은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 시선도 온다연에게서 돌렸지만 유하령에게 향하지는 않았다. 그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이런 장소에서는 눈치 챙기죠.”유하령은 빨개진 얼굴로 온다연을 노려봤다. 그러고는 몸을 홱 돌려서 염지훈을 따라갔다.온다연은 차가운 눈빛으로 점점 멀어지는 두 사람을 바라봤다. 이때 장화연이 그녀를 잡아당겼다.“저쪽으로 가요.”온다연은 고개를 숙이면서 조용히 말했다.“아까 일은 아저씨한테 비밀로 해줄 수 있어요?”장화연의 얼굴에는 별다른 표정이 없었다.“저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습니다.”온다연은 장화연의 팔을 잡았다.“집사님 옷 너무 예뻐요. 머리 스타일도요. 오늘따라 유독 우아하신 것 같아요.”장화연은 여전히 표정 없는 얼굴로 그녀를 데리고 눈에 띄지 않는 자리로 갔다.봉씨 가문의 약혼식은 아주 성대했다. 경원의 모든 유명인이 가장 화려한 착장으로 등장했다. 하지만 온다연은 추호의 관심도 없었다.오늘은 봉현수와 고유정이 약혼하는 자리 같았다. 하지만 유강후가 그녀를 데리고 온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유강후는 항상 이렇듯 알 수 없는 행동을 많이 했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약간 기대되는 마음도 있었다.잠시 앉아 있던 온다연은 몸을 일으켜 화장실에 가려고 했다. 장화연도 당연히 따라가려고 했지만, 온다연이 싫은 듯 애원했다.“제 친구를 발견했어요. 몇 마디만 하고 돌아올 테니까 5분만 주면 안 돼요? 금방 돌아올게요.”장화연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러고는 담담하게 말했다.“딱 5분이에요. 5분 후에도 돌아오지 않으시면 모시러 갈게요.”“알았어요. 사랑해요, 집사님!”말을
염지훈은 눈썹을 튕겼다.“한 마디도 지지 않네. 내가 누구 때문에 쓰러졌는데? 온다연, 너 나한테 빚진 게 얼마나 많은지 알아? 나한테 빚진 건 어떻게 갚을 건데?”이 말을 들은 온다연은 경계하는 표정으로 물러섰다.“얼마면 되는데요? 미리 말하는 데 저 돈 없어요. 많이 요구해도 주지 못할 거예요.”염지훈은 피식 웃으며 그녀를 빤히 바라봤다. 그의 눈빛에는 역시나 알 수 없는 감정이 담겨 있었다.그는 대뜸 다가가 두 손 다 벽을 짚었다. 그는 온다연을 품에 가두고 나지막하게 말했다.“몸으로 갚는 건 어때?”온다연은 당연히 그가 장난치는 줄 알았다. 그래서 그를 확 밀어내며 비꼬는 뜻으로 말했다.“좋아요. 대신 하령 언니랑 헤어져요. 나랑 진지하게 만나겠다고 하면 몸으로 갚을게요.”염지훈은 턱을 만지작대며 온다연을 바라봤다.“괜찮은 아이디어네.”온다연은 핸드폰을 꺼내 힐끗 보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구월이는 많이 좋아졌어요. 그날 도와줘서 고마워요.”“복이 참 많은 녀석이야. 내 친구 국내에 있는 시간이 별로 없거든. 그날 마침 마주치지만 않았어도 구할 방법이 없었어.”“아무튼 고마워요. 기회 되면 밥 살게요. 지금은 시간이 없어서 가봐야 해요.”“유강후 씨 너무 한 거 아니야? 우리 형도 둘 사이를 의심하고 있어. 솔직히 말해 봐. 둘이 정확히 어떤 사이야?”온다연은 몸이 살짝 굳었다. 그러나 말투는 최대한 가볍게 말했다.“지훈 씨 형님분도 요구가 많았던 거로 기억하는데요. 두 사람이 어떤 사이인지도 의심해야 하나요?”염지훈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을 잃었다. 온다연은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밖에 나갔다.화장실에 다녀와서 코너를 돌 때 급하게 두리번거리는 유강후가 보였다. 그녀를 발견한 유강후는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염지훈의 향수 냄새는 멀리서부터 맡아졌다.무거운 분위기에 온다연은 몸이 흠칫 떨렸다. 그녀가 무슨 영문인지 알아채기도 전에 유강후가 그녀의 손목을 확 잡았다.그는 아주 불쾌해 보였다. 그리고 그녀에게
온다연은 화들짝 놀라며 외쳤다.“안 돼요!”그러나 유강후는 그녀를 벌하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절대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던 일이기 때문이다.그런데도 그녀는 염지훈과 밀회를 가졌다. 시간이 얼마 안 된다고 해도 그의 인내심을 건드린 문제였다.온지유는 그의 것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오로지 그의 것이어야 했다.짧은 시간 동안 염지훈이 했을 만한 짓을 떠올리며 그는 점점 이성을 잃어갔다. 자기 말을 따르는 것이 뭐가 그리 어려운지 답답했다.통제를 잃은 느낌은 아주 불쾌했다. 그는 거칠게 호흡하며 손에 힘을 더했다. 그리고 온다연의 반항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옷을 벗겼다.온다연은 겁에 질려 애원했다. 그 와중에 그는 벨트를 풀어 내렸다. 이런 순간에만 그녀를 소유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밖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복도다. 방음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밖에서 사람들의 말소리와 발걸음 소리가 아주 선명하게 들려왔기 때문이다.혹시라도 누가 들어오지는 않을까, 온다연은 아주 긴장했다. 그녀는 거의 울부짖는 목소리로 애원했다.“안 돼요. 아저씨, 여기서는 안 돼요! 제발요!”그녀는 손을 허우적대며 반항했다. 그것마저도 곧 유강후에게 잡혔지만 말이다. 그는 한 손으로 그녀의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잡았다.밖에서 전해지는 소리는 자꾸만 그녀를 자극했다. 동시에 이성을 잃은 유강후를 자극하기도 했다. 물론 유강후에게는 소유욕에 대한 기분 좋은 자극이었다.통증과 수치심이 동시에 밀려왔다. 온다연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식은땀은 금세 머리카락을 적셔 가기 시작했다.밖에서 들려오는 발걸음 소리 때문에 온다연은 보여지고 있다는 착각이 들었다. 그녀의 모습이 전 세계에 라이브로 전해지는 느낌이었다.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공포와 절망이 그녀를 감쌌다. 뒤에서 몰아붙이는 남자가 모르는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가 왜 갑자기 미친 듯이 갈취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본인도 수치스럽기는 마찬가지일 텐데 말이다.그녀는 입술을
“손가락! 새끼손가락이 깔렸어요! 아파요!”...손가락이라는 말에 유강후는 우뚝 멈췄다. 그 세 글자에 이성이 돌아왔던 것이다.그는 뒤로 물러서서 옷매무시를 정리했다. 온다연의 옷도 정리해 줬다. 그리고 그녀를 안아서 소파에 내려놓았다.핸드폰을 꺼낸 그는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다연이 입을 수 있는 드레스 한 벌 가져다줘.”전화를 끊은 그는 그녀를 안아서 무릎에 앉혔다. 눈빛에 서린 냉기는 훨씬 가셨지만 목소리는 여전히 차가웠다.“아까 염지훈이랑 만나지 않았어?”온다연은 사타구니가 너무 아팠다. 그래도 일단은 통증을 참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몰라요. 저는 그냥 혜린이가 보여서 갔던 것뿐이에요. 근데 혜린이는 찾지 못했어요. 다른 건 아무것도 몰라요.”유강후의 표정은 이제야 약간 풀렸다. 온다연도 거짓말을 한 것 같지는 않았다. 한이준이 임혜린을 데려온 건 사실이기 때문이다.그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정리해 주며 부드럽게 물었다.“많이 아팠어?”“네...”온다연은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유강후는 치마를 들추며 직접 확인하려고 했다.그가 계속하려는 거로 오해한 온다연은 치맛자락을 꽉 잡으며 말했다.“안 돼요, 아프다고요! 여기서는 안 돼요!”목소리는 또다시 울먹이기 시작했다. 유강후는 이제야 자신이 얼마나 미친 짓을 했는지 깨달았다.온다연의 손목에는 빨간 자국이 남았다. 그의 무절제한 행동에 다른 곳도 분명히 다쳤을 것이다. 허리를 살펴보니 선명한 손바닥 자국이 보였다. 벌써 멍든 곳도 있었다.그는 후회하는 모습으로 그녀에게 입술을 맞췄다.“다연아, 아까는...”유강후는 어려서부터 누군가에게 머리를 숙여본 적 없다. 그래서일까, 감정 표현에 서툴렀던 그는 잘못된 판단을 할 때가 많았다.지금도 사과의 말이 목에 걸려서 나오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크게 잘못한 것 같지도 않았다. 연인 사이에 애정 행각을 한 것이 무슨 잘못이란 말인가?분위기는 이상하게 가라앉았다. 장화연이 옷을 전해주러 온 덕분에 침묵에 잠겨 있지 않을
상대는 온다연을 발견하자마자 황급히 몸을 피했다. 다소 당황한 표정으로 그녀를 돌아보기도 했다.테라스의 조명은 어두운 편이었다. 그런데도 상대의 얼굴은 잘 보였다.상대는 20대 여자였다. 한겨울에 원피스 한 장만 입은 그녀는 꽤 추워 보였다. 밀폐식 테라스는 창문을 열어놓았다. 여자는 얼마 가지 못하고 창문에 닿아서 더 이상 움직이지 못했다.온다연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에는 두려움으로 가득했다. 은은한 조명 아래에서 그녀의 얼굴은 유난히 아름다워 보였다. 하지만 그 얼굴에는 핏자국이 있었다.시선을 아래로 떨구자 손목과 발목에서도 피가 흐르는 것이 보였다. 온다연은 무언가 눈치챈 듯 장화연과 눈을 마주쳤다.여자는 몸을 흠칫 떨더니 무릎을 꿇었다.“부탁해요. 저를 여기서 데리고 나가주세요. 안 그러면 저 오늘 죽을지도 몰라요. 살려주세요.”온다연은 장화연이 들고 있던 외투를 받아서 여자에게 걸쳐줬다.“여기서 말하지 말고 휴게실에 가요.”그녀는 여자를 데리고 가장 가까운 휴게실에 들어갔다. 그리고 문을 잠그며 여자에게 물었다.“당신은 누구예요?”환한 방 안에서 여자의 예쁜 얼굴이 더 잘 드러났다. 감탄이 나올 정도의 미모였다.그러나 예쁘고 정교한 얼굴에는 공포만 서려 있었다. 여자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말했다.“저는 이 집 도우미예요. 근데 오해를 받아서 며칠이나 가둬져 있었어요. 오늘은 저를 감시하는 사람이 술 마시러 나가서 몰래 줄을 끊고 도망 나온 거예요.”그녀는 울면서 말을 이었다.“제발 저를 살려주세요. 안 그러면 저 이대로 맞아 죽을 거예요. 저는 억울해요. 저는 도둑질을 하지도 않았고, 도련님한테 다른 마음을 품지도 않았어요! 한 번만 도와주세요. 저 진짜 죽기 싫어요.”여자의 몸은 아주 얇았다. 몸에 핏자국까지 있어서 아주 안쓰러워 보였다.그녀에게서 온다연은 과거의 자신을 보았다.“집사님, 차에서 옷 한 벌 가져다줄 수 있어요? 아저씨한테 말하지는 말고요.”장화연은 말없이 몸을 돌려서 나갔다.온다연은 여자를 부축해서
손님와 봉씨 집안의 도우미는 전부 로비에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소리 소문 없이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장화연은 온다연의 말대로 운전해서 별장과 거리를 벌렸다. 여자가 차에서 내리기 전 온다연은 현금을 건네주면서 말했다.“그쪽이 보통 도우미가 아닌 건 알겠어요. 봉씨 가문 도련님이랑 보통 사이가 아니죠? 그쪽을 이 지경으로 만든 걸 봐서 도련님은 믿을 만한 사람이 안 돼요. 그다지 마음도 없어 보니까 빨리 떠나요. 다시는 붙잡히지 않게 경원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요.”여자는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고마워요. 아가씨 말씀이 맞아요. 저는 도련님과 만난 적이 있어요. 하지만 이제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도련님도 결혼하실 텐데, 저는 떠날 때가 된 것 같아요. 다시 한번 고마워요. 기회가 된다면 꼭 보답할게요. 아가씨는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이름 물어볼 필요 없어요. 저는 저 자신을 도와줬을 뿐이니까요. 얼른 떠나요. 다시는 돌아오지 말아요.”말을 마친 그녀는 자신의 머리핀까지 빼서 전해줬다.“이거면 돈 좀 더 받을 수 있을 거예요. 제가 해줄 수 있는 건 이것밖에 없어요.”말을 마친 온다연은 미련 없이 차를 출발시켰다. 그녀는 백미러를 통해 앞으로 달려가는 여자의 뒷모습을 바라봤다.그녀는 어쩐지 부러운 기분이 들었다. 적어도 여자는 지금 당장 자유를 찾아 떠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운 좋게 도와줄 수 있는 사람도 만났다.온다연은 넋이 나간 얼굴로 말했다.“집사님, 만약 제가 떠나려고 한다면 도와주실 거예요?”장화연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아니요.”“...아니에요. 집사님은 도와주실 거예요. 착한 분이시니까요.”“...”장화연은 무표정한 얼굴로 운전을 계속했다.연회장에 도착했을 때 유강후는 차가운 얼굴로 온다연의 손목을 잡았다.“어디 갔었어?”장화연이 따라서 들어오는 걸 보고 나서야 그의 눈빛은 약간 부드러워졌다.“가만히 앉아 있어. 자꾸 돌아다니지 말고.”온다연은 아까 앉아 있던 자리에 가서 임혜린에게 메시지를 보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