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후는 말을 마치고 권무영을 깊숙히 바라보았다.권무영은 허탈해지며 황급히 고개를 숙이고 황후의 옥다리를 계속 주무렀다.황후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이 남자들을 손바닥 안에 쥐고 놀릴 수 있다는 사실에 마음은 득의양양했다.‘이제 오픈키만 남았어, 그걸 가지면 용문은 내거야!’‘난 반드시 용문의 주인이 될 거야!’……용성호의 차가 경성 장원을 떠났다. 비서는 얼굴이 창백한 용성호를 보고도 감히 소리를 내지 못했다.방금 황후와 만났던 모든 과정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생각할수록 용성호는 자신이 예전에 황후를 과소평가했다는 생각이 들어 더욱 두려워졌다.정말 만만치 않은 상대다!지금 이강현과 황후 사이에 끼여 용성호도 고통스러웠다. 이마를 문지르며 용성호는 핸드폰을 꺼내 이강현에게 전화를 걸었다.“작은 도련님, 저 아까 황후를 만났는데 보고해야 할 일이 있어요.” “황후를 만났다고요? 뭐라고 말하던 가요?”“보자마자 욕부터 하던데요, 내 손에 일도 다 빼앗아가고, 나 이제 진짜 허수아비가 됐어요, 그리고 나보고 도련님 곁에 남아 오픈키를 찾아내라고 했어요.”용성호는 기왕 양측이 모두 자신을 의심하고 있으니 먼저 양쪽에 기대어 있다가 나중에 상황이 분명해지면 어느 쪽에 줄을 설 것인지 다시 고민하려는 생각이다.이중 간첩 노릇 하기는 힘들지만 잘하면 살 길이 생길지도 모른다. 이 상황에 한쪽에만 올인 한다면 개죽음을 당할 수도 있었다.이강현이 눈살을 찌푸렸다. 오픈키가 다시 거론되고 황후가 용왕을 보내서까지 오픈키를 찾으려 할 정도이니 이강현의 마음도 조금 흔들렸다.이강현은 원래 오픈키가 자기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황후의 행동을 보니 의심이 갔다. “오픈키가 어떻게 생겼는지, 뭐 그런 단서 주지 않았어요?”이강현이 물었다.용성호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물어봤는데 황후도 모른대요, 본 적도 없고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라요, 그냥 운에 맡긴 거죠.”이강현은 정말 어이가 없었다. 황후가 망상증에 걸려서 오픈키를 생각해낸
정오, 새 공장 건설 현장.최종현이 사람과 장비를 들고 현장에 들어와 착공 준비에 들어갔다.정중함을 보여주기 위해 최종현은 임시로 기공식까지 마련했다.고민국, 고건강, 고운란과 최종현이 이제 삽을 들고 흙을 파헤쳐 착공식을 마무리하면 된다.“시간 다 된 거 아니야, 빨리 시작해.”고민국이 좀 짜증을 내며 말했다.이 모든 게 고운란이 해낸 거라 기공식 참석 자체가 고민국에 대해 수모였다.최종현은 둘러보다가 이강현이 나타나지 않자 매우 불만스럽게 말했다.“중요한 기공식인데 이강현이 참석해야죠.”“너!”고민국이 최종현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친척 관계인 친분을 봐서 화를 내지 않았다. “이강현은 회사 사람도 아닌데 무슨 기공식에 참석해, 그럴 신분도 자격도 없어.”최종현은 의아한 표정으로 고민국을 바라보았다. ‘설마 이강현이 어마어마한 재력을 가진 그 미스터리 이 선생이라는 걸 모르는 건가?’“뭘 봐, 내 말이 틀렸어?”고민국이 화가 나서 말했다.“한 마디 충고하는데요, 이강현한테 그렇게…… 아니, 됐어요, 고운란 씨가 전화해보세요, 우리 기공식 게스트로 초대한다고 말씀하시고요.”고운란은 고개를 끄덕이고 핸드폰을 꺼내 이강현한테 전화했다.고민국은 얼굴표정이 어두워지더니 손에 들고 있던 삽을 세게 내던졌다.“이강현을 불러?! 그럼 난 안 해!”“나도, 당신들 이강현 부르면 나도 참석 안 해.” 고운란이 두 골치덩어리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머리를 앓고 있을 때 이강현이 뒷짐을 지고 다가왔다.“기공식은 저를 빼 주세요, 삽질 너무 힘들어요.”이강현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이강현이 최종현을 힐끗 쳐다보자, 최종현은 잠시 말을 잇지 못하고 멋쩍게 웃으며 삽을 들고 큰소리로 말했다.“기공식 시작하겠습니다!”일련의 폭죽 소리가 울려 퍼지고 고민국 등은 삽을 휘두르며 상징적으로 삽질을 했다.그 후 사람과 장비가 움직이기 시작했고 현장 건설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민국은 삽을 던지고 어두운 얼굴로
잠시 머뭇거리던 고민국은 고운란의 사진 몇 장을 보냈다.곧 임시현은 음탕한 이모티콘을 보내고 키와 몸무게 등 정보를 물었다.고민국은 이마를 문지르며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잠시 읊조린 뒤 임시현에게 음성 요청을 보냈다.상대방이 바로 받았다.“뭐 서비스가 이래, 이 여자 내가 찜했어, 그러니까 얼마인지 말해.”임시현의 나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임시현이 한성에 온 목적은 사업 얘기뿐만 아니라 여자 사냥도 같이 포함되었다. 그러나 한성에 도착하기도 전에 벌써 마담들이 먹이를 던져주기 시작했다.모델이나 여학생 사진들은 임시현의 흥미를 끌지 못했다. 그러나 고민국의 사진을 보고 임시현은 눈이 번쩍 뜨이고 마음이 움직였다.“난 마담이 아니예요.”고민국이 어색하게 말했다.“아니라고?”임시현의 목소리가 높아지더니 약간 불만스럽게 말했다.“감히 나를 놀려? 죽고 싶어?!”“그런 뜻이 아니라 이 사람 내 조카딸인데 마음에 드시면 제가 자리를 마련하겠습니다. 와이너리 저녁 연회에 참석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제 조카딸도 거기에 보내죠, 근데 이미 결혼해서 아마 남편과 같이 갈 것 같아요.”“결혼했으면 더 좋고, 나 누구와 바람나는 거 너무 좋아해, 근데 그 조카에게 불만이라도 있어? 나한테 뭘 바라는지 말해, 조카 얼굴이 예쁘니까 내가 들어줄 게.”임시현은 기분이 좋은지라 말투도 따라 좋아졌다.“애가 너무 날뛰고 사사건건 저와 맞서서 걔한테 쓴 맛 좀 보게 하고 싶어요.” “그래, 네 조카사위는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 그건 걱정 말고, 그럼 그때 다시 만나지, 만약 안 나타나면 당신 가족 무사하지 못할 거야.”고민국은 조금 당황했다. 무서운 사람과 약속을 맺은 것 같은데 아무리 당황해도 지금 이 상황에서 되돌릴 수 없으니 계속 진행해야 했다. “걱정 마세요, 잘 처리할 테니까 그냥 기다려서 즐기시면 됩니다.” “알았어, 그럼 그렇게 해.”음성통화를 마친 고민국의 이마에 식은땀이 흘렀다. 눈을 감은 채 이강현의 최근 활약을 떠올리며 점점
고건강은 핸드폰을 들고 고청아에게 전화를 걸었다.“어, 청아야, 혹시 와이너리 저녁 연회 소식 들었어?”절친 몇 명과 함께 옷을 보고 있던 고청아가 의아하게 말했다. “아빠도 알아요? 소식 빠르네요, 저 친구들이랑 지금 옷 보고 있는데, 예쁘게 꾸미고 가려고요.”“고운란 친구 서은지도 가는 거야? 걔 이런 파티 좋아하잖아.”고청아는 미간을 찌푸리고는 더욱 의심스러운 듯이 물었다.“아빠 무슨 속셈이에요, 설마 서은지를 소개해 달라는 거 아니죠? 걔 만만하지 않아요.” “소개는 뭐, 너 큰아버지 지금 계획하는 거 있는데 고운란이 그 와이너리 저녁 연회에 참가해야 해, 근데 어떻게 의심을 피하고 참석할 수 있게 하는지 그게 어려워, 만약 친구가 직접 요청하면 말이 다르잖아.”고건강이 모든 것을 털어놓았고, 고청아는 갑자기 흥분했다.“큰아버지가 고운란을 상대할 방법 찾은 거예요? 그럼 서은지는 제가 말해 놓을 게요.”“그래, 얼른 처리해, 일이 재미있어질 거야.”고건강이 참지 못하고 웃기 시작했다.“좋아요, 이 일은 제가 해결하죠.”고청아는 핸드폰을 넣고, 눈동자를 몇 번 돌렸다. 서은지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궁하고 있었다.잠시 생각한 후 서은지와 친한 친구를 찾아 도움을 청했다. 서은지는 고운란과 함께 와이너리 저녁 연회에 참석하는 데 동의했다. ……최종현은 이강현과 고운란을 데리고 공사 현장을 한 바퀴 돌아보고, 가는 길에 부실시공이나 하자가 없도록 공사 품질 잡겠다고 약속했다. 고운란은 매우 만족했다. 어쨌든 최종현도 한 집안 사람이니 공사를 맡겨 손실 볼 것은 없었다.세 사람은 웃고 떠들며 공사 본부로 돌아갔다. 이때 고건강이 담배를 물고 나와 말했다.“별일 없으니 나도 먼저 가볼 게, 이젠 너희들 시대야, 그러니까 잘 해봐.”“그럼 같이 가죠, 이쪽은 종현형이 있어 저도 마음이 놓여요.”고운란과 고건강은 각자 차를 가지러 갔다. 최종현은 마침내 이강현과 단둘이 이야기할 기회를 잡았다.“원일그룹 쪽 공사는 잘 진행되고
고운란은 웃으며 말을 하려는데 핸드폰 벨이 울렸다.“폰 좀 줘, 이때 웬 전화야?”고운란이 운전하고 있어 전화를 볼 수 없어 이강현이 대신 고운란의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내 보았다.“서은지인 것 같은데, 받을래?”“은지 전화면 받아야지, 스피커 켜줘.”이강현이 전화를 받고 스피커를 켜자 서은지 목소리가 핸드폰에서 흘러나왔다.“운란아, 지금 바빠?”“운전 중인데 무슨 일 있어?”“나 좀 만나주라, 일단 샵에 먼저 갔다가 쇼핑하러 가자, 나 할말도 있어.”서은지가 눈알을 굴리며 말했다.“중요한 일이야? 나 회사에 아직 일 남았는데.”서은지가 애교를 부렸다.“회사에 무슨 일 있겠어, 나 지금 네가 필요하단 말이야, 그러니까 빨랑 와, 아니면 우리 우정도 여기서 끝이야.”고운란은 쓴웃음을 지으며 마지못해 말했다.“알았어, 어디서 만나? 내가 갈게, 근데 남편이랑 같이 가면 안 될까?”“뭐?”서은지는 입을 오므리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안 될 건 없지만 샵에 가면 아마 밖에서 기다려야 될 거야.”고운란은 이강현을 쳐다보았고, 이강현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강현이 동의하자 고운란은 웃으며 말했다.“괜찮대, 어디로 가면 돼?”“빙고커피에서 만나자, 거기에서 기다릴게.”“그래.”통화가 끝난 후, 이강현은 핸드폰을 들고 운란의 가방에 넣었다.“말도 안하고, 무슨 일인지 궁금하네.”“당연히 여자들의 비밀이지, 그걸 어떻게 마음대로 말해, 거기에 가서 제발 말 조심해.”고운란이 당부했다.이강현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도 더 이상 참견할 뜻이 없었다. 여자들의 일이니 남자가 낄 자리는 아니다.고운란은 차를 몰고 시내 중심가로 직진했다. 지하주차장에 차를 세운 뒤 두 사람은 백화점 1층으로 내려갔다. 빙고커피는 백화점 1층의 남서쪽 모퉁이에 있었다.문 옆에 앉아 있던 서은지가 고운란의 모습을 본 후 일어서서 손을 흔들었다.고운란과 이강현은 손을 잡고 걸어갔다. 서은지는 두 사람의 잡은 손을 보며 시큰둥한 표정으로
“아이고, 우리 은지 마음에 드는 사람이 생겼어?”고운란이 농담조로 말했다.서은지는 이마를 감싸고 다소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집안에서 소개해준 건데 재벌 2세야, 어떤 사람인지 나도 잘 모르겠어, 그래서 너한테 물어보려고.”“재벌 2세라…….”고운란은 중얼거렸다.고운란은 재벌 2세들을 별로 좋게 보지 않았다. 지금 그녀가 알고 있는 재벌2세들은 겉모기에만 사람이지 진짜 능력이 있는 건 몇이 없고 다 집안 돈 가지고 밖에서 노는 애들이 많다.서은지도 고운란이 재벌2세를 어떻게 생가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애초에 그렇게 많은 재벌 2세를 거절하고 이강현과 함께 있을 리가 없었다. 이강현은 정말 땡잡은 것이다. 쥐뿔도 없는 놈이 고운란 눈에 들어왔으니 말이다.“재벌2세 나 그래도 꽤 많이 만난 것 같은데 같이 있고 싶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적이 없어, 아무리 돈 많다고 하지만 그래도 인품이 따라가야지.”고운란은 고개를 끄덕이며 서은지 말에 깊은 찬성을 표했다. 만약 인품이 좋지 않은 재벌 2세를 찾는다면 그것은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맞아, 인성이 좋은 사람을 찾아야 해, 근데 나도 그런 재벌2세 만난 적이 없어 해줄 말이 없어, 적어도 만나봐야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아.”고운란은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근거 없이 절친에게 함부로 말하는 것은 고운란도 원치 않았다. 게다가 서은지가 모처럼 생각이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헛소리를 해서 절친의 인연을 망칠 수는 없었다.이강현은 메뉴판을 들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너 뭐 마실래? 라떼? 카부키노 아니면 핸드드립?”“난 핸드드립, 여기 좀 비싸긴 한데 맛은 최고야, 내가 살게.”서은지는 메뉴판을 빼앗아 재빨리 주문했다.“운란 너는 핸드드립, 이강현 씨는요? 커피 익숙하지 않죠, 그럼 주스 어때요?”서은지는 조금 비웃는 말투로 이강현에게 물었다.고운란은 이강현의 손등을 툭툭 치며 이강현에게 화내지 말라고 눈짓한
“같이 가자, 너 재벌들의 연회 가기 싫어하는 걸 알아, 근데 나도 어쩔 수 없어, 지금 내 행복이 너한테 달렸다, 그러니까 좀 도와줘.”서은지가 고운란의 팔을 잡고 애교를 부리자 고운란은 할 수 없이 동의했다.“알았어, 알았어, 갈게, 근데 와이너리의 밤 연회 왠지 느낌 안 좋아, 그 재벌 2세들 분명 다른 여자들도 불렀을 거야.”“그게 뭐래서, 돈 많은 자들이 다 그렇지 뭐, 너무 선 넘지 않으면 돼, 재벌에 시집가는 거 쉬운 일 아니야.”서은지는 약간 원망스러운 듯이 말했다.웨이터가 향긋한 커피 세 잔을 들고 오자 서은지의 얼굴에 맺힌 한은 순식간에 사라졌다.“자, 운란 너도 마셔, 여기 진짜 맛있어.”잘생긴 웨이터는 서은지와 고운란을 보고 두 사람의 미모에 반해 말을 걸려고 하였다.커피를 마시려고 온 예쁜 여자한테 작업 거는 것은 이미 이 남자의 일상이 되어버렸다. 잘생긴 외모로 그는 이미 많은 여성 손님들의 환심을 샀다.“언니 커피 맛 잘 아시네요, 이건 제가 방금 구운 블루 마운틴 커피 원두를 갈아 만든 거예요, 맛이 아주 독특해요, 향을 느껴보세요, 짙은 다크 초콜릿 풍미는 꽃과 과일 향과 함께 열대의 향기를 희미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서은지는 눈을 감은 채 커피잔에 대고 천천히 심호흡을 하며 웨이터의 말대로 느끼고 있었다.고운란은 이마를 문지르며 서은지의 동작을 끊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했다. 이렇게 커피잔에 대고 숨을 들이키는 모습 정말 보기 좋지 않았다.웨이터는 고운란이 자기 말대로 하지 않는 것을 보고 약간 불쾌했다. “언니도 느껴 보시죠, 커피 마실 때 향을 먼저 맡아보아야 해요.”“에헴.”이강현은 기침을 하며 웨이터의 눈길을 끌었다. 웨이터는 다소 짜증스러운 눈빛으로 이강현을 바라보았다.“갓 로스팅한 원두를 갈아 만든 것이라고요?”이강현이 웃으며 물었다.“네, 뭐가 문제죠?”“커피 원두가 어느 정도 로스팅 했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웨이터는 어리둥절했다.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이강현
“니가 뭘 알아!”웨이터가 당황했다.“내 말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방금 새로 구운 원두로 만든 거라고 했죠? 새로 구운 원두는 로스팅 정도에 따라 5~10일 두어야 하는데, 새로 구운 원두로 만든 커피는 맛이 없거든요.”“그리고 방금 말씀하신 블루마운틴 커피 냄새도 틀렸어요, 디테일한 건 수정하지 않을 게요, 여자한테 작업 걸려면 확실히 배우고 나오세요, 아니면 쉽게 쪽팔릴 수 있으니까.”웨이터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씩씩거리며 돌아섰다. 서은지도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웨이터의 반응을 봐도 이강현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방금 자신의 행동을 떠올리고 서은지는 볼이 화끈거렸다.“모레 약속 잊지 마, 나 바빠서 먼저 가볼게.”서은지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한마디 당부하고 떠났다. 돌아선 그녀의 얼굴은 더없이 흐려졌다.‘내가 망신을 당하다니!’‘그것도 이강현 때문에!’‘와이너리의 밤 연회에서 반드시 복수할 거야! 커피 좀 안다고 뭐라도 된 것 같아? 감히 내 앞에서 까불어?!’서은지의 떠난 뒷모습을 보며 고운란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이강현의 손을 잡고 말했다.“알아도 모른 척해야 해, 아니면 쉽게 남한테 미움보여.”“그게 뭐 대수라고.”이강현은 멋대로 말했다.“미움을 덜 받을 수 있으면 덜 번거롭잖아, 됐어, 가서 일이나 하자.”고운란과 이강현은 팔짱을 끼고 카페를 나갔다. 웨이터는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이강현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핸드폰을 들고 세게 번호를 눌렀다.“용형, 예쁘게 생긴 여자 찾고 있는 거 맞죠? 방금 만났어요, 근데 옆에 남자도 있었어요, 지금 두 사람 지하주차장으로 가고 있어요.”용형은 눈을 가늘게 뜨고 웃으며 말했다. “최상급 맞아? 이건 내가 쓰는 게 아니고 임시현에게 주는 거야, 그러니까 반드시 최상급이야 해.”“일품 중의 일품이예요, 빨리 엘리베이터 쪽에 사람 보내세요, 떠나기 전에, 일품 아니면 제 뺨을 때려도 괜찮아요.”방금 이강현에게 당한 일을 떠올리고 웨이터
“무슨 소리야! 이강현 그 자식 내 손자 발 뒤꿈치에도 못 가! 딴 소리 말고 그냥 할 건지 말 건지나 말해.”어르신은 말을 마친 후 분노에 찬 눈으로 이강현을 노려보았다. 고운란이 이강현의 감언이설에 속은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저 역시 아까 말했던 것처럼 이강현이 한 말이 바로 제 뜻이예요.”“너 정말! 나 너 같은 손녀 없어, 너희들 우리 고씨 집안 자식 아니야!”어르신이 소리를 지른 뒤 휴대전화를 떨어뜨리고 화가 나서 고건민에게 더 심한 말을 하려고 할 때 고건강은 어르신을 힘껏 잡아당겼다.“아버지, 화내지 마세요, 화내면 몸이 상해요, 진정하세요.”고건강은 상황이 더 나빠지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만약 고씨 집안이 무너지면 고운란의 도움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지금 기회를 잡아 잘 보이려고 하였다.어르신은 고건강을 노려보며 고건강까지 욕하려고 하였다.“아버지, 화내지 마세요, 형님한테 끌려가면 안 돼요. 큰 형이 둘째 형한테 원한이 많은 거 아시잖아요. 우리 사이가 틀어지면 그게 큰 형이 바라는 거예요.”“근데 지금 둘째 형 쪽이 대세인데 앞으로 그쪽한테 기대할 지도 모르니까 사이가 틀어지면 우리도 득 볼 게 없어요. 일단 넘어가세요.”이득 외에 고건강 눈에는 도덕 같은 게 보이지 않았다. 충분한 이득만 얻을 수 있다면 누구라도 다 팔아먹을 수 있었다.그래서 지금 고건강은 자기 먹거리를 챙기기 위해 고민국 생각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어르신도 늙은 여우라 고건강 말을 듣고 속으로 다시 생각을 정리했다.방금 화가 난 김에 하마터면 일을 그를 칠 번 했다. 지금 고운란의 위세든, 이강현이 말한 진성택과의 관계든 두 사람의 세력이 강해짐을 보여주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고나서 어르신은 마음을 진정시켰다. 고건강의 말이 맞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셋째야, 네 말이 맞아, 방금 내가 큰 실수를 할 뻔했어.”“잘 생각했어요. 이럴 때 강력하게 나가면 두 쪽 다 다치게 돼요.”어르신 표정이 느긋해지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강현의 손에서 득을 못 보게 될 것을 알아차리고 어르신은 즉시 전략을 바꿔 고운란을 찾기로 하였다.뭐라해도 자기 친 손녀인데 할아버지가 부탁하면 아무리 싫어도 자기 말을 따를 것이라고 생각했다.이강현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어르신이 좀 지나치시다고 생각했다. 할말 못할 말 다 했는데 늙은 티를 내면서 덕 좀 보려고 하니 어이없었다.“할아버지, 상황은 다 얘기했고, 계속 고집부리시겠다면 운란에게 전화하세요.”“보자 보자하니, 네가 누구인 줄 알아! 너는 그냥 이 집안의 데릴사위일 뿐이야!”고민국은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허허.”이강현은 가볍게 웃으며 돌아서서 밖으로 걸어갔다.“너 무슨 태도야! 거기 서!”고민국은 앞으로 나가 이강현의 팔을 잡아당기며 이강현을 혼내려고 하였다.고건민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았다.“형님, 말로 하시죠, 화내지 마시구요.”“흥! 쟤 말 잘하는 거 좀 봐? 너무 건방지잖아!”어르신이 핸드폰을 들고 말했다.“입 다 다물어, 운란이한테 전화할 거야!”고민국은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이강현을 잡은 손은 놓지 않았다.이강현은 차가운 눈으로 구민국을 바라보았다. 고민국은 뒷머리가 섬뜩한 것을 느끼며 이강현의 눈빛에 완전히 겁을 먹고 손을 놓아버렸다.“너 여기 가만히 있어, 내 명령없이 한 발짝도 움직이지 마.”고민국은 겁을 누르고 낮은 소리로 말했다.어르신 전화가 연결되었고, 전화 저편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여보세요, 할아버지.”“빨리 돌아와, 할 말이 있어.”고운란이 어리둥절했다. 지금은 손님을 접대해야 해서 움직일 수 없었다.“할아버지, 아빠랑 이강현이 돌아가지 않았나요? 무슨 일 있으세요?”“이강현 그 새끼 얘기 꺼내지도 마! 그 자식 정말 사람 미치게 하는 재주 있어. 너 지금 원일그룹 사장 아니야? 집안 사업 망하게 생겼어, 원일그룹이 사라고 해.”고운란이 듣던 중 자기 할아버지 상업도덕에 어긋하는 말에 가슴이 서늘해졌다. “할아버지, 지금 손님을 접대해
어르신은 전혀 놀라지 않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이강현을 보고 있는데 마치 금덩어리를 발견한 눈빛이었다.“이리 와서 내 옆에 앉아.”어르신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고민국의 표정이 굳어지더니 황급히 몸을 숙이고 어르신 귀에 대고 말했다.“아버지, 이 쓰레기랑…….”“흥!”건국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어르신은 사람을 잡아먹는 듯한 매서운 눈빛으로 고민국을 노려보았다.“쓰레기는 네가 아니야?! 회사를 너한테 맡기고 나서 지금 무슨 꼴이야!”“아버지, 저는 최선을 다했어요.”“아무 쓸모 짝도 없어, 이강현을 봐봐, 이게 진정 회사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야!”어르신은 말하면서 고민국에게 눈짓을 했다.이강현 때문에 들어온 오더이니 다시 가져올 수도 있다는 뜻이다.이때 좋은 말 몇 마디로 이강현을 안정시키면 잃어버린 오더를 모두 찾아올 수 있고, 고씨 집안 사업도 다시 살아날 수 있다.“아, 네네, 이강현 너 얼른 할아버지 옆에 앉아, 내가 의자 가져다 줄게.”고민국은 의자를 들고 어르신의 옆에 놓았다. 의도적인 호의였다. 이강현은 의자에 앉지 않고 미소를 지으며 걸어갔다.“큰 아버지가 들어온 의자 제가 감히 어떻게 앉겠어요. 할아버지의 뜻도 이해합니다. 근데 고씨 집안 제품을 사면 진성택도 돈을 내면서 받는 거니까 저도 진성택이 계속 손해보게 놔둘 수는 없잖아요.”어르신의 안색이 약간 변했다. 이강현이 한 마디로 그가 곧 꺼낼 말을 막아버릴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어색하게 웃고 나서 어르신은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진성택이 어떻게 손해를 봐, 그 사람 돈 많잫아.”“돈은 많는데 손해보면서 우리를 돕는 건 사실이잖아요. 전에 저를 도와준 건 갚을 게 있어서 그랬고, 지금 약속한 시간이 되었으니 거두어들여도 당연한 거죠.”이강현은 그들을 돕지 않기로 마음을 굳혔다. 지금 이 상황에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오히려 심술궂게 굴어 이강현으로 하여금 그들을 도울 생각을 단념하게 했다.만약 처음부터 잘못을 인정했다면 도와줄 수도 있었다. 고씨
“진성택과 제 관계는 말할 필요 없고, 말 해도 믿지 않을 테니까 그냥 시키는 대로만 움직인다고 아시면 돼요.”이강현은 뒷짐을 지고 고개를 들어 상위권의 기세를 보여주었다.이강현의 도도한 모습에 고민국과 고건강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진성택이 왜 네 말을 들어, 네가 뭐라고!”고건강이 참지 못하고 말했다.이강현은 고건강을 상대하지 않고 담담한 표정으로 어르신만 바라보았다.어르신은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굳은 얼굴로 고민국에게 말했다.“전화해서 진성택 지시 맞는지 확인해봐.”“아버지! 그걸 왜 물어봐요. 순전히 허튼소리예요! 믿을 필요 없어요!”“하라면 하지, 쓸데없는 말이 왜 그렇게 많아.”어르신의 표정이 더욱 언짢아졌다.고민국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어 마지못해 휴대전화를 꺼내 바이어들의 전화를 뒤지기 시작했다.고건민은 그 틈을 타 이강현을 끌어당기며 낮은 소리로 물었다.“솔직히 말해 봐, 진성택이랑 무슨 관계야?”“제가 진성택 손자의 목숨을 구한 적이 있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때 운란이 힘들어 하니까 그냥 도움을 요청한 거예요.”고건민은 눈알을 굴리더니 이강현을 깊이 들여다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고건민의 속으로 이강현의 해명을 믿지는 않았지만 진성택이 이강현의 지시를 따른 다른 말은 믿었다.예전에 왕씨 어르신 생신 때 진성택이 이강현을 데리러 차를 몰고온 장면이 떠올리고 고건민은 이강현과 진성택 사이 관계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더욱 깊이 믿었다.그러나 지금 고건민은 깊이 따질 마음은 없고, 오히려 고민국과 고건강이 망신을 당한 모습을 보고 싶어 하였다.몇 년 동안 고건민은 고민국과 고건강으로부터 온갖 탄압을 받았으며 많은 고통을 겪었으니, 지금 그들이 좌절하는 것을 볼 수 있다면 당연히 더없이 기쁜 일이다.고민국이 건넨 전화는 이미 상대방에게 연결되었고, 연결된 후 상대방이 말하기도 전에 먼저 열정적으로 말하기 시작했다.“형님, 저 민국이예요.”“어 그래, 나 지금 회의 들어가봐야
“운란이 아무리 사장이라고 해도 도우려면 그만한 이유가 있어야 도움을 수 있죠. 지금 상황으로 봐서는 가족 사업에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요.”이강현이 말을 마치자 그들 모두 가슴이 답답하기 짝이 없었지만 반박할 말이 없었다.체면이 깎인 어르신은 고민국을 매섭게 노려보며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그를 원망했다.고민국은 이를 악물고 억지를 부리며 말했다.“네가 뭘 안다고 나서? 그래, 네 말이 맞다고 치자, 그래도 운란이 우리 회사 제품 독점판매해서 도와줄 수 있잖아!”“그건 돕는 게 아니라 공과 사를 구분 못하는 거죠, 그럼 한 달도 못 버티고 쫓겨날 건데 그걸 바라세요?”이강현이 되물었다.할 말을 잃은 고민국은 이강현을 매섭게 노려보았다.“뭘 그렇게 말해, 우리 제품 사다가 중간에서 가격을 올려 팔면 되잖아, 실적도 올리고!”어르신은 고개를 끄덕이며 고민국의 말에 동의하였다.“민국이 말이 맞아, 회사 제품을 사가서 다시 팔면 문제없어.”“허허.”이강현은 약간 경멸하는 눈빛으로 웃으며 그들을 바라보았다.“왜 오더가 빠지는지 아직 잘 모르시는군요. 기술, 생산라인, 원가 아무 것도 경쟁력이 없는 제품 누가 사겠어요?”“전에 장사가 잘 됐다는 얘기하지 마시구요, 그건 제가 받아온 오더예요! 운란이 너무 힘들어 하니까 제가 진성택에게 사람을 시켜 오더 내리라고 부탁했어요!”이강현의 말이 나오자 방 안의 사람들 모두 놀라하며 눈을 크게 떴다.사실 그들도 회사 제품이 가격이 높지만 그에 비해 품질이 뒤떨어 시장 경쟁력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고운란이 오더를 받아낼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자신의 미모로 고객의 환심을 샀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그러나 지금 이 순간 이강현이 한 말은 그들의 생각을 뒤엎었다.이강현의 말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너, 너 여기서 무슨 헛소리야! 네가 무슨 능력이 있다고 진성택을 찾아? 진성택이 무슨 사람인데 네가 부탁해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인 거 같아?!”고민국은 이강현에게 손가락질하며
어르신의 엄격한 말투에 고건민의 마음은 두려웠다.“그래요 아버지, 운란이 사장이라도 아버지 손녀딸이에요.”“흥!”어르신이 콧방귀를 뀌며 눈을 지긋이 감고 말했다.“사장이라고 집 장사도 잊은 게야?! 있는 지분을 다 팔았다고 연을 완전히 끊을 수 있다고 생각해?!”“그게…… 일도 그만뒀는데 그럴 명분이 안 되죠.”고건민은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둘째 너 쓸데없는 소리 그만해, 운란이 나가고 나서 오더 크게 줄었다고 들었어, 네 딸과 상관이 없다고 생각해?!”“별말 없이 지분 팔 때 알아봤다니까, 갈 곳을 찾아두고 가족 사업 망치려고 작성한 거 맞죠.”고건강이 따라 말했다.그들의 비난에 고건민은 입이 열 개라도 변명할 수 없는 무력함을 느꼈다.이미 마음속 선입견을 두어 고건민이 뭐라고 해도 믿지 않을 것이다.게다가 고건민도 지금 말하고 있는 이유 모두 핑계일 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왜 말이 없어? 인정 못하겠어? 너희들 정말 이렇게까지 비열할 줄은 정말 몰랐다. 가족 사업 망치고 나서 우리한테 미안하지도 않아?!”고민국이 노호했다.얼굴이 하얗게 변한 고건민은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아니요, 집안에 해가 되는 일 정말 한 적이 없어요. 아버지 믿어주세요.”“다른 말은 필요 없고, 원일그룹도 의약업을 하고 있지, 운란이 집안 사업에 도움을 보태라고 말해, 오더도 주고, 지금 그만한 능력이 있는 거 아니야?”어르신이 이제서야 용건을 말했다. 고건민은 쓴웃음을 지으며 목이 쉬어 말했다.“운란이 사장이지만 아직 막 부임해서 너무 티 내서 하면 안 돼요, 그보다 지금 회사일 운란이 한 마디로 움직이는 거 아니잖아요.”“그래서 안 하겠다는 거야? 눈뜨고 집안 사업이 망하는 거 보고싶어? 너 그러고도 내 자식이야?!”어르신은 눈을 부릅뜨고 고건민을 노려보며 죽여버릴 것만 같았다.고건민은 당황한 듯 고개를 돌려 이강현을 바라보며 이강현이 빨리 와서 도와주기를 바랐다.“할아버지, 큰아버지, 작은아버지,
고건민은 이런 대우에 푹 빠졌다. 마치 제왕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다리를 꼬이고 흔들면서 고건민 머리를 쳐들고 말했다.“여보세요, 누구세요?”“누구겠어! 네 형이지!”고민국이 화 내며 소리쳤다.고건민은 귓가에 있는 전화를 내려 발신자를 확인하였다. 고민국 번호이다.오늘 같이 기분 좋은 날에 고민국 전화를 받은 고건민은 정수리에 찬물을 끼얹은 기분이었다.“아, 제가 지금 바빠서 누구 전화인지 미처 확인하지 못했어요. 무슨 일이예요?”“아버지가 널 찾아, 빨리 돌아와.”고민국이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아버지요? 아버지가 왜요? 혹시 몸이…….”“닥쳐! 아직 건강해, 돌아오라고 하면 빨리 돌아와!”고건민의 마음이 비로소 놓였다. ‘몸이 안 좋은 줄 알았잖아.’‘근데 이때 왜 날 불러, 왠지 수상해.’“네, 곧 돌아가겠습니다.”전화를 끊고 고건민은 잠시 생각하다가 이강현을 향해 걸어갔다.지금 고운란은 한성 거물들을 모시고 있어 어쩔 수 없이 이강현을 찾아갔다.“아까 본가에서 연락이 왔어, 나보고 어르신 만나러 가래.”고건민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이강현은 눈살을 찌푸리며 마음속으로 어렴풋이 짐작이 갔다.“할아버지도 뵐 겸 제가 데려다 드릴게요.”“그게…….”잠시 머뭇머뭇하다가 고건민은 이강현이 따라오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강현이 따라가면 번거로운 부분도 부담할 수 있기 때문이다.“그래, 그럼 지금 출발하자.”“네.”이강현은 고건민과 함께 차를 몰고 어르신의 집으로 향했다.곧 두 사람은 어르신의 집에 도착했다. 들어서자마자 어르신의 싸늘한 눈빛에 고건민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고건민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방금 밖에서 산 과일과 영양제를 들고 빠른 걸음으로 어르신 앞으로 걸어갔다.“아버지, 저 왔어요.”“흥! 날 잊은 건 아니고?”어르신이 무뚝뚝한 얼굴로 말했다.“제가…….”“뭘 말하고 싶은데?! 네 딸이 사장이 됐다며, 이제 고씨 집안과도 인연을 끊을 거야?!”고건민의 이마에 식은
고민국과 고건강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나서 어르신을 찾아가기로 결정했다. 지금 위급한 상황에서 어르신이 나서야 했다.두 사람이 상의를 마친 후 급히 어르신 거처로 달려갔다.의자에 누워 라디오를 끌어안고 듣고 있던 어르신은 두 아들이 황급히 걸어 들어오는 것을 보고 곧 안 좋은 일이 생겼다는 것을 알아차렸다.“너희 둘 무슨 일로 왔어? 할말 있으면 그냥 말해.”어르신은 이미 알아차렸다는 듯이 바로 말했다.고민국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헤헤, 아버님 말씀이 맞아요. 해결이 어려운 문제이니 아버님이 직접 나서서 도와주세요.”“내가? 집안일에만 손댈 수 있는 노인한테 경영은 아니지.”어르신이 눈을 감았다.“집안일 맞아요. 둘째가 경영에서 물러났잖아요. 저랑 건강이 2억으로 그 지분을 사들이고 나서 고운란도 회사에서 퇴직한 거 아버지도 알고 있죠.”“맞아, 그건 나도 알고 있어, 2억이면 은혜를 셈이지.”일찍이 고건민 집안에 불만을 품고 있었던 어르신이라 그들이 경영에서 물러난 것도 바라는 바이다.고민국은 조금 난처한 듯 고건강을 쳐다보고는 고건강에게 계속 말하라고 눈길을 주었다.“운란이가 회사 업무 쪽 일을 맡았잖아요, 그래서 걔가 퇴사한 후 원래 바이어들이 주문을 취소해서 회사 매출이 떨어지고 있어요. 근데 운란이가 원일그룹 사장이 된 거 있죠!”눈을 감고 있던 어르신이 눈을 번쩍 뜨며, 눈에 의아한 빛이 스쳐 지나갔다.“뭐?! 고운란이 어떻게 원일그룹 사장이 돼? 말도 안 되는 소리 아니야, 이제 겨우 몇 살인데, 어떻게 사장이 될 수 있어?”“정말이예요, 아까 티비에도 나왔다니까요, 한성에 이름을 댈만한 사람들이 다 참석했어요. 고운한 그 년이 분명 무슨 거래를 한 게 분명해요.”“콜록콜록.”고건강 말이 빗나간 것을 보고 고민국은 힘껏 기침을 두 번 했다.“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운란이 보고 원일그룹 오더를 우리한테 넘기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 기업도 다시 살아날 수 있어요.”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나서 어르신은
“작은 좌절일 뿐이야, 이겨내야 해! 고운란이 없으면 회사가 망해? 예전에도 힘든 적이 있었잖아!”고민국은 책상을 힘껏 치며 소리내어 말했다. 조금만 시간을 더 주면 이 난국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건강은 입을 삐죽거리며 이상한 말투로 말했다.“지난번 난국도 고운란이 해결한 거잖아요, 잊었어요?”빵!구건국의 주먹이 책상에 세게 부딪혔다.“무슨 뜻이야?”“솔직히 말해 지금 이 상황 고운란과 관련이 있는 거 분명해요. 그 바이어들은 대부분 고운란이 데려온 겁니다, 형님, 잘 생각해보세요.”고민국이 아무 말없이 의자 등받이에 힘없이 기대어 앉았다.사실 고민국도 생각을 못한 바는 아니다. 바이어 주문 취소가 고운란 퇴사와 관련이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그러나 이미 구운람을 쫓아냈고, 지분까지 헐값에 사들였는데 지금 후회하여 고운란을 모셔온다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tv 속 화면은 원일그룹 정문 앞으로 옮겨졌고 테이프 커팅식이 시작되었다.센터에는 고운란과 이강현이 서 있었고, 기타 한성 거물들도 모두 테이프 커팅식 대열에 포함되었다.곧바로 원일그룹 테이프 커팅식이 시작됩니다. 그 한가운데에는 원일그룹 고운란 사장이 서 있고…….”TV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들으며 고민국은 가슴이 답답해져서 두 손으로 가슴을 꽉 쥐었다.고건강은 부러운 듯 질투의 눈빛으로 센터에 선 고운란을 바라보며 그 자리가 자기 자리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환상을 품었다.수천억의 대그룹을 손에 넣는 기분 정말 상상할 수 없었다.“푹!”고건강이 한창 부러워하고 있을 때 고민국이 피를 토했다.피가 멀리 뿜어져 나와 TV의 스크린에 튀어 스크린에 핏기를 보였다.“형, 형님 왜 그러세요? 갑자기 왜 피를 토해요!”고건강이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 당황해하였다.고민국은 입가의 피를 닦았다. 피를 토하고 나니 많이 나아진 것 같았다.“난 괜찮아! 정말 생각지도 못했어! 고운란이 원일그룹을 사장이 될 줄은, 그러면 우리 고씨 가문에게도 얼마간 혜택을 줘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