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현은 팔어르신의 말을 무시한 채로 머리를 저었다. 이강현은 용문의 파열이란 존재하지 않는 일이라고 믿고 있었다.“날 따를 기회를 주지, 그 기회 잡길 바라.”이강현이 담담하게 말했다.“건방지게 팔어르신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일산은 사난운 눈매로 이강현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일산은 언제든지 달려들 준비가 되어 있었다.“하하하”팔어르신이 박장대소를 하며 말했다.“그런 무식한 말도 할 줄 알아? 어디서 온 자신감이지? 바보 행세를 하며 다니더니 머리가 진짜 어떻게 된 거 아니야?”“머리에 문제가 있는 건 당신이겠지, 날 따르지 않으면 오늘 한 선택 평생 후회하게 될 거야.”이강현이 단정 지으며 말했다.팔어르신은 입을 삐쭉거리더니 머리를 저으며 말했다.“어지간히 유치해야 말이지, 넌 정말 네가 뭐라도 된 줄 알지?”“일산아, 네가 저놈 혼 좀 내줘야겠어, 나한테 무릎 꿇고 살려달라고 하면 내가 봐줄게.”팔어르신이 차가운 눈빛으로 이강현을 보며 말했다.일산은 팔어르신 뒤에서 뛰쳐나와 점프를 하더니 두 팔을 벌리며 이강현의 머리를 향해 날아차기를 했다.“부실 없는 노릇.”이강현은 오른손을 번쩍 들더니 일산이의 날아오는 발차기를 막았다.“네가 감당할 수 있는 다리 힘이 아닐 거야.”일산은 외치며 다리에 힘을 모았다.추락하는 속도가 빨라질수록 일산은 다리에 힘을 더 주었다. 예전 같았으면 지면이 뚫릴 정도의 위력을 가지고 있는 힘이었다.퍽!발과 주먹이 부딪치더니 일산의 음흉한 얼굴의 웃음도 사라지면서 이어 당황한 기색을 지어 보였다.제 자리에 꼼짝 않고 서있던 이강현에 의해 일산은 골격이 금이 가고 말았다.“어……. 어떻게 이럴 수가!”일산은 당황함도 잠시 골격이 부러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어 온몸에서 고통이 느껴졌다.일산은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고 있었다.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모든 것이 일어났다. 이강현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더니 오른팔로 일산의 왼쪽 발을 쳐냈다.“악!”일산은 고통을 참지 못하고 이강현
팔어르신은 이강현이 이런 막강한 힘을 가지게 되었는지,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손에 어떤 패를 들고 있기에 이렇게 막 나가는지를 알 수가 없었다.영수는 팔어르신의 시선을 막지 않으면서도 이강현을 막아 나설 수 있게 한발 나서 팔어르신의 맞은 켠에 서 있었다.이강현은 실눈을 뜨고 일산을 보며 웃었다.“이유가 궁금해? 사실 간단해, 난 하늘이 준 천부적인 재능을 갖고 있거든, 책을 펼치기만 해도 이렇게 강한걸?”일산은 울고 싶었다. 책을 펼치기만 하면 저런 능력을 가질 수 있다니, 너무 불공평한 일이었다.몇십 년을 하루같이 버텨 오늘의 성과를 이룩한 일산은 이강현의 말을 믿고 싶지 않았다. 단 한 번에 모든 걸 기억하는 우등생이라 하더라도 노력을 곁들여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이강현, 내가 너한테 굴복할 줄 알고? 난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아니야!”팔어르신이 말했다.영수는 근육을 드러내며 한발 더 나섰다.“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지금 무슨 농담을 하고 있는 거야? 8대 용왕 중에서 당신이 제일 간사하고 죽음을 두려워하고 있는 사람인 걸 내가 다 알고 있는데, 당신은 용왕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야.”팔어르신은 이강현의 엄청난 능력에 일분일초도 여기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영수는 팔어르신의 앞을 막아 나서서 팔어르신을 보호하고 있었다.이강현은 웃으며 담담하게 말했다.“내가 가도 된다는 말 안 한 것 같은데?”“내가 가든 말든 너한테 허락받아야 하는 건 아니잖아?”팔어르신은 발걸음을 재촉했다.팔어르신은 한 발만 나서면 문을 나설 수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여긴 공장의 아주 깊숙한 곳이었기에 문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었다.이강현은 일어서더니 팔어르신이 계신 곳으로 걸어갔다.“팔어르신, 얼른 대피하세요!”영수가 외치며 이강현을 향해 두 주먹을 날렸다.이강현은 날렵한 몸짓으로 영수와 정면으로 부딪쳤다. 영수는 마치 고속열차와 부딪친 느낌이 들면서 몸 전체가 튕겨나가고 말았다.퍽!피가 영수의 입에서 뿜어져 나왔
“양옥아, 얼른 날 구해줘.”팔어르신이 일어서며 외쳤다.멀지 않은 곳에서 검은 그림자가 스쳐 지나가더니 검은색 닌자 옷을 입을 양옥이 팔어르신 곁에 서 있었다.“팔어르신, 저 여기 있어요.”양옥은 칼을 꺼내 들고는 이강현을 노려보았다.“쿠노이치? 재미있네.”이강현은 입꼬리를 올리며 양옥을 스캔했다.양옥은 미간을 찌푸렸다. 양옥은 이강현의 눈빛이 자신에 대한 모욕이라고 생각했다.“팔어르신, 우선 여길 빠져나가시는 게 좋겠어요, 여긴 저한테 맡기세요.”양옥은 이강현을 이길 수 있을거 라는 확신은 없었지만 얼마 정도 시간은 벌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이강현 오늘이 너의 기일이야, 양옥, 얼른 저놈 죽여, 난 나가서 너의 좋은 소식 기다리고 있을게.”팔어르신은 바닥에서 일어서며 황급히 도망쳤다.이강현은 머리를 저으며 양옥을 에둘러 팔어르신을 쫓아갔다. 양옥은 이강현의 뒤에 바짝 붙어 이강현의 앞길을 막아 나섰다.“내가 있는 한 한 발도 앞으로 나설 생각 하지 마.”양옥이 수리검을 던지며 말했다.수리검은 바람을 일며 곧장 이강현한테로 날아들었다.이강현은 두 팔을 휘둘렀다. 이강현의 날렵한 몸부림에 팔이 여러 개 겹쳐 보였다. 팔 그림자가 사라질 때쯤 이강현은 양옥이 던진 6개의 수리검을 손에 쥐고 있었다.“나도 선물 하나 할게.”이강현이 팔을 뻗더니 손에 쥐고 있던 수리검을 던졌다.생각지도 못한 수리검의 날렵한 속도에 양옥은 당황했다.하지만 4개의 수리검만이 양옥을 향해 날아왔고 나머지 2개는 도망가는 팔어르신을 쫓고 있었다.양옥이 4번째 구리검을 피했을 때야 눈치를 챘지만 이미 늦었다.슝슝.2개의 수리검이 각각 팔어르신의 오른쪽 다리와 왼쪽 다리에 꽂히자 팔어르신은 그래도 바닥에 꿇고 말았다.팔어르신은 눈물을 흘리며 뒤에서 달려오고 있는 양옥을 향해 외쳤다.“어떻게 된 거야? 저놈 죽여, 지금 당장 죽여!”양옥은 머리를 끄덕였다. 주인님이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다치게 되는 건 최대의 수치였다.그림자가 쓱 지나가더니 양
주위에는 아무런 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공기의 흐름조차 아무런 변화가 없는 듯했다. 이강현은 조심스레 한발 한발 앞으로 나아갔다.한 발자국, 두 발자국, 세 발자국,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양옥은 이미 도망간 듯했다.팔어르신은 얼굴에 음흉한 웃음을 지었다. 이강현처럼 양옥의 공격을 피해보려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처음에는 팔어르신도 압박감에 당황스러웠지만 양옥이 던진 미끼라는 걸 알고 난 후로 팔어르신은 당당하게 웃어 보이기 시작했다.이제 두 발자국만 더 나아가면 이강현은 죽게 된다! 팔어르신은 이강현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는 생각에 들떠있었다.이강현도 긴장을 늦추고는 팔어르신을 향한 발길을 재촉했다.이때 후광이 이강현 뒤에서 나타나더니 양옥이 나타나 이강현의 등을 향해 비수를 꽂으려 했다.“하하하.”팔어르신이 박장대소를 지었다. 팔어르신은 이강현이 죽어가는 모습을 이미 보고 있는 듯했다.이강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몸을 돌렸다.양옥은 이강현의 심장을 향해 비수를 꽂으려 했다.이강현이 두 손으로 양옥의 비수를 가로챘다.“응?”팔어르신이 웃음을 멈추고는 이강현 손에 쥐어져 있는 양옥의 비수를 바라보았다.“너 어떻게 양옥을 발견하게 된 거야?”“당신이 알려줬잖아.”이강현은 웃으며 양옥의 배를 걷어찼다.이강현한테 맞은 양옥은 사람 전체가 튕겨나갔다.바닥에 쓰러진 양옥은 배를 부여잡고는 몸 전체를 옹크리고 있었다.쓰라린 고통에 양옥은 이강현을 바라보았다. 이강현이 어떻게 자신을 발견했는지 궁금했다.팔어르신은 구석에 붙어서는 꼼짝 않고 있었다.“내가 언제 알려줬다고 그래? 난 말 한 적도 없는걸?”팔어르신이 외쳤다.“당신 미소가 당신을 팔아넘긴 거야, 앞으로는 좀 겸손해지는 게 어때?”이강현이 담담하게 말하며 팔어르신의 목덜미를 잡았다.이강현한테 목덜 미를 잡힌 팔어르신은 어쩔 바를 몰라 했다. 자신의 웃음으로 인해 양옥의 필살기가 실패할 줄은 몰랐다.“그럴 리가 없잖아, 난 그냥 미소를 지었을 뿐이라고.”“양
추혼단은 예로부터 오랜 시간 전해져 내려온 독약으로 6개월이 지나면 해독제를 먹어야 했다. 해독제를 복욕하지 못한 사람은 온 몸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가게 되는데 극심한 고통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추혼단을 만드는 방법과 해독제를 만드는 방법 또한 이미 사라진 지 꽤 시간이 흘렀다. 단지 용문에 추혼단과 해독제가 남아있었다.팔어르신은 진성택이 이강현을 위해 추혼단을 찾아왔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지만 이강현이 자신한테 추혼단을 먹일 리라고도 생각하지 못했다.이로 인해 팔어르신의 목숨은 이강현의 손에 쥐어진 셈이었다. “도대체 뭘 하려는 거야? 말로 하면 되잖아, 나한테 이런 것까지 먹일 필요가 있어?”“당신이 나랑 얘기할 생각이 없었잖아, 이런 거라도 먹여야 제대로 말할 거 아니야.”이강현은 팔어르신의 얼굴을 툭툭 치며 말했다. 팔어르신은 이강현을 노려보더니 금세 김 빠진 고무풍선마냥 쪼그라들었다.“도련님, 사실 전 지금까지 도련님 편이었습니다, 여태껏 용후의 믿음을 얻기 위해서 그런 겁니다.”팔어르신은 아첨을 떨며 어떻게 해독제를 구할까 머리를 돌리고 있었다.지금의 과학기술로 해독제를 만들 수 있을지 걱정되었다.팔어르신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당신이 뭘 생각하고 있는지 내가 모를 것 같아? 머리 굴리지 말고 내가 묻는 말에 솔직하게 대답해. 용후는 언제 오는 거지? 한성에 오려는 목적이 뭐야?”이강현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다음 주면 도착하실 겁니다, 한성에 오시려는 목적이라면 아마 도련님을 난처하게 만들기 위해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도련님의 사모님한테 모욕감을 주시려고 그러는 것 같습니다.”팔어르신이 머리를 숙이며 말했다.“우리한테 모욕감을 주려 한다고?”이강현은 콧방귀를 뀌었다.언젠가는 용후와 승패를 가려야 하겠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도련님 일단 진정하시고 제가 용후한테 말 좀 잘해볼게요, 용후를 만나게 되면 너무 감정적으로 대하시지 말았으면 합니다.”팔어르신은 둘이 화해하기를 바랐다.이강현이 용후와 맞붙게 되
“팔어르신.”팔어르신을 본 진광철이 허리를 굽히며 인사를 올렸다.창고로 들어가실 땐 두 명의 경호원과 함께였는데 나오실 땐 혼자였는지라 진광철은 의아했다. 게다가 다리에 상처도 나있었다. 안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대충 알 것 같았다.“너, 들어가서 내 말 좀 전해, 소인 지시하시는 건 뭐든 할 테니 부하들 좀 풀어달라고 부탁해 줘.”진광철은 멍해졌다. 위엄 있으신 분께서 이강현한테 소인이라고 칭하는 모습이 놀라웠다.이강현의 능력을 보아낼 수 있었다.“뭐 해, 얼른 가지 않고.”팔어르신이 짜증을 내며 말했다.일산과 영수는 죽어도 상관없었지만 양옥은 팔어르신한테 아주 중요한 사람이었는지라 어떻게든 양옥을 구하고 싶었다.진광철은 풀리지 않는 의문을 안고 공장 안으로 들어갔다.“이 선생님, 팔어르신께서 그러시는데 앞으로 이 선생님 말씀 잘 들을 거니까 부하 풀어주시면 안 되겠냐고 하시는데요?”“저 세 사람 밖으로 끌고 나가.”이강현이 말했다.“세……. 세 사람이요?”진광철은 당황해하며 몸을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그제야 세 사람이 바닥에 쓰러져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팔어르신 경호원 두 명이랑 들어오시지 않으셨어요? 셋일 리가 없는데요?”진광철이 물었다.이강현은 대답 대신 차가운 눈빛으로 진광철을 바라보았다.가슴이 덜컥 내려앉은 진광철은 재빨리 세 사람을 끌고 공장 밖으로 나왔다.팔어르신의 차가 떠나자 진광철도 안도의 숨을 내쉬기 시작했다.팔어르신도 소인이라 칭하는데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아까 이강현의 아이를 납치한 기억이 떠올랐다.진광철은 자신을 향해 뺨을 날렸다. 진광철은 다급히 부하들한테 솔이 잘 보살피라고 연락을 했다. 솔이가 기뻐할 때까지 놀아주라고 신신당부했다.연락을 끊은 진광철은 이강현한테 사실대로 말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이강현이 공장으로 들어서자 이강현의 조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전화 건너편에서 주치의는 솔이가 사라진 지 몇 시간이 지났다고 하자 이강현은 눈에 불을 켰다.“최 선생
이강현은 진광철의 멱살을 잡으며 말했다.“뭐라고? 솔이를 납치하라고 지시했다고?”“이 선생님, 진정하세요, 저희 애들 솔이한테 아무 짓도 하지 않았어요, 제가 잘못했어요, 저 좀 용서해 주세요, 제가 솔이 만나게 해드릴게요, 제가 만약 솔이 털 끝 하나라도 건드렸다면 절 죽여도 좋습니다.”진광철은 손이야 발이야 싹싹 빌며 말했다.“그래, 네가 만약 솔이 털 끝 하나라도 건드리면 진씨 가문 내가 멸망시킬 거야.”이강현이 으르렁거리며 말했다.진광철은 자신의 부하들이 솔이한테 아무 짓도 하지 않았기를 기도했다.이때 엽중천이 사람들을 거느리고 들어왔다.이강현이 진광철의 멱살을 잡고 있는 모습에 엽중천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이 선생님, 무슨 일이세요? 말로 하세요.”엽중천은 진씨 집안과 오래 알고 지내던 사이었는지라 저도 모르게 도우고 싶었다.“이놈이 내 딸을 납치했어.”이강현이 진광철을 뿌리치며 말했다.이강현의 말을 들은 엽중천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광철아, 이건 네가 잘못한 거야, 어떻게 이 선생님 딸을 납치할 수가 있어? 이 선생님 딸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게 되면 내가 먼저 널 죽일 거야.”엽중천은 진광철의 머리를 향해 총을 겨누며 말했다.진광철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나도 제정신이 아니었어, 잘못했어요, 이 선생님, 우선 병원에 가서 솔이부터 만나보시는 것이 어떠세요?”이강현은 아무 말도 없이 밖으로 걸어 나갔다. 지금 이 시각 이강현보다 화가 난 사람은 없을 터인지라 다들 묵묵히 이강현의 뒤를 따랐다.진광철은 조바심을 태우며 이강현에게 차문을 열어주었다.“이 선생님, 타세요.”이강현이 뒷좌석에 올라타서 진광철은 조수석에 앉아 병원으로 가자고 말했다.엽중천의 차가 뒤를 따랐다.병원에 도착하자 진광철과 엽중천을 비롯한 사람이 이강현을 에워싸고 병원으로 들어갔다. 살기를 뿜고 있는 병사들과 킬러들이 뒤따랐다.다들 이강현을 피해 다녔다. 담이 작은 사람들은 심지어 이강현을 피해 저 멀리로 뛰어갔다.이강현이 등
솔이가 무사한 덕에 이강현은 진광철을 한번 봐주기로 마음먹었다. 이강현은 아이 앞에서 진광철을 손보면 솔이한테 트라우마를 남길가 봐 두려웠다.진광철은 이강현한테 인사를 올리고는 부하들과 함께 병실을 떠났다.엽중천이 이강현한테 밖에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사인을 보내며 병사들과 함께 병원을 나왔다.이강현은 솔이를 안고 침대에 앉아 인형놀이를 했다.솔이는 이강현의 품에 안겨 말똥말똥한 눈으로 이강현을 보며 말했다.“아빠, 나 언제면 다 나아? 언제쯤 집에 갈 수 있어?”“조금만 견지하면 돼, 의사 선생님께서 그러시는데 한 달만 더 있으면 솔이 집에 갈 수 있대, 우리 솔이 강하지, 우리 딱 한 달만 버텨볼까?”“그래, 솔이 버텨볼게.”솔이는 작은 주먹으로 이강현의 주먹을 툭 쳤다.놀다가 지친 솔이는 잠이 들었다.이강현은 솔이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문을 닫고 병실을 나왔다.엽중천이 병원 문 앞에서 쪼그리고 앉아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이강현이 걸어오는 것을 본 엽중천이 일어서며 말했다.“이 선생님, 제가 여쭤 볼 것이 있어서요.”“천남산 전쟁에 관한 이야기라면 지금은 말해 줄 수가 없어.”이강현이 담담하게 말했다.엽중천은 반짝이는 눈으로 이강현을 바라보았다. 이강현이 아직 알려줄 수는 없다고 했지만 이강현의 말속에 이미 많은 정보를 얻을수 있었다.천남산 전쟁은 엽중천만 알고 있었다. 이강현은 엽중천이 전쟁에 대해 물을 것을 미리 예측하고 있었다.“알겠습니다.”엽중천은 마음을 가라앉히며 말했다.“이 선생님, 이쪽에 따님을 보호할 인원이 필요하신 것 같은데 절 믿으신다면 제가 제 부하들을 이쪽으로 파견해도 되겠습니까?”이강현이 엽중천을 바라보더니 폭탄을 감지할 수 있는 제어 박스를 건넸다.“그럼 부탁 좀 할게, 이건 자네가 가지고 있어.”“믿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최선을 다해 솔이를 지키겠습니다.”이강현은 머리를 끄덕이며 엽중천의 어깨를 툭툭 쳤다. 그리고는 택시를 불러 회사로 향했다.회사에 도착한 이강현은 고운란의 사무실로 향했다.
“무슨 소리야! 이강현 그 자식 내 손자 발 뒤꿈치에도 못 가! 딴 소리 말고 그냥 할 건지 말 건지나 말해.”어르신은 말을 마친 후 분노에 찬 눈으로 이강현을 노려보았다. 고운란이 이강현의 감언이설에 속은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저 역시 아까 말했던 것처럼 이강현이 한 말이 바로 제 뜻이예요.”“너 정말! 나 너 같은 손녀 없어, 너희들 우리 고씨 집안 자식 아니야!”어르신이 소리를 지른 뒤 휴대전화를 떨어뜨리고 화가 나서 고건민에게 더 심한 말을 하려고 할 때 고건강은 어르신을 힘껏 잡아당겼다.“아버지, 화내지 마세요, 화내면 몸이 상해요, 진정하세요.”고건강은 상황이 더 나빠지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만약 고씨 집안이 무너지면 고운란의 도움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지금 기회를 잡아 잘 보이려고 하였다.어르신은 고건강을 노려보며 고건강까지 욕하려고 하였다.“아버지, 화내지 마세요, 형님한테 끌려가면 안 돼요. 큰 형이 둘째 형한테 원한이 많은 거 아시잖아요. 우리 사이가 틀어지면 그게 큰 형이 바라는 거예요.”“근데 지금 둘째 형 쪽이 대세인데 앞으로 그쪽한테 기대할 지도 모르니까 사이가 틀어지면 우리도 득 볼 게 없어요. 일단 넘어가세요.”이득 외에 고건강 눈에는 도덕 같은 게 보이지 않았다. 충분한 이득만 얻을 수 있다면 누구라도 다 팔아먹을 수 있었다.그래서 지금 고건강은 자기 먹거리를 챙기기 위해 고민국 생각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어르신도 늙은 여우라 고건강 말을 듣고 속으로 다시 생각을 정리했다.방금 화가 난 김에 하마터면 일을 그를 칠 번 했다. 지금 고운란의 위세든, 이강현이 말한 진성택과의 관계든 두 사람의 세력이 강해짐을 보여주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고나서 어르신은 마음을 진정시켰다. 고건강의 말이 맞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셋째야, 네 말이 맞아, 방금 내가 큰 실수를 할 뻔했어.”“잘 생각했어요. 이럴 때 강력하게 나가면 두 쪽 다 다치게 돼요.”어르신 표정이 느긋해지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강현의 손에서 득을 못 보게 될 것을 알아차리고 어르신은 즉시 전략을 바꿔 고운란을 찾기로 하였다.뭐라해도 자기 친 손녀인데 할아버지가 부탁하면 아무리 싫어도 자기 말을 따를 것이라고 생각했다.이강현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어르신이 좀 지나치시다고 생각했다. 할말 못할 말 다 했는데 늙은 티를 내면서 덕 좀 보려고 하니 어이없었다.“할아버지, 상황은 다 얘기했고, 계속 고집부리시겠다면 운란에게 전화하세요.”“보자 보자하니, 네가 누구인 줄 알아! 너는 그냥 이 집안의 데릴사위일 뿐이야!”고민국은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허허.”이강현은 가볍게 웃으며 돌아서서 밖으로 걸어갔다.“너 무슨 태도야! 거기 서!”고민국은 앞으로 나가 이강현의 팔을 잡아당기며 이강현을 혼내려고 하였다.고건민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았다.“형님, 말로 하시죠, 화내지 마시구요.”“흥! 쟤 말 잘하는 거 좀 봐? 너무 건방지잖아!”어르신이 핸드폰을 들고 말했다.“입 다 다물어, 운란이한테 전화할 거야!”고민국은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이강현을 잡은 손은 놓지 않았다.이강현은 차가운 눈으로 구민국을 바라보았다. 고민국은 뒷머리가 섬뜩한 것을 느끼며 이강현의 눈빛에 완전히 겁을 먹고 손을 놓아버렸다.“너 여기 가만히 있어, 내 명령없이 한 발짝도 움직이지 마.”고민국은 겁을 누르고 낮은 소리로 말했다.어르신 전화가 연결되었고, 전화 저편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여보세요, 할아버지.”“빨리 돌아와, 할 말이 있어.”고운란이 어리둥절했다. 지금은 손님을 접대해야 해서 움직일 수 없었다.“할아버지, 아빠랑 이강현이 돌아가지 않았나요? 무슨 일 있으세요?”“이강현 그 새끼 얘기 꺼내지도 마! 그 자식 정말 사람 미치게 하는 재주 있어. 너 지금 원일그룹 사장 아니야? 집안 사업 망하게 생겼어, 원일그룹이 사라고 해.”고운란이 듣던 중 자기 할아버지 상업도덕에 어긋하는 말에 가슴이 서늘해졌다. “할아버지, 지금 손님을 접대해
어르신은 전혀 놀라지 않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이강현을 보고 있는데 마치 금덩어리를 발견한 눈빛이었다.“이리 와서 내 옆에 앉아.”어르신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고민국의 표정이 굳어지더니 황급히 몸을 숙이고 어르신 귀에 대고 말했다.“아버지, 이 쓰레기랑…….”“흥!”건국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어르신은 사람을 잡아먹는 듯한 매서운 눈빛으로 고민국을 노려보았다.“쓰레기는 네가 아니야?! 회사를 너한테 맡기고 나서 지금 무슨 꼴이야!”“아버지, 저는 최선을 다했어요.”“아무 쓸모 짝도 없어, 이강현을 봐봐, 이게 진정 회사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야!”어르신은 말하면서 고민국에게 눈짓을 했다.이강현 때문에 들어온 오더이니 다시 가져올 수도 있다는 뜻이다.이때 좋은 말 몇 마디로 이강현을 안정시키면 잃어버린 오더를 모두 찾아올 수 있고, 고씨 집안 사업도 다시 살아날 수 있다.“아, 네네, 이강현 너 얼른 할아버지 옆에 앉아, 내가 의자 가져다 줄게.”고민국은 의자를 들고 어르신의 옆에 놓았다. 의도적인 호의였다. 이강현은 의자에 앉지 않고 미소를 지으며 걸어갔다.“큰 아버지가 들어온 의자 제가 감히 어떻게 앉겠어요. 할아버지의 뜻도 이해합니다. 근데 고씨 집안 제품을 사면 진성택도 돈을 내면서 받는 거니까 저도 진성택이 계속 손해보게 놔둘 수는 없잖아요.”어르신의 안색이 약간 변했다. 이강현이 한 마디로 그가 곧 꺼낼 말을 막아버릴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어색하게 웃고 나서 어르신은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진성택이 어떻게 손해를 봐, 그 사람 돈 많잫아.”“돈은 많는데 손해보면서 우리를 돕는 건 사실이잖아요. 전에 저를 도와준 건 갚을 게 있어서 그랬고, 지금 약속한 시간이 되었으니 거두어들여도 당연한 거죠.”이강현은 그들을 돕지 않기로 마음을 굳혔다. 지금 이 상황에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오히려 심술궂게 굴어 이강현으로 하여금 그들을 도울 생각을 단념하게 했다.만약 처음부터 잘못을 인정했다면 도와줄 수도 있었다. 고씨
“진성택과 제 관계는 말할 필요 없고, 말 해도 믿지 않을 테니까 그냥 시키는 대로만 움직인다고 아시면 돼요.”이강현은 뒷짐을 지고 고개를 들어 상위권의 기세를 보여주었다.이강현의 도도한 모습에 고민국과 고건강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진성택이 왜 네 말을 들어, 네가 뭐라고!”고건강이 참지 못하고 말했다.이강현은 고건강을 상대하지 않고 담담한 표정으로 어르신만 바라보았다.어르신은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굳은 얼굴로 고민국에게 말했다.“전화해서 진성택 지시 맞는지 확인해봐.”“아버지! 그걸 왜 물어봐요. 순전히 허튼소리예요! 믿을 필요 없어요!”“하라면 하지, 쓸데없는 말이 왜 그렇게 많아.”어르신의 표정이 더욱 언짢아졌다.고민국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어 마지못해 휴대전화를 꺼내 바이어들의 전화를 뒤지기 시작했다.고건민은 그 틈을 타 이강현을 끌어당기며 낮은 소리로 물었다.“솔직히 말해 봐, 진성택이랑 무슨 관계야?”“제가 진성택 손자의 목숨을 구한 적이 있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때 운란이 힘들어 하니까 그냥 도움을 요청한 거예요.”고건민은 눈알을 굴리더니 이강현을 깊이 들여다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고건민의 속으로 이강현의 해명을 믿지는 않았지만 진성택이 이강현의 지시를 따른 다른 말은 믿었다.예전에 왕씨 어르신 생신 때 진성택이 이강현을 데리러 차를 몰고온 장면이 떠올리고 고건민은 이강현과 진성택 사이 관계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더욱 깊이 믿었다.그러나 지금 고건민은 깊이 따질 마음은 없고, 오히려 고민국과 고건강이 망신을 당한 모습을 보고 싶어 하였다.몇 년 동안 고건민은 고민국과 고건강으로부터 온갖 탄압을 받았으며 많은 고통을 겪었으니, 지금 그들이 좌절하는 것을 볼 수 있다면 당연히 더없이 기쁜 일이다.고민국이 건넨 전화는 이미 상대방에게 연결되었고, 연결된 후 상대방이 말하기도 전에 먼저 열정적으로 말하기 시작했다.“형님, 저 민국이예요.”“어 그래, 나 지금 회의 들어가봐야
“운란이 아무리 사장이라고 해도 도우려면 그만한 이유가 있어야 도움을 수 있죠. 지금 상황으로 봐서는 가족 사업에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요.”이강현이 말을 마치자 그들 모두 가슴이 답답하기 짝이 없었지만 반박할 말이 없었다.체면이 깎인 어르신은 고민국을 매섭게 노려보며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그를 원망했다.고민국은 이를 악물고 억지를 부리며 말했다.“네가 뭘 안다고 나서? 그래, 네 말이 맞다고 치자, 그래도 운란이 우리 회사 제품 독점판매해서 도와줄 수 있잖아!”“그건 돕는 게 아니라 공과 사를 구분 못하는 거죠, 그럼 한 달도 못 버티고 쫓겨날 건데 그걸 바라세요?”이강현이 되물었다.할 말을 잃은 고민국은 이강현을 매섭게 노려보았다.“뭘 그렇게 말해, 우리 제품 사다가 중간에서 가격을 올려 팔면 되잖아, 실적도 올리고!”어르신은 고개를 끄덕이며 고민국의 말에 동의하였다.“민국이 말이 맞아, 회사 제품을 사가서 다시 팔면 문제없어.”“허허.”이강현은 약간 경멸하는 눈빛으로 웃으며 그들을 바라보았다.“왜 오더가 빠지는지 아직 잘 모르시는군요. 기술, 생산라인, 원가 아무 것도 경쟁력이 없는 제품 누가 사겠어요?”“전에 장사가 잘 됐다는 얘기하지 마시구요, 그건 제가 받아온 오더예요! 운란이 너무 힘들어 하니까 제가 진성택에게 사람을 시켜 오더 내리라고 부탁했어요!”이강현의 말이 나오자 방 안의 사람들 모두 놀라하며 눈을 크게 떴다.사실 그들도 회사 제품이 가격이 높지만 그에 비해 품질이 뒤떨어 시장 경쟁력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고운란이 오더를 받아낼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자신의 미모로 고객의 환심을 샀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그러나 지금 이 순간 이강현이 한 말은 그들의 생각을 뒤엎었다.이강현의 말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너, 너 여기서 무슨 헛소리야! 네가 무슨 능력이 있다고 진성택을 찾아? 진성택이 무슨 사람인데 네가 부탁해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인 거 같아?!”고민국은 이강현에게 손가락질하며
어르신의 엄격한 말투에 고건민의 마음은 두려웠다.“그래요 아버지, 운란이 사장이라도 아버지 손녀딸이에요.”“흥!”어르신이 콧방귀를 뀌며 눈을 지긋이 감고 말했다.“사장이라고 집 장사도 잊은 게야?! 있는 지분을 다 팔았다고 연을 완전히 끊을 수 있다고 생각해?!”“그게…… 일도 그만뒀는데 그럴 명분이 안 되죠.”고건민은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둘째 너 쓸데없는 소리 그만해, 운란이 나가고 나서 오더 크게 줄었다고 들었어, 네 딸과 상관이 없다고 생각해?!”“별말 없이 지분 팔 때 알아봤다니까, 갈 곳을 찾아두고 가족 사업 망치려고 작성한 거 맞죠.”고건강이 따라 말했다.그들의 비난에 고건민은 입이 열 개라도 변명할 수 없는 무력함을 느꼈다.이미 마음속 선입견을 두어 고건민이 뭐라고 해도 믿지 않을 것이다.게다가 고건민도 지금 말하고 있는 이유 모두 핑계일 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왜 말이 없어? 인정 못하겠어? 너희들 정말 이렇게까지 비열할 줄은 정말 몰랐다. 가족 사업 망치고 나서 우리한테 미안하지도 않아?!”고민국이 노호했다.얼굴이 하얗게 변한 고건민은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아니요, 집안에 해가 되는 일 정말 한 적이 없어요. 아버지 믿어주세요.”“다른 말은 필요 없고, 원일그룹도 의약업을 하고 있지, 운란이 집안 사업에 도움을 보태라고 말해, 오더도 주고, 지금 그만한 능력이 있는 거 아니야?”어르신이 이제서야 용건을 말했다. 고건민은 쓴웃음을 지으며 목이 쉬어 말했다.“운란이 사장이지만 아직 막 부임해서 너무 티 내서 하면 안 돼요, 그보다 지금 회사일 운란이 한 마디로 움직이는 거 아니잖아요.”“그래서 안 하겠다는 거야? 눈뜨고 집안 사업이 망하는 거 보고싶어? 너 그러고도 내 자식이야?!”어르신은 눈을 부릅뜨고 고건민을 노려보며 죽여버릴 것만 같았다.고건민은 당황한 듯 고개를 돌려 이강현을 바라보며 이강현이 빨리 와서 도와주기를 바랐다.“할아버지, 큰아버지, 작은아버지,
고건민은 이런 대우에 푹 빠졌다. 마치 제왕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다리를 꼬이고 흔들면서 고건민 머리를 쳐들고 말했다.“여보세요, 누구세요?”“누구겠어! 네 형이지!”고민국이 화 내며 소리쳤다.고건민은 귓가에 있는 전화를 내려 발신자를 확인하였다. 고민국 번호이다.오늘 같이 기분 좋은 날에 고민국 전화를 받은 고건민은 정수리에 찬물을 끼얹은 기분이었다.“아, 제가 지금 바빠서 누구 전화인지 미처 확인하지 못했어요. 무슨 일이예요?”“아버지가 널 찾아, 빨리 돌아와.”고민국이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아버지요? 아버지가 왜요? 혹시 몸이…….”“닥쳐! 아직 건강해, 돌아오라고 하면 빨리 돌아와!”고건민의 마음이 비로소 놓였다. ‘몸이 안 좋은 줄 알았잖아.’‘근데 이때 왜 날 불러, 왠지 수상해.’“네, 곧 돌아가겠습니다.”전화를 끊고 고건민은 잠시 생각하다가 이강현을 향해 걸어갔다.지금 고운란은 한성 거물들을 모시고 있어 어쩔 수 없이 이강현을 찾아갔다.“아까 본가에서 연락이 왔어, 나보고 어르신 만나러 가래.”고건민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이강현은 눈살을 찌푸리며 마음속으로 어렴풋이 짐작이 갔다.“할아버지도 뵐 겸 제가 데려다 드릴게요.”“그게…….”잠시 머뭇머뭇하다가 고건민은 이강현이 따라오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강현이 따라가면 번거로운 부분도 부담할 수 있기 때문이다.“그래, 그럼 지금 출발하자.”“네.”이강현은 고건민과 함께 차를 몰고 어르신의 집으로 향했다.곧 두 사람은 어르신의 집에 도착했다. 들어서자마자 어르신의 싸늘한 눈빛에 고건민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고건민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방금 밖에서 산 과일과 영양제를 들고 빠른 걸음으로 어르신 앞으로 걸어갔다.“아버지, 저 왔어요.”“흥! 날 잊은 건 아니고?”어르신이 무뚝뚝한 얼굴로 말했다.“제가…….”“뭘 말하고 싶은데?! 네 딸이 사장이 됐다며, 이제 고씨 집안과도 인연을 끊을 거야?!”고건민의 이마에 식은
고민국과 고건강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나서 어르신을 찾아가기로 결정했다. 지금 위급한 상황에서 어르신이 나서야 했다.두 사람이 상의를 마친 후 급히 어르신 거처로 달려갔다.의자에 누워 라디오를 끌어안고 듣고 있던 어르신은 두 아들이 황급히 걸어 들어오는 것을 보고 곧 안 좋은 일이 생겼다는 것을 알아차렸다.“너희 둘 무슨 일로 왔어? 할말 있으면 그냥 말해.”어르신은 이미 알아차렸다는 듯이 바로 말했다.고민국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헤헤, 아버님 말씀이 맞아요. 해결이 어려운 문제이니 아버님이 직접 나서서 도와주세요.”“내가? 집안일에만 손댈 수 있는 노인한테 경영은 아니지.”어르신이 눈을 감았다.“집안일 맞아요. 둘째가 경영에서 물러났잖아요. 저랑 건강이 2억으로 그 지분을 사들이고 나서 고운란도 회사에서 퇴직한 거 아버지도 알고 있죠.”“맞아, 그건 나도 알고 있어, 2억이면 은혜를 셈이지.”일찍이 고건민 집안에 불만을 품고 있었던 어르신이라 그들이 경영에서 물러난 것도 바라는 바이다.고민국은 조금 난처한 듯 고건강을 쳐다보고는 고건강에게 계속 말하라고 눈길을 주었다.“운란이가 회사 업무 쪽 일을 맡았잖아요, 그래서 걔가 퇴사한 후 원래 바이어들이 주문을 취소해서 회사 매출이 떨어지고 있어요. 근데 운란이가 원일그룹 사장이 된 거 있죠!”눈을 감고 있던 어르신이 눈을 번쩍 뜨며, 눈에 의아한 빛이 스쳐 지나갔다.“뭐?! 고운란이 어떻게 원일그룹 사장이 돼? 말도 안 되는 소리 아니야, 이제 겨우 몇 살인데, 어떻게 사장이 될 수 있어?”“정말이예요, 아까 티비에도 나왔다니까요, 한성에 이름을 댈만한 사람들이 다 참석했어요. 고운한 그 년이 분명 무슨 거래를 한 게 분명해요.”“콜록콜록.”고건강 말이 빗나간 것을 보고 고민국은 힘껏 기침을 두 번 했다.“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운란이 보고 원일그룹 오더를 우리한테 넘기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 기업도 다시 살아날 수 있어요.”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나서 어르신은
“작은 좌절일 뿐이야, 이겨내야 해! 고운란이 없으면 회사가 망해? 예전에도 힘든 적이 있었잖아!”고민국은 책상을 힘껏 치며 소리내어 말했다. 조금만 시간을 더 주면 이 난국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건강은 입을 삐죽거리며 이상한 말투로 말했다.“지난번 난국도 고운란이 해결한 거잖아요, 잊었어요?”빵!구건국의 주먹이 책상에 세게 부딪혔다.“무슨 뜻이야?”“솔직히 말해 지금 이 상황 고운란과 관련이 있는 거 분명해요. 그 바이어들은 대부분 고운란이 데려온 겁니다, 형님, 잘 생각해보세요.”고민국이 아무 말없이 의자 등받이에 힘없이 기대어 앉았다.사실 고민국도 생각을 못한 바는 아니다. 바이어 주문 취소가 고운란 퇴사와 관련이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그러나 이미 구운람을 쫓아냈고, 지분까지 헐값에 사들였는데 지금 후회하여 고운란을 모셔온다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tv 속 화면은 원일그룹 정문 앞으로 옮겨졌고 테이프 커팅식이 시작되었다.센터에는 고운란과 이강현이 서 있었고, 기타 한성 거물들도 모두 테이프 커팅식 대열에 포함되었다.곧바로 원일그룹 테이프 커팅식이 시작됩니다. 그 한가운데에는 원일그룹 고운란 사장이 서 있고…….”TV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들으며 고민국은 가슴이 답답해져서 두 손으로 가슴을 꽉 쥐었다.고건강은 부러운 듯 질투의 눈빛으로 센터에 선 고운란을 바라보며 그 자리가 자기 자리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환상을 품었다.수천억의 대그룹을 손에 넣는 기분 정말 상상할 수 없었다.“푹!”고건강이 한창 부러워하고 있을 때 고민국이 피를 토했다.피가 멀리 뿜어져 나와 TV의 스크린에 튀어 스크린에 핏기를 보였다.“형, 형님 왜 그러세요? 갑자기 왜 피를 토해요!”고건강이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 당황해하였다.고민국은 입가의 피를 닦았다. 피를 토하고 나니 많이 나아진 것 같았다.“난 괜찮아! 정말 생각지도 못했어! 고운란이 원일그룹을 사장이 될 줄은, 그러면 우리 고씨 가문에게도 얼마간 혜택을 줘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