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난 흥윤이가 여기 있나 해서 찾아왔어, 혹시 흥윤이 본 적 있니?”고민국이 물었다.“어제 저녁에 보긴 했는데 흥윤이 친구들이 흥윤이를 데리고 갔어요, 저희도 고흥윤 어디 있는지 몰라요.”이강현이 웃으며 말했다.“친구? 이놈은 가면 간다고 말이라도 하든가.”이때 고민국의 전화벨이 울렸다.낯선 번호였다.“제가 고민국인데 누구시죠?”“여긴 하람 병원인데 고흥윤 혹시 아들 되시는 분 맞으실까요?”“네, 제 아들 맞아요, 걔가 하람 병원에 있다고요? 어떻게 된 일이에요?”고민국이 긴장해하며 물었다.“아들분 지금 내출혈로 한시가 급한 상황이에요, 얼른 수술 들어가기 전에 사인하셔야 해요.”“내출혈이라고요? 생명에 위협은 없는 거죠?”고흥윤이 넋을 잃고 말했다.“그건 저희들도 확답을 드릴 수 없으니 얼른 병원으로 오셔서 응급수술 센터에서 최 선생님을 찾으세요.”병원에서 전화를 끊자 고민국은 식은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너지? 너 우리 아들 어떻게 한 거야?”고민국이 몸을 돌리더니 이강현을 향해 외쳤다.“전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믿지 못하시겠으면 CCTV 돌려보시든지요, 지금 저한테 소리 지를게 아니라 빨리 병원에 가보시는 게 나을 것 같은데요?”“이 자식, 우리 아들이 잘못되기라도 하면 그땐 나 너 가만 안 둘 거야.”말을 마친 고민국이 회사를 떠났다.고운란은 머리를 저으며 말했다.“이게 다 무슨 일이래? 오늘도 집에 가는 건 안 되겠어, 회사에 있어야 내 마음이 놓일 것 같아.”고민국과 고흥윤이 회사를 비우는 바람에 많은 일들을 고운란이 처리해야 했다. 고운란마저 집으로 가버리면 회사에 남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당신 밤샜잖아, 이러다간 당신 쓰러져.”이강현이 고운란을 걱정하며 말했다.고운란이 웃으며 말했다.“하루 밤새는 거야 뭐 별것도 아니야, 오늘 밤 푹 쉬면 돼, 당신 얼른 집에 들어가 봐, 저녁에 나 데리러 오면 돼.”이강현이 웃으며 말했다.“점심까지 옆에 있게 해 줘, 내가 점심 사 올 테니까
점심, 교외 페기된 한 공장에서.공장 주위에는 이미 수십 명이 잠복하여 살피고 있었다.진광철은 한껏 엄숙한 표정으로 의자에 앉아 수십 명의 사람들을 살피고 있었다.어떤 사람은 괴이한 표정을 하고 있었고 또 어떤 사람들은 수다를 떨고 있었는데 그야말로 가지각색의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인 것 같았다.“진 도련님, 도련님이 말씀하신 그 병왕이라는 사람 어떤 분이신데요? 우리가 이래 봬도 이 바닥에서 알아주는 킬러들인데 형편없는 지휘관 데려오시면 우리도 가만있지 않을 거에요.”한 시도 진정하지 못하는 킬러가 말했다.“위용아, 너 네 신분 잊은 건 아니지? 누가 너한테 일자리를 챙겨줬는지도 잊지 말아야 할 거야.”진광철이 경호원을 보며 말했다.“넌 진 도련님 곁에 있는 한 마리의 개일뿐이잖아, 난 그래도 내 능력으로 밥 벌어먹고 있어, 너보다는 낮다는 얘기야.”위용이 투덜거렸다.화가 난 경호원이 총을 꺼내 들려고 하자 진광철이 말렸다.“다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있어요, 이건 사장님이 내린 지시라 저도 어쩔 수가 없어요, 병왕 오시게 되면 병왕과 한번 붙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병왕을 이기면 이번 작전 당신들 지시에 따라 움직일게요.”열댓 명의 킬러들의 눈이 반짝였다. 현장에 모인 킬러들은 현장 경험이 있었는지라 다들 서로에 대해서 조금은 알고 있었지만 이번 작전의 지휘권을 가진 사람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었기에 자신의 목숨을 선뜻 모르는 사람 손에 쥐어주는 느낌이 들었다.“이긴 사람이 이번 작전을 지휘한다고?”이강현의 목소리가 문 쪽에서 들여왔다.진광철이 웃으며 말했다.“당연하죠.”열댓 명의 킬러들은 갑자기 나타난 이강현을 보고 경계모드로 진입했다.“진 도련님, 이 분은 못 보던 분이신데 누구신지요? 설마 그 병왕이라는 사람인가요?”위용이 갸우뚱거리며 물었다.“이강현이라는 분이셔, 한성 토박이신데 유능하신 분이야, 우리 최강킬러조직에 초청하고 싶었지만 거절당했지 뭐야.”진광철이 실눈을 하며 말했다.“아이고, 우
화가 난 킬러들이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다들 자신을 무시하고 있는 이강현을 죽이고 싶었다.진광철이 웃으며 이강현을 바라보았다.“이 선생님도 참, 이렇게 바로 도발을 하시네요, 살갑게 인사 나누시지 그러셨어요.”“촌닭들이랑 무슨 인사를 한다고 그래?”이강현이 담담하게 말했다.위용은 울부짖으며 주머니에서 수술칼을 꺼내 들고는 이강현을 향해 달려들었다.위용은 수많은 킬러들 중에서도 탑 3안에 드는 사람이었다. 위용은 다른 킬러들과는 달리 암살 무기를 사용하는 것을 선호했다.위용은 특히 칼을 쓰는 법에 대해 고된 훈련을 해왔는데 그 덕분에 던진 칼이 목표를 빗나간 적은 없었다.위용이 던진 칼에는 늘 피가 묻어 있었다.이번에도 예외는 없을 거라 생각했다. 칼을 내던지는 순간 위용은 이강현을 적중했을 거라 생각했다.수술칼은 눈 깜빡할 사이에 이강현의 앞으로 날아왔다.이강현은 아무렇지도 않게 손을 내밀더니 두 손가락으로 칼을 집어 들었다.수술칼이 이강현의 손에 잡히자 위용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그럴 리가 없어.”“그럴 리가 없긴 왜 없어, 받아.”이강현이 손을 털자 수술칼이 위용을 향해 날아갔다.위용은 공포감이 밀려왔다. 날아오는 칼을 피하긴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위용이 반응을 하기도 전에 수술칼은 이미 위용의 머리카락을 베고 지나갔다.“습.”다들 이강현이 봐주지 않았더라면 칼이 위용의 눈썹을 베고 지나갔을 거라는 걸 알았기에 냉기를 들이마셨다.위용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위용은 몸을 돌이켜 벽에 박힌 수술칼을 바라보았다.진광철은 이강현이 대단한 줄 알았지만 이런 실력을 가지고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이강현은 위용과는 급이 달랐다.진광철은 에이스만이 이강현과 맞붙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하병을 바라보았다.하병은 구석에 있는 의자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진광철은 하병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킬러들은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위용도 패배한 마당에 이강현과 맞설 수 있는 유일한 상대
이강현을 바라보고 있던 진광철이 눈빛이 다시 하병한테로 옮겨졌다.자욱하게 펼쳐진 담배 연기 뒤로 하병이 웃는 모습이 보였다.위용은 이강현이 하병을 도발하고 있다고 생각했다.“저렇게 건방진데 형 참을 수 있어요?”위용이 말했다.하병은 연기를 뿜으며 말했다.“조급해 할 필요 없어, 병왕이란 사람 쓰러뜨리는 게 급선무야.”하병은 신경 쓸 필요 없다는 듯이 말했다.“저놈은 나중에 해치우면 돼.”“병왕 걱정할게 뭐가 있다고 그래요, 요즘 세상에 병왕이라고 자칭하는 놈들 그냥 허풍 떠는 애들이잖아요.”위용이 불만을 토하며 말했다.아까 이강현 때문에 체면을 잃었다고 생각한 위용은 자신의 체면을 세우기 위해 하병을 도우겠다고 나섰다.하병은 웃으며 진광철을 바라보았다.“진 도련님, 그만 돌려 말하시고 병왕에 대해 얘기해 보시죠.”“그래.”진광철은 핸드폰에 적혀있는 메시지를 보며 말했다.“천남 병왕 엽중천이라는 분이신데 군 생활을 10년 정도 하셨고 전장에서 공을 무수히 세운 분이셔, 특히 천남산 전장에서 큰 공을 세우셨어.”“천남산 전장에서 엽중천은 열다섯 명의 병사들을 데리고 천오백 명의 적을 물리치셨어.”“3박 4일의 전쟁 끝에 아군은 철수했고 엽중천이 거느린 부대는 결국 세 사람밖에 살아남지 못했어, 그중 두 명은 크게 부상을 입었고 영중천은 경상을 입었대.”진광철은 이강현의 표정을 살폈지만 이강현은 의외로 아무렇지도 않았다.진광철의 말을 들은 하병은 담배를 쥐고 있던 손을 떨었다. 그래도 타격은 있은 모양이었다.위용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마치 치렬한 전쟁이 눈앞에 보이는 것 같았다.“신화 이야기로 들리는데요? 천남산 전쟁에 관한 이야기가 여러 개 여야 말이죠.”위용이 뒷짐을 지며 말했다.“엽중천은 참가했던 모든 전쟁에서 패배를 한 적은 없어, 놀라운 지휘력을 가진 사람이야.”“전 엽중천 손에 우리 목숨을 쥐여줄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 사람한테 우리 목숨 맡겼다간 우리 다 죽을지도 몰라요.”“하병 형 뜻을 이제야 알 것
이강현은 여전히 엽중천에 대해 궁금했다. 살아서 전설이 된 사람이 많지는 않으니까. 타닥타닥. 가지런한 발자국 소리가 전고처럼 울리더니 위장복을 입고 온몸에서 숙연한 기운을 뿜어내는 장한들이 들어왔다. 장한들의 대열 한쪽에는 비치의상을 입고 슬리퍼를 신은 채 담배를 물고 있는 엽중천이 천천히 걷고 있었다. 장한들의 가지런한 발걸음 가운데서 엽중천은 마치 날날이 같았다. “아이고, 다들 일찍 왔네. 우리 늦은 건 아니지?” 엽중천은 싱글벙글 웃으며 큰 소리로 말했다. 진광철은 얼른 일어서서 종종걸음으로 엽중천을 맞이했다. “형님, 딱 맞게 잘 왔어. 일분도 늦지 않았어.” 진광철은 비위를 맞추며 말했다. 배후의 분께서 파견한 사람이라 진광철은 생각할 필요도 없이 엽중천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걸 알았다. 엽중천은 웃는 얼굴로 진광철의 뺨을 가볍게 토닥이며 말했다. “네가 바로 진 씨야? 말을 참 잘하는구나. 네 사람들은 모두 왔지? 걔들은 나한테 승복하지 않는 거 아니야?” “그건…… 내가 잘 얘기해서 반드시 당신의 지휘를 따르도록 할게.” 진광철은 다소 걱정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부하 킬러들은 모두 오만불손한 성격이었다. 게다가 하병은 공개적으로 지휘권을 갖겠다고도 했었다. ‘이따가 하병을 진정시킬 수 없으면 어떡하지?’ 진광철은 생각할수록 머리가 아팠다. 특히 엽중천을 흥미진진하게 바라보고 있는 이강현을 보니 진광철은 머리가 지끈지끈했다. 하병 등인은 모두 음산한 눈빛으로 엽중천을 바라보며 한 마디라도 아니다 싶으면 전쟁을 벌일 기세였다. 엽중천은 하병 등인을 무시하고 빙그레 웃으며 이강현에게 다가갔다. “네가 아주 선 해 보이네. 나랑도 인연이 있어 보이니 네 옆에 앉을 게.” 엽중천은 이강현을 보며 말했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긴 하지. 그러고 보니 당신 곁에 있는 용병들 괜찮은 거 같은데.” 이강현은 담담하게 말했다. 용병 한 명이 메고 있던 휴대용 의자를 이강현의 곁에 놓자 엽중천은 그 위에 앉았다.“
“엽형, 이선생, 제발 다투지 마. 할 말이 있으면 잘 얘기하면 되지. 손자 조상이 웬 말이야? 그런 말 하면 감정 상하잖아.” 진광철은 억지로 두 사람을 달랬다. 엽중천은 마치 화낸 적이 없다는 듯이 바로 웃기 시작했다. “진광철, 네가 찾은 영웅호걸들이 날 무시하는 거야? 아님 날 업신여기는 거냐?” 엽중천이 웃으며 말했지만 그 말을 들은 진광철은 놀라서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것 같았다. 이번 행동은 엽중천을 위주로 하고 진광철의 수하들은 그냥 보조였다. 그러나 진광철의 배치실수로 인해 지금 하병 쪽 킬러들이랑 이강현이 모두 엽중천을 믿지 않았다. 골머리가 아프게 된 진광철은 더없이 후회하며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이번 행동의 규모가 너무 커서 다들 좀 긴장해서 그래. 엽형이 그들에게 계획을 알려준다면 틀림없이 안심할 거야.” 진광철이 설명하고 있을 때 하병이 손에 든 담배꽁초를 날려버리더니 일어서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뚫고 엽중천을 향해 걸어갔다. “엽병왕, 모두들 위험을 무릅쓰고 일을 하는 건데 그쪽을 안 믿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당신이 한 수 보여줘서 날 이길 수 있다면 내 수하들도 모두 당신의 명령에 따를 거야. 우리 보고 총알받이가 되라고 해도 인정할게.” “하병, 너 지금 뭐 하는 짓이야? 어떻게 엽형과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 소란 피우지 말고 빨리 돌아가.” 진광철은 낮은 소리로 노호하며 말했다. “진도련 님, 우리는 당신을 위해 목숨을 걸고 있어. 몇 년 동안 내가 당신에게 벌어준 돈이 적진 않았잖아. 설마 눈 뜨고 우리가 죽는 걸 보고만 있으려는 거야? 그리고 방금 어떻게 말했어? 이기는 사람이 지휘권을 갖는다고 했잖아.” 하병은 온몸에서 살기를 뿜으며 말했다. 만약 진광철이 만족스러운 답을 주지 못한다면 하병은 진광철을 죽이려는 마음까지 있었다. 몇 년간 진광철의 밑에서 일하면서 적지 않은 돈을 번 하병의 마음은 이미 오만해져 더 이상 누구 밑에서 일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었다. 누
“엽중천, 이건 너무한 거 아니야? 실력이 있으면 우리 하병형이랑 일대일로 싸워, 무기로 사람 협박하지 말고.” “맞아, 능력이 있으면 일대일로 싸워. 네가 정말로 상남자인지 보여줘, 계집애같이 무기로 협박하지 말고.” 엽중천은 냉소하며 하빙 등인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말했다. “내 직업이 단체로 움직이는 거야. 난 절대로 일대일로 붙는 그런 멍청한 짓을 안 해. 자신 있으면 우리 단체와 붙어보던가, 그럴 능력이 없으면 입 다물어.” 엽중천이 말한 건 부대의 명언이었는데, 부대에선 절대로 개인무력을 과시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부대에서 중요한 건 개인무력이 아니라 지휘능력이기 때문이었다. 역대 무력이 뛰어난 장령들이 기껏 해봐야 선봉이다. 무력치는 밥 위의 떡일 뿐 진정한 명장은 머리로 먹고산다. 명장의 무력에 대한 이야기도 대부분 견강부회였다. 위용 등인은 화가 났지만 감히 말은 못 하고 분노의 눈빛으로 엽중천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들은 더 이상 노발대발하지 못했다. 상대편에서 가틀린 기관총까지 꺼냈는데 정말로 엽중천의 심기를 건드렸다가는 아무도 그 후과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강현은 말없이 눈앞의 모든 것을 보며 입가에 미세한 웃음을 지었다. 엽중천은 하병을 흘겨보며 웃으며 말했다. “아직도 승복 못하겠냐? 이번엔 암살이 아니라 특별한 전투라고. 지휘권을 너희에게 맡기면 너희들이 지휘할 줄은 알아? 너희들이 팔어르신이 수하가 몇 명이고, 화력은 얼마나 강한지, 감시망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알아?” “자료를 주지 않았으니 우리는 당연히 아무것도 모르지. 당신 설마 외운 자료로 우릴 위협하려는 건 아니지?” 이강현이 갑자기 말했다. 엽중천은 기세가 주춤했다. 그는 가장 위협적이지 않다고 여겼던 이강현이 갑자기 날카롭게 맞설 줄은 몰랐다. “허허, 자료를 보여줄 수 있어. 하지만 너희들은 자료를 봐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거야. 진 씨, 그들에게 자료 보여줘!”진광철은 얼굴을 찡그리고 부하 경호원에게 설비를 켜라고 했다. 노
하병은 위용 등인을 데리고 돌아가려고 했다. ‘이길 수 없다면 피해야지. 어차피 성공률이 없는 일이었어.’ 하병 쪽의 킬러는 10여 명이고, 엽중천이 데리고 있는 용병도 두 팀밖에 없어 총 30명일 뿐이다. 총 40여 명이서 지형이 어렵고 100여 명의 완전 무장하고 중화력을 장착한 사람들을 상대하는 게 아무리 생각해도 헛된 꿈처럼 느껴졌고, 참여해도 마지막에 단멸의 결과밖에는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했다. 영화를 찍는 것도 아니고, 갑자기 영웅이 나타날 리가 없었다. 영화 속이라면 조연이라도 도시락은 받을 수 있지. 하병은 자신이 주인공의 후광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과감하게 떠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그러나 하병 등인이 한 걸음 걷자마자 가틀린 기관총을 들고 있던 용병들이 45도 각도로 봉쇄 자세를 취했고, 나머지 용병들의 손에 있던 총기의 적외선 조준기도 하병 등인을 겨누었다. 붉은 자외선 빛이 하병 등인의 몸에서 흔들렸다. 폐공장 안은 순식간에 살기로 가득 찼고 하병 등인의 얼굴은 보기 흉해졌다. 밖으로 돌진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두 전투팀의 화력 봉쇄 앞에서 킬러들이 아무리 능력이 있다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당신 도대체 뭘 하려는 거야? 가지도 못하게 하는 거야?” 하병은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가는 건 안 되지. 이왕 왔으니 나와 함께 신나게 놀자고. 이런 전투가 자극적이지 않아? 이 병왕이 너희들을 보호해 줄 테니 너희들을 총알받이로 삼는 일은 없을 거야.” 엽중천은 히죽거리며 말했다. “우리는 입을 다물 수 있어, 너희들에 관한 정보를 누설하지 않을게.” 하병은 엽중천의 말을 전혀 믿지 않았다. 그들이 총알받이로 삼지 않는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너희들이 순순히 말을 듣지 않을 줄 알았어. 그래서 내가 너희들에게 작은 선물을 준비했는데 지금 주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엽중천이 손을 내밀자 한쪽의 용병은 은색의 금속상자를 꺼내 가볍게 엽중천의 손에 놓았다. 엽중천이 스위치를 누르니 찰칵하는
“무슨 소리야! 이강현 그 자식 내 손자 발 뒤꿈치에도 못 가! 딴 소리 말고 그냥 할 건지 말 건지나 말해.”어르신은 말을 마친 후 분노에 찬 눈으로 이강현을 노려보았다. 고운란이 이강현의 감언이설에 속은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저 역시 아까 말했던 것처럼 이강현이 한 말이 바로 제 뜻이예요.”“너 정말! 나 너 같은 손녀 없어, 너희들 우리 고씨 집안 자식 아니야!”어르신이 소리를 지른 뒤 휴대전화를 떨어뜨리고 화가 나서 고건민에게 더 심한 말을 하려고 할 때 고건강은 어르신을 힘껏 잡아당겼다.“아버지, 화내지 마세요, 화내면 몸이 상해요, 진정하세요.”고건강은 상황이 더 나빠지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만약 고씨 집안이 무너지면 고운란의 도움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지금 기회를 잡아 잘 보이려고 하였다.어르신은 고건강을 노려보며 고건강까지 욕하려고 하였다.“아버지, 화내지 마세요, 형님한테 끌려가면 안 돼요. 큰 형이 둘째 형한테 원한이 많은 거 아시잖아요. 우리 사이가 틀어지면 그게 큰 형이 바라는 거예요.”“근데 지금 둘째 형 쪽이 대세인데 앞으로 그쪽한테 기대할 지도 모르니까 사이가 틀어지면 우리도 득 볼 게 없어요. 일단 넘어가세요.”이득 외에 고건강 눈에는 도덕 같은 게 보이지 않았다. 충분한 이득만 얻을 수 있다면 누구라도 다 팔아먹을 수 있었다.그래서 지금 고건강은 자기 먹거리를 챙기기 위해 고민국 생각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어르신도 늙은 여우라 고건강 말을 듣고 속으로 다시 생각을 정리했다.방금 화가 난 김에 하마터면 일을 그를 칠 번 했다. 지금 고운란의 위세든, 이강현이 말한 진성택과의 관계든 두 사람의 세력이 강해짐을 보여주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고나서 어르신은 마음을 진정시켰다. 고건강의 말이 맞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셋째야, 네 말이 맞아, 방금 내가 큰 실수를 할 뻔했어.”“잘 생각했어요. 이럴 때 강력하게 나가면 두 쪽 다 다치게 돼요.”어르신 표정이 느긋해지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강현의 손에서 득을 못 보게 될 것을 알아차리고 어르신은 즉시 전략을 바꿔 고운란을 찾기로 하였다.뭐라해도 자기 친 손녀인데 할아버지가 부탁하면 아무리 싫어도 자기 말을 따를 것이라고 생각했다.이강현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어르신이 좀 지나치시다고 생각했다. 할말 못할 말 다 했는데 늙은 티를 내면서 덕 좀 보려고 하니 어이없었다.“할아버지, 상황은 다 얘기했고, 계속 고집부리시겠다면 운란에게 전화하세요.”“보자 보자하니, 네가 누구인 줄 알아! 너는 그냥 이 집안의 데릴사위일 뿐이야!”고민국은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허허.”이강현은 가볍게 웃으며 돌아서서 밖으로 걸어갔다.“너 무슨 태도야! 거기 서!”고민국은 앞으로 나가 이강현의 팔을 잡아당기며 이강현을 혼내려고 하였다.고건민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았다.“형님, 말로 하시죠, 화내지 마시구요.”“흥! 쟤 말 잘하는 거 좀 봐? 너무 건방지잖아!”어르신이 핸드폰을 들고 말했다.“입 다 다물어, 운란이한테 전화할 거야!”고민국은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이강현을 잡은 손은 놓지 않았다.이강현은 차가운 눈으로 구민국을 바라보았다. 고민국은 뒷머리가 섬뜩한 것을 느끼며 이강현의 눈빛에 완전히 겁을 먹고 손을 놓아버렸다.“너 여기 가만히 있어, 내 명령없이 한 발짝도 움직이지 마.”고민국은 겁을 누르고 낮은 소리로 말했다.어르신 전화가 연결되었고, 전화 저편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여보세요, 할아버지.”“빨리 돌아와, 할 말이 있어.”고운란이 어리둥절했다. 지금은 손님을 접대해야 해서 움직일 수 없었다.“할아버지, 아빠랑 이강현이 돌아가지 않았나요? 무슨 일 있으세요?”“이강현 그 새끼 얘기 꺼내지도 마! 그 자식 정말 사람 미치게 하는 재주 있어. 너 지금 원일그룹 사장 아니야? 집안 사업 망하게 생겼어, 원일그룹이 사라고 해.”고운란이 듣던 중 자기 할아버지 상업도덕에 어긋하는 말에 가슴이 서늘해졌다. “할아버지, 지금 손님을 접대해
어르신은 전혀 놀라지 않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이강현을 보고 있는데 마치 금덩어리를 발견한 눈빛이었다.“이리 와서 내 옆에 앉아.”어르신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고민국의 표정이 굳어지더니 황급히 몸을 숙이고 어르신 귀에 대고 말했다.“아버지, 이 쓰레기랑…….”“흥!”건국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어르신은 사람을 잡아먹는 듯한 매서운 눈빛으로 고민국을 노려보았다.“쓰레기는 네가 아니야?! 회사를 너한테 맡기고 나서 지금 무슨 꼴이야!”“아버지, 저는 최선을 다했어요.”“아무 쓸모 짝도 없어, 이강현을 봐봐, 이게 진정 회사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야!”어르신은 말하면서 고민국에게 눈짓을 했다.이강현 때문에 들어온 오더이니 다시 가져올 수도 있다는 뜻이다.이때 좋은 말 몇 마디로 이강현을 안정시키면 잃어버린 오더를 모두 찾아올 수 있고, 고씨 집안 사업도 다시 살아날 수 있다.“아, 네네, 이강현 너 얼른 할아버지 옆에 앉아, 내가 의자 가져다 줄게.”고민국은 의자를 들고 어르신의 옆에 놓았다. 의도적인 호의였다. 이강현은 의자에 앉지 않고 미소를 지으며 걸어갔다.“큰 아버지가 들어온 의자 제가 감히 어떻게 앉겠어요. 할아버지의 뜻도 이해합니다. 근데 고씨 집안 제품을 사면 진성택도 돈을 내면서 받는 거니까 저도 진성택이 계속 손해보게 놔둘 수는 없잖아요.”어르신의 안색이 약간 변했다. 이강현이 한 마디로 그가 곧 꺼낼 말을 막아버릴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어색하게 웃고 나서 어르신은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진성택이 어떻게 손해를 봐, 그 사람 돈 많잫아.”“돈은 많는데 손해보면서 우리를 돕는 건 사실이잖아요. 전에 저를 도와준 건 갚을 게 있어서 그랬고, 지금 약속한 시간이 되었으니 거두어들여도 당연한 거죠.”이강현은 그들을 돕지 않기로 마음을 굳혔다. 지금 이 상황에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오히려 심술궂게 굴어 이강현으로 하여금 그들을 도울 생각을 단념하게 했다.만약 처음부터 잘못을 인정했다면 도와줄 수도 있었다. 고씨
“진성택과 제 관계는 말할 필요 없고, 말 해도 믿지 않을 테니까 그냥 시키는 대로만 움직인다고 아시면 돼요.”이강현은 뒷짐을 지고 고개를 들어 상위권의 기세를 보여주었다.이강현의 도도한 모습에 고민국과 고건강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진성택이 왜 네 말을 들어, 네가 뭐라고!”고건강이 참지 못하고 말했다.이강현은 고건강을 상대하지 않고 담담한 표정으로 어르신만 바라보았다.어르신은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굳은 얼굴로 고민국에게 말했다.“전화해서 진성택 지시 맞는지 확인해봐.”“아버지! 그걸 왜 물어봐요. 순전히 허튼소리예요! 믿을 필요 없어요!”“하라면 하지, 쓸데없는 말이 왜 그렇게 많아.”어르신의 표정이 더욱 언짢아졌다.고민국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어 마지못해 휴대전화를 꺼내 바이어들의 전화를 뒤지기 시작했다.고건민은 그 틈을 타 이강현을 끌어당기며 낮은 소리로 물었다.“솔직히 말해 봐, 진성택이랑 무슨 관계야?”“제가 진성택 손자의 목숨을 구한 적이 있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때 운란이 힘들어 하니까 그냥 도움을 요청한 거예요.”고건민은 눈알을 굴리더니 이강현을 깊이 들여다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고건민의 속으로 이강현의 해명을 믿지는 않았지만 진성택이 이강현의 지시를 따른 다른 말은 믿었다.예전에 왕씨 어르신 생신 때 진성택이 이강현을 데리러 차를 몰고온 장면이 떠올리고 고건민은 이강현과 진성택 사이 관계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더욱 깊이 믿었다.그러나 지금 고건민은 깊이 따질 마음은 없고, 오히려 고민국과 고건강이 망신을 당한 모습을 보고 싶어 하였다.몇 년 동안 고건민은 고민국과 고건강으로부터 온갖 탄압을 받았으며 많은 고통을 겪었으니, 지금 그들이 좌절하는 것을 볼 수 있다면 당연히 더없이 기쁜 일이다.고민국이 건넨 전화는 이미 상대방에게 연결되었고, 연결된 후 상대방이 말하기도 전에 먼저 열정적으로 말하기 시작했다.“형님, 저 민국이예요.”“어 그래, 나 지금 회의 들어가봐야
“운란이 아무리 사장이라고 해도 도우려면 그만한 이유가 있어야 도움을 수 있죠. 지금 상황으로 봐서는 가족 사업에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요.”이강현이 말을 마치자 그들 모두 가슴이 답답하기 짝이 없었지만 반박할 말이 없었다.체면이 깎인 어르신은 고민국을 매섭게 노려보며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그를 원망했다.고민국은 이를 악물고 억지를 부리며 말했다.“네가 뭘 안다고 나서? 그래, 네 말이 맞다고 치자, 그래도 운란이 우리 회사 제품 독점판매해서 도와줄 수 있잖아!”“그건 돕는 게 아니라 공과 사를 구분 못하는 거죠, 그럼 한 달도 못 버티고 쫓겨날 건데 그걸 바라세요?”이강현이 되물었다.할 말을 잃은 고민국은 이강현을 매섭게 노려보았다.“뭘 그렇게 말해, 우리 제품 사다가 중간에서 가격을 올려 팔면 되잖아, 실적도 올리고!”어르신은 고개를 끄덕이며 고민국의 말에 동의하였다.“민국이 말이 맞아, 회사 제품을 사가서 다시 팔면 문제없어.”“허허.”이강현은 약간 경멸하는 눈빛으로 웃으며 그들을 바라보았다.“왜 오더가 빠지는지 아직 잘 모르시는군요. 기술, 생산라인, 원가 아무 것도 경쟁력이 없는 제품 누가 사겠어요?”“전에 장사가 잘 됐다는 얘기하지 마시구요, 그건 제가 받아온 오더예요! 운란이 너무 힘들어 하니까 제가 진성택에게 사람을 시켜 오더 내리라고 부탁했어요!”이강현의 말이 나오자 방 안의 사람들 모두 놀라하며 눈을 크게 떴다.사실 그들도 회사 제품이 가격이 높지만 그에 비해 품질이 뒤떨어 시장 경쟁력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고운란이 오더를 받아낼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자신의 미모로 고객의 환심을 샀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그러나 지금 이 순간 이강현이 한 말은 그들의 생각을 뒤엎었다.이강현의 말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너, 너 여기서 무슨 헛소리야! 네가 무슨 능력이 있다고 진성택을 찾아? 진성택이 무슨 사람인데 네가 부탁해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인 거 같아?!”고민국은 이강현에게 손가락질하며
어르신의 엄격한 말투에 고건민의 마음은 두려웠다.“그래요 아버지, 운란이 사장이라도 아버지 손녀딸이에요.”“흥!”어르신이 콧방귀를 뀌며 눈을 지긋이 감고 말했다.“사장이라고 집 장사도 잊은 게야?! 있는 지분을 다 팔았다고 연을 완전히 끊을 수 있다고 생각해?!”“그게…… 일도 그만뒀는데 그럴 명분이 안 되죠.”고건민은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둘째 너 쓸데없는 소리 그만해, 운란이 나가고 나서 오더 크게 줄었다고 들었어, 네 딸과 상관이 없다고 생각해?!”“별말 없이 지분 팔 때 알아봤다니까, 갈 곳을 찾아두고 가족 사업 망치려고 작성한 거 맞죠.”고건강이 따라 말했다.그들의 비난에 고건민은 입이 열 개라도 변명할 수 없는 무력함을 느꼈다.이미 마음속 선입견을 두어 고건민이 뭐라고 해도 믿지 않을 것이다.게다가 고건민도 지금 말하고 있는 이유 모두 핑계일 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왜 말이 없어? 인정 못하겠어? 너희들 정말 이렇게까지 비열할 줄은 정말 몰랐다. 가족 사업 망치고 나서 우리한테 미안하지도 않아?!”고민국이 노호했다.얼굴이 하얗게 변한 고건민은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아니요, 집안에 해가 되는 일 정말 한 적이 없어요. 아버지 믿어주세요.”“다른 말은 필요 없고, 원일그룹도 의약업을 하고 있지, 운란이 집안 사업에 도움을 보태라고 말해, 오더도 주고, 지금 그만한 능력이 있는 거 아니야?”어르신이 이제서야 용건을 말했다. 고건민은 쓴웃음을 지으며 목이 쉬어 말했다.“운란이 사장이지만 아직 막 부임해서 너무 티 내서 하면 안 돼요, 그보다 지금 회사일 운란이 한 마디로 움직이는 거 아니잖아요.”“그래서 안 하겠다는 거야? 눈뜨고 집안 사업이 망하는 거 보고싶어? 너 그러고도 내 자식이야?!”어르신은 눈을 부릅뜨고 고건민을 노려보며 죽여버릴 것만 같았다.고건민은 당황한 듯 고개를 돌려 이강현을 바라보며 이강현이 빨리 와서 도와주기를 바랐다.“할아버지, 큰아버지, 작은아버지,
고건민은 이런 대우에 푹 빠졌다. 마치 제왕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다리를 꼬이고 흔들면서 고건민 머리를 쳐들고 말했다.“여보세요, 누구세요?”“누구겠어! 네 형이지!”고민국이 화 내며 소리쳤다.고건민은 귓가에 있는 전화를 내려 발신자를 확인하였다. 고민국 번호이다.오늘 같이 기분 좋은 날에 고민국 전화를 받은 고건민은 정수리에 찬물을 끼얹은 기분이었다.“아, 제가 지금 바빠서 누구 전화인지 미처 확인하지 못했어요. 무슨 일이예요?”“아버지가 널 찾아, 빨리 돌아와.”고민국이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아버지요? 아버지가 왜요? 혹시 몸이…….”“닥쳐! 아직 건강해, 돌아오라고 하면 빨리 돌아와!”고건민의 마음이 비로소 놓였다. ‘몸이 안 좋은 줄 알았잖아.’‘근데 이때 왜 날 불러, 왠지 수상해.’“네, 곧 돌아가겠습니다.”전화를 끊고 고건민은 잠시 생각하다가 이강현을 향해 걸어갔다.지금 고운란은 한성 거물들을 모시고 있어 어쩔 수 없이 이강현을 찾아갔다.“아까 본가에서 연락이 왔어, 나보고 어르신 만나러 가래.”고건민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이강현은 눈살을 찌푸리며 마음속으로 어렴풋이 짐작이 갔다.“할아버지도 뵐 겸 제가 데려다 드릴게요.”“그게…….”잠시 머뭇머뭇하다가 고건민은 이강현이 따라오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강현이 따라가면 번거로운 부분도 부담할 수 있기 때문이다.“그래, 그럼 지금 출발하자.”“네.”이강현은 고건민과 함께 차를 몰고 어르신의 집으로 향했다.곧 두 사람은 어르신의 집에 도착했다. 들어서자마자 어르신의 싸늘한 눈빛에 고건민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고건민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방금 밖에서 산 과일과 영양제를 들고 빠른 걸음으로 어르신 앞으로 걸어갔다.“아버지, 저 왔어요.”“흥! 날 잊은 건 아니고?”어르신이 무뚝뚝한 얼굴로 말했다.“제가…….”“뭘 말하고 싶은데?! 네 딸이 사장이 됐다며, 이제 고씨 집안과도 인연을 끊을 거야?!”고건민의 이마에 식은
고민국과 고건강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나서 어르신을 찾아가기로 결정했다. 지금 위급한 상황에서 어르신이 나서야 했다.두 사람이 상의를 마친 후 급히 어르신 거처로 달려갔다.의자에 누워 라디오를 끌어안고 듣고 있던 어르신은 두 아들이 황급히 걸어 들어오는 것을 보고 곧 안 좋은 일이 생겼다는 것을 알아차렸다.“너희 둘 무슨 일로 왔어? 할말 있으면 그냥 말해.”어르신은 이미 알아차렸다는 듯이 바로 말했다.고민국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헤헤, 아버님 말씀이 맞아요. 해결이 어려운 문제이니 아버님이 직접 나서서 도와주세요.”“내가? 집안일에만 손댈 수 있는 노인한테 경영은 아니지.”어르신이 눈을 감았다.“집안일 맞아요. 둘째가 경영에서 물러났잖아요. 저랑 건강이 2억으로 그 지분을 사들이고 나서 고운란도 회사에서 퇴직한 거 아버지도 알고 있죠.”“맞아, 그건 나도 알고 있어, 2억이면 은혜를 셈이지.”일찍이 고건민 집안에 불만을 품고 있었던 어르신이라 그들이 경영에서 물러난 것도 바라는 바이다.고민국은 조금 난처한 듯 고건강을 쳐다보고는 고건강에게 계속 말하라고 눈길을 주었다.“운란이가 회사 업무 쪽 일을 맡았잖아요, 그래서 걔가 퇴사한 후 원래 바이어들이 주문을 취소해서 회사 매출이 떨어지고 있어요. 근데 운란이가 원일그룹 사장이 된 거 있죠!”눈을 감고 있던 어르신이 눈을 번쩍 뜨며, 눈에 의아한 빛이 스쳐 지나갔다.“뭐?! 고운란이 어떻게 원일그룹 사장이 돼? 말도 안 되는 소리 아니야, 이제 겨우 몇 살인데, 어떻게 사장이 될 수 있어?”“정말이예요, 아까 티비에도 나왔다니까요, 한성에 이름을 댈만한 사람들이 다 참석했어요. 고운한 그 년이 분명 무슨 거래를 한 게 분명해요.”“콜록콜록.”고건강 말이 빗나간 것을 보고 고민국은 힘껏 기침을 두 번 했다.“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운란이 보고 원일그룹 오더를 우리한테 넘기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 기업도 다시 살아날 수 있어요.”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나서 어르신은
“작은 좌절일 뿐이야, 이겨내야 해! 고운란이 없으면 회사가 망해? 예전에도 힘든 적이 있었잖아!”고민국은 책상을 힘껏 치며 소리내어 말했다. 조금만 시간을 더 주면 이 난국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건강은 입을 삐죽거리며 이상한 말투로 말했다.“지난번 난국도 고운란이 해결한 거잖아요, 잊었어요?”빵!구건국의 주먹이 책상에 세게 부딪혔다.“무슨 뜻이야?”“솔직히 말해 지금 이 상황 고운란과 관련이 있는 거 분명해요. 그 바이어들은 대부분 고운란이 데려온 겁니다, 형님, 잘 생각해보세요.”고민국이 아무 말없이 의자 등받이에 힘없이 기대어 앉았다.사실 고민국도 생각을 못한 바는 아니다. 바이어 주문 취소가 고운란 퇴사와 관련이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그러나 이미 구운람을 쫓아냈고, 지분까지 헐값에 사들였는데 지금 후회하여 고운란을 모셔온다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tv 속 화면은 원일그룹 정문 앞으로 옮겨졌고 테이프 커팅식이 시작되었다.센터에는 고운란과 이강현이 서 있었고, 기타 한성 거물들도 모두 테이프 커팅식 대열에 포함되었다.곧바로 원일그룹 테이프 커팅식이 시작됩니다. 그 한가운데에는 원일그룹 고운란 사장이 서 있고…….”TV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들으며 고민국은 가슴이 답답해져서 두 손으로 가슴을 꽉 쥐었다.고건강은 부러운 듯 질투의 눈빛으로 센터에 선 고운란을 바라보며 그 자리가 자기 자리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환상을 품었다.수천억의 대그룹을 손에 넣는 기분 정말 상상할 수 없었다.“푹!”고건강이 한창 부러워하고 있을 때 고민국이 피를 토했다.피가 멀리 뿜어져 나와 TV의 스크린에 튀어 스크린에 핏기를 보였다.“형, 형님 왜 그러세요? 갑자기 왜 피를 토해요!”고건강이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 당황해하였다.고민국은 입가의 피를 닦았다. 피를 토하고 나니 많이 나아진 것 같았다.“난 괜찮아! 정말 생각지도 못했어! 고운란이 원일그룹을 사장이 될 줄은, 그러면 우리 고씨 가문에게도 얼마간 혜택을 줘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