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짝짝. 최종현은 연속으로 자신의 뺨을 때려 눈앞에 별이 보이기 시작해서야 손을 멈췄다. “이 사장님, 내가 잘못했어요. 우리 최가가 잘못했어요. 이 사장님께서 넓은 아량으로 우리에게 뉘우칠 기회를 주세요.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최종현이 몸을 굽혀 말했다. “태도 하나는 좋네. 착공 날짜는 요 이틀 안에 정해질 거고 선불금은 내일 재무가 보내줄 거야. 품질 잘 보장해. 만약 품질에 조금이라도 차질이 생긴다면 그땐 가만 안 둘 줄 알아.” 이강현도 최종현을 어떻게 할 생각은 아니었다. 마침 최종현도 잘못을 인정하고 태도가 좋았기 때문에 이강현은 최종현을 난처하게 아지 않았다. 고운란의 사촌 오빠이기도 하니까 그렇게 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최종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진지하게 말했다. “이 사장님 걱정 마세요. 제가 어떻게 하는지 지켜봐 주세요.” “이 문을 나가면 사무실에서 본 것을 모두 잊어버리고, 다른 사람에게도 함부로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이강현은 차가운 눈빛으로 최종현을 바라보았다. 최종현은 멍하니 있다가 손가락을 들어 하늘에 맹세했다. “내가 당신의 신분을 다른 사람에게 누설한다면 천벌을 받을 게요” 이강현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최종현에게 손을 흔들었다. “이 사장님, 밖에서 기다릴까요?” 최종현이 낮은 소리로 물었다. “아니, 됐어.” 이강현이 대답했다. 최종현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몸을 굽혀 뒤로 물러나가 사무실 문 옆에 이르러서야 허리를 폈다. 문을 열고 사무실을 나선 최종현은 모든 것이 환상처럼 느껴졌다. 모든 게 불가사의하게 느껴졌다. 최종한과 최종성은 급히 최종현한테로 다가가 상황을 묻기 시작했다. “형님, 어떻게 됐어요? 희망이 있습니까? 이강현 그 병신은요? 왜 형님과 함께 나오지 않은 거예요?” 최종현이 물었다. 최종현은 눈을 부릅뜨고 최종한을 보며 엄숙하게 말했다. “앞으로 이강현에게 공경하게 대해! 병신이라고 하지 말고 매제라고 불러.”
최종성은 최종한을 끌고 최종현을 따라 떠났다. 세 사람이 회사건물에서 나와 차에 올라타자 최종한이 시무룩하게 말했다. “형, 어떻게 이강현 그 쓰레기 같은 자식을 위해 나를 때려요? 오늘 반드시 나에게 설명을 해야 해요.” “넌 도대체 생각이 있는 거냐 없는 거냐? 할아버지 생일잔치에 한성사웅중에 세 명이 나 왔을 뿐만 아니라 진성택이 직접 이강현을 데리러 왔는데, 넌 눈이 멀었냐? 그것도 못 봤어?” 최종현은 매섭게 말했다. 이런 말을 할 때도 최종현은 마음속으로 한기를 내뿜었다. 예전에는 이런 것들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지금 곰곰이 생각해 보니 너무 두려웠다. “그건 모두 우연이잖아! 그 병신이 어떻게 그런 인물들을 모실 수 있겠어? 그가 그런 능력이 있었다면 병신이란 소리를 듣지 않았겠지!” 최종한은 목을 꼿꼿이 세우고 따졌다. “그런데 그들은 모두 이강현을 위해 간 거야, 맞아 안 맞아?” “그건 맞아.” 최종한은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이 모든 게 사실이기 때문에 변명할 수 없었다. “진성택이 어떤 신분과 지위인데, 네가 그를 안다고 해도 누굴 만나서 회담하는 일까지 안배할 수 있겠어? 네 그 머리를 좀 굴려봐. 진성택이 이강현을 돕는 건 이강현이 진성택의 마음속에서 그만큼 지위가 있는 사람이라는 거야!” “그러니까 정중천 일행은 정말 이강현에게 잘 보이기 위해 간 거야. 적어도 이강현이 진성택의 권세에 의지할 수 있어! 이강현이 사람들에게 병신이라고 불려도 반박하지 않는 건 아마도 그의 위장일 뿐이야. 모든 일은 표면만 보면 안 돼. 너희들도 머리 굴려서 잘 생각해 봐. 최종한은 침묵했다. 최종현의 말은 구구절절 일리가 있었다. 자세히 생각한 후 최종한의 마음도 다소 불안해졌다. “종현이 형, 원일그룹 사자님이 뭐래요?” 최종성은 분위기가 너무 답답해서 화제를 돌렸다. “이강현이 좋은 말을 하고 또 진성택의 관계를 동원해서 겨우 원일그룹 사장님께서 확답을 줬어. 요 이틀 내에 착공할 거고 선불금도 내일 재무 통해서 회
고씨 기업 회의실. 고민국은 크루프와 함께 가장자리에 앉아 있었고 고건강, 고흥윤 고운란, 크루프의 수행원이 각각 양쪽에 앉았다. 크루프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우리의 더 나은 합작을 위해 디테일한 부분들을 협상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내 비서가 당신들에게 우리 측의 요구를 말해 줄 것입니다.” 크루프의 비서는 서류를 들고 일어섰다. “우선 우리 측은 한 가지 강조할 부분이 있습니다. 모든 협력은 고운란 씨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고운란 씨가 협력자의 핵심 인물이 아니게 되면 우리가 진행하는 합작은 자동으로 종료될 것입니다.” 고민국 등인의 안색은 순식간에 안 좋아졌다. 고민국은 원래 프로젝트가 시작된 후 쥐도 새도 모르게 책임자를 바꾸려고 했는데 크루프 측에서 고운란을 핵심으로 둘 것을 요구할 줄은 몰랐다. ‘고운란이 대체 외국 놈들에게 무슨 약을 먹인 거야?’ 고흥윤는 속으로 분해서 매섭게 눈을 부릅뜨고 고운란을 바라보았다. 고운란은 마음속으로 어떻게 이런 조건이 있는지 매우 의심스러웠다. “왜 굳이 나를 중심으로 하려고 하나요?” “아름다운 운란 씨, 우리는 고씨의 모든 핵심인원들을 평가해 본 결과 당신의 성격, 학식, 관리능력이 가장 적합 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만약 합작항목을 당신이 책임지지 않는다면 결과는 100% 실패할 것이에요.” 고흥윤은 화가 나서 일어서 큰 소리로 외쳤다. “크루프 씨, 지금 다른 사람들은 능력이 없다고 무시하는 겁니까? 고씨에는 고운란 혼자만 있는 것이 아니에요!” 제대로 분노한 고흥윤는 자신이 멸시당했다고 느꼈다. 학력으로 따지면 고흥윤는 자신이 고운란보다 천배 만배 강하다고 생각했다. “지금 무례한 모습을 보니 고운란 씨보다 아주 많이, 지구에서 태양까지의 거리만큼 모자라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은 그렇게 생각하기 않나요?” 크루프가 손짓하면서 말했다. 고민국은 고흥윤을 노려보며 한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짓이야? 빨리 앉지 못해? 크루프 씨에게 웃음거리를 가져다 드
고민국은 냉정한 얼굴로 말했다. 이강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하지 않고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고민국은 크루프를 바라보며 웃으며 말했다. “크루프 씨, 계속하세요.” 크루프가 손짓을 하자 비서가 계속 읽었다. “우리 측이 원자재공급업체와 설비공급업체를 제정하면 당신 측은 무조건 접수해야 합니다. 물론 가격은 업종 평균가격보다 높지 않을 겁니다…….” 비서가 합작규칙을 조목조목 읽었다. 고민국은 그중 몇 가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지만 모두 크루프에게 합작 종료로 위협당했고, 결국은 모든 조항을 크루프 측의 방안에 따라야 했다. 이강현은 크루프 측이 선포한 세부규칙을 들으면서 머릿속에서 조목조목 궁리했다. ‘크루프가 말한 조항들은 자세히 생각하지 않으면 모두 정상적인 상업행위인 것 같지만 자세히 궁리하면 배후에 함정이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이 합작의 주요 집행자와 책임자는 고운란이야. 그러니 마지막에 크루프 측이 함정 조항을 가동하면 책임을 지는 것도 고운란이 될 것이고. 크루프 측과의 협력은 아름다운 함정처럼 보이지만 실은 맹독의 함정이다.’ ‘그런데 크루프는 왜 타깃을 고운란으로 정했을까?’ 이강현이 보기에는 한 가지 가능성밖에 없었다. 그것은 바로 용문용후의 뜻이었다. ‘용후는 자신의 실력이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을 수도 있고, 고운란을 위협의 카드로 붙잡을 생각이었을 수도 있다. 아무튼 호의적인 건 아니야.’ 이강현이 사색할 때 크루프는 세부규칙 문건을 꺼내 책상 위에 놓았다. “이것은 보충세칙의 조항인데 의의가 없다면 고운란 씨가 서명하시면 우리 사이의 합작이 정식으로 달성된 겁니다.” 고운란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이강현을 바라보며 이강현의 답을 기다렸다. “괜찮아, 서명해.” 이강현은 웃으며 말했다. 설령 이것이 용후가 설치한 함정이라고 해도, 이강현은 함정을 뒤엎을 자신이 있었다. 고운란은 그제야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펜을 들고 사인을 했다.고흥윤은 화가 나 두 손으로 주먹을
그 공업용지는 확실히 이강현의 것이다. 하지만 고민국 등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모두 토지가 고씨가문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면 이강현이 데릴사위니까 이강현의 모든 것이 고씨가문의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고민국은 담배를 꺼내 한 모금 피우고 말했다. “운란아, 그리고 이강현, 땅은 너희들이 신중하게 고려하길 바란다. 이것은 가족발전을 위한 일이야. 너희들이 공헌한다면 가문에서 그 공로를 잊지 않을 거야.” 이강현은 대수롭지 않게 웃으며 손가락으로 책상을 가볍게 두드렸다. “땅은 우리 개인의 것이야. 집안의 것이 아니라. 고씨가문에서 사용할 수 없는 건 아니야. 다만 세상에 그냥 쓰는 법이 어딨어? 돈으로 내 손에서 땅을 사든지 아님 새로 설립된 회사 지분을 주든지.” “너 이 멍청한 녀석이 우리 보고 돈을 달라고? 네가 먹고 마시는 돈이 전부 우리 고씨가문의 것인데 뭐? 너희 땅? 너흰 개뿔도 없어!” 고흥윤은 노기등등하게 소리쳤다. 고 건강은 입을 쩝쩝대며 느릿느릿 말했다. “이강현, 이렇게 말하면 안 되지. 고씨가 번창하고 발달하면 너희들도 당연히 더 많이 벌게 돼 있어. 그 땅이 너희들 손에 있으면 황폐해질 수밖에 없어. 그러니 가문에게 맡기는 것이 적합하다고 생각해.” 고씨사람들은 입을 맞춰 이강현의 땅을 차지하려고 했다. 이강현은 일어서서 말했다. “결국 돈을 주지 않으려는 거잖아?” “네가 감히 돈을 요구해? 네가 먹고 입는 모든 돈이 다 고씨가문의 것 인데. 고운란이 번 것이라고 해도 우리 고씨가문의 돈이야!” 고흥윤이 큰 소리로 말했다. “내가 먹고 입는 데 얼마를 썼는지, 과연 500 무의 공업용지와 바꿀 가치가 있는지 한번 생각해 볼게.” 이강현은 말을 마치고 일어서서 고운란을 끌고 회의실을 떠나려 했다. 고민국은 화가 나서 책상을 치고 일어나 이강현과 고운란을 노려보며 말했다. “좋은 말로 할 때 듣는 게 좋을 거야! 내일 네가 땅의 모든 문서를 보내지 않는다면 고씨어르신 보고 결정하라고 하
고운란은 갑자기 편안함을 느꼈다. 마치 이강현이 자기의 의지가 된 것 같았다. 이강현은 핸드폰을 꺼내 진성택에게 변호사를 배치해 함정계약을 만들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이강현은 토지에 관한 각종문서를 고씨가문에게 공짜로 줄 생각이 없었다. 그는 고씨가문에게 양도협의를 체결하게 하려고 한다. 그리고 협의에 은밀한 함정조항만 추가하면 끝이다. 진성택은 재빨리 메시지를 보내 이강현의 요구를 상세하게 물었고 이강현은 간단하게 답장했다. “계약에 함정을 설치해.” 진성택은 이강현이 보낸 답장을 보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바로 국내외의 최고 변호사에게 연락하여 계약 제정을 논의했다. 진선택은 빠르게 제작한 후 계약 조항을 이강현의 이메일로 발송했다. 이강현은 계약조항을 보고 집에서 멀지 않은 인쇄부에서 내려 계약을 인쇄하러 갔다. 계약인쇄를 마친 이강현은 진성택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요즘 용후에게 어떤 움직임이 있었어?” “용후가 많은 핵심 부하들을 만났는데 긴박하게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소문에 의하면 용후가 보름 안으로 한성에 올 거라고 합니다.” 진성택이 재빨리 말했다. 이강현은 실눈을 뜨고 물었다. “크루프가 고씨가문과 합작얘기하러 왔었는데 넌 알고 있었니?” “네. 제가 아직 그의 의도를 알아보고 있는 중입니다. 현재 상황으로 봐서는 크루프는 그냥 꼭두각시인 것 같습니다. 아마도 용후가 뒤에서 고씨가문에게 무엇을 하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진성택은 긴장되기 시작했다. 이강현이 고운란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말 용후가 고운란에게 불리한 짓을 한다면 진성택은 이강현이 용후에게 무슨 짓을 할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도련님, 일단 진정하세요. 제가 사람을 파견해 사부인의 안전을 지키겠습니다. 절대로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진성택은 군령장을 체결하듯 꼿꼿이 서서 말했다. 이강현은 대답한 뒤 계속 말했다. “용후의 움직임을 계속 주시하고 있어.”전화를 끊은 이강현은 고개를 저으며 크루
고건민은 침묵했다. 이강현이 한 말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도 반박할 수 없었다. 최순은 고건민이 침묵하는 것을 보고 망설이다 말했다. “이강현, 넌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니? 나는 그 땅이 우리 집의 것이라고 생각해. 우리 건데 왜 공짜로 그 사람들한테 줘야 하는데? 우리한테 득이 될 게 뭐가 있다고?” “당신.” 고건민은 최순을 쳐다보면서 그가 한 말에 대해 다소 불만스러워했다. “내가 뭐? 내가 이러는 것도 다 우리 집을 위해서잖아.” 최순은 당당하게 말했다. “이 땅은 가문에서 필요한 땅이야. 우리가 숨기고 내놓지 않으면 남들이 손가락질할 거라고.” 고건민은 초조한 말투로 말했다. “이런 일은 아무리 해명해도 사람들이 믿어주지 않아. 거기다 만약 고민국 그 사람들이 이야기를 만들어서 뿌리면, 나 고건민의 체면은 어떡하라고?” 자신의 체면을 위해 고건민은 차라리 토지를 가문에 넘겨줄지언정 씻을 수 없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싶지 않았다. 최순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흥! 손가락질할 게 뭐가 있어? 지금은 모두 가난한 사람을 비웃지 누가 이런 거로 사람을 비웃어? 이 땅을 주고, 앞으로 유산도 상속받지 못하면 우리는 그야말로 거지가 되는 거야.” “그래도 손가락질당할 수는 없잖아. 정말 그렇게 된다면 우리 가족은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게 될 거야. 이 일은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어. 난 이미 결정했어, 반드시 가문으로 넘겨야 해.” 고건민은 가장의 위엄을 내세워 최순이 사리사욕으로 자신의 명성을 떨어뜨리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았다. 최순은 화가 나서 고건민을 바라보면서 정신 차릴 수 있게 고건민을 세게 꼬집고 싶었다. “당신 왜 그렇게 멍청해? 명성이 돈이 돼? 당신이 정말 그렇게 하면 당신 큰형이 좋다고 배 그러안고 웃겠네.” “아버지, 어머니, 이강현의 의견도 좀 들어봐야 하는 거 아닐까요? 아무리 그래도 이 땅이 이강현 건데.” 고운란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최순은 눈이 밝아지며 이강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크루프는 차를 몰고 서울 교외로 가서 강변에 차를 세웠다. 강변의 굽이길에서 한 사람이 앉아 낚시를 하고 있었다. 그 사람의 모습은 꽤 수척해 보였다. 반쯤 하예진 머리는 뒤통수에 꽁쳐있었고 강변에 꼼짝 않고 앉아있었다. 바짝 마른 뒷모습을 본 크루프는 침을 꿀꺽 삼키고 눈빛에는 두려운 기색이 스쳤다. 크루프가 국제적으로 유명한 그룹의 최고경영자이긴 하지만 자신의 생사를 좌우지할 수 있는 눈앞의 늙은이에 대해 끝없는 공포로 가득 차 있었다. 마른 노인의 신분에 대해 크루프는 잘 모른다. 단지 이 노인이 자기 사장의 사장의 사장이라는 것만 알고 있었다. 원래 크루프는 마른 노인을 만날 자격이 없었지만, 고씨와 합작하는 일을 맡았기 때문에 계층의 장벽을 허물고 자신의 지위보다 몇 층이나 높은 인물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크루프는 옷을 정돈하고 순례하는 심정으로 마른 노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노인 뒤의 반 미터 떨어진 곳에서 걸음을 멈추고 몸을 굽혀 말했다. “팔어르신, 안녕하세요, 저는 크루프입니다.” “음.” 팔어르신은 비강으로 소리를 내 크루프의 말에 대답했다. 크루프는 허리를 좀 더 굽혀 황송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고씨가문과 연락을 취해서 고운란과 보충협의를 체결했어요.” “음.” “그다음엔 어떻게 해야 할지 팔어르신께서 지시를 내려주셨으면 합니다.” “이강현은 만났냐?” 팔어르신은 여전히 눈을 감고 말했다. “네 만나긴 했지만 이강현과 직접적인 교류는 하지 않았습니다. 보아하니 왕래하기 좋은 사람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는 고씨가문에서 조금 난감한 위치에 처해있는 듯합니다.” 크루프는 이강현을 만났을 때의 장면을 회상하면서 자신이 묘사한 것이 잘못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하하, 난감한 것뿐이겠는가? 고씨가문의 데릴사위로 들어가서 병신취급받았으면 병신처럼 살 것이지 왜 이 난리를 쳐가지고.” 크루프는 팔어르신이 한 말을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이 말은 팔어르신만이 알 수 있었다. 이강현이 용후와 싸
“무슨 소리야! 이강현 그 자식 내 손자 발 뒤꿈치에도 못 가! 딴 소리 말고 그냥 할 건지 말 건지나 말해.”어르신은 말을 마친 후 분노에 찬 눈으로 이강현을 노려보았다. 고운란이 이강현의 감언이설에 속은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저 역시 아까 말했던 것처럼 이강현이 한 말이 바로 제 뜻이예요.”“너 정말! 나 너 같은 손녀 없어, 너희들 우리 고씨 집안 자식 아니야!”어르신이 소리를 지른 뒤 휴대전화를 떨어뜨리고 화가 나서 고건민에게 더 심한 말을 하려고 할 때 고건강은 어르신을 힘껏 잡아당겼다.“아버지, 화내지 마세요, 화내면 몸이 상해요, 진정하세요.”고건강은 상황이 더 나빠지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만약 고씨 집안이 무너지면 고운란의 도움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지금 기회를 잡아 잘 보이려고 하였다.어르신은 고건강을 노려보며 고건강까지 욕하려고 하였다.“아버지, 화내지 마세요, 형님한테 끌려가면 안 돼요. 큰 형이 둘째 형한테 원한이 많은 거 아시잖아요. 우리 사이가 틀어지면 그게 큰 형이 바라는 거예요.”“근데 지금 둘째 형 쪽이 대세인데 앞으로 그쪽한테 기대할 지도 모르니까 사이가 틀어지면 우리도 득 볼 게 없어요. 일단 넘어가세요.”이득 외에 고건강 눈에는 도덕 같은 게 보이지 않았다. 충분한 이득만 얻을 수 있다면 누구라도 다 팔아먹을 수 있었다.그래서 지금 고건강은 자기 먹거리를 챙기기 위해 고민국 생각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어르신도 늙은 여우라 고건강 말을 듣고 속으로 다시 생각을 정리했다.방금 화가 난 김에 하마터면 일을 그를 칠 번 했다. 지금 고운란의 위세든, 이강현이 말한 진성택과의 관계든 두 사람의 세력이 강해짐을 보여주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고나서 어르신은 마음을 진정시켰다. 고건강의 말이 맞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셋째야, 네 말이 맞아, 방금 내가 큰 실수를 할 뻔했어.”“잘 생각했어요. 이럴 때 강력하게 나가면 두 쪽 다 다치게 돼요.”어르신 표정이 느긋해지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강현의 손에서 득을 못 보게 될 것을 알아차리고 어르신은 즉시 전략을 바꿔 고운란을 찾기로 하였다.뭐라해도 자기 친 손녀인데 할아버지가 부탁하면 아무리 싫어도 자기 말을 따를 것이라고 생각했다.이강현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어르신이 좀 지나치시다고 생각했다. 할말 못할 말 다 했는데 늙은 티를 내면서 덕 좀 보려고 하니 어이없었다.“할아버지, 상황은 다 얘기했고, 계속 고집부리시겠다면 운란에게 전화하세요.”“보자 보자하니, 네가 누구인 줄 알아! 너는 그냥 이 집안의 데릴사위일 뿐이야!”고민국은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허허.”이강현은 가볍게 웃으며 돌아서서 밖으로 걸어갔다.“너 무슨 태도야! 거기 서!”고민국은 앞으로 나가 이강현의 팔을 잡아당기며 이강현을 혼내려고 하였다.고건민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았다.“형님, 말로 하시죠, 화내지 마시구요.”“흥! 쟤 말 잘하는 거 좀 봐? 너무 건방지잖아!”어르신이 핸드폰을 들고 말했다.“입 다 다물어, 운란이한테 전화할 거야!”고민국은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이강현을 잡은 손은 놓지 않았다.이강현은 차가운 눈으로 구민국을 바라보았다. 고민국은 뒷머리가 섬뜩한 것을 느끼며 이강현의 눈빛에 완전히 겁을 먹고 손을 놓아버렸다.“너 여기 가만히 있어, 내 명령없이 한 발짝도 움직이지 마.”고민국은 겁을 누르고 낮은 소리로 말했다.어르신 전화가 연결되었고, 전화 저편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여보세요, 할아버지.”“빨리 돌아와, 할 말이 있어.”고운란이 어리둥절했다. 지금은 손님을 접대해야 해서 움직일 수 없었다.“할아버지, 아빠랑 이강현이 돌아가지 않았나요? 무슨 일 있으세요?”“이강현 그 새끼 얘기 꺼내지도 마! 그 자식 정말 사람 미치게 하는 재주 있어. 너 지금 원일그룹 사장 아니야? 집안 사업 망하게 생겼어, 원일그룹이 사라고 해.”고운란이 듣던 중 자기 할아버지 상업도덕에 어긋하는 말에 가슴이 서늘해졌다. “할아버지, 지금 손님을 접대해
어르신은 전혀 놀라지 않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이강현을 보고 있는데 마치 금덩어리를 발견한 눈빛이었다.“이리 와서 내 옆에 앉아.”어르신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고민국의 표정이 굳어지더니 황급히 몸을 숙이고 어르신 귀에 대고 말했다.“아버지, 이 쓰레기랑…….”“흥!”건국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어르신은 사람을 잡아먹는 듯한 매서운 눈빛으로 고민국을 노려보았다.“쓰레기는 네가 아니야?! 회사를 너한테 맡기고 나서 지금 무슨 꼴이야!”“아버지, 저는 최선을 다했어요.”“아무 쓸모 짝도 없어, 이강현을 봐봐, 이게 진정 회사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야!”어르신은 말하면서 고민국에게 눈짓을 했다.이강현 때문에 들어온 오더이니 다시 가져올 수도 있다는 뜻이다.이때 좋은 말 몇 마디로 이강현을 안정시키면 잃어버린 오더를 모두 찾아올 수 있고, 고씨 집안 사업도 다시 살아날 수 있다.“아, 네네, 이강현 너 얼른 할아버지 옆에 앉아, 내가 의자 가져다 줄게.”고민국은 의자를 들고 어르신의 옆에 놓았다. 의도적인 호의였다. 이강현은 의자에 앉지 않고 미소를 지으며 걸어갔다.“큰 아버지가 들어온 의자 제가 감히 어떻게 앉겠어요. 할아버지의 뜻도 이해합니다. 근데 고씨 집안 제품을 사면 진성택도 돈을 내면서 받는 거니까 저도 진성택이 계속 손해보게 놔둘 수는 없잖아요.”어르신의 안색이 약간 변했다. 이강현이 한 마디로 그가 곧 꺼낼 말을 막아버릴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어색하게 웃고 나서 어르신은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진성택이 어떻게 손해를 봐, 그 사람 돈 많잫아.”“돈은 많는데 손해보면서 우리를 돕는 건 사실이잖아요. 전에 저를 도와준 건 갚을 게 있어서 그랬고, 지금 약속한 시간이 되었으니 거두어들여도 당연한 거죠.”이강현은 그들을 돕지 않기로 마음을 굳혔다. 지금 이 상황에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오히려 심술궂게 굴어 이강현으로 하여금 그들을 도울 생각을 단념하게 했다.만약 처음부터 잘못을 인정했다면 도와줄 수도 있었다. 고씨
“진성택과 제 관계는 말할 필요 없고, 말 해도 믿지 않을 테니까 그냥 시키는 대로만 움직인다고 아시면 돼요.”이강현은 뒷짐을 지고 고개를 들어 상위권의 기세를 보여주었다.이강현의 도도한 모습에 고민국과 고건강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진성택이 왜 네 말을 들어, 네가 뭐라고!”고건강이 참지 못하고 말했다.이강현은 고건강을 상대하지 않고 담담한 표정으로 어르신만 바라보았다.어르신은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굳은 얼굴로 고민국에게 말했다.“전화해서 진성택 지시 맞는지 확인해봐.”“아버지! 그걸 왜 물어봐요. 순전히 허튼소리예요! 믿을 필요 없어요!”“하라면 하지, 쓸데없는 말이 왜 그렇게 많아.”어르신의 표정이 더욱 언짢아졌다.고민국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어 마지못해 휴대전화를 꺼내 바이어들의 전화를 뒤지기 시작했다.고건민은 그 틈을 타 이강현을 끌어당기며 낮은 소리로 물었다.“솔직히 말해 봐, 진성택이랑 무슨 관계야?”“제가 진성택 손자의 목숨을 구한 적이 있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때 운란이 힘들어 하니까 그냥 도움을 요청한 거예요.”고건민은 눈알을 굴리더니 이강현을 깊이 들여다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고건민의 속으로 이강현의 해명을 믿지는 않았지만 진성택이 이강현의 지시를 따른 다른 말은 믿었다.예전에 왕씨 어르신 생신 때 진성택이 이강현을 데리러 차를 몰고온 장면이 떠올리고 고건민은 이강현과 진성택 사이 관계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더욱 깊이 믿었다.그러나 지금 고건민은 깊이 따질 마음은 없고, 오히려 고민국과 고건강이 망신을 당한 모습을 보고 싶어 하였다.몇 년 동안 고건민은 고민국과 고건강으로부터 온갖 탄압을 받았으며 많은 고통을 겪었으니, 지금 그들이 좌절하는 것을 볼 수 있다면 당연히 더없이 기쁜 일이다.고민국이 건넨 전화는 이미 상대방에게 연결되었고, 연결된 후 상대방이 말하기도 전에 먼저 열정적으로 말하기 시작했다.“형님, 저 민국이예요.”“어 그래, 나 지금 회의 들어가봐야
“운란이 아무리 사장이라고 해도 도우려면 그만한 이유가 있어야 도움을 수 있죠. 지금 상황으로 봐서는 가족 사업에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요.”이강현이 말을 마치자 그들 모두 가슴이 답답하기 짝이 없었지만 반박할 말이 없었다.체면이 깎인 어르신은 고민국을 매섭게 노려보며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그를 원망했다.고민국은 이를 악물고 억지를 부리며 말했다.“네가 뭘 안다고 나서? 그래, 네 말이 맞다고 치자, 그래도 운란이 우리 회사 제품 독점판매해서 도와줄 수 있잖아!”“그건 돕는 게 아니라 공과 사를 구분 못하는 거죠, 그럼 한 달도 못 버티고 쫓겨날 건데 그걸 바라세요?”이강현이 되물었다.할 말을 잃은 고민국은 이강현을 매섭게 노려보았다.“뭘 그렇게 말해, 우리 제품 사다가 중간에서 가격을 올려 팔면 되잖아, 실적도 올리고!”어르신은 고개를 끄덕이며 고민국의 말에 동의하였다.“민국이 말이 맞아, 회사 제품을 사가서 다시 팔면 문제없어.”“허허.”이강현은 약간 경멸하는 눈빛으로 웃으며 그들을 바라보았다.“왜 오더가 빠지는지 아직 잘 모르시는군요. 기술, 생산라인, 원가 아무 것도 경쟁력이 없는 제품 누가 사겠어요?”“전에 장사가 잘 됐다는 얘기하지 마시구요, 그건 제가 받아온 오더예요! 운란이 너무 힘들어 하니까 제가 진성택에게 사람을 시켜 오더 내리라고 부탁했어요!”이강현의 말이 나오자 방 안의 사람들 모두 놀라하며 눈을 크게 떴다.사실 그들도 회사 제품이 가격이 높지만 그에 비해 품질이 뒤떨어 시장 경쟁력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고운란이 오더를 받아낼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자신의 미모로 고객의 환심을 샀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그러나 지금 이 순간 이강현이 한 말은 그들의 생각을 뒤엎었다.이강현의 말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너, 너 여기서 무슨 헛소리야! 네가 무슨 능력이 있다고 진성택을 찾아? 진성택이 무슨 사람인데 네가 부탁해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인 거 같아?!”고민국은 이강현에게 손가락질하며
어르신의 엄격한 말투에 고건민의 마음은 두려웠다.“그래요 아버지, 운란이 사장이라도 아버지 손녀딸이에요.”“흥!”어르신이 콧방귀를 뀌며 눈을 지긋이 감고 말했다.“사장이라고 집 장사도 잊은 게야?! 있는 지분을 다 팔았다고 연을 완전히 끊을 수 있다고 생각해?!”“그게…… 일도 그만뒀는데 그럴 명분이 안 되죠.”고건민은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둘째 너 쓸데없는 소리 그만해, 운란이 나가고 나서 오더 크게 줄었다고 들었어, 네 딸과 상관이 없다고 생각해?!”“별말 없이 지분 팔 때 알아봤다니까, 갈 곳을 찾아두고 가족 사업 망치려고 작성한 거 맞죠.”고건강이 따라 말했다.그들의 비난에 고건민은 입이 열 개라도 변명할 수 없는 무력함을 느꼈다.이미 마음속 선입견을 두어 고건민이 뭐라고 해도 믿지 않을 것이다.게다가 고건민도 지금 말하고 있는 이유 모두 핑계일 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왜 말이 없어? 인정 못하겠어? 너희들 정말 이렇게까지 비열할 줄은 정말 몰랐다. 가족 사업 망치고 나서 우리한테 미안하지도 않아?!”고민국이 노호했다.얼굴이 하얗게 변한 고건민은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아니요, 집안에 해가 되는 일 정말 한 적이 없어요. 아버지 믿어주세요.”“다른 말은 필요 없고, 원일그룹도 의약업을 하고 있지, 운란이 집안 사업에 도움을 보태라고 말해, 오더도 주고, 지금 그만한 능력이 있는 거 아니야?”어르신이 이제서야 용건을 말했다. 고건민은 쓴웃음을 지으며 목이 쉬어 말했다.“운란이 사장이지만 아직 막 부임해서 너무 티 내서 하면 안 돼요, 그보다 지금 회사일 운란이 한 마디로 움직이는 거 아니잖아요.”“그래서 안 하겠다는 거야? 눈뜨고 집안 사업이 망하는 거 보고싶어? 너 그러고도 내 자식이야?!”어르신은 눈을 부릅뜨고 고건민을 노려보며 죽여버릴 것만 같았다.고건민은 당황한 듯 고개를 돌려 이강현을 바라보며 이강현이 빨리 와서 도와주기를 바랐다.“할아버지, 큰아버지, 작은아버지,
고건민은 이런 대우에 푹 빠졌다. 마치 제왕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다리를 꼬이고 흔들면서 고건민 머리를 쳐들고 말했다.“여보세요, 누구세요?”“누구겠어! 네 형이지!”고민국이 화 내며 소리쳤다.고건민은 귓가에 있는 전화를 내려 발신자를 확인하였다. 고민국 번호이다.오늘 같이 기분 좋은 날에 고민국 전화를 받은 고건민은 정수리에 찬물을 끼얹은 기분이었다.“아, 제가 지금 바빠서 누구 전화인지 미처 확인하지 못했어요. 무슨 일이예요?”“아버지가 널 찾아, 빨리 돌아와.”고민국이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아버지요? 아버지가 왜요? 혹시 몸이…….”“닥쳐! 아직 건강해, 돌아오라고 하면 빨리 돌아와!”고건민의 마음이 비로소 놓였다. ‘몸이 안 좋은 줄 알았잖아.’‘근데 이때 왜 날 불러, 왠지 수상해.’“네, 곧 돌아가겠습니다.”전화를 끊고 고건민은 잠시 생각하다가 이강현을 향해 걸어갔다.지금 고운란은 한성 거물들을 모시고 있어 어쩔 수 없이 이강현을 찾아갔다.“아까 본가에서 연락이 왔어, 나보고 어르신 만나러 가래.”고건민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이강현은 눈살을 찌푸리며 마음속으로 어렴풋이 짐작이 갔다.“할아버지도 뵐 겸 제가 데려다 드릴게요.”“그게…….”잠시 머뭇머뭇하다가 고건민은 이강현이 따라오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강현이 따라가면 번거로운 부분도 부담할 수 있기 때문이다.“그래, 그럼 지금 출발하자.”“네.”이강현은 고건민과 함께 차를 몰고 어르신의 집으로 향했다.곧 두 사람은 어르신의 집에 도착했다. 들어서자마자 어르신의 싸늘한 눈빛에 고건민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고건민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방금 밖에서 산 과일과 영양제를 들고 빠른 걸음으로 어르신 앞으로 걸어갔다.“아버지, 저 왔어요.”“흥! 날 잊은 건 아니고?”어르신이 무뚝뚝한 얼굴로 말했다.“제가…….”“뭘 말하고 싶은데?! 네 딸이 사장이 됐다며, 이제 고씨 집안과도 인연을 끊을 거야?!”고건민의 이마에 식은
고민국과 고건강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나서 어르신을 찾아가기로 결정했다. 지금 위급한 상황에서 어르신이 나서야 했다.두 사람이 상의를 마친 후 급히 어르신 거처로 달려갔다.의자에 누워 라디오를 끌어안고 듣고 있던 어르신은 두 아들이 황급히 걸어 들어오는 것을 보고 곧 안 좋은 일이 생겼다는 것을 알아차렸다.“너희 둘 무슨 일로 왔어? 할말 있으면 그냥 말해.”어르신은 이미 알아차렸다는 듯이 바로 말했다.고민국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헤헤, 아버님 말씀이 맞아요. 해결이 어려운 문제이니 아버님이 직접 나서서 도와주세요.”“내가? 집안일에만 손댈 수 있는 노인한테 경영은 아니지.”어르신이 눈을 감았다.“집안일 맞아요. 둘째가 경영에서 물러났잖아요. 저랑 건강이 2억으로 그 지분을 사들이고 나서 고운란도 회사에서 퇴직한 거 아버지도 알고 있죠.”“맞아, 그건 나도 알고 있어, 2억이면 은혜를 셈이지.”일찍이 고건민 집안에 불만을 품고 있었던 어르신이라 그들이 경영에서 물러난 것도 바라는 바이다.고민국은 조금 난처한 듯 고건강을 쳐다보고는 고건강에게 계속 말하라고 눈길을 주었다.“운란이가 회사 업무 쪽 일을 맡았잖아요, 그래서 걔가 퇴사한 후 원래 바이어들이 주문을 취소해서 회사 매출이 떨어지고 있어요. 근데 운란이가 원일그룹 사장이 된 거 있죠!”눈을 감고 있던 어르신이 눈을 번쩍 뜨며, 눈에 의아한 빛이 스쳐 지나갔다.“뭐?! 고운란이 어떻게 원일그룹 사장이 돼? 말도 안 되는 소리 아니야, 이제 겨우 몇 살인데, 어떻게 사장이 될 수 있어?”“정말이예요, 아까 티비에도 나왔다니까요, 한성에 이름을 댈만한 사람들이 다 참석했어요. 고운한 그 년이 분명 무슨 거래를 한 게 분명해요.”“콜록콜록.”고건강 말이 빗나간 것을 보고 고민국은 힘껏 기침을 두 번 했다.“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운란이 보고 원일그룹 오더를 우리한테 넘기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 기업도 다시 살아날 수 있어요.”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나서 어르신은
“작은 좌절일 뿐이야, 이겨내야 해! 고운란이 없으면 회사가 망해? 예전에도 힘든 적이 있었잖아!”고민국은 책상을 힘껏 치며 소리내어 말했다. 조금만 시간을 더 주면 이 난국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건강은 입을 삐죽거리며 이상한 말투로 말했다.“지난번 난국도 고운란이 해결한 거잖아요, 잊었어요?”빵!구건국의 주먹이 책상에 세게 부딪혔다.“무슨 뜻이야?”“솔직히 말해 지금 이 상황 고운란과 관련이 있는 거 분명해요. 그 바이어들은 대부분 고운란이 데려온 겁니다, 형님, 잘 생각해보세요.”고민국이 아무 말없이 의자 등받이에 힘없이 기대어 앉았다.사실 고민국도 생각을 못한 바는 아니다. 바이어 주문 취소가 고운란 퇴사와 관련이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그러나 이미 구운람을 쫓아냈고, 지분까지 헐값에 사들였는데 지금 후회하여 고운란을 모셔온다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tv 속 화면은 원일그룹 정문 앞으로 옮겨졌고 테이프 커팅식이 시작되었다.센터에는 고운란과 이강현이 서 있었고, 기타 한성 거물들도 모두 테이프 커팅식 대열에 포함되었다.곧바로 원일그룹 테이프 커팅식이 시작됩니다. 그 한가운데에는 원일그룹 고운란 사장이 서 있고…….”TV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들으며 고민국은 가슴이 답답해져서 두 손으로 가슴을 꽉 쥐었다.고건강은 부러운 듯 질투의 눈빛으로 센터에 선 고운란을 바라보며 그 자리가 자기 자리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환상을 품었다.수천억의 대그룹을 손에 넣는 기분 정말 상상할 수 없었다.“푹!”고건강이 한창 부러워하고 있을 때 고민국이 피를 토했다.피가 멀리 뿜어져 나와 TV의 스크린에 튀어 스크린에 핏기를 보였다.“형, 형님 왜 그러세요? 갑자기 왜 피를 토해요!”고건강이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 당황해하였다.고민국은 입가의 피를 닦았다. 피를 토하고 나니 많이 나아진 것 같았다.“난 괜찮아! 정말 생각지도 못했어! 고운란이 원일그룹을 사장이 될 줄은, 그러면 우리 고씨 가문에게도 얼마간 혜택을 줘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