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전에 아빠한테 했던 말은 다 거짓인 거냐?”윤중성이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너는 소겸을 도와주기로 했지만, 결국 그 녀석이 점점 수렁에 빠져가는 걸 지켜보기만 했지…… 아니, 처음부터 네가 구덩이를 판 게 아니냐?”윤설아가 조롱 섞인 웃음을 지었다.“그건 아버지가 어떻게 보느냐에 달려 있어요. 제가 구덩이를 파긴 했지만, 그건 기초를 닦고 고층 건물을 지으려고 그런 거였어요. 그런데 윤소겸이 그걸 기어코 빼앗아 고층 건물을 올리는 대신, 밑으로 끝도 없이 구덩이만 파 내려간 거죠. 게다가 그 구덩이에 뛰어들기까지 했으니, 제가 무슨 수로 막겠어요?”맞는 말이었다. 윤소겸이 구덩이 안에 스스로 뛰어든 것은 명백한 사실이었다. 단지, 윤설아는 그런 소겸을 한 번도 말리지 않았을 뿐이었다.“그래, 좋다!”모든 사실을 확인한 윤중성은 낙담한 표정으로 천천히 소파에 앉았다.“그동안 눈치채지 못했구나. 내 딸이 이런 수완을 가지고 있었다니 말이다. 나까지 속이다니…….”“아버지가 눈치채지 못한 것이 어디 한두 가지겠어요?”윤설아의 표정이 굳어졌다.“제가 지난 몇 년 동안 우리 집안의 회사를 위해 그렇게 많은 일을 해왔음에도, 아버지는 저의 재능과 능력엔 관심이 없으셨죠. 오로지 바보 같은 아들만 바라보시느라 말이에요. 아들이라는 이유로 그놈은 힘 하나 들이지 않고, 제가 반평생 노력해서 얻은 것을 빼앗아갔어요. 그런데도 아버진 제가 또 그놈을 도와주길 바라시니 우습네요. 윤소겸에게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시는 거예요?”“아버지, 이제 똑똑히 지켜보세요. 멍청한 그 녀석이 과연 대윤 그룹을 인수할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를요.”“그것이 네가 소겸이 앞에 구덩이를 판 이유냐? 내가 소겸이를 대윤 그룹으로 데려온 첫날부터 계획한 일이었지?”오늘에서야 비로소 윤중성은 모든 걸 깨달았다.“이 일에 너희 엄마도 가담한 게 맞지?”“그런 건 아니에요. 하지만 알고는 계시겠죠.”윤설아도 더는 윤중성을 속일 생각이 없었기에 솔직하게 털어놨다.“설마
잠시 침묵하고 있던 윤중성이 갑자기 고개를 젖히며 크게 웃기 시작했다.“좋아, 좋아! 우리 대단한 딸, 아빠가 그동안 너를 잘못 봤었구나!”설아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여전히 냉담한 태도를 유지한 채 윤중성에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지금의 자리조차 지키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그때, 윤중성의 휴대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그는 느릿느릿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 나야…….”몇 마디 듣지도 않고 윤중성이 놀란 눈으로 고개를 쳐들었다.“뭐라고?”“샅샅이 찾아봤어? 전화도 안 받아?”윤중성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시선은 설아를 향해 있었다.설아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그래, 알았어. 우선 진정해. 아니, 경찰에 신고하지 말고 기다려…….”윤중성은 전화를 끊자마자 설아를 노려보았다.“소겸이에게 무슨 짓을 한 거냐?”“그게 무슨 말씀이세요?”설아는 이 상황이 너무 당황스러웠다.“내 앞에서 더는 연기할 필요는 없다.”코웃음을 치는 윤중성의 얼굴에는 더는 설아를 믿을 마음이 없어 보였다.“지금 네가 모든 죄를 소겸에게 뒤집어씌운 이상 그를 연금할 필요까지는 없지 않니? 대체 소겸이를 어디에 가둔 거냐?”“가둬요?”윤설아가 큰 소리로 웃었다“아버지가 말씀하셨잖아요. 지금 그 녀석이 죄를 짊어지고 있다고요. 경찰이 곧 찾을 텐데 뭣 하러 제가 그 녀석을 가둬요? 그놈을 가둬놓은들 저에게 이익이 되는 것도 없는데 말예요.”윤설아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한참 동안 설아를 바라보던 윤중성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정말 너 아니냐?”“방금 그 전화, 진고은에게서 온 거예요?”설아가 중성을 보며 물었다.윤소겸이 실종되었는지, 아닌지 친엄마 말고 누가 신경이나 쓸까 하는 마음이었다.“이틀째 연락이 안 돼.”윤중성이 소겸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지만, 여전히 전원이 꺼져 있었다.“소겸 엄마가 초조해 미칠 것 같다. 기분이 좋지 않다고 했는데, 이렇게 계속 연락이 안 되는 것
“제가 왜 그런 짓을 하겠어요?”윤설아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너무 조급해하지 마세요. 곧 나타날 거예요.”“정말 그렇게 생각하니?”윤중성의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그는 오랫동안 딸에게 의존했고 그것은 습관이 되었다.“향수 사건으로 곧 경찰이 찾아올 거예요. 만약 소겸이가 보이지 않는다면 자연히 경찰이 그를 찾아낼 거고요. 그러니 걱정할 필요 없어요. 경찰에 신고하든 안하든 별 차이가 없어요. 기다리기만 하면 돼요.”윤설아는 침착한 태도로 서류 하나를 꺼내 들더니 천천히 넘기기 시작했다.말은 그렇게 했지만, 윤중성의 걱정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됐다, 됐어. 네가 찾기 싫으면 내가 직접 찾을 거다.”자리를 박차고 나온 윤중성의 얼굴은 아까보다 훨씬 초췌해져 있었다.마침 문을 열고 들어서던 노형원은 하마터면 윤중성과 정면으로 부딪칠 뻔했다.“왜 저러는 거야?”“아무것도 아니야.”윤설아는 담담한 표정이었다.“그런데 이틀 동안 어디에 있었어? 네 그림자도 못 본 것 같은데 말이야.”“하늘을 걸고 맹세하는 건데, 난 최선을 다해 윤설아 사장님을 돕고 있어!”노형원은 긴장한 기색 없이 히죽거렸다.“요즘에 너무 일이 많아. 감정보고서도 작성해야 하고, 언론도 달래야 해. 게다가 그 조향사도 찾아야 한다고. 내가 얼마나 바쁜 줄 알아? 내 얼굴 좀 보라고. 너무 피곤해서 살이 다 빠졌단 말이야.”형원은 자기 얼굴을 가리키며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윤설아는 도무지 진지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형원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조향사는 아직 찾지 못했어?”“응, 아직. 도무지 행방을 찾을 수가 없단 말이야.”형원이 고개를 저었다.이번 일을 시작하면서부터 가짜 조향사를 준비해 두었고, 몇 단계를 거처 윤소겸에게 소개하였다. 모두 노형원의 아이디어였다.윤소겸은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던 까닭에 경험도 인맥도 부족했다. 결국, 믿을 수 있는 건 이익을 남기느냐 마느냐 하는 것뿐이었다.몇 단계를 거쳐 소개받은 조향사의 뒤에 누가
“내가 맡긴 일만 얌전히 잘 처리한다면 네 몫은 톡톡히 챙겨 줄게!”윤설아가 차가운 말투로 말하면서 노형원을 힐긋 보았다.벽에 기대어 손에 쥐고 있던 볼펜을 굴리고 있는 노형원을 보더니 아까 있었던 일이 생각 났다.“아참, 윤소겸 그 자식 실종된 거 알아?”노형원이 고개를 들며 말한다.“응? 실종되었다고? 난 모르는 일인데. 정말 실종된 거 맞아? 당신 아버지가 어디에 숨겨 둔 건 아니고?”“집에만 있으라고 했는데 갑자기 실종되었대. 아빠는 내가 그런 줄 의심하고 있더라고.”윤설아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노형원이 그런 게 아니라면 윤소겸이 실종된 건 누구 짓이지?’“널 의심한다고? 니가 그 자식을 납치해서 뭐 해? 그 자식은 지금 경찰에게 찍힌 몸이야. 우리에겐 더 이상 이용할 가치도 없는 사람이라고!”“하지만 이런 일이 생겼으니 날 제일 먼저 의심했겠지.”그녀가 서류에 사인을 하며 노형원에게 지시한다.“네가 사람을 써서 그 자식 좀 찾아봐. 찾으면 바로 나한테 연락하고.”“그 자식은 왜 찾으려 하는 건데. 어차피 경찰들이 알아서 찾을 거 아냐.”노형원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찾으라면 찾아!”윤설아는 아무렇지 않다는 그의 태도가 못마땅했다.“이제 나가봐. 할 일이 산더미야!”노형원이 어깨를 으쓱하더니 사무실을 나갔다. 그의 입가에는 재미있다는 듯 웃음기가 서려 있었다.——같은 시각 경찰서에서.자기 앞에 쌓여 있는 사진을 보며 한소은은 침묵했다. 그녀가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고작 이거 가지고 저를 의심하는 거예요?”“한소은 씨, 당신은 대윤 그룹 윤소겸 부장과 짜고서 대윤 그룹을 망하게 하려던 게 아닙니까?”경찰이 관례에 따라 물었다.“대윤 그룹을 무너뜨리는 게 저에게 무슨 좋은 점이라도 있나요?”한소은은 담담하게 대답했다.“당신과 대윤 그룹은 사업에서 서로 경쟁인 관계가 아닙니까? 게다가 당신과 대윤 그룹 향수 프로젝트를 맡은 차장과 그렇고 그런 사이지 않습니까?”그녀는 자기 앞에 놓인
한소은 명의로 된 계좌는 적지 않았다. 경찰이 내민 증빙서류에 적힌 계좌 번호는 그녀가 자주 쓰는 계좌가 아니다. 그 계좌에 돈이 얼마나 있는지 그녀도 잘 몰랐다. 자주 쓰는 게 아니다 보니 돈이 들어와도 문자 메시지가 오지 않았다. 그래서 누가 그녀에게 돈을 보내도 그녀가 모를 수밖에 없었다.“이렇게 큰돈이 들어왔는데 몰랐다는 말입니까?”경찰은 그녀가 거짓말을 한다고 의심했다.“이 돈이 적진 않죠. 하지만 제겐 큰돈이 아니에요.”한소은은 경찰의 말이 우습다는 듯 말했다.“제가 조향 사업을 하는 몇 년간 이렇게 많이 벌지는 못했지만 적지 않게 벌었어요. 지금 제 능력으로 2억을 벌고 싶다면 어려운 것도 아니죠.”“어렵지 않겠지요. 입만 몇 번 놀리고 향수 레시피에 금지 성분 조금만 추가하면 쉽게 벌 수 있는데 누가 마다하겠어요?”현재 경찰이 내놓은 증거들은 모두 그녀에게 불리한 증거들이다. 그렇다 해도 의심이 가는 점이 하나도 없다는 건 아니다.경찰은 공식적인 질문만 던졌다. 대윤 그룹에서 압력을 가하고 있고 대중들도 이 사건에 관심이 많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결론을 내려야 했다.“경찰관님! 지금 증거로는 저와 윤소겸이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걸 증명할 수 없어요. 첫째, 저는 그 사람을 알지도 못해요. 사적으로 만난 적도 없고요. 둘째, 만약 제가 그 사람과 짜고 친 거라면 증거를 내놓을 수 있나요? 거래 기록은요? 이 돈이 증거라고 하지 마세요. 누구라도 제 계좌 번호만 안다면 얼마든지 돈을 보낼 수 있어요. 셋째......”“제가 백번 아니라고 해명해 봤자 믿지 않으실 테니 윤소겸을 불러오세요. 제가 직접 만나서 물어봐야겠어요.”그녀는 담담하게 말했다.누군가가 그녀를 모함한 게 확실하지만 윤소겸은 아니었다.지금 그도 이 늪에 빠진 상황이다. 사건이 결론 나면 그에게도 이득 될 게 없다. 바보가 아닌 이상 자기까지 끌어들이면서 이런 죄를 덮어씌우려 했을 리가 없다.지금 유일하게 확인된 것은 이 판을 짠 누군가는 그와 그녀를 모두
이번 사건은 그녀가 범인이라는 명백한 증거가 없다. 윤씨 가문에서 압력을 가했지만, 환아 그룹 또한 쉽게 건드릴 수 없는 존재다. 김서진이 빠르게 보석 수속을 밟고 그녀를 경찰서에서 데리고 나왔다.집으로 가는 내내 김서진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낯빛이 어두웠다.‘화가 많이 났구나.’한소은은 단번에 그가 화났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것도 화가 많이 나 보였다. 차라리 말로 화가 났다는 걸 표현하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침묵만 하니 후폭풍이 얼마나 클지 내심 걱정되었다.한소은이 그의 손을 살짝 잡으며 말했다.“전 괜찮아요.”김서진은 그녀를 한번 바라보고는 아무 말 없이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저 진짜 괜찮아요. 아무렇지도 않잖아요? 그저 조사 차원에서 불려 온 것뿐이에요. 경찰 쪽에는 확실한 증거도 없었고 모두 추측성의 질문들이었어요.”그녀가 작은 목소리로 읊조렸다.“확실히 판을 크게 짠 거 같아 보였어요. 아쉬운 게 있다면 진작에 저와 윤소겸이 만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했어야 했어요. 그래야 윤소겸과 접촉했었다는 증거를 확보할 텐데.”한소은이 장난스런 말투로 이 사건을 얼버무렸다. 사실 경찰서에 불려 가서도 딱히 긴장되지는 않았다. 법정까지 가려면 증거가 필요했다. 한 적도 없는 일에 증거가 있을 리가 없다.그녀가 걱정되는 건 따로 있었다. 이번 일로 경찰서로 불려 온 거 때문에 리사와 약속했던 향수 컨셉을 정하는데 차질이 생겼다.“지금 웃음이 나와요?”김서진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그녀를 한번 슥 보았다. 웃는 그녀의 모습은 그의 마음속에 있던 화를 절반쯤 가라앉혔다.김서진은 확실히 화가 많이 났었다. 자기 여자에게까지 손을 뻗은 그 사람들을 당장이라도 처리하고 싶었다.‘감히 내 여자에게 손대다니. 내가 쉬워 보인다는 거야?’“그 사람들이 이렇게 빈틈이 많은 판을 짰는데 당신은 안 웃긴가요?”그의 화가 잦아든 걸 느낀 한소은이 살포시 그에게 기대었다.“윤소겸이 실종되었다는데 그것도 그들이 한 짓인지 모르겠
한편 병원에서는 또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다시 병원에 찾아온 윤설아를 본 윤 부인은 하나도 놀란 기색이 없었다. 그녀가 한숨을 푹 쉬고는 입을 열었다.“설아야, 꼭 이렇게까지 해야겠니?”“큰어머니, 그게 무슨 말이세요.”윤설아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네 큰아버지, 지금 상태론 며칠 버티시지도 못할 거야. 며칠도 기다릴 수 없는 거니?”“제가 기다릴 수 없는 게 아니라 회사가 기다릴 수 없는 거예요. 지금 회사에 처리할 일이 산더미인데 아무런 명목도 없이 제가 손을 댈 수가 없어요.”그녀가 살짝 웃으며 이어서 말했다.“큰어머니와 큰아버지가 가지고 계시는 지분을 합치면 55퍼센트의 지분을 가지고 계세요. 이렇게 많은 지분을 가지고 계셔도 쓸모가 없을 테니 저에게 넘겨주시는 건 어때요? 제가 잘 이용해서 회사를 꼭 지켜 낼게요.”“회사 경영권뿐만 아니라 우리 손에 있는 지분까지 달라고? 설아야, 언제부터 이렇게 욕심이 많았니?”“큰어머니, 말씀이 너무 심하세요. 우린 한 가족이잖아요. 욕심이라뇨? 만약 설웅오빠가 살아있다면 당연히 제 몫은 없었겠죠! 하지만 지금 설웅오빠가 없잖아요. 큰어머니께서 그 많은 지분을 가지고 계셔봤자 쓸모가 없어요. 차라리 제게 주시면 큰어머니와 큰아버지의 노후는 책임져 드리죠!”지금 이 상황까지 온 이상 윤설아는 더 이상 두려울 게 없었다. 아무도 그녀의 발목을 잡을 수 없다. 그 누구도 그녀를 막을 수 없다! 윤씨 가문뿐만 아니라 정씨 가문, 심지어는 강성과 해성의 모든 사람이 우러러보는 존재가 되고 싶어 했다.“너 정말......”아들 얘기가 나오자, 윤 부인이 숨이 막혀 가슴을 부여잡았다.원래도 몸이 안 좋았는데 그동안 윤백건을 간호하느라 윤 부인은 더욱 초췌해졌다. 윤설아가 지금 윤설웅이 잘못됐다는 얘기를 꺼내는 건 정말 그녀를 죽음으로 몰아가려는 것이다.“큰어머니, 진정하세요. 몸 생각하셔야죠.”이렇게 말하며 윤설아가 서류를 들고 그녀를 지나쳐 병실로 들어갔다.“큰아버지, 병문안......”
두 명의 대주주가 병실에서 버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윤설아는 강제적으로 화사 경영권을 달라고 할 수 없었다. 그러다 소문이 나빠지게 되면 자기에게 이득 될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평소에 조용조용하던 큰어머니가 이렇게 나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어쩌면 큰아버지가 이렇게 하라고 지시한 것일 수도.그녀는 병상에 누워있는 윤백건을 한번 슥 보았다. 겨우 목숨만 붙어 있는 듯한 사람이 이런 방법을 생각했을 리가 없다.“설아 아가씨, 오늘은 이만 가보세요. 변호사가 도착하면 우리가 공증인으로서 잘 진행하겠습니다.”정 이사가 입을 열었다.“우리를 못 믿는 건 아니겠지요?”이 이사도 뒤를 이어 말했다.“그럴 리가요. 두 분 모두 회사 원로신데 두 분을 못 믿으면 믿을 사람이 있겠어요? 그저 큰아버지가 지금 몸이 안 좋으셔서 정신이 들 때가 적다 보니 아무리 유서를 공증한다 해도 제정신인 상태에서 했다는 보장이......”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정 이사가 말을 가로챘다.“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의사를 불러 자세히 검사한 후 진행할 예정입니다. 게다가 유서 공증은 만일을 대비해서 먼저 해두는 거지 확정된 게 아니에요. 회장님께서 쾌차하시면 그보다 기쁠 일이 없지요.”“그래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윤설아가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어설프게 웃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건 잘 알겠다.“그럼, 큰어머니 수고하세요!”그녀가 의미심장하게 말하자, 윤 부인이 차가운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녀를 배웅하는 척도 하기 싫었다.병원을 떠나던 윤설아는 생각하면 할수록 화가 났다. 이제 곧 모든 게 손안에 들어올 줄 알았는데 이렇게 중요한 때에 문제가 생기다니. 오랫동안 회사 일에 관심도 없었던 이 두 영감탱이가 왜 하필이면 지금, 이 흙탕물을 밟으려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지금 와서 그 두 사람을 회유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회사에 사건들이 연달아 터짐에 따라 대중들의 시선도 대윤 그룹에 집중되었다. 이런 때에 문제가 생기는 건 절대